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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 수 : 8521
2002.04.02 (12:12:35)
* 다음 글은 미래전략연구원(http://www.kifs.org)에서 퍼 온 것입니다.

제 목:  주권의 불완전성과 동북아 지역주의 
저 자 :  이 근 
출처 : 미래전략연구원 
발간일:  2002/03/28 
출간형태:  보고서 
종 류:  이슈와 대안 

주권의 불완전성과 동북아 지역주의

이근 (미래전략연구원 세계화연구위원/ 서울대 국제지역원 교수)


코이즈미 수상의 한국 방문으로 최근 한-일 FTA에 관한 논의가 다시 열기를 띠기 시작했다. 만일 이 논의가 ASEAN + 3의 차원으로 넓혀지면, 이는 궁극적으로 동아시아 혹은 동북아의 지역주의 문제로까지 연결될 것이다. FTA와 지역경제공동체(앞으로는 간략하게 지역주의라고 부르겠음)는 참여국간에 경제적인 가치 창출의 크기를 불려서 나누는 문제를 내포하고 있다. 따라서 이는 분배의 문제이며 분배는 기본적으로 정치적인 문제다. 즉 누가, 무엇을, 얼마나 더, 어떠한 방식으로 갖느냐의 문제(who gets what and how?)를 참여국 정부가 함께 풀어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결국 FTA와 지역주의는 경제적인 접근 못지 않게 정치적인 접근이 필요한 사안이라고 할 수 있다.

이 글에서는 한일 FTA의 장기적인 비전에 포함되는 동북아 지역주의가 다른 지역에 비해서 왜 근원적으로 실현되기 어려웠는지를 국제정치적인 시각에서 비판적으로 살펴보고, 동북아의 주권문제라는 새로운 시각에서 기왕의 논의를 재구성하여 동북아 지역주의 논의에서 간과된 중요한 문제를 제기하고자 한다. 주권문제의 시각에서 동북아 지역주의를 보게 되면 역설적으로 한-일 간의 협력이 동북아에서 상대적으로 가장 용이하고 또 필요하다는 함의가 도출된다.

1. 지역주의 형성과 동북아 지역주의 부재에 대한 기존의 논의

우선 동아시아에서 왜 지역주의가 형성되지 못 했는가를 설명하는 기왕의 논의를 비판하기 위하여 이에 관한 국제정치학 이론을 간단히 소개하고자 한다. 냉전이후 지역주의가 생겨나는 원인에 관한 국제정치학적 분석은, 그 원인을 국가간의 힘의 관계변화 혹은 변화가능성에서 찾는 현실주의적 시각과, 특정 산업이나 국가정책의 이해관계가 어느 정도 일치하느냐의 여부를 보는 다원적 자유주의적인 시각, 같은 자유주의적 시각이라고 할 수 있는데, 국가간 상호의존에서 발생하는 다양한 문제점을 해결할 기능적 필요에서 그 원인을 찾는 기능주의적 시각, 그리고 지역을 어떻게 국가들이 인식하고 있는가에 관한 구성주의적 시각이 있다. 이러한 국제정치학적 논의는 유럽에서의 유럽공동체와 유럽연합의 형성 및 강화, 그리고 미주지역에서의 자유무역협정 등에 관하여 심도 있는 이론적 논쟁을 이끌었고, 그 와중에서 왜 아시아에는 제도화를 추구하는 지역주의가 약한가에 관한 이론적 논의들도 제기되었다.

동아시아에는 왜 지역주의가 약한가에 관한 이론적 논의들을 간략하게 소개하기 위해서, 우선 각각의 국제정치학적 시각에서 제시하는 대표적인 설명들을 요약해 본다. 우선 현실주의 시각에서는 국가가 항상 보다 강한 국가로부터 생존의 위협을 느끼게 되므로 지역주의가 중요한 현상으로 등장하기 위해서는 국가간 힘의 관계가 지역주의의 등장을 방해하지 않거나 혹은 지역주의를 조성해야 한다. 그리고 현실주의는 국가의 안전과 생존이 항상 불안할 수 있다는 전제에서 출발하여, 지역주의가 국가의 주권을 상당히 포기하는 지역협력체로 나가는 경우, 즉 지역협력의 제도화의 수준이 국가의 주권적 결정을 상당히 제약하는 초국가적인 수준으로 발전하는 경우 그러한 지역주의는 실현가능성이 희박하다는 견해를 가지고 있다.

이러한 대략 두 부류의 지역주의에 관한 현실주의의 논의를 냉전이후 지역주의의 부흥과 관련하여 간략히 정리해 보면 크게 다음과 같은 설명으로 분류가 가능할 것이다. 우선 냉전이후 지역주의는 양극체제라는 초강대국간의 냉전구조 속에 매몰되어 있던 지역의 실체가 양극체제라는 거대한 구조물 (super power overlay)이 제거되면서 다시 표면에 부상하는 것으로 본다. 즉, 이미 존재하고 있었던 지역이라는 실체가 “동-서”라는 진영 안에서 잠자고 있다가 냉전이 끝나면서 다시 깨어난 것으로 보는데, 그래서 지역주의는 냉전 종식과 함께 이미 존재하고 있었던 지역을 중심으로 다시 부흥하기 시작한 것으로 설명된다. 그러나 이러한 설명은 왜 수 많은 지역 중에서 특정한 몇 개의 지역에서만 지역주의가 더욱 강하게 제도화되는지에 대하여 설명을 못하는 문제가 있다.

이러한 문제를 포괄하여 지역주의의 등장을 설명하는 또 다른 현실주의 이론은 지역 패권국의 존재 유무에서 지역주의의 제도화 정도를 찾는 이론이다. 이 이론은 지역에 패권국이 존재할 경우 그 패권국에 의해 지역주의가 주도되고, 만들어진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 이론에 의하면 유럽의 독일, 미주의 미국을 중심으로 지역주의가 생겨났다는 설명이 가능하다. 그렇지만 이 이론은 아시아에서 일본이 경제적 차원에서 패권국으로 차지하는 비중이, 독일이나 미국에 비하여 뒤지지 않는데 아시아에서 지역주의 제도화가 미미하다는 사실을 설명하지 못한다.

이러한 모든 것을 보완하고자 하는 현실주의적 설명으로 국가간 “상대적 힘의 격차 전환” (relative disparity shift)의 가설이 있다. 쉽게 풀어 본다면 이 가설은 힘이 약한 국가들이 강대국과의 힘의 격차가 미래에 더욱 크게 변할 것이라는 우려를 가지고 있으면 이들 약소국의 반대로 지역협력의 제도화가 어렵다는 주장이며, 아시아의 경우가 이에 해당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NAFTA의 경우 지역협력의 제도화의 틀 안에서 대외 신뢰도를 높여 경제성장을 통하여 오히려 미국과의 상대적 힘의 격차를 줄일 수 있다고 계산한 멕시코가 이에 참여했다는 설명이 있으며, 유럽의 경우에도 독일의 독주를 막고자 프랑스와 다른 유럽국가가 유럽연합을 전략적으로 지지했다는 설명이 있듯이 이 가설도 멕시코와 프랑스의 구체적인 정책 선택을 정확하게 설명하지는 못하는 것으로 보인다. 또한 이러한 모든 현실주의적 설명은 지역을 중심으로 국가가 그룹으로 뭉치는 현상은 인정하나, 그 현상이 국가의 주권을 제약하는 초국가적 기구의 탄생으로 이어지는 것에는 매우 부정적인 견해를 가지고 있다.

자유주의적 설명은 규모의 경제(Increasing Returns to Scale: IRS)를 가지고 있는 산업간에 산업 내 무역(Intra-industry Trade)이 활발한 지역에서 이들 산업의 로비 결과 합리적인 정부가 일정 크기의 시장을 안정적으로 확보하기 위하여 지역차원에서 제도화를 추진한다는 이론과, 국내 이익집단의 연합 (domestic coalition)에 의해 형성된 정책의 선호도가 지역 국가들 간에 수렴하는 경우 지역주의의 제도화가 강하게 형성될 수 있다는 주장이 있다. 또한 큰 틀에서 보면 자유주의에 속하는 기능주의적 설명은 지역 국가들 간에 상호의존이 심화되면 그로 인하여 파생되는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하여 제도를 만들어 협력을 한다는 설명을 하고 있다. 이러한 자유주의적 설명은 매우 설득력 있게 특정 지역간 지역협력의 제도화 정도의 차이를 설명하고 있으나 왜 산업 내 무역과 상호의존이 특정지역에서만 집중되고 있으며 또 아시아의 경우 상호의존도가 증가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제도화의 노력이 강하지 못하였는가에 대하여 침묵한다.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은, 자유주의적 설명과 현실주의적 설명이 반드시 서로 대립적인 설명은 아니라는 것이다. 냉전기간 중 적대적 진영 간에 상호의존이 강하게 생겨나지 못하였고, 이들간에 정책적 선호도가 수렴하지 못하였던 것을 참고한다면, 근원적인 안보불안이 상호의존의 심화 자체를 한계 짓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따라서 현실주의와 자유주의를 서로 보완하여 볼 때, 안보 불안의 상대적 부재와 국가간의 상호 수용성(acceptability)의 정도가 상호의존의 정도를 설명하고, 그 상호의존이 특정 산업간에 산업 내 무역을 중심으로 생겨나면 지역주의의 제도화가 강해질 수 있다는 이론적 함의를 발견할 수 있다. 즉 현실주의와 자유주의는 서로 배타적인 이론이기보다는 경우에 따라서는 설명의 순서에서 다른 우선 순위를 가지고 있는 각기 다른 문제영역의 이론이라고 보인다.

마지막으로 구성주의적 설명은 현실주의와 자유주의가 가지고 있는 가장 근원적인 문제를 지적하여 지역주의에 대한 새로운 사고를 가능케 한다. 즉 지역주의를 설명하기 위해서는 왜 특정지역을 중심으로 지역주의가 형성되고 있는가를 밝혀야 하며, 그러려면 지역(region)이 무엇인지에 대한 설명이 우선적으로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래서 구성주의적 설명은 지역의 구성문제(construction of region)와 지역의 구성원들이 같은 지역에 속한다는 지역의 공동체 의식(we feeling)의 문제를 중요하게 생각한다. 즉 지역은 다양한 국가와 그룹의 역사적, 문화적 상호작용 속에서 구성되어졌고, 각 국가의 구성원이 같은 지역에 속하고 있다는 공동의 의식 (we feeling)을 특정한 지리적 경계 내에서 공유할 때 지역이 존재한다는 것이며, 그러한 지역이 있어야 지역주의가 가능하다는 것이다. 이러한 구성주의적 시각은 지역이란 역사적으로 만들어지는 것이며, 국가들의 전략적 상호작용 속에서 형성될 수 있다는 정책적 함의를 가지고 있다.

그런데 이상의 각 이론적 논의를 정리해 보면 지역주의 형성의 시간적, 공간적 순서가 이론적으로 어느 정도 나타나며, 각 이론은 서로 보완적인 구조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즉 지역주의가 형성되기 위해서는 구성주의에서 말하는 지역의 구성이 먼저 있어야 하며 이러한 지역 내에서 자유주의가 말하는 산업 내 무역을 포함한 상호의존의 심화가 존재하여야 하며, 그러기 위해서는 현실주의에서 말하는 안보불안의 문제가 상당부분 해소되어 있어야 한다. 즉 국가간에 상호인정과 수용의 정도가 커야 하는 것이 관건인데, 예를 들어 미국과 캐나다의 상호관계, 북구 유럽 국가들 간의 상호관계가 그 전형적인 예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상호수용과 인정의 정도를 결정하는 것은 무엇인가? 필자는 그 질문에 대한 해답을 국가들이 서로의 존재를 인정하는 “주권정체성” (sovereignty identity)의 공유라는 구성주의적 시각에서 찾는다. 이에 대한 자세한 논의는 뒤에서 하기로 하고 여기서 눈을 아시아로 돌려본다.

위의 지역주의에 관한 일반적 국제정치학의 논의에서 유추해 보면, 아시아에서 지역주의가 발달하지 못한 이유는 우선 같은 지역에 속해 있다는 인식을 가진 국가들로 지역이 형성되지 못하였고, 안보 불안과 국가 간의 우호와 수용의 정도가 약하여 상호의존이 심화되지 못했고, 또 최근 증대되는 상호의존이 규모의 경제를 가지고 있는 IRS 산업간의 산업 내 무역을 중심으로 하여 이루어지지 못하여 국가간의 정책 선호도가 수렴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할 수 있다. 이러한 내용들을 부분적으로 설명하는 것이 기왕의 아시아 지역주의의 부재를 논하는 다양한 설명들이다. 즉 (1) 1945년 이후 공통의 외부위협이 존재하지 않았고, 즉 내부간의 위협이 더욱 컸고, (2) 종교적, 정치적, 인구적, 경제적 다양성이 심했으며, 즉 공통의 지역의식이 공유되지 않았고, (3) 같은 지역을 공유하고 있다는 인식을 강화하려는 국가간의 노력의 역사가 짧다는 데에서 아시아 지역주의가 발달하지 못한 원인을 찾고 있다. 또한 역내 낮은 수준의 상호의존, 커다란 경제적 격차, 냉전적 잔재 등이 지역주의가 발달하지 못한 이유로 제시된다. 이러한 모든 이유들은 앞에서 이론적으로 종합한 내용을 부분적으로 설명하는 것들이다.

그런데 이러한 논의의 종합 안에는 아시아에서만 발견되는 아시아적 특성, 특히 동북아시아의 특성이 전혀 언급되고 있지 않다. 물론 이러한 동북아시아의 고유한 특성이 아시아 지역주의가 발달하지 못하는 보다 근원적인 원인을 제공하고 있다고 이 글에서 단언할 수는 없지만 안보불안이 왜 아시아에서 국가들 간에 더욱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인가를 설명하는 보다 근원적인 설명의 실마리를 제공한다고 필자는 생각한다. 앞에서도 언급하였지만 미래의 상대적 힘의 격차 전환 가능성이든, 아니면 다른 이유에서건 구조적으로 안보불안이 역내 국가들 사이에서 존재한다면, 상호의존 자체가 증대되기 힘들 것이며, 그러한 경우 지역협력의 제도화의 필요성이 거론될 이유 조차 없다. 따라서 동북아시아 국가들의 안보불안의 보다 근원적 요인을 밝히게 되면 왜 동북아시아에서 지역주의가 발달하기 힘든가에 대한 보다 근원적인 해답이 제시될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근원적 요인을 제거해 나가면서 동북아시아 국가들이 특정한 방향으로 상호의존을 증대시켜 나간다면, 동북아시아에서도 지역주의가 가능할 수 있다는 정책적 함의가 나오게 될 것이다. 그렇다면 동북아시아에서만 발견되는 고유한 특성이란 무엇일까?


2. 동북아시아 지역주의 부재에 관한 대안적 설명: 주권의 문제

2차 대전 이후 동북아시아에는 근원적으로 근대국가의 주권문제가 항상 존재해 왔다. 이러한 주권의 문제는 국제관계에서 국가의 안보적 불안과 위험성을 다른 지역에 비해 훨씬 심화시키는 그러한 효과를 낳는다. 즉 주권의 문제가 해결되어 있는, 다시 말하면 국제적 혹은 지역적으로 그 존재를 인정하고 서로 받아들이는 지위를 가지고 있는 국가와 그렇지 않은 국가 간에는 국가의 안보적 불안과 위험성의 정도가 매우 크게 차이가 난다는 것이다. 이를 아시아를 중심으로 좀 더 부연해 보면 다음과 같다.

2차 대전 이후 중국, 한국, 일본, 북한, 대만을 포함하는 동북아시아 국가들은 미국과 소련 사이에서 나름대로 정상적인 주권을 보유한 정상국가의 지위를 가져보지 못하였다. 그 단적인 사실이 바로 분단국가의 존재와 군사주권의 상실이다. 한반도는 둘로 나뉘어진 분단국가로 존재하고 있고, 중국도 본토와 대만이라는 실질적으로 두개의 나뉘어진 국가로 존재하고 있으며, 일본도 군사주권을 크게 상실한 비정상국가이다. 이러한 불완전한 주권은 미-소간의 이해구조와 갈등구조에서 탄생하였는데, 이들이 이러한 분단과 불완전한 주권관계를 이들의 이해에 맞추어 관리하여 왔기 때문에 사실 상 동북아, 혹은 아시아에서 지역주의가 형성되는데 가장 큰 장애 요인, 혹은 가장 중요한 요인이 바로 미국과 소련, 현재로서는 주로 미국의 이익이다. 즉 뒤에서 다시 언급하겠지만 불완전한 주권관계를 미국이 중심이 되어 풀어주지 않으면 아시아 지역주의는 형성되기 매우 어려우며, 따라서 미국의 이익과 아시아 지역주의가 배치된다면 아시아의 지역주의 출현가능성이 매우 약하게 된다. (물론 아시아 국가들의 자체적인 노력이 불완전한 주권관계를 극복하는데 전혀 중요하지 않다는 의미는 아니다. 그러나 그러한 자체적인 노력을 억제할 수 있는 미국의 힘을 과소평가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동북아에서 정상적인 주권국가가 없다는 사실은 바로 이들 국가의 안보에 상당히 심각한 문제를 야기하며, 따라서 그것이 이 지역의 주권관계를 관리하는 미국의 영향력이 강하게 남아있는 이유이다. 사실 미국은 이러한 비정상 주권국가의 관계를 적절히 이용하여 동북아에서 자신의 이익을 추구할 수 있는 전략적 위치에 있다. 즉 비정상 주권국가의 존재, 그로 인한 안보불안, 그러한 비정상 주권국가간의 구조적 안보불안을 전략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미국의 영향력 혹은 압력이 동북아시아에서 지역주의가 형성되는 것을 근원적으로 차단하는 이유가 된다는 것이다. 이 문제를 좀 더 논리적으로 자세히 전개해 보면 다음과 같다.

분단국가는 매우 독특한 안보 동학을 갖게 된다. 분단국가라는 정체성을 가지고 있으면 서로 합쳐야 하는 정치적 유인이 있으며, 그 합치고자 하는 유인이 존재할 때 상당한 안보불안이 야기될 수 있다. 즉 두 개의 분단국가가 하나의 완전한 주권국가가 되고자 할 때 그들이 어떠한 정치, 경제체제 하에서 통일되어야 하고, 그 과정에서 각기 국내의 이해당사자나 그룹간의 권력과 이익의 분배를 어떻게 하여야 하는가의 문제를 놓고 상당한 갈등을 겪을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특히 동북아시아의 경우에는 그 문제가 심각하다. 중국과 대만의 경우 서로 정치, 경제 체제가 상이하고, 통일의 주도권과 정통성을 서로 주장하고 있으며, 두 개의 주권국가가 성립되는 것을 정치적으로 허용하기 매우 곤란한 상황이다. 요컨대 서로의 존재를 인정하고 있지 않는 두 개의 상이한 정치체제가 대립하고 있어 둘 간의 통합을 향한, 혹은 중국의 통합과 이에 대응한 대만의 독립이라는 서로 대치되는 동학이 존재한다. (물론 두개의 정상적인 주권국가를 인정할 수 있는 국내정치, 경제적 분위기가 생겨날 수도 있다). 이러한 동학은 심각한 안보 불안이 항상 내재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남북한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이다. 남북한은 같은 민족이 서로 다른 체제와 정통성을 주장하는 둘로 분단되어 있어 항상 각기 원하는 방식으로 합치고자 하는 동학이 존재하며, 그로 인해 한반도에서도 항상 긴장이 존재한다. 분단에서 통일로의 과정이 서로 협력을 통하여 순조롭게 이루어지면 문제가 없으나 무력을 독점한 상이한 정부 간에 힘과 이익을 재배분해야 하는 문제이기 때문에 군사적 긴장을 동반하게 되며 따라서 통일이라는 미래에 대하여 항상 안보불안이 존재하게 된다. 이는 미래의 안보불안이 현재의 지역협력의 제도화에 장애가 된다는 현실주의적 설명과 연결될 수 있다.

한편 일본의 경우는 분단국가는 아니지만 자체적인 정규 군사력 보유를 헌법 상으로 제한하고 있어 완전한 주권국가라고 말하기 어렵다. 이러한 비정상국가는 자체 군사방어의 능력에 대하여 항상 불안감을 갖게 되어 대신 안보를 지원해 주는 국가에 대하여 의존적일 수 밖에 없다. (헌법개정을 통하여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지만, 이는 국내 및 국제정치적으로 상당한 제약을 받고 있다). 따라서 일본의 경우에도 정상적인 주권국가가 아닌 이상 미래의 안보불안에 대하여 매우 자유롭지 못하며, 따라서 안보우산을 제공해 주는 미국에 의존적일 수 밖에 없다. 이는 지역협력의 제도화와 관련하여 두 가지의 함의를 제시하고 있는데, 하나는 일본이 현실주의 시각에서 말하는 지역패권국가의 역할을 충분히 수행할 수 없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앞에서 언급하였듯이 미국의 영향력이 지역협력 문제에 있어서 상당히 크다는 것이다. 한국의 경우에도 군사적으로 미국과의 관계에서 매우 의존적인, 즉 완전한 주권국가라고 볼 수 없고, 대만도 방위의 상당부분을 미국에 의존하는 형태이기 때문에 이 지역에서 분단관리와 주권관계 관리와 관련하여 미국의 영향력은 지역적으로 광범위하게 흩어져 있다고 하겠다.

미래의 안보불안은 기본적으로 동북아의 불완전한 주권국가간의 상호의존관계를 심화시키는데 장애의 요인이 되는데, 예컨대 남북한 간에 상호의존이 심화되기 어렵고, 중국과 대만간에 상호의존이 심화되기 어렵다. 일본의 경우에도 보다 주권적으로 의존적인 미국과의 상호의존 심화에 힘을 쏟으려 할 것이다. 이러한 면에서 볼 때, 동북아는 스스로 또 상호간에 정상적인 국가로서 인식, 인정하는 국가간의 구조가 아니라 서로를 주권적으로 인정하는데 불완전한 그러한 주권정체성(sovereignty identity)을 가지고 있는 국가들로 구성된 지역구조가 형성되어 있다. 이러한 지역구조 내에서는 상호의존의 심화와, 지역패권국의 등장, 그리고 협력의 제도화의 필요성 등이 원천적으로 생겨나기 어렵다. 즉 역설적으로 주권의 문제가 확실히 해결되어야, 다시 말하자면 서로의 존재를 상호간에 확실히 인정하고 있어야만, 국가가 지역주의를 통하여 주권을 어느 정도 포기하는 것이 가능하다. 상대방의 정당한 존재 자체를 인정하지 않는데 어떻게 서로 믿고 협력할 수 있겠는가? 그렇기 때문에 동북아에서 국가들 간에 주권문제를 해결하자는 논의가 포함되지 않는 지역협력의 논의는 매우 허망한 논의가 아닐 수 없으며 유럽과 미국의 수준으로 지역협력의 제도화가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동북아 국가들이 가지고 있는 불완전한 주권정체성의 문제를 해결하여야만 한다. 현실주의적 설명인 안보불안의 해소, 지역패권국의 존재, 자유주의적인 설명인 산업간 이익의 수렴구조, 기능적 필요, 구성주의적 설명인 지역의 구성 등이 불완전한 주권정체성의 문제로 인하여 원천적으로 봉쇄되어 있는 것이다.


3. 동북아시아 지역협력의 가능성

이상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동북아의 지역주의는 서로의 존재를 인정하는 국가들끼리 동북아시아라는 같은 지역에 속하고 있다는 인식을 가지고 있을 때 탄탄한 출발이 가능하다. 그런데, 한국과 북한, 중국과 대만, 한국과 대만, 일본과 대만, 일본과 북한, 대만과 북한의 경우에는 서로의 존재를 정상적인 주권국가로 인정하지 않고 있다. 북한의 경우에 있어서는 한국과 일본은 정상적인 주권국가로 인정하지 않고 있으나 중국은 다르다. 따라서 이러한 국가간의 관계를 보게 되면, 가장 상호간의 존재에 대한 수용도가 높고, 동북아 국가에 대한 상호 인정의 면에서 이해가 엇갈리지 않는 교집합이 한국과 일본 두 나라이다. 즉 북한에 대한 인식, 대만에 대한 인식, 중국에 대한 인식, 상호간에 대한 인식이 주권정체성의 면에서 거의 동일한 유일한 동북아시아의 두 개의 국가이다. 안보적 위협의 면에서도 사실 한국이 일본의 재무장을 우려하고 있고, 일본도 한국 통일에 대한 우려가 있다고 하지만 양국간의 상호의존도의 증가—특히 시민사회의 레벨에서--를 본다면 그 우려의 정도가 점차 약화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또한 같은 미국과의 동맹체제 안에 있기 때문에 미국을 중심으로 양국간 안보적 고리가 형성되어 있다. 한편, 한국, 중국, 일본 간에도 서로의 존재를 인정하는 정도가 강화되고 있으나 북한의 존재에 대한 인정 문제에 있어서 중국이 다른 두 나라와 차이를 보이고 있어 미묘한 주권정체성의 차이를 지니고 있다. 따라서 ASEAN + 3라는 지역구도에서 한,중,일 삼국 중 한국과 일본간의 “지역적 거리”가 가장 가깝다고 볼 수 있다. 이것이 그나마 한-일 간에 초보적으로라도 FTA가 논의될 수 있는 국제정치적인 배경이다.

사실 동북아 혹은 동아시아 지역주의가 보다 발전하여 아시아 시장을 제도적으로 확보하기 위해서는 한국과 일본간의 거리만큼, 다른 역내 국가의 거리를 좁혀야 한다. 여기서 가장 큰 장애는 주권정체성의 확립문제와 더불어 일본의 정상국가화 문제와 미국의 역할이다. 미국은 만일 동아시아의 지역주의가 미국의 국제경쟁력에 위협을 미치는 배타적인 구도로 가게 될 것이라면 이에 대한 상당한 견제를 할 것이다. 그러한 의미에서 미국은 동북아의 불완전한 주권의 구조를 전략적으로 이용할 가능성이 있다. 즉 안보라는 논리로 미국을 배제하는 지역주의 형성을 막으려 할 것이다. 따라서 동아시아 지역주의를 미국과 동맹관계에 있는 한국과 일본이 중심이 되어 끌어나가려 한다면 미국 문제가 항상 걸릴 수 밖에 없다. 이러한 문제를 보다 근원적으로 해결하기 위해서는 동아시아 국가들이 자체적으로 서로에 대한 수용도를 높여 나가야 한다. 즉 분단국가간의 주권의 문제와 정상국가화 되는 일본의 신뢰성 문제를 자체적으로 해결 할 수 있어야 한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는 수단은 현실적, 이상적 수단이 많이 있을 수 있지만, 앞에서도 언급하였듯이 미국의 영향력을 벗어나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다. 따라서 이제는 미국과의 관계를 원만히 유지하면서도 동아시아 지역주의를 이끌어 낼 수 있는 동아시아 내부에서의 창조적인 아이디어와 이를 정책적으로 현실화 시킬 수 있는 정책집행자의 용단이 필요하다. 이미 많은 것을 기존의 틀에서 해 보았지만 잘 안되었다. 이제는 생각을 바꾸고 그 생각이 국가들의 사고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전략을 찾아야만 할 것이다.

<2002년 3월 28일    민족의 미래를 준비하는 미래전략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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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1 Re 2: 임동원 특사 기자회견 일문일답
조진석
9891 2002-04-06
180 [펌] 임동원 특사, 돈 좀 쓰시지오
조진석
8128 2002-04-02
179 [논쟁] 미국을 어떻게 볼 것인가?
조진석
9835 2002-04-02
178 [펌]한반도 안보걱정 씻어내라
조진석
14148 2002-04-02
177 [보고서] 미국의 『핵태세 검토 보고서』와 우리의 대응 (요약)
조진석
10888 2002-04-02
Selected [보고서] 주권의 불완전성과 동북아 지역주의
조진석
8521 2002-04-02
175 [펌] '한반도 위기' 일으키는 조기 핵사찰
조진석
12215 2002-0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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