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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 수 : 11267
2003.01.14 (16:21:48)
조금 길기는 하지만, 최근의 한반도 정세에 대하여 종합적으로 아주 잘된 설명이라고 생각합니다. 조금 길기는 하지만, 일독하면 좋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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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핵 파문, 어떻게 볼 것인가?

정희석(경북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1. 북핵 파문의 발단과 경과

1) 북핵 파문의 발단 
  북한 핵파문은 2002년 10월 초 북한이 초청한 미국 특사 켈리차관보의 방북 결과 불어지게 되었다. 애초에 북한이 켈리특사의 방문을 요청한 배경은 개혁·개방의 추진을 위해 불가피했던 북·미관계의 개선에 있었다. 북한은 미국과의 협상을 통해 미국이 경제제재 조치 해제와 테러지원국 명단 삭제 등과 같은 북한의 요구를 수용하여 북한의 체제을 보장해 준다면, 북한은 핵과 미사일 문제 등에서 대폭적인 양보를 염두에 두고 있었던 것 같다.
  그런데 문제는 북한이 대화과정에서 미국의 대북적대정책의 변화 가능성이 없다는 사실을 인식한 데다 미국의 '오만함'에 자제를 하지 못한 결과, "핵무기는 물론 더한 것도 가지게 되어 있다"고 한 발언을 했게 되었고, 반면 미국은 북한의 핵개발 프로그램 보유에 대한 확실한 증거를 제시하지 않은 채, 북한의 발언을 문제삼아 "북한이 농축우라늄을 사용한 비밀 핵무기 개발 프로그램의 존재를 시인했다"고 전격 발표한 이후, 이른바 '북한의 핵개발 의혹'으로 증폭되면서 북한 핵파문이 발단되었다.

2) 북핵 파문의 경과
  북핵 파문이 전개된 과정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이 요약할 수 있다. 즉 북핵 파문은 북한의 미국에 대한 대화 제의 및 불가침 조약 체결 제의(10월 25일)→ 미국의 거부 및 '선 핵포기 후 대화' 원칙 고수→한·미·일 3국의 북핵 포기 촉구와 2002년도 12월 분 중유공급 중단 조치→북한의 핵 동결 해제선언 및 미국에 불가침 조약 체결 재차 제의→ 북한의 핵연료봉 이동 및 장전 준비→북한의 국제원자력기구(IAEA) 감시카메라 철수 및 사찰단 추방 →1월 6일 IAEA 핵시설 원상 회복 등 대북결의(만장일치) 채택→ 1월 6-7일간 한·미·일 3국 회담(TCOG)에서 북한 핵시설 원상 회복 촉구, 미국은 협상이 아닌, 즉 핵포기에 따른 대가와 지원을 고려하지 않은 대화 가능성과 불가침 문서화 가능성 언급→ 북한의 핵확산금지조약(NPT) 탈퇴 선언→북한의 미사일 실험 발사 재개 가능성 및 핵 개발 가능성 시사라는 과정을 밟으면서 현시점에 이르고 있다. 

2. 북핵 파문에서 미국의 책임과 의도
  북핵 파문의 일차적 책임은 미국에 있다고 볼 수 있다. 1994년 북·미 제네바 합의 이후 북핵 파문 시점까지 합의사항의 이행 여부를 검토해 볼 때, 미국이 북한의 핵동결 대가로 약속한 경수로(2기) 건설 시한(2003년까지)을 제대로 준수하지 못했고, 북·미관계 정상화를 진척시키지 않았으며, 핵 불사용 보장도 지키지 못했다. 오히려 부시행정부들어서 미국은 북한을 '악의 축'으로, '테러지원국'으로 지목한 데다가 핵태세 보고서에서 북한을 핵선제공격대상국가로 상정하였으며, 급기야 제네바 합의사항인 북한의 핵동결에 따른 대체에너지 공급, 즉 중유공급(2002년 12월분)을 중단함으로써 스스로 제네바 합의를 사문화한 책임을 벗어날 수 없다.
  그러면서도 미국이 북한의 핵개발 의혹을 제기한 목적은 어디에 있는가? 이를 정리해 보면 다음과 같다. ① 남한정부가 미국과의 협의없이 대북관계긴밀화를 추진한 결과, 급물살을 타고 있던 남북관계에 대해 제동을 가할 필요성이 있었다. ② 미국의 대북적대정책을 활용한 틈새외교로 한반도 영향력을 회복해 온 러시아를 견제하고 또한 미국과 사전협의없이 북한과의 정상회담을 추진하여 북한과의 수교를 꾀하고 있던 일본을 견제해야 했다. ③ 북한의 핵개발을 국제적으로 부각시킴으로써, 미국의 대북적대정책과 강경정책의 정당성을 확보할 필요성이 있었다. ④ 북한의 핵개발과 대량살상무기의 생산 및 수출을 빌미(예멘으로 향하고 있던 북한의 미사일 수출 선박의 나포 등)로 중국과 러시아가 반대해 온 동북아 지역에 대한 MD(Missile Defense)체제를 추진(남한에 대한 MD 조기 배치 등)하고 한·미·일 공조체제를 유지·강화할 목적으로 북핵 의혹을 제기한 것이다. ⑤ 당시 혼미를 거듭하고 있던 한국의 대선전 상황을 보수주의적 후보에 유리한 방향으로 흐르도록 측면에서 지원할 필요성이 있었기에 '북핵 의혹'을 '북풍'의 형태로 활용하려 한 것 같다.
  부시 행정부가 이러한 목적들을 달성하기 위해 선택할 수 있었던 묘안은 손쉬운 한반도 위기조성 방안이었던 '북한 때리기', 나아가 '북한을 벼랑끝으로 내몰기' 전술 밖에 없었다. 즉 미국은 북한 핵개발 의혹을 제기하여 북한을 벼랑끝으로 내몸으로써 한반도의 일시적 위기상황를 유도하는 고차적 전술을 택했고, 북한이 이에 적절히 대처하지 못하고 말려들어감으로써 북핵 파문이 증폭되게 되었다고 할 수 있다.

3. 북핵 파문에서 북한의 의도와 문제점
  북핵 파문의 증폭과정에서 북한이 꾀하는 의도는 과연 어디에 있는가? 한마디로 말하면, 미국으로부터 북한체제를 보장받음으로써 생존차원에서 유일한 대안으로 선택한 개혁 개방을 성공적으로 추진해 보고자 하는 데 있는 것으로 보인다. 북한 지도부는 기존의 북한식 계획경제와 대외적 고립으로는 경제난에 허덕이고 있는 북한체제가 더 이상 유지될 수 없다고 하는 위기의식 아래 '7.1경제개선관리조치'를 취하면서 경제개혁을 본격적으로 시도했는다. 그런데 경제개혁의 성공을 위해서는 해외자본의 유치와 대외적 우호환경 조성, 특히 대미관계의 개선이 절실하다고 판단하여 북미 대화를 시도했다.
  북한은 미국에 의한 대북 경제제재의 해제 및 테러지원국 지정의 해제 등 적대정책이 철회되지 않을 경우, 단기적으로는 에너지난과 식량난을 극복하기가 어렵고, 중장기적으로는 국제금융기관들로 부터의 대북경제지원, 일본과의 관계정상화와 그에 따른 경제적 지원, 남북협력사업의 강화, 그리고 남한·북한·러시아간의 철도연결 사업을 비롯한 3각 협력 등이 실현되기 어렵다고 판단한 것이다.
  그러나 북·미대화의 결과, 미국의 대북적대정책이 변화될 가능성이 전혀없다는 점을 인식한 북한이 이번 기회에 미국과의 불가침 조약을 체결하여 미국과의 관계를 확실히 정립하지 못한다면, 추진하고 있는 개혁과 개방정책의 좌초는 물론 곧 체제위기까지도 야기될 수 있다는 우려에서 초강경대응으로 일관함으로써 미국과의 협상에서 유리한 고지를 선점하고자 하는 것이다. 특히 북한이 미국과의 불가침조약 체결을 고집하고 있는 것은 이미 북·미간에는 2000년 공동코뮤니케 등 상호불가침이 포함된 여러 약속이 있었지만 미국의 핵태세 보고서 등에서 대북 핵선제공격을 언급하는 등 번번히 깨지고 있는 상황을 염두에 둔 것으로 이제 말이 아닌 문서로, 그것도 조약이라는 최고 수위의 보장을 받고자 하는 것이다.
  이에 대해 미국은 단지 대북 선제공격 의사가 없음을 누차에 걸쳐 강조하면서도 조약 체결에 반대하고 있는 데 그 배경에는 불가침조약체결 자체가 북한의 핵위협에 따른 미국의 굴복으로 비춰질 것이라는 우려와 함께, 테러와의 전쟁과 악의 축 국가들에 대한 적대정책을 수행하는 과정에서 좋지 못한 선례가 될 수 있다는 판단이 자리잡고 있다고 볼 수 있다. 특히 미국의 입장에서 보면, 북한과의 불가침조약 체결은 북한을 '악의 축'의 지위에서 사라지게 하고, 그 결과는 한반도에서 북한의 위협이 소멸되는 결과, 그리고 이는 곧 연쇄반응으로 한반도에서 미군주둔의 근거를 앗아감으로써 미국의 한반도와 동북아에 대한 주도권 상실은 물론 향후 미국의 동북아에서의 패권유지가 불가능한 상황을 연출할 수도 있다.
  한편 북핵 문제가 증폭되는 과정에서 북한이 취해 온 행동 역시 상당한 문제점을 안고 있다. 우선, 북한은 공언한 대로 핵개발 의혹이 진실이 아니라면 국제사회에 이를 입증해 보이면서, 국제여론을 조성, 미국이 대화에 응하도록 하는 노력을 일차적으로 기울이지 않고, 오히려 초강수를 둠으로써 국제사회로부터의 핵개발 의혹을 더욱 더 심화시켜왔으며, 나아가 국제사회에 북한의 행위가 갖는 '불가예측성'과 함께 '체제의 동원성'을 노정함으로써 6·15 남북정상회담 이후 축적해 온 개방적 이미지를 스스로 실추시킨 사실을 들 수 있다. 다음으로, 대미관계에서 북한 스스로는 남한에 대해 민족공조를 내세우면서도, 이번 북핵 문제를 북·미간의 문제로 단정하여 제3국이 개입할 문제가 아니라고 못박으면서, 자국의 입장에 대해 남한 측에 아무런 설명과 협의없이 오로지 남한의 북한에 대한 일방적 지지만을 요구함으로써 남한의 역할을 제한시킨 것은, 진정한 의미에서 민족공조가 아닌 것이다. 또 다른 문제는 이번 핵 파문과정에서 북한이 미국의 제네바합의사항 위반을 비난하면서 북한이 핵무기를 개발할 수 도 있다(주중 북한대사)고 위협하고 나온 사실이다. 이러한 북한의 발언은 남북한이 1991년 12월 30일 서명하여 1992년 2월 19일 제6차 남북고위급회담과 때를 맟추어 발효된 비핵화공동선언을 스스로 폐기할 수도 있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어, 북한이 초강경대응과정에서 스스로 모순에 빠져들고 있는 것은 아닌가 생각된다.

4. 북핵 파문에 대한 주변국의 입장

1) 러시아
  러시아는 전통적으로 한반도 비핵화원칙을 지지해 온 국가로, 이번 북핵 파문의 일차적 책임이 미국에 있다는 시각을 지니고 있다. 즉 미국이 북한을 '악의 축'으로 그리고 '테러지원국'으로 지목하는 등 대북적대정책을 추진함으로써 합의사항인 비적대선언과 정치·경제관계의 완전 정상화(핵무기 불사용)가 이행되지 않고 있으며, 경수로 제공의 지연은 물론 중유공급을 중단시키는 등 제네바합의를 먼저 위반함으로써 북핵 문제를 유발시키고 심화시켰다는 것이다. 러시아는 북한 핵개발 계획이 아직 무기단계에 들어서지 않을 것으로 평가하면서, 이 사태는 외교적으로 해결(물리적 제재 반대)되어야 한다고 강조해 왔다. 이와 함께 러시아는 한반도 비핵화의 당위성을 누차 천명하면서 북핵 파문의 초기 단계에서는 미국과 중국에 대해 북한의 핵포기와 동시에 북한의 체제안전을 보장하는 3자선언을 하자고 한 중재안을 내놓기도 했으며, 북한의 NPT 탈퇴 선언 이후에는 '일괄타결방식'(북한이 핵개발 포기와 한반도 비핵화를 보장하는 대신 미국은 제네바 합의 등 국제적 의무이행에 대해 철저히 보장하는 방안)을 북핵문제 해결방안으로 제시하였다. 이처럼 러시아가 북핵 문제에 적극적인 중재역할을 자임하고 있는 이유는 군사안보적, 경제적, 정치적 이해관계에서 비롯된 것이라 할 수 있다.
  ① 군사안보적 측면에서 이번 북핵 파문이 외교적으로 해결되지 않을 경우, 북한이 막다른 골목에서 핵무장을 시도할 수 있고, 북한의 핵무장은 동북아에서 핵도미노 현상, 즉 남한과 일본의 핵무장을 초래하게 됨으로써 결국 러시아가 우려하는 최악의 안보상황인 러시아 국경지대에서의 핵벨트 형성이라는 상황이 유발될 수 있다고 판단하고 있다. 북한의 핵무장이 아닌 북미간의 군사적 충돌도 마찬가지로 러시아 안보에 위협적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
  ② 경제적 측면에서 러시아는 푸틴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21세기 프로젝트의 핵심이 철의 실크로드 구상의 실현을 위해서는 한반도 정세가 안정되는 것이 무엇보다 절실하다는 인식이다. 러시아는 시베리아 횡단철도(TSR)의 전철화 작업을 마무리하여 한반도 종단철도(TKR)와 연결사업을 추진, 남한과 북한에 3자 철도회담을 제안해 놓고 있고, 남한 정부로부터 년간 물동량 확보 약속을 받아내려고 안간힘을 다하고 있는 실정이다. 시베리아와 극동지역에 대한 경제개발이 성공하지 못하면, 러시아의 전체 경제회복 및 성장이 사실상 불가능한 상황에 있는 러시아가 북핵 파문의 평화적 해결을 주장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③ 정치적 측면에서는 부시행정부 이후 벌어진 북·미 관계의 틈바구니를 헤집고 힘들게 회복한 러·북 관계를 북핵 파문으로 단숨에 악화시키지 않겠다는 의도와 함께 북핵 문제에서 적극적 중재자 역할을 통해 한반도에 대한 정치적 영향력을 강화하겠다는 의도가 내재되어 있는 것 같다.
  하지만 그동안 한반도 비핵화 원칙에 대한 지지입장과 북한 핵개발에 원칙적인 반대입장을 표명해 온 러시아가 이번 핵파문에서도 북한지도부가 핵확산 금지조약(NPT) 체제의 모든 규정과 북한이 지고 있는 의무를 엄격히 준수하길 기대한다고 강조한 측면을 염두에 둔다면, NPT 탈퇴선언에 이어 북한이 초강경 카드를 계속 꺼집어 낼 경우, 국제적인 공조틀 속에서 북핵 문제를 해결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더 이상 북한의 입장을 두둔하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2) 중국
  중국 역시도 한반도의 비핵화 원칙을 지지해 온 국가로서, 이번 북핵 파문의 평화적 해결(물리적 제재 반대)을 바라고 있다. 러시아와 같이 북한의 핵무장이 일본의 핵무장과 남한의 핵무장을 가져오게 할 것이고, 특히 대만의 핵무장까지도 초래할 수 있다고 판단하고 있어 군사안보적 측면에서 북한의 핵문제를 우려하고 있다. 또한 한반도에서의 위기조성으로 동북아 지역에 불안정해 질 경우, 이는 곧 중국의 경제발전을 저해하는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을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따라서 중국은 북핵 파문 초동 단계에서부터 미국과 북한 양국에 "1994년의 제네바 합의를 준수하고, 사태를 복잡하게 만드는 조치를 취하지 말라"고 촉구해 왔으며, 북한의 NPT 탈퇴 선언 이후에도 중국은 NPT의 조편성이 계속 유지되기를 희망하며, 북한 핵문제의 평화적 해결을 촉구하고 그 해결을 위해 노력할 것이라 밝히고 있다. 그러나 북한이 강경입장을 고수할 경우, 중국은 북한에 경제적 압력과 탈북자 문제를 압력수단으로 활용할 가능성이 있다.
  한편 중국이 러시아와 같이 한반도 비핵화를 지지하고 강조하는 이유는 강대국의 핵운용권 또는 평화적 핵이용권을 제약하지 않으면서, 인접국의 핵활동을 동결시켜 핵보유국인 자신들의 핵기득권을 강화하려는 의도로 이는 미국의 NPT체제 유지와 같은 맥락에 있다고 볼 수 있다.

3) 일본
  그동안 한반도 비핵화원칙을 지지해 온 일본은 북핵 파문에 대해서는 미국의 입장을 그대로 수용하는 태도를 보이고는 있으나, 북핵 문제가 평화적으로 해결되어야 한다는 원칙적인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특히 지난 1월 10일 러·일 정상회담에서 일본은 북한 핵개발 포기를 위한 러·일 협력은 물론, 한반도 및 동북아 안전보장을 위해 남북한과 러시아, 일본, 미국, 중국, 프랑스가 참여하는, 즉 UN 안보리 상임이사국에다 한국과 일본이 참여하는 '7개국 협의체'을 신설해야 한다는 정부방침을 러시아에 전달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일본은 기본적으로 북핵 문제와 북·일 수교협상(경제적 지원을 포함)을 연계시키고 있지만, 북핵 문제로 인해 북미관계가 악화되는 것을 바라고 있지는 않다. 왜냐하면 이 경우에는 결국 북일관계의 악화가 불가피하며 이는 곧 일본이 추진하고 있는 북일관계정상화를 어렵게 할 수 있으며, 특히 북·일 최대 현안의 하나인 납치문제 해결을 어렵게 할 수 있다고 인식하고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북·미간의 무력충돌이 발생할 경우, 1998년 북한이 발사한 대포동 미사일 1호의 사정거리안에 일본이 있다는 사실에 심대한 안보우려를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경제적 측면에서는 경제침체기에 빠져 있는 일본으로서는 한반도에서의 조성될 위기가 일본의 경제에 악영향을 미칠 것으로 확신하고 있다. 따라서 일본은 북핵 문제의 군사적 해결에 반대하는 것이다.

이처럼 한반도 주변국들의 북핵 문제에 댛나 접근법은 미국과 마찬가지로 자국의 세계전략 및 국가이익 차원에서 이 문제를 다루어 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5. 북핵 파문의 향방과 시사점

1) 북핵 파문의 향방
  북한이 NPT 탈퇴를 선언한 데 이어 그 동안 유예된 미사일 실험 발사의 재개 가능성과 함께 미국의 강경조치가 계속될 경우에는 핵개발 가능성 까지 시사한 현 상황에서 북핵 문제는 일단 국제화되는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다. 일단 오는 15일 국제원자력기구의 긴급이사회가 개최되어 북한의 NPT 탈퇴 선언 및 핵시설 원상회복 문제를 UN 안보리에 회부하는 방향으로 가닥을 잡을 것으로 보인다. 문제는 그 다음 향방인데 이 시점에서 예측할 수 있는 가능성은 크게 보아 다음과 같은 두가지 경우의 수이다.

  (1) 외교적 타결 가능성
  북핵 문제의 UN 안보리 회부와 또 다른 북한의 초강수 카드 제시(핵시설 가동, 플로트늄 재처리 등)와 관계없이 부시행정부가 외교적 해결입장을 관철(행정부내 강·온파 대립에서 온건파가 승리할 경우)시키기 위해 북한과 대화를 시도, 만일 1994년과 같이 북미간의 고위급 회담이 열려 협상이 순조롭게 진행될 경우, 제네바 합의보다 더 큰 틀에서, 즉 북·미 관계 개선에 장애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는 현안 문제들이 일괄타결되어 북미관계가 재정립될 가능성이 있다. 물론 이 과정에서 미국은 북한이 더 이상의 초강경 대응하지 못하도록 중국·러시아·일본·한국 그리고 안보리 상임이사국들과의 공조를 긴밀히 해 가면서 북한의 입지를 좁혀나갈 것으로 보인다. 어쨌든 이러한 방향으로 북핵 문제가 가닥을 잡아 나간다면, 북한은 미국으로부터 불가침을 조약의 형태는 아니라 하더라도 공식문서로 보장받아냄과 함께 북·미관계 개선와 제네바 합의에 포함되어 있던 국제적 지원을 요구할 것이고, 대신 미국은 북한에게 핵시설의 원상회복 조치와 핵시설에 대한 국제적 사찰을 요구할 것이고, 혹여 이미 북한이 핵개발을 한 상태라면 핵폐기를 요구할 것이고, 나아가 북한이 NPT와의 관계에서 이른바 '특수지위'를 활용하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 NPT 정식가입을 요구할 것이며, 가능하다면 주한미군의 주둔에 대한 인정 및 재래식 무기 재배치 등에 대해서도 합의하는 수준에서 협상이 전개되어 마무리될 가능성이 있다.
  그리고 북핵 파문이 평화적으로 해결될 경우, 북핵 문제의 재발을 방지하고 한반도 안보를 위한 새로운 틀에 대한 논의가 시작될 것으로 보인다. 우선, 현재 기능하지 않고 있는 4자회담을 대신하여 6자 회담이 가동될 가능성이 있다. 이 6자회담은 4자회담에서 소외되었던 러시아가 1994년에 제의한 것으로, 이번 북핵 파문을 계기로 러시아가 다시 제안했으며 이에 일본이 동의하면서 재대두된 것이다. 1994년 당시 6자회담을 통해 한반도 문제가 해결되기 위한 원칙으로 제시된 사항은 첫째, 6개국이 한반도 문제 해결에 동등히 관여되어 있다는 사실을 인정한다, 둘째, 6개국 가운데 각 국가는 기타 5개국간의 관계정상화를 승인한다, 셋째, 각 국가의 대내문제에 대해서는 간섭하지 않는다는 것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이외에 UN이 포함되는 7자 내지는 유럽연합(EU)까지 포함하는 8자 협의체의 구상이 대두될 수 있다. 물론 기존 4자 회담의 틀을 넘는 이러한 다자주의적 접근방식에 대해 한반도에서의 입지 약화를 우려한 미국이 주저할 수도 있지만, 미국도 이번 기회에 대북관계를 비롯한 한반도 문제를 자력으로 풀어갈 수 없음을 절감하고 있기 때문에 이러한 제의에 호의적으로 응할 수도 있을 것으로 보인다.
  또 다른 틀로는 기존에 작동해 온 한반도에너지개발기구(KEDO)의 확대를 상정할 수 있다. 이 기구는 한국이 주된 역할을 해 온 다자간 기구로서 이를 재가동하되, 중국과 러시아의 참여를 촉구해 한반도 평화체제의 정착을 위한 기초를 놓은 역할을 수행할 수도 있다.

  (2) 대립과 무력충돌 가능성
  다른 하나의 방향은 부시행정부가 강경정책으로 선회하여 UN 안보리에서 북한에 대해 NPT 탈퇴 선언의 철회 및 핵시설 원상회복을 촉구하면서 대북제재 조치를 논의할 경우이다. 만일 사태가 이러한 방향으로 가닥을 잡게 된다면, 북한이 이를 선전포고로 간주하여, 미사일 실험 발사 재개와 함께 곧 바로 핵개발을 시도하는 상황으로 나갈 수도 있다. 그러나, 그러나 현재 상황에서 북한은 핵파문을 국제화시킬 의도가 없다는 사실, NPT 탈퇴를 선언하면서도 핵개발 의지가 없다는 점, 그리고 핵시설을 전력사용에만 국한하여 가동할 것이라점을 명백히 밝히면서, 북·미 대화와 협상의 여지를 남기고 있는 만큼, 미사일 실험 발사 재개나 핵개발 시도라는 초강수는 두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NPT 탈퇴선언은 북·미대화에서 유리한 입장을 선점하기 위해 사용했던 94년의 전술을 답습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만일, 북한이 핵개발을 고집할 경우, 북한은 국제사회로부터 완전 고립될 수밖에 없고, 그렇게 될 경우 북한은 경제적 회생이 불가능하게 되어 결국 체제의 붕괴를 자초하게 될 것이다. 북한이 계속적으로 강경한 태도를 견지하기 어려운 이유는 우선, 국내적으로는 식량난과 에너지난이 심각한 상황을 탈피하지 않으면 안되기 때문에 외부로 부터의 지원이 절실하다는 데 있다. 세계식량계획(WFP)이 대북식량추가지원을 호소가 있을 만큼 북한의 식량난은 심각한 상황이다. 게다가 EU가 식량난으로 인해 굶주린 상태에 있는 북한의 어린이들과 임산부를 위해 단순히 인도적 차원에서 식량지원을 추진할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 또한 북한의 초강경대응에 대한 국제사회의 우려와 함께 공조움직임이 강화되는 상황이다.
  따라서 이러한 상황에서 북한이 더 이상 강경일변도의 정책을 추구할 경우에는 국제적 고립을 초래, 북한 지도부 스스로가 국내외적으로 궁지에 몰릴 가능성이 다분하다. 특히 그 동안 북핵 파문의 일차적 책임이 미국이 있다고 주장하면서 북한을 두둔해 온 중국과 러시아도 북한이 향후에도 초강경대응으로 일관해 갈 경우, 북한에 대한 지지를 철회할 가능성과 함께 참여는 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국제적 제재를 용인할 가능성도 없지 않다는 점을 염두에 두어야 할 것으로 보인다. 또한 북한이 강경한 태도로 일관할 경우, 이는 남한 내부에 보수적 분위기의 조성으로 남한정부의 대북지원을 어렵게 할 것이며, 북한이 생존적 차원에서 추진하고 있는 개혁과 개방이 물거품이 될 가능성도 없지 않다.
  미국 역시 강경정책으로 일관하기에 여러 가지 딜레마가 있다. 미국이 취할 수 있는 강경정책은 북핵 문제를 UN 안보리에서 회부하여 경제적·군사적 제재조치를 이끌어내는 것인데, 일차적으로 공식적 채널에서 북·미간 대화와 협상을 위한 노력을 기울이지 않고서는, 그리고 북한의 핵개발을 하지 않는 이상, 그 동안 북핵 문제의 평화적 해결을 강조해 온 중국, 러시아, 프랑스와 같은 국가들로부터 제재조치에 대한 동의를 이끌어 낼 수 없는 실정이이다. 또한 제재조치를 이끌어 낸다하더라도 북한이 이를 곧 선전포고를 받아들인다고 단정하고 있는 상황에서는 자칫 섣부른 제재 조치가 북한의 핵개발이나 북·미간 군사적 충돌로 이어질 수도 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미국의 북한에 대한 공격은 불가능하다. 한마디로 북핵 문제로 인해 한반도에서 전쟁이 발발할 가능성이 없다고 할 수 있다(아마도 북한은 바로 이 점을 확신하고 초강경 대응을 지속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 이유는 몇가지로 정리할 수 있다. ① 군사적 충돌을 중국, 러시아, 일본은 물론 남한정부가 적극 반대하고 있기에 이들 국가의 동의없이, 미국이 일방적 군사행위를 취할 경우 동북아에서 고립될 수 있다는 점이다. ② 특히 중국과의 조율없이 일방적 군사행위를 취할 경우, 중국과의 갈등은 불가피하게 되며, 그렇게 될 경우 미국의 최대 수출입시장인 중국시장에서 막대한 경제적 손실을 입을 수 있다는 사실이다. ③ 이라크와 결전의 시기를 조율하고 있는 시점에서 북한과 동시에 전쟁을 수행하기가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사실이다. ④ 미국이 북한에 대한 군사적 선택권을 가지고 있지 못하다는 사실이다. 즉 북한은 엄청난 군사력을 보유, 남한과 일본내 탄도탄요격 미사일시스템이 구축되고 있지 않은 상황에서 미국의 대북 공격은 역으로 북한의 장거리 미사일 공격에 의해 미국의 항공모함, 주한 미군과 주일 미군에 막대한 희생이 초래될 수 있고, 심지어 북한의 대륙간 탄토탄 미사일의 공격대상이 미국 본토가 될 수 있다는 점이다. 게다가 북한이 최소한 2개 이상의 핵무기를 이미 보유하고 있다는 정황이 사실이기라도 한다면 북한의 핵보복도 가능하다는 점이다. ⑤ 북한의 핵보유가 확실시 될 경우, 이는 동북아에서 핵도미노 현상을 불러 일으키게 되어 미국을 비롯한 강대국 들이 주도하고 있는 NPT체제를 뒤흔들게 되는, 따라서 미국의 동북아에 대한 입지와 세계적 입지가 약화될 수 있다는 사실이다.

2) 북핵 파문의 시사점
  작년 10월 중순부터 전개된 북한 핵 파문이 우리에게 시사하는 것을 정리해 보면, ① 한반도가 얼마나 불안정한 상태에 놓여 있는가를 실감하게 한 것, 즉 한반도에는 북한과 미국간 냉전의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다는 사실을 재확인시킨 점, ② 북·미관계의 해결없이는 북한의 개혁과 개방, 남남갈등의 해소, 남북협력강화, 북일수교, 한반도 평화정착, 남한·북한·러시아간의 3각 경제협력 등이 진전되기 어렵다는 사실을 일깨워 준 점, ③ 평화교육과 운동, 한반도 비핵화 실현, 한반도 평화체제의 수립과 동북아다자안보협의체의 수립의 필요성을 각인시켜 준 점 등을 들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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