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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수 193
조회 수 : 97
2016.11.22 (16:16:35)

힘없는 자들의 힘-촛불을 보며

<칼럼> 이재승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촛불은 바람 불면 꺼진다. 춘천의 국회의원이 자신의 소망을 말했다. 지금의 정국에서 각자 자신의 소망을 말할 자유를 누가 탓하겠는가! 4주째 맞이한 토요일은 국민 분노의 날이다. 박근혜 대통령 게이트 이후 대통령의 거취를 포함하여 향후 정치적 방향을 놓고 어디서나 사람들은 의견을 좁히고 있다. 나도 지난 대통령 선거에서 이명박-박근혜를 연속으로 투표했을 법한 사람들과 정치 얘기를 나눠 보았다. 박 대통령이 선선히 물러났으면 하고 바라는 분위기를 온 누리에서 느낀다. 새누리당도 어느 정도는 이런 분위기에 감염되어 있는 것도 같다. 사실 박근혜를 지지했던 사람들이 전환국면에서 모종의 역할을 할 때에만 ‘질서있는’퇴진도 가능할 것이다. 또 그래야만 이들도 민주공화국의 시민으로서 명예를 회복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박대통령 측근 중에는 그렇게 강단 있는 사람도 드문 것 같고 또 그가 남의 말을 도통 듣지 않는다고 하니 선선히 물러나기는 애시 당초 틀린 일이다.

다행히 11월 20일 검찰은 국정농단 사건의 중간수사결과 발표문에서 분명하게 대통령을 최순실, 안종범과 공범관계로 규정하였다. 그리하여 검찰은 특별검사의 지명 전에 나름의 체면치레를 하였고 적시에 국회에게 탄핵 개시신호를 보냈다. 오후에 검찰의 발표에 대한 청와대의 격렬한 거부반응에서 특별검사 지명을 지연시키고 또 거기에 엉겨 붙어서 대선의 혼돈 속에 사태를 얼렁뚱땅 미루려는 계책이 작동하고 있음을 느낀다. 그러나 탄핵이라는 대세는 이미 결정된 것 같다. 대통령은 제2차 촛불집회 후 기자회견에서 스스로 수사에 성실히 임하겠다고 말해놓고 약속을 깼기 때문이다. 나아가 대통령의 여죄가 봇물 터지듯 속속 드러나고 있기 때문이다. 더구나 이런 식으로 흐지부지한 상태라면 새누리당 대선후보는 다가올 선거에서 백전백패할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현재의 사태가 대통령의 경미한 비행이라면 클린턴의 스캔들처럼 온 국민이 그저 가십거리로 소비하면 될 일이다. 그러나 근 한 달 동안 매체를 통해 보았듯이 그 사태는 특정한 분야의 사소한 비리가 아니라 공동집권자의 전방위적인 농간이었다. 고전적으로 말하면 현재의 집권세력은 국민이 저항권을 행사할 수 있는 모든 요건을 완전히 충족시켰다. 최후수단을 행사하기 전에 제도권의 자체시정 기회가 있기 때문에 국민은 잠시 기다리는 중이다. 그런 면에서 보자면 박 대통령은 박정희 전 대통령의 나쁜 통치유산의 상속자이자, 그 자신이 유신체제의 유산 중에서 최대의 실패작이다. 박 대통령은 아버지의 불행한 죽음을 정신적으로 극복하기 위하여 이를 악물고 임기를 채울 심산인지 모르겠다. 그런데 시대의 정치는 구중궁궐에서 귀 닫고 있으면 지나가는 구름이 아니다.

몽테스키외는 <법의 정신>에서 흥미로운 말을 했다. 공화정에는 덕성이, 군주정에는 명예가, 전제정에는 공포가 있어야 각기 유지될 수 있다는 것이다. 즉 공화정에 시민의 덕성이 없으면 공화정이 아니고, 군주정에서 군주의 명예가 없으면 군주정이 아니고, 전제정에 공포가 없으면 더 이상 전제정이 아니다. 박근혜와 그 도당들에게는 명예도 없고, 그래서 국민에게 공포를 주지도 못한다. 현재 촛불을 든 국민의 덕성만이 전제정을 민주공화국으로 변화시키고 있다. 정치의 아우라와 신비가 존재하지 않는 곳에서는 통치는 불가능하다. 박 대통령의 통치기반은 이미 무너졌다. 통치기반이 무너졌다기보다는 완전히 사라졌다. 그래도 버티는 행동은 자신을 그래도 지지하는 마지막 5프로의 국민의 완전한 계몽을 위한 자기희생이라고 부를 수 있겠다.

한국사회의 정치기득권층은 이렇게 권력과 권위의 환상을 관리하는 데에 처절하게 실패한 박근혜 대통령을 결코 용서하지 않을 것이다. 박 대통령으로 인하여 정치 업종 전체가 거부당하게 생겼기 때문이다. 개별정치를 버리고 총정치를 지키기 위함이다. 촛불집회는 박 대통령을 하야시키는 범위 안에서 지속될 수 있을 것이다. 솔직히 말해서 서민대중들이 IMF 구제금융에 입각한 구조조정정책 이후에 지난 20년의 삶에서 어떤 질적인 차이를 느낄지 의문이다. 인간적 신자유주의와 폭주 신자유주의가 차이라면 차이다. 정치계급은 서둘러 박근혜와 최순실을 기성제도권의 정치경제적 실패와 무능함에 대한 과녁으로 삼을 것이다. 그런 까닭에 정치기득권을 수호하기 위하여 박 대통령에 대한 탄핵은 속히 진행될 가능성이 높다. 탄핵을 거부하거나 미룬 세력을 포함하여 제도정치권 전반에 대한 국민의 역풍을 예상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박근혜 대통령과 최씨 일가의 제거만이 촛불의 목표인지 확신할 수 없다. 이 시대의 불만을 박근혜와 최순실에게 모조리 투사하는 것은 아닌지 우려된다. 우리의 촛불은 황당 개그 같은 두 사람의 정치에 대한 반응으로 머물러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4년간 벌어진 두 사람의 자전이 아니라 지난 20년간 지속되어온 신자유주의의 공전을 바꾸어야 하기 때문이다. 신자유주의적이고 특권적인 과두파들에 대하여 힘없는 자들의 힘으로서 촛불이 더욱 세차게 타올라야 한다. 솔직히 말해서 이명박, 박근혜 같은 인물만 대통령이 안 되면 그나마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러한 사태인식으로는 불행의 속도를 늦추는 것이 가능할지 몰라도 불행으로 가는 경로를 바꿀 수 없다. 이명박이 없어지니 박근혜가 그 자리를 채웠고, 박근혜가 없어지면 신자유주의적 관리자가 그 자리를 다시 차지할 것이다. 촛불은 신자유주의에 대해 파산을 선고하고 대안을 끈질기게 만들어가는 정치집단을 주류로 만들어야 한다.

어쨌든 광장에서 시민들이 촛불을 들면서 주권정치의 공간이 열렸다. 날이면 날마다 열리는 것이 아니다. 조선일보가 생존을 위해서 또는 자신의 권력을 증명하기 위해서 단초를 만들었는지 모른다. 손석희 사장의 진정성이 그 폭발력을 더 키웠음이 분명하다. 그러나 촛불이 촛농을 남기듯이 분출하는 시민의 분노가 더욱 큰 힘을 발휘하여 정의로운 제도를 수확해야 한다. 힘없는 자들의 힘은 이제 승리를 눈앞에 두고 있다. 그러나 정치계급들은 우리의 승리를 가로채갈 기회를 노린다. 그래도 우선 이겨야 하기에 촛불을 들면서 재미있는 가상적 역사를 떠올린다. 영국군대가 제2차 세계대전 후 인도에서 철수하게 된 진짜 이유는 무엇인가? 간디의 비폭력 평화주의에 감동해서 자제력을 발휘한 것인가, 아니면 독립을 위해 군대를 조직하려는 인도인들을 상대로 전쟁을 수행할 여력이 없어서인가? 어쨌든 힘없는 자들의 무기는 평화와 동지애이고, 그 힘의 원천은 광장에 모이는 압도적인 수의 사람들이다. 힘없는 자들의 힘은 원래 힘없는 자들 그 자신이기 때문이다.

촛불은 축제라고 말한다. 축제라면 축제이고, 전쟁이라면 전쟁이다. 촛불시민은 이미 주권자의 위용을 갖추며 덕성과 명예를 회복하고, 권력으로부터 마지막 공포도 되찾아오고 있다. 권력은 국민에게 있고, 권력자들은 국민의 도구에 지나지 않는다. 헌법은 이러한 도구들을 배치하고 관리하기 위한 규칙이고, 결국 주권자인 국민이 헌법을 처분할 수 있다. 현재 청와대와 대통령이 헌법에 집착하는 것은 편리한 규범숭배다. 여태껏 헌법질서를 유린하고, 또 바로 얼마 전에 헌법개정을 제안하고서는 어디서 중단 없는 헌법질서를 말하는지 도무지 두서가 없다. 우선 박 대통령을 헌법질서에서 떼어내고 빨리 역사의 새로운 경로를 만들어야 한다.

무력한 자의 힘은 광장에서 나온다. 궁극적으로 해결해야할 문제를 제도권이 해결하지 못한다면 로크가 함축적으로 말한 “하늘에 대한 호소”를 통해 판을 바꾸는 것이 국민에게 남아있다. 정치계급들은 정파에 따라 촛불의 힘을 다각도로 끌어다 붙인다. 물들어올 때 노를 젓고, 볕이 들 때 옷 말리는 것이 당연하다. 그러나 항상 물이 들어오고, 볕이 들지는 않는다. 물과 볕이 들어왔는데도 제대로 사태를 처리하지 못한다면 힘없는 자들의 힘은 자신들의 경로를 새로이 만든다.

* <힘없는 자의 힘(영역판, The Power of the powerless, Routledge, 1985)>은 철권통치에 저항했던 바슬라프 하벨이 쓴 긴 글이다. 그는 간디의 논리로 결국 혁명에 성공하였다.


* 이 칼럼은 통일뉴스에 실린 칼럼입니다.

 http://www.tongil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1188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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