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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홍규의 법과 예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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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편 법과 문학 / 제6장 시와 연극

민주법연 2004.12.21 23:29 조회 수 : 28469 추천:33

제6장 시와 연극

1. 브레히트

바이마르 헌법


바이마르 헌법은 흔히 세계 최초의 현대적 헌법이라고들 한다. 그러나 그 시대를 산 브레히트Bertolt Brecht(1898-1956)는 바이마르 헌법을 시로 비판한다. 그가 <바이마르 헌법의 3조항>에서 문제삼은 것은 다음 3조항이다.

<제1조 독일 제국은 공화국이다. 국가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제111조 누구나 제국의 임의의 장소에 체류하며 거주하고 토지를 구입하며 모든 생계수단을 영위할 권리를 가진다.>
<제115조 모든 독일인의 주택은 그에게 있어 안식처이며 신성불가침이다.>
그러나 브레히트는 그것이 허위라고 주장한다. 제1조는 환상이며 제111조나 제115는 부자에게만 인정된다는 것이다. 그의 시를 읽어 보자.

조항 1
1.
국가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그러나 어디로 가는가?
그래 어디로 가는가?
어디론가 가기는 가지!
(중략)

3.
구가권력이 갑자기 멈춰선다.
저기 무엇인가 서 있는 것을 본다.
-도대체 저기 서있는 무엇을 보는가?
저기 무엇인가 서 있는 것을 본다.
그리고 갑자기 국가권력이 소리친다.
그가 소리친다. 해산해!
-왜 해산해야 하는가?
그가 소리친다, 해산해!

(중략)

조항 111
1.
달려라, 달려, 무산자여, 네겐 권리가 있어
토지를 매입할.
네겐 그럴 권리가 있어.
네겐 니콜라스제 호수에 대한 권리가 있어.
이제 어떤 무산자도 더 이상 배고파 죽을 필요는 없어.
(중략)

조항 115
1.
한 독일인에게도 자유로운 장소들이 있지
우리의 노예적 삶에서는 그것이 꼭 필요하기 때문이지.
꼭 필요하고 말고.
우리가 집을 하나 가지고 있다면
이 집은 신성하겠지
신성하고말고.  

(중략)

3.
유감스럽게도 집을 얻지 못했으니
지하실방이나 다리밑이 우리에겐 꼭 필요하지
꼭 필요하고 말고.
(중략)

브레히트는 <후손들에게>(1939년)라는 시에서 다시 어두운 시대를 풍자한다.

(중략)
나무에 대한 대화가 범죄시되는
시대는 도대체 어떤 시대인가?
그래서 수많은 비행에 대해서 침묵하는 시대는?


브레히트와 같은 시대를 산 K. 투콜스키Kurt Tucholsky(1890-1935)는 <10년간의 독일혁명>에서 혁명의 결과를 묻는다.

(중략)
당신은 더 편안한가요? 감옥속의 사내여?
그대들 모두에게 공화국은 무엇을 가져다 주었나요?
우린 공화국이다.
검정, 하양, 빨강 띠를 가진…
우린 노력하고 있다. 엄격히 설립자의 뜻에 따라 상점을 운영하려고.
여기 재판관들이 있다. 그들은 황제 치하의 재판관들보다 더 나쁘다.
(중략)

  
독일에는 오랜 정치시의 전통이 있고 그 중에는 법과 재판을 다룬 것도 많다. 그 최초의 작품이라고 할 수 있는 1848년 전후에 쓰여진 베틀가 <피의 재판>을 보자. 작자는 미상이다.

여기 이곳에서 재판은
린치보다 더 가혹하네,
빨리 목숨을 앗아가는
사형선고는 하지 않는 곳이라네

여기서 사람들은 서서히 고통을 받네
여기는 고문실이네,
여기서는 수많은 한숨을 헤아릴 수 있네,
비탄의 증거로서

(중략)

너희 무뢰한들, 사탄의 자식들,
지옥의 악령들아,
너희는 가난한 사람들의 전재산을 삼키고 있다.
그 대가로 저주가 너희에게 돌아가리라.


브레히트는 1943년 망명지인 미국에서 <민주적인 판사Der democratische Richter>라는 시를 썼다.

  미합중국의 시민이 되려고 노력하는
  사람들을 심사하는 로스엔젤레스의 판사 앞에
  이탈리아의 식당 주인도 왔다. 진지하게 준비해 왔지만
  유감스럽게도 새 언어를 모르는 장애 때문에 시험에서
  보칙 제8조의 의미를 묻는 질문을 받고
  머뭇거리다가 1492년이라고 대답했다.
  시민권 신청자에게는 국어에 대한 지식이 법으로 규정되어 있으므로
  그의 신청은 각하되었다. 3개월 뒤에
  더 공부를 해가지고 다시 왔으나
  물론 새 언어를 모르는 장애는 여전했다.
  이번에는 남북전쟁에서 승리한 장군이 누구였는가 하는
  질문이 주어졌는데, (큰 소리로 상냥하게 나온) 그의 대답은
  1492년이었다. 다시 각하되어
  세번째로 다시 왔을 때, 대통령은 몇 년마다 뽑느냐는
  세번째 질문에 대하여 그는
  또 1492년이라고 대답했다. 이번에는
  판사도 그가 마음에 들었고 그가 새 언어를
  배울 수 없음을 알아 차렸다. 그가 어떻게 살아가는지 조회해 본 결과
  노동을 하면서 어렵게 살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그가 네 번째로 나타났을 때 판사는 그에게
  언제
  아메리카가 발견되었느냐고 물었다. 그리하여, 1492년이라는 그의 정확한 대답을 근거로    하여
  그는 마침내 시민권을 획득하였다.  

    
브레히트가 바이마르 헌법을 비꼰 수십년 뒤 현대 서독의 페터 한트케Peter Handke(1942-)는 <법률의 3독회>라는 시를 썼다. 이 시는 헌법의 인권 조항에 대한 심의 과정을 그대로 옮긴 것인데 그것들이 완전한 형태로 읽힌 처음에는 중간중간에 박수소리, 차츰 인권에 제한이 가해지면서 다음에는 박수소리에 야유와 고함이 더해지다가 마침내 인권을 철저히 제한하는 법으로 제정되는 것을 시로 읊은 것이다.

예컨대 노동에 대한 조항은 다음과 같이 변한다. 처음에 <국민이 노동에 대한 권리를 가진다>라고 말할 때는 박수 소리뿐이다. 그러나 다음에 그 노동이 <사회적 필요에 부응하는 노동>으로 바뀌자 웅성거리는 소리와 박수소리가 들리고, 마지막에는 <특히 일반의 경제적, 윤리적 원칙에 상응하는 노동>으로 법이 만들어지고 더 이상 아무 소리도 없어진다.  
나아가 P. P. 차알Peter Paul Zahl(1944-)은 <국민의 이름으로>라는 제목으로 자신이 받은 재판을 부정한다. 그는 1970년 정치적 문서의 인쇄로 실형을 선고 받고 도피하다가 체포되어 1974년 제1심 재판에서 4년형, 1976년 항소심에서 15년 형을 받았다. 그런 이야기를 쓴 뒤 마지막 두 연에서 그는 다음과 같이 노래한다.

나는 생각한다
그것은
국민들이 자기네들끼리
결정할 문제라고

그리고 나를 거기서
제외시켰으면 좋겠다.


『갈릴레오』

브레히트는 많은 재판극을 썼다. 그는 1930년 초부터 재판들을 무대에 올리는 일에만 전념했다. <예를 들어 우리는 소크라테스의 재판이나 마녀 재판, 칼 마르크스의 <신라인 신문>에 대한 재판, 또 방독면을 쓴 예수를 만화로 그려 불경죄로 기소된 그로츠의 재판 등을 공연할 수 있다.>(각주: Martin Esslin, Brecht:A Choice of Evils, p. 53)  

당시 그는 노동자들이 참여하는 실험극을 구상했으나 그후에는 정의와 법을 조롱하는 냉소적인 재판극인 『갈릴레오Galileo』(1938년), 『세추안의 선인Der Gute Mensch von Setzuan』(1941년), 『코카시아의 백묵 원Der Kaukasische Kreidekreis』(1945년)등을 썼다. 어느 경우에나 부정과 부패가 승리한다. 군국주의와 파시즘이 휩쓸고 있는 시대에서 브레히트는 정의란 이룰 수 없는 것이었고, 재판은 하나의 웃음거리였다. 법정에 대한 그의 악몽은 1947년 워싱턴의 맥카시 선풍시에 현실로 나타났다.

『갈릴레오』가 탈고된 1938년은 유럽, 특히 독일에서는 가장 어두운 해였다. 브레히트는 어려운 시대를 살아남기 위해 갈릴레오를 내세웠다. 갈릴레오는 당연히 실존한 갈릴레오 갈릴레이Galileo Galilei(1564-1642)의 이야기이다. 그는 당대 최고의 학자였으나 가난하기 짝이 없었다. 그래서 부업에 의존해야 했다. 부업에 의존하지 않고도 연구하도록 월급의 인상을 요구하지만 대학측은 대신 연구의 자유가 주어져 있다고 반박했다. 갈렐레오는 자유는 없어도 연구가 가능한 플로렌스로 갔다. 동시에 그 이주는 종교법원의 세력권으로 들어가 그 권위와의 대결에서 진리를 증명하고 관철하고자 한 것이었다.  

첫 무대 제1장은 그의 연구실이다. 갈릴레오는 윗몸을 드러내고 아침 세수를 한다. 브레히트는 갈릴레오를 창백한 학자가 아니라 활력에 넘치고 유머가 풍부한 인간으로 묘사한다. 그리고 그는 소수를 위해서가 아니라 만인을 위한 학문, 또한 구체적인 데에서 추상적인 것에로 나아가는 학문을 추구한다. 동시에 그는 모순투성이이다. <진리를 알지 못하는 자는 단순히 바보일 뿐이다. 하지만 진리를 알고도 그것을 거짓이라고 하는 자는 범죄자이다>라고 말했으면서도 종교재판에서 지동설을 철회했다.    

이어 제2장에서 갈리레오는 국가 관료들 앞에서 자신이 새로 발명한 망원경을 자랑한다. 그리고 제3, 4장은 그의 천문학 연구를 보여주고, 제5장에서 그의 지동설이 문제되고, 제6-10장에서 논쟁은 계속된다.  제11에서 종교법원이 등장한다. 제12장에서 갈릴레오가 자신의 학설을 취소하고, 제13-14장은 그의 만년과 결말을 보여준다. 브레히트는 제14장에서 갈릴레오의 학문 연구는 인간 존재의 고통을 경감시켜 주는 데 있다고 말한다.

학문의 유일한 목표는 인간 현존의 노고를 덜어주는 데에 있다고 나는 생각하네. 만약 과학자들이 이기적 권력자 앞에서 위축되어 오로지 지식을 위한 지식을 쌓는 데 만족한다면, 학문은 절름발이가 되고 말테고, 자네들이 만든 새로운 기계들도 단지 새로운 액물일 따름이네. 자네들은 시간이 감에 따라 발견 가능 모든 것을 발견해 낼 수 있겠지만, 자네들의 진보는 인류로부터 떨어져 나가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 될 걸세. 자네들과 인류 사이의 틈은 언젠가는 너무나 엄청나게 벌어져서 어떤 새로운 것을 획득한 데 대한 자네들의 기쁨의 환성이 인류 전체 경악의 함성으로 응답될 수도 있을 거란 말이네. - 과학자로서 나는 유일무이한 기회를 가졌었지. 나의 시대에 천문학이 시정의 광장에까지 퍼져 나갔네. 이런 비상한 상황에서라면 한 장부의 의연함이 커다란 격동을 불러 일으킬 수도 있었을 걸세. 내가 만약 저항을 했더라면, 자연과학자들도 의사들의 히포크라테스 선서 같은 것을 발전시킬 수 있었을 테지. - 자신들의 지식을 오로지 인류의 복지를 위해서만 적용한다는 맹세 말일세! 사정이 이러하니, 우리가 기대할 수 있는 것은 기껏해야 무슨 일에든 고용될 수 있는, 발명에 재간을 지닌 난쟁이 들 족속뿐이라네. 게다가 분명코 나는 한 번도 진정한 위험에는 들어서지 않았었네, 사르티. 몇 해 동안 나는 상부 당국 못지 않게 막강했지. 그리고 결국 나는 내 지식을 권력자들에게 양도했네. 완전히 그들의 목적에 맞게끔, 그 지식을 사용하든 말든, 또는 잘못 사용하라고 말일세. … 나는 내 천직을 배반했네. 나와 같은 행위를 하는 인간은 학문 대열에서는 용납될 수 없어.
(각주: 차경아 역, 갈릴레오 갈릴레이, 두레, 1989, 155쪽)


1992년 10월, 로마 교황 바오르 2세는 360여년 전 로마 교황청이 갈레레오에게 내린 선고는 발못이었다고 인정했다. 바로 1633년 70세의 피고인이 오늘날 누구나 아는 <지구가 태양 주의를 돈다>는 이론을 부인하라는 강요와, 죽을 때까지 집밖을 나가서는 안 된다고 하는 금족력을 받았다. 그리고 8년 뒤병들고 눈이 먼 그는 죽었다.

당시 교황청의 종교재판은 전체주의식 국가식 재판이었다. 피고인은 묻는 말에만 대답할 뿐 반론을 제기할 수 없었다. 사건의 개요도, 무슨 일로 기소되었는지도, 또 어떤 일이 논의되고 있는지도 몰랐다. 그러나 갈레레오는 당시 최고의 대학자였으므로 재판관들은 매우 신중하게 대처했다. 갈릴레오는 굴욕적인 서약을 했으나, 그 자신은 물론 교회도 그 서약이 거짓이라는 것을 알았다.

당시의 성격은 절대적이었고 교회는 이를 맹신했다. 특히 당시에는 종교개혁에 의해 30년전쟁이 벌어지고 있어서 그 존립을 크게 위협당한 교회로서는 갈릴레오에 단호하게 대처해야 했다. 그후 360년간 교회는 갈릴레오를 부정했으나, 갈릴레오의 선배인 코페르니쿠스와 동향이었던 바오르 2세에 의해서야 그의 명예는 회복되었다.

그러나 현대에도 갈릴레오식 재판은 이어졌다. 바로 오펜하이머Jacob Robert Oppenheimer(1904-67)의 재판이 그것이었다. <원자탄의 아버지>로 불려진 그는 기술적 및 도덕적인 이유로 수소탄 제조에 반대하여 심문을 받았고 모든 국가기밀 취급을 금지당했다(각주: 오펜하이머 재판은 하이너 키퍼하르트Heinar Kipphardt에 의해 연극 『오펜하이머의 경우In der Sache J. Robert Oppenheimer』(1964년)로 꾸며졌다). 당시 아인슈타인도 간디적인 의미의 협조 거부가 유일한 대응책이고 모든 지성인은 그런 투옥될 각오로 살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브레히트도 오펜하이머 재판을 갈릴레오 재판의 현대판으로 보고, 원자력의 위험으로부터 인류를 보호하고 세계 평화를 유지하기 위해 범세계적인 개몽운동을 벌여 원자력의 위험성에 대한 무지를 타파하자고 주장했다.

『코카시아의 백묵 원』

브레히트의 최고 걸작이라고 하는 『코카시아의 백묵 원』을 살펴보자. 구조로는 극중극이라고 하는 양식으로서 브레히트의 <소외verfremdung 효과>라고 하는 연극 이론에 알맞는 것이다. <소외>란 <낮설게 하기>라는 뜻으로 관객들을 지금까지 익숙해져 온 것에서 <낮설게> 만들어 새롭게 보게 한다는 것이다.

『코카시아의 백묵 원』(1944년)은 솔로몬의 재판과 중국의 고대재판 등에서 소재를 구한 <나은 정 대 기른 정>의 재판을 다룬 희곡이다. 그러나 솔로몬처럼 현명하지 않은 엉터리 건달인 판사는 법정에 백묵으로 원을 그리고 아이를 가운데 서게 하고 친모와 양모에게 아이의 팔을 한쪽씩 당겨 아이를 끌어내게 한다. 1, 2차전에서 친모가 힘으로 이겼으나 판사는 아이가 다칠까봐 겁을 낸 양모를 어머니로 판결한다.

무대는 제2차 대전으로 폐허가 된 코카서스의 마을. 두 개의 단체에 이 마을에 정착하고자 하나 각각 희망이 다르다. 하나는 낙농업, 다른 하나는 포도 재배를 하고자 한다. 결국 후자로 결정이 되는데 그것과 관련된 극을 상연하겠다고 해설자가 말한다. 그래서 극중극이 시작된다.

극중극의 무대도 코카서스이나 시대는 몇 년전이다. 부활절에 왕자가 총독을 체포하여 여주인공 그루세는 총독의 아들을 맡게된다. 그루세는 추격하는 군인들을 피해 아이를 데리고 산속으로 들어간다. 결국 군인들에게 발견되어 그루세는 아이를 농부의 아내에게 맡긴다. 그러나 농부의 아내가 아이의 신분을 폭로하여 그루세는 다시 아이를 데리고 오빠 집으로 도망간다. 아이에 대한 그루세의 정성은 해설자에 의해 대단한 것으로 설명된다.

장면은 다시 처음의 부활절로 바뀐다. 아츠닥이 판사가 된 사연이 소개된다. 그는 부자들이 주는 뇌물을 기꺼이 받고 멋대로 재판하는 자이나 사회의 희생자 편에서 판결을 내린다는 원칙에 충실하다. 과거의 총독이 다시 정권을 장악하여 그 아내는 자신의 아들을 찾고자 한다. 그래서 위에서 이미 본 재판이 행해진다. 브레히트의 정의란 희생자의 편이다.

현행법의 위반자로서의 아츠닥은 갈릴레오와 비교된다. <갈릴레오는 획기적인 학문적 업적을 이룩하고 사회를 배반했다. 아츠닥은 현행법을 이기적으로 오용하며 법률을 위반함으로써 법을 세우고 현행법을 불법으로 입증함으로써 사회에 기여했다.>(각주: 이원양, 위의 책, 149쪽, 재인용). 그러나 브레히트는 정의 실현을 위한 현행법 위반에 대해서는 부정적이다.

예를 들면 정의의 실현을 위해서는 통용되는 법률을 위반해야 된다는 식으로 제시해서는 안된다는 것을 나는 알았다. 그보다는 태만하고 무식한, 즉 엉터리와 같은 판결 행위에서 실제로 법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을 위한 어떤 것이 발견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 주어야만 되었다. 그래서 아츠닥은 이기적이며 비도덕적이며 기생충과 같은 특성을 가져야 되었고 모든 재판관들 중에서 가장 저열하고 몰락한 재판관이어야 되었다.
(각주: 이원양, 149쪽 재인용)

      

2. 뒤렌마트

프리드리히 뒤렌마트Friedrich Dürrenmatt(1921-90)는 스위스 출신의 극작가이자 소설가로서 『판사와 형리Der Richter und sein Henker』(1952년) 등의 추리소설을 통하여 카프카적인 죄의 문제를 추적해 왔다. 또한 『미시시피씨의 결혼Die Ehe des Herrn Mississipi』(1950년)에서 사회적 정의를 추구하는데 검사 미시시피가 불충실한 부인을 사적으로 처형한 것으로 그것을 보여준다. 그리고 방송극  『분신Der Doppelgänger』(1946년)에서는 잠자는 남자에게 나타나 그가 사형선고를 받았다고 말하는 분신의 살인자와 그 희생자가 이야기를 이끈다. 『당나귀 그림자 소송Der Prozess um des Esels Schatten』(1951년)에서는 정의의 파라독스와 우스꽝스러운 재판을 보여주고 파멸을 이끌어간다. 『고장Der Panne』(1956년)에서 트랍스가 경쟁자인 지갹스를 살해했다는 검사의 비난에 그는 <사업은 사업이다>라고 답하며, 이에 검사는 <살인은 살인이다>라고 반박한다. 사형 선고를 받은 트랍스가 고문 기구와 단두대를 바라보고 두려워하면서도 다음날 아침에는 건강하게 무시무시한 꿈에서 깨어나, 건강하게 다시 사업을 쫓아 줄달음친다(각주: 이상의 작품 번역은 이인웅 역, 고장, 뒤런마트 방송극집, 분도출판사, 1978; 기타의 작품 번역은 장지연 역, 뒤렌마트 드라마선집, 미크로, 1995 참조).

뒤렌마트의 마지막 작품인 『법Justiz』(1985년)(각주: 김인순 역, 민음사, 1996)은 어처구니없는 한 살인사건을 통하여 법과 정의를 고찰한다. 노련한 변호사이면서 주의 참의원인 이자크 콜러는 세상이 다 아는 살인범인데도 법의 허점을 이용하여 무죄 판결을 받고, 대신 무고한 사람이 살인범으로 몰려 죽임을 당한다. 젊은 변호사 팰릭스 슈패트는 콜러를 처형해야 추락한 정의를 다시 세울 수 있다고 믿는다. 그러나 그의 노력은 동 키호테처럼 어리석다.  

3. 키파르트

키파르트Heiner Kipphardt(1922-)의 『J. 로버트 오펜하이머 사건에서』(1964년)는 맥카시 선풍의 마지막 사건이었던 1954년의 핵물리학자 오펜하이머 청문회 사건을 다룬 것이다. 이 사건은 원폭 이후 도덕적 가책에 시달리게 된 오펜하이머가 수소폭탄 개발을 거부한 데서 비롯되었다. 극의 비판 대상은 <자유>를 빙자하여 <자유라는 것이 하나도 남아 있지 않을 때까지 자유의 값을 요구하는> 정치적인 보수주의이다. 그것이야말로 민주주의의 토대를 무너뜨리는 원흉임을, 보안 요원을 지낸 증인 렌즈데일을 통하여 역설한다.

나는, 현재 성행하고 있는 공산주의자들에 대한 히스테리가 우리의 공동생활과 민주주의 형태를 위해 위험스러운 것이라는 의견입니다. 합법적인 기준이 있어야 할 자리에 공포와 역선전이 들어서 있습니다.
(각주: J. 로버트 오펜하이머 사건에서, 차경아 역, 위의 책, 295쪽)


청문회는 재판처럼 진행되었으나 진짜 재판은 아니었다. 많은 사람들이 증인으로 등장했다. 조사위원회는 오펜하이머의 <비밀 문서 접근 재허가>를 거부하기로 결정했다. 이것으로 그의 충성심이 부정되었다. 아인슈타인은 이런 상황에서라면 <함석장이와 행상인이 되겠다>는 비관적인 글을 발표했다. 오펜하이머는 1963년 케네디 대통령 시절에 와서야 그 명예가 회복되었다.  

4. 포

이탈리아의 극작가 다리오 포Dario Fo가 1997년 노벨문학상을 받았다. 사회주의 작가였던 탓인지 우리 나라에서는 예년과는 달리 야단법석을 떨지 않고 상당히 간략하게 소개되었을뿐만 아니라 이탈리아에서는 교황청을 비롯하여 그의 수상을 유감으로 보는 입장이 많았음이 보도되기도 했다. 왜 그런 기사만 나는 지 모르겠으나 그가 그동안 유럽을 비롯한 세계 문단에서 받은 평가는 정말 대단했고 특히 이번 수상은 그동안 보수적이었던 노벨문학상(아니 사실은 노벨상 전체가 그렇지만) 수상 경향에 제동을 건 쾌거로 환영되었다. 심지어 한두명의 보수적인 노벨상 수상작가는 그의 수상에 유감을 표시했다는 것이 우리 언론에 보도되기도 했으나 그는 이미 2, 30 년전부터 노벨상 후보에 올랐었다. 그런데 그가 우리 나라 사람이었다면 노벨상 수상은커녕 작품 발표조차 어려웠고 감옥에 갔을 것이라는 야릇한 논평 기사가 나기도 했다.

다리오 포는 이미 이탈리아 ‘국민작가’(우리 식의 말이다)의 지위에 있을뿐만 아니라 범세계적으로 민중연극을 이끈 최고봉이다. 이탈리아나 서구의 문학은 우리 나라의 경향과는 달리 대체로 민중지향적, 사회지향적이라는 점이 제대로 검토될 필요가 있다. 문학만이 아니라 예술, 문화 전반이 사실 그러하다는 점이 우리의 경우 흔히 무시된다. 가장 대중적이라고 할 수 있는 영화나 음악도 예외가 아니다. 영화의 경우 우리는 감미로운 <로미오와 줄리엣>의 프랑코 제피렐리만 이탈리아 영화감독으로 알고 있으나 사실 그는 지극히 예외적인 사람이고 나머지 대부분의 감독들은 사회주의자들이다. 현대 이탈리아 음악가나 미술가도 마찬가지이고 우리가 잘아는 베네통조차 사회주의자이다. 그러나 우리는 그런 서구의 민중지향적 현대문화를 거의 모른 채 그들의 화려한 과거문화에만 젖어 있거나 일부 대중문화에만 탐닉하여 유감이다.

여하튼 포의 대표작 『어느 아나키스트의 우연한 죽음』(1970년)은 당시 진행된 재판을 풍자한 것이었다. 실제 사건에서 주인공은 자살했다고 발표되었으나 포는 연극에서 경찰에 의한 타살로 만들었다. 극의 중심 인물인 미치광이 어릿광대가 고등법원 판사를 가장해서 국가의 정보 통제를 조소한다. 그는 국가에게 불리한 증언을 하도록 하는 <기록 광대>의 상징이다. 변장한 이 광대는 경찰관들이 아나키스트를 살해했다는 고소를 반박하는 알리바이를 조작하도록 부추긴다. 이를 통해 포는 국가 자체가 국가의 권력 남용적 구조를 영구히 하기 위해 일련의 조작, 은폐, 속임수를 요구하고 있음을 암시한다. 연극 제1막은 아나키스트들이 즐겨 부르는 다음 노래를 경찰들이 부르는 것으로 끝난다.  

   세상 전부가 우리의 고향.
   우리의 법은 자유
   우리의 사상에 의하여
   우리의 이 세상은 마침내 자유롭게 되리.

* 민주법연님에 의해서 게시물 복사되었습니다 (2006-07-11 03: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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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제3편 법과 문학 / 제1장 고대 문학 / 1. 호머, 아이스킬로스, 소포클레스, 2. 플라톤 민주법연 2004.10.01 24708
12 제2편 법과 영화 / 제2장 행형 영화와 역사 재판 영화/ 2. 역사 재판 영화 15편 민주법연 2004.09.25 26402
11 제2편 법과 영화 / 제2장 행형 영화와 역사 재판 영화/1. 행형 영화 15편 민주법연 2004.09.21 21412
10 제2편 법과 영화 / 제1장 재판영화 / 2. 추리적 재판 영화 20편 민주법연 2004.09.18 23357
9 제2편 법과 영화 / 제1장 재판영화 / 1. 사회파 재판 영화 35편 (3) 민주법연 2004.09.10 27331
8 제2편 법과 영화 / 제1장 재판영화 / 1. 사회파 재판 영화 35편 (2) 민주법연 2004.07.29 23685
7 제2편 법과 영화 / 제1장 재판영화 / 1. 사회파 재판 영화 35편 (1) 민주법연 2004.07.06 22869
6 제1편 법과 예술 / 3. <법과 예술>의 어두운 관계 민주법연 2004.07.02 25097
5 제1편 법과 예술 / 2. 왜 <법과 예술>인가? 민주법연 2004.06.22 20450
4 제1편 법과 예술 / 1. 법, 법률가, 법학 그리고 예술 민주법연 2004.06.18 23944
3 머리말 민주법연 2004.06.11 19146
2 법과 예술 차례 민주법연 2004.06.11 20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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