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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수 194
조회 수 : 134
2019.02.21 (21:17:09)

대전충남인권연대 홈페이지에 실린 글입니다.

출처: http://www.dchr.or.kr/bbs/board.php?bo_table=allhumanright&wr_id=155

 

 

 

김경수 판결, 무엇이 문제인가? 

 

김종서(배재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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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수 경남지사에 대한 1심 판결에 여당이 거세게 반발하고 있는 상황에서 김명수 대법원장은 기자들의 질문에 “판결의 내용이나 결과에 관해 국민께서 비판하는 것은 허용돼야 하고 바람직할 수도 있다”고 답했다. 그러나 “도를 넘어서 표현이 과도하다거나, 재판을 한 개개의 법관에 대한 공격으로 나아가는 것은 헌법상 보장된 재판 독립의 원칙이나 법치주의의 원리에 비춰 결코 적절하지 않다”고 덧붙였다. 국민이 판결의 내용이나 결과를 비판할 수는 있으나 그 비판이 도를 넘어 표현이 과도해서는 안 되며, 법관에 대한 공격으로 나아가서는 안 된다는 것이 요지다. 근거는 재판 독립의 원칙과 법치주의 원리라고 하였다.

 

판결에 대한 비판은 당연히 할 수 있는 것이지만 판결을 대상으로 하더라도 그것이 논리적이고 합리적인 비판의 수준을 넘어서는 과도한 비난 또는 비방에 이르는 것은 곤란하고, 더구나 판결 선고의 주체인 법관을 공격하는 것은 있을 수 없다는 대법원장의 이 발언은 언뜻 보면 별 문제가 없어 보이기도 하지만 잘 뜯어보면 일반국민의 생각과는 판이하게 다른 인식을 보여준다. 그것이 김명수 대법원장 한 사람만의 인식인지, 법관으로 구성된 사법부 전체를 대변하는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필자는 후자라고 생각한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그러한 인식이 일반 국민의 상식적인 판단과는 너무나 동떨어져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처럼 국민의 상식에 반하는 대법원장 또는 사법부의 인식은 매우 잘못된 것임도 부정할 수 없다. 그 이유를 따져 보자.

 

우선 대법원장의 인식 속에는 어떤 판결과 그 판결을 선고한 법관 또는 재판부가 아무런 관련이 없는 존재인 양 별개의 사항으로 그려지고 있다. 분명히 법관(단독판사)이나 재판부(합의부)가 판결을 선고했음에도 불구하고 이런 그림을 그리는 것―판결과 판결주체를 분리해서 사고하는 것―이 가능할 수 있는 이유는 법관이 판결 선고로 나아가는 과정에서 재판의 독립이나 법치주의라는 원리가 개입되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이른바 드루킹 사건에서 법관(성창호 재판부)은 판결(김경수 징역 2년 등, 법정구속)을 선고했지만 그것은 독립적인 재판의 결과인 것이고 법의 지배에 따른 것이지 판결주체의 주관적인 또는 자의적인 판단이 아니라는 것이다. 즉 대법원장이 말하고 싶은 것은 “재판을 독립적으로 해 보니 그렇게 결론이 나도록 되어 있는데 어떻게 해?” 또는 “법이 그렇게 되어 있는데 어떻게 해?”라는 것일 터이다. 판결이란 독립성이 보장된 재판의 결과이거나 국민대표가 만든 법을 해석 적용한 결과일 뿐 법관의 잘잘못의 결과가 아니라는 말이, 대법원장은 하고 싶었을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대법원장이 놓치고 있는 것, 아니 어쩌면 일부러 숨기고 있을지도 모르는 것은 재판의 독립의 실현과 법의 해석과 적용을 모두 법관이 담당한다는 것이다. 헌법 제103조는 “법관은 헌법과 법률에 의하여 그 양심에 따라 독립하여 심판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즉 1차적으로 법관을 구속하는 것은 헌법과 법률이다. 그리고 헌법과 법률을 따르는 것을 전제로 하여 다음에 등장하는 것이 법관의 양심이다. 필자는 법관은 재판을 함에 있어서 헌법과 법률을 따르는 것으로 충분하기 때문에 “그 양심에 따라”라는 부분은 없어져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지만, 현행 헌법의 규정을 존중한다고 하더라도 이 때의 양심이란 재판에 필요한 사실관계의 확정과 적용법률 및 그 범위의 선택에서 헌법과 법률의 취지와 정신에 부합하도록 해야 한다는 정도의 의미로 이해해야 한다고 본다. 그런 의미에서 볼 때 어떤 경우에도 법관이 자신의 양심을 내세워 헌법과 법률을 위반해서는 안 된다. 그런데 만약 그런 일이 현실적으로 일어났다면?

 

그런데 성창호 재판부의 김경수 판결은 바로 이런 경우, 즉 법관이 자신의 양심을 내세워 헌법과 법률을 위반한 전형적인 사례라는 것이 필자의 생각이다. 재판부는 김경수 판결에서 공직선거법과 업무방해죄를 양심에 따라 적용한 결과 그런 판결을 선고했다고 생각하거나 주장할지도 모르겠다. 대법원장의 생각도 그런 것이 아닐까 짐작한다. 그런데 성창호 재판부는 “공직선거법과 업무방해죄를 양심에 따라” 적용하는 과정에서 헌법과 법률, 특히 형사소송법을 위반했거나 최소한 무시한 것이 분명하다. 

 

우선 헌법은 신체의 자유를 보장하면서 영장주의 원칙을 채택하여 임의수사가 원칙임을, 따라서 구속 등의 강제수사는 어디까지나 예외적인 것임을 선언한다. 나아가 헌법은 “형사피고인은 유죄의 판결이 확정될 때까지는 무죄로 추정된다”고 선언하고 있다. 이는 흔히 “의심스러울 때에는 피고인의 이익으로!”라는 법언을 실정법화한 것으로 받아들여진다. 그리고 이러한 무죄추정 원칙을 구체적인 형사재판에서 구현하기 위한 하나의 방법으로 형사소송법에서는 엄격한 증거재판주의가 채택되고 있는 것이다. 즉 신체의 자유 보장, 영장주의 원칙과 예외적 강제수사, 무죄추정의 원칙과 증거재판주의 등이 법관이 형사사법절차에서 반드시 따라야 할 “헌법과 법률”인 것이다. 

 

성창호 재판부는 이러한 “헌법과 법률”을 위반한 혐의를 피하기 어렵다는 것이 필자의 생각이다. 재판부의 표현을 빌리자면 이런 혐의를 피하기 어려워 보인다. 김경수 판결에서 재판부는 “~ 보인다”라는 표현을 81번이나 사용했다는 보도도 있었지만(한겨레신문, 2019.1.31.자), 이 표현은 객관적으로 ‘그렇다’ 또는 ‘아니다’가 아니라 ‘그렇다 또는 아니라고 생각한다’는 표현의 수동태일 뿐이다. 직설적으로 말하자면 ‘그렇다고 할 증거는 없지만’이라는 말이 그 앞에 생략되어 있는 표현이다. 이는 증거재판주의의 부정을 의미한다. 

 

주지하듯이 김경수 사건에서는 뚜렷한 물증이 없었기 때문에 진술이 핵심적인 증거로 작동했다. 문제는 재판부가 공범이라고 본 김경수와 드루킹의 진술이 거의 모든 부분에서 상반되었다는 것이다. 말하자면 재판부가 유죄판단의 근거로 삼았던 드루킹 등의 진술에 대해서 김경수는 철저히 부정했던 것이다. 그러면 재판부로서는 드루킹의 진술이 왜 신빙성이 있고 김경수의 반대진술이 왜 신빙성이 없는지를 합리적 의심이 없을 정도로 밝혔어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재판부는 김경수에 대해서 유죄판결을 선고할 수는 없다. 이 재판은 무죄추정의 원칙이 지배하는 형사재판이기 때문이다. 피고인도, 특검도, 방청객도, 국민도 모두 다 아는 사실인데, 유독 이 사건을 담당한 성창호 재판부만이 이 사실을 몰랐거나 무시했다.

 

더구나 이 사건에서는 특검이 드루킹의 진술이 신빙성이 있는 반면 김경수의 진술은 그렇지 않다는 점을 합리적 의심이 없을 정도로 증명해내는데 실패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재판부는 김경수의 진술을 배척하고 드루킹의 진술을 채택하여 유죄판결을 선고하였고, 그 근거로 제시한 것이 이 판결문에 무려 81번이나 등장했다는 “~보인다” 논리였다. ‘우리 재판부는 (명확한 객관적 증거는 없지만) 김경수가 유죄라고 생각한다’는 것을 ‘김경수는 유죄로 보인다’고 해버린 것이다. 81번이나. 여기서 성창호 재판부는 특검이 너무나 하고 싶었으나―증거 부족 때문에― 차마 그리고 결국 하지 못했던 주장, 즉 ‘김경수는 유죄로 보인다’는 주장을 판결의 형식으로 대신했던 것이다. ‘판사가 검사 같다’는 이야기가 나올 수밖에 없는 대목이다(<그래도 내가 하지 않았어>(それでもボクはやってない)라는 일본의 재판영화는 형사사법절차를 실제와 거의 유사하게 재현했다는 평가를 받는 영화인데, 이 영화에 등장하는 판사는 검사조차 놀랍게 만드는 일련의 판단으로 무죄추정의 원칙과 증거재판주의를 무너뜨리고 무고한 피고인에게 유죄판결을 선고한다. 그리고 이 판사를 가리켜서 일부 등장인물이 ‘판사가 검사 같다’고 질책한다.). ‘판사가 검사 같다’는 말이 사실이라면, 그 재판에 중립이나 공정은 존재하지 않는다. 정해진 결론을 향한 마녀사냥만이 남을 뿐이다.

 

이처럼 증거재판주의가 무너지니 무죄추정의 원칙도 무너졌다. “의심스러울 때에는 피고인의 이익으로!” 판단해야 하건만 재판부는 의심스러우니 ‘재판부 뜻대로!’ 판단해 버린 것이다. 아마도 이런 판단을 두고 재판부는 ‘자유심증주의’를 떠올렸을지도 모르겠다. 그렇다면 참으로 후안무치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자유심증주의의 자유를 헌법과 법률로부터의 자유로 변질시켜버렸으니 말이다.

 

이처럼 헌법과 법률이 규정한 무죄추정의 원칙과 증거재판주의를 무시한 채 유죄판결을 선고한 것만 해도 엄청난 일인데, 성창호 재판부는 여기서 한 걸음 더 들어갔다. 현직도지사를 법정구속해 버린 것이다. 헌법이 영장주의를 통해 구속 등 강제수사를 엄격히 제한한 까닭은 강제수사의 동원이 피의자・피고인의 방어권을 치명적으로 위축시킴으로써 공정한 재판을 기대하기 어렵게 만들기 때문이다. 그래서 헌법이나 형사소송법이 인신구속의 사유를 증거인멸이나 도주의 우려가 있는 경우로 엄격히 제한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 사유가 없음에도 구속수사나 구속재판을 하게 될 경우 피의자・피고인은 그야말로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시합하는 운동선수들과 같은 신세에 처하게 될 것이다.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진행되는 운동경기가 공정한 승부를 보장하지 못하듯이, 특별한 사유가 없는데도 한쪽의 손발을 묶어놓고 진행되는 재판 역시 공정한 판결을 이끌어낼 수 없다. 

 

그런데 김경수 지사는 특검의 수사과정에서 특검이 요구하는 모든 것들을 자발적으로 제출하는 등 누구보다 성실하게 수사에 협조하였을 뿐만 아니라 구속영장이 기각된 데서도 볼 수 있듯이 도주의 우려나 증거인멸의 염려가 전혀 인정되지 않는다고 보아야 한다. 더구나 그는 불과 몇 개월 전에 주민들의 선택에 의하여 선출된 현직도시자인데, 이런 사람을 법정구속하려면 최소한 그를 지지하고 선출했던 유권자들을 설득하기에 충분하고도 납득할 만한 사유가 분명히 제시되었어야 한다. 그러나 재판부는 김경수 지사에 대한 법정구속을 판결하면서도 왜 그래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단 한마디의 언급조차도 하지 않았다. 그리 오래되지도 않은 과거에, 1심에서 징역형을 선고받았지만 현직도지사이기에 법정구속은 하지 않았던 사례(홍준표)를 대다수 국민들이 생생히 기억하고 있는 상황에서 말이다. 필자가 보기에 이것은 재판부가 유권자를, 국민을 안중에도 두지 않았다는 뜻이다. 그렇지 않고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법관이 무슨 일을 하든 아무 이유도 댈 필요가 없는 전지전능한 신인가? 

 

김경수 판결을 접하고 시민들이 분노한 것은 그 판결이 김경수 지사에게 불리했기 때문이 아니다. 그 판결 속에서, 국민은 안중에도 두지 않고, 나아가 헌법과 법률을 무시하는 법관을 보았기 때문이다. 판결의 결론에 이르는 논리적 과정에 포함된 일부 오류가 문제였다면, 국민들은 대법원장의 말처럼 판결의 내용이나 결과에 대하여 합리적으로 비판을 하는데 그쳤을 것이다. 그런데 시민들이 본 것은 다소간의 논거 부족이나 사소한 논리 비약, 다툼의 여지가 있는 부분에 대한 경솔한 판단 등이 아니라, 무죄추정과 증거재판 등 누구나 알고 있는 형사재판의 대원칙들이 사법부의 독립 또는 재판의 독립이란 이름으로, 심지어는 법치주의까지 동원된 구호 앞에서 속절없이 무너져 내리는 광경이었다.

 

헌법에 의하여 재판의 독립은 물론 엄격한 신분보장까지 받는 법관이 헌법과 법률, 나아가 주권자인 국민을 무시하는 판결을 선고한다면, 그것은 주권국민에 대한 일종의 사법쿠데타라 할 만하다. 사태가 이 지경에까지 이르렀다면 주권자인 국민은 그 법관이 선고한 판결의 내용이나 결과를 비판 또는 비평하는 데 그쳐야 하는 것이 아니라, 당연히 판결 선고의 형식을 빌려 주권자를 무시하고 헌법을 유린한 법관을 응징하는 데까지 나아가야 할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김경수 판결에 대한 국민의 “표현이 과도”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재판을 한 개개의 법관에 대한 공격”으로 나아가지 않을 수 있겠는가? 그리고 이렇게 표현이 과도하다고 해서, 재판을 한 개개의 법관에 대한 공격을 한다고 해서, 이러한 국민의 대응이 “헌법상 보장된 재판 독립의 원칙이나 법치주의의 원리에 비춰 결코 적절하지 않다”고 말할 수 있겠는가? 

 

공정한 재판을 위하여 존재하는 ‘재판 독립의 원칙’과 국가권력 행사를 틀지우기 위한 ‘법치주의의 원리’를 깬 것은 그 알량한 사법독립 뒤에 숨은 법관(들)인데, 그 법관(들)을 찾아내어 실체를 드러내고 기어이 응징하고자 하는 주권국민이 재판 독립의 원칙과 법치주의의 원리를 위협하는 것처럼 매도하는 것은 그야말로 ‘제 논에 물 대기’ 아닌가? 대통령이, 종래의 관행과 기수를 무시하고 사법개혁을 수행할 적임자로 보아 대법원장에 임명한 인물의 인식이 이 정도라면, 양승태 체제 하에서 승승장구했고 지금도 법원 곳곳의 요직을 차지하고 있는 법관들의 사고야 더 말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그야말로 ‘신성가족’이요 ‘그들만의 리그’이다.

 

이처럼 가족적으로 결합되어 자신들만의 리그를 구성하고 이를 신성시하는 집단은 어떤 합리적 비판 앞에서도 스스로 변화하지 않는 법이다. 이런 집단의 변화를 가져올 수 있는 것은 오로지 강력한 외부 충격뿐이다. 그리고 헌법에 의하여 조직된 권력집단에 대하여 그런 충격을 정당하게 가할 수 있는 것은 오직 주권국민뿐이다. 지금 국민들이 사법쿠데타를 감행한 성창호 재판부에 대하여 가하고 있는 공격은 바로 그러한 주권의 행사이며, 이에 맞서는 것은 누구든지 무엇이든지 ‘민주주의의 적’으로 규정될 수밖에 없다.

 

그런데 한 가지 규명되어야 할 것은 성창호 재판부가 도대체 왜 이런 무리수를 두었으며, 그 반향이 뻔히 예상되는 상황에서 무슨 자신감으로 이런 일을 감행할 수 있었을까 하는 점이다. 전 대법원장 양승태의 비서실에 근무했던 경험을 가진 성창호 재판장이 양승태가 구속되자 재판선고기일을 연기하고서 반격을 가한 것이라는 평가도 있지만, 그것이야 알 수 없는 일이니 여기서 필자가 가타부타 이야기할 수는 없다. 하지만 객관적 사실을 바탕으로 몇 가지 짚어볼 부분은 분명히 있다.

 

2018년 6월 5일 법학자 29명과 변호사 90명 등 법률가 119명은 사법농단을 규탄하면서 대법원정문 앞에서 노숙농성을 시작하였다. 법률가들이 법원에 항의하면서 노숙농성을 한 것은 2017년 1월 삼성 이재용 부회장에 대한 구속영장이 기각된 데 항의하면서 노숙농성을 한 후 두 번째였다. 그만큼 사법농단이라는 사안이 박근혜-최순실의 국정농단 못지않게 중대하다는 평가가 있었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이 두 번째 시국농성을 불러일으킨 것은 2017년 초부터 제기되었던 법원행정처의 법관 사찰 의혹에 대한 대법원 특별조사단의 최종조사결과 발표였다. 최종조사결과가 모든 의혹을 파헤친 것은 아니었지만, 법관 사찰 의혹이 사실임은 물론 누구도 예상치 못했던 대법원 주도의 재판거래 정황이 분명한 문서자료에 의해 드러났던 것이다. 이것이 2018년 5월 25일의 일이었다. 김명수 대법원장이 임명된 후 8개월이 지났을 때였다.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구속된 것이 2019년 1월 24일, 김경태 경남지사에 대한 유죄판결과 법정구속이 선고된 것이 1월 30일이었다. 그러니까 법관 사찰과 재판거래 등 사법농단의 상당 부분이 객관적 자료에 의하여 사실로 드러나고 그 연루자들 중 상당수의 명단이 공개된 지 8개월이 지난 시점에서 김경수 유죄판결이 선고된 것이고, 그 재판부의 재판장이 양승태 대법원장의 비서실 근무를 했으며 사법농단 사태와 완전히 무관하지는 않다는 것이 드러난 것 역시 8개월 전이었다. 이것이 핵심이다. 김명수 대법원장 임명 후 구성된 대법원 특별조사단의 최종조사결과 발표로 사법농단의 규모와 실체, 연루자들의 상당 부분이 드러났음에도 불구하고 사법농단에 관여했음이 입증되거나 그럴 것으로 의심되는 법관들이 여전히 다양한 심급에서 어쩌면 사법농단과 상당한 관련을 가지고 있을지도 모를 재판을 담당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런 일이 가능했던 이유는 어디에 있을까? 누구의 책임일까?

 

첫 번째 책임은 당연히 김명수 대법원장에게 있다. 그에게 맡겨진 사법개혁과제의 제1순위는 무엇보다도 사법농단에 대한 진상규명과 책임자 제재였다. 그러나 진상규명에 대한 대법원장의 의지는 그리 강하지 않았거나 법원 내의 지지를 받지 못했던 것으로 보이고, 그 결과 법원 내에서 사법농단에 대한 책임있는 진상규명이나 제재는 이루어지지 않았다. 어떤 법관도 사법농단 연루사실 때문에 법관직을 상실당하거나 재판에서 배제되지 않았고, 검찰 수사에 대한 법원 차원의 협력 역시 이루어지지 않았다. 영장발부율이 매우 높은 압수수색영장 신청은 유독 사법농단 사건과 관련해서는 기각되기 일쑤였고 대법원장의 직접 지휘를 받는 법원행정처의 자발적인 자료 제출 역시 제대로 이루어진 적이 없다. 사법농단에 대한 김명수 발 진상규명과 후속조치는 적어도 아직까지는 이루어진 적이 없다. 성창호 발 김경수 판결은 이런 맥락 속에서 탄생한 것이다.

 

그러나 사정이 이렇다고 해서 대법원장을 비롯한 법원의 제 식구 감싸기만을 탓할 수는 없다. 헌법이 보장하는 사법부 독립에도 불구하고, 법관의 신분에 대한 강력한 헌법적 보호에도 불구하고, 우리 헌법은 국민대표기관인 국회에게 직무집행과 관련하여 헌법이나 법률을 위반한 법관을 탄핵소추할 권한을 부여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법농단의 주역인 양승태와 그 일당들에 대한 검찰 수사와 재판은 앞으로도 상당 기간 진행되겠지만, 국회는 그런 재판 절차와 관계없이 이미 드러난 헌법 및 법률 위반 사실만을 가지고도, 그것도 재적의원 3분의1 이상의 국회의원만으로도 관련 법관들에 대한 탄핵소추를 발의할 수 있다. 게다가 재적의원 과반수의 찬성만 있으면 탄핵소추는 의결되고 법관의 권한행사는 정지되는 것이다. 많은 법률가와 시민사회단체들에서는 진작에 탄핵소추 대상 법관의 명단을 두 차례에 걸쳐 공표하고 국회에 탄핵소추를 촉구한 만큼 국회가 탄핵소추에 나설 명분도 충분하다. 그런데 정작 대법원 특별조사단의 최종조사결과 발표 후 8개월 동안 팔짱만 끼고 있던 것은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이었다. 그러던 민주당이 김경수 판결이 선고되자 화들짝 놀라면서 재판부를 공격하고 나선 것은 사태를 더욱 꼬이게 만들고 있다. 

 

적폐청산의 핵심은 인적 청산이다. 그러나 인적 청산에는 많은 정치적 부담이 따르기 때문에, 상당한 정당성이 확보되지 않고서는 쉽게 추진할 수가 없다. 그런데 사법농단이라는, 내란에 버금가는 사태의 상당 부분이 객관적으로 확인되었고(김종서, “양승태 일당을 '사법내란죄'로 고발합니다.”, 오마이뉴스, 2018.6.7.자) 그 연루자들도 상당수 드러났을 뿐 아니라, 가장 정당한 절차를 통하여 이들을 청산할 수 있는 헌법제도적 장치도 주어져 있다. 더구나 법관 탄핵 소추는 여당 단독으로도 발의할 수 있고 야당들이 이에 대해 반발하기도 쉽지 않은 상황이니, 이보다 더 좋은 인적 청산, 사법적폐 청산의 기회는 두 번 다시 올 수 없는 것이었다. 그런데도 더불어민주당은 모든 것을 그저 검찰의 사법농단 수사에 맡겨둔 채 지방선거 압승이라는 자아도취에 빠져 아무것도 하지 않음으로써 천재일우의 기회를 놓치고 만 것이다. 그런데 이제 여당 소속의 유력한 차기대권주자로 꼽히는 광역자치단체장이 유죄판결로 법정구속까지 되자 발등에 떨어진 불을 끄느라 과잉대응에 여념이 없다. 그러나 오히려 탄핵소추 발의는 여당 단독으로 하기에는 매우 모양이 좋지 않게 되어버린 상황이다. 그야말로 ‘내로남불’의 모양을 피할 수 없게 되었기 때문이다.

 

이런 난국에서 그나마 물꼬를 튼 것은 시민사회였다.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은 2018년 10월 30일 권순일 대법관 등 1차 탄핵대상자를 발표한 데 이어 2019년 1월 31일에는 윤성원 인천지방법원장(사직) 등 10명을 추가 탄핵대상자로 발표한 바 있다. 더불어민주당의 과잉행보가 오히려 탄핵소추의 진행에 어려움을 더한 측면이 없지 않지만, 민변 등 시민사회의 요구는 국회발 사법적폐 청산이 지금이라도 시작되어야 함을 알리고 있다. 

 

마지막으로 남는 것은 정부의 책임이다. 대통령과 정부로서는 헌법상 독립이 보장되어 있는 사법부의 개혁을 촉구할 수는 있겠지만 검찰의 수사를 지켜보는 것 말고는 스스로 이를 강행할 수는 없다. 그 자체가 사법독립에 대한 파괴, 권력분립의 부정으로 비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대통령과 정부의 책임이 없거나 가벼운 것이라고 할 수는 없다. 할 수 있는, 할 수 있었던 일은 분명히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간접적으로 적폐청산의 의지를 지속적으로 강하게 표출하고 그것을 꾸준히 실행하는 것이었다. 정부의 적폐청산 의지가 한 치라도 뒷걸음치거나 주춤거리는 모양을 보일 때 청산 대상이 되어야 할 개인과 집단은 오히려 똘똘 뭉쳐 강력한 저항을 모색하기 마련이다. 필자가 보기에 대통령과 정부의 적폐 청산 의지는 외교・통일・남북 문제에 있어서는 매우 강하고 충분히 의미있게 표출되고 실천되어 왔다. 그러나 노동・사회・경제의 영역에 오면 상황은 매우 다르다. 대표적인 것으로 전교조 법외노조 상태 유지, 최저임금 인상 효과의 무력화, 재판이 진행 중인 이재용 등 재벌총수들에 대한 유화적 제스처 등은 과연 이 정부가 촛불항쟁으로 탄생했음을 자임하는 정부가 맞는지를 의심케 할 정도로 적폐청산의지의 후퇴를 보여준다. 물론 문재인 정부 출범 후 단 한차례의 남북대결상황도 없었다는 것은 안보적폐의 청산에 크게 기여했다는 점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고, 그 하나만으로도 이 정부는 높이 평가되어야 한다. 그러나 남북관계의 개선만으로는 2년전 그 추웠던 겨울 거리를 가득 메웠던 촛불시민들의 요구를 반영한 ‘나라다운 나라’를 만들 수는 없음 또한 분명하다. 문제는 분명하다. 그러면 해법도 분명해야 한다. 여전히 이 정부에 대한 기대를 접지 않고 있는 그 촛불시민들은 대통령과 정부가 다시 한 번 적폐청산의 도정에 나서주기를 바란다. 그것이 사법적폐들의 재발호를 막기 위해 정부가 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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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서
546 2017-08-13
186 no image 농업노동자, 무한노동 합법 / 최홍엽
이은희
94 2017-08-03
185 no image 합리적 의심을 말살하는 검사들 / 이재승
이은희
102 2017-07-21
184 no image 투표 권유 현수막에 대한 대전 선거관리위원회의 반헌법적 해석을 규탄한다!
김종서
112 2017-05-02
183 no image 이재용 구속, 신화를 허문 촛불의 힘 / 이호중
이은희
135 2017-02-27
182 no image 삼성과 국민연금
이은희
115 2016-12-15
181 힘없는 자들의 힘-촛불을 보며 파일
이계수
180 2016-11-22
180 no image '시민 혁명'과 그 후
김종서
707 2016-11-08
179 [김종서] 박근혜 퇴진 투쟁에 부쳐 파일
최관호
209 2016-11-05
178 no image 노동법원의 필요성
이은희
195 2016-04-28
177 no image 상생발전
이은희
222 2015-11-18
176 박근혜·국정원 '불법 공화국'에서 주권을 실현할 '무기' (손석춘)
김종서
474 2015-05-24
175 no image 세월호 사건을 계기로 본 헌법학의 과제 파일
김종서
228 2015-04-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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