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o

한국어

토론 마당

로그인 후 자유로운 글쓰기가 가능한 게시판입니다.
이 게시판은 RSS와 엮인글이 가능합니다.
이 곳의 글은 최근에 변경된 순서로 정렬됩니다.
* 광고성 글은 바로 삭제되며, 민주주의법학연구회의 설립취지에 어긋나는 글은 삭제 또는 다른 게시판으로 이동될 수 있습니다.
* 관리자에게 글을 쓸 때, 옵션의 "비밀"을 선택하시면 관리자만 글을 읽을 수 있습니다.
* 글을 쓰실 때 개인정보(주민등록번호, 주소지 등)이 유출되지 않도록 주의해주십시오
조회 수 : 8648
2003.02.10 (09:40:09)
저는 이 문제는 국민투표적 성격을 지닌다고 봅니다. 어려운 문제입니다.

경향신문의 청탁으로 써 본 글입니다. 법률가의 무지와 월권에 대한 되물음입니다.


그런데 한 문장이 빠졌네요. "1990년대 북미간의 불신과 적대관계가 최악의상황이다." 그 다음에 "김일성 사후 우리 김영삼 정부 때의 남북관계도 그에 못지 않았다."가 들어 갔어야 하는데...  그 문장으로부터 김대중 정부들어 남북의 신뢰회복이 얼마나 중요하고 시급한 과제였는가를 말하고 싶었는데, 신문사 측에서는 김영삼 정부 때의 긴장관계를 거론하는 것이 아무래도 좀 부담스러웠던 것 같습니다.


-------------------------------------
[시론]대통령의 월권, 법률가의 월권


법률가들이 단단히 화났다. 대통령의 법적 무지 혹은 월권에 대하여 일제히 통박하고 나섰다. 대통령이 ‘통치권자의 결단’이라는 표현을 사용하자 법학 교과서에 나오는 통치행위라는 낱말이 뭇사람들의 입길에 올랐다. 민주적 법치국가에서 법으로부터 자유로운 영역이 있다고 생각하기는 어렵다. 더욱이 국가 지도자라고 해서 사법당국의 권한을 임의로 제한하려는 것은 위험한 발상이다. 대통령이 “사법심사는 적절치 않다”라고 ‘유권해석’을 내린 것은 비판받아 마땅하며, 구시대적 권위의식을 엿볼 수 있게 하는 대목이다.


또 다른 해명도 법률가들의 눈에는 점입가경이다. “초법적인 범위의 일이다” “우리의 법으로 다룰 수 없다”는 발언은 헌법을 준수하기로 맹세한(헌법 제69조의 취임선서) 대통령으로서는 무책임과 독선만을 드러낼 따름이다. 더구나 노벨상이라는 개인적 영달을 위해 정상회담 대가로 국가의 돈을 축내고 정경유착의 우를 범하면서 각종 법규를 무시했다니, 민주적 법치국가는 유린되고 만 것이다. 대다수의 법학자들이 느끼는 공분(公憤)은 아마 그러한 것이리라.


하지만 대통령은 법률가가 아니다. 부정확한 용어의 구사에 너무 집착하지 말고 전하고자 하는 취지를 다시 생각해 보자. 이 문제는 단순한 법적 사안과 달리 한반도 전체의 사정이 걸려 있는 총체적이고도 복잡한 것이 아닌가? 대통령은 “전쟁 방지를 최우선 과제로 생각해 왔다” “남북 교류·협력의 기초를 허물어서는 안된다” “북한 민심의 변화도 가져왔다”는 얘기를 하면서 국민들의 양해를 구했다. 실정법상 잘못이 있을 수 있지만, 한반도의 화해와 협력을 위한 것으로 이해해 달라는 취지일 것이다. 그리고 사실관계를 모두 까발려 북한 당국에 망신을 주고, 현대의 대북사업을 무산시키면 공든 탑이 무너질 수도 있다는 것이리라.


1990년대 이후 북한과 미국간 불신과 적대관계는 최악의 상황이다. 현재 미국은 태평양 사령부에 병력을 증파하였고, 북한은 미국이 한반도 주변에 병력을 증강하면 가만히 앉아서 죽지는 않겠다고 한다. 이준 국방장관의 말대로 북·미간에 전쟁이 나면 그것은 우리의 전쟁일 수밖에 없다. 이런 상황에서 남북의 화해와 협력은 정말 절박한 과제가 아닐까? 대북 송금이 비록 깨끗한 것은 아니었다고 해도, 김정일 위원장이 북한 군부 강경파가 아니라 외교 협상파의 손을 들어주고 북한 인민들에게 남쪽에 대한 신뢰를 얻게 하는 비용이라면 그래도 너무 비싼가?


대한민국은 민주적 법치국가를 지향하지만 전쟁의 위험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한, 온전한 것이 되기는 어렵다. 전쟁이 나면 만사휴의(萬事休矣)이다. 대통령 취임선서에서 헌법 준수와 아울러 ‘국가의 보위’와 ‘조국의 평화적 통일’에 대한 의무를 규정한 것도 바로 그 때문일 것이다. 대통령이 그 임무를 수행하는 데에 실정법규에는 미비한 점이 있고, 국민의 승인을 직접 구하기 어려운 상황에 처했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대통령의 고뇌를 한 번 같이 느껴 볼 수는 없을까? 물론 당시 대통령의 판단은 잘못이었으며 다른 더 좋은 해법을 찾았어야 한다고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사정이 위와 같다면 대통령의 범법 행위는 최소한 면책받을 만한 것은 아닐까? 2000년 남북정상회담 후 대통령의 귀국 제 일성은 ‘이제 한반도에 전쟁은 없다’라는 것이었다. 그 말이 이제 다시 무색해진 상황이지만, 그것은 햇볕정책의 실패 때문이라기보다 북·미간 불신의 골이 그만큼 깊기 때문일 것이다.


남북정상회담은 일신의 영화만을 위한 것으로 보기에는 그 의의가 자못 크다. 북한의 봉건적 거래관행과 우리의 밀실 대북정책은 비판받고 개선되어야 마땅할 것이다. 그러나 동시에 한반도의 위기상황도 감안되어야 할 것이다. 그러한 과제가 특별검사의 수사로 달성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대통령의 무지와 월권에 분노하는 법률가들 역시 한반도의 정치에 대하여 무지하고 또 월권을 범하는 것은 아닌지 자문해 본다.





최종 편집: 2003년 02월 09일 18:10:50

 
Tag Lis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