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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북에 이런 글 하나 썼습니다.

[원문 링크]  https://m.facebook.com/story.php?story_fbid=pfbid02Nm5Z5Rh7D3TktBvCePKCRw63DAYkqGRwLcmdHSNRwU5DonhrEU88f9p7UHwbpRD5l&id=100000462293060&mibextid=qC1gEa

(2023. 5. 26. 민주법연 홈페이지 [시평] 게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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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북에 담기에는 좀 긴 글이지만, 집회의 자유를 부정하고, 공공연히 헌법이 금지한 '허가제'를 도입하려는 현 정권의 태도를 보고 그냥 있을 수는 없어서 오늘 썼다. 

 

<집회의 자유 부정하는 윤석열 정부야말로 불법이다>

 

지난 5월 18일 윤희근 경찰청장은 건설노조가 17일 진행한 이태원참사 200일 추모문화제를 불법집회로 규정하고 거리 노숙을 했다는 이유로 혐오감을 유발했다며 엄중한 책임을 묻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에 호응하여 다음 날 국민의힘은 원내대책회의를 열어 관계부처의 엄정한 대응을 촉구하고, 관련법 개정 등 작업에 착수하겠다고 밝혔다. 박대출 국민의힘 정책위의장은 물대포를 사용해 집회를 해산하는 것이 법치라며 폭력을 부추기는 발언을 뱉기까지 했었다. 윤석열 대통령은 23일 국무회의에서 “지난주 1박 2일에 걸친 민노총의 대규모 집회로 인해 서울 도심의 교통이 마비됐다. 집회 시위의 자유를 보장하는 것이 타인의 자유와 기본권을 침해하거나 공공질서를 무너뜨리는 행위까지 정당화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과거 정부가 불법 집회·시위에 대해서 경찰권 발동을 사실상 포기한 결과, 확성기 소음·도로점거 등 국민들께서 불편을 감내하기 어려운 수준에 이르고 있다. 우리 정부는 그 어떤 불법 행위도 방치하거나 용납하지 않겠다.”고 발언했다고 알려졌다. 윤 대통령의 발언을 기다리기라도 했던 듯이 24일 열린 당정협의회는 점입가경으로 치달았다. △불법전력 단체의 공공질서 위협이 명백한 경우나 출퇴근시간대 도로 집회는 신고 단계에서 불허 △노숙도 집회의 연장으로 간주하고 문화제 등을 가장한 편법 집회에도 적극 대응 △심야시간대 옥외 집회 제한과 소음 기준 5~10데시벨 강화 집시법 개정 △경찰의 집회시위 대응 매뉴얼 강화라는 결과를 내놓았다. 

 

이명박 정부 때나 듣던 이야기를 10여년이 지난 지금 다시 듣게 되니 온 몸이 떨린다. 우리 헌정사를 돌이켜 볼 때 현재까지 나온 정부의 집회 대응 태도를 보면 이들은 1991년으로 돌아가기를 원하는 듯하다. 분신으로 사망한 건설노조 양회동 님의 죽음을 언어도단의 악의적인 유서 대필 의혹으로 덮으려 한 것이 조선일보라는 점도 따지고 보면 결코 우연이 아닌 듯 하다. 너무나 쉽게 들통이 나버리긴 했지만, 그것은 결코 단순 오보가 아니라 계획적인 조작이었고 조직적인 음모였다. 1991년에도 그랬듯이. 그런데도 1991년 유서대필사건 조작의 장본인인 곽상도의 현신이라도 된 듯 국토부장관 원희룡까지 나서서 조선일보를 무기삼아 유서대필을 기정사실화하려고까지 했다. 권언유착이 따로 없다. 윤석열을 비롯한 이 정권의 인사들은 건설노동자들을 ‘건폭’이라 부르고 민주노총을 불법집단으로 매도하고 있지만, 정작 폭력과 불법을 일삼는 집단은 바로 그들이다. 권력을 가진 폭력집단이니 ‘권폭’이라 해야 하나, 아니면 정부가 폭력집단이니 ‘정폭’이라 해야 하나? 탄핵당한 누군가의 표현을 빌리자면, 시민의 한 사람으로서,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이런 고민까지 해야 하나 싶어 자괴감이 든다. 도대체 그들은 무슨 짓을 꾸미고 있는가?

 

경찰청장 윤희근은 건설노조가 노조 탄압 중단과 사망 노동자 양회동씨 유족에 대한 사과를 요구하며 서울도심에서 5월 16일과 17일 1박 2일로 진행한 집회를 불법집회로 규정했다. 무엇이 불법일까? 양일의 집회 신고에 대하여 경찰은 오후 5시까지를 집회시간으로 제한했다. 건설노조는 이에 대응하여 5시 이후에는 건설노조의 집회가 아니라 이태원참사 200일 추모문화제에 합류하였다. 집시법 제15조는 추모제나 문화제는 집시법의 적용대상이 아님을 분명히 하고 있다. 경찰이 싫어하는 집회, 대통령이 싫어하는 집회라서 불법인가? 게다가 거리 노숙을 하는 것이 혐오감을 유발한다는 망언까지 서슴지 않는다. 시민이 거리에서 잠을 자거나 밤샘을 하면 불법인가? 박정희 시대의 통행금지의 부활인가? 그렇게 법치주의를 입에 달고 사는 이 정부 인사들은 마음에 들지 않는 모든 시민들과 그들의 행위에 대해 무턱대고 불법, 위법의 딱지를 갖다 붙이는 아주 못돼먹은 버릇이 있다. 아이들의 잘못된 버릇은 굳어지기 전에 어른이 바로잡아줘야 하듯이, 정부의 이런 못된 버릇은 정부의 윗사람인 시민들이 따끔하게 혼내서 바로잡아줘야 한다.

 

대통령과 경찰청장을 비롯한 이들은 건설노동자들의 대규모 집회로 서울도심의 교통이 마비되었다면서 그 책임을 전 정부 탓으로 돌리고 국민의 불편이 감내하기 어려운 수준에 달했다고 비난한다. 서울도심의 교통은 과연 마비되었을까? 수만 명이 참가한 대규모 집회였음에도 불구하고 실제 집회참가 노동자들이 사용했던 도로는 고작 4개 차로뿐이었다. 그러니 가장 보수적인 조선, 동아조차도 ‘극심한 교통혼잡’, ‘극심한 교통정체’라는 보도를 했을 것이다. 그런데 오히려 정부의 수반이 앞장서서 ‘교통 마비’라는 유언비어를 퍼뜨리고 있는 것이 이 나라의 현실이다. 정부가 바로 공공질서를 위태롭게 만드는 주범인 것이다. 고작 4개 차로를 몇 시간 동안 점하고 집회를 한 것이 진짜로 교통 마비를 가져왔다면, 그것이 집회 주최자나 참가자들에게 책임을 물을 일인가? 집회의 자유를 보장하면서도 교통 혼잡을 최소화할 수 있도록 적절하게 대처하는 것은 정부와 경찰의 당연한 임무 아닌가? 설사 과장을 섞어 교통이 마비되었다고 하더라도, 그런 교통 마비로 무슨 대단히 큰 일이라도 일어났는가? 몇 시간 동안의 불편이 그토록 감내하기 어려운 것이라면 헌법에서 집회의 자유는 지워져야 한다는 말인가? 노동자들을 파렴치한 보듯 하는 대통령과 정부에 항의하려고 스스로 몸을 불살라 산화한 동료 노동자를 추모하고 노조탄압에 항의하기 위하여 모인 노동자들이다. 그깟 몇 시간의 교통 불편 정도야 우리 시민들이 기꺼이 감내해야 하는 것 아닌가? 내가 생각하기에 이들이 감내하기 어렵다는 불편은 대통령과 정부 인사들의 불편이지 결코 시민의 불편은 아닐 것이다. 틈만 나면 자유를 강조하는 대통령이 생각하는 자유는 ‘대통령 마음대로 할 자유’뿐이고, 집단적 의사표시를 하기 위하여 거리에서 모일 시민들의 기본권인 ‘집회의 자유’는 불법이고 폭력으로 매도되고 있으니, 이것이 윤석열 대통령이 그토록 애지중지하는 자유, 그리고 자유민주주의의 모습인가?

 

거리 노숙을 하여 혐오감을 유발했다고? 집회는 서울광장 주변에서 이틀 동안 열리는 것으로 신고되었으나, 이틀 모두 5시까지로 집회를 제한한 것은 경찰이었다. 이틀 모두 집회에 참가하기로 하고 서울광장에 온 노동자들은 집회가 공식적으로 끝난 5시 이후에는 다른 추모행사에 참여하고 추모행사도 끝난 후에는 당연히 그 날 집회 장소였고 다음날도 집회가 열릴 장소인 서울광장과 인근 인도―차도가 아니다―에서 삼삼오오 모여서 노숙을 했을 것이다. 때로는 인근 편의점에서 약간의 주류를 사 와서 술잔을 나누기도 했을 것이다. 일부 언론의 보도에서처럼 화장실을 찾다가 너무 급한 나머지 거리에서 용무를 본 사람이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그런 일들이 무슨 대단한 범죄라도 되는 것처럼 떠들어대는 대통령 이하 정부인사들과 경찰들, 그리고 이를 부풀려서 되풀이해대는 찌라시 조선 등 언론 같지 않은 언론들이야말로, 국민들에게 감내하기 어려운 불편을 안겨주고 있지 않은가?

 

 

집권여당의 정책위의장 박대출이란 자는 한술 더 뜬다. 그는 물대포를 사용해 집회를 해산하는 것이 법치라며 경찰폭력을 부추기는 발언을 뱉기까지 했다. 경찰이, 살인적인 물대포 살수로 백남기 농민의 생명을 앗아간 것이 불과 7년 전이다. 그리고 불과 1달 전에, 백남기 농민 사망을 불러온 살인적 물대포 사용 책임자인 서울경찰청장에 대한 유죄판결이 대법원에서 확정됨으로써 물대포의 사용이 얼마나 폭력적이고 치명적이며 반인권적인지가 명확히 드러났음에도, 집권당의 중요 당직자의 입에서 살인 '물대포의 사용이 법치'라는 망언이 공공연히 나오고 있으니, 이 정권이 생각하는 법치가 결국 법의 이름으로 국민들에게 노예의 삶을 강요하는 것임을 만천하에 드러낸 것이나 진배없다. 하기야 대통령이란 사람이 입만 열면 법치를 떠벌이고 있으니, 그 아랫사람들이야 오죽하겠는가? 자치가 강조되어야 할 노사관계에서조차 노사자치가 아니라 노사법치라는 신조어까지 만들어 쓰는 자가 대통령이니, 이보다 더 큰 비극이 어디 있을까? 자기 맘에 들지 않는 모든 개인과 집단을 범법자, 수사 대상, 처벌 대상으로 바라보는 자들이 이 정권에는 너무나 많다. 그런데 여기서 당정협의회는 또 한 발 더 나간다. 집시법을 개악하고 경찰의 대응매뉴얼을 강화하겠다는 것이다. 

 

불법전력 단체의 공공질서 위협이 명백한 경우나 출퇴근시간대 도로 집회는 신고 단계에서 불허하겠단다. 단 한번이라도 집시법 위반 전력이 있는 단체가 집회신고를 하면 그 자체로 공공질서 위협이 명백한 것으로 간주하겠다는 뜻이다. 과거 어느 지방경찰청장이 민주노총이 주최하는 어떤 집회도 허용하지 않겠다는 망언을 공공연히 내뱉은 적이 있는데, 이번 집시법 개악 방침은 당정에 의한 것이니 한 단계 업그레이드된 버전인가? 과거의 집시법 위반―이번 건설노조와 민주노총 집회처럼, 집시법 위반은 경찰의 자의적 판단에 따른 경우가 대부분이다―을 이유로, 현재의 집회를 불허하겠다는 것은 헌법이 보장하는 집회의 자유를 경찰이 베푸는 시혜나 특권 정도로 여기지 않는다면 생각조차 할 수 없는 일이다. 그런데 대통령이 싫다니, 그냥 밀고나가는 무리들이 이 정부와 집권당이다. 영화에서 종종 등장하는 깡패 집단도 이 정도는 아니니, 양아치 패거리라고 할 수밖에 없다. 

 

게다가 출퇴근시간대 도로 집회는 신고 단계에서 불허하겠단다. 신고제를 허가제로 착각하지 않고서는 결코 정부 관계자의 입에서 나와서는 안 되는 말들이 거침없이 쏟아져 나온다. 집회에 대한 허가는 인정되지 않는다는 헌법의 명문 규정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집회 허가는 정부의 권한이나 재량쯤으로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기껏 생각해서 허가해줬더니 감히!'가 이들 머릿속에 뿌리 깊게 박혀있는 생각일 것이다. 그러나 집회는 집단적 의견을 가장 효과적으로 전달할 수 있는 시간대에, 그런 장소에서 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 기본권으로서 보호되는 집회다움이 갖춰지고 또 유지될 수 있다. 그런데 이를 위하여 가장 좋은 장소는 도로와 광장, 공원과 사람들의 왕래가 잦은 공공기관 주변이다. 시간적으로는 유동인구가 가장 많을 수밖에 없는 출퇴근시간이 집회에는 최적이다. 물론 출퇴근시간대에 거리에서 집회를 하게 되면 엄청난 불편이 수반된다. 그렇지 않아도 정체가 심한 도심에서 대규모 집회를 하게 되면 출퇴근시간은 평소의 2-3배가 걸릴 수 있고, 일부 도로는 통행이 불가능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런 불편은 집회의 자유를 기본권으로 보장하는 이상 시민들이 감수해야 하는 불편이다. 내가 이런 불편을 감수할 수 없다면 나 역시 가장 효과적인 장소에서 가장 효과적인 시간대에 나의 생각을 이야기하기 위해 집회를 개최하고 집회에 참가할 자유를 누릴 수 없게 된다. 그런 생각이 널리 퍼지면 우리 모두는 집회의 자유 없는 끔찍한 세상에 의지할 곳 없이 던져지게 된다. 나찌가 공산당원들을 덮쳤을 때, 사민당원들을 가두었을 때, 노동조합원을 덮쳤을 때 침묵했더니, 나찌가 나를 덮쳤을 때 나를 위해 말해줄 사람은 아무도 남아 있지 않았다던 어느 시인의 말처럼 말이다. 

 

출퇴근시간대에 대규모 집회가 도심에서 열린다면, 도로교통과 질서유지를 책임지는 정부(경찰)의 입장에서는 물론 대책을 세워야 한다. 집회가 열리기 일정 기간 이전까지 경찰에 신고하도록 하는 이유는, 바로 이 때문이다. 집회의 자유를 보호하면서도 시민의 불편―감수해야 할 불편이라 하더라도―을 최소화할 수 있는 방안을 준비하고 마련할 책임이 경찰에게 있기 때문에, 미리 그런 준비를 할 수 있는 시간적 여유를 ‘신고’라는 제도를 통하여 경찰에게 제공하는 것이다. 그런데 ‘불허’한다고? 우리가 이런 경찰을 불허해야 하고, 이런 정부를 불허해야 한다.

 

‘노숙도 집회의 연장으로 간주’하고 적극 대응하겠단다. 1박 2일 예정으로 신고한 집회에 대해 경찰이 집회 시간을 양일 모두 오후 5시로 제한하지 않았다면, 노동자들은 집회의 연장인 노숙을 하는 것이 아니라 집회의 후반부 행사에 참여하고 있었을 것이다. 다음날도 참가하기로 예정된 집회를 아무 근거도 대책도 없이 끊어버린 것이 경찰인데, 참가노동자들의 노숙을 문제삼으려면 이들이 다음날 집회에도 차질 없이 참여할 수 있도록 경찰이 원하는 집회참가자들에게 숙소라도 제공해야 하는 것 아닌가? ‘문화제 등을 가장한 편법 집회에 대응’한다는 대목에 이르면 실소를 금할 수 없다. 언제부턴가 많은 집회들이 문화제나 축제 형식으로 개최되어 왔다. 그 이유는 문화제나 축제의 경우 집시법 제15조에 의해 집시법의 적용 대상에서 제외되기 때문이지만, 더 근본적인 이유는 집회 신고서를 제출했음에도 금지통고를 받는 일이 너무 흔하기 때문이다. 즉 말은 신고제이지만 신고해봐야 금지되니, 집회를 하고자 하는 시민들이 궁여지책으로 찾아냈던 방법이 집시법 적용을 받지 않는 문화제 등 형식으로 집회를 개최하는 것이었다. 이것은 편법이 아니라 법무부장관이 좋아하는 '합법'이다.

 

어떤 사람은 '신고하면 다 집회 할 수 있는 것 아닌가?' 하고 물을지도 모르겠다. 2009년에, 14개 정당 및 사회단체들이 신고제가 정말 신고제로 운영되는지―신고만 하면 집회를 개최할 수 있는지―를 확인해 보기 위해서 서울 시내 100군데에 집회신고서를 제출한 적이 있었다. 그런데 당시 금지통고가 되지 않고 집회를 개최할 수 있었던 곳은 단 한 군데밖에 없었다. 신고된 100개의 집회는 그 시간과 장소가 금지시간도 금지장소도 아니었지만 경찰은 신고된 100개의 집회 중 99개에 대하여 금지통고를 했다. 이처럼 100개의 집회 중 하나만 가능하다면 이를 신고제라 부를 수는 없다. 이는 명실상부한 허가제이고, 집회는 원칙적으로 금지되며, 오로지 경찰이 허용하는 경우에만 예외적으로 할 수 있을 뿐인 것이다. 이렇게 되면 집회의 자유는 더 이상 권리가 아니며, 경찰의 시혜에 의한 특권으로 변질되어 버린다. 이런 위헌적인, 아니 반헌법적인 상황이, 한국에서 집회의 자유가 처한 현실이다. 그러고 보면 ‘신고 단계에서 불허한다’는 것은 이미 위헌적으로 운영 중인 허가제를 법률에 명시함으로써 공식화하겠다는 것에 불과하다. 그러나 법률에 명시하여 ‘합법’의 가면을 씌운다고 해서 허가제의 ‘위헌성’, ‘반헌법성’이 숨겨질 수도 없고, 치유될 수도 없다.

 

 

심야시간대 옥외 집회 제한과 소음 기준 5~10데시벨 강화는 또 어떤가? 이미 헌법재판소는 2009년에 야간옥외집회를 금지한 집시법 제10조에 대하여 헌법불합치결정을 선고한 데 이어, 2014년에는 야간시위 금지에 대해서도 한정위헌결정을 선고하면서 자정 이전의 집회 금지는 명백한 헌법위반이고, 자정 이후의 집회에 대해서는 입법자의 판단에 맡겨진다는 입장을 취한 바 있다. 그러나 이후 10여년 동안 국회는 어떤 입법조치도 취하지 않음으로써 제10조의 사실상의 소멸을 선택하였고, 그 결과 2016-2017년 야간과 심야에 지속된 촛불집회는 헌법을 배신한 대통령을 탄핵하는 성과로 이어질 수 있었다. 그런데 지금에 와서, 당정이, 새삼스럽게 '심야집회 금지'라는 카드를 10여년만에 다시 꺼내든 이유는 무엇인가?(2010년에 한나라당은 오후 10시부터 오전  6시까지의 집회를 금지하는 내용의 집시법 개악안을 발의한 적이 있다) 그것은 야간과 심야에 펼쳐질 촛불집회를 막음으로써 윤석열 대통령 자신에게 한발한발 다가오는 퇴진 요구의 발걸음을 늦춰보겠다는 것 아닐까? 그러나 이들의 바람과는 정반대로 그것은 퇴진을 더욱더 앞당기는 자충수가 되고 말 것이다. 

 

소음 기준을 5~10데시벨 강화한다는 건 무슨 소리인가? 집시법시행령에 따르면 현재 주거지역 등을 제외한 지역의 소음기준은 등가소음도(10분동안 측정치) 기준으로 주간에는 75데시벨 이하이고, 야간(심야 포함)에는 65데시벨 이하이다. 그런데 이를 심야시간대에 5~10데시벨 강화한다는 것은 24:00-07:00의 심야시간에 소음기준을 55-60데시벨 이하로 강화한다는 뜻이다. 국가소음정보시스템(https://www.noiseinfo.or.kr/)에 따르면 ‘조용한 승용차’나 ‘보통회화’가 발생시키는 소음이 60데시벨이고 ‘조용한 사무실’의 소음이 50데시벨이라니, 현재의 65데시벨 기준을 55-60데시벨로 강화한다는 것은 침묵시위 이외에는 거의 모든 집회를 허용하지 않겠다는 것이나 다름없다.

 

이처럼 정부여당이 내놓은 집시법 개정방안을 살펴보면 자정 이후의 집회는 하지 말라는 것임을 어렵지 않게 알 수 있다. 그렇게 자유를 좋아하는 정부에서, 헌법이 소중한 기본권으로 보장하는 집회의 자유는 행사하지 말라고 한다. 결국 그 자유는 시민의 자유, 국민의 자유가 아니라 집권자의 자유이고 권력의 자유였던 것이다. 그런데 정부여당은 법률만 바꾸겠다는 데서 멈추지 않는다. 경찰의 이른바 ‘집회시위 대응 매뉴얼’을 강화하겠다는 방침도 아울러 발표했다. 게다가 경찰청장은 “집회·시위 현장에서의 적극적 법 집행으로 문제가 발생할 경우, 본인의 신청이 없더라도 적극행정 면책심사위원회를 개최하고 적극행정으로 결정 시 징계요구 없이 즉시 면책하도록 하겠다”는 경찰면책방침까지 공언하고 있다.

 

‘집회시위 대응 매뉴얼’은 이명박 정부 출범과 함께 대폭 강화된 적이 있다. 소위 불법집회에 대한 무관용대응을 의미하는 매뉴얼 강화는, 경찰의 시각에서 볼 때 불법적인 또는 과열된 집회에 대해서는 해산 후 참여자의 귀가로 집회를 종료시키는 것을 넘어서 집회 참가자를 끝까지 추적하여 검거할 것을 경찰의 행동양식으로 규정했고, 추적과 검거가 곧 해당 경찰관에 대한 표창 등 포상으로까지 이어졌기 때문에, 촛불집회에 참여한 시민들을 상대로 한 경찰의 폭력적인 공권력 행사가 일상적으로 벌어지는 참상으로 이어진 바 있다. 그런데 경찰청장의 매뉴얼 강화 발표는 바로 그런 폭력적 공권력 행사를 일상화하겠다는 것이면서 동시에 명백히 불법인 경찰폭력을 ‘적극행정’으로 분식하는 것이며, 법치주의의 적용을 배제하여 그런 폭력행사에 대하여 책임을 묻지 않겠다는 것이다. 더구나 경찰청 인권위원장을 맡고 있는 헌법교수가 “건설노조는 애초에 철야집회로 신고하지도 않았으면서 철야집회를 강행했”다고 어처구니없는 사실왜곡까지 해 가면서 “건설노조 집회는 정상적 집회로 보기 어렵다”고 규정한 채 “불법적 집회는 보호될 필요가 없다”고 경찰청장의 말에 힘을 실어주고 있는 형국이다. “폭력 경찰 물러가라!”란 구호가 곧 다시 등장할 전망이다. 수많은 사람들이 국가폭력에 희생되었던 1991년이 다시 눈앞에 다가온 느낌이다. 치가 떨린다!

 

앞서 보았듯이 윤석열 대통령은 “우리 정부는 그 어떤 불법 행위도 방치하거나 용납하지 않겠다.”고 공언했다. 꼭 한 마디 해 주어야겠다. 우리 국민들은 정부의 어떤 불법도 방치하거나 용납하지 않을 것이다. 법치주의의 적용 대상은 국민이 아니라 정부이고 권력이니까!  <끝>

 

[시평_김종서] 집회의 자유 부정하는 윤석열 정부야말로 불법이다(2023. 5. 26.).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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