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북참여자치연대에서 발행하는 <참여마당> 2014년 10월호에 기고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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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거의 안정
이은희(정책위원장, 충북대 법과대학 교수)
요즘 지상파 방송에 자주 나오는 광고 중에 주택자금대출광고가 있다. 어린 딸을 둔 부부가 저렴한 이율로 대출해 준다는 소식을 접하고 주택을 구입하기로 결정하자, 어린 딸이 “엄마 이제 우리 이사 안 가도 돼?” 하며 반기는 내용이다. 그 광고 속의 부부처럼 많은 젊은 부부들이 주택을 구입할 수 있다면 좋겠지만, 그게 쉬운 일이 아니다.
9월 1일 정부가 <규제합리화를 통한 주택시장 활력회복 및 서민 주거안정 강화방안>을 발표하자 그 내용이 결코 서민주거안정방안이 아니라고 비판하였던 경실련은, 지난 1일에, 2013년 기준으로 서울의 주택 중간가격(그 해에 이루어진 주택매매가격의 중간값)이 1인당 국민소득의 17.7배에 이른다는 점을 발표하였다. 이는 최저임금을 36년간 모아야 마련할 수 있는 금액이다. 주요 도시의 주택중간가격은 런던이 13.6배, 시드니가 11.2배, 뉴욕이 7.6배, 도쿄가 6.5배로서 모두 서울보다 낮았다. 이처럼 주택가격이 높은 상황에서 자신의 소득을 고려하지 않고 대출을 받았다가는 결국 집을 경매로 빼앗기는 결과를 빚을 뿐이다. 그러므로 위 TV광고를 보는 많은 분들이 부디 ‘저 이야기는 내 이야기가 아니지’하고 흘려버리기를 바란다.
하지만 이 광고에는 보는 사람의 가슴을 시큰하게 하는 대사가 있는데, 그건 ‘이제 친구들이랑 헤어지지 않아도 돼?’ 하는 딸아이의 말이다. 나는 실질적 광고주인 최경환 부총리에게 묻고 싶다. 주거의 안정은 주택을 구매함으로써만 이룰 수 있는 것인가? 주택을 구매하지 못하는 사람은 주택임대차보호법이 보장하는 2년 이상의 안정을 바라서는 안 되는 것인가?
상가건물임대차보호법은 임대차의 최단기간을 1년으로 하고 있지만, 임차인이 임대차기간 만료 전 6개월부터 1개월까지 사이에 계약갱신을 요구하는 경우 임대인은 정당한 사유 없이 거절하지 못하도록 하고 있다. 이러한 임차인의 갱신요구권은 전체 임대차기간이 5년을 넘지 않는 범위 내에서 행사할 수 있어서, 결국 임차인이 5년간 한 곳에서 영업을 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갱신시에 임대료와 보증금은 9%까지 증액할 수 있다. 주택임대차보호법에는 이러한 제도가 마련되어 있지 않다. 그 때문에 계약만료시 임대인이 보증금을 무리하게 올려달라고 하면 임차인은 이사를 가는 수밖에 없다.
주택임차인의 주거안정을 위해서는 임대인에 의한 일방적인 갱신거절과 과다한 임대료 인상요구를 차단할 수 있는 제도를 마련하여야 한다. 국회의원들도 이 점을 잘 알고 있다. 그래서 박영선, 윤효중, 오병윤, 윤후덕, 서기호 의원 등이 발의한 여러 주택임대차보호법 개정안이 국회에 제출되어 있다. 이러한 개정안에 대해서는 두 가지의 반대논리가 주장되고 있다. 하나는 상가임차인은 상당 규모의 시설투자비와 권리금을 지출하기 때문에 장기간의 존속보장이 필요하지만 주택임차인은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임대인의 사유재산권이나 계약자유에 대한 과도한 제한이라는 것이다.
이들 반대 논리에 대해서는 주거의 안정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를 말함으로써 반박할 수밖에 없다. 주택은 휴식을 위한 실내공간에 불과한 것이 아니라 학교나 종교단체, 친인척 및 이웃관계, 병원 등과 밀접한 연관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어린이와 노인에게는 ‘주거의 계속성’이 더욱 필요하다. 식물을 키워본 사람이라면 알 것이다. 제라늄 가지를 꺾어 심었다가 채 정착이 이루어지기 전에 분갈이를 하면 곧 시들고 마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