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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수 194
조회 수 : 7095
2002.10.08 (12:58:00)

시평과 관련하여 쟁점토론실에 올려져있는 정태욱 선배님의 글을 이곳에 옮겨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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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시평 '주한미군의 범죄와 한국의 형사법'을 보고 좀 지난 것입니다만 올려 봅니다. 큰 차이는 없습니다만, SOFA 문제의 뿌리인 한미 군사관계, 그리고 더 나아가 미국의 군사전략의 문제를 부각하고자 하였습니다.

9월 3일자 동국대 대학원 신문에 실렸던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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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군의 공무집행과 한반도 문제


효순과 미선, 두 여중생이 끔찍한 사고를 당하였다. 미군 장갑차의 무한궤도는 두 어린 생명을 무참히 앗아갔다. 범죄는 형벌로써 단죄되며, 형벌은 재판을 통하여 선고된다. 우리 영토에서 우리 국민이 희생되었다면 그 재판은 우리 법원에서 이루어지는 것이 형법의 원칙이다. 그런데 이 사건의 경우 법은 그 원칙을 따르지 않는다. 즉 미군 스스로 재판권을 행사한다. 우리 정부는 단지 미군 측에 재판권 포기를 요청할 수 있었을 뿐이며, 그것은 '공무집행 중'의 범죄라는 이유로 간단히 거부되었다.

여기서 미군은 대한민국의 땅에서 무언가 특혜를 받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즉 일종의 치외법권을 누리고 있는 것이다. 그 특혜의 상징이 바로 SOFA이다. 아무리 참혹한 범죄라고 하여도 공무집행 중 발생한 것이라면 그 재판권은 미군에 속한다. 도대체 SOFA의 규정이 어떻기에, 아니 SOFA라는 것 자체가 무엇이며 어떻게 생겨난 것이기에, 그와 같은 몰상식으로 두 여학생의 영혼을 다시 슬프게 하는가? 이글은 이러한 문제의식 하에 우선 SOFA의 규정부터 시작하여 나아가 주한 미군과 한반도의 문제까지 짚어보고자 한다.

형사재판권에 대한 것은 SOFA 제22조에 규정되어 있는데, 그 조항은 몇 쪽에 이르는 방대한 조문이다. 그 곳의 제3항에는 이른바 '관할권 경합'이라는 것이 나오는데, 이는 우리 법과 미국 법에 의하여 모두 범죄로 인정되는 경우(즉 일반적인 범죄의 경우)에 과연 어느 나라가 우선적으로 재판권을 행사하는가의 문제이다. 그에 관해 SOFA는 일반적으로는 한국이 우선권을 가지는 것으로, 즉 '일차적 재판권'을 행사할 수 있는 것으로 되어 있다(제3항 (나)). 하지만 이미 얘기한 대로 그에는 단서가 있다. 바로 공무집행 중의 범죄인 경우에는 그 재판권이 미군 당국에 속한다는 것이다(제3항 (다)). 이 사건의 경우, 군사훈련 중이었으니 공무집행이 아니라고 할 수 없다. 당연히 우리의 재판권은 배제되는 것이다.

이처럼 우리가 행사할 수 있다는 일차적 재판권은 빈약한 것이다. 조금 더 자세히 얘기해 보자. 공무집행의 여부를 다툴 수는 없는가? 즉 공무집행 여부에 대한 판단은 누가 하는가? 이 문제는 SOFA 본 협정에는 나와 있지 않다. 그러나 본 협정 뒤에 또 다른 것이 있다. 그 협정을 운영하는 데에 필요한 사항을 규정한 이른바 '합의의사록'이라는 것이다. 이 합의의사록은 본 협정에 관해 양국이 인정한 '양해사항'을 규정한 것이나, 그것은 본 협정과 동등한 효력을 갖게 된다. 그 합의의사록에 따르면 공무집행의 입증은 미군 당국이 발행한 증명서로서 충분하다고 되어 있다. 다만 우리 검찰이 그에 관하여 반증을 하게 되면 그 문제는 한미 간에 다시 토의될 수 있다고 되어 있으나, 이는 예컨대 '미-일(美日) SOFA'의 규정처럼 일본 법원이 최종결정을 할 수 있다는 것과는 천양지차이다.

더 나아가 우리가 일차적 재판권을 행사할 수 있는 일반 범죄(공무집행 중의 범죄가 아닌)의 경우에도 우리의 재판권은 확고한 것이 아니다. SOFA 제22조 3항 (다)에는 일차적 재판권을 가지는 국가는 '타방 국가가 이러한 권리 포기를 특히 중요하다고 인정하는 요청'이 있으면, 그에 대하여 '호의적인 고려'를 하여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그 '호의적인 고려'란 무엇일까? 이에 대한 구체적인 답이 역시 합의의사록에 나온다. 미군의 요청이 있으면 대한민국은 그 '재판권을 행사함이 특별히 중요하다고 결정하는 경우를 제외하고' 일차적 재판권을 '포기한다'라고 하여 그 '호의'가 무엇인지 확실하게 말해주고 있다.

그러면 우리가 미군에 요청할 경우에도 미군으로부터 그러한 '호의'를 기대할 수 있는가? SOFA 본 협정에는 분명 그 '호의적 고려'를 쌍방 국가에게 요구하고 있으므로 그럴 수 있을 것 같다. 하지만 합의의사록에 미군 측의 의무에 대하여는 전혀 언급이 없다. 즉 합의의사록은 다만 미군이 우리에게 재판권 포기를 요청하는 경우만을 상정하고 있는 것이다. 얼마나 불평등한가? 이번 사건에서 우리 정부가 미군에 재판권포기를 요청한 것은 바로 그 규정에 근거한 것이다. 그러나 미군에게서 '호의적인 고려'를 볼 수는 없었다. 미군 당국은 공무집행 중의 범죄의 경우에 재판권 포기의 전례가 없다는 이유로 그것을 거부한 것이다.

그밖에 설사 우리가 재판권을 행사할지라도 SOFA에는 많은 제약조건이 명기되어 있다. 수사의 방식, 범위, 신병처리 등에서 미군은 특권을 누린다. 우리 국민들에게는 추상같은 재판권이 우리 국민에게 범죄를 저지른 미군에 대하여는 허약한 것이다. SOFA는 우리 주권 위에 놓여 있는 미군의 안온한 소파인 것이다.

그나마 현재의 SOFA는 많이 나아진 것이다. 우리가 미군에게 일차적 재판권 포기를 요청한 것도 이번이 처음이다. 주한미군 사령관과 미 국무장관이 사과를 한 것도 이번이 처음이다. 도대체 SOFA의 불평등성과 미군의 고자세는 어디에서 연유하는가? 바로 전쟁이다. 미군은 우리를 보호해 주기 위하여 목숨을 걸고 파병되어 왔다는 것이다. SOFA의 조상은 대전협정(주한미군 군대의 형사재판권에 관한 대한민국과 미합중국 간의 협정)과 마이어 협정(대한민국과 통합사령부 간의 경제조정에 관한 협정)이다. 이 양 협정은 모두 한국전쟁 중 체결된 것이다. 대전협정은 일체의 형사재판권을 미군 당국에 양도하는 것이며, 마이어 협정은 민사적 손해배상을 사실상 포기한다는 것이다. 즉 미군은 한국을 위하여 전쟁을 수행하고, 재판권은 한국으로부터 양도받는다는 것이다.

한국전쟁이 지난 후에도, 한국과 미국은 한미상호방위조약을 통하여 군사적 동맹관계, 정확히 말하면 미군의 보호관계를 지속한다. 그리고 그 조약 제4조에서 다음과 같이 주한미군의 지위를 규정하였다: "상호적 합의에 의하여 미합중국의 육해군과 공군을 대한민국의 영토 내와 그 부근에 배비(配備)하는 권리를 대한민국은 이를 허여(許與)하고 미합중국은 이를 수락한다."라고 되어있다. SOFA의 근거법은 바로 이 상호방위조약 제4조이다. SOFA의 공식명칭은 '대한민국과 아메리카합중국간의 상호방위조약 제4조에 의한 시설과 구역 및 대한민국에서의 합중국 군대의 지위에 관한 협정'이다. 많은 사람들이 미군 주둔을 반대하고 미군을 싫어해도 할 수 없다. 위 조약이 유효한 한, 미군은 한국의 요청으로 정당하게 한국 영토에 주둔하는 것이다.

이번 사건과 같은 형사재판권의 조항은 앞으로 개정될 수 있을 것인가? 지금까지 SOFA가 두 차례에 걸쳐 개정되어 왔듯이 어느 정도 개정의 여지는 있을 것이다. 그러나 한미상호방위조약이 그대로 있는 한, 그리하여 미군이 한국의 요청에 의하여 당당한 권리로서 주둔하는 한, 그 개정에는 한계가 있는 것이다.

미국의 일방주의의 완력은 전세계적으로 오히려 더욱 거세지고 있다. 최근에 출범한 국제형사재판소(ICC)의 관할권의 문제를 둘러싸고, 세계가 진통을 겪었다. 미국 부시 정부가 국제형사재판소의 창설조약인 로마조약을 비준하기는커녕 오히려 클린턴 정부 때 했던 서명도 철회하더니, 급기야 자국민에 대하여 면책특권을 주지 않으면 국제평화유지군 참여를 거부한다고 생떼를 놓았기 때문이다. 결국 유엔안보리에서는 미국의 입장이 고려되어, 평화유지군에 참여하는 미군에 대하여는 잠정적으로 면책을 보장하는 결의안을 채택하고 말았다. 나아가 미국은 미군이 파견되어 있는 각국에 대하여 자국민을 국제형사재판소에 기소하지 않는다는 협약을 체결할 것을 강요하고 있다.

국제형사재판소는 전 세계의 평화와 인권의 여망을 안고 출범한 것으로서 인류 법질서의 새 희망이었다. 미국은 그러한 여망을 무시하고 전지구적으로 면책특권을 외치는 것이다. 이 얼마나 가당찮은 일인가? 여기서 우리는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지 않을 수 없다. 냉전체제가 무너진 후에도 계속되는 미국의 일방주의는 과연 세계 평화에 기여하는가 아니면 오히려 세계 평화를 해치고 있는가?

우리 한반도에서도 마찬가지이다. 미군은 한국전쟁과 북한의 위협으로부터 우리의 주권을 보충하며 남한의 체제를 지켜주었다. 하지만 남북의 국력이 역전되고, 남북이 서로 평화의 의지를 선언하고 있는 이 시점에서 미군의 성격은 과연 무엇인가? 미국이 북한을 '악의 축'의 범주에 넣고 핵사용을 포함한 선제공격과 북한 전 지역의 점령을 목표로 하는 군사전략을 운용하고 있는 이 때, 과연 한반도의 위기는 어디에서 오는가? 한반도에 위기가 지속되는 한 미군은 항상 '공무집행 중'이며, 미군이 '공무집행 중'인 이상 한반도의 위기는 지속된다. 한미관계에 대한 재인식과 한미상호방위조약에 대한 재점검이 없이 SOFA의 제자리 찾기는 난망(難望)이다.


* 민주법연님에 의해서 게시물 복사되었습니다 (2006-07-31 18: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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