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법재판소의 민주주의 사망 선고에 대한 반론
김종서(배재대학교 법과대학 교수, 법과대학장)
지난 7월 국회의 미디어법 통과와 관련해 제기된 권한쟁의심판청구에서 헌법재판소는, 권한 침해는 인정하지만 법률안가결선포행위는 유효하다는 기막힌 결정을 내렸다. 1997년 노동법 날치기 때와 마찬가지로 권한 침해라는 하자가 법률을 무효로 만들 정도로 명백한 헌법 위반은 아니라고 본 것이다. 이번 사안은 ‘대리투표’와 ‘부결 후 재표결’ 등 그 위헌・위법이 너무나 명백했기에 한 가닥 실낱같은 기대를 걸어 보았으나, 역시 부질없는 꿈이었다. 결국 헌법재판소는 헌법수호기관이 아니라 그저 또 하나의 권력기관일 뿐이었다.
헌법재판소는 이 결정이 헌법과 법률에 따라 이루어진, 그야말로 ‘법리’에 따른 결정이었다고 강변할지 모르겠다. 이 정도의 절차 위반은 법률안을 무효로 선언할 정도가 아니라면서, 이런 사태를 야기한 장본인인 국회의장에게 ‘자율적 시정’을 맡기는 것이 바람직하다고까지 한다. 그러나 이런 것도 법리라고 한다면, 그것은 국민들의 상식과는 너무나도 거리가 먼 ‘사이비’법리에 지나지 않는다. 상식적으로 판단할 때, 향후 국회에서 합리적 토론을 통한 입법은 더 이상 기대할 수 없게 되었고, 오로지 불법과 편법이 판치고 날치기・대리투표・무제한재표결만이 횡행하게 될 것이다. “위법한 절차에 의한 입법도 유효”하니까. ‘민주주의는 절차’라는 말이 타당하다면, 이제 헌법재판소는 한나라당과 함께 민주주의 파괴의 공범으로 역사에 기록되는 일을 피할 수 없게 되었다.
사실 이번 재판은 헌법재판소가 모처럼 국민적 신뢰를 얻을 수 있는, 두 번 다시 오지 않을 좋은 기회였다. 사안의 위헌성이 너무나 심각하면서도 명백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헌법재판소는 진정한 헌법수호기관으로 거듭날 수 있는 쉬운 길을 마다하고, 민주주의와 법치주의를 부정한 헌법 파괴 행위에 면죄부를 쥐어 줌으로써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너 스스로의 존립기반을 허물고 말았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분명한 헌법위반을 당당하게 위헌이라고 선언하는 곳일지니, 헌법재판소여, 이제 그만 그 간판을 내릴 것을 정중히 권고한다.
다른 한편으로 생각하면, 이런 사안이 헌법재판소에 의해 결정되도록 만든 우리 정치의 후진성을 개탄하지 않을 수 없다. 국민대표를 자임하는 이들이 헌법과 국회법이 정한 기본적 절차조차 무시한 채 일방적 통과를 밀어붙인 이번 사태는, 애초에 일어나지 말았어야 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법치주의를 그토록 강조하던 이들이 스스로 헌법과 법률이 정한 입법절차를 유린한 것은, 법치주의의 부정이요 민주주의에 대한 반란이었다. “권한침해는 인정, 법률안가결선포는 유효”라는 헌법재판소의 뒤틀린 결정은 이를 제도적으로 바로잡을 마지막 기회마저 날려 버렸지만, 이번 사태는 우리 정치와 사법의 문제점을 적나라하게 보여 주는 교훈을 남겼다.
그러나 더욱 중요한 문제는 미디어법 자체이다. 극단적 수단을 동원해서까지 한나라당이 강행 처리를 고집한 이유를, 우리는 곰곰이 되새겨 보아야 한다. 한나라당은 미디어법의 처리에 당의 그리고 정권의 운명을 걸었던 것이다. 이로 미루어 보아 미디어법이 발효된 후 어떤 일들이 벌어질 것인지는 어렵지 않게 예측할 수 있다. 정부・여당의 입장에 어긋나는 정보는 더 이상 미디어를 통하여 국민에게 전달되지 않고, 정권의 이해에 들어맞는 뉴스만이 언론을 통해 유포될 것이다. 국가・대기업・신문재벌이 지배하는 미디어를 통해 여론은 획일화되고, 사이비 여론을 등에 업은 세력들은 장기집권의 길을 열고자 할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미디어법 통과에 목숨을 건 한나라당의 속내일 것이다. 이제 이런 의도가 현실화되는 것을 막아내야 하는 지난한 과제가 우리 앞에 던져졌다.
하지만 사필귀정이라고 했던가? 매우 고무적인 사례 하나가 있다. 과거 날치기 통과되었지만 헌법재판소가 그 유효성을 인정했던 노동법은, 결국 국민의 강력한 저항에 부딪혀 마침내 폐지되고 새로운 입법으로 대체되었다. 당시 헌법재판소의 결정부터 대체입법까지 걸린 시간은 고작 7개월이었다. 헌법재판소가 이번에 유효 선언한 미디어법이 폐지되고 새로운 입법이 이루어질 때까지는 얼마나 걸릴까? 국민들이 대답할 것이다.
중도일보 2009.10.30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