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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보안법 제7조에 대한 헌법재판소 결정 비판

 

 김종서

I. 들어가며

 

헌법재판소가 또 다시 국가보안법의 손을 들어주었다. 2023926일 헌법재판소는 제2조와 제73항에 대한 헌법소원은 각하하고, 7조 제1항과 제5항에 대해서는 합헌이라고 결정했다. 7조 제1항과 제7조 제5항 중 제작반포에 대해서는 합헌 6, 위헌 3으로, 5항 중 취득소지에 대해서는 위헌 5, 합헌 4로 의견이 나뉘었다(2023.9.26. 2017헌바42, 443, 2018헌바116(병합) 등 결정, 이하 대상결정이라 함). 2015년에는 71항에 대해서는 동조부분 합헌 8, 위헌 1, 나머지 부분은 전원일치로 합헌결정이 선고되었고, 75항 중 취득소지부분에 대해서는 합헌 6, 위헌 3, 나머지 부분은 전원일치로 합헌결정이 선고된 바 있다(2015. 4. 30. 2012헌바95등 결정, 이하 ‘2015년 결정이라 함).

이러한 의견분포로만 볼 때, 대상결정에서는 2015년에 비하면 위헌의견이 다소 늘어났고 특히 제75항의 이적표현물 조항 중 소지취득부분에 대해서는 위헌의견이 더 많았다는 점에서 국가보안법에 대한 헌법재판소의 판단은 종전에 비하여 다소 진일보한 느낌이 있다. 그러나 필자가 보기에 71항 및 5항에 대한 다수의견을 보면 그 설시의 방향은 오히려 과거보다 더 퇴보했다.

민주주의법학연구회(이하 민주법연이라 함)는 지난 2022년 이 사건과 관련하여 의견서를 제출했고(민주주의법학연구회, “국가보안법 제2조 및 제7조의 위헌성과 국가보안법 폐지의 당위성: 국가보안법의 위헌 여부에 대한 민주주의법학연구회 의견서”, 민주법학 제80, 2022, 158-203, 이하 의견서라 함) 필자는 이 의견서 작성에서 일정한 역할을 맡았다. 이 의견서에서 민주법연은 제2조와 제7조의 위헌성을 주장하고 이 두 조항을 핵심으로 하는 국가보안법은 폐지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런데 이 사건에서 헌법재판소는 제2조와 제7조 제3항 부분은 각하했으므로 이 글에서는 제7조 제1항과 제5항에 관해서만 헌법재판소 판단을 검토해보기로 한다. 특히 이 검토에서는 2022년 민주법연의 의견서에서 제기된 제7조 관련 주장들에 대하여 헌법재판소가 어떤 입장을 취했는지를 중심적으로 살펴볼 것이다. 당시 의견서는 종래의 헌법재판소 결정들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개탄한 바 있다.

 

1990년 국가보안법 제7조 등에 대한 위헌법률심판에서는 물론 그 이후 여러 차례에 걸쳐 제기된 위헌법률심판 또는 헌법소원심판에서 헌법재판소가 단 한 번이라도 적절한 결정을 선고했다면 사실 이 의견서는 쓸 필요가 없지 않았을까 싶다. 그리고 그 때 적절한 결정이 선고되었다면 국가보안법에 의하여 질식당해 온 한국 사회의 모습은 정치적으로는 물론 경제 사회 문화적으로도 매우 다른, 긍정적인 방향으로 변화했을 것이라고 우리는 확신한다. 그런 점에서 이 의견서의 시작을 가장 최근에 선고된 헌법재판소의 합헌결정에 대한 비판으로 시작하는 것은 하등 이상하지 않다는 점을 먼저 밝혀둔다.(의견서, 159)

 

즉 위 의견서에서 민주법연은 종전의 헌법재판소 결정들이 적절하지 못했고 그로 인해 한국 사회가 계속해서 국가보안법에 의하여 질식당했다고 비판했다. 그러니 헌법재판소는 위 의견서에 대하여 충분히 답변을 해야 했는데, 유감스럽게도 적어도 필자가 보기에는 그렇지 않다. 그리하여 국기에 대한 맹세에 나오는 자유롭고 정의로운 대한민국은 또 다시 우리에게서 더 멀어지고 말았다. 문제는 대상결정으로 인하여 앞으로도 얼마나 될지 알 수 없는 기간 동안 한국 사회는 계속해서 국가보안법의 억압 하에 놓이게 될 것이고, 이는 한국 사회의 발전을 크게 저해할 것이라는 점이다. 헌법재판소의 죄가 참으로 크다.

 

 

II. 국가보안법 제7조에 대한 민주법연의 문제 제기와 그에 대한 헌법재판소의 답변

 

헌법재판소는 8년만에 내려진 대상결정에서 선례로 2015년 결정을 인용하고는 선례의 판단을 변경하여야 할 정도로 규범상태 및 사실상태가 변화하였다고 볼 수 없고, 달리 이에 대한 규범적 해석을 달리하여야 할 필요성도 인정되지 아니한다.”고 하였다. 2015년 결정에 대한 비판은 의견서를 통하여 충분히 이루어졌으므로 이 글에서는 헌법재판소가 선례 변경의 필요성이 없다고 한 이유를 중심으로 살펴 본다. 또한 헌법재판소는 선례 변경의 필요성 유무를 살피면서 제7조 제1항과 제5항을 특별히 구분하고 있지는 않으나, 위 의견서에서 제7조 제1항과 제5항을 별도로 다룬바 있으므로 이 글에서도 대상 조항을 나누어서 헌법재판소의 판단을 검토하기로 한다. 단지 이들 조항에 대한 개별적 검토에 들어가기 전에 위 의견서에서 선결문제로 제기되었던 헌법재판소의 용어 사용에 대한 문제점을 지적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본다.

2015년부터 헌법재판소는 제7조 제1항을 이적행위, 3항을 이적단체, 5항을 이적표현물 조항이라고 각각 지칭한 바 있다. 이에 대해서 민주법연은 법률의 위헌 여부를 판단할 권한과 책임이 있는 헌법재판소가 그 대상법률 소정의 어떤 행위를 지칭하면서 이미 폐지된 구절을 인용하여 부른다는 것은 그 자체만으로도 소정 행위에 대한, 또는 소정 행위의 처벌에 대한 선입견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의문을 표한 바 있다(의견서, 171. 1991년 개정전 국가보안법 제7조 제1항은 기타의 방법으로 반국가단체를 이롭게 한 자를 처벌하도록 규정하고 있었으나, 1991년 개정 때 이 부분은 국가변란을 선전ㆍ선동한 자로 변경되었다.). 그리고 민주법연은 이런 잘못된 용어를 통하여 헌법재판소가 저지른 오류는 살인죄로 재판을 받고 있는 피고인에게 피고인이 아니라 살인자라고 부르며 재판을 진행하는 오류만큼 크다고 비판했다(의견서, 172).

그런데, 헌법재판소는 8년 후에 선고된 이 결정에서 거리낌없이 그 오류를 되풀이했고 이러한 오류는 제7조 제1항과 제5항에 대한 합헌판단으로 이어졌다. 어찌보면 이런 용어 사용을 계속했다는 것은 헌법재판소 결정의 방향이 벌써 정해져 있었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야 할 지도 모르겠다. 이제 지난 의견서에서 민주법연이 제기했던 의문들이 대상결정으로 해소되었는지를 짚어보자.

 

1. 7조 제1항에 관하여

 

의견서에서 민주법연은 제7조 제1항과 관련해서는 죄형법정주의의 명확성 원칙 위배 여부, 표현의 자유 침해 여부와 헌법 제4조 등 위반 여부에 관하여 몇 가지 의문을 제기했다.

먼저 민주법연은 헌법재판소가 1991년 국가보안법개정법률에서 추가된 초과주관적 구성요건이라고 한 것의 의미가 국론의 분열, 체제의 전복 등을 야기하거나 우리 헌법이 선언하고 있는 국민주권주의, 법치주의 등 민주주의의 근간을 흔드는 행위라는 것을 수범자인 국민들이 모를 리 없다고 한 부분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의문을 제기하였다.

 

"보통의 수범자라면 체제의 전복 등을 야기라는 부분에서는 고개를 끄덕이리라고 쉽게 예측할 수 있을지 몰라도, “국론의 분열 을 야기라는 부분에 대해서는 과연 어떤 국민이 고개를 끄덕일 수 있겠는가? 국론의 분열을 다른 말로 표현하자면 특정한 주제에 관하여 지배적인 또는 다수의 주장과는 다른 주장들이 분출하는 상황일텐데, 이것은 언론 출판 집회 결사의 자유의 보장을 통해서 헌법이 구현하고자 하는 우리 사회의 모습과 다르지 않고, 그렇다면 이를 형사처벌의 대상이 되는 범죄행위로 보는 것 자체가 지극히 반헌법적인 것 아닌가? 법률전문가들로 구성되어 공식적인 최종적 헌법해석권을 가지는 헌법재판소와 그 재판관들 스스로도 이런 착각을 할 정도로 국가보안법 제7조 제1항은 수범자들이 그 의미를 알 수 있는 정도의 명확성을 결여하고 있고, 그 결과 법집행당국에 확대해석과 자의적 판단을 허용하는 결과를 초래할 것임은 명약관화하다."(의견서, 173-174)

 

그런데 이러한 의문에 대하여 헌법재판소는 이번 결정에서도 역시 답하지 않았다. 그저 헌법재판소는 1조 제2항을 신설하여 이 법을 해석적용함에 있어서는 제1항의 목적달성을 위하여 필요한 최소한도에 그쳐야 하며, 이를 확대해석하거나 헌법상 보장된 국민의 기본적 인권을 부당하게 제한하는 일이 있어서는 아니된다.”라고 명시하고, 이적행위조항에 국가의 존립·안전이나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위태롭게 한다는 정을 알면서라는 주관적 구성요건을 추가한 국가보안법의 개정연혁과 입법목적, 입법취지를 전체적으로 고려할 때, 수범자는 국가의 존립·안전이나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위태롭게 한다는 정이라는 것이 국가의 존립·안전이나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실질적 해악을 미칠 명백한 위험성을 의미한다는 점을 충분히 예측할 수 있다고 한 다음 대법원도 그렇게 국가보안법을 해석 적용하고 있다고 했을 뿐이다. 법이 그런 규정을 두고 있고 대법원도 그렇게 해석해 왔으니 수범자가 그 의미를 충분히 예측할 수 있다는 것이다. 2015년 결정을 선례로서 유지하고자 했으면 그것에 대해 제기된 의문에 대해서는 답하는 것이 당연함에도 헌법재판소는 그저 2015년 결정의 설시를 반복하고 있을 뿐 이런 의문을 해소하지 못했고, 심지어 의문을 해소하려는 최소한의 노력조차 보여주지 않았다.

또한 엄격한 해석 적용을 강조하기 위하여 헌법재판소가 북한의 정책과 궤를 같이 하는 주장이라고 할지라도 남ㆍ북한의 교류 확대, 평화협정의 체결 등과 같이 협력의 동반자로서의 북한의 지위와 관련된 주장들은 통일ㆍ군사ㆍ안보 정책에 대한 건설적 비판, 남북상황, 대북정책 등에 대한 사적인 견해의 피력 역시 이적행위 조항에 의해 처벌되지 아니함이 명백하다.”는 의견을 밝혔던 2015년 결정의 설시에 대해서도 민주법연은 의문을 던진 바 있다.

 

어떤 표현이 협력의 동반자로서의 북한의 지위와 관련된 주장이고 어떤 것은 반국가단체로서 북한의 지위와 관련되는지, 어떤 견해가 건설적 비판이나 사적인 견해이고 또 어떤 것은 처벌대상이 되는 찬양고무동조 등이 되는지는 전혀 명백하지 않다. 국가보안법이 개정된 1991년 이전은 물론 그 이후에도 국가보안법 적용의 역사는 이를 웅변으로 실증하고 있다.(의견서, 174)

 

헌법재판소는 대상결정에서 이런 문제 제기에 대해서도 답하지 않았다. 헌법재판소는 2015년 결정에서 구체적 위험이 현존하지는 않더라도 그 위험성이 명백한 단계에서 규제하는 것은 표현의 자유에 대한 지나친 제한이 아니라고 하였고, 민주법연은 이를 명백하고 현존하는 위험의 원칙명백한 위험의 원칙으로 변질된 것이라고 비판했다(의견서, 178.). 그리고 설령 헌법재판소의 입장을 받아들인다고 하더라도 제7조 제1항 소정의 찬양고무동조 등 행위가 국가의 존립안전이나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대해 야기하는 위험이 과연 명백하기는 한 것인지에 대해 의문을 제기했다. 백보를 양보하여 남북관계의 변화무쌍함과 특수한 안보현실을 고려하여 위험의 현존성까지는 요구되지 않는다 하더라도, 위험의 명백성은 반드시 논증이 되어야 하지만, 헌법재판소의 2015년 결정이나 그것이 인용한 대법원 판결 어디에서도 그 위험이 명백하다는 논증은 없었고, 그저 그런 위협이 명백하다는 선언이 있을 뿐이라고 비판했다(의견서, 176).

그런데 이 중요한 의문에 대해 헌법재판소는 대상결정에서도 위험이 명백하다는 점을 논증하지 않았거나 못했다. 위험성이 현존하지는 않더라도 명백한 단계에서 규제하는 것이기 때문에 위헌이 아니라고 해 놓고서는 구체적 사안에서 어떤 표현이 어떤 위험을 명백히 야기하는지 그 근거를 전혀 제시하지 않은 것이다.

이에 대해서 답할 의사가 있었다면 헌법재판소는 스스로 인용하고 있는 대법원 판결에서 실제로 문제되었던 표현들, 예컨대 주한미군 철수나 연방제 통일 등을 주장하는 표현들이 야기하는 해악이 얼마나 명백한지를 논증했어야 하지만, 늘 그랬듯이 헌법재판소는 이번에도 구체적 표현은 언급하지 않은 채 반국가단체 등에 대한 찬양’, ‘고무’, ‘선전’, ‘동조등의 행위는 모두 국가의 안전이나 존립에 위협을 가하는 도화선이 될 수 있어 어느 하나 그 실질적 위험성이 작다고 단정할 수 없다고 선언하고 있을 뿐이다. 민주법연은 찬양고무동조 등의 행위가 자유민주적 기본질서 등에 미치는 실질적 해악이 명백한 경우에만 적용된다고 볼 수 없다는 의문을 제기했는데, 헌법재판소는 그저 그런 경우에만 적용된다고 하고 있을 뿐 그런 행위의 위험성이 어떻게 명백하다고 판단할 수 있는지는 끝내 답하지 않았다.

마지막으로 제7조 제1항은 헌법 제4조의 통일조항 위반이라는 주장에 대해 헌법재판소는 2015년 결정에서는 물론 1993년 이후로 줄곧 북한의 이중적 성격을 내세워 합헌판단을 정당화해 왔다. 이에 대해 민주법연은 북한의 이중적 성격은 헌법을 근거로 한 것이 아니라 국가보안법과 남북교류협력에 관한 법률이라는 두 개의 상반된 법률의 존재로부터 비롯되는 것인데, 헌법재판소는 두 법률의 모순을 비판하는 주장에 대해서 두 법률의 존재를 그 모순의 정당화근거로 삼는 동어반복만 계속하고 있다고 비판했다(의견서, 181). 그러나 이에 대해서도 헌법재판소는 별다른 입장을 제시하지 않았다. 그러나 이러한 헌법재판소의 침묵은 금이 아니라 직무유기이다. 헌법재판소는 법률의 위헌성에 대한 판단을 내리기 전에 사건에서 제기된 의문에 대하여 충실하게 답할 의무가 있기 때문이다. 그런 의무를 이행하지 않은 채 내려지는 헌법재판소의 판단은 결코 권위를 인정 받을 수도 신뢰 받을 수도 없다.

 

2. 7조 제5항에 관하여

 

한편 제7조 제5항과 관련하여 민주법연은 죄형법정주의의 명확성 원칙 위배 여부, 표현의 자유 및 양심의 자유 침해 여부, 무죄추정의 원칙 등 위배 여부를 중심으로 문제를 제기한 바 있다(의견서, 182-192). 죄형법정주의의 명확성 원칙과 관련해서는 제7조 제1항에서 언급된 내용과 중복되므로 여기서 다시 언급하지 않기로 하고 나머지 부분에 대해서만 살펴보자.

2015년 결정에서는 제7조 제5항 중 취득소지행위와 관련하여 과잉금지의 원칙 중 침해의 최소성이 주로 다루어졌으나 헌법재판소는 그 적용이 한정되어 남용 위험성이 없고, 취득소지 행위도 반포제작에 못지않게 위험할 수 있다는 이유로 침해의 최소성 원칙 위반이 아니라고 판단했다. 남용 위험성이 없다는 판시의 근거는 제1조에서 확대해석 등을 제한하는 규정을 두고 있고 또 제7조 자체에서 이른바 초과주관적 구성요건을 설정해 두었다는 것이며, 이에 따르면 헌법재판소는 국가의 존립ㆍ안전이나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위태롭게 한다는 정을 알면서라는 구절을 객관적 구성요건과 초과주관적 구성요건의 결합이라고 이해하여, 표현물이 국가의 존립ㆍ안전이나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위태롭게 한다는 객관적 요건이 성립하고 동시에 행위자가 그렇다는 정을 알면서그런 행위를 했어야 이 규정이 적용된다고 본 것이다. 그러나 이에 대해 민주법연은 실제 제7조 위반으로 기소되는 어떤 사건에서도, 검찰이 문제의 표현(찬양고무동조 등)국가의 존립ㆍ안전이나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위태롭게 한다는 점을 증명한 적이 없고 증명하려는 노력을 한 적도 없다는 문제를 제기했다(의견서, 184). 헌법재판소는 대상결정에서 이에 대해 이적표현물 소지행위로 유죄판결이 확정된 사건의 수가 2018년 이후 크게 줄어든 반면 무죄판결이 선고되는 경우도 많았다는 점을 내세우면서, 구성요건 자체가 엄격한 해석을 통해 필요한 최소한의 범위로 축소되었기 때문에 스스로 이적표현물을 소지하고 있었다는 사실조차 인식하지 못한 채 우연히 이를 소지하는 행위나 단순히 학문연구나 예술활동, 지적 호기심의 충족 등을 목적으로 한 이적표현물의 소지·취득행위가 처벌될 가능성은 거의 없다는 것을 남용 위험성을 부정하는 근거로 제시했다. 이적표현물 소지에 대한 유죄판결이 줄어든 것은 다행스런 일이지만, 헌법재판소가 인용한 법무부 의견서에 따르더라도 2017년까지는 20건 이상의 유죄판결이 선고되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이러한 통계수치의 제시가 이적표현물 소지에 대한 엄격한 해석 적용을 증명하는 것도 아니다. 2017년까지는 엄격하게 해석적용하지 않던 검찰과 법원이 2018년 이후 갑자기 해석적용을 엄격하게 했다고 볼 근거가 전혀 제시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더구나 제시된 통계자료는 제7조 제5항에 규정된 여덟 가지 행위유형 중 오로지 소지에만 국한된 것이어서 이적표현물 조항의 일반적 적용례를 보여준다고 하기도 어렵다. 오히려 제7조 제5항이 적용된 판결 전체가 아니라 소지의 경우만을 제시한 이유는 무엇인지, 특히 헌법재판소는 대상결정에서 줄곧 취득소지라고 하여 두 행위를 함께 취급해 왔는데, 왜 유독 이 통계자료에서만 소지만을 분리하여 제시했는지 그 의도에 대한 궁금증만 불러일으켰다.

또한 2015년 결정에서 헌법재판소는 소지취득행위의 처벌은 국가의 존립ㆍ안전이나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실질적 해악을 줄 명백한 위험성이 있는 경우에 한하여 적용된다고 했지만, 민주법연은 제1항 소정의 행위가 국가의 존립ㆍ안전이나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위태롭게 한다는 것을 요구하지는 않으므로 제5항의 목적 역시 찬양고무동조 등의 목적일 뿐 국가의 존립ㆍ안전이나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위태롭게 하는찬양고무동조 등의 목적이 아니어서 헌법재판소의 판단은 근거 자체를 상실한다고 비판한 바 있다(의견서, 186-187). 그러나 헌법재판소는 이러한 비판에 대해 어떤 적절한 반론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한편 헌법재판소는 대상결정에서 국가의 존립·안전이나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위태롭게 하는 행위를 할 목적을 가진 소지·취득행위는 그 표현물의 이적내용에 대한 전파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 “전자매체 형태의 표현물은 실시간으로 다수인에게 반포가 가능하고 전파 범위나 대상이 어느 범위에까지 이를지도 전혀 예측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소지·취득한 사람의 의사와 무관하게 전파, 유통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것을 근거로 이적표현물을 소지·취득하는 행위가 지니는 위험성은 이를 제작·반포하는 행위에 비해 결코 작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시하였다. 그러나 헌법재판소 스스로의 설시에서도 드러나듯이 소지취득의 위험성은 반포판매 등과는 달리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대한 위험성이 아니라 전파될위험성에 불과하여, 다른 행위유형과는 그 위험성의 성격이 다르다. 그런데도 헌법재판소가 이번 결정에서 서로 성격이 다른 위험성을 동일한 차원에서 다룬 것은 결국 위험성의 크기나 정도는 법 적용시의 고려사항이 아님을 선언한 것이나 마찬가지다. 실제 2015년 결정은 이적표현물의 소지나 취득행위가 다른 행위에 비해 이적표현물의 전파가능성이나 국가와 사회질서에 위험을 야기할 실제적 위험성이 현저히 낮다고 단정할 수 없는 이상이라고 하여 전파가능성사회질서에 위험을 야기할 실제적 위험성을 같은 수준에서 언급한 바 있는데, 헌법재판소는 이번 결정에서도 특별한 성찰 없이 이를 되풀이하고 있을 뿐이다.

한편 2015년 결정에서 헌법재판소는 대법원판결을 인용하면서 대법원은 일관되게 이적행위를 할 목적에 대한 입증책임을 검사에게 부담시키면서, 행위자가 이적표현물임을 인식하고 표현물의 제작ㆍ소지ㆍ반포ㆍ취득 등의 행위를 하였다는 사실만으로는 행위자에게 이적행위를 할 목적이 있다고 추정해서는 안 된다고 판시하고 있다고 강조하면서, ‘5항이 사실상 이적행위를 할 목적을 추정하는 것으로 무죄추정의 원칙에 위배된다는 주장을 배척하였다. 그런데 헌법재판소가 인용한 대법원판결(2010. 7. 23. 20101189 전원합의체 판결)의 반대의견에 따르면 이적행위의 목적을 증명하는 직접증거가 없을 때에는 간접사실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판단할 수 있다고 하고 있고, 실제 제7조 제5항 위반 사건에서 검사들은 그렇게 기소를 해 왔으며, 법원은 그것을 묵인해 왔다. 이 점은 시민적 정치적 권리에 관한 국제규약 위원회가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대법원에서 유죄판결이 확정된 박태훈씨가 제기한 통보에 대하여 밝힌 의견에서 분명하게 지적되었다(조용환, “국가보안법 제7조가 국제인권규약에 위반한다는 유엔인권이사회의 결정문”, 민주법학 제15(관악사, 1999), 377-390). 더구나 위 대법원판결에 의하여 선례가 변경되기 전까지는 헌법재판소의 판시와는 달리 행위로부터 미필적 인식을 추정하는 것이 20년 가까이 확고한 판례로 유지된 바 있다. 그런 이유로 민주법연은 정부의 정책을 비판하거나 대북정책에 대한 의견을 제시하는 등 특정한 정치적 의견을 담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표현물의 전파를 억압하는 수단으로 남용될 위험성은 거의 없다2015년 결정의 판시는 어불성설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고 강하게 비판했지만(의견서, 191), 헌법재판소는 대상결정에서 이렇다 할 답을 제시하지 못했다.

이처럼 헌법재판소는 제7조 제5항에 대해서도 2015년 결정을 반복할 뿐 왜 그것이 선례로서 유지되어야 하는지에 대한 합당한 논거를 제시하지 못했다. 선례로서 유지되어야 한다는 선언만 있을 뿐 왜 그것이 선례로 유지될 수밖에 없는지에 대한 논증은 없었다.

 

 

III. , 어떻게?

 

이처럼 헌법재판소는 대상결정에서, 7조 제1항과 제5항의 위헌 여부에 관하여 8년 전의 결정을 선례로 인용하고 그것을 변경할 이유가 없다고 하면서도, 그 선례에 대하여 제기되었던 의문에 대해서는 침묵하고 말았다. 결론에 있어서뿐만 아니라 그 결론에 이르는 논증에서도 헌법재판소는 8년 전에 저지른 오류를 또 다시 되풀이하고 말았다. 민주법연은 그 의견서를 준비하면서 종래 헌법재판소의 결정에서 너무나 많은 허점을 발견했던 탓에 최소한 8년만에 선고되는 대상결정에서는 결론이 어떻게 되든 민주법연이 제기한 의문에 대한 어느 정도의 대답은 들을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그러나 헛된 기대였다. 이번 결정에서 헌법재판소가 한 일이라고는 앞서 본 통계와 외국 입법례를 제시하고는 2015년 결정을 변경할 필요가 없다고 선언한 것이 전부였다. 그마저도 의도적으로 선택된 통계와 국가보안법과는 상당히 결을 달리하는데도 이를 숨긴 채 내세운 외국입법례들이었다. 다수의견이 이적표현물 소지를 처벌한다고 내세운 외국 입법례들에 대해 반대의견은 그 적용범위가 엄격히 한정된 것이어서 국가보안법 제7조 제5항과 동일한 선상에서 비교할 수 없다고 반박했다. 헌법재판소가 이렇게까지 하는 이유가 도대체 무엇일까? 합헌결정을 선고할 수는 있지만 최소한 합헌에 이르는 논증은 보여주어야 할텐데, 헌법재판소는 그런 논증은 필요 없다고 생각하는 것인가?

그런데 이런 궁금증은 대상결정의 총론 부분에 의해서 해소되었다. 그것은 가히 국가안보지상주의또는 국가안보만능주의라 부를 만한 것이었다.

헌법재판소는 북한의 국가성을 부인하고 이를 반국가단체로 보는 것은 헌법상 영토조항에서 비롯된 것으로, 대한민국과 북한이 이념적으로 대립하는 역사적 상황에 대응하고자 한 대한민국 정부의 전략적 고려의 산물이라고 한다. 따라서 국가보안법의 존폐나 개정에 관한 논의는 영토조항을 통해 계승되고 있는 헌법제정권자의 의사를 현시점에도 유지하는 것이 타당할 것인지에 대한 진지한 헌법적 논의의 토대에서 이루어져야 한다고 하면서 헌법재판소는 한반도를 둘러싼 국제정세 및 북한과의 관계가 본질적으로 변화하였는지 여부를 거시적으로 살펴볼 필요가 있다고 강조한다.

이처럼 꽤나 거창하게 시작했지만 결론은 심플하다. 한반도의 이념적 대립 상황과 북한의 대남 적화통일노선의 본질이 변화된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북한은 2016년과 2017년 지속적으로 핵실험을 실시하였고, 2020. 6. 16. 개성공단 남북공동연락사무소를 폭파하였으며, 최근에도 전술핵운용부대의 핵반격 가상 종합전술훈련을 추진하고 장거리 미사일 발사실험을 계속하면서 한반도의 전쟁위기를 고조시키는 등, 대한민국을 향한 무력도발을 지속적으로 감행하고 있다는 것이 그 근거다. 더욱이 경제적 어려움 등으로 인해 북한 내부의 상황이 점점 더 불안정해지고 있으며, 이러한 내부적인 취약성을 극복하기 위해 북한이 군사도발 등 극단적인 행동을 취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한다. 이처럼 한반도를 둘러싼 지정학적 위험은 여전히 존재하고, 북한으로 인한 대한민국의 체제 존립의 위협은 현재 한반도를 살아가는 우리 대한국민이 직면하고 있는 엄연한 현실인바, 북한을 반국가단체로 보아 온 전통적 입장을 변경하여야 할 만큼 국제정세나 북한과의 관계에 있어 본질적인 변화가 있다고 볼 수 없다는 것이다.

남북관계나 군사외교 영역에 대하여 극히 제한된 정보밖에 가지고 있지 않은 헌법재판소가 이런 판단을 내리는 것은 굉장히 어색해 보일 뿐만 아니라 적절하지도 않다. 그런데도 헌법재판소는 대상결정의 다수의견에서 북한이라는 단어를 무려 41(2015년 결정을 인용한 부분을 제외하더라도 모두 31번이나 된다)이나 언급하면서 위와 같은 판단을 강행했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일부위헌이나 전부위헌의견을 낸 소수의견에서는 북한이라는 단어가 단 한 번도 등장하지 않는다. 이로 미루어볼 때 결국 헌법재판소 다수의견의 태도는 북한에 의해서 결정된 것이다. 북한이 있기 때문에 위험은 상존하는 것이고, 그런 위험으로부터 국가의 존립안전과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지켜내기 위해서는 표현의 자유, 과잉금지의 원칙, 죄형법정주의 등 모든 헌법의 원칙과 기본적 인권은 뒤로 물러서야 한다는 것이 헌법재판소의 확고한 입장임이 대상결정을 통해 가감없이 드러났다. 북한의 위험이 상존하는데, 민주법연이 제기한 정도의 의문에 대해서는 답할 필요조차 없었던 것이다. 과거에 북한의 반국가단체성은 공지의 사실에 속하여 그 인정에 증거를 요하지도 않는다는 대법원판결이 있었다(1993. 9. 28. 선고 931730 판결). 그 연장선상에 헌법재판소가 있다. 반국가단체인 북한이 핵실험과 장거리 미사일 발사 등 온갖 위협을 계속하고 있는 상황에서, 그것과 조금이라도 관련성 있어 보이는 행위와 표현을 처벌하는 것에 무슨 논증이 필요한가 하는 것이 이번 결정을 통해서 헌법재판소가 우리에게 던진 선언이다.

 

이 선언이 의미하는 것은 이제 국가보안법의 폐지는 오로지 입법적 방법에 의해서만 가능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국가보안법 폐지 운동의 목록에서 이제 사법적 해결은 지워야 하나? 국가보안법의 위헌성을 인정받기 위하여 헌법재판소의 문을 두드리는 일, 이제는 그만해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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