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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 수 : 11526
2003.07.26 (10:59:03)
* 다음 글은 중앙일보 심층보도에서 옮겨 온 것입니다.
* 미국의 국제적 북한전문가인 셀리그 해리슨이 미국 공화당 정부와 외교담당자들에게 북한핵 해법을 얘기한 것이지만, 한국인에게 도움이 되는 글이라 생각되어서 옮깁니다.

북한 핵 위기 해소하기 (Defusing the North Korean Nuclear Crisis)
  - 셀리그 해리슨

다음은 북한 핵 문제의 본질과 현재 벌어지고 있는 북미 간의 첨예한 대결 국면, 한반도에서의 전쟁 가능성, 북 핵 위기를 해소하기 위한 제안 등을 주제로 한반도 전문가 셀리그 해리슨이 지난 5월7일 시카고 외교협회(Chicago Council on Foreing Relations)에서 행한 연설문 전문이다. 다소 시기가 지난 것이긴 하지만, 현재의 북한 핵 문제를 이해하는 데 빼놓을 수 없는 분석이라는 판단에서 연설문 전문을 번역, 2회에 걸쳐 연재함-편집자


우리는 북한 문제를 어떻게 다루어야 할지를 두고 미 정부가 갈라져 있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습니다. 파월과 럼스펠드 사이의 분열입니다. 북한 체제가 미국에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를 놓고 어떻게 분열이 되어 있는지에 대해서는 전혀 들어본 바가 없지만, 현재 상황을 이해하고 위기 해소책을 마련하는 데에는 북한을 들여다보는 것이 열쇠입니다.

북한의 권력 투쟁에 대해 말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김정일은 김일성의 후광을 입은 후계자이기 때문에, 정권을 정당화하기 위해 전면에 나설 필요가 있었습니다. 제가 말하려는 것은 북한 내 정책 투쟁(policy struggle)에 대한 것입니다.

북한은 두 가지 정책 노선으로 나뉘어 있는데, 하나는 핵 무기를 선호하며 미국과의 화해는 불가능하다고 믿는 강경파이고, 다른 하나는 정권의 안전과 경제 원조를 담보로 핵 무기를 포기할 준비가 되어 있는 실용주의자들입니다. 김정일은 실용주의자 편이지만 그의 아버지처럼 절대적인 통치자가 아니기 때문에 강경파를 무시할 수는 없는 입장입니다.

북한을 직접 방문한다고 해도 알지 못할 일들이 많이 있습니다만, 1972년 이후 일곱 차례에 걸쳐 북한을 방문하면서 제가 확신할 수 있었던 한 가지는, 북한 내부에서 이러한 정책 투쟁이 계속되고 있으며 북한 내의 어떤 파벌이 이기든 미국의 태도가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지난 30년 동안 북한을 방문해 본 사람들은 평양에서 줄곧 같은 관리들을 만났을 것이며, 나중에는 똑같은 사람을 역시 유엔에서 만났을 겁니다. 그러는 동안에 북한 관리들과 점차 사이가 좋아지고 북한의 상투적인 선전 문구에 얽매이지 않게 되는데, 특히 만찬 자리에서 좋은 술과 음식이 곁들여지면 특히 좋은 관계를 맺게 됩니다.

1991년의 상황으로 돌아가 봅시다. 그 해에 두 가지 중요한 사건이 있었는데, 먼저 그 중 하나는 러시아와 중국이 북한과의 무역에서 거래 대금을 현찰로 지불할 것을 요청했다는 것입니다. 무상 차관과 군사 원조, 무엇보다도 식량과 석유 무상 원조가 사라지게 된 것입니다. 두번째는 그 해 9월27일, 부시 대통령이 미군의 전략 핵 무기를 한반도에서 철수시킨 것입니다. 이 두 가지 사건 사이에 어떤 관련이 있었을까요?

냉전 막바지 시기의 경제 원조는 곧 북한이 경제 위기를 겪고 있었다는 것을 말해 주며, 노동당 안에 있는 좀더 젊고 실용적인 지도부는 지불 능력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미국, 일본, 남한의 기술과 자본을 끌어들여야 한다는 결단을 내렸습니다. 그들은 서방 국가들이 관계 정상화를 위해 핵 무기 포기를 전제 조건으로 요구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고, 노동당 내에서 이 문제는 큰 논쟁거리가 되었습니다.

이 논쟁에 참여했던 사람들이 들려준 바에 따르면 북한 내에서 전개된 상황은 이런 것들입니다. 즉, 실용주의자들은 “미국이 핵무기를 한반도에서 철수시켰기 때문에 우리에겐 더 이상 핵무기가 필요없다”는 주장을 펼쳤고, 강경파는 “미국은 단지 한반도에 배치되었던 핵무기를 철수시킨 것뿐이며, 태평양에 배치되어 있는 잠수함에서 여전히 핵 무기를 발사할 수 있다. 어찌되었든 당신네 실용주의자들은 너무나 순진하다. 우리가 핵 무기를 포기한다 해도 서방 국가들은 우리를 돕지 않을 것이다. 그들은 우리 정권이 붕괴되고 남한에 의해 흡수되는 통일을 원할 뿐이다”라고 주장했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논쟁은 1991년 12월24일 노동당 중앙위원회 회의에서 전면으로 부각되었는데, 당시 김일성은 실용주의자들의 편을 들어주었으며, 서로 합의점을 도출했습니다. 북한은 미국과 거래가 이루어질 수 있는지 실험을 해보기로 했습니다. 만약 미국이 관계를 정상화하고 경제적 원조를 해준다면 북한은 핵 무기 개발 프로그램을 포기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첫번째 부시 행정부(아버지 부시 행정부: 역주)의 마지막 2년 동안, 북한의 실용주의자들은 미국에 먼저 제안을 했으나 어느 곳으로부터도 답을 얻지 못했습니다. 클린턴 행정부로부터도 처음에는 아무런 응답이 없었습니다. 클린턴 행정부는 북한에게 단순히 핵 무기 개발 계획을 포기하라고만 말했을 뿐입니다.

모두 아시다시피 1994년 봄, 북한과의 대치 국면은 전쟁 직전까지 갔었고, 제 생각으로는 만약 카터 전 대통령이 직접 이 문제를 떠맡지 않았다면 한반도에서 전쟁이 발발했을 것입니다. 카터는 평양을 방문하였고, 김일성으로부터 즉각적인 핵 무기 개발 프로그램 동결을 얻어냈는데, 이 당시 클린턴 행정부는 여전히 대북한 UN 제재를 얻어내기 위해 노력하고 있었으며, 군사적 압박의 단계로 나아가기 위한 준비를 하고 있었습니다.

클린턴은 카터가 한 일을 좋아하지 않았지만, 클린턴이 대책을 세우기 전에 카터는 북한의 핵 개발 동결을 CNN을 통해 발표해 버렸습니다. 그리고 1994년 10월, 미국은 결국 북한의 공식적인 핵 개발 동결을 내용으로 하는 제네바 기본 합의서에 서명했습니다.

미국은 이 합의서를 통해 미국이 원하는 점을 분명히 할 수 있었습니다. 미국은 1년에 30개의 핵 무기를 생산했을지도 모를 북한의 핵 개발 프로그램을 중지시켰던 것입니다. 북한은 미국으로부터 중유 선적 외에는 대부분 수행되지 않은 약속만을 받았을 뿐이며, 클린턴은 관계정상화를 약속했지만 그 첫 단계라 할 수 있는 경제 제재 해제조차도 수행하지 않았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1994년 10월 21일 합의서에 서명한 후 일주일이 지나 공화당이 의회를 장악했기 때문입니다. 클린턴은 북한 문제로 공화당과 마찰을 빚고 싶어하지 않았으며, 다른 문제들을 놓고 공화당과 대결하기 위해 자신의 정치적 역량을 비축하고 싶어했습니다. 그 외에도, 클린턴 행정부는 북한이 붕괴할 것으로 생각하고 있었고, 미국은 1994년 합의서의 핵심 사항 등을 수행하지 않았으며, 이로 인해 평양의 강경파들은 그들의 주장을 정당화할 수 있었습니다.

그들은 김정일에게 미국이 그들을 속였다고 주장하면서 합의안 폐기를 강요했습니다. 김정일은 그들이 원하는 바를 들어주지는 않았지만, 미국이 의무 수행에 늑장을 부린 지 4년 후인 1998년 강경파들을 달래기 위해 미사일 시험 발사를 허락했습니다. 그는 또한 파키스탄과 미사일 수출 대가로 우라늄 농축 기술을 습득하는 계약을 체결하였습니다.

그는 두 가지 정책 선택을 통해 매파와 평화주의자 모두를 만족시키려 했던 것입니다, 농축 우라늄 생산을 추진하는 것은 미국이 관계 정상화를 거부할 경우를 대비한 방지책이었지만 1994년 기본 합의를 위반한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거의 같은 시기, IAEA의 핵 사찰 아래 플루토늄 생산만 빼고는 합의서의 시행 규칙을 준수하고 있었으며, 더욱 중요한 것은, 김정일이 2000년 6월 남한의 김대중 대통령과 핵 문제에 대해 합의를 했다는 것입니다.

이 회담은 미국인들에게 김정일을 보다 합리적인 인물로 부각시키는 데 성공했으며, 이 점은 클린턴에게 대북 제재의 일부를 완화시키는 데 필요한 정치적인 보상과 더불어 평양에서 워싱턴에 고위급 인사를 파견하기 위해 김정일에게 필요했던 정치적인 근거를 마련해 주기도 했습니다.

북한군 서열 2위인 조명록 북한 국방위원회 제1부위원장이 미국에 왔을 때만 해도 모든 것이 좋아 보였습니다. 2000년 10월12일 올브라이트 전 국무부 장관과 공동성명을 발표하면서 이들은 서로에게 적대적인 의도가 없음을 보여 주었습니다. 올브라이트도 평양에 다녀왔고, 클린턴은 기대했던 목적을 거의 달성했습니다.

2002년 3월6일 콜린 파월은 “클린턴 대통령이 중단한 지점에서 대북 문제를 다시 시작하겠다”고 말했습니다. 파월은 또 클린턴 행정부 관리들이 협상했던 것에는 “장래성 있는 요소들이 있다”고 말했으며, 때로는 1994년의 북·미 기본합의를 칭찬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부시 대통령과 체이니 부통령, 럼스펠드 국방 장관은 생각이 달랐습니다. 북한과의 관계 개선 대신 경제 제재나 군사 행동을 통해 북한 정권을 교체시키고 싶어했습니다.

부시 대통령은 이런 생각을 굳이 숨기지 않고 있습니다. <워싱턴 포스트>의 편집 부국장 밥 우드워드에게 부시 대통령은 김정일이 “꼴도 보기 싫으며(loathe)” 북한 정권을 “전복(topple)”시키고 싶다고까지 말했습니다. 한국, 중국, 러시아, 일본이 북한의 정권 교체에 역할을 하려 하지 않았기 때문에 결국 부시 행정부의 이 정책은 이행될 수 없었으며, 이로 인해 미국의 대북 강경 정책은 지난 2년 동안 효력을 발휘하지 못했습니다.

북한은 경제 원조를 갈망하고 있으며, 협상 할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클린턴 대통령을 대신해 평양에 갔었던 윌리엄 페리 전 대북정책조정관은 1999년 9월17일 귀국 후 PBS와의 인터뷰에서, 북한이 미국을 사정 거리에 두는 장거리 미사일의 개발 의도가 무엇인지를 묻는 마가렛 워너 앵커의 질문에 이렇게 답했습니다. “그들의 최대 관심은 안보와 억제다. 누굴 억제하겠다는 것인가? 미국을 억제하겠다는 것이다. 우리는 우리 자신이 북한에 위협이 된다고 생각하지 않지만, 북한은 우리를 위협으로 보고 있다는 나는 확신한다.”

북한을 생각할 때 페리 전 대북정책조정관의 이러한 견해를 고려하는 것은 중요합니다. 미 행정부와 언론은 북한을 미국이 만든 국제적 게임의 룰을 어긴 것에 대한 재판의 피고로 여기고 있지만, 북한의 시각에서 본다면, 우리 역시 이 재판의 피고입니다. 그들은 우리가 만든 규칙을 공정하다고 보지 않는데, 사실 미국은 북한에게 이렇게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좋다, 우리는 9천 개의 핵 무기를 가지고 있다. 우리는 좋은 편이니까 핵 무기를 가져도 되지만 너희는 단 한 개도 가져서는 안 된다. 왜? 너희는 나쁜 편이니까.” 미국은 또한 평화에 대해 잠재적인 위협으로 간주된다면 어떤 나라든 상관 없이 선제 공격할 권리를 가지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북한의 핵 프로그램을 막기 위한 현실적인 정책을 채택하기 위해서는 평양이 세계를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지를 알아야 합니다. 저는 북한의 핵 프로그램은 막을 수 있다고 봅니다. 그들의 관점을 설명하는 것은 북한의 자극적인 전략이나 태권도식 외교를 좋아하기 때문이 아니며, 저는 그들의 억압적인 전체주의 시스템을 전혀 좋아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종종 비이성적인 행동을 보여 우리를 놀라게 합니다. 그러나 그들이 어디로부터 왔는지를 이해한다면 그들의 정권 안보에 대한 우려가 비이성적인 것이 아님을 이해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상대하는 사람들은 미친 사람들이 아니며, 우리가 원하기만 한다면 협상을 할 수 있습니다. 물론, 진짜 문제는 부시 행정부가 정말 협상을 원하는 것인가 아니면 선제 공격을 위한 빌미를 만들고 있는 것인가 하는 문제입니다.

이제 현재의 위기 상황을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북한은 최근 베이징 회담에서 우리가 세 가지 조치를 취한다면 적절한 핵 사찰을 통해 핵무기 개발 프로그램을 종식시키기 위해 단계별로 협상할 준비가 되어 있다고 했습니다. 첫째, 비핵화에 연계된 상호불가침 서약에 서명을 하는 것입니다. 둘째, 주권 존중 서약에 대한 서명인데, 이는 우리가 북한 정권의 붕괴를 꾀하지 않겠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셋째는 정치 경제적 관계를 정상화하는 것으로, 미국과 세계은행이 북한의 비핵화 수준에 맞추어 그 대가로 지원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미국의 대답은 ‘노’였습니다. 공갈 협박에 굴복하지 않겠다는 것이고, 우리가 무슨 말을 하기 전에 북한이 모든 핵 시설을 해체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이 말은 사실상 우리를 믿으라고 한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공갈 협박(blackmail)’의 사전상 의미는 "협박에 의한 강요, 강탈”인데, 이번 경우에 북한과 미국 모두는 서로에게 위협적인 자세를 취하고 있습니다. 미국은 북한 인근의 태평양에 핵 무기를 배치해 놓고 핵 선 제공격을 할 권리를 갖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고, 북한은 플루토늄 재처리를 하면서 미국이 모순되는 경로를 밟을 경우 제3국에 핵 무기를 팔겠다고 위협하고 있는 것입니다. 공갈 협박이라는 단어는 이러한 상황을 정확하게 설명해 줄 수 없습니다.

이제 가장 큰 문제점은 시간이 너무 늦어서 그리고 집권 강경파들의 입장이 너무 단호해서 북한이 핵 무기 보유를 철회할 수 없는 상황이 된 것은 아닌가 하는 점입니다. 저는 너무 늦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저는 북한이 거래를 하고 있다고 믿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그들을 시험해 보기 전까지는 우리는 확실히 알 수가 없습니다. 그들을 시험해 본다는, 대북 정책을 완전히 바꿀 준비를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북한에 군사적 안보와 실질적인 경제 안보를 제공하기 위한 준비를 하지 않는 한, 북한은 전면적 핵 사찰을 통한 핵 무기 개발 계획 포기를 실제로 수행하지 않을 것으로 저는 봅니다.

일부 행정부 관리들은 북한의 합의 이행 여부를 신뢰할 수 없기 때문에 정책 변경을 통해 북한의 의도를 시험하는 것은 무의미하며, 북한은 이미 1994년 합의를 위반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사실은 북한과 미국이 동시에 북미 기본 합의 파기에 대해 비난을 받아야 합니다. 합의을 효과적으로 이행한다는 약속 때문에 북한의 플루토늄 생산 계획이 중단되었고, 그들은 현재의 대립이 촉발된 지난 가을까지 합의가 이행되는지를 면밀히 지켜보았습니다.

북한이 파키스탄과 우라늄 농축 기술 관련 협상을 벌인 것은 합의의 명백한 파기이지만, 앞에서도 지적했듯이, 1994년부터 1998년까지 미국은 기본 합의의 핵심 사항을 이행하지 못했습니다(기본 합의 2항의 관계 정상화 조치와, 3항의 북한에 대한 ‘미국의 핵 무기 위협이나 사용’을 배제하는 ‘공식적인 확인’을 말함: 역주). 북한은 미국과의 관계 개선을 바라면서 플루토늄 프로그램 중단 약속을 지키는 한편,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농축 우라늄 프로그램에 착수했던 것입니다.

몇몇 사람들은 이런 걸 바로 공갈 협박이라고는 할 수 없겠지만, 우리가 왜 이런 비위 거슬리는 정권에 대가를 치러야 하느냐고 묻습니다.

콜린 파월 국무장관은 지난 해 12월29일 ‘언론과의 만남(Meet the Press)’에 출연해 핵 무장을 한 북한과 같이 살게 될 수도 있다는 말을 했습니다. 그는 “두세 개의 핵 무기를 더 가져서 그들이 무엇을 하겠다는 것입니까?(What are they going to do with another two on three nuclear weapons?)”라면서 “몇 개를 더 가지게 된다면, 정말 몇 개를 더 가지게 되는 것입니다(If they have a few more, they have a few more)”라고 말했습니다.

무엇이 문제라는 겁니까? 핵 보유국인 중국에 대해서도 참고 있는데, 우리의 핵 우산 아래에서 북한이 핵을 가져서는 안 된다는 말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제가 보기에는 다음과 같은 이유가 가능합니다. 만약 북한이 핵 무장을 한다면 일본과 남한도 핵을 갖게 될 것입니다. 일본 우파 내에는 핵 무기 프로그램을 강력히 지지하는 사람들이 있으며, 이제는 사상 처음으로 공공연하게 지지 발언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일본은 민간 핵과 우주 개발 능력을 가지고 있으며, 미사일과 더불어 하루 아침에 세계 수준급으로 전환시킬 수 있습니다. 그런데도 많은 사람들은 일본이 정말 핵 무장을 하겠느냐고 의문을 제기할 수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북한이 옳은 행동을 하도록 우리가 왜 대가를 지불해야 하는지 몇 가지 더 분명한 이유를 제시해 보겠습니다.

북한이 미국에 원하는 것은 무엇일까요? 그들은 식량을 원합니다. 그들의 에너지 위기를 해소할 도움을 청하고 있습니다. 관계 정상화란 우리가 대북한 경제 제재를 풀고, 여러 방면의 지원 기구에 북한이 가입하지 못하도록 막고 있는 장애물을 치우는 것을 의미합니다.

일단 북한이 세계은행이나 아시아 개발은행의 지원을 받게 되면, 그들은 광업과 수송망을 재건하는 데 필요한 지원을 우리에게 요청할 것입니다. 무엇보다도 그들은 영구히 식량 원조를 받지 않아도 되는 농업 현대화에 필요한 지원을 원합니다.

이러한 도움은 미국의 국익에도 부합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경제 문제가 풀려 북한이 안정을 되찾게 되면 동북 아시아의 안정에도 좋기 때문입니다. 한국과 일본은 수백만 명의 난민을 발생시키고, 값비싼 통일 후 재건 비용을 필요로 할 북한의 붕괴를 원치 않습니다.

서울에는 이제 새로운 노무현 대통령이 탄생했습니다. 대북 포용 정책을 약속한 대통령입니다. 지금 우리는 불장난을 하듯이 선제 공격이라는 한 방향으로만 가고 있고, 서울은 다른 방향, 즉 화해와 통일을 위한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습니다.

미 행정부 정책의 기조는 ‘우리가 북한을 필요로 하는 것보다 북한이 우리를 더 필요로 하고 있다’는 것이며, 따라서 미국이 의제와 조건을 정하겠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런 태도는 평양의 정치적 현실을 외면하고 있기 때문에 화를 자초하는 것입니다.

북한은 작고, 가난하며 공격받기 쉬운 위치에 있기 때문에 더욱 강렬한 자존심과 민족주의로 무장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자존심은 그들에게 남은 전부이며, 김정일은 미국, 한국, 일본에 개방을 할 준비가 되어 있지만 그의 국내 정치적 위상을 손상시키면서까지 서방 국가의 압력에 굴복하는 모습을 보일 수는 없을 것입니다.

우리는 지금 매우 위험한 시기에 있습니다. 북한은 이전에는 보지 못했던 필사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우리가 군사적 대결 국면으로 갈 경우 제3국에 플루토늄을 수출하겠다고 위협하면서 말입니다. 워싱턴은 북한의 해상을 통한 플루토늄 수출 저지 방안을 논의하고 있습니다.

저는 한국 정부가 압력을 넣어 부시 대통령이 한 발짝 물러서기를 바랍니다. 그렇지 않다면, 그리고 핵 문제를 끝내기 위해 미국이 북한을 전쟁으로 몰고 간다면, 3만 7천 명의 주한미군, 한국 국민들뿐만 아니라 일본에까지 엄청난 재앙을 초래할 것입니다.

북한은 이미 일본과 주일 미군 기지를 사정권에 둔 노동 미사일을 실전 배치했으며, 페리 전 대북정책조정관의 말처럼, 미국이 전쟁을 일으키지 못하도록 하는 역할을 수행하고 있습니다. 이 미사일들이 전쟁 억지를 도모하는 데 얼마나 효과적인지를 시험하기보다는, 에너지, 식량, 신뢰할 수준의 안전 보장, 북한의 정권 교체를 꾀하지 않겠다는 선언 등과 연계하여 북한 핵 무기 및 미사일 개발 프로그램을 끝낼 협상을 벌이는 것이 보다 합리적일 것입니다. 저의 견해로는 우리가 북한의 요구에 “예스”라고 답하기만 한다면, 그들은 협상을 할 충분한 준비를 할 것입니다.

KISON 제공

2003. 07.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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