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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홍규의 법과 예술

박홍규 교수님의 법과 예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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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장 행형 영화와 역사 재판 영화

1. 행형 영화 15편

사형에 반대하는 영화들


자유, 평등, 박애에 대한 철학적 회의의 성찰을 담은 <블루Blue>(1993년), <화이트White>(1994년), <레드Red>(1994년)로 유명한 폴란드의 크쥐스토프 키에슬로프스키Krzysztof Kieslowski(1941-)는 결코 이해하기 쉬운 감독이 아니다. 그가 감독한 <십계>라는 텔레비전 드라마 연작물 중의 하나를 영화화한 작품인 <살인에 관한 짧은 필름 A Short Film about Killing>(1988년)도 사형은 또 다른 범죄라는 메시지를 담고 있으나, 단순한 사형 반대 영화는 아니다.  

<침묵의 사형수Somebody Has to Shoot the Picture>(1990년)는 프랭크 피어슨이 감독하고 로이 샤이더가 사형수의 죽어가는 장면을 찍는 사진사로 등장한다. 로이는 사형수가 누명을 썼고 실제 살인범은 이미 자살한 형사라는 사실을 알아내지만, 증거가 모자란다는 이유로 사형수는 처형된다.  

1995년 팀 로빈스가 미국 정치의 추악성을 폭로한 <밥 로버츠Bob Roberts>(1992년)에 이어 두 번째로 감독하고, 수잔 서랜던과 숀 펜이 주연한 <데드 맨 워킹Dead Man Walking>은 헬렌 프리진 수녀의 실화를 영화화한 것으로서 사형제도에 대한 비판을 불러일으킨 걸작이다. <데드 맨 워킹>이란 사형집행장을 걸어가는 사형수가 마지막으로 듣는 말이다. <살인에 관한 짧은 필름>이 사형을 당하는 젊은 사형수를 편든 것이라면 <데드 맨 워킹>은 <인간이 인간을 죽인다는 것>에 대해 묻는 성찰로서 사형수를 결코 이상화하지 않는다. 특히 형집행 30분 전의 시점부터 실제에 맞추었고, 실제의 교도소에서 사형 집행 장면을 촬영했다.

헬렌 수녀(수잔 서랜던)에게 어느 날 편지 한 통이 배달된다. 강간과 살인 혐의로 사형을 기다리는 매튜 폰슬렛(숀 펜)이 자신의 무고를 주장하며 도움을 청한 것이었다. 백방으로 노력한 끝에 재판정에 다시 매튜를 세운 수녀는 희생자 가족을 만나게 된다. 사형대에 앉은 매튜는 결국 자신의 유죄를 시인하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는 사형이 과연 옳은 것인지를 묻는다. <국가는 과연 인간의 삶과 죽음을 결정할 권리가 있는가?>

1995년 말 기준으로 54개국에서 모든 범죄에 대한 사형 제도가 폐지되었고, 16개국이 일반 범죄에 대한 사형 제도를 폐지했으며, 사실상 사형 제도를 폐지한 나라가 30여 개국이어서 사형 제도가 없는 나라가 1백여 개 국에 이른다. 그러나 우리 나라에는 아직도 사형이 부과되는 범죄가 무수하며 1994년과 1995년에 각각 15명, 19명이 사형되었다.

한편 <숀 코네리의 함정Just Cause>은 하버드 법대 교수인 사형반대론자 숀 코네리가 실제 사건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자신의 신념에 대한 회의를 갖게 되는 과정을 묘사한다. 안 글림쳐가 감독했다.  

교도행정을 비판한 영화들

로버트 레드포드가 주연한 <도전Brubaker>(1980년)는 교도행정의 비리를 파헤친다. 존 행콕이 감독하고, 닉 놀테가 주연한 <잡초Weeds>(1987년)는 산 퀘틴 연방 감옥의 종신수가 희곡을 써서 연극을 한다는 특이한 주제를 다루고 있다.  

<몽테 크리스토 백작>으로부터 신창원에 이르기까지 탈옥 영화에는 교도행정의 문제점이 묘사된다. 실베스터 스탤론이 주연한 <탈옥Look Up>(1989년)은 모범수가 악독한 교도소장과 대결하다가 탈옥한다는 이야기이다. 탈옥 영화는 그런 전제를 달고 탈옥을 합리화한다.

1971년에 있었던 아티카 감옥 폭동 사건을 다룬 영화로 죤 프랑켄하이머가 감독한 <아티카Attica>(1994년)가 있다. 이 책의 앞 서론에서 본 클래쉬의 노래가 바로 이 사건을 다룬 것인데, 그곳에서 43명이 죽었다. 프랭크 다리본트 감독, 팀 로빈스 주연의 <쇼생크 탈출The Shawshank Redemption>(1994년)도 마찬가지이다.  

죄수의 인권을 다룬 영화로 팀 멧칼프 감독, 제임즈 우즈 주연의 <저널 오브 머더Killer;A Journal of Murder>(1996년)가 있다. 이는 21명을 살해한 미국의 연쇄 살인범 칼 팬즈램의 실화를 다룬 것으로서 이상주의적인 유대인 간수 헨리 래서와의 우정 묘사가 영화의 중요한 줄거리이다. 래서와 변호인은 팬즈램을 정신이상자로 몰아 그의 목숨을 구하고자 하나 팬즈램은 도리어 자신이 정상임을 증명하여 사형을 받고자 한다.  

마크 로코가 감독하고 크리스쳔 슬레이터, 케빈 베이커, 게리 올드만이 공연한 <일급 살인Murder in the First>(1995년)은 역사상 악명 높았던 알카트래즈 감옥을 폐쇄시킨 계기가 된 헨리 킹 사건을 다루었다. 미국 캘리포니아 주 센프란시스코 만에 있는 바위섬 알카트래즈는 1868년부터 군법 위반자의 교도소로, 1934년부터는 알 카포네 등의 거물급 갱들을 수감하는 연방 교도소로 운영되었다. 그러나 강력범과 흉악범으로 다 채우지 못해 <일급 살인>의 주인공 헨리 영처럼 단돈 5달러를 훔친 자들도 수용되었다.

배경이 되는 시점은 1930년대로서 1938년, 그곳을 탈옥하려다가 잡힌 영은 3년간 독방에 수감된다. 이는 정부 지침인 19일까지의 독방 수용이라는 원칙을 어긴 것이었다. 영은 그 3년 뒤인 1941년, 정신착란 상태에서 동료를 살해한 혐의로 재판을 받았는데, 그 변호를 맡은 제임스 스탬필 변호사가 알카트래즈의 비인간적 잔혹행위들을 고발하여 그 뒤 대법원은 지하 감방을 영원히 폐쇄한다는 결정을 내렸고, 1963년 교도소는 완전히 폐쇄되었다. 알카트래즈 감옥을 다룬 영화로는 돈 시겔Don Siegel 감독, 클린트 이스트우드 주연의 <알카트래즈로부터의 탈출Escape from Alcatraz>이 있다.  

<의심할 수 없는 한 시민에 대한 조사>    

엘리오 페트리Elio Petri(1929-82) 감독, 지안 마리아 블론테 주연의 이탈리아 영화 <의심할 수 없는 한 시민에 대한 조사Indagine su un Cittadino al di Sopra di Ogni Sospetto>(1970년)는 비디오의 이름이 <완전범죄>로 마치 범죄영화인양 되어 있어 우스꽝스럽다. 이 영화는 1970년에 아카데미 외국어영화상, 깐느영화제 심사위원 특별상 등을 수상한 걸작이다.

이 영화는 미국 영화 <더티 해리> 등이 미국식 형사 활약상의 묘사에 그친 것에 비해, 같은 주제를 다루면서도 사회제도에 대한 근본적인 문제를 던진다는 점에서 차원이 다른 영화이다. 파시즘의 고향인 이탈리아에서 제작되었고, 주인공인 과대망상증 형사의 범죄행위 발생원인을 파시즘에서 찾고 있다. 형사는 경찰수사를 인간의 가장 깊고도 은밀한 감정을 건드리며 전개되는 드라마라고 믿는다. 그리고 억압을 문명의 조건으로 생각하며 수사상의 조작이나 탄압을 찬양한다. 그것이 이탈리아 무솔리니의 본질이었다.

로마경찰청의 수사반장인 권위 있는 형사(지안 마리아 브론테)가 정부 아우구스타의 살해혐의로 구속된다. 영화는 과거에의 회상으로 나아간다. 그녀의 아파트에서 형사와 정부는 현란한 변태적인 성행위로 나날을 보내나 그 자신은 성불구자이다. 그녀는 살인피해자처럼 포즈를 취하고 그는 그것을 사진으로 찍는다. 그런 변태를 통해 그는 성적인 승리감을 맞본다. 그는 과거의 무솔리니처럼 항상 말한다. <억압은 문명의 조건이다.> 한편 그는 그녀에게 새로운 애인이 생겼음을 알게 되고 그녀를 살해한다. 그 이유는 그가 그의 성불능을 조롱했다는 것. 그는 자신의 취약점, 무력함을 누군가에 의해 발각당하면 그것을 참지 못한다. 그것이 파시스트의 본질이다.

그는 범죄 장소에 거짓 단서를 남기고 도망간다. 그리고는 다시 아파트로 돌아와 태연하게 조사한다. 그러나 아무런 결정적인 단서를 찾지 못하고 돌아간다. 어느 날, 청년 과격분자에 의한 폭발사건이 터지자 형사는 그것을 조사한다. 조사 중 그는 그 사건에 아우구스타의 애인인 무정부주의 학생인 안토니오 페이스가 가담된 것을 알고 그를 아우구스타의 살해범으로 몰아버린다. 그러나 페이스가 반대로 형사가 아우구스타의 집에서 나온 것을 본 적이 있다고 진술하여 형사가 구속된다.

전후 네오 리얼리즘영화는 모두 일정한 사회비판의식을 공유했으나 명확한 정치의식을 보여준 것은 아니었고 도리어 50년대 이후에는 애매한 관념적 주관주의로 빠졌다. 이탈리아에서 보다 분명한 정치적 영화가 등장하는 것은 60년대 말 이후에서였다. <의심할 수 없는 한 시민에 대한 조사>도 그러한 계열의 영화로서 마르크스와 프로이트를 가장 훌륭하게 접목시켰다는 평가를 받았다. 곧 정치와 성을 나름으로 연결시키는 데에 성공했다는 것이다.

<욜>

가끔 지금까지 본 영화 중에 가장 깊은 감동을 받은 작품이 무엇이냐라는 질문을 받는다. 금방 답하기 어려운 질문이나 서슴없이 <욜Yol>이라고 답하는 경우가 많다. 1982년 제35회 깐느영화제에서 그랑프리(남미에서의 실종문제를 다룬 <미싱>과 함께)를 받은 <욜>을 당시 외국에서 보고 며칠간 잠을 못 잤는데, 한국에서는 6년 뒤인 88년에 와서야 <겨우> 상영되었다. 그러나 당시 터키대사관은 <욜>과 <미드나잇 익스프레스> 등 터키의 어두운 면을 그린 영화들의 수입규제를 요청했다. 참으로 어처구니없는 나라이다. 감독인 귀니Yilmaz Guney(1937-84)는 사회주의 소설을 썼다는 이유로, 무정부주의 학생을 은닉시켰다는 이유로, 그리고 판사를 살해했다는 이유(오판으로 밝혀졌다)로 세 번이나 구속되었다. 그리고 47세에 망명지인 프랑스에서 쓸쓸히 죽었다.

<욜>은 감옥에서 가출옥한 다섯 죄수가 세상에 나와 자유를 찾으나 세상 자체가 더 큰 감옥임을 느낀다는 주제를 담고 있다. <욜>은 터키말로 <길>을 뜻한다. 귀니에 의하면 그것은 삶에의 추구, 자유에의 여행이라는 의미를 갖는다. 삶의 방식, 삶의 배출구를 찾아 헤매-는 것을 뜻한다. 그러나 그것은 수포로 끝난다. 그들에게는 오직 절망만이 남는다. 추구나 여행, 모색이나 방황은 무의미하다. 그렇지만 귀니는, 그래도 고뇌는 인간적인 가치라고 주장한다. 고뇌와 사랑 그리고 회한은 인간만이 갖는 인간성이라고 주장한다. 인간은 그렇게 살아가기에 존귀하다고 주장한다. 그래서 영화는 매우 무겁다. 인간의 존재와 생명 그리고 사랑에 대한 근본적인 물음을 던지기 때문이다.

그것을 감독은 감옥에서 제작했다. 도대체 감옥에서 어떻게 영화를 제작할 수 있는가? 그것을 터키 정부는 어떻게 허용했는가? 참으로 이해가 안되는 일이다. 한국에서는 상상이라도 할 수 있는 일인가? 시인이나 소설가에게도 펜을 주지 않는 나라에서 어떻게 영화제작을 상상할 수가 있겠는가? 그러나 터키정부는 그것을 허용했다. 죄수들은 물론 간수들도 그의 영화제작을 도왔다. <욜>은 감옥에서 제작된 감옥 영화이다. 그러나 감독은 도리어 세상이 감옥이라고 말한다. 삶이 감옥이다. 전통이나 관습, 구시대의 낡은 도덕이 감옥이다. 우리는 그런 귀니에게 충분히 동감한다. 정도의 차이가 있을지 모르나 어디에나 그런 삶의 굴레는 있다. 도덕과 관습, 법과 제도. 계급과 빈부 차이의 굴레가 있다. 귀니는 그것에 격노한다. 그는 조국에 분노한다. 그의 조국은 그에게 더 이상 애정의 대상이 아니다. 그는 조국이 바뀔 것을 요구한다. 인간에게 자유와 권리를 되돌려줄 것을 요구한다. 그가 저항하는 대상은 단순히 정치만이 아니다. 삶의 모든 구속에 권력이 도사려 인간을 질식시키고자 한다. 그는 인간이 인간답게 사는 조국을 당당하게 요구한다. 정치적 억압, 경제적 빈곤, 종교적 굴레, 관습적 편견 등에 의해 인간성을 침해하는 조국에 대한 분노를 애국심 따위로 평가절하해서는 안된다. 이젠 그런 애국심은 헌신짝처럼 버려야 한다. 아니 그것은 애국이 아니라 봉건독재에 대한 잘못된 충성일 뿐이다.

<욜>은 터키영화이다. 터키도 군사쿠데타의 악순환을 경험한 나라이다. 1960년에 첫 쿠데타가 있었고 귀니는 그 다음해에 구속되고 계속 탄압을 당했다. 터키에는 내부 식민지 비슷한 쿠르드가 있다. 이란, 이라크 및 터키의 국경지역에 산재한 4백만 명의 쿠르드 민족은 독립을 주장하나 그 어느 나라에 의해서도 그것을 보장받지 못하고 있다. <욜>의 귀니 감독은 1937년 쿠르드족으로 태어나 노동을 하며 고학을 했다. 그 후 앙카라에서 법학을, 이스탄불에서 경제학을 공부한 뒤에 영화감독이 되었으나, 사회주의적인 소설을 썼다는 이유로 1961년에 구속되어 1년 반을 감옥에서 보내었다. 그리고 1966년에 처녀작인 <말, 여자 그리고 총>을 감독한다. 그 후 대중적인 영화에 출연하기도 하여 <못생긴 왕>이라는 별명을 얻고 터키의 국민적 우상이 된다.

이어 정치색이 강한 영화, 예컨대 1970년에 <희망Umut>, 19071년에 <아버지>와 <연가>를 감독했으나 번번이 상영금지가 되고, 1972년과 1973년에 다시 구속되었다. 세번째의 구속으로 그는 24년의 중노동에 처해진다. 그러나 집필과 영화기획을 감옥당국으로부터 허용받아  1974년에 <친구>와 <불안>을 감독하나 역시 상영이 금지된다. 그리고 1978년에 <군중>과 <적>을 감독하나 다시 상영은 금지된다. 전자는 어떤 유목민과 그 가족의 고통스러운 삶을 표현한 것이고, 후자는 길을 잃은 개들을 지키는 직업으로 연명해가는 노동자의 삶을 통하여 정의와 민중해방에 대한 열망을 표현한 것이다.

그는 생애의 반 이상을 감옥에서 보낸 경험을 감옥에서 <욜>로 만들어낸다. 그가 쓴 각본에 따라 촬영을 하면 감옥의 그에게 전달되고 감옥벽에 매단 담요를 스크린삼아 작업을 계속했다. 그리고 <욜>의 경우와 같이 가출옥을 받아 스위스로 탈출하여 음악과 편집 등의 작업을 거쳐 비로소 작품을 마무리한다. 제3세계의 영화제작을 적극 지원한 스위스의 캑터스 필름의 협조를 받아 <욜>을 완성한 그는 터키정부의 방해를 피하여 깐느영화제에서 마지막으로 <욜>을 상영한다. 프랑스정부는 그것을 위해 터키정부와의 범인인도조약의 예외를 인정한다. 영화제에 귀니가 나타났을 때, 관중은 일제히 기립한 상태에서 그의 이름을 외치며 울음을 터뜨렸다. 귀니는 1983년, 유작인 <벽Le Mur>을 제작하고 그 다음해 프랑스에서 암으로 죽었다. <벽>은 1976년에 파시즘체제에 대항하여 발생한 앙카라감옥의 폭동을 소재로 한 것이었다. 그는 마침내 해방을 얻었다.

귀니의 영화는 자비에 콜러에 의해 이어진다. 1990년 아카데미 외국어영화상을 받은 콜러의 <희망의 여행>은 마치 <욜>의 속편, 아니 <욜>의 유럽편과 같다. 그 주연도 <욜>에서 오메르역을 한 넥메틴 코브아노그루. <희망의 여행>에서 그는 터키의 농민으로 사촌인 제말이 스위스에서 부자가 되었다는 소문을 듣고 아들 알리와 함께 그곳으로 여행을 떠난다. 그러나 여행경비를 밀입국 알선업자들에게 모두 사기당하고, 스위스에 간신히 도착하나 한파로 모두 동상에 걸리고 밀입국자로 스위스경찰에 쫒긴다. 아들이 죽고 아내와 이별한 그는 결국 수용소에 잡혀간다.

<오피셜 스토리>와 <신문>

<오피셜 스토리The Official Story>(1985년)란 <공식기록>을 말한다. 그러나 그 영화는 정부측의 공식기록이 아니라 그것을 학교에서 가르쳐온 한 여린 여성 역사교사가 의문을 품게 되는 의식화의 과정을 <비공식>적으로 묘사한다. 한국에서도 군사정권이 끝난 뒤에 잡지나 신문에 <비화>식으로 비공식기록들이 공개되었다. 그 당시에는 권력과 야합하거나 침묵하던 언론이 권력이 망한 뒤에 비화라는 이름으로 대중의 흥미를 자극하여 신문 지면을 메우는 상업주의는 얄팍하다 못해 괘씸하기도 하다. 그러나 공식기록은 지금도 거의 그대로이지 고쳐지지 못하고 있다.

1985년 아카데미 외국어영화상을 비롯하여 골든글로브, 깐느영화제 여우상 등을 수상한 <오피셜 스토리>는 군사독재하의 아르헨티나에서 실제로 있었던 사건을 영화화한 것이다. 여기서 먼저 아르헨티나의 역사에 대해 간단히 살펴보자. 아르헨티나의 역사에 대해서는 페르난도 솔라니스와 옥타비오 게티노가 감독한 <불타는 시간>이라고 하는 6시간 반에 걸친 다큐멘타리 명작이 있다. 이 영화야말로 진정한 <언오피셜 스토리>라고 할 수 있다.

다른 남미 나라와 같이 스페인인들이 16세기부터 식민지로 삼은 그곳은 1816년에 독립했으나, 19세기말부터 유럽과 미국의 자본이 대량 도입되면서 신식민주의를 경험한다(<불타는 시간>의 제1부에 해당됨). 이에 반발하여 1946년 페론이 대통령이 된 후 사회정의, 경제적 자유, 정치적 독립을 슬로건으로 하는 사회주의정부가 수립되나, 1955년에 군사쿠데타로 무너진다(<불타는 시간>의 제2부. 제3부는 남미가 제국주의에서 벗어나기 위한 고민을 다루고 있다).

1973년에 페론이 다시 대통령이 되고 다음 해 그가 죽자 그의 부인이 대통령이 되었으나 다시 1976년 쿠데타로 끝난다. 쿠데타 이후 계엄령에 의한 철권통치로 나아갔으나 1983년에 다시 민정이양이 되어 알폰신이 대통령으로 취임했다. 1976년 비데라장군에 의한 군사쿠데타 이후 1983년 12월까지 군사독재정권의 지배하에 있었다. 당시 군사정권은 사회질서회복이라는 미명하에 수많은 반체제인사들을 구속하고 고문했으며 3만 명 이상이 실종되었다. 실종된 자녀의 어머니들이 <5월광장>이라는 이름의 조직을 만들어 국가의 공식적인 보고서인 <오피셜 스토리>의 배경에 숨은 진실을 찾는 투쟁을 시작했다. 최근 한국을 방문하여 한국인권단체들과의 유대를 모색하기도 한 그들의 이야기가 바로 이 영화의 주제이다.

<오피셜 스토리>는 쿠데타 기간의 정치악에 대해서 아무 것도 모르고 부유하게 살아온 한 엘리트 여성이 진실에 눈떠가는 과정을 감동적으로 묘사한다. 우리나라에도 지난 수십 년간의 군사독재시대를 별 탈 없이 살아온 여성들(물론 남성도)이 많을 것이다. 거의 대부분의 국민이 그랬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고문의 천재라고 하는 이근안은 아직도 잡히지 않고 있으나, 그가 가정적으로는 참으로 자상한 남편이자 아버지였다는 것은 유명한 얘기이다. 우리는 고문자들이 악마라고 상상할 필요는 없다. 그들은 직업상 고문을 하나 자신의 가족에 대해서는 더없이 완벽하다. 지난 수십 년간 많은 사업가들이 군사정권과 결탁하여 사업을 하고 돈을 벌었다. <오피셜 스토리>의 남편도 그런 사람에 불과하다.

마찬가지로 1976년의 실화를 영화화한 세르시오 톨레도 감독의 <원 맨즈 워One Man's War>는 남자를 주인공으로 한 <오피셜 스토리>이다. <오피셜 스토리>의 여주인공을 연기한 노마 알비안드로가 안소니 홉킨스의 아내 역을 맡았다.

<시고니 위버의 진실Death and the Maiden>(1994)은 로만 폴란스키Roman Polansky(1933-) 감독, 시고니 위버, 벤 킹슬리 주연으로 수사과정에서 강간을 당한 여인이 복수하는 이야기이다. 시대의 불안과 폭력, 사회로부터 고립된 개인의 무능력과 고독을 보여주고 그것을 초월하려는 의지를 언제나 보여준 감독은 이 영화에서도 그런 문제의식을 유감없이 드러낸다. 우리는 <악마의 씨Rosemary's Baby>(1968년), <맥베스Macbeth>(1971년), <차이나타운Chinatown>(1974년), <테스Tess>(1979년) 등의 작품에서도 그런 주제의식을 읽을 수 있다.

다음 <신문>을 보자. 제2차대전이 끝나자 폴랜드를 비롯한 동유럽 나라들은 소련에 의해 공산화되었다. 종주국인 소련의 스탈린식 체제와 함께 동서냉전의 심화는 동유럽 여러 나라를 경직화하여 스탈린식 숙청이 자행되었다. 부가예스키 감독의 <신문>은 바로 이 시기의 숙청사건을 다루고 있다(각주: 한영준 역, 공간문학사, 1991). 여주인공처럼 잡혀간 사람들은 스탈린이 죽는 1953년에 와서 풀려나기 시작했으나 그 다음 해까지도 약 10만 명의 정치범이 투옥되어 있었다. 이 영화는 1980년 바웬사가 이끈 자유노조가 공산당에 맞서 파업을 승리로 이끈 뒤에 제작되었다. 그러나 한해도 가기 전에 공산당의 배신으로 군사계엄령이 선포되어 이 영화를 비롯한 많은 작품들이 상영금지 처분을 받았다. 그 후 1989년 총선에서 자유노조가 승리하자 상영금지처분이 해제되고 ‘신문’은 1990년 깐느영화제에 출품되어 여우주연상을 받았다. 이상 이 영화의 역사는 바로 폴란드 자체의 현대사이다.    

<오피셜 스토리>에 나오는 여주인공의 악몽은 폴란드에서 <신문>이라는 제목으로 영화화되어 우리들에게도 개봉되었다. 폴란드에서 검열문제로 시비를 불러일으킨 그 작품은 리카르도 부가에스키 감독에 크리스티나 얀다 주연이었다. 얀다는 그 영화로 깐느영화제에서 주연상을 받았다. <신문>은 한 여성이 고문을 통하여 어떻게 황폐화되는가를 처절하게 보여준다. 그 여주인공은 남을 해치는 거짓말을 할 수 없다는 용기를 가졌기 때문에 2년을 죽음처럼 보낸 것이다.


* 민주법연님에 의해서 게시물 복사되었습니다 (2006-07-11 03: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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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제1편 법과 예술 / 2. 왜 <법과 예술>인가? 민주법연 2004.06.22 20450
4 제1편 법과 예술 / 1. 법, 법률가, 법학 그리고 예술 민주법연 2004.06.18 23944
3 머리말 민주법연 2004.06.11 19146
2 법과 예술 차례 민주법연 2004.06.11 20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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