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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수 194
조회 수 : 2952
2011.04.22 (13:00:34)

<2011년 4월 20일자, '오마이뉴스'에 실린 기사입니다.>

 

이승만 대통령의 유족들이 51년 만에 4.19희생자들에게 사죄를 드린다며 성명을 발표하더니, 4월 19일에는 묘소에 참배를 시도하다가 4.19유족들에게 제지당했다고 한다. 민주정신의 총체적 결손을 절감하는 이 시대에 이승만의 유족과 관련단체들이 뜬금없이 이렇게 한 연유가 궁금해졌다. 오래도록 가슴 속에 묻어두었던 사죄의 감정을 때가 되어 표현하였다고는 믿기지 않기 때문이다. 무엇 때문에 4.19 희생자들의 혼령을 필요하게 되었을까?

 

불과 몇 해 전만 해도 유족들은 "제주 4.3사건과 관련하여 당시 선포한 계엄령이 불법적"이라고 보도한 <제민일보>가 대통령과 유족들의 명예를 훼손했다고 소송을 제기하였다. 실제로 당시 대한민국 헌법은 계엄령을 법률에 따라 선포하도록 하였는데도 계엄법을 제정하지 않는 가운데 계엄령을 선포했기 때문에 제민일보의 보도는 특별히 문제될 것이 없었다.

 

이제 이승만의 유족과 관련단체들이 사죄하기 전에 제주에서 민간인학살, 한국전쟁 중 민간인학살, 사사오입개헌, 조봉암 등 정적에 대한 사법살해, 부정선거와 4.19혁명 등에 대하여 공적으로 어떠한 평가를 내리고 있는지 궁금해진다. 물론 유족들과 관련단체의 견해가 어찌되었든 간에 민주주의의 관점에서 이승만에 대한 역사적이고 공적인 평가가 달라지기 어려울 것이다.

 

유족들의 사죄와 참배가 사망한 정치인의 오명을 털고 뭔가를 시도하기 위한 사과정치라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어쨌든 정치인에 대한 평가는 정치인으로서 행적으로 충분한 것이지, 유족들의 소급적 참회가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

 

정치인으로서 참다운 명예와 평판은 어디에서 올까? 미국의 대통령 워싱턴(G. Washington)이나 로마 공화정의 정치인 킨키나투스(Cincinatus)의 예를 통해 분명해진다. 나아감과 물러섬의 문제이다. 아리스토텔레스도 이를 이론적으로 풀어냈다. 그에 따르면 행복한 삶이란 정치적 삶(bios politikos)과 관조적 삶(bios theoretikos)의 조화이다.

 

정치적 삶이란 공동체 속에서 공동선을 위해 자신의 역량을 최고로 발휘하는 실천적 생애를 말하고, 관조적 삶은 이러한 실천적 삶으로부터 제때에 물러나와 삶을 원리적으로 성찰하는 것을 의미한다. 결국 좋은 삶이라는 이러한 두 측면의 조화로운 결합이다. 세상에 나가는 것과 물러나 안빈낙도하는 것, 끝내는 신선(神仙)이 된다는 동양의 철학도 같은 의미라고 생각한다. 공과 자리에 연연하지 않고 고향으로 복귀하는 워싱턴이나 킨키나투스는 좋은 삶에 대한 귀감이 된 것이다.

 

존경과 명예는 억지로 얻을 수 없다. 물론 이승만은 초대 대통령으로서 중요한 역할을 했다. 그러나 권력을 영원히 보유하기 위해 그는 정상에서 하산하는 일을 잊고 '공그리'를 치다가 마침내 전제자로 전락했다. 그는 단지 대통령을 오래하다 퇴진의 기회를 놓친 것이 아니다. 그가 권좌에 있는 동안 갖은 헌정파괴와 인권침해를 저질렀으며, 그에 대하여 정치적 책임을 면할 수도 없다. 그가 시작한 나쁜 통치는 한국현대사에서 80년대 중반까지 쿠데타와 폭정의 길잡이가 되었다. 오래되었다고 해서, 처음이라고 해서 적당히 기념할 수는 없다.

 

사죄에 대해서 말하자면 그것은 상호성을 의미한다. 물론 희생자가 사죄를 받아들이지 않겠다고 하더라도 가해자 측은 사죄를 표명할 수 있다. 그러나 그 전제는 사죄의 진정성이다. 진정성이 담긴 사죄와 더불어, 민주주의를 향한 공적인 동조를 지속적으로 표방한다면 완강한 피해자들조차 사죄를 수용하게 될 것이다. 그런데 최근에 벌어지고 있는 일들의 정황을 보면 진정한 사죄라기보다는 가해자의 명예를 위한 조건부 사죄와 같다. 유족들에게 무조건적이고 절대적 사죄를 기대해본다. 그러면 4.19유족이 사죄의 뜻에 공감할지 모르겠다.

 

그러나 이승만 유족과 4.19유족간의 사죄와 용서는 다분히 사적인 것이라는 점에 유의해야 한다. 그것은 일회적인 사건으로 그치지도 않는다. 우리는 여전히 이 문제를 국민적인 차원에서, 국가의 차원에서 공적으로 바라보아야 한다. 민주적 헌정을 유린한 독재자에 대한 미움은 단지 관련자들의 관련자들에 대한 인간적인 증오가 아니라 공화국의 정신적 토대로서 애국심이기 때문이다. 바로 이러한 객관적 미움을 완화시키려는 시도들은 바로 공화국의 주춧돌을 뽑아버리는 것과 같다. 이 땅에 헌정유린자들의 동상을 세우고 기념하는 일은 거부해야 한다. 오히려 객관적 미움을 보존하는 방책을 세워야 한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를 쓴 이재승 씨는 현재 건국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에 재직 중입니다. 이 기사는 인권연대 주간 웹진<사람소리>에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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