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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수 193
조회 수 : 638
2016.11.08 (15:35:22)

시민 혁명과 그 후

 

김종서(배재대)

 

2016115일 나는 광화문 광장에 있었다. 백남기 농민의 영결식이 있었고 박근혜 퇴진을 촉구하는 집회와 행진 그리고 문화제가 이어졌다. 광화문에만 10만에서 20만으로 추산되는 시민들이 집결했고, 전국 각지에서 수많은 집회가 열렸다. 전국적으로 30만 명 이상이 참여했다고 한다. 시민들의 구호는 어느덧 하야에서 퇴진으로 바뀌어 있었고, 박근혜의 구속’, ‘수사도 간간이 터져 나왔다.

이처럼 촛불의 열기가 점점 더 뜨거워지면서 박근혜 퇴진은 기정사실이 되고 이제 그 이후를 걱정하는 목소리가 많이 등장한다. 국정공백을 거론하면서 박근혜의 2선 후퇴와 거국중립내각 및 4월 조기대선이 제안되기도 하지만, 여전히 시민의 압도적 목소리는 즉각 퇴진임을 부정할 수 없다. 중고등학생들은 혁명을 하자고 했고, 도올 김용옥 역시 혁명으로 화답했다. 어느덧 시민들의 관심은 현 체제의 붕괴를 넘어서 새로운 체제의 수립을 향하고 있다. 이런 관점에서 박근혜 퇴진 이후를 간단히 그려 보고자 한다.

나는 지난주에 쓴 한 편의 글(“박근혜 퇴진 투쟁에 부쳐”, 대전충남인권연대 홈페이지)에서 개헌이 아니라 제헌을 하자고 주장했다. 박근혜가 위기를 회피하려는 미봉책으로 개헌을 들고 나왔었기 때문에 개헌 이야기를 잘 꺼내지 못하는 분위기가 분명히 존재한다. 그러나 우리가 단순히 박근혜(정권)의 퇴진을 요구하는 것을 넘어서 혁명 또는 그와 유사한 상황을 이야기해야 한다면 헌법의 변경 아니 새로운 헌법의 제정은 피할 수 없는 주제이다.

나는 지난 글에서 유신헌법과 군사독재의 잔재 청산이라도 시작하자고 제안했었다. 그러나 우리가 혁명을 이야기하는 이상 그것에만 머물 수는 없다. 과거의 청산과 현재의 진단 그리고 미래의 설계가 동시에 진행되지 않는 한 혁명은 한 치도 전진할 수 없을 것이다. 과거의 청산에 대해서는 유신과 군사독재의 청산을 이야기했으니 현재의 진단을 간단하게 수행해보자.

노무현 전 대통령은 임기 말 이른바 원포인트 개헌을 주장했다. 대통령 임기를 4년으로 줄이는 대신 1회 연임을 허용하자는 것이다. 이 주장은 여전히 많은 정치인들의 의중 속에 있는 것이기도 하다. 그 근거로는 흔히 국가정책의 일관성이나 국민 선택의 보장 등이 내세워지지만 그것이 간과하는 결정적인 문제는 장기집권의 위험성이다. 이승만도 박정희도 재선, 3선과 종신집권으로 나아갔던 것이다. 그런 위험이 없어졌는가? 아니라는 것을 우리는 처절하게 체험하고 있는 중이다. 그렇다면 현 체제에 대한 우리의 진단은 노무현이 제안한 것이나 박근혜가 제안하려 했던 것과는 완전히 다른 것이어야 하고, 시민들의 함성과 열기를 해치지 않는다는 조건하에서는 조심스럽지만 이러한 논의가 시작되어야 한다.

정치권의 관심대상인 만큼, 나도 대통령과 국회의원 등의 임기문제부터 시작해 보겠다. 단임제의 문제를 논하기 전에 먼저 물어야 할 것은 왜 대통령의 임기는 4년이어야 하는가?’가 아닐까? 국회의원은 왜 또 4년이어야 하는가? 너무 길지 않은가? 나는 늘 이들의 임기는 너무나 길다고 생각했다. 나 혼자만의 생각일까? 그래서 만약에 대통령제를 유지한다면 나는 2년 임기에 1회 연임을 주장하고자 한다. 물론 약간의 변형은 가능할 것이다. 예컨대, 두 번째 임기는 현직 대통령이 투표자 과반 득표에 실패할 경우에 한하여 나머지 등록후보들 간의 득표에 따라 당선인을 결정하는 방식을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이다(이 경우 12표제가 적용될 수도 있다). 이렇게 하면 우리는 장기집권의 위험을 없애면서도 임기의 장기화4년도 길다는 의미에서에 따른 중간평가의 필요성을 충족시킬 수 있을 것이다. 국회의원의 임기도 2년으로 줄이자. 도대체 4년이 왜 필요한가? 그런 사례가 없는 것도 아니다. 미국 하원이 그러니까. 지방의회의원 역시 마찬가지로 하면 된다. 하지만 지방자치단체장이나 교육감의 경우는 대통령에 준하게 될 것이다.

선거방식도 생각해 보자. 군소정당들은 비례대표 중심의 선거를 선호하는 반면 대정당들은 소선거구를 선호한다. 의원정수를 고정한 상태에서 이 둘을 섞으려고 하니까 늘 합의가 되지 않는다. 선거구 편차가 과도하다고 헌법불합치결정을 하니까 비례대표를 오히려 줄여버리는 식으로 처리되는 일이 그래서 발생한다. 이런 상황을 타개하기 위하여 나는 구성방식을 전혀 달리하는 두 개의 원을 두자고 제안한다. 즉 양원제가 하나의 대안이 될 수 있다. 하원은 의원 전원을 소선거구 지역구 선거로 선출하고, 상원은 의원 전원을 비례대표로 구성하는 것이다. 대전당과 군소정당 사이에 거대한 타협을 이루어내는 것이 필요하다. 군사쿠데타 이후 사라진 양원제를 다시 고민해 볼 필요가 있다. 아울러 최소한 비례대표로 구성되는 하나의 원은 반드시 남녀 성비 5:5로 구성할 것을 제안한다. 이 땅에 만연한 여성혐오는 어떤 형태의 민주주의제도도 불가능하게 만들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성비 5:5로 구성되는 의회제도의 창설은 한국 민주주의사에 혁명적 족적이 될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실제적인 인구 분포에 가장 부합하는 대표성을 창출한다.

또 하나 헌법재판소 문제가 있다. 도대체 선출되지 않는 9인에게 정당의 운명을 맡기고, 법률의 개폐를 결정하게 하는 것은, 그 근거를 어디에서 찾든 간에 민주주의의 핵심에 있는 의회정치를 부정하는 것임에 틀림없다. 폐지할 것인가? 반대가 더 많을 것이다. 그렇지만 현재의 시스템을 그대로 가지고 갈 수는 없다. 따라서 여러 가지 대안을 그려보아야 하고 또 그려볼 수 있다. 우선 통합진보당 해산에서 극명하게 그 문제점이 드러났듯이 정치의 핵심적 주체인 정당에 대한 해산심판 같은 것은 제도 자체를 없애는 것이 맞다. 권한쟁의 같은 경우도 굳이 헌법재판소가 담당하게 할 이유는 없어 보인다. 국회를 단원제로 유지하는 한 탄핵심판권을 헌법재판소의 권한으로 하는 것은 불가피해 보이기도 하나, 앞서 제시되었듯이 양원제가 채택되면 탄핵소추권과 탄핵심판권을 하원과 상원이 분점하는 방식으로 정할 수도 있다. 결국 남는 것은 법령이나 처분 등의 위헌 여부를 심사하는 권한이다. 일단은 법률이 아닌 것은 모두 법원에서 심사하도록 일원화하자. 결국 남는 것은 위헌법률심사인데, 나는 선거로 구성된 의회가 만든 법률의 운명을 직접적인 국민대표성을 갖고 있지 않은 헌법재판소의 결정에 맡기는 것은 민주주의 원칙과 양립하기 어렵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법률에 의한 기본권 침해가 문제될 경우 이를 무조건 배척하는 것도 적절치 않아 보인다. 이런 교착을 풀어내기 위해서는 다양한 방식을 생각해 볼 수 있다. 우선 헌법재판소의 결정에서 구속력을 제거하고 권고적 효력만 인정하는 것도 한 방법일 수 있다(구속력을 인정하면서 국회가 가중다수결로 판결을 번복할 수 있도록 할 수도 있다). 또 프랑스처럼 법률의 공포 시행 전에 그 위헌성을 심사하는 사전적 위헌심사제로 전환하는 것이나, 헌법재판을 일종의 배심제로 운영하는, 숙의민주주의와 헌법재판을 결합하는 방법도 생각해 볼 수 있다.

마지막으로 유신헌법의 잔재로서 청산의 대상이면서 시스템 변경의 핵심 내용으로 반드시 포함되어야 할 것은 헌법개정발의권의 소재이다. 군사정권은 헌법개정발의와 관련하여 세 가지를 변경하였다. 국민(국회의원선거권자 50만 명)의 발의권을 폐지하였고, 국회 소수파(재적 3분의 1)의 발의권 역시 폐지하였으며, 이와는 정반대로 대통령에게 발의권을 부여하였다. 이런 상황에서 개헌은 늘 집권세력의 의도대로 추진되고 실행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국민의 발의권은 되찾고, 대통령의 발의권은 폐지하자. 대통령의 발의권을 폐지해야 하는 이유는 그것이 엄청난 정치적 위험을 야기하기 때문이다. 1인의 독단적인 결정에 모든 국가의제가 휩쓸려 들어가는 것을 용납해서는 안 된다. 대통령제의 모국인 미국의 대통령이 헌법개정안발의권을 갖지 못하는 것은 그런 이유에서일 것이다. 국회 소수파의 발의권은 헌법개정발의의 남용을 막기 위해서 국민 발의가 허용되는 것을 전제로 채택하지 않을 수도 있다. 최소한 이 정도의 조건이 충족될 때에야 헌법 개정이 헌법개정권자인 국민에 의하여 이루어진다고 말할 수 있다.

이상과 같이 아주 간단하게 현재의 문제를 진단하고 새로운 미래를 설계하는 예를 들어보았다. 이와 관련해서 우리는 수십 수백 가지의 대안을 상상할 수 있고 그러한 상상들이 공개적인 장에서 개진되고 토론되고 채택될 수 있는 장을 만들어야 한다. 여기서 결코 부정할 수도 없고 또 우리가 결코 잊지 말아야 할 하나의 사실은 정치인이나 법률가의 상상보다 민중의 상상력이 훨씬 더 풍부하다는 것이다. 그 민중의 상상력을 동원하고 활용할 수 있는 방안을 우리는 반드시 찾아내야 한다.

115일 광화문 광장에는 수많은 깃발들이 휘날리고 있었다. 나는 그 광경에 감동을 받아서 깃발이 그렇게 아름답게 날리는 것을 본 적이 없었다고 페이스북에 표현하기도 했다. 그러데 현재의 논의와 관련해서 중요한 것은 그러한 깃발들은 모두 각각의 고유한 헌법적 비전을 상징하고 있다는 점이다. 각각의 깃발은 현재에 대한 고유한 진단을 상징하고, 미래 또는 비전에 대한 고유한 설계를 상징하고 있다. 그 깃발들이 동등한 발언권을 가지고 공적 광장(public forum)에서 자신이 상징하고 있는 진단과 설계들을 제시하고 상호 토론하도록 할 시간과 공간이 필요하다. 그것은 일종의 플랫폼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적절할지는 모르지만 사상의 자유시장이라고 할 수도 있겠다.

일반적인 상황이라면 그러한 플랫폼은 상시적으로 가동되어야 할 것이고, 충분한 논의를 위하여 최소한 1년 정도 플랫폼 논의가 무르익고 난 후에야 공식적인 헌법개정절차(발의-공고-국회의결-국민투표)에 들어가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러나 지금은 체제변경의 시기이므로 그러한 시간적 여유를 가질 수가 없다. 따라서 시민들이 요구하고 대선 후보들이 이를 받아들이는 방식물론 이를 거부하는 자는 후보자격이 박탈되어야 한다으로 일종의 사회계약을 체결할 필요가 있다. 이 사회계약의 내용은 어떤 이가 대통령이 되든 간에 대통령이 된 후 최단기간 내에 헌법제정회의계급대표와 지역대표 및 젠더대표 및 연령대표의 성격을 모두 고려해야 할 것이다를 소집하여 헌법제정과정을 진행하는 것을 그 내용으로 한다. 물론 대통령 당선자가 이 합의를 이행하지 않을 경우 당선은 무효화되어야 한다. 헌법제정회의는 1년 정도의 논의과정시민들의 폭넓은 참여와 의견 개진 및 토론을 포함해야 한다을 거친 후에 헌법제정을 이루어내고 이렇게 새로 제정된 헌법에 따른 새로운 선거를 실시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따라서 이 사회계약에 따른 대통령의 임기는 새로운 헌법에 따른 선거의 당선자가 나올 때까지로 단축될 것이다.

이것이 가능한 것은 헌법 개정이 아니라 혁명에 의한 헌법제정이기 때문이다. 요컨대 나는 국민주권과 동떨어져 있는 헌법개정절차에 따라서 이루어질 무익한 헌법 개정 논쟁에 시간과 정력을 소비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광장에서 확인된 주권자의 목소리를 담은, 그러한 권력체제와 권리체제를 갖춘 새로운 헌법을 제정하는 작업에 착수해야 한다. 그것이야말로 시민들이 요구했던 혁명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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