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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06.05 (00:00:00)
통일논의에 대한 단상

박 병 섭(상지대 법학과)


   6.15 남북정상회담 합의문 중 일부조항을 재검토하겠다는 이회창 한나라당 대통령 후보의 발언에 대해 청와대와 민주당이 강하게 비판하고 나서면서 이 문제가 새로운 정치쟁점으로 떠오르고 있다. 이 후보가 재검토 의사를 밝힌 부분은 “남과 북은 나라의 통일을 위한 남측의 ‘연합제’안과 북측의 ‘낮은 단계의 연방제’안이 서로 공통성이 있다고 인정하고 앞으로 이 방향에서 통일을 지향시켜 나가기로 하였다.”는 합의문 제2항이다. 이회창 후보의 주장의 요지는 이 조항이 결과적으로 북한의 연방제 통일안을 수용해준 것이 아니냐는 것이다. 즉 북한의 적화통일전략인 ‘고려연방제’로 가기 위한 과도기적 전술에 넘어갔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정부와 민주당은 “이 조항은 북한의 ‘연방제’가 ‘낮은 단계’라는 표현을 통하여 우리의 단계적 통일안인 ‘연합제’쪽으로 더 가깝게 다가왔음을 뜻한다”고 반박하며, “북한이 내부선전용으로 ‘고려연방제’ 주장을 계속 펴고는 있지만, 실제 내용상으로는 우리의 통일방안에 근접했으니 문제될 게 없다”는 것이다. 이러한 설명은 제2항에 대한 문리적 해석이나, 연방국가와 국가연합에 대한 전통적인 개념정의에도 부합되는 것으로 큰 무리가 없어 보인다. 대부분의 북한 전문가들도 이미 북한 스스로 ‘낮은 단계의 연방제’에 대해 2개의 국가가 정치․외교․국방권을 별도로 규정했다는 점을 들어 ‘낮은 단계의 연방제’는 남측의 ‘국가연합제’에 가깝다고 지적하고 있다. 하지만 한나라당측은 “연방제는 아무리 낮은 단계라도 사회주의적 통일을 지향하는데, 이것이 어떻게 자유민주주의적 통일을 지향하는 우리의 ‘연합제’와 같을 수 있느냐”며 “민주당과 노무현 후보는 통일을 고려연방제로 해야 한다는 것인지를 밝히라”고 요구했다. 한나라당의 주장은 대부분 이해부족과 편견에서 기인하거나 냉전적 정치공세에서 비롯된 억지이기 때문에 반박의 가치조차 없다고도 볼 수 있지만, 통일논의의 최소한의 기준설정을 위하여 이러한 주장을 구체적으로 검토해보는 것도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북한의 ‘고려연방제안’은 남북이 체제를 그대로 두고, 연방정부를 구성하여 정치․군사․외교적 주권을 행사하고, 나머지 부분은 지역정부가 자치를 하자는 것이다(1민족 1국가 2체제). 남한의 주장은 우선 남과 북의 적대적 대결상태를 해소하기 위한 화해․협력단계를 거쳐, 남과 북이 상호주권을 인정하는 국가연합을 구성하고(1민족 2국가 2체제) 궁극적으로는 통일단일국가를 수립하자는 것이었다. 그런데 2000년 6월 남북 정상회담 당시 김대중 대통령은 완전한 통일에 앞서 현재 남북한 체제를 그대로 유지하면서 화해․협력을 계속해 나가는 중간단계를 상정하며 남북연합에 대해 설명하자,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우리도 그렇게(과도단계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답했다고 알려져 있다. 그래서 양측이 통일방안논의에서 모두 중간단계를 생각하고 있다는 점과 ‘국가연합제안’(남측)이나 ‘낮은 단계의 연방제안’(북측)이 외교․국방권을 지역정부에 주는 점등이 비슷해 공동선언에 담았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북한의 ‘낮은 단계의 연방제’란 어떠한 배경에서 제기되었으며, 어떠한 정치적 의미를 가지는 것일까? 북한은 사회주의권의 붕괴가 진행되고, 경제난이 심화되는 시대에 들어서면서 분명히 과거와는 구별되는 대남정책을 구사하기 시작했다. 특히 ‘고려연방제’에 대한 설명에서 상이한 체제의 공존을 강조하고 있고, 이마져도 지금부터 수십년은 걸리기 때문에 과도단계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러한 정책변화의 이면에는 ‘연방제’에 대한 북한 지도부의 변화된 인식이 자리잡고 있다. 그동안 자신들이 통일방안으로 주장해왔던 ‘고려연방제’가 이제는 오히려 자신들의 체제를 위협할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고 볼 수 있다. 사실 한 국가 내에서 상이한 체제의 공존이 장기간 계속되기는 어렵다. 특히 하나의 민족으로 이루어진 연방국가는 생각보다는 빠른 속도로 하나의 체제를 가진 단일국가로 전환될 가능성이 많다고 할 수 있다. 실제로 1990년대 이후 변화된 정세여건 하에서는 ‘연방제’가 북한 지도부가 가장 두려워하는 남한에 의한 흡수통일을 재촉할 수도 있는 것이다. 북한선전매체들이 ‘고려연방제’가 북한사회의 체제 이데올로기가 되어있는 상황에서 의도적으로 ‘낮은 단계의 연방제’가 기존의 ‘고려연방제’의 연장선에 있음을 강조할 수밖에 없지만, 이제는 자신들의 체제를 유지하기 위해서라도 이미 ‘연방제’라는 이름을 가진 ‘국가연합’을 선호하기 시작했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 한나라당측이 아직까지도 ‘연방제’를 북한의 공산화전략으로 간주하는 것은 기본적으로 변화된 통일환경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시대착오적인 냉전적 사고의 산물이라고 볼 수 있다.

우리가 남북한의 통일을 정말로 원한다면, 우선 적대적인 대립관계를 해소할 수 있는 일정한 과도기적 단계를 거쳐 통일국가로 나아가는 길을 논의하는 것이 지극히 평범한 상식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남북한 정부는 통일방안에 대하여 ‘국가연합제안’과 ‘연방제안’이라는 두 가지 방안을 놓고 대립하여 왔다. 그렇다면 우리는 당연히 이러한 질문을 하게된다. “남한의 ‘국가연합안’과 북한의 ‘연방제안’의 차이는 무엇이고 공통점은 무엇인가? 이러한 차이는 해소될 수 없는 것인가?” 다행히 2000년 6월 남북정상회담 당시 북측이 ‘낮은 단계의 연방제’라는 새로운 개념을 제시함으로써 남북간에 통일방안에 대한 공통점을 확인하였다는 것은 남북관계의 신뢰구축과 관계개선에 획기적인 기여를 했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의미에서 6․15 남북 공동선언 제2항은 통일국가에 대한 구체적인 법적 합의라기보다는 남북이 화해․협력을 통한 단계적․점진적 통일을 이루는 과정에 합의했다는 데 중요한 의미가 있는 정치적 선언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지난해 9․11 미국테러가 발생한 이후 미국은 ‘악의 축’ 운운하며 대북강경책을 펼쳤고 지금까지도 북한과 미국은 대화를 중단한 상황이며, 남북관계도 별 진전이 없는 상태이다. 지금 이러한 시점에서 한나라당측이 ‘자유민주주의체제=시장경제’로의 통일을 강조하는 것은 북한에게는 당연히 남한에 의한 일방적인 흡수통일의 위협으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고, 이는 북한을 불필요하게 자극하여 남북간의 긴장을 고조시키는 것으로 지극히 위험한 발상이라고 할 수 있다. 또한 일부에서는 이회창 후보가 대선을 앞두고 ‘6․15 남북 공동선언 제2항 재점검=자유민주주의체제 수호’임을 내세워 김대중 정부의 햇볕정책에 실망한 보수층을 공략하기 위해서라는 분석도 있는데, 이러한 선거전략이 사실이라면 자신의 득표를 위하여 민족의 운명을 담보하려는 것으로써 “냉전논리와 분단적 사고를 가진 인물”이라는 비난을 받을 수밖에 없다.

끝으로 한나라당의 ‘자유민주주의체제’로의 통일에 대한 주장도 자세히 검토해보면 지극히 냉전적인 논리에 기초하고 있음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대한민국헌법은 전문과 제4조에서 남북한의 통일추진원칙으로서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입각한 평화통일의 원칙을 천명하고 있다. 우리나라 헌법재판소는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의 해석에 있어서 독일연방헌법재판소의 공산당판결을 거의 그대로 원용하면서도 사유재산과 시장경제를 골간으로 한 경제질서를 추가하고 있는데, 이는 우리 법조계가 서구와는 달리 아직도 남북분단상황을 내세워 냉전적 법논리에 집착하고 있음을 보여주는데 기인하고 있다. 자본주의적 경제질서가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의 구성요소가 될 수 있을 것인가의 문제에 대하여 독일연방헌법재판소는 투자보조금판결에서 “현재의 경제질서는 독일기본법에 합치되는 것이지만, 이것은 결코 이제도만이 허용된다는 의미는 아니다”라고 밝히고 있다. 또한 베를린 고등행정법원은 강의의 자유에 대한 결정에서 “자본주의체제를 근본적으로 부인하고, 사회주의체제를 적극적으로 찬양한다고 해서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부인한 것이라고 볼 수 없다”고 분명히 하고 있다. 비록 대한민국의 현행헌법이 일정한 경제질서를 규정하고 있지만, 이 규정을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의 본질적인 내용이라고 볼 수 없다.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대한 서구사회의 일반적인 인식은 독일연방헌법재판소가 규정하고 있는 “다수의 의사에 기초한 국민의 자기결정”으로 표현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대한민국 헌법이 규정하고 있는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입각한 평화통일의 원칙”의 정확한 의미는 통일의 내용과 원칙이 국민적 합의를 바탕으로 이루어져야한다는 것이며, 어떠한 전제조건을 강제하는 것은 결코 아니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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