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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프레시안, 2009.3.16자,  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60090316225640&section=03

대법원장, '사법스캔들 진상규명' 대미를 장식하라

내부조사 한계 드러낸 '핵심' 빠진 조사결과

대법원 진상조사단은 16일, 신영철 대법관의 이메일과 전화는 재판관여에 해당하지만 판결에는 영향을 주지 않았다는 예상된 조사결과를 내놨다. 신 대법관의 행위의 성격에 대한 논란을 해소한 점은 평가할 만하지만, 특별한 관심을 모았던 "대법원장님의 뜻"을 밝히기 위해 이용훈 대법원장에 대해 어떤 조사를 했는지 별다른 언급이 없는 점이 큰 아쉬움으로 남는다. 판소리로 치자면 '눈' 대목이 빠진 엉성한 조사결과가 아닐 수 없다. 내부조사의 한계를 뛰어넘지 못한 이번 조사결과 발표로 대법원이 호미로 막을 일을 가래로도 못 막게 될까봐 걱정이다.

신 법원장은 '대법원장 업무보고'라는 제목의 이메일에서 "대법원장님의 뜻"도 다르지 않다고 언급하며 대법원장의 권위를 빌려 썼다. 이용훈 대법원장도 이메일의 내용이 드러난 직후 "내 뜻과 일맥상통 한다"고 공개적으로 시인했다. 이어서 "위헌이라고 판단하는 판사는 위헌제청을 하면 되고 합헌이라고 판단하는 판사는 그대로 재판하면 되는 것 아니냐"며 "이런 이메일을 받고 압력으로 느낀다면 판사자격이 없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당시의 맥락으로 볼 때 주요언론은 모두 이 대법원장의 발언을 신 법원장의 행위를 두둔한 것으로 해석했다.

그래서 묻는다. 과연 신 법원장의 메시지가 합헌으로 판단하는 경우에 한해 재판을 계속하라는 소극적인 주문이었나, 아니면 판사 개개인의 소신과 상관없이 현행법, 즉 촛불처벌규정에 따라 유죄판결을 계속하라는 적극적인 주문이었나? 나는 후자로 해석한다. 진상조사단도 후자로 해석한 게 틀림없다. 그렇지 않다면 재판관여로 판정했을 리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 대법원장은 누가 봐도 후자로 해석되는 신 법원장의 이메일 취지를 구태여 전자의 내용으로 둔갑시켜 문제상황을 왜곡한 셈이다.

만약 이번에 재판관여의 소지가 있는 것으로 판정난 신 대법관의 이메일과 이 대법원장의 뜻이 일맥상통한다면 업무보고 독대 시에 신 대법관이 확인해서 전달한 "대법원장님의 뜻"도 똑같이 재판관여의 소지가 있는 것으로 판정받은 셈이다. 입에 담기도 민망한 이런 추론의 확산을 차단하기 위해서라도 진상조사단은 이 대법원장을 제대로 조사했어야 한다. 그렇지 않고 현직 대법원장에 대한 사상 최초의 조사를 김용담 법원행정처장(진상조사단장)이 만에 하나 평소 차 한 잔 나누는 방식으로 끝냈다면 쓸데없는 화근거리를 남긴 셈이다.

뿐만 아니다. 신대법관의 이메일 내용이 알려진 후 일부언론은 위헌제청에 따라 재판진행을 연기한 촛불재판을 신 법원장의 거듭된 이메일 때문에 부담을 느껴 서둘러 유죄선고로 종결했다는 일부 판사의 익명 양심고백을 보도한 바 있다. 촛불판결에 어떠한 영향을 주지 않았다는 진상조사 결과는 이런 보도사실에 비춰볼 때 신빙성이 약하다. 또한 인사평정권자인 법원장으로부터 이런 내용의 이메일, 특히 대법원장의 권위까지 차용한 이메일을 수차례 받고도 영향을 받지 않기란 몹시 어렵다는 전현직 판사들의 잇단 증언에도 배치된다.

더욱이 언론보도에 따르면 이 대법원장은 신 법원장의 이메일 소동을 진작부터 알고 신 법원장을 불러서 질책했다고 한다. 심지어 이로 인해 위경련을 일으켰다는 전언보도마저 뒤따랐는데 대법원은 확인도 부인도 않고 침묵을 지켰다. 사실 이때의 보도내용은 이 대법원장의 원칙주의자적 면모를 잘 드러내는 미담으로 들렸다. 그렇지 않고 대법원장에게 누가 되는 보도내용이었다면 대법원 공보관을 시켜서라도 적극 부인하지 않았을까?

아무튼 대법원 진상조사단은 위의 보도내용들이 사실인지를 밝혔어야 한다. 당연히 대법원장이 언제부터 신 법원장의 편파배당과 판결지침 스캔들을 보고받아 알았는지, 당시 어떤 조치를 취했는지, 즉 심하게 질책한 것이 사실인지, 무엇 때문에 질책했는지, 어떤 내용으로 경고했으며 어떤 다짐을 받아냈는지 철저히 조사했어야 한다. 그간의 다양하고 헛갈리는 언론보도에 접한 국민들은 적어도 언론이 기정사실처럼 보도한 사항들의 진실여부를 속속들이 알 권리가 있다.

만약 언론에 보도된 것처럼 이 대법원장이 신 법원장의 재판개입의혹을 접하고 바로 강한 질책을 가했다면 그 시점이 몹시 중요하다. 신 법원장의 재판관여행위는 알려진 것만 해도 적어도 두 달 이상 계속됐는데, 대법관 제청을 바란 신 법원장이 과연 제청권자인 대법원장의 강력한 경고를 받은 후에도 이 대법원장의 뜻에 어긋나는 시국사건 개입행위를 계속했을지 의문스럽기 때문이다.

아이러니컬하게도 대법원은 지난 1월 17일자 공식 보도자료에서 신 법원장이 "재판의 독립에 대한 강한 신념(…)으로 주위의 신망이 두텁다"는 이유를 제청이유 중 하나로 꼽았다. 신 법원장의 촛불재판 개입스캔들을 뻔히 아는 이 대법원장의 입장에서는 최소한 이런 낯 뜨거운 표현은 걸러내도록 지시했어야 한다. 아무튼 대법원장의 대응부분에 관한 명확한 진상규명은 신 법원장의 결정적인 흠을 일찍부터 알면서도 대법관으로 제청함으로써 오늘의 사태를 자초한 이 대법원장의 책임 수위를 규명하는 데도 필수적이다.

▲ 신영철 대법관의 '촛불재판' 개입 의혹과 관련해 대법원 진상조사단이 조사결과를 발표한 16일 오후 이용훈 대법원장(가운데)이 대법원을 나서고 있다. ⓒ뉴시스

이상의 이유들로 해서 나는 이번 진상조사단의 결과발표가 실체적이고 종합적인 진상규명과 의혹해소에 완전히 실패했다고 판단한다. 참여연대와 민변 등 시민단체들은 처음부터 법원행정처장과 5인의 고위법관으로 구성된 대법원 진상조사단의 한계를 지적하며 외부인사로 구성된 진상조사단 구성을 제안한 바 있다. 그럼에도 나는 망국적인 사법 불신이 급속도로 확산되는 현재의 엄중한 상황을 고려할 때 대법원 진상조사단이 일반시민의 관점에서 의혹을 가질 수 있는 모든 사항들에 대해 최대한 성실하게 조사하여 위기국면을 조기 진화할 것으로 기대했었다.

그런데 결과는 '역시'였다. 실체적 진실발견의 전문가집단인 사법부조차 내부의 조직보안논리를 한 치도 벗어나지 못하고 국민들을 실망시킨 셈이다. 이번 진상조사단의 부실조사는 전적으로 자신에 대한 조사에 일찌감치 불쾌감을 드러내며 내부조사의 한계를 설정한 이 대법원장의 책임이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사법부의 신뢰회복을 위해 이제 남은 것은 이 대법원장이 독립적 진상조사기구의 구성과 조사를 자청하는 외길수순밖에 없다. 사법부 과거청산의 대미를 장식할 이번 사법스캔들의 진상규명에 대한 이 대법원장의 결단을 촉구한다.

/곽노현 한국방송통신대 법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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