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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 수 : 9947
2001.12.07 (02:51:07)
위의 기사에 덧 붙여서,중앙일보 최원기기자가 쓴 기사를 옮깁니다.(NK.JOINS.COM) 그리고 오버도퍼의 책[TWO KOREAS]개정판을 인터넷서점(WWW.AMAZON.COM)등을 뒤져도 아직 나오지 않는 것과 최원기기자가 12월 5일기사에서 나올 예정이라고 적은 것(아래 기사에서는 출간된으로 표기되어 있습니다)을 보아서는 아직 출간되지는 않았고, 김영희대기자가 오버도퍼씨와의 사적인 관계를 통해서(출간전 내용 또는 전문입수) 입수한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또한 주한미군문제와 임동원전국정원장의 극비방북은 남북정상회담비사중 하나로 이미 알고 있는것이라 생각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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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적발굴> 임동원 국정원장 극비 방북


남북정상회담을 불과 18일 앞둔 지난해 5월27일 임동원국정원장이 극비리에 평양을 방문, 김정일위원장과 4시간에 걸쳐 면담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이같은 사실은 돈 오버도퍼 존스홉킨스대 교수(전 워싱턴포스트지 국제문제 대기자)가 최근 펴낸 '두개의 코리아(The Two Korea): 한국의 현대사' 개정판에서 공개됐다. 지난 97년 발간한 '두개의 코리아'가 영변 핵위기에 초점을 맞췄다면 이번에 펴낸 개정판은 지난해 6월 평양에서 이뤄진 남북정상회담과 북-미 미사일협상 내막을 추가한 것이다. 다음은 중앙일보가 긴급 입수한 '두개의 코리아'중 남북정상회담과 북-미 미사일 협상 내용을 발췌 요약한 것이다. 편집자주.

◇남북정상회담
나는 역사적인 남북정상회담이 열리기 5개월전인 2000년 1월 청와대에서 한국의 김대중대통령을 만났다. 당시 김대통령은 벌써 여러 채널을 통해 북한이 남북관계 개선과 경제협력 희망 메시지를 접수한 상황이었다. 그러나 김대통령은 남북정상회담과 관련 그 어떤 힌트도 주지 않았다. 내가 북측이 남측의 제의에 대해 분명한 입장표명이 없다고 지적하자 김대통령은 "우리는 북한에게 만일 그들이 우리의 평화노력에 호응해온다면 우리도 긍정적으로 대답하겠다는 입장"이라고 모범답안을 내놨다. 그러나 김대통령의 어조와 표정은 그 이전에 비해 한결 자신감이 차있었음을 감지할 수있었다.

2000년3월9일 김대통령은 베를린 자유대학에서 김정일을 남북정상회담 테이블로 듀도하기 위한 운을 띄였다. 김대통령은 연설을 통해 북한이 희망할 경우 철도, 항만, 도로등이 포함된 사회간접자본시설과 농업개발을 지원할 의사가 있다고 밝혔다. 김대통령의 이 연설을 워싱턴을 놀라게했다. 특히 김대통령은 자신의 연설 내용을 미국에게 사전에 귀띔해주지 않았다. 당연히 올브라이트 국무장관이 격노했다. 올브라이트 장관은 전화로 이정빈 외무장관에게 항의했다. 그러자 이장관은 미안한 어조로 김대통령이 연설 마지막 순간까지 연설문을 수정하는 바람에 미처 미국에게 알려줄 겨를이 없었다고 설명했다.

평양은 5일만에 신호를 보내왔다. 3월14일 북한은 판문점을 통해 전통문 한통을 보내왔다. 정상회담 문제를 상하이에서 논의하자는 내용이었다. 김대통령은 박지원 문화관광부 장관을 남북비밀협상대표로 임명, 상하이로 보냈다. 상하이로 날아간 박지원은 카운터 파트인 아태평화위원회의 송호경과 4차례에 걸쳐 비밀 회담을 가졌다. 북측은 이회담에서 정상회담과 함께 김대통령이 언급한 대북 경제지원 세부 사항에대해 꼬치꼬치 캐물었다. 그러나 회담은 아무 결론을 내리지 못했다. 북측은 4월8일 갑자기 박지원을 다시 베이징으로 불러 정상회담에 전격 합의했다. 이런 우여곡절끝에 남북은 총선을 불과 사흘 앞둔 4월10일 남북정상회담을 발표했다. 그러나 이는 남북문제의 국내 정치화 논란으로 이어져 결국 집권 민주당은 국회에서 제1당이 되는데 실패했다.

정상회담을 코앞에 둔 5월27일 임동원 국정원장이 비밀리에 베이징을 거쳐 평양에 들어갔다. 평양에서 임원장은 김정일과 4시간에 걸쳐 면담했다. 서울로 돌아온 임원장은 김대통령에게 자신의 면담에 기초해 다음과 같이 6개항에 걸친 '김정일 보고서'를 제출했다.

첫째, 김정일은 아버지 김일성보다 훨씬 강력한 통치자다. 둘째, 북한체제에서 김정일만이 유일하게 개방적이고 실용주의적인 사고를 지닌 인물이다. 셋째, 김정일은 남의 말을 잘 듣는 편이다. 임원장이 말을 하면 김정일은 마치 학생이 수업시간에 필기를 하듯 수첩에 꼼꼼히 기록을 했다. 넷째, 김정일이 일단 상대방을 설득하려고 마음 먹으면 아주 단호한 입장을 취한다. 다섯째, 김정일은 연장자에게 깍득히 예의를 차린다. 여섯째, 김정일은 남다른 유머 감각의 소유자다.

김대중-김정일 정상회담은 연합제와 연방제를 둘러싸고 회담도중 여러번 깨질뻔한 위기가 있었다. 또 두 정상은 주한미군 문제도 논의했다. 김대통령이 남북이 통일된 뒤에도 동북아의 안정을 주한미군이 필요하다고 말하자 김위원장도 이에 동감을 표시했다. 이어 김위원장은 자신은 지난 92년 김용순을 특사로 보내 당시 국무부 차관보인 아놀드 캔터에게도 주한미군의 기능변화를 전제로한 주한미군 주둔을 용인할 의사를 표명한바 있다고 설명했다.

◇방북 일보 직전에 불발된 클린턴
2000년 9월 27일 북한과 미국 대표단은 뉴욕의 유엔 미국 대표부 회의실에 마주 앉았다. 회의가 시작 되자마자 북측 김계관 대표는 미국의 찰스 카트먼 대표가 깜짝 놀랄 발언을 했다. 북한이 조명록 차수를 워싱턴에 파견키로 결정했다는 것이었다. 조명록은 북한 국방위원회 제1부위원장으로 북한의 명실상부한 2인자였다. 조명록의 방미는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10월9일 워싱턴에 도착한 조명록은 국무부에서 올브라이트 국무장관을 만날때만 하더라도 짙은 감색 양복을 입고 있었다. 그러나 조명록은 백악관에서 클린턴 대통령을 면담할때는 가슴에 훈장이 주렁주렁 달린 북한군 차수 복장으로 갈아입고 있었다. 백악관 집무실에 도착한 조명록은 클린턴에게 김정일위원장의 친서를 전달했다. 이어 조명록은 클린턴에게 '조-미 관계 개선을 위해 평양으로 초청한다'는 구두 메시지를 전달했다.클린턴은 사전에 올브라이트 국무장관 귀띔에따라 클린턴-김정일 정상회담을 위해서는 사전에 미사일등을 포함한 예비회담이 필요하다고 대꾸했다. 그리고 이를 위해 올브라이트 국무장관을 평양에 파견하겠다고 말했다.

체코슬로바키아 출신으로 평생을 공산권 연구에 몰두해온 올브라이트 국무장관에게 평양은 그리 신기한 곳이 아니었다. 정작 올브라이트를 놀라게 한 것은 김정일이었다. 김정일과 면담을 시작하자마자 올브라이트는 그가 언론 보도대로 음험한 공산당 지도자가 아니라 보통 사람이며 때로는 사근사근한 붙힘성좋은 인물임을 알아차렸다. 또 김정일은 대단히 스마트한 인물이었다. 면담도중 올브라이트는 김정일에게 미사일 문제를 제기했다. 당시 미국이 제기한 미사일문제는 불과 몇시간전 북측에게 통보한 내용으로 대단히 전문적이고 까다로운 문제였다. 그러나 김정일은 올브라이트의 질문에 아무런 막힘없이 미사일 문제에 대해 일일히 자신의 입장을 밝혔다. 당시 김정일이 밝힌 것은 사정거리 500km를 넘는 대륙간탄도탄에 ▲추가 생산과 ▲배치를 중단하며▲ 검증절차 수용 가능성을 인정했다. 그러나 김정일은 기존에 생산한 미사일과 탄두(Payload)중량에 대해서는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았다. 또 검증절차가 강압적(Intrusive Verification)이 되어서는 안된다는 점을 분명히했다.

김정일과 올브라이트는 미사일 문제를 둘러싼 세부사항을 일주일뒤 말레이지아 쿠알라룸푸르에서 북-미 미사일 협상을 통해 타결하고자 했다. 서울의 김대중대통령도 이 협상에 큰 기대를 표시했다. 그러나 시간이 절대적으로 부족했다. 당시는 클린턴대통령의 임기가 초읽기에 들어간 싯점이었다. 게다가 악재가 겹쳤다. 차기 미국 대통령 선거 개표를 둘러싸고 플로리다에서 질질 시간을 끌었다. 또 팔레스타인에서 아랍-아스라엘 유혈충돌이 발생하는 바람에 클린턴 대통령은 예정에 없던 중동방문에 나서야만했다. 2000년12월 마지막주에 국무부는 북한에게 클린턴대통령이 평양에 가지 못할 것이라고 통보했다. 또 클린턴 대통령도 김대중대통령에게 전화를 걸어 이 사실을 알리고 청와대가 이 사실을 발표하도록 했다. 그후 웬디셔먼 한반도 특사는 평양으로부터 날아온 연하장 한장을 받았다. 평양우체국 소인이 찍힌 이 연하장은 북한외무성 강석주 제1부부장이 보낸 것이었다. 웬디 셔먼은 아직도 강석주아 보내준 연하장을 소중하게 간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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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 12. 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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