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프레시안, 2012. 8. 6, <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10120806124951§ion=03>
곽 교육감 사건, 헌재 판단 기다리는 것이 순서다
8월 2일 오랜 논란 끝에 신임 대법관 3인에 대한 임명이 이루어지면서, 곽노현 서울교육감에 대한 상고심 판결 선고가 조만간 이루어질 것이라는 보도가 줄을 이었다. 이미 대법관 임명동의안 논의 과정에서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와 이한구 새누리당 원내대표가 곽 교육감 사건의 조속한 판결이 필요하다고 밝힌 바 있기 때문에, 이 같은 언론보도가 새삼스러운 것은 아니다. 그러나 곽교육감 사건의 조속한 판결 촉구는 다음과 같은 이유로 그 타당성을 인정하기 어렵다.
첫째, 대법원은 세간의 예상과는 달리 4인의 대법관 임기가 만료되는 시점까지도 판결을 선고하지 않았다. 곽 교육감 사건이 배당된 대법원 제2부의 대법관 4인의 합의가 이루어졌다면 임기 만료 전 선고가 이루어졌을 것이고, 만약에 심리는 종료되었으나 대법관들 사이에 이견이 있어 합의에 실패했다면 이 사건은 전원합의체에서 담당하게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대법원은 판결 선고도 전원합의체 회부도 하지 않았다.
이로 미루어볼 때, 대법원은 대법관의 임기만료나 판결시한의 문제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아직 충분한 심리가 이루어지지 못했다고 판단했던 것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교원단체나 여당의 원내대표가 빠른 판결 선고를 촉구하고 나선 것은, 설사 그것이 판결시한을 정한 공직선거법의 규정을 감안한 것이라고 하더라도, 사실상 충분한 심리조차 포기하라는 것이나 다름없는 것이어서 공정성을 생명으로 하는 형사재판의 특성에 부합되지 않는다.
둘째, 더욱 중요한 것은 현재 이 사건 재판에 적용된 법률조항인 공직선거법 제232조 제1항 제2호에 대해서 헌법재판소에 헌법소원이 제기되어(2012.1.29) 6개월 이상 심리가 진행 중이라는 점이다. 그러니 만큼 불과 3개월 남짓한 심리기간을 가졌을 뿐인 대법원보다 훨씬 오랜 기간동안 사건을 심리해 온 헌법재판소의 결정이 내려지기도 전에 이 사건의 판결을 서둘러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결코 올바른 태도가 아니다.
이미 1심과 항소심 재판을 통하여 사실관계는 다 확정되었으므로 대법원에서의 핵심적 쟁점은 공직선거법 조항의 법리와 관련된 문제인데, 이러한 법리 해석과 관련하여 가장 중요한 문제가 바로 이 사건 법률조항의 위헌 여부의 문제이고 법률조항의 위헌 여부의 판단은 헌법재판소의 권한이기 때문이다. 더욱이 이 문제가 헌법재판소에서 상당한 기간동안 다루어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외면한 채 조속한 판결을 촉구하는 것은 단순한 법률해석의 논리로 접근하라는 것으로서 매우 성급할 뿐만 아니라 위험하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셋째, 더구나 이미 헌법소원이 청구된지 6개월 이상의 시간이 지난 만큼 헌법재판소에서도 어느 정도 심리는 진행되었을 터여서, 헌법재판소의 결정을 기다리는 것이 터무니 없이 긴 시간이 걸리리라고 생각되지도 않는다. 지금의 상황은 교총이나 새누리당에서 주장하는 '교육현장의 혼란'이나 '교육정책의 표류'와 같은 우려를 정당화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즉 헌법재판소의 판단이 내려진 후에 대법원이 판결을 선고하더라도 재판의 과도한 지연이 문제될 수 있는 상황은 아니라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법원이 서둘러 사건을 종결짓는다면, 오히려 곽노현 교육감을 선출했고 또 지지하는 많은 유권자와 서울시민, 그리고 서울교육의 당사자인 수많은 학생들에 대한 도리가 아닐 것이다. 더구나 대한민국의 중심인 수도 서울의 교육의 중요성과 그 책임자인 교육감직의 중대성을 고려한다면, 문제되는 법률조항의 위헌 여부에 대한 헌법재판소의 판단이 있은 후에 대법원이 판결에 임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처사일 것이다.
넷째, 대법원이 급하게 판결을 선고할 경우 또 다른 문제가 발생한다는 점도 유의해야 할 대목이다. 우선 대법원이 1심이나 항소심 판결과 같이 유죄 취지의 판결을 하는 경우에는 객관적으로 위헌 여부를 결정해야 할 헌법재판소에 사실상 합헌 판단을 하도록 압박하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다. 이미 최고법원인 대법원에서 유죄의 판결을 선고한 사안에서, 대법원이 유죄판단의 근거로 적용한 법률조항이 위헌이라고 판단하는 것은 사실상 헌법재판소가 대법원의 판결을 번복하는 것이어서 헌법재판소로서는 엄청난 부담을 가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설사 헌법재판소가 위헌 판단을 내릴 수 있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헌법재판소와 법원 사이의 해묵은 권한 논쟁을 또다시 불러일으킬 가능성이 크다.
반대로 대법원이 하급심과는 달리 무죄판결을 선고하는 것 또한 헌법적 관점에서는 소망스럽지 못하다. 대법원에서 무죄 선고가 내려진다면, 그에 따라 헌법재판소는 권리보호의 필요성이 없음을 내세워 각하 결정을 내릴 공산이 큰데, 이렇게 되면 중대한 헌법적 판단이 대책없이 미루어지는 격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문제의 공직선거법 조항이 비단 곽교육감 사건에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 정책연합 등과 관련한 대부분의 선거에도 적용될 가능성이 크다고 할 때, 이러한 결과는 공직 선거에서의 혼란과 다툼을 방치하는 것과 다르지 않을 것이다. 이처럼 대법원이 헌법재판소의 결정 이전에 판결을 선고할 경우에는 그 결론이 어떤 것이든 심각한 문제를 초래하게 된다는 점에서도 대법원 판결은 헌법재판소의 결정 이후로 미루어질 필요가 있는 것이다.
곽노현 교육감 사건의 재판과정은 선거과정에 대한 공직선거법의 개입이 어디까지 허용되어야 하는지에 관한 논란을 불러일으켜 왔으며, 그 중 가장 핵심적인 쟁점이 위 법률조항의 위헌 여부이다. 그리고 이에 대한 판단은 향후의 선거제도와 선거문화의 향방을 결정할 수도 있는 매우 중차대한 사항이기도 하다. 사정이 이렇다면, 지금 해야 할 일은 대법원의 조속한 판결 선고를 촉구하는 것이 아니라, 이 사건 법률조항의 위헌 여부에 대한 헌법재판소의 판단을 기다리는 일일 것이다. 곽교육감에 대한 대법원의 판결을 재촉하는 것은 법치주의에 부합하는 것도, 사법 정의를 위한 것도 아니다. 오히려 헌법재판소의 필요하고도 정당한 판단을 제약하는 부당한 정치공세에 불과하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