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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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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정당을 배제하는 정당법에 대한 헌법소원심판에서 의견서를 제출하였고 이를 수정보완하여 민주법학에 논문을 게재하기도 했지만 헌법재판소는 또다시 합헌결정을 선고했습니다. 이 결정에 대한 답이 필요한 것 같아, 시평을 통해 의견을 밝힙니다. (각주가 포함된 전문은 첨부파일을 참조하시기 바랍니다.)

 

 

정당법에 대한 헌법재판소 결정 비판

 

 

I.  들어가며

 

필자는 2023년 초에 헌법재판소에서 심리 중이던 정당법에 대한 헌법소원심판과 관련하여 의견서를 제출하고, 이를 수정 보완하여 논문으로 발표한 바 있다. 필자는 이 논문에서 이 사건 이전까지 헌법재판소가 취해 왔던 입장, 2006년 헌법재판소의 결정을 비판하고, 현행 정당법이 정당등록요건으로서 중앙당의 수도 소재, 5 이상의 시도당, 도당별 법정당원수를 등록요건으로 요구하는 것은 지역정당과 군소정당의 설립을 차단함으로써 정당설립의 자유를 심각하게 침해하는 것이므로 위헌법률로 폐지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이런 필자의 주장은 효과를 보지 못했고 헌법재판소는 2006년에 이어 2023년에 또다시 해당 조항들에 대한 합헌결정을 선고함으로써 한국 정당정치를 60년 전 군사정권이 만든 굴레에서 해방하기를 거부했다.

물론 필자의 이와 같은 비관적인 평가와는 달리 헌법재판소의 이번 결정은 적어도 2006년의 결정에 비하여 진일보한 것이라는 긍정적 평가도 없지 않다. 그것은 2006년 결정이 재판관 전원의 일치된 의견에 의한 것이었던 반면, 이번 결정에서는 합헌과 위헌의견이 나뉘었을 뿐만 아니라 헌법재판소가 전국정당조항이라고 부른 정당법 제17조에 대해서는 위헌의견이 5인으로 합헌의견보다 더 많았고 법정당원수 조항이라고 부른 제18조에 대해서도 2인의 재판관이 위헌의견을 제시한 것이 주된 이유이다. 필자 역시 그 점은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고 싶으나, 헌법재판소의 합헌의견이 전개한 논지에서 크게 실망했음을 부인할 수 없다. 2006년에 내려졌던 터무니없는 전원일치결정의 그림자가 논증 방식은 달리했지만 이번 합헌의견에도 짙게 드리워졌기 때문이다. 무엇이 달라졌고, 무엇이 문제인지, 차근차근 짚어보기로 하자.

 

 

II.  헌법재판소 결정의 과정에 대한 비판

 

필자가 의견서를 준비한 계기가 되었던 헌법소원심판이 청구된 것이 20211130일이고 의견서를 제출한 것이 20224월이었고 이를 수정 보완하여 논문으로 발표한 것이 같은 해 11월이었는데, 의견서 제출 후 1년이 넘게 지난 2023년 여름까지도 헌법재판소의 사건 심리에는 전혀 진척이 없었다. 특히 이상한 것은 이 결정은 위헌법률심판 1건과 헌법소원심판 4건이 병합된 사건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청구인과 제청신청인 및 제청법원의 의견 이외에 국가 측에서 어떤 의견도 제시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따라서 청구인들도 필자도 당연히 이 사건에 대한 결정은 상당한 시간이 지난 뒤에 선고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었다. 그런데 돌연 20239월 헌법재판소가 결정을 선고한다고 청구인들에게 통보를 해 온 것이다. 그리고 926일 결정이 선고되었다.

놀라운 사실은 헌법재판소의 이 결정은 선고시점까지도 이해관계인의 의견이 전혀 제출되지 않은 상태에서 선고되었다는 것이다. 피고인의 진술거부권이 보장되고 무죄추정의 원칙이 적용되는 형사재판을 제외하면, 통상의 재판에서는 소송 당사자 일방의 침묵은 상대방 주장의 인정으로 받아들여지기 때문에, 소송 제기 후 2년 이상 국가(법무부)가 어떤 의견도 제시하지 않은 상태에서 내려지는 결정이라면 청구인이나 제청법원의 의견을 받아들이는 인용, 즉 위헌결정이 내려지는 것이 순리라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런데 헌법재판소는 이런 상식과는 달리 반대 당사자인 국가 측의 주장이 전혀 없음에도 국가의 손을 들어주는 이례적인 모습을 선보였다. 국가가 아무런 주장을 하지 않아도 헌법재판소가 알아서 국가의 입장을 대변해 주는 매우 이례적인 상황이 연출된 것이다. 물론 헌법재판소는 이해당사자의 의견 제출이 없는 상황에서 왜 결정 선고를 강행했는지, 그리고 왜 의견 제출도 하지 않은 국가의 편에 섰는지 그 내막을 전혀 언급하지 않았다. 그러나 청구인들이나 의견을 제출했던 필자의 입장에서 보자면 헌법재판소가 보여준 결정 선고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은 헌법재판소 결정의 공정성을 의심케하기에 충분하다. ‘재판은 내용이 공정해야 할 뿐만 아니라 재판의 외양도 공정해 보여야 한다는 말도 있던데, 헌법재판에는 적용되지 않는 말인 모양이다.

 

 

III.  전국정당조항과 법정당원수 조항의 분리 속임수

 

(1) 앞서 언급했듯이 이번 결정에서 헌법재판소가 전국정당조항이라고 부른 정당법 제17조를 비롯하여 정당등록과 관련된 조항들에 대하여 헌법재판소는 2006년에 전원일치의 판단으로 합헌결정을 선고한 바 있다. 그런데 이번 결정에서 헌법재판소는 법정당원수를 정한 정당법 제18(헌법재판소는 법정당원수 조항이라고 불렀다)에 대한 2022년의 합헌결정을 선례로 언급했을 뿐 2006년 결정을 몇 차례 언급하면서도 선례라는 표현을 전혀 하지 않는 다소 이상한 모습을 보였다. 이번 결정에서 다수의견이 2006년 결정을 명시적으로 언급한 것은 정당설립의 자유의 일반적 의미를 밝힌 부분, 그리고 평등권 침해는 논의 대상이 아니라는 부분, 그리고 정당등록제도의 정당성을 언급한 부분 세 군데였지만 어느 곳에서도 선례라는 언급은 하지 않았다. 더욱 의아한 것은 이 결정에서 핵심적인 심판대상이었던 전국정당조항과 법정당원수 조항에 대해서는 2006년 결정이 선례로서는커녕 단순한 인용의 대상으로도 언급되지 않은 것이다. 그러면 이러한 태도는 2006년의 의견을 변경한 것으로 보아야 할까? 그렇지는 않으며, 필자가 보기에는 다른 이유가 있다.

 

(2) 앞서 언급한 의견서나 논문에서 필자가 전개한 헌법재판소결정 비판의 핵심은 정당의 개념표지에 대한 헌법재판소의 오류를 논증하는 것이었다. 즉 헌법재판소는 정당의 개념표지를 제시하고 이런 개념표지를 법률규정을 통해 구체화하는 것은 입법자의 재량영역에 속한다는 논리로 문제의 정당법 조항들을 정당화했는데, 필자는 헌법재판소가 제시한 정당의 개념표지 자체가 심각한 오류를 안고 있다는 점을 논증함으로써 이를 정당등록요건 규정들의 위헌 여부를 판단하는 기준으로 삼을 수는 없다고 주장했다. 이를 가장 중요한 핵심이라고 생각했던만큼 필자는 이번 결정에서 헌법재판소가 이에 대하여 어떻게 판단했을지 궁금하기도 했다.

그런데 막상 결정문을 접하고는 필자는 깜짝 놀랄 수밖에 없었다. 9명의 헌법재판관이 일치된 의견으로 제시했던 정당의 개념표지에 대한 설시가 이번 결정에서는 어디에서도 언급조차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헌법재판소는 정당의 개념표지를 전혀 언급하지 않았지만, 기타 부분에서는 2006년 결정의 설시를 대체로 되풀이하고 있었다. 대표적인 것이 전국정당조항이 침해의 최소성 원칙 위반이 아니라고 하면서 그 배경을 언급한 부분이다.

 

"지역적 연고에 지나치게 의존하는 정당정치 풍토가 다른 나라와 달리 우리의 정치현실에서는 특히 문제시되고 있고, 지역정당을 허용할 경우 지역주의를 심화시키고 지역 간 이익갈등이 커지는 부작용을 야기할 수도 있다는 점에서, 이러한 우리나라의 정치현실과 2021. 12. 31. 기준 우리나라에 현존하는 정당이 총 49개에 달한다는 점, 17개의 특별시ㆍ광역시ㆍ도 중 5개 이상의 시ㆍ도당을 두도록 하는 것이 지나치게 엄격한 기준이라고 보기 어려운 점에 비추어 보면, 전국정당조항이 정당을 창당하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지나치게 과도한 부담을 지운 것이라고 보기도 어려우므로, 전국정당조항이 침해의 최소성에 반한다고 할 수 없다."

 

위 인용부에서 밑줄친 부분은 2006년 결정의 내용과 동일하지만 그 뒷부분은 2006년 결정과는 다소 다르다. 2006년 결정에서는 전국 정당으로서의 기능 및 위상을 충실히 하기 위해서 5개의 시ㆍ도당을 구성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본 입법자의 판단이 자의적이라고 볼 수 없고, 각 시ㆍ도당 내에 1,000명 이상의 당원을 요구하는 것도 우리 나라 전체 및 각 시ㆍ도의 인구를 고려해 볼 때, 청구인과 같은 군소정당 또는 신생정당이라 하더라도 과도한 부담이라고 할 수 없다.”고 했다. 그리고 이와 같은 제한이 정당설립의 자유에 어느 정도 제한을 가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이러한 제한은 상당한 기간 또는 계속해서”, “상당한 지역에서국민의 정치적 의사형성 과정에 참여해야 한다는 정당의 개념표지를 구현하기 위한 합리적인 제한이라고 할 것이어서 헌법적으로 정당화된다고 결론내렸다. 사실 2006년 결정에서 헌법재판소는 과잉금지의 원칙을 엄격히 적용하지 않았으며 입법목적의 정당성과 목적과 수단 간의 비례성만 심사하고, 그 결과 정당의 개념표지에 부합하는지 여부에 따라 결론을 내리는 방식을 취했다.

이와는 달리 이번 결정에서는 과잉금지의 원칙에 따라 심사해야 한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그러면 이번 결정에서 헌법재판소는 2006년 결정에서 제시했던 정당의 개념표지를 부인한 것일까? 그렇지 않다. 필자가 보기에는 단지 이번 결정에서 합헌의견은 정당의 개념표지 논의를 결정문 이면으로 숨겨버렸을 뿐이다. 필자가 가장 중요한 공격 대상으로 삼았고 일반적으로도 논리적으로 불합리하다는 지적의 대상이 되었던 개념표지 문제를 숨기는 대신, 개념표지와 연결된 설시들은 그대로 유지하는 방식으로 이번 결정을 구성한 것이 바로 합헌의견에 가담한 재판관들이 보여준 속임수라는 것이 필자의 판단이다. 따라서 이들의 사고 저변에는 여전히 2006년 헌법재판소의 개념표지 논의가 자리잡고 있다고 필자는 생각한다. 그러나 이렇게 정당의 개념표지에 관한 언급을 피했지만, 그 결과 합헌의견에는 중요한 논증이 결여될 수밖에 없었다. 2006년 결정에서 헌법재판소가 정당의 개념표지라고 언급한 핵심내용은 상당한 기간 또는 계속해서”, “상당한 지역에서국민의 정치적 의사형성 과정에 참여해야 한다는 것이었고, 바로 이러한 개념표지 때문에 군소정당의 배제와 지역정당의 배제가 정당화될 수 있다고 본 데 반하여, 이번 결정에서 합헌의견은 정당의 개념표지 논의를 아예 배제해버렸기 때문에 군소정당과 지역정당 배제를 정당화하기는 매우 어려워진 것이다. 이런 어려움은 이번 결정의 곳곳에서 발견된다.

 

(3) 필자가 보기에 이번 결정을 2006년 결정과 달라지게 만든 결정적 요인은 전국정당조항법정당원수 조항이라는 명칭을 붙여 정당등록요건을 규정한 제17조와 제18조를 의도적으로 분리시킨 것이다. 그리고 그 목적은 이들 두 요건이 결합할 때 군소정당이나 신생정당이 성립하는 것이 극도로 어려워지게 됨을 의도적으로 감추는 것이다. 아마 이런 방법을 취하게 된 계기는 제18조를 합헌이라고 했던 2022년 결정이었을 것이다. 2022년 결정은 시도당의 당원수를 1,000명 이상으로 정한 정당법 제18조가 과도한 제한이 아니라고 하면서 합헌결정을 선고했는데, 이 결정에서는 제17조의 시도당 분산요건은 심판대상이 아니었던 까닭에 다수의견은 이를 전혀 언급조차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이번 결정에서도 합헌의견은 전국정당조항인 제17조와 법정당원수 조항인 제18조를 철저히 분리시키고 각 조항에 대한 논의에서 다른 조항을 일절 연결시키지 않음으로써 그 결합이 가져올 정당설립의 자유 제한 효과를 은폐하려고 한 것으로 보인다. 다수의견은 불과 몇 개월 전에 법정당원수 조항에 대한 합헌결정이 선고되었으므로, 이번 결정에서는 전국정당조항에 대해서만 합헌론을 관철하면 될 것이라고 생각했음직하다. 그래서인지 이들 규정의 입법목적에 대한 헌법재판소의 판시는 2006년과는 판이하게 달라진다.

이번 결정에서 합헌의견은 전국정당조항의 입법목적과 수단을 다음과 같이 언급하였다. 그리고 이 대목에서는 법정당원수 조항은 전혀 언급하지 않았다.

 

"전국정당조항은 정당에 전국 규모의 조직을 요구하여 국민의 다원적 정치적 의사를 균형 있게 집약, 결집하여 국가정책의 결정에 영향을 미칠 수 있도록 함으로써 헌법상 정당에게 부여된 기능인 국민의 정치적 의사형성에의 참여를 실현하고자 하는 것으로, 그 입법목적이 정당하다. 그리고 수도 소재 중앙당과 5 이상의 특별시광역시도 소재 시도당을 등록요건으로 요구하는 것은 이러한 입법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적합한 수단이다."

 

법정당원수 조항에 대해서는 그 입법목적을 다음과 같이 설시하였고, 여기서는 전국정당조항을 전혀 언급하지 않았다.

 

"정당법 제18조 제1항은 헌법 제8조 제2항 후단에 따라 정당의 조직인 시도당이 지속적이고 공고한 조직의 최소한을 갖추도록 함으로써 헌법상 정당에게 부여된 과제와 기능인 국민의 정치적 의사형성에의 참여를 실현하고자 하는 것으로 그 입법목적이 정당하고, 수단의 적합성도 인정된다."

 

그런데 이와 대조적으로 2006년 결정에서는 제17조와 제18조를 함께 다루면서 그 입법목적을 다음과 같이 밝힌 바 있다.

 

"이 사건 법률조항의 입법목적은 이른바 지역정당과 군소정당을 배제하려는 것으로 판단된다. , 정당에게 5 이상의 시ㆍ도당을 요구한 제25조의 규정은 특정 지역에 지역적 연고를 두고 설립ㆍ활동하려는 이른바 지역정당을 배제하려는 취지로 볼 수 있고, 각 시ㆍ도당에게 1천인 이상의 당원을 요구한 제27조의 규정은 아직 당원을 충분히 확보하지 못하여 일정규모 이상 국민의 지지를 받지 못하거나 이익을 대변하지 못한다고 판단되는 이른바 군소정당을 배제하려는 취지로 볼 수 있다."

 

이 결정에서 이 사건 법률조항이란 구 정당법 제25조와 제27, 즉 전국정당조항과 법정당원수 조항을 함께 언급한 것이다. 2006년 결정은 매우 솔직했다. 정당의 등록요건에 해당하는 전국정당조항과 법정당원수 조항의 목적이 지역정당과 군소정당의 배제였음을 분명히 밝히고는, 그러한 배제는 정당의 개념표지와 개념표지의 구체화에 대한 입법자의 재량에 비추어 정당화된다는 정공법을 취한 것이다. 물론 2006년 당시 헌법재판소가 제시한 개념표지의 근거는 매우 취약했기 때문에 그 논증은 유지될 수 없는 것이었지만, 적어도 엄연히 존재하고 상호 연결되어 있는 두 개의 등록요건 조항을 의도적으로 분리시켜 그 결합의 효과를 은폐한 이번 결정의 합헌의견보다는 더 정직한 접근이었다.

 

 

IV.  판단의 오류들

 

그러면 다수의견의 위와 같은 의도는 성공했을까? 전국정당조항과 법정당원수 조항을 완전히 분리시켜 논의함으로써 이들 두 조항이 과잉금지의 원칙 위반이 아니라는 것을 충분히 설득력있게 논증했을까? 그렇지 않다. 두 조항을 분리시켜 논증 자체가 훨씬 더 쉬워졌을지는 몰라도 합헌의견의 논증에는 비약과 억지와 강변이 넘쳐난다.

 

1. 전국정당조항 판단의 오류

 

먼저 전국정당조항에 대한 합헌의견의 주장을 보자. 합헌의견은 지역적 연고에 지나치게 의존하는 정당정치 풍토가 다른 나라와 달리 우리의 정치현실에서는 특히 문제시되고 있다는 2006년 결정의 설시를 출처더 밝히지 않은 채 사용하고는 지역정당을 허용할 경우 지역주의를 심화시키고 지역 간 이익갈등이 커지는 부작용을 야기할 수도 있다고 단정하고 있다. 그러나 이미 필자의 논문에서도 밝혔듯이 지역연고주의의 문제는 지역정당에 의해서가 아니라 특정 지역을 주요 지지기반으로 삼고 있는 양대정당에 의해 생성되고 악화되어 왔다는 점에서 이러한 진단은 검증되지도 않았고 검증될 수도 없는 명백한 오류이다. 더욱이 이 부분은 전국정당조항을 정당화하기 위한 가장 중요한 부분이어서 충분한 자료에 의하여 논증되었어야 하는 부분인데도, 다수의견은 아무런 논증도 없이, 아니 그러한 노력조차도 없이 지역정당이 지역갈등을 심화시키고 지역 간 이익갈등을 크게 할 것이라고 선언하고 있을 뿐이다.

더 근본적인 문제는 합헌의견이 스스로 내세우는 정당의 기능, 국민의 정치적 의사형성에의 참여라는 기능을 수행하기 위하여 왜 전국 규모의 조직이 필요한지를 전혀 논증하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오히려 합헌의견은 전국정당조항은 정당에 전국 규모의 조직을 요구하여 국민의 다원적 정치적 의사를 균형 있게 집약, 결집하여 국가정책의 결정에 영향을 미칠 수 있도록 함으로써 헌법상 정당에게 부여된 기능인 국민의 정치적 의사형성에의 참여를 실현하고자 하는 것이라고 하여 전국 규모의 조직 요구는 당연한 것이라는 태도를 취하고 있다. 그런데 이런 식의 논법이 수긍될 수 있으려면 2006년 결정이 취하고 있는 논리, 전국 규모의 조직은 헌법에서 도출되는 정당의 개념표지에 해당하고 그 구체적 기준의 법정은 입법자의 재량에 속한다는 전제가 성립해야 한다. 그런데 2006년 결정이 언급한 개념표지는 더 이상 유지될 수 없어 이를 아예 언급조차 하지 않은 합헌의견은 이러한 전제도 없이 전국 규모의 조직을 당연한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으므로, 이것은 합헌의견을 전개한 재판관 4인의 정치적 선언이지 결코 법적 추론(legal reasoning)을 핵심으로 하는 사법적 과정을 통한 결정이라고 볼 수는 없다. 이 점은 정당이 국민의 정치적 의사형성에 참여하는 기능을 수행하기 위하여 반드시 전국 규모의 조직이 필요하다고 볼 수 없고, 헌법이 전국 규모의 조직을 요구하는 것도 아니라는 위헌의견에서도 분명히 지적되었고, 또 다른 위헌의견은 모든 전국정당들이 특정 지역의 민심에만 의존하지 않고 전체 국민의 정치적 의사를 제대로 반영하여 왔는지는 의문이라고 냉소적인 대응을 보이기도 했다.

이런 점들에 비추어보면, 이번 결정은 아무리 무모한 의견이라도 동조자를 4명만 확보한다면 위헌결정을 피할 수 있는 현재 헌법재판 시스템의 맹점을 너무나 잘 보여준 결정이라 할 것이다.

 

2.  법정당원수 조항 판단의 오류

 

다음으로는 법정당원수 조항, 즉 정당법 제18조에 대한 합헌의견의 판단을 살펴보자. 법정당원수 조항에 대해서는 불과 10개월 전에 6:3의 합헌결정이 선고되었기에, 당시 위헌의견을 내놓았던 3명의 재판관 중 2명을 제외하고는 전원이 합헌의견을 취했다. 특별히 이 조항에 대하여 심리하고 판단을 했다기보다는 10개월 전에 내려진 결정을 선례로 인정하면서 이를 변경할 이유가 없다는 입장을 취한 것이다. 전국정당조항과 법정당원수 조항을 분리시킨 의도가 적중한 대목이다.

그러나 이러한 분리 판단의 적절성 여부에 대해서는 헌법재판소 내부에서도 논란이 되었던 모양이다. 법정당원수 조항에 대해서는 합헌의견에 동참했으나 전국정당조항에 대해서는 위헌의견을 취했던 3명의 재판관이 다음과 같이 지적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정당법은 법정당원수 조항을 통해 국민의 정치적 의사형성에의 참여라는 정당의 핵심적 기능과 임무수행에 필요한 조직요건을 이미 정하고 있고, 헌법재판소도 위 조항이 정당조직의 자유와 정당활동의 자유를 과도하게 제한한다고 보기 어렵다고 결정(헌법재판소 2022. 11. 24. 2019헌마445)한 상황에서는, 법정당원수 조항에 추가하여 전국정당조항이 정당의 핵심적 기능과 임무를 실현할 수 있는 최소한의 요건을 규정한 것이냐는 문제의식을 갖고 검토해야 한다.”

 

이번 결정에서 전국정당조항에 대한 이 위헌의견에 참여한 3인 중 1(정정미)2022년 법정당원수 조항에 대한 결정 이후 재판관으로 임명되었고 나머지 2명은 합헌의견을 취했던 만큼 이번 결정에서도 이들 2인은 직전의 결정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한 해 전에 법정당원수 조항에 대하여 합헌의견에 동참했던 이들이 보기에도 전국정당조항의 위헌 여부는 법정당원수 조항과의 관계를 고려하여 판단해야 한다고 보았음이 위의 인용부에서 잘 드러난다.

분리 취급에 대한 문제 제기는 이쯤 해 두고 법정당원수 조항에 대한 헌법재판소 다수의견에는 문제가 없는지를 살펴보자. 다수의견은 다음과 같이 판시하였다.

 

"정당의 조직인 시도당이 지속적이고 공고한 조직의 최소한을 갖추도록 함으로써 헌법상 정당에게 부여된 과제와 기능인 국민의 정치적 의사형성에의 참여를 실현하고자 하는 것으로 그 입법목적이 정당하고, 수단의 적합성도 인정된다. 우리나라에 현존하는 정당의 수, 각 시도의 인구 및 유권자수, 인구수 또는 선거인수 대비 당원의 비율, 당원의 자격 등을 종합하여 보면, 도당은 1천인 이상의 당원을 가져야 한다고 규정한 정당법 제18조 제1항이 신생정당의 창당이나 기성정당의 추가적인 시도당 창당을 현저히 어렵게 하여 창당준비위원회의 대표자들에게 지나치게 과도한 부담을 지운 것이라고 보기도 어렵다. 창당준비위원회의 대표자들은 정당법 제18조 제1항으로 인해 각 시도당 당원의 수가 1천인 이상이 될 때까지 창당이 지연되는 불이익을 입을 뿐이므로, 이들이 제한받는 사익의 정도가 공익에 비하여 크다고 보기도 어렵다.

위와 같은 선례의 결정이유는 심판대상이 실질적으동일한 이 사건에서도 타당하고, 이와 달리 판단해야 할 사정변경이나 필요성이 있다고 보이지 아니한."

 

이에 대해 위헌의견을 낸 재판관 2인은 다음과 같은 의문을 제기한 바 있다.

 

"1천인 이상의 당원이 있어야만 국민의 정치적 의사형성에 참여하는 데 필요한 최소한의 조직이 되는 것인지 의문이다. 새로운 정책이념을 가진 신생정당이나 군소정당의 진입과 활동이 어렵지 않도록 당원의 수를 상대적으로 정하는 것이 정당설립의 자유와 복수정당제를 규정한 헌법 제8조 제1항의 취지에 부합한다 할 것이다. 5개 이상의 시도당을 가진 정당이 추가로 시도당을 창당하고자 하는 경우에는 정당법 제18조 제1항을 적용하지 않거나 각 시도의 인구규모에 비례하여 당원수를 조정하는 방안, 당원수의 부족을 조직의 효율성 및 공고성 확보 등 조직의 기능능력에 영향을 미치는 다른 사실적 요소들을 통해 보완하는 방안, 신생정당과 기성정당을 구분하여 시도당의 조직요건을 달리 정하는 방안, 당비를 납부하는 당원으로 시도당을 구성하도록 하면서 당원수를 줄이는 방안 등 정당법 제18조 제1항으로 인한 기본권 침해가 최소화될 수 있는 방안을 강구하는 것이 어려워 보이지 않는다. 따라서 정당법 제18조 제1항은 침해의 최소성에도 반한다.

정당법 제18조 제1항은 시도당이 갖추어야 할 최소 당원수를 1천인으로 규정하여 신생정당의 창당이나 기성정당의 추가적인 시도당 창당을 현저히 어렵게 함으로써 이들의 정치참여를 진입단계에서부터 배제시킨다는 점에서 법익의 균형성도 갖추지 못하였다."

 

위와 같은 위헌의견은 다수의견의 논리를 충분히 반박하고도 남음이 있는 것이었지만, 필자는 그 밖에 몇 가지 점을 추가로 제기해 보고자 한다. 다수의견이 합헌론을 뒷받침하는 근거로 제시한 요소들은 과연 적절한 것이었는가 하는 점이다. 앞서 보았듯이 다수의견은 우리나라에 현존하는 정당의 수, 각 시도의 인구 및 유권자수, 인구수 또는 선거인수 대비 당원의 비율, 당원의 자격 등을 근거로 시도당별 1천인 이상의 당원 요건이 창당을 현저히 어렵게 하는 것은 아니어서 침해의 최소성과 법익의 균형성 원칙 위반이 아니라는 판단을 내리고 있는데, 이런 판단은 매우 많은 문제를 담고 있다고 생각되기 때문이다.

구체적으로 다수의견은 법정당원수 요건을 충족하여 정당으로 등록된 정당의 수가 2020년에는 44, 2021년에는 49개로 적지 않다는 점에 비추어볼 때 법정당원수 조항이 과도한 부담을 안겨주는 것으로 보기는 어렵다고 했다. 그러나 위헌의견이 적절히 지적하고 있듯이 국회에서 의석을 확보한 정당은 5개에 불과하고, 1945. 8. 15. 이후 설립된 정당의 평균수명은 3년도 채 되지 않는다. 이는 정당의 등록요건이자 유지요건인 법정당원수 요건을 처음부터 충족하는 것은 물론 등록정당이 지속적으로 충족하는 것도 쉽지 않다는 것을 반증하는 것이다.

다음으로 다수의견은 각 시도의 인구수 또는 선거인수 대비 당원의 비율이 극히 낮아서 인구수 기준으로는 0.0071%-0.28%, 선거인수 기준으로는 0.0088%-0.36%에 불과하여 이 정도의 요건이 창당준비위원회의 대표자들에게 과도한 부담을 주는 것이라고는 할 수 없다고 한다. 그러나 비율 기준으로는 매우 낮아 보이는 이런 요건이 1,000명의 사람이라는 절대수치가 될 때 이를 확보하는 것은 대단한 부담이 아닐 수 없다. 특히 지역을 불문하고 양대 정당의 지배력이 극도로 강한 한국의 상황을 고려하면 이러한 부담은 결코 가벼운 것이 아니다. 더욱이 새롭게 정치를 시작하려는 신생정치세력의 경우 하나의 지역에서 1,000명의 당원을 규합해 낸다는 것은 극도로 어려운 일이다(물론 그런 지역이 5개 이상이 되어야 하므로 그 어려움이야 더 언급할 필요도 없다).

마지막으로 다수의견은 당원의 자격이 당원명부에 등재만 되면 되고 당비 납부가 필수적이지는 않으므로 당원 확보가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라고 쉽게 말한다. 그러나 특정한 정당의 당원인지 여부는 개인정보보호법상 민감정보로 분류될 만큼 중요하고 또 예민한 사항이다. 즉 당비 납부를 하지 않아도 당원이 될 수 있다고 하여, 누군가를 어렵지 않게 당원으로 확보하여 당원명부에 기재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특히 특정 정당의 영향이 매우 강한 지역에서는 지배정당이 아닌 정당의 당원이 되는 것은 지역민의 입장에서도 큰 부담이 될 수밖에 없으므로, 기성 지배정당에 맞설 목적으로 정당 설립을 시도하는 신생정치세력의 경우라면 더더욱 당원 확보에 극심한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다.

이처럼 다수의견이 법정당원수 조항이 창당준비위원회의 대표자들에게 과도한 부담을 주지 않으리라고 보는 근거로 제시한 요소들은 실제의 정치현실을 고려하지 않은 매우 안일한 판단이다. 더구나 2004년 정당법 개정으로 지구당이 폐지되기 전까지 정당법의 정당등록요건과 비교하면 현행 정당법의 요건은 그 부담이 비교 불가능할 정도로 과도하다. 2004년 개정 이전 정당법이 요구한 것은 국회의원지역선거구의 10분의 1(23-25) 이상의 지구당(전국적으로 5개 시도이상에 분산되어야 함)과 지구당별 30명 이상의 당원이었다. 이 요건을 다 합쳐봐야 법정당원수 총원 기준으로는 750명 정도였다. 필자는 이 정도의 기준조차도 신생정치세력에게는 과도한 부담일 수 있다고 생각해 왔는데, 하나의 시도당에 대해서만 해도 이 기준을 훨씬 상회하고, 전체적으로는 그 6배가 넘는 당원수를 요구하는 것이 과도하지 않다는 다수의견의 주장은 참으로 납득하기 어렵다.

 

 

V.  나가며

 

마지막으로 한 가지 언급할 것은 전국정당조항에 대하여 합헌의견을 낸 재판관 4인은 같은 날 선고된 국가보안법 제7조 등의 위헌여부에 관한 결정에서도 역시 합헌의견을 취했고, 이 결정에서 제7조 제5항의 이적표현물 조항 중 취득소지부분에 대해서는 위헌의견이 5인으로 합헌의견보다 더 많았다. 공교롭게도 정당법과 국가보안법에 대한 결정에서 합헌의견과 위헌의견의 분포가 4:5로 동일했을 뿐 아니라 합헌의견과 위헌의견에 참여한 재판관들 역시 동일했던 것이다.

 

그런데 법정당원수 조항에 대한 2022년의 헌법재판소 결정에 관여했던 재판관 중 2인은 퇴임하였는데, 그 중 이선애는 당시 합헌의견에, 이석태는 위헌의견에 참여했다. 이들의 후임으로 임명된 재판관 김형두와 정정미가 2023년 정당법과 국가보안법 사건 결정에 참여하게 되는데 김형두는 전국정당조항과 국가보안법 제7조 제5항 중 취득소지에 대하여 합헌의견에, 정정미는 이들 조항에 대하여 위헌의견에 참여했고, 이들 두 조항은 모두 위헌 5, 합헌 4로 결정되었다(결국 합헌결정). 이들은 모두 대법원장의 지명에 의해 재판관으로 임명되었지만, 두 사건에서 보인 정치적 성향은 상당히 달라 보이기도 한다. 그리고 두 사건 모두에서 나타난 특징은 합헌의견이 매우 단정적이고 선언적이며 논증을 결여하고 있다는 것이다. 재판관들의 의견이야 사건에 따라서 달라질 수 있는 것이지만, 어떤 쪽이든 논증 없이 내린 결정은 법적 판단으로서의 권위와 신뢰를 획득하기 어렵고, 이것은 또 다른 분쟁을 예고할 뿐 결코 분쟁을 해결하지 못하며, 사회의 발전을 지체시키는 원인이 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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