메뉴 건너뛰기

회원연구노트

원문: Austin, Regina, and Elizabeth M. Schneider, “Mary Joe Frug's Postmodern Feminist Legal Manifesto Ten Years Later: Reflections on the State of Feminism Today,” New England Law Review, vol. 36, no. 1, Fall 2001, 1-28.

 

이 글은 메리 조 프럭 교수가 살해된 후 10년이 되던 해에 그녀가 재직했던 뉴잉글랜드 로스쿨(보스턴)에서 개최된 심포지엄의 개막 대담이며, 페미니즘 법학 관련 글들 번역 중 마지막 부분이다.

 

아래의 번역은 각주가 빠져 있는 것이며, 각주를 포함한 번역 전문은 파일로 첨부함.

 

 

 

심포지엄: 메리 조 프럭의 포스트모던 법여성주의 선언” 10년 후: 오늘날 페미니즘의 상태에 관한 성찰

 

 

레지나 오스틴

엘리자베스 M. 쉬나이더

번역: 김종서(배재대학교 명예교수)

최종수정번역일: 2022. 7. 23.

 

 

서론

 

 

리즈: 2001331일 토요일에 뉴잉글랜드 로스쿨에서 메리 조 프럭의 사후 10주기에 그를 추념하는 학술대회가 개최되었어요. 대회의 주제는 국경을 넘어서: 여성의 몸, 정체성과 가족이었죠. 레지나와 나는 개막전체회의에서 이야기를 나누었어요. 대회를 준비하면서 우리는 메리 조의 저작, 특히 그녀 사후 출판된 Harvard Law Review 논문인 포스트모던 법여성주의 선언을 읽었고, 그녀와 그녀의 사상에 관하여 서로 이야기를 나누었답니다. 우리는 메리 조와 그녀의 말들에 대하여 우리 기억들이 만들어준 상당히 경이로운 대화를 가졌어요. 대회에서 우리는 선언에서 우리가 좋아하는 인용구들(청중들이 읽을 수 있도록 스크린에 투사했죠)에 초점을 맞추었고 그 인용구들에 관한 우리의 반응과 생각들을 제공했어요.

우리의 대화는 대회 이후에도 계속되었어요. 우리는 반페미니즘, 페미니스트들 사이의 차이들, 스타일, 성생활, 중년, 물질세계, 적극주의와 법개혁 등 광범위한 주제들을 논의했어요. 메리 조의 선언에 관한 우리의 묵상은 현재 페미니즘의 상태에 관하여 성찰을 유발했고, 공통의 반복구절(riff)을 배경으로 한 즉흥담화를, 우리는 여기서 여러분들과 공유하고 싶어요.

 

 

레지나: 대회는 학문적 지휘자(impresario)로서 메리 조 프럭의 능력에 표하는 경의였어요. 그녀는 페미니스트 비평가들이 백인남성이 지배하는 비판법학대회에서 결별하려는 운동을 촉진하고 보스톤과 이 나라 전역 모두에서 비판 페미니스트 회의(FemCrit meetings)를 조직하는데 힘이 되었어요. 내가 하버드 로스쿨 방문연구자로서 케임브리지에서 보냈던 그 해에 대해 갖고 있는 가장 기분 좋은 기억들 중에는, 메리 조가 우리에게 한턱 낸 저녁식사와 만찬장 테이블을 둘러싸고 페미니스트 태양 아래 있는 모든 것에 관하여 분출했던 대화들이 있답니다.

메리 조는 우리 기억 속에서 생생한데, 그것은 그녀가 당신에게, 바로 당신에게 집중하고, 그 각별한 순간에 당신이 지구상에서 가장 특별한 사람인 것처럼 당신이 느끼게 만드는 능력을 가졌기 때문이에요. 그러나 지도자로, 조직가로, 절친으로, 그리고 여자친구로서 그녀가 우리 마음 속에 생생하게 남아있는 만큼이나 리즈와 나는 사상가이자 지적 불평가(nudge)로서 그녀에 대한 우리의 기억이 시들어갈까 두려웠어요. 그래서 우리는 그녀가 자신의 글 선언에서 말했던 것으로 돌아가겠다고, 그리고 그럼으로써 본질적으로 그녀에게, 우리의 대화를 위한 의제를 설정하고, 우리 자신과 우리가 지난 10년 동안 생각해오고 행동해 왔던 것을 설명하라고 우리에게 요구하며, 우리로 하여금 그녀가 구상했던(envisioned) 포스트모던 법여성주의에 남아 있는 것과 우리 앞에 놓인 도전들을 고려하라고 강제할 기회를 주겠다고 생각했어요.

리즈와 나는 서로 다른 장소에서 그 작업에 도달했고 다소 상이한 결론에 이르고 있어요. 리즈는 여성의 권리와 가정폭력 영역의 전문가, 활동가, 교사이자 이론가이며 살아있는 경험으로서 여성의 평등 성취에 대한 그의 기여는 확고한 것이었어요. 다른 한편으로 나는 흑인에 반대하는 경제적 차별 문제를 연구하는 데 몰두했기에, 나의 페미니스트 지성인자격은 퇴보하게 되었답니다. 메리 조의 사상들을 재방문하는 것은 내게 당대의 인종적 페미니즘을 찾아가는 학문적 순례를 시작하게 하는 원인이 되었어요. 그 길을 따라가다가 나는 젊고 자유주의적인 이른바 제3의 물결 페미니스트들의 저작을 마주했어요. 모든 피부색의 이들 젊은 여성 저술가들이 발산한 사상들과 에너지는 나를 조심스럽긴 하지만 낙관적으로 만들었어요. 나와는 다른 유리한 지점에 있는 리즈는 오늘날 페미니즘으로 통하는 것의 일부에 관하여 더 많은 질문들과 우려를 가지고 있어요. 나는 젊은 페미니스트들의 문화적/이데올로기적 의견들에서, 리즈보다는 더 전복적인 가능성, 현실에서 여성의 경제적 및 사회적 지위에서의 변화를 낳을 더 큰 개연성을 본답니다. 그러나 우리는 둘 다 포스트모던 페미니즘이 물질적 세계에 대해 너무 적은 관심을 기울이는 경향에 관하여 우려하고 있기도 해요. 또한 우리는 여성해방의 대의에 헌신해 온 여성 활동가들과 이론가들 간의, 그리고 각 사람들 사이의 차이들이 페미니스트 운동(Feminist Movement)의 활력에 중요하다는 데에도 일치해요. 메리 조는 그녀의 선언에서 이런 견해를 열정적으로 주창했죠. 우리와 다른 당대의 페미니스트들이 메리 조 프럭의 계승자일 자격이 있는지는 오로지 시간만이 말해줄 거에요.

 

 

 

 

총체적 이론 대 현지화된 분열들

 

 

  • 나는 현지화된 분열들을 지지한다.
  • 나는 총체화하는 이론에 반대한다.

 

 

레지나: 현지화된 분열들은 이야기체, 맥락화, 및 세부사항에 대한 관심을 이용해요. 총체화이론은 오만하고 엘리트주의적인 경향이 있죠. 3세계 페미니스트들이 경고했듯이 페미니즘은 어떤 상품이나 발전프로그램과 같이, “발전하는 세계를 근대화하기 위하여 수입될 수 있는 또 하나의 균질화하는 서구의 지배적 담론(Western master discourse)이 되는 것을 피해야 해요. 하나의 여성집단(예컨대 서구의 부르주아 전문직 여성들)을 해방하기 위하여 일하는 페미니스트이론은 다른 집단(예컨대 유색인종의 가난한 이주민 가사노동자들)을 탄압하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어요. 문화적으로 둔감하고 물질적으로는 유치해 보이는 총체화이론을 밀어붙이는 백인 부르주아 페미니스트들의 생색내기(condescension)는 많은 유색인종 여성들로 하여금 자신들을 페미니스트라고 밝히는 것을 방해했죠. 오늘날 현실은 총체화 페미니즘은 인종주의, 자민족중심주의, 민족주의, 종교적 근본주의, 동성애혐오, 계급 착취, 노인차별 등의 맥락에서, 즉 무엇이든 상황이 요구하는 것의 맥락에서 발생하는 젠더 불평등을 다루는 많은 페미니즘들에 항복했어요. 어쨌든 여성들은 이론만에 의해서 해방되지는 않을 거에요. 또한 현지화된 것이건 다른 방식이건, 분열들은 있어야 하며, 그런 분열들은 많을수록 더 좋아요.

 

 

리즈: (프럭의옮긴이)두 진술 이면의 충동에 나도 공감하지만, 나는 현지화된 분열들총체화이론이 서로 대립하는 것처럼 보이는 게 우려스러워요. “현지화된 분열들총체화이론사이에 이분법을 설정하는 것은 문제에요. 나는 최선의 페미니스트 작업은 현지의 것, 경험적인 것, “특정한것으로 시작해서 그 다음에 일반적인 것의 영역으로 이동하고 그 다음에는 다시 현지의 것, “특정한것으로 돌아온다고 생각하거든요. 실제로 내가 하는 작업 중 많은 것은 이론과 실천 사이의 이분법에 도전하고, 현지화된 분열들이 이론의 풍부한 원천일 수 있다는 걸 이해하며, 이론은 총체화할 필요는 없다는 관념을 포용할 필요성에 초점을 맞추어 왔어요. 메리 조는 포스트모던 이론이 총체화하지 않고 현지화된 분열에 해당하는 유일한 이론이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르겠어요. 만약 그렇다면, 그녀가 틀린 것이었을까요?

페미니스트 이론은 그 영역과 야심에서 총체화하려는 거대이론과 한 개인의 독특한 경험의 표현으로 시작해서 그것으로 끝나는 개인적 이야기들의 양극단 사이를 표류한다10년 여 전 마사 파인만의 견해가 여기서 적절할 것 같군요. 그녀가 주장했고, 우리도 동의하는 것은 이들 양극단 사이에, 일반화하거나 정치적 의미 부여를 할 수 없을 정도로 너무나 전적으로 개인적인 어떤 것과, 매일 매일의 여성의 삶의 현실들에서 제거되어 버릴 정도로 너무나 일반적이고 추상적인 어떤 것 사이의 그 공간에, 페미니스트 방법론을 위한 비옥한 대지가 존재한다는 것이에요. 나는 현지화된 분열들과 이론 사이의 연결을 보고 싶어요. 나는 현지화된 분열에서 이론이 등장하기를 원해요. 나는 분열이 이론에서 등장하기를 원한답니다. 또한 나는 분열이 현지적인(the local)을 넘어서는 것도 원해요. “현지화된 분열총체화 이론도 결코 실질적 변화를 만들기에 충분하지는 않을 것이기 때문이죠.

 

 

 

 

스타일과 실체

 

 

  • 포스트모던 저작에서 스타일은 중요하다. 어떤 경우에는 비록 결코 모든 것은 아니라 하더라도매체 자체가 메시지이다.
  • 스타일이 두드러질 때 그것은 반어법(irony)에 의해, 그리고 종종 눈부실 정도로 재미있고 신랄하며 불경스러운 재담(wordplay)에 의해 특징지워진다.
  • 사물은 보이는 것과 꼭 같지는 않다.
  • [포스트모던] 스타일의 반대적 성격이 페미니즘의 반대적 정신과 부합하는 것임은 거의 확실하다.

 

 

레지나: 선언에서, 메리 조는 자신이 포스트모던한 문학적 스타일을 통달했는지는 확실치 않다고 말하고 있지만, 그녀는 포스트모던한 것에 대한 그녀의 정통함이 크고 명확하게 전달되는 다른 텍스트들, 그녀의 선언의 단어들을 증폭하고 있는 다른 텍스트들을 생산했어요.

나는 내 남편에게 메리 조에 관하여 매우 많은 이야기를 했기 때문에, 그는 자신이 메리 조를 알았던 것처럼 느낄 정도였어요. 내 남편은 문학과 영화 전공 교수에요. 여기 원형적인(archetypical) 포스트모던 페미니스트로서 메리 조에 대한 그의 독해가 있어요.

 

 

스타일에 참여하는 것, 또는 이성애-표준의 여성 구성을 받아들이는 것, 또는 남성적 시선의 시각적 쾌락에 대한 당신 자신의 고정관념을 받아들이는 것(순회극단에 출연하는 흑인 사람들에 대해서처럼)은 전통적인 페미니스트 담론에 따르면 위험하다. 외관상 페미니즘은, 완전히 해방된 여성이 아니라 페미니스트 담론반여성적이고, 강하며, 쾌락, 미학 및 유혹에 반대하는의 포로인 새로운 여성을 구성했다.

메리 조는 복잡했는데, 왜냐하면 그녀는 행위주체성(agency), 주체성(subjecthood)과 그 반대물인 대상성(objecthood)과 자신 및 타인을 위해 아름다운 것을 믿었기 때문이다. 그녀는 스스로 자기패션을 하는 것(self-fashioning herself), 자신을 객관화하는 것, 그리고 인위적인 물질만능주의자인 것(being the artificial material girl)[가수 마돈나의 노래 “Material Girl”을 염두에 둔 표현이 듯 함옮긴이]을 믿었다. 어쩌면 그것이 그녀를 취약하게 만들었을지도 모르겠다.

궁극적으로 그녀는 조심스럽게 행동하지 않고 있었다. 그녀의 몸이 그녀의 텍스트의 하나였고, 그녀의 스타일은 우리에게 그녀가 발전시키려고 노력하던 포스트모던 페미니즘의 자원들이 되었다. 우리의 페미니즘은 우리로 하여금 우리가 케익을 소유하면서 또한 먹을 수는 없다고 믿게 했다. 메리 조에게 있어서, 진정한 자유화(liberation)와 해방(emancipation)은 둘 다를 갖는 것으로 구성되었다. 그녀는 쾌락의 관념을 가진 페미니스트였고, 이항대립(binary oppositions)[의견이나 처지, 속성 따위가 서로 반대되거나 모순되는 두 가지가 이룬 짝(국립국어원)옮긴이]을 넘어선 페미니스트였다. 법률용어로 하자면, 그녀는 세계주의적인 안목을 갖춘 완전한 시민성을 통한 여성의 복지와 유복한 생활을 추구했다.

 

그는 메리 조를 올바로 독해한 것일까요? 그는 메리 조가 채택했던 스타일을 해석한 것일까요? 그렇다면 제3의 물결 페미니즘의 젊은 주창자들은 메리 조의 포스트모더니즘에서 많은 것을 찾아서 고마워해야 해요. 3의 물결은 일정한 방식으로 그녀의 종류의 스타일링과 이론화의 유산을 대변하고 있기 때문이에요. 3의 물결 참가자들은 피해자성과 분노를 삼가고, 혼종성(hybridity), 유동성, 모순들 및 동맹들의 미덕을 상찬하지요. 그런 것들을 포용하는 것은 지적으로 메리 조를 포용하는 것이에요.

 

 

리즈: 메리 조는 지적으로도 인격적으로도 스타일의 여러 차원들을 실행했어요. 그녀는 그녀의 페르소나에서 스타일과 실질 사이의 상호관계를 예증했어요. 한 사람으로서 그녀는, 그녀 자신의 말을 이용하자면, “눈부실 정도로 재미있고 신랄하며 불경했어요. 또한 그녀는 옷도 그런 식으로 입었어요. 패션을 의식하고, 노골적으로 섹시하며, 이것이 페미니스트의 표준이 아니었던 시대에, 짧은 가죽 스커트와 꽉 끼는 스웨터를 입었죠. 그녀는 매우 의식적으로 스스로를 창조하고 자신의 몸을 포스트모던한 텍스트로 이용하고 있었어요. 그녀는 항상 페미니스트 규범들에 대담하게 도전했고요.

메리 조의 포스트모더니즘과 제3의 물결 페미니즘 사이에는 밀접한 관련이 있어요. 아마 제3의 물결 페미니스트 문헌을 읽을 때 가장 놀라운 측면은 그것의 얼마나 많은 부분이 메리 조의 저작, 사상과 페르소나와 공명하고 있는지를 보게 된다는 것이에요. 문화, “소녀와 같은 조롱의 역사적 용어들을 이용하는 것, 놀이와 성생활 감각에 대한 강조는 메리 조의 포스트모더니즘과 매우 직접적으로 연결되어 있는 것처럼 보여요. 동시에 내게는 우려도 있어요. 스타일은 실체와 관련될 수 있지만, 반드시 그렇지는 않기 때문이에요. 대립적인 스타일이 불가피하게 대립적인 실체를 반영하거나 그러한 실체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니까요. 나는 확실히 과거에 제3의 물결의 문화와 스타일에 관한 강조 중 많은 부분에 대하여 이런 식으로 반응했어요. 그러나 내가 메리 조와 관련해서 스타일을 생각할 때에는, 그 스타일의 전복적인 잠재력에 대해 새로워진 존경심을 갖게 돼요.

 

 

 

 

F로 시작하는 말

 

 

  • []양한 페미니즘들의 출현 [] 여성이 수많은 장소에 존재 하고 있으며, 시간과 지리적 위치, 인종, 연령, 성적 취향, 건강, 계급적 지위, 종교 기타 요인들에 좌우됨을 보여주었다.

 

 

레지나: 불행하게도, 이러한 다양성들은 내 자매들 중 몇몇이 완전히 페미니즘 바깥에 서도록 이끌었어요. 딱 들어맞는 사례에요.

내가 가르치는 펜실베이니아대학교 로스쿨에서 다문화 상부조직을 운영하는 학생들은 말콤 X의 죽음과 여성 역사의 달(Women's History Month)을 동시에 기념하기로 결정했어요(말콤 X가 놀랍게도 베티 샤바즈 박사를 배우자로 선택한 것은 아마도 사람들이 처음에 상상할 수 있는 것보다는 이런 긴장을 좀 덜어주긴 할 거에요). 그들은 강연자로 시인, 영화배우, 교수, 기업가인 최근의 로스쿨 졸업자인 여성을 초대했어요. 그녀는 당당했고(had presence) 스타일이 있었으며(had style) 그 목소리와 아프리카 중심적인 머드클로스 모자로 관심을 끌었어요. 그녀는 그러면 우리는 누구를 기억하지 않을 것인가라는 제목의 시를 읽었는데, 시를 싫어하는 나조차도 감동을 느꼈어요. 그녀는 우리가 어떻게, 짜증내고 당황하고 탁월하고 폭발하는 등 무엇이든 함으로써 우리의 X들을 벌어야 하는지에 관한 이야기를 계속 이어갔어요. 그러자 청중 가운데 한 사람이 그녀에게 여성들, 말콤 X와 이슬람 사이의 연관성에 관하여 질문을 던졌고, 화자는 인간 모터보트엔진으로 돌변하여 그녀가 어떻게 페미니스트가 아닌지, 그리고 오로지 우리가 우리의 의지에 반해서 외국의 서구 문화에 내려졌다는 이유만으로 우리가 겪었던 여성혐오가 어떻게 흑인들에게는 낯선 것인지에 관하여 마구 지껄이다가 말을 더듬기도(sputtering and stuttering) 했어요. 그러므로, 흑인여성들이 페미니스트여야 할 현실적 필요성은 없다고 말이죠.

페미니즘. F로 시작하는 말. 외래의(백인 인종주의적이라고 읽힌다) 개념. 나는 그것이 페미니즘이라는 것을 부정하는 페미니즘을 듣고 있었던 걸까요? 그것은 포스트모던인가요 아니면 뭐죠? 의심스러워요. 페미니즘의 모습들 중 하나인, 물질적 세계에 대한 비판의 힘을 그렇게 회피하는 것은, 결코 존재한 적이 없는 과거에 대한 낭만적인 노스탤지어와, 의미 있는 투쟁 없이는 결코 현실이 되지 않을 미래에 관한 비현실적 낙관주의 모두에 그 원인이 있어요. 특히 화자의 감정들은 오도된 아프리카 예외주의 관념의 산물일 가능성이 커요. 우리의 조상들이 아메리카로 끌려오지 않았다면 우리 흑인 미국인들이 무엇이 되었을지 누구가 되었을지 모르지만, 우리는 지금 여기에 있고, 대부분의 아프리카인들과 기타 아프리카 디아스포라의 민족들처럼, 우리도 서구가 지배하는 근대/탈근대의 지구화하는 세계에서 우리의 위치를 고수하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이것은 여성들의 완전한 참여 없이는 이루어질 수 없어요. 우리는 어느 때보다 어떤 형태로든 페미니즘을 더 많이 필요로 해요.

 

 

리즈: 포스트모더니즘은 차이를 탐구하고 인정하며 승인할 가능성을 열어주고, 반본질주의를 촉진할 잠재력도 가지고 있어요. 그렇지만 동시에 포스트모더니즘이, 반본질주의를 넘어서는 방법과 반페미니즘에 직면하는 방법을 우리에게 제공해주지는 못해요.

레지나가 시사하듯이 F로 시작하는 말은 많은 여성들, 특히 젊은 여성들에게는 여전히 엄청난 장애물이에요. 최근의 제3의 물결 저서 <선언들, 젊은 여성들, 페미니즘과 미래>의 헌정사(dedication)의 어법은 페미니스트란 단어를 향한 이 모호한 태도를 반영하고 있어요. 그 내용은 이래요: “젊은 여성들이 우리가 아직 상상해 보지 못했던 방식으로 세계를 변혁할 것이라는 신념을 가진, 모든 곳의 페미니스트들에게나는 페미니스트가 아니다, 그렇지만이라고 말하는 우리 세대의 페미니스트들과 나는 페미니스트이다, 그렇지만이라고 말하는 다른 페미니스트들을 포함하여

내가 좋아하는 뉴욕 타임즈 기사들 중 하나인, “그리고 이제, 아기 페미니즘이라는 제하의 기사에서, 애나 퀸들렌은 그들이 원할 때 그리고 그들이 원하는 방법으로, 죄책감 없이, 후회 없이 섹스를!이라는 무거운 의제로 무장한 해 줘(do me) 페미니스트들을 비판했어요. 그리고는 이야기를 계속하는데 나는 이 부분이 진짜 좋아요.

 

 

페미니즘은 더 이상 조직들이나 지도자들의 집단이 아니라는 점을 기억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것은 부모들이 그들의 딸들과 아들들에게도 가지는 기대들이다. 그것은 우리가 서로에 관하여 이야기하는 방법이고 서로를 대우하는 방법이다. 그것은 누가 돈을 버는가, 누가 타협하는가, 그리고 누가 저녁을 만드는가 이다. 그것은 마음 상태이다. 그것은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방식이다.

 

 

3의 물결 페미니즘은 여성들의 평등이 어떤 의미에서 당연한 것으로 여겨지는 역사적 시대에 작동하죠. 그러나 나는 종종 이러한 가정에는 심각한 역사감각 결여, 인종 및 계급 의식의 결여, 그리고 문화적 근시안이 존재한다고 생각해요. 페미니즘 내에서 몰역사적인 경향들은 제3의 물결에만 특유한 것은 아니에요. 그러나 역사는 일반적으로, 그리고 특히 제2의 물결의 역사는 매우 쉽게 억압되고 왜곡될 수 있어요.

내 세대의 페미니즘인 제2의 물결 페미니즘에 관하여 최근에 나온 두 권의 놀라운 저작들은 이를 교정하는 역사적 설명을 제공하고 있어요. 레이첼 블라우 뒤플레시스와 앤 스니토우가 편찬한 논문집, <페미니스트 회상 기획, 여성들의 해방으로부터의 목소리들>과 로잘린 백샌들과 린다 고든이 편찬한 원본자료집 <자매들이여>는 제2의 물결 활동가 저작의 풍부함과 다양성을 상술하고 있어요. 그들의 서문에서 레이첼 블라우 뒤플레시스와 앤 스니토우는 제2의 물결 페미니즘에 관한 이러한 억압과 왜곡의 과정을 통렬하게 묘사하고 있어요.

 

 

우리가 1997년에 저술할 때 페미니스트의 과거에 대한 축하는 완전히 유행이 지난 것이다. 낡은 수사학은 10년 묵은 의복과 같아서, 그보다 더 나쁜 것은 없다. 페미니즘은 한 사람의 부모들에 의해 떠들썩한 행동이라는 이유로 억압될 뿐 아니라 일련의 협소한 몸짓들로 압축되어 버리기도 한다. 양가적인 또는 적대적인 기억 행동들은, 헨리 루이스 게이츠 주니어가 막 지나간 시대(a recent bygone era)라고 부르는 것으로 빠르게 멀어져가는 노령을 혐오하는 문화 속에서, 페미니즘 세대로 희화화되는 일을 야기할 수 있다.

 

 

그러나 뒤플레시스와 스니토우는 과거를 격찬하고 싶어하지 않으며, 실제로 그들은 과거를 격찬하는 것은 충분하지 않다고 주장하고 있어요. 그들은 이렇게 말해요. “우리는 과거로부터, 그 제약들이 안전하다는 느낌 이상을 원한다. 과제는 기억을 검열하거나 더 과거의 자아를 비난하지 않으면서 의문을 품고 새로운 공식화를 발전시키는 것이다.” 이것은 매우 중요한 진술이에요. 기억을 검열하지 않고 새로운 페미니스트 공식화를 발전시키는 것은 우리 모두에게 던져진 도전이니까요. 우리는 과거의 강점과 한계들을 이해하지 않고서는 전진할 수 없어요. 그러나 그것은 새로운 세대에게 던져진 특별한 임무지요. 로잘린 백샌들과 린다 고든은 미래의 페미니스트들에게, 우리의 성취와 우리의 실수로부터 배우소서라는 그들의 책의 헌정사에서 이런 사상을 표현하고 있어요. 2의 물결의 성취와 실수들 둘 다에 대한 비판적 기억은 새로운 페미니스트 공식화의 발전에 필수적이에요.

 

 

 

 

  • [단일한 여성적 정체성(feminine identity) 개념에 대한 중대한 도전들]에도 불구하고, 마치 자연에 의한 것이기라도 한 듯이 여성의 몸에 고착된 것처럼 보이는, 의미의 흔한(common) 잔재가 남아있다.
  • 법적 담론은 성별 사이의 자연적차이, 그 생산을 규칙이 돕고 있는 차이에 호소함으로써, [여성의 몸의] [] 의미들을 설명하고 합리화한다.

법규칙과 담론은 다음을 허용하고 때로는 강제한다:

  • 여성의 몸의 위협화
  • 여성의 몸의 모성화
  • 여성의 몸의 성적 대상화

 

 레지나: 이제 나이가 더 들고 보니, 나는 법이 여성들의 몸에 대해 하는 것을 다르게 보게 돼요. 더욱 문자 그대로, 덜 비유적으로 봐요. 포스트모던주의자들이 은유로서의 몸 사상에 매우 많이 사로잡혀 있는 반면에, 나는 사람의 물질적 구체적 구현인 몸의 주체를 다루어야 한다는 걸 깨닫고 있어요. 법적으로 제재되는 성차별주의, 인종차별주의, 자민족중심주의, 노인차별, 동성애혐오, 그리고 종교적 불관용은 마치 천연두 전염병처럼 여성의 몸 곳곳에 그 흔적을 남겨요. 유색인종 여성의 몸은 특히 그 영속을 위해 아이들의 재생산에 의존하는 다양한 형태의 노예제를 뒷받침하는 강요된 과잉출산의 유산의 증거를 담고 있어요. 유색인종 여성의 몸은 또한 그들이 자급농업(영아기에 살아남은많은 아이들은 그러지 못해요아이들의 노동을 일꾼들만큼이나 소중한 것으로 만들죠)의 고된 노동에 관여했다는 증거도 담고 있어요. 마지막으로 유색인종 여성의 몸은 여성들이 경험하는 가장 흔한 형태의 공포, 그들의 노동력 착취를 용이하게 하는 공포, 즉 물질적 빈곤의 공포의 증거를 담고 있어요. 낭창(lupus), 당뇨병, 고혈압, 심장병, 알콜중독, 치명적인 암과 소수집단 여성들이 겪는 AIDS는 그들의 몸에 새겨진 탄압과 퇴행의 역사의 흔적들이에요.

유색인종 여성을 위한 법은 거기에 없어요. 법은 의료직을 적절히 감시하지 않고, 차별적인 고용주들과 보험업자들이 책임지도록 요구하지 않으며, 환경정의의 이름으로 오염자를 처벌하지도 않고, 부분적으로는 정부 재정지원으로 개발된 약품을 탐욕스런 제약회사들로부터 해방하지도 않아요. 이 점에서 10년 전과는 달리 우리 중 많은 사람들은 더 이상 고국의 여성들과 외국의 여성들을 구분하지 않아요. 법이 백인인, 서양의 및/또는 특권층 여성에게 그들이 약하고 아이를 양육하고 섹시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면, 그것은 유색인종인 비서구의 및/또는 비특권층 여성들에게는 뭔가 다른 것을 이야기해오고 있었던 것이고 그들의 몸에 엄청난 피해를 입혀 왔어요. 그것에 관하여 자연스러운 것은 아무것도 없어요.

 

리즈: 몸을 사람의 구체적 물질적 구현으로 이해하는 것이 핵심이에요. 3의 물결 페미니즘은 재생산, 폭력, 출산, 폐경기, 노화 등 몸의 다른 측면들과 이들 다른 측면들이 성생활(sexuality), 행위주체성(agency) 및 쾌락에 영향을 미치는 방식에 대한 더욱 철저한 분석 없이, 성생활, 행위주체성 및 쾌락에 초점을 두는 경향을 보여왔어요. 나는 연령이 여기에 들어온다고, 또는 적어도 시간의 경과에 따라 여성들이 갖는 우리 몸의 경험들에 관한 관점이 나타난다고 생각해요. 몸은 단순히 이론적인 것이 아니라 매우 구체적이에요. 당신은 젊고 건강하고 당신 자신의 생명과 건강에 대한 전지전능감을 갖고 있을 때 몸을 다르게 경험하게 돼요. 여성의 몸의, 건강의, 재생산의, 성적 공격의, 임신의, AIDS, 폐경기의 물질적 차원들, 이것들은 여성들이 우리 생애 전체에 걸쳐 직면하는 구체적 문제들이에요. 아마도 나는 내가 25세였을 때 이 문제들을 같은 방식으로 생각하지 않았을 거에요. 성생활과 성적 쾌락은 매우 중요하고 그것이 젊은이들의 분야만은 아니란 것은 확실하지만 이렇게 여성들의 더 넓은 구체적 물질적 측면들은 [3의 물결 페미니즘에서는옮긴이] 빠져있는 것 같아요.

메리 조의 저작에서 몸이라는 주제들은 이 다양한 형태들을 모두 가지고 있었어요. 나는 그녀가 이 모든 차원들에서 몸을 이해했다고 생각해요. 모성화와 성적 대상화 문제, 특히 여성과 노동, 포르노그래피와 성매매에 관련된 문제들에 대한 그녀의 탐구는 매우 발전된 것이었어요. 그러나 내가 이야기하고 싶은 것은 위협화 측면이에요. “선언에서 그녀는 그러면 여성의 몸의 하나의 의미는 공포 속에있는 몸, 허둥대고 움찔하며 마침내 복종하는 것을 배워왔던 몸이다.”라고 말하고 있어요. 이것은 너무나 생생한 문장이에요. “허둥대고” “움찔하며” “복종한다는 단어들은 공포의 경험을 너무나 시각적으로(graphically) 전달해 주니까요.

위협화는 메리 조가 살해당했던 그 아침에, 내가 메리 조와 나누었던 마지막 대화의 주제이기도 했어요. 나는 그 해에 케임브리지에 있었고, 하버드 로스쿨을 방문하여 처음으로 매 맞는 여성과 법에 관한 과목을 가르치고 있었어요. 우리는 많은 시간을 함께 보냈어요. 우리는 그날 아침 그녀의 체육관에 가서 수업을 포함하여 많은 것들에 관하여 이야기했어요. 뉴잉글랜드 로스쿨의 학생들은 메리 조에게 그녀가 가정폭력에 관한 과목을 가르치는 데 관심이 있을지 질문했었고, 우리는 비극적으로 그녀의 추도식 일시가 되고 말았던 어떤 일시에 그것에 관하여 이야기할 준비를 했어요. 가정폭력에 대한 이 대화, 그리고 위협화라는 이 주제는 또한, 슬픈 일이지만, 내 마음 속에 그녀가 죽던 그 끔찍한 상황과 연결된 채 남아있었어요. 그러나 다행스럽게도 메리 조의 가까운 친구이자 뉴잉글랜드 로스쿨의 동료인 주디 그린버그가 메리 조의 유산을 이어왔고 메리 조가 옮겨가고 싶어했던 작업을 떠맡아서, 가정폭력에 관한 과목을 가르치고 그에 관한 작업을 하는 학생들을 지도하고 있어요.

 

법개혁기획의 중요성

 

 

  • []적 담론은 성 차이를 둘러싼 정치투쟁의 장으로서 인식되어야 한다.
  • [] 차이의 의미를 둘러싼 지속적인 해석투쟁이 가부장적 법권력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 법이 (적어도 부분적으로) 구성하는 것을 법개혁기획은 재구성하거나 변경할 수 있다.

 

 

리즈: 선언에서 메리 조는 법개혁을 위한 잠재력에 관하여 매우 낙관적이에요. 지난 10년간 나 자신의 작업 중 많은 것이 사회적 변화에 대한 페미니스트 법개혁의 영향을 다루어왔어요. 내가 다양한 맥락에서 계속해서 묻고 탐구하는 문제는 법을 통하여 성 차이의 재구성이나 변경이 얼마만큼 가능한가 하는 것이에요. 설령 가능하다고 하더라도, 지난 10년의 경험은 사회적 변화에서 법의 역할에 관하여 나를 더 회의적으로 만들었거든요. 왜냐하면 엄청난 반격, 변화에 대한 격렬한 저항, 그리고 페미니스트 법제정의 많은 영역에서 쓸데없이 시간을 낭비할”(reinvent the wheel) 필요가 있는가 하는 느낌이 존재했기 때문이에요. 우리가 하나의 법 영역에서 전진했다고 생각하는 만큼, 그 전선 또는 다른 전선에서 이론에 대한 사법적 해석은 진보적 발전을 위축시키더군요. 일보 전진 이보 후퇴가 그 게임의 이름이에요. 그러나 법은 항상 사회적 양면성의 거울이며, 그렇게 기대되고 있어요. 10년 후 나는 법제정의 재구성 및 변경 과정이 훨씬 더 복잡하다고 생각해요.

나는 나의 저서 <매 맞는 여성과 페미니스트 법제정>에서 가정폭력이라는 구체적 맥락에서 이 문제에 초점을 맞추었어요. 그러나 나는 우리가 다른 법영역에서도 역시 이 점을 본다고 생각해요. 특히 나는 성적 괴롭힘 법에서 이런 발전을 보고 충격을 받고 있어요. 우리는 성적 괴롭힘을 법적 잘못으로 인지하는 데 관하여 극적인 진전을 목도해 왔어요. (그런데옮긴이) 그 후 법원들은 그 보호들을, 특히 절차적 문제에 관하여 보호들을 삭감해버리기 시작했어요. 최근의 사법적 결정들은 성적 괴롭힘을 입증하는 것을 더 어렵게 만들었어요. 고용주들로부터 엄청난 저항이 있고, 성적 괴롭힘이 무엇인지, 그것이 발생하는지 여부와 얼마나 자주 발생하는지에 관한 깊은 사회적 양면성(ambivalence)이 있어요. 문제를 최소화한다는 증거가 문화에서도, 그리고 막 노동력으로 진입하고 있는 젊은 여성들 사이에서도 발견될 수 있어요. 나의 젠더 수업에 참여하는 상당수의 젊은 여성과 남성들은 성적 괴롭힘이 존재한다는 자체에 충격을 받은 반면 어떤 학생들은 그들이 이미 경험했던 성적 괴롭힘이 특히 법률사업장에 만연해 있다는 데 충격을 받고 있어요.

 

 

레지나: 리즈가 말하는 사회적 양면성은 페미니즘에 대한 일반화된 적대감에서 나오는 만큼 페미니즘의 확산의 산물이죠. 페미니즘으로 오는 많은 젊은 여성들이 있지만, 그것은 적극주의를 통해서가 아니라 과거의 페미니스트들이 만들어냈던 자유들의 혜택을 입은 시대에 성장한 덕분이에요. 이 젊은 여성들이 자기 자신의 페미니스트 정체성을 창조하려고 시도할 때에는, 그들은 그들 앞에 왔던 사람들의 선언들의 결실을 아무리 많이 향유하고 있다고 하더라도, 그 선언들을 아무런 의문도 없이 수용하기는 주저할 수도 있어요.

레베카 워커 사건을 고려해 봐요. <현실적으로 되는 것>(To Be Real)의 서문에서 레베카 워커(<컬러 퍼플>(Color Purple)<기쁨의 비밀을 간직함>(Possessing the Secret of Joy)의 저자인 앨리스의 딸)는 그녀의 책에 포함된 글들을 수집하고 편집하는 것에 관해서 가졌던 불안을 드러내고 있어요. 워커 스스로 인정한 바에 따르면, 그 책은 가부장제에 대한 신랄한 비판, 모든 형태의 탄압에 맞서 싸우는 모든 배경 출신의 많은 젊은 여성들, 그리고 의기를 앙양하고 권능을 부여하며 동기를 부여하려는 의도를 가진 영감을 주는 수사학적 산문으로 가득차있지는 않아요. 오히려 앤젤라 데이비스가 말하듯이, <현실적으로 되는 것>페미니스트 영향의 신호를 위한 그들 자신의 개인사를 조사하고 그들이 페미니즘이라고 인정하는 것의 유용함을 평가하는 내성적인’(introspective) 목소리의 수집이에요. 이 모호한 초점은 워커로 하여금 자기자신에 관한 다음과 같은 수사학적 질문을 하도록 재촉했어요.

 

 

나는 복지개혁, 환경적 인종차별주의, 그리고 RU486에 관한 것이 아닌 책을 만드니까 나쁜 페미니스트인가? 정치는 어떤가? 사람들이 들을 필요가 있는 적극주의는 어떤가? 이 책이 내가 외부세계에 대변하는 듯이 보이는 것, 즉 젊은 페미니즘 적극주의와 조직화의 구현일 것이라는 기대는 어떤가? 일정한 수준에서, 내적 목소리는 여전히 이렇게 말하고 있다. 당신은 어떻게 감히 문제들에 관한 것이 아니라 사상에 관한 책을 만드는가? 당신은 어떻게 감히 저런 방식이 아니라 이런 방식의 페미니스트인가?

 

 

우리는 그녀를 용서할 수 있을까요? 우리는 레베카 워커가 그런 책을 편집한 것을 용서할 수 있나요? 우리는 그녀가 페미니즘은 피해자에 고착되어 있거나 협소하게 행동지향적임을 시사하는 것을 용서할 수 있나요?

아마도 그럴 것 같아요. 적어도 그녀는 계속 정직하니까요. 어쨌든 그녀는 법률가가 아니고 법개혁가들이 그녀의 양가적 페미니즘으로부터 배울 수 있는 무엇인가가 있을 거에요.

가장 관대하게 보았을 때, 자신의 책 기획에 대한 레베카 워커의 불안은, 알레인 로크가 편집한 역사적 책 <새로운 흑인>(The New Negro)의 첫 번째 선택글로서 동일한 제목을 갖고 있는 그 자신의 글 새로운 흑인”(The New Negro)에서 암묵적으로 다루고 있어요.새로운 흑인은 할렘 르네상스의 결정적 문서”(definitive text)로 여겨지고 있죠. 1925년에 쓰여진 자신의 글에서 로크는 그 시대에 앞서서 “[미국 흑인] 사이의 주요한 유대(bond)는 공통된 의식의 유대라기보다는 공통된 조건의 유대였고, 공통의 삶의 유대라기보다는 공통의 문제의 유대였다고 시사해요. 그러나 그는 새로운 흑인의 풍부한 증거를, “사회적 변화와 진보의 최신 국면들에서뿐만 아니라 흑인의 마음과 정신의 내적 세계에서 더욱더 많이발견했어요. 미국 흑인들이 제1차 세계대전 후 북부(North)에서 획득했던 경제적 및 정치적 이득을 자본화함으로써, 할렘 르네상스의 예술가들과 저술가들은 전체 인민의 지성, 창의성과 인간성 자체를 예증하는 비범하게 풍부한 문화운동을 낳았던 자기표현”, “자기결정”, “자화상”(self-portraiture)의 과정을 시작했어요.

레베카 워커가, 할렘 르네상스의 것과 맞먹을 업적을 남긴 페미니스트 저술가들과 문화노동자들의 물결의 일부라고 내가 시사하려는 것은 아니지만, 우리 시대와 그 사이에는 유사한 점(parallels)이 있어요. 그 때처럼 지금도 사회문제들은 중요성이 퇴보한 것 같고 대중적 항의는 사그라들었으니까요. 그 결과 문화전쟁의 열기가 뜨거워졌어요. 오늘날 싸움이 이루어지고 있는 가장 격렬한 인종 및 젠더 전투들은 문화적 전선을 따라 일어나고 있어요. 모든 피부색의 여성들과 다양한 피부색과 신조를 가진 소수집단이 사회적 또는 정치적 영역과 반대되는 의미에서 음악, 미술, 드라마, 영화와 문학의 세계에서 장족의 발전을 하고 있어요. 그들은 정체성 정치에서 획득한 물질적 이득과 사회적 관용을 자본화하고 있고, 집단의식을 자아 수용이나 개성과 결합하기 위한 방법 뿐만 아니라 예외적인 강도의(그러나 덧없는) 비범한 희생들이나 결코 보상받지 못하는 전심전력의 헌신을 위한 기회보다는 오히려 그들의 일상적 존재의 본질적 부분을 이루는 정치적 헌신을 추구하기 위한 방법을 찾기 위한 투쟁을 하고 있어요. 이들 문화적 전사의 흐릿한 초점은 방종처럼, 그리고 지나간 시대의 페미니스트 활동가들과 흑인권력 투사들로의 도피로 보일 수도 있지만, 문화는 오늘날 인기 절정에 있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젊은 페미니스트들이 제2의 물결의 행동 의제의 효과성을 문제삼고 의문시하는 데 있어서 얼마나 멀리까지 갈 수 있는지에는 한계가 있어요. 그들이 가지고 놀 많은 밧줄을 갖고 있다고 생각한다면, 애석하게도 그들은 잘못 판단한 것이 아닐지 의심돼요. 타이틀 7[1964년 민권법의 일부로서 인종, 피부색, 종교, 성 및 국적을 근거로 한 고용상의 차별을 금지하는 연방법옮긴이]과 타이틀 9[1964년 민권법의 후속조치로 제정된 1972년 교육수정법으로서, 학교 기타 교육프로그램에서 성을 근거로 한 차별을 금지하는 연방법옮긴이]는 법률가가 아닌 젊은 여성들에게도 중요한 의미를 가져요. 이들 법률의 보호들은 옹호되어야 하죠. 실제로 사회적 및 정치적 분야에는 좀 더 전통적인 의미에서 활동가들인 제3의 물결 참가자들(Third Wavers)이 있어요. <선언들: 젊은 여성들, 페미니즘과 미래>의 저자들인 제니퍼 바움가드너와 에이미 리차즈는 적극주의에 관하여 할 말이 많아요. 그들은 적극주의는 명확한 의도, 현실적 계획, 그리고 확인가능한 지지자들(constituency)”을 요구한다고 말해요. 그들이 적극주의의 자격을 갖고 있다고 믿는 주제들 가운데에는 다음과 같은 것들이 있어요. 군대에서 여성들을 전투에서 배제하는 것, 젠더 박해를 정치적 비호 부여의 근거로 인정하지 않는 것, 남성의 성적 쾌락과 반대되는 여성의 성적 쾌락을 묘사하는 영화에 대해 더 낮은 등급을 부여하는 영화산업의 관행, 여성 수형자들에 대한 재생산 건강배려서비스 제공의 결여, 남성들이 받는 비뇨기과 서비스와 비교할 때 여성의 산부인과 서비스에 대한 보험회사들의 상환금의 불균형, 그리고 명예학생단체가 유망주 남성과는 반대로 유망주 여성들에게는 회원자격을 부정하는 관행. 법률가들은 이들 항목 중 어느 하나에 대한 논의에라도 기여할 무엇인가를 가지고 있어야 해요.

메리 조는 그녀의 독자들에게 법이 성 차이를 둘러싼 논쟁들을 시작하는 방식을 인식하라고 충고했고 우리에게는 성 차이의 구성에서 법의 역할에 도전할 법개혁을 추구하라고 촉구했어요. 페미니스트 법률가들은, 자신들의 투쟁에서 법이 공범이란 점(law’s complicity)을 보지 못할 수도 있는 우리의 젊고, 더 불명확한 자매들이 분투하고 있는 젠더 및 인종 문화 전쟁들에 대해 문외한이 되어서는 안 돼요. 그들의 관심사들은 어디에서 법적 적극주의가 필요한가에 관한 로드맵을 제공할 수 있어요. 그들의 분석이 충분히 비판적이지 못하다면 그들에게 그것에 관하여 알려야 해요.

 

 

 

 

정치와 규정하기 힘든 여성

 

 

  • 사회적 구성 명제가 여성이라는 기본적 범주를 막 해체하려는 것처럼 보인다면 또는 그렇게 보이는 때에는, 그것이 페미니즘에 유용한지에 대해서는 문제가 제기된다.
  • 우리의 노력을 추동하는 주제가 불확정적이고 비일관적이거나 우발적인것이라면 법에 있어서 여성의 지위를 개선하기 위한 정치적 동맹을 어떻게 형성할 수 있겠는가?

 

 

리즈: 내게는 이 마지막 문제가 비평가들이 포스트모더니즘에 관하여 제기해 온 가장 중요한 근원적 우려들 중 하나에요. 포스트모더니즘이 불일치(variance)와 차이의 진가를 인정할 가능성을 열어주지만, 정치적 동원과 동맹 건설을 촉진하기 위하여 전략적 본질주의도 일정하게 필요하거든요. 나는 제3의 물결 페미니즘의 진짜 위험들 중의 하나가 바로 여기에 있지 않은가 생각해요. 더 분열될수록, 더 혼종이 될수록, 아마 포스트모던한 차원의 제3의 물결 페미니즘은, 여성의 권리를 위한 투쟁 관념을 중심에 두고서, 활동가 여성들의 의제들을 포용하려고 하지 않을 거에요. 내가 보기에 페미니즘 및 여성의 권리 관념에 관여하기를 주저하는 태도가 적극주의와 조직화의 가능성을 제한할 것 같아요.

 

 

 

 

페미니스트 분열들, 건강한 차이들

 

 

  • 강력하고 폭넓고 일관성 있는 정치공동체가 페미니즘적 법개혁기획에 매우 중요하지만, 나는 우리가 이들 기획을 추구하면서 페미니스트들 사이의 차이를 두려워하거나 회피하거나 비난하는 것은 잘못(mistake)이라고 믿는다.
  • 내 견해로는 우리의 차이를 받아들이는 것은 여성들을 영구불변으로 통합하고 우리를 여성이라는 포괄적인 범주로 결합시키는 여성적 본질이 존재한다는 가정을 포함하고 있는 젠더 차이의 이데올로기에 도전하는 핵심적인 구성요소이다.

 

 

리즈: 메리 조가 발견하는 딜레마는 공동체를 분열시키지않으면서 차이를 인정하는 방법이죠. 그녀는 선언에서, 많은 다양한 법적 맥락들, 즉 인종, 계급, 민족, 연령 및 성적 지향을 근거로 한 여성들 사이의 차이들 속에서 이에 관하여 이야기해요. 그녀는 특히 포르노그래피 반대 운동을 논의하면서 이에 초점을 맞추는데, 여기서 그녀는 이들 운동이 정말로 공동체를 분열시킨방식에 대해서는 비판적이면서도 또한 어떻게 운동이 새로운 사상들을 개척했는지를 보는데 성공하고 있어요.

내가 메리 조의 저작의 반영으로서 제3의 물결 페미니즘의 이들 문제를 탐구하기 시작했을 때, 나는 공동체 분열시키기라는 이 문제의 새로운 차원을 생각하기 시작했어요즉 세대 간 차이가 그것이죠. 나는 이들 제3의 물결 저서들 중 다수가 묘사하는 세대 간 차이의 복잡한 항로에 감명 받았어요. 레지나의 레베카 워커 인용은 이를 매우 잘 요약해주고 있죠. 세대 간 차이를 인정하고 그것을 존중하는 것은 지금 우리가 있는 곳의 핵심적 측면이에요.

 

 

레지나: 나는 최근에 탱크탑을 입고 있었다는 이유로 양키 스타디움의 레스토랑인 스타디움클럽에서 쫓겨난 한 흑인 여성과 관련된 사건을 마주했어요. 스타디움클럽 입장권의 뒷면에 인쇄된 복장코드에 따르면 탱크탑, 고무슬리퍼(thongs), 기타 짧은 복장은 엄격히 금지되었어요. 양키즈에게는 불행하게도, 그녀가 그날 탱크탑을 입은 유일한 여성은 아니었어요. 한 명만 꼽자면, 그녀의 백인 친구 역시 탱크탑을 입고 있었거든요. 더구나 흑인여성의 옷보다 노출이 더 심한 상의를 입고 있었던 다른 백인 여성들도 있었고요. 스타디움클럽 및 양키스 직원과 논의를 한 후에, 흑인여성은 차로 가서 티셔츠를 입었고 식당에 입장이 되었어요. 그녀는 자신의 아이들에게 그 외출을 가능한 한 최고의 것으로 만들어주고 싶었기 때문에, 스스로 굴복한 것이었죠. 흑인 엄마, 애플 파이, 그리고 백인의(white) 야구!

흑인 여성은 소송을 제기했고 양키스의 약식판단신청을 패퇴시켰어요. 사건은 궁극적으로 화해로 끝났고요. 그러니 그녀의 변호사는 사건에 관하여 자유롭게 이야기할 수는 없게 되었죠. 그가 대답해 주리라고 내가 기대할 수 없었던 많은 질문들이 있었는데, 이런 것들이에요. 탱크탑이 언제 속옷에서 집 바깥의 레저 활동을 위하여 적합한 의상으로 바뀌었나요? 원고는 몇 살이었죠? 그녀의 모습은 어떠했나요? 그 탱크탑은 얼마나 노출이 심했죠? 그녀는 태양이 피부에 해롭고 모기가 물면 웨스트나일 바이러스에 전염될 위험이 있다는 걸 알지 못했나요? 흑인 여성들의 체면(respectability) 추구에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건가요?

흑인 여성들의 몸은, 과도한 성생활, 천박함(immodesty)과 공격성(aggression)을 드러낸다고 추정되기 때문에, 위험하다(고 하죠). 무슨 이유로든, 그들은 백인들을 불편하게 느끼도록 만든대요. 아마 원고는 본질적으로 이렇게 말하고 있었을 거에요. “내가 그렇다면? 그건 그들의 문제죠!” 그것이 흑인 페미니스트의 반응이었을까요? 그렇다고 생각하지만, 확신은 못 하겠어요. 성생활에 대한 흑인 여성들의 표현은 오해되는 경우가 매우 많고, 그 오해를 통제할 우리의 능력은 매우 많이 제한되어 있어요. 그러나 억제와 억압이 고정관념에 도전하기 위한 공식인 경우는 거의 없어요. 그럼에도, 때로는 젊은 흑인 여성들이 그들의 성생활에 대한 외부적 통제에 도전하는 의미에서 섹시해질 때 또는 인종차별적인 여성혐오의 요구에 대한 굴복의 표명으로서 섹시해질 때를 나는 구분하기 힘들어요. 이 사례는 둘 중 어느 경우였을까요?

Joseph v. N.Y. Yankees 사건의 공식 법원기록을 몇몇 개별적 의문들과 함께 검토해보고 나서 나의 실제 우려들 중 많은 것들은 잠재워졌어요. 사건들은 더블헤더 경기의 첫 번째 경기가 마무리를 향해 가던 7월의 매우 더운 날에 일어났어요. 원고는 그녀의 가장 친한 친구의 남편인 MLB 직원에게서 티켓을 받았고 그 티켓에는 스타디움클럽 입장권이 포함되어 있었어요. 세평에 따르면, 스타디움클럽은 주로 시즌티켓 보유자들을 위한, 지나치게 격식에 치우치고, 과도하게 비싸며 허세 가득한 장소였어요. 그것은 원래 백인남성의 레저 공간이었고 조셉 씨(Ms. Joseph)가 받았던 관행들은 그것의 흔적을 반영하는 것일 수 있어요. 여성에 대해서만큼 남성에 대해서도 이의 없이 적용될 수 있는 복장코드는 아마 남성들이 주간의 야구게임에 코트를 입고 타이를 매고 왔던 그리 멀지 않은 과거 어느 시점에 생겼을 법해요. 양키스에 대한 통계를 이용할 수는 없지만, 어떤 경우이든, 프로야구경기에 소수집단이 참석하는 것은 일반적으로 재수 없다(poor)고 여겨져요. 특별 좌석이나 스타디움클럽 같은 매점 구역에 흑인들이 등장하는 일은 아마 마찬가지로 드물 거에요.

식당의 복장코드에 관하여 그 자체 불법적인 것은 없어요. 그런 규정들은 일반적으로 공공장소에서 질서의 유지와 예의, 그리고 한 사람의 신체적 외관이 다른 사람들의 좋은 의견, 편의 및 향락에 미칠 수 있는 영향에 관한 부르주아적 가치를 반영하고 있어요. 좋은 취향/맛있음? 복장규정은 패션 속물근성에 호소함을 통해서 또는 일정한 시각적 미학을 창출함으로써 어떤 장소의 사회적 지위를 상승시키는 경향이 있어요. 일정한 형태의 의상은 심지어 교양(civility)과 공공 평화를 고양시킬 수도 있다고 해요. 그러나 복장규정은 그 집행이 부당한 차별의 행사를 위한 기회가 될 때에는 법적으로 문제가 돼요. 흑인들은 그곳에 있는 것만으로도 백인이 지배하는 레저 장소에 긴장과 부조화의 기색을 주입할 수도 있다는 이유로 흑인은 사업에 나쁘다고 여겨진다는 점을 고려하면, 식당고객인 흑인은 복장규정의 왜곡된 발동을 위한 주요한 목표물이 될 가능성이 매우 크죠. 실제로 원고는 그 날 자신이 스타디움클럽에서 괴롭힘을 당한 유일한 흑인이 아니었다고 주장했어요. 원고는, 거의 옷을 입지 않은(scantily-clad) 한 백인 여성과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그 여성 자신은 식당에 입장하는데 아무런 어려움이 없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흑인 남자 동료는 샌들과 같이 신을 양말 한 벌을 빌리고 난 후에야 겨우 입장이 되어서 매우 혼란스러워했어요.

마지막으로 기술적으로 말해서 원고와 그녀의 친구는 탱크탑을 입고 있지 않았어요. 탱크탑은 남자의 속옷과 비슷한 것으로, 소매가 없고 어깨를 향해 깊이 파인 모양의 진동(armholes)이 있어서 좁은 어깨끈을 형성하며둥글거나 U자 형의 목선을 갖고 있어요. 다른 한편으로 원고는 소매에서 거의 홀터[어깨와 등 부분이 드러나고 끈을 이용하여 목 뒤에서 묶게 되어 있는 여성용 드레스나 상의옮긴이]처럼 재단된 주식회사가 제조한 니트상의를 입었고, 전면의 목선은 얕은 V자였으며, 홀터와는 달리 상의는 어깨 주변을 제외하고는 그녀의 등을 완전히 덮고 있었거든요. 그녀의 친구는 케이블 니트 소재의 DKNY 민소매 얕은[swallow라고 되어 있으나 shallow의 오기인 듯 함옮긴이] V-neck 스웨터를 입고 있었고요.

오늘날 유행을 따르는 젊은 여성들이 고전적인 흰색 골이 파인 탱크탑을 입고 있는데, 그들은 그것으로 아내폭행자들”(wifebeaters)을 가리키는 것으로 알려져 있어요. 그 용어는, “비하(put-down)와 일종의 도용(appropriation)의 결합으로서 재미있는 풍자 때문이라기보다는 그것의 노골적인 충격요법(shock value) 때문에 그리 많이 유행하지는 못했다고 해요. 추정컨대 그것은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A Streetcar Named Desire)의 스탠리 코왈스키와 텔레비전의 <신혼여행자들>(The Honeymooners)의 랠프 크램던과 같은 멍청한 야만인들”(lumpen brutes)의 고정관념을 생각나게 해요. 젊은 여성들이 공개적으로, 극도로 남성적이고 공격적인 노동계급 남성의 속옷을 입는 것은 일종의 판 뒤집기(a turning of the tables of sorts)를 대변하거든요. 그들이 아내폭행자들이라는 용어를 사용하는 것 역시 아마도 그들 자신에게는 상처를 입힐 수 없다는(“너무 세련되어서 상처받을 수 없음”) 믿음을 시사하죠. 어떤 페미니스트들은 그 용어가 매 맞는 여성들의 고통과 취약성을 경시할 뿐 아니라 젊은 사람들 사이에 가정폭력의 만연함을 저평가한다는 이유로 그 용어에 반대할지도 모르겠어요. 그러나 공적 운동과 법적 노력그 중 많은 부분이 가정폭력운동에 관한 리즈의 탁월한 저서에 기록되어 있어요은 가정폭력을 상당히 공적 담론의 일부로 만들었고 그것에 맞서 싸울 무기들을 만들어냈어요. 패션과 스타일은 그 투쟁을 촉진할 도구들 또는 탄약들이고요. 문화가 훌륭한 대의에 기여하는 경우에도 목적과 견해의 순수성이 항상 기대될 수 있는 것은 아니에요.

힙합을 소중하게 여기는 페미니스트들은 풍자적이고 말장난일 수도 있는 남성지배의 예술형식을 다룰 때 어느 정도 동일한 문제에 직면하는데, 그것은 당연히 여성들을 암캐들괭이들로 부르거나 그들을 바보로 만들거든요. “흑인”(nigger)과 그 변형들의 자유로운 이용 또한 풍부해요. 물론 흑인과 관련하여 최신 힙합 팬들은 조롱의 용어가 갖는 신랄함을 줄이기 위하여 그리고 다른 사람들에게 흑인들이 그들의 시합에 들어가려고 한다는 것을 알려주기 위하여, 조롱의 용어를 애정의 용어로 변형시키고 있다고 주장할 수도 있어요. 랩 뮤직에서 흑인 여성들에 대한 경멸적인 호칭들 뒤에서 그렇게 반어적인 또는 선제적인(preemptive) 정신을 보는 일은 거의 없어요.

이럼에도 불구하고 흑인 페미니스트인 힙합 광들은 장르에 대한 그들의 열광을 옹호해요. 예컨대 성차별주의 그리고 페미니스트 힙합 관리의 기술이란 제목의 글에서 제3의 물결 참가자인 아이사 데이비스는, 랩에서 발견되는 여성에 대한 조롱이 자신을 억압하지는 못하는데, 그것은 그 조롱이 그녀를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자신이 알고 있기 때문이라고 단언해요. 현실로 오해받을 수도 있는 가능성 때문에 그녀가 때로 재미있다고 인정하는 서정시들을 낳는 것은 가상적이고 반동적인 수행상의 허세의 산물(imaginary, reactionary performative bravado)이라고 주장하기도 하고요. 그녀는 여성들이 그들에 대한 힙합의 성차별주의적 표현들에 의해 구속되는 것에 저항할 수 있다고 믿어요. 그녀는 퀸 라티파 같은 강력한 여성랩 가수들에 의해 주도되고 있는 성차별주의에 관한 내부 토론에서 긍정적인 측면을 발견해요. 데이비스가 말하듯이 여성예술가들은, “우리 모두가 진실로부터 면제를 받기(privilege from the truth) 때문에, 끊임없이 금기를 근사한 것(the cool)으로 변형시키는 것에 대해 공로를 인정받아야 해요. 데이비스는 분노, 비난 또는 피해자학의 축 위에서 회전하지 않는 [힙합의 여성혐오주의자들과 허무주의자들과] 대화에 종사할 여성들의 능력에 희망을 두고 있어요. 힙합이 방어될 수 있다면 아내폭행자들도 확실히 방어될 수 있을 테니까요.

일종의 벽장(a closet of sort)에서 안전을 찾으면서, 많은 흑인 페미니스트들은 흑인 여성들의 성생활에 관해서는 침묵하기로 선택했어요. 그들은 흑인 여성들의 성적 문란(sexual promiscuity)에 관하여 낙인찍는 고정관념의 힘 때문에 성적 자유에 대한 지지 표현이 너무 쉽게 오해될까 두려워했어요. 흑인 페미니스트들은 성생활이 흑인 여성들 자신의 쾌락 및 행위주체성과 연상되기 보다는 성생활의 제한적이고 억압적이며 위험한 측면들을 강조하는 경향이 있었어요.

성적 자유 대신에 전통적인 흑인 부르주아 페미니즘은 체면(respectability)을 장려했어요. 체면은 사회적 명예훼손과 법적 차별에 맞서는 흑인 여성들의 주요한 무기일뿐 아니라 그들의 가장 소중한 소유물 또는 포상이었어요. 성생활이 어느 하나를 대체하는 것을 상상하기는 어려워요. 그렇지만 제3의 물결 흑인 페미니스트들의 찬란한 사례들 중 하나에 대한 견해를 고려해 봐요.

 

 

그러나 오늘날에도 여전히 여성들은 성차별주의를 경험하지만, 우리는 현저하게 다른 방식으로 그렇게 한다. 우리 중 많은 사람들은 우리의 애욕적(erotic) 힘을 우리 어머니들에게는 상상할 수 없는 것이었던 자원들, 교육, 재능, 충동, 야망, 확신 그리고 단순히 우리 것을 선택할자유과 결합시키기에 충분한 권능을 부여받고 있다.

우리는 우리의 전투와 우리의 무기를 모두 선택할 호사를 누리고 있다. 우리는, 때때로 승리하기 위해서는 필요하다면 아무리 모순되는 조치들이라도 이용할 것이 요구된다는 걸 알고 있다. 우리는 소송, 보이콧, 조직된 항의 또는 그럴만한 범법자에게는 상응하는 욕설 퍼붓기도 두려워하지 않는다. 그러나 우리는 또한 승리하기 위해서는 더 가벼운 손길이 필요할 때가 있다는 것을 인식하기도 한다. 그래서 때로는 짧은 치마와 눈깜빡임이 더 쉬울 뿐 아니라 무한히 더 효과적이다.

 

 

젊은 흑인 페미니스트가 더 큰 성적 자유를 명시적으로 추구하고 그것을 이용하는 것이 비판적 인종 페미니즘 또는 그것의 법개혁 의제에 미칠 영향을 나는 상상도 할 수 없어요. 아마도 흑인 페미니스트들은 체면 관념에 덜 집착될 것이고 더 자유롭게 그 개념의 새로운 정식화를 탐구하겠죠. 비 부르주아 흑인 여성들은 더 많은 사회적 및 물질적 자원이 그들의 성적 자유와 재생산 건강의 방어에 투입될 것이라고 인정할지도 모르겠어요. 미국의 가난한 이성애자 흑인 여성들 가운데 놀랄만한 AIDS HIV 비율은 그들의 성적 권능 박탈 및 경제적 권능 박탈의 이데올로기적 및 물질적 원천들에 대한 전면공격을 절실히 요구하고 있어요. 경제적으로 어려운 시절 또한 제3의 물결 참가자들을 후퇴시킬지도 몰라요. 물론 불균등한 발전은, 흑인 여성의 어떤 부분들은 페미니즘의 제2의 물결과 연결되는 형식적 평등과 법적 권원들로부터 아직 혜택을 받지 못했다는 것을 의미해요. 옛날의 의제에 대한 새로워진 헌신이 그들을 위해 작동할 거에요. 3의 물결 참가자들이 그린 것과 같이 흑인 여성들의 완전한 정치적 사회적 및 물질적 평등의 추구는, 한때는 육체적 쾌락 및 행위주체성과의 관련성 때문에 사소하고 중요치 않다고 여겨졌던 영역으로 적극주의의 중심지(locus)를 옮겨갈 수도 있어요.마치 야구경기장에 탱크탑을 입고 가는 것처럼!

젊은 흑인 페미니스트들이 그들의 성적 자유를 의제로 올리거나 그들의 성생활을 평등을 위한 투쟁의 도구로 이용할 능력에 관하여 표현하는 낙관주의를 내가 찬양하긴 하지만, 내 생각에는, 그들의 이미지의 해석에 대한 더 큰 통제권을 얻지 않고서는 그들이 자기 자신에 대한 더욱 성애화된(sexualized) 이미지를 투사하거나 진지하게 받아들여질 수는 없을 거에요. 해석을 통제할 권력은 그들이 경제적, 사회적 및 정치적 자본을 효과적으로 축적하고 행사하는 데 달려 있어요. 흑인여성들은 그들이 대신 뭔가 다른 것이 되기로 선택할 자원을 갖고 있지 않는 한, 섹시하게 되기 위해서 섹시해질 수 있는(they can be sexy for the sake of being sexy) 지점에 (이미옮긴이) 도달했다는 것을 알지 못할 거에요. 문화적 표현이 물질적 및 정치적 현실로부터 완전히 분리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위험해요. 모든 수단을 동원하여 섹시해져라, 그러나 가장 중요한 물질적인 것에서 결코 눈을 떼지는 마라(never take your eye off the material ball).

기본적으로 나는 V. Whitney Joseph 씨가 양키스 스타디움클럽에 탱크탑을 입고 갔을 때 섹시하고 스타일리시하기보다는 시원하고 편안한데 더 관심이 있었다고 의심하지만, 아니라 한들 무슨 상관이겠어요. 그녀의 녹취록의 발췌본을 보면 그녀가 세련되고, 끈덕지며 실제적이고 용감하며 꾀바른 평등권옹호자라는 것이 드러나요. 그녀는 백인남성특권의 요새와 대결해서 승리했어요. 얼마인지는 공개되지 않았지만요. 그녀는 여가, 쾌락, 그리고 향락의 장소를 백인들과 동등한 토대 위에서 향유할 권원, 내가 다른 어디에선가 너무나 드물게 요구되고 투쟁된다고 주장했던 권원을 요구했어요. 그녀가 그녀의 대우에 반대한 방식에 관해서는 이의를 제기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어요. 그녀는 많은 흑인 여성들이 정서적 냉정함을 잃어버리는(그리고 그럴만한 이유가 없지는 않아요) 상황에서 정서적 냉정함을 유지했어요. 당황하고 모멸감을 느꼈지만 조셉 씨는 양키 스타디움의 보안 요원과 조우하는 동안 자신의 어조를 부드럽게 했어요. 그녀에 따르면 이렇게요.

 

 

나는 남자들이 내게 가졌던 어떤 낮은 기대도 충족시켜주지 않겠다고 결심했다. 나는 악을 쓰지도 고함을 치지도 험악해지지도 않았다. 왜냐하면 그렇게 하는 것이 정확히, 내가 받고 있는 대우를 그의 마음속에서 정당화하게 될 것이라는 점을 나는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깊이 파고들었고 나의 자제심을 발견했으며 내가 받았던 교육으로부터 최선의 단어들을 사용하여, 그 남자와 이야기해 보려고 했다.

 

 

반바지와 탱크탑을 입은 한 흑인 여성, 그녀는 그녀의 인종과 그녀의 젠더의 자랑이었어요. 우리가 더 이상 무엇을 요구할 수 있을까요?

 

 

 

 

섹스에 관하여 이야기해 봅시다

 

 

  • 여성의 탄압이 섹스를 통해 발생한다면, 그러면 다양한 형태로 나타나는 여성의 탄압을 끝내기 위해서는 사람들이 섹스에 관하여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하는 방식이 바뀌어야 한다.

 

 

리즈: 나는 최근에 메디슨 스퀘어 가든에서 있었던 이브 엔슬러의 <버자이너 모놀로그>(The Vagina Monologues)의 발렌타인 데이 초대형 사은 행사에 갔을 때, 메리 조에 관해서, 그리고 사람들이 섹스에 관하여 생각하고 이야기하고 행동하는 방식들을 변화시키는 것의 어려움에 관해서 생각했어요. 지금까지 몇 년 동안 몇몇 친구들과 나는 WNBA 뉴욕리버티 팀의 시즌티켓을 구입했어요. 우리가 모든 피부색, 연령과 성적 지향의 여성들모두 여성들의 농구경기를 TV로 시청하다 튀어나와서 비범한 여성 운동선수집단을 응원하고 있는로 가득찬 가든에서 열린 이들 경기에 참석하곤 했을 때, 우리는 가든이 페미니스트 정치 행사를 위해 가득 찰 수 있다면 얼마나 경이로울지에 관해 이야기하곤 했어요.

, 오늘 밤 가든은 그런 행사를 위한 여성들섹스와 성적 힘에 관하여 생각하는(그들의 질(vaginas)에 관하여 생각하는) 여성들로 가득차 있었어요. 그것은 V-데이(V-Day)였으니까요!!! 내 친구 수잔 허먼과 나는 세대 간 페미니스트의 저녁을 기대하면서, 우리의 20대 초반의 딸들과 함께 가든에 갔어요. 그러나 그것은 내가 기대했던 것보다 훨씬 더 복잡하다는 것을 알았어요. 나는 전에 <버자이너 모놀로그>를 보고 즐겼던 터라, 그것이 오로지 여성들의 질과 여성들의 성생활의 중요성을 확인하는 것에만 초점을 맞춘 것임을 알았지만, 가든에서 이 초대형 판으로 열리는 그것을 다시 보면서, 나는 <모놀로그>가 직업, 교육 또는 건강이나 여성들의 성생활이 이들 영역에 영향을 미치는 방식까지도 포함해서, 성생활 이외에는 어떤 것도 언급하지 않는다는 사실에 감명 받았어요. 섹시함이 여성의 불평등에 대한 답이었고, 여성들의 자유는 TV<앨리 맥빌>(Ally McBeal)[보스턴의 법률사무소를 무대로 한 미국드라마옮긴이]에서, 원하는 만큼 짧은 치마를 입을 자유에 관한 칼리스타 플록하트의 반복악절(riff)과 같이 우리의 성생활을 과시할 자유였어요. 여성들의 성생활을 음핵절제술(clitorodectomies)이 수행되는 나라의 여성들과 탈리반 치하의 여성들의 상황에 연결시키는 의식이 있었는데, 오프라 윈프리가 전 세계의 페미니즘에 관한 간단한 랩을 한 후에, 불빛을 번쩍이고 북소리를 울리며 가든에 들어온 아프가니스탄 출신의 한 여성에게서, 극적으로 부르카를 벗겨버린 것이었어요. 그러나 나는 그 행사가 페미니즘과 어느 정도 관계가 있는지에 관하여 매우 불편한 어떤 감정을 가지고 떠나와 버렸고, 내 동료들 역시 그랬어요. 내가 며칠 후에 <빌리지 보이스>(The Village Voice)에서 그 행사의 음부중심주의”(cuntism)를 페미니즘에 관한 양면성에 관련시키는, 어떤 회의적인 논평가가 쓴 이야기를 읽었을 때, 나의 불편함은 더 강해졌어요.

 

 

지난 토요일의 V-데이 축전은 글렌 클로스가 음부를 다시 주장한다”(Reclaiming Cunt)를 낭독하면서 소위 절정에 이르렀다. 그녀는 글자들 주위로 혀를 미끄러뜨리면서(c“cute”에서처럼, u“urge”에서처럼), 그 끝에(t“tangy”에서처럼), 메디슨 스퀘어 가든 한 가운데 있는 붉은 무대 위에서 붉은 바지정장을 한 채 무릎 꿇고 앉아서 “Cunt! Cunt! Cunt!”를 목청껏 외칠 때까지, 그녀는 그 단어를 음미했다. 대중적인 동시의 경험으로 18천명의 청중은 그녀와 함께 소리치고 있었다.

그러나 유명인사의 혀끝에서 후치”(hoochie, 성매매여성), “푸터”, “트왜트”, 그리고 쿠치 스노처”[pooter, twat, coochi snorcher는 모두 여성의 음부를 가리키는 비속어임옮긴이]가 굴러떨어지고 엔슬러가 기뻐하는 팬들에게 진동기(vibrator)를 흔들었을 때조차, 가장 질을 사랑하는(vagina-loving) 헐리우드 아이콘들조차도 또 다른 단어는 그 목에 걸린 듯했다. 페미니스트라는 단어 말이다. 해머스타인 볼룸(Hammerstein Ballroom)의 갈라쇼공연과 함께 폭력반대프로그램들과 더 많은 V 데이 공연들을 지원하기 위해 2백만 달러 이상을 모금했다에서 그것에 관하여 물어보라, 그러면 그것은 당신이 음핵 또는 어떤 것을 모욕한 것 같을 것이다.

나는 페미니스트에 관해서 모릅니다라고 이사벨라 로셀리니는 말했다. “이것은 정말 페미니즘에 관한 행사인가요? 여성에 대한 폭력이 페미니스트 쟁점인가요? 나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좋다, 하지만 그녀는 자신을 페미니스트로 여기기는 하는 걸까? 로셀리니는 그녀가 뭔가 불쾌한 것의 냄새를 맡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글쎄요, 나는 당신의 말이 무슨 뜻인지 모르겠네요. 나는 오늘밤에 페미니스트의 밤이라고 꼬리표를 붙이지 않으렵니다. 그것은 여성들의 밤이죠. 내 말 뜻은, 공화당원 여성들도 있고, 민주당원 여성들도 있고, 페미니스트 여성도 있고 스스로를 정의하지 못하는 여성들도 있지만, 그들은 그저 폭력에 반대하는 여성들일 뿐이라는 겁니다.”

리키 레이크도 비슷하게, 그 용어에 관하여 교묘하게 피해나갔다. “나는 꼬리표를 좋아하지 않아요라고 레이크는 말하고는 여성들의 권리를 지지한다고 덧붙였다. 마리사 토메이는 자신을 페미니스트로 여기는 것을 인정했지만, 금방 자기는 그것이 어떤 것인지 확신하지 못한다고 지적했다. “나는 항상 페미니스트였지만, 그것에 대한 정의는 하지 않았습니다.”라고 토메이는 말했다.

음부의 여왕 자신조차도 F-단어를 고백하지(own) 않으려고 했다. “나는 페미니스트가 무엇일지에 관해 상투적인 이미지를 가지고 있어요, 그래서 나는 그런 식으로 되고 싶지 않아요.” 라고 글렌 클로스가 말했다. 그러면 페미니스트들은 정확하게 어떤 방식으로 인식되는 것인가? “그들은 남자를 --- 당신도 알겠지만, 일종의 뭐랄까요, 난폭한 사내(butch)를 좋아하지 않아요.” 라고 유명한 <위험한 정사>(Fatal Attraction)의 토끼살해자(rabbit-killer)[유부남과 관계를 맺은 여성이 질투심에 사로잡혀 유부남의 딸이 키우던 토끼를 죽인다옮긴이]가 말했다. 그렇게 페미니스트가 말의 배설구에 머무르는데도, 클로스는 음부를 구원하는가? “나에게, 그것은 인간성(humanity)에 관한 것이에요.” 그 여배우는 말했다. 그것은 말하자면, 우리가 늘 페미니즘이라고 생각했던 것보다 더 큰 무언가에 관한 것이죠.”

거기에 이 V-운동의 경이로움이 있는데, 그것은 옛날의 밤을 되찾자’(take-back-the-night) 집회들의 물건을 인기품목으로 변화시켰다. 강간, 가정폭력, 심지어 홈리스가 되는 것조차도 그것이 여성들에게 일어날 때는 그렇다 엔슬러는 이들 문제를 더 불안해보이지만 어쨌든 무시무시한 페미니즘보다는 더 구미에 맞는 맥락으로 옮겨심었다. “질경련”(Vaginism)[여성성기중심주의를 뜻하는 것 같기도 함옮긴이]이 낙태나 불평등 보수같은 골치 아픈 문제들 속에서 엉망이 되지는 않는다. 그리고 V-운동은 종종 레즈비언또는 그들의 성기, 어쨌든 간에을 언급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남성들에게 매력적이 되는 것을 방해하지는 않는다

프로그램이 하나의 운동하나의 비전하나의 정신이라고 부르는 V-데이는 섹시함을 여성들의 힘의 원천으로 보는 것에 관한 것이다

 

 

음부중심주의”(Cuntism)여성들이 자신의 성생활에 관하여 다양하게, 그리고 주장하기에 따라서는 더 적극적으로, 생각하도록 하는는 여성들의 권력의 측면에서 많은 것을 변화시키지 못해요. “음부중심주의가 그저 페미니즘과 동일한 것이 아니에요. 나는 여성들의 조건을 변화시키기 위해서는 여성들이 섹스와 성생활에 관하여 이야기하고 생각하는 방식이 달라야 한다는 메리 조에게 동의해요. 그러나 V-데이 이야기는 섹스나 성생활에 관하여 이야기하는 것이 반드시 페미니즘으로 이해되지는 않기 때문에 내게 울림이 있어요. 이것은 매우 미묘한 것이며 성생활이 동시에 탄압과 권능부여의 도구일 수 있는 방식으로 돌아가는 거에요. 많은 제3의 물결 참가자들은 섹스, 성생활과 성적 쾌락을 제일 중요한(primary) 것으로 보는 것 같아요. 성적 자유, 행위주체성과 자율성에 대한 여성들의 관심은 세계에서 여성들의 경험과 탄압에 대한 더 넓은 이해로 해석될 잠재력을 가지지만 반드시 그렇게 해석되는 것은 아니에요. 그래서 섹스와 성생활은 더 큰 물질적 맥락에서 이해되어야 한다는 거죠.

 

 

 

 

성으로부터 움직이기! 섹스로?

 

 

  • (sex)이 남성이나 여성 이상의 것을 의미할 때에만, “여성이라는 단어가 일관성 있게(coherently) 이해될 수 없을 때에만 성에 의한 탄압은 치명적으로 손상받을 것이다.

 

 

레지나: 본질주의는 전략적일 수 있어요. 나는 우리가 여성다움을 해체하는 일을 끝까지 계속해야 하는 건지 모르겠어요. 이것은 인간 메리 조가 선언 저술가 메리 조와 갈라지는 영역일 수 있어요. 힙합 페미니스트 조앤 모건이 그녀의 저서 <바보들이 보금자리에 들려고 집에 올 때>(When Chicken-Heads Come Home to Roost)에서 말한 바에 따르면,

 

 

총체적 젠더 평등은 흥미로운 지적 개념이지만 성애적으로는 나에게 아무 의미도 없다는(it doesn't do a damn thing for me erotically) 것을 내가 인정한다면, 나는 더 이상 그 대의에 흥미가 없는 것일까? 진실을 말하자면, 너무 많은 페미니스트감성을 가진 그 남자들은 결코 내 팬티를 젖게 만들지 못했고, 적어도, ‘무슨 일이야, 자기’(wassup, baby) 류의 가장 배타적인 자들조차도, 달콤하고 촉촉한 혀가 내 귀를 들락날락하는 듯이 느끼도록 만들 수 있는, 그 교화된 흑인 폭력배 같지는 않았어.

 

 

나의 호르몬이 또는 호르몬의 부족이 내게 여성들은 생물학적으로도 사회적으로도 구성되었다고 말해요. 어느 경우든 사회적 구성도 생물학도, 활기찬 정치를 위한 토대일 수는 없어요. 페미니즘은 기본적으로 다양한 사회적 실천들이고, 문화적 이해들이며, 정치적 접근들이니까요. 그것이 일종의 파시즘이기를 제안하지 않는 한, 페미니즘은 사회화하여야 하고, 그것은 전향해야(proselytize) 해요. 여성들이 페미니스트로 태어나지는 않거든요. 그들도 자유롭게 태어날 수 있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그들은 제약을 알게 되고 그들 중 너무 많은 이들이 그 구속들에 동의하게 돼요. 투쟁 없이, 경계를 넘지 않고, 한때는 자연적으로 배제된 것 같았던 가능성들을 열어놓지 않고서는 해방은 오지 않아요. 페미니즘이 또 다른 장애물이 되어서는 안 되며 그것은 길을 닦는 것이어야 해요.

그렇게 말해놓고 보니, 예컨대 비판인종이론이, 성생활이 인종적 예속에서 수행하는 역할을 완전히 인식하고 그에 도전하면서 따라오게 될 미묘함, 관대함, 그리고 장난기를 포용한다면 그것은 얼마나 해방적일 것인지를 나는 알 수 있어요. 흑인여성들이 성적 해방은 성적 지향에 관한 것이라는 어리석은 사상을 받아들인다는 이야기를 들을 때, 나는 슬프고 그 다음에는 화나지만, 대체로는 슬퍼요. 그들은 다양한 성적 탄압들이 대체로 불가분적이라는 것, 그리고 인종적 탄압들은 성적 탄압과 분리될 수 없다는 것을 보지 못하고 있어요.

나는 메리 조가 죽고 난 이후 변화했고 많이 성숙했어요. 나는 메리 조의 업적 중 얼마나 많은 것들이 내 생각이 뒤따랐던 길을 예측하는 것 같은지, 놀라워요. 나는 그녀가 말과 행동으로 보여주었던 스타일과 그 스타일이 촉진하는 실천은 인간 해방을 위한 여러 투쟁들 전역에 유익하게 적용될 것이라는 점을 이제 더 잘 이해해요.

 

 

리즈: 선언을 다시 읽고 메리 조에 관하여 생각하는 것은 놀라운 일이었어요. 메리 조의 저작은 우리가 계속해서 씨름하고 있는 중요한 문제들이론의 역할, 법과 사회변화의 가능성과 한계, 정치적 참여를 위한 토대로서 여성들이라는 범주의 중요성을 다루고 있어요. 그러나 이번에 그녀의 저작을 다시 읽고, 레지나와 이야기하고, 또 오늘날 우리가 어디에 있는지를 생각하면서 나는 어쩔 수 없이 나 자신의 현장인 로스쿨에 의해 틀지워진, 페미니즘의 당대의 상태에 관한 많은 복잡한 감정들에 직면해야 했어요.

한편으로 지구적 연결의 흥분과 힘, 그리고 여성들의 국제적 인권운동이 존재한다는 사실이 있어요. 다른 한편으로는 내가 여성들로 가득한 로스쿨 교실에서 가르치고 있고, 때로 여성들은 학생의 반 이상을 차지하기도 하지만, 그 중에 제1 및 제2의 물결 페미니스트들의 투쟁이 없다면 그들이 로스쿨에 있지 못했을 것이라는 점을 이해하는 이들은 거의 없어요. 한편으로 지난 30년에 걸쳐 얻어낸 가정폭력을 줄이고 예방하는 것을 목표로 한 엄청난 성취들이 있어요. 다른 한편으로 비록 용어를 전복적으로 이용하는 것이라고 주장은 하지만, 여성학대를 정당화하고 일상적인 것으로 만드는 아내폭행자티셔츠가 있고요. 한편으로는 여성들의 권리, 가정폭력 및 옹호 작업에 관한 수업과 클리닉이, 내가 가르치는 모든 로스쿨브루클린이든, 하버드이든 콜럼비아이든에서 이 작업(그리고 이 작업에서 그들을 지도할 수 있는 선생들과 멘토들)에 필사적이고 굶주려 있는 멋지고 헌신적이며 다양한 여성들의 비범한 집단을 계속해서 매혹하고 있어요. 다른 한편으로 오로지 이들 수업 때문에, 많은 학생들이 처음으로 사업장에서 동등 보수, 차별 및 괴롭힘의 문제들과 일과 가정 책임의 문제들이 계속해서 그들의 삶에 영향을 미치는, 그래서 싸워나가야 할 물질적인 현실세계 문제들이라는 점을 이해하게 된다는 거에요. 실제로 제1의 물결 및 제2의 물결 투쟁들에 대해서는 거의 지식도 없고 따라서 기억도 거의 없어요. 이들 학생 중 많은 이들에게는, 여성들의 평등의 측면이 어떤 의미에서 문화 속에흡수되어 버렸을 수 있어요. 그러나 많은 이들은 그들 자신을 위해서도 전 세계 여성들을 위해서도, 여성들의 평등을 위한 물질적 투쟁이 중요하다는 점을 인식하거나 진가를 알지 못하고 있어요.

메리 조의 저작은 문화와 그 전복적 가능성에 초점을 두고 있었지만, 그것은 물질적 세계를 한편으로는 몸의 육체적 특징(physicality), 그리고 다른 한편으로는 경제력차별임금빈곤인종차별주의경제적 불평등의 구조라는 양자 모두를 페미니즘의 가장 강력한 원천이자 가장 중요한 투쟁 현장이라고 보았어요. 레지나와 나 모두에게 있어서 메리 조를 다시 읽고 페미니즘에 관하여 성찰한다는 것은 이 물질적 차원의 중요성과 이 차원이 당대의 페미니스트 투쟁에서 발전되어야 할 필요성을 강조하는 것이었죠. 레지나가 웅변적으로 말하듯이, “문화적 표현이 물질적 및 정치적 현실로부터 완전히 분리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위험해요.” “아내폭행자라는 용어의 사용은 여성들에 대한 폭력의 현실이 변화되기까지는 반어적일 리도 없고 전복적일 리도 없어요.

메리 조가 죽은 후 나 역시 변했어요. 세계가 변했으니까요. 9.11 이후 세계는 확실히 극적으로 변했어요. 일어난 일에 있어서 내가 메리 조의 반향을 매우 많이 보고 있기 때문이라는 이유만으로도, “선언을 다루는 것은 내게 오늘날의 페미니즘에 관하여 더 깊이 생각하게 만들었어요. 운동이 세대를 가로지름에 따라서, 우리는 기억을 검열하지 않고 새로운 공식화를 개발할필요가 있어요. 나는 메리 조의 저작을 다루고 레지나와 함께 이들 문제를 생각함으로써, 내가 가르치고 함께 일하는 젊은 여성들 중 많은 이들(그들 중 다수는 모르고 있지만 메리 조의 유산을 지니고 있어요)의 관점에 내가 더 관대하고 더 개방적으로 되었기를 희망해요. 메리 조를 기억하고, 인간적이고 지적인 연결을 촉진하는 흉내낼 수 없는 그녀의 능력을 기억함으로써 나는, 우리의 투쟁에 매우 중요한 더 깊은 세대 간의 연결들을 벼리고 싶어졌어요. [끝]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공지 회원연구노트 이용 안내 김영남 2021.06.09 126
25 [번역] 경제적 사회적 문화적 권리 신장옹호하기(1) - 표지-목차-감사의글-서문 file kjsminju 2022.08.03 97
24 전략적 봉쇄소송 관련 글들(1) - 유럽연합의 지침 제안 file kjsminju 2022.07.27 134
» 페미니즘 법학 관련 글들(7): 심포지엄: 메리 조 프럭의 “포스트모던 법여성주의 선언” 10년 후: 오늘날 페미니즘의 상태에 관한 성찰 / 레지나 오스틴, 엘리자베스 M. 쉬나이더 file kjsminju 2022.07.23 86
22 페미니즘 법학 관련 글들(6): 미완성 통신: 메리 조 프럭에게 보내는 부치지 못한 편지 / 마사 미노우 file kjsminju 2022.07.22 63
21 [번역] 페미니즘 법학 관련 글들(5): 레즈비언 사례: 메리 조 프럭 교수에 대한 사후답변 / 루스 콜커 file kjsminju 2022.07.20 76
20 [번역] 페미니즘 법학 관련 글들 (4) 페미니즘에서 포스트모던함 / 바바라 존슨 file kjsminju 2022.07.20 67
19 [번역] 최근 미국 연방대법원 판결에 토마스 대법관의 영향이 크다는 논평 kjsminju 2022.07.19 103
18 [번역] 페미니즘 법학 관련 글들 (3) 포스트모던 법여성주의 선언 / 메리 조 프럭 [4] file kjsminju 2022.07.17 67
17 [번역] 페미니즘 법학 관련 글들 (2) - 주요 용어 번역 례 정리 kjsminju 2022.07.17 33
16 [번역] 페미니즘 법학 관련 글들 (1) file kjsminju 2022.07.10 60
15 [번역] 연방대법원 판결 초고 유출시 나왔던 뉴요커 논평(2022.5.4) kjsminju 2022.06.27 30
14 [번역]낙태권 부인한 미국연방대법원 판결에 대한 뉴요커 논평(2002.6.24.) kjsminju 2022.06.27 24
13 <유럽차별금지법교본> (12) : 전체 [5] file kjsminju 2021.06.27 225
12 <유럽차별금지법교본>(11): 부록: 주제별 판례 색인 등 file kjsminju 2021.06.19 518
11 <유럽차별금지법교본>(10): 제6장 차별금지법에서 절차적 쟁점들 file kjsminju 2021.06.18 64
10 <유럽차별금지법교본>(9): 제5장 보호되는 사유들 file kjsminju 2021.06.17 54
9 <유럽차별금지법교본>(8): 제4장 대표적인 보호영역들 file kjsminju 2021.06.17 108
8 <유럽차별금지법교본>(7): 제3장 유럽 차별금지법상 덜 호의적인 대우에 대한 정당화 file kjsminju 2021.06.16 51
7 <유럽차별금지법교본>(6): 제2장 차별범주들 file kjsminju 2021.06.15 69
6 <유럽차별금지법교본>(5): 주요조약 및 지침 소개 [1] file kjsminju 2021.06.15 51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