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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홍규의 법과 예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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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편 법과 예술 / 3. <법과 예술>의 어두운 관계

민주법연 2004.07.02 13:36 조회 수 : 25097 추천:38

3. <법과 예술>의 어두운 관계

문학과 검열


법은 가끔 예술을 규제한다. 이 대표적인 보기가 소위 외설 문제이다. 문학사에서 졸라Emil Zola(1840-1902), 플로베르, 조이스James Joyce(1882-1941), 그리고 D. H. 로렌스David Herbert Lawrence(1885-1930)가 그런 수모를 당했다. 그 중에서 조이스의 경우를 보자. 조이스의 『율리시즈Ulysses』(주: 번역은 김종건 역, 전4권, 범우사, 1997)를 둘러싼 외설 시비는 리더스 다이제스트사에서 낸 『20세기의 대사건들Great Events of the 20th Century』에서 1933년을 상징하는 사건으로 설명되었을 정도로 중요하다.
그해 봄,  『율리시즈』 한 권이 뉴욕시의 외설 혐의로 법원의 심판을 받기 위해 세관원들에게 압수되었다. 사실 조이스는 그 책을 처음 연재한 1914년부터 검열에 시달렸다. 1921년 뉴욕 사회정화위원회가 이 작품을 고소해 승소하자 우체국은 그 연재 잡지를 소각 처분했다.

그 소설은 1904년 6월 16일이라는 날, 아일랜드의 더블린에서 벌어지는 평범한 하루, 정확하게는 19시간의 일상을 영어 원서로 약 700쪽에 걸쳐 묘사한 것이었다. 그런데 그 소설 여러 곳에 ‘저속한’ 표현이 자주 나타난 것이 문제되었다.

당시에는 외설에 대한 법적 기준이 엄격했다. 그 최초의 판례가 1868년 영국의 <레지나 대 히클린Regina vs. Hicklin> 판결이었다. 히클린 테스트Hicklin Test라고 하는 그 기준은 <외설혐의를 받은 내용의 취지가 그러한 부도덕한 영향에 그 정신이 노출되어 있고 또는 이런 유의 출판물을 입수할 수 있는 사람들을 타락시키고 부패시키느냐의 여부>였다. 이 기준은 문학을 도덕적 타당성으로만 판단하게 하고, 작품의 예술성을 도외시하고 전후 문맥에 관계없이 따로 뽑아낸 특정 구절만으로 외설 판결을 내릴 수 있도록 했다는 점에서 비판되었으나 그 후, 50년간 유럽과 미국에서 그대로 통용되었다.

그 50년이 지난 1917년, 미국에서 문학 작품은 전체적으로 이해되어야 한다는 판결이 나와 그 최초의 수정이 가해졌다. 그러나 그 후 4년 뒤인 1921년에도 『율리시즈』는 외설로 판단되어 소각 처분되었던 것이었다. 그렇지만 1933년에 이르기까지 『율리시즈』의 문학적 명성은 매우 높아졌고, 미국 의회에서 1917년 판결을 확인한 법이 통과되었기 때문에 1933년의 재판은 조이스에게 매우 유리했다. 더욱이 그해 5월, 나치에 의해 독일 전역에서 행해진 서적 소각에 대한 반작용으로 검열에 대한 대중의 지지도는 매우 낮았다.

<미국 대 율리시즈> 사건을 담당한 뉴욕 지방법원의 재판관은 1개월 동안 그 책을 읽고 12월 첫 주에 양측 당사자의 주장을 들은 뒤 6일, 외설혐의가 없다는 장문의 판결문을 읽어 내렸다. 그는 외설을 <성적 충동을 일으키거나 성적으로 불결하고 음탕한 생각을 하게끔 하는 것>이라고 정의하고 『율리시즈』에는 그런 부분이 없다고 말했다.      

이 판결로 검열 문제는 매우 진보적으로 바뀌었다. 판결 자체도 더욱 진보하여 1957년 대법원은 <전체적으로 파악된 대상물의 전반적인 주제가 현행 규범에 비추어볼 때 보통 사람들에게 음탕한 흥미를 일으키게 하느냐의 여부>라는 기준을 채택했다(로스 대 미국 판결Roth vs. United States). 그 기준에 의해 오랫동안 판금당한 D. H. 로렌스의 『채털리 부인의 사랑Lady Chatterley's Lover』(주: 번역은 여럿 있다. 예컨대 홍준희 역, 대산출판사, 1997)이 1959년, 헨리 밀러의 『북회귀선Tropic of Cancer』(주: 역시 번역이 여럿 있다. 무삭제 완역판은 김진욱 역, 문학세계사, 1991)이 1964년에 각각 해금되었다.

그러나 외설적 출판물의 범람으로 1960년대 대법원은 다소 후퇴하기 시작했고 마침내 1973년 <밀러 대 캘리포니아 주Miller vs. California> 사건에서 <전체적으로 보아 지나치게 노골적으로 성행위를 묘사하여 성에 대한 음란한 흥미를 일으키고, 또 전체적으로 보아 상당한 정도의 문학적, 예술적, 과학적 가치가 없는 경우>를 외설로 규정했다. 이 판례는 외설의 입증을 검찰에서 피고인 측으로 넘기는 결과를 가져왔다.
또한 존 스타인벡John Steinbeck(1902-68)의 『분노의 포도The Grapes of Wrath』, 윌리엄 골딩William Golding의 『파리 대왕』, J. D. 샐린저Jerome David Salinger(1919-?)의 『호밀밭의 파수꾼The Catcher in the Rye』 등의 판매가 금지되는 등 엉뚱한 결과를 빚었다. 그래서 그 해 랜덤하우스 출판사 사장은 <『율리시즈』가 승소한 지 40년이 경과한 지금에 와서 우리가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여야 한다니 이상한 일이다>라고 말했다.

사진5: 래리 플린트 선전광고영화 <래리 플린트The People vs. Larry Flynt>(1996년)는 <허슬러>라는 포르노 잡지를 간행한 플린트를 둘러싼 표현의 자유에 관한 재판의 이야기이다. 우디 해럴슨이 플린트를 연기했고 밀로스 포먼이 감독했다. 다음은 플린트의 주장이다. <살인은 불법이다. 그러나 살인을 찍은 사진을 뉴스위크에 실으면 퓰리처상을 받는다. 섹스는 합법이지만 그걸 사진으로 찍어 잡지에 실으면 감옥에 간다. 어떤 게 더 유해한가?> <난 미국의 3등 시민이다. 내 권리가 보호받으면 다른 여러분의 권리는 자연히 보호받는 것이다.> <내 죄는 나쁜 취향을 지닌 것밖에 없다.>

움베르토 에코는 포르노의 특징은 지저분하다는 것이 아니라 지겹다는 데 있다고 말했다. 누구나 공감하는 이야기이지만 포르노의 문제는 그런 지저분함이나 지겨움에 그치지 않는다. 1980년대에 와서 <포르노에 반대하는 여성들Women Against Porno>라는 단체가 <포르노는 섹스를 다루는 게 아니라 여성을 향한 폭력을 다루기 때문에 위험하다>고 주장하고 포르노에 대한 규제를 요구했다. 그리고 헌법상의 표현의 자유는 그것이 정치적으로 사회 구성원 다수의 동의를 얻지 못하는 경우에는 보장될 수 없다고 한다.

그러나 자유주의자들은 포르노 통제가 제도화되면 차후 그것이 정치적 검열의 구실로 악용될 수 있음을 우려하여 그 통제에 반대한다. 그리고 위 단체가 <정치적인 표현>의 성격을 규정할 권리를 정부에 넘겨주었다고 비난한다. 게다가 위 단체는 여성, 아내, 어머니의 전통적 역할을 강조하는 신보수주의와 관련된다고도 비판되었다.

그런데 1990년대에 와서 동성애자를 중심으로 음란외설에 관한 법적 규제가 동성애를 억압할 가능성이 있다는 이유에서, 그리고 페미니스트들이 포르노가 여성의 욕망을 솔직하게 보여준다는 점에서 포르노 규제에 반대하고 나섰다. 나아가 성적 억압과 금기에 도전한다는 적극적인 기능이 포르노에 인정되기 시작했다.

헐리우드의 빨갱이사냥
제2차대전이 끝난 후인 1946년 3월 영국의 윈스턴 처칠이 ‘철의 장막’이 내려졌다고 선언하자 1947년 2월부터 미국에서는 교사를 포함한 모든 공무원에게 반공선서가 강제되었다. 그리고 같은 해 10월부터 워싱턴에서 빨갱이 영화인에 대한 하원 반미활동위원회(HUAC)의 청문회가 열렸다.

그러나 반공주의적 경향은 미국역사에 고유한 것이었고, 직접적인 박해도 이미 HUAC가 조직된 1938년부터 시작되었다. 1944년에는 <미국의 이상을 옹호하는 영화동맹>이 결성되었으며, 그 동맹이 19명의 빨갱이 혐의자를 HUAC에 통보했다. 동맹측에는 대영화 회사의 사장들과 함께 월트 디즈니, 게리 쿠퍼, 로버트 테일러, 로널드 레이건 등이 참가했다. 그들이 고발한 빨갱이로는 찰리 채플린, 베르톨트 브레히트(그는 직후 미국을 <탈출>했다), <로마의 휴일>(1953), <벤허>(1959) 등의 윌리엄 와일러, <차이나타운>의 존 휴스턴 등이었다. 채플린은 당시 유럽여행길에 있었기에 그대로 망명하여 1972년에야 미국에 돌아올 수 있었다.

당시 헐리우드에서는 양심적인 영화인들이 청문회에 회부된 영화인들을 지원하기 위한 조직을 만들었다. 그곳에 참여한 사람들은 <카사블랑카>의 험프리 보카트와 그의 부인인 로렌 바콜, 그레고리 펙, 캐더린 헵번, 다니 케이, 버트 랭카스터, 헨리 폰다, 커크 더글러스, 진 켈리 그리고 토마스 만 등 5백여 명에 이르렀다.

사진 6: 영화 <비공개>당시의 광기서린 청문회활동에 대해서는 이미 많은 영화가 비판적으로 다룬 바 있다. 예컨대 대부분의 스태프가 당시의 희생자였던 우디 알렌 주연의 <프론트Front>(1976년), 어빈 윙클러가 감독하고 로버트 드 니로가 주연한 <비공개Guilty by Suspicion>(1991년) 등이다(주: 소설판은 한명준 역, 비공개, 아가출판사, 1992). 증언을 거부한 10명은 6개월 - 1년형을 받았으나 지금 그들은 <헐리우드 텐>의 명예를 받고 있다. 그 중 한 사람인 시나리오작가 돌튼 트람보는 가명으로 <로마의 휴일>을 썼다. 1996년의 영화 <크루서블>은 1692년의 마녀 재판을 다룬 것이나, 동시에 맥커시 소동을 비판한 것이기도 했다.  

56년 만에 내려진 영화의 자유
우리나라에도 이런 문제는 있다. 최근 1996년 10월, 헌법재판소는 <사전 심의는 위헌>이라고 하는 결정을 내렸다. 무려 6년간 계류되어 온 <오! 꿈의 나라>를 둘러싼 영화 사전 심의 위헌 제청 사건에 대해 <심의 기관이 허가 절차를 통해 영화 상영 여부를 종국적으로 결정하는 것은 표현물에 대한 검열을 금지한 헌법에 위배된다>고 결정하여, 예고편을 포함해 영화를 상영 전에 공륜의 심의를 받도록 하고(영화법 제12조 1항), 심의를 받지 않은 영화의 상영을 금지하며(동 2항), 필요한 부분을 삭제하고 심의필을 결정할 수 있도록(제13조 1항) 한 영화 심의제도는 효력을 상실했다. 지난 40년간 조선영화령 제정과 함께 영화에 채워진 족쇄가 56년 만에 풀린 것이었다.

헌재는 우선 <의사 표현의 자유는 헌법의 언론․출판의 자유에 속하고 의사 수단의 매개체는 어떤 형태이건 제한이 없다>고 했다. 그리고 검열을 <행정권이 주제가 되어 사상이나 의견 등이 발표되기 이전에 예방적 조치로 그 내용을 심사, 선별하여 발표를 사전에 억제하는 제도>로 규정하고, <검열제가 허용될 경우 국민이 예술 활동의 독창성과 창의성을 침해해 정신생활에 미치는 위험이 클 뿐만 아니라 행정기관이 집권자에게 불리한 내용의 표현을 사전에 억제함으로써 지배자에게 무해한 여론만이 허용되는 결과를 초래할 염려가 있기 때문에 헌법에 직접 그 금지를 규정하고 있는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그 1년 뒤인 1997년 11월, 검찰은 국가보안법 위반 등으로 <이적 표현물>이라는  혐의를 받은 <레드 헌트>를 상영했다는 이유로 인권영화제 집행위원장인 서준식을 구속했다. 물론 한국에서 이런 일이 처음은 아니다. 1986년 경찰은 6.25전쟁과 광주민중항쟁 등을 다른 다큐멘터리 <파랑새>를 빌미로 관련자를 영화법 위반으로 구속했다.

사진 7: 영화 <거짓말>최근 음란물이라는 이유로 판금당한 장정일(그는 감옥에 갔다)의 <내게 거짓말을 해 봐> 그리고 그것을 영화화한 장선우의 <거짓말>은 법과 예술의 관계를 보여준 또 하나의 시금석이었다.

영상물 등급위원회는 영화를 등급외로 규정했는데 이는 등급외 극장이 없는 현실에서는 개봉금지와 같은 조치였다. 그 후 세 번의 심의끝에 영화는 영화사의 자진 삭제를 거쳐 개봉되었다.

줄거리는 스무 살 차이가 나는 남자와 여고생이 회초리에서 곡굉이 자루까지 사용하면서 서로 때리고 맞으며 성행위를 반복하는 이야기이다. 이 영화를 예술로 볼 것이냐, 아니면 외설로 볼 것이냐는 독자들이 판단할 문제이나, 나는 장선우의 전작 <나쁜 영화>와 마찬가지로 훌륭한 작품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성에 이중적인 우리 사회를 비판적으로 다룬 것은 아니고, 새로운 성의 모습을 제시한 것도 아니다. 문제는 이런 소설이나 영화, 연극 심지어 노래를 마녀사냥식으로 몰아가는 우리 사회의 미성숙성에 있다.

그 미성숙성 때문에 과거에는 고야의 <마하>가 외설로, 피카소의 <한국의 학살>이 국가보안법으로 규제당했다. 그밖에도 수많은 예술작품들이 법에 의해 금지되었다. 이제는 헌법상의 표현의 자유를 불가침의 인권으로 보장해야 한다. 그래야만 예술의 발전이 가능하다. 특히 정치적인 이유로 인한 표현권의 제한은 앞으로 없어져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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