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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용


다문화제국의 새로운 통치전략



* 국내 최초로 출간되는
본격적인 똘레랑스 비판서!


* 과연 똘레랑스는 우리 시대의 정치적 해법일 수 있는가?

자유주의 관용 정치의 탈정치화 효과를 분석하면서 정치적인 것의 재구축을 역설한다.

이주민, 여성, 동성애자, 흑인, 유대인, 무슬림에 대한 관용은 제국의 지배적 규범에 대한 도전을 견제하고 봉쇄한다!

◎지은이: 웬디 브라운 ◎옮긴이: 이승철 ◎출판일: 2010년 2월 22일
◎판형: 변형 신국판(145×215) ◎쪽수: 344쪽 ◎정가: 18,000원
◎출판사: 도서출판 갈무리 ◎ISBN 978-89-6195-023-7 ◎도서분류 : 카이로스총서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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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관용: 다문화제국의 새로운 통치 전략』소개

언제부터 우리는 다양한 사회 문제들의 원인을, 불평등과 부정의가 아닌 “불관용”에서 찾게 된 것일까? 언제부터 우리는 사회 문제의 해결을 위해 사회적 변화나 평등이 아닌 개인과 권력의 관용을 호소하는 것에 익숙해진 것일까? 웬디 브라운의 『관용:다문화 제국의 새로운 통치전략』은 이러한 질문에 대한 상세한 답변이라고 할 수 있다. 오늘날 가장 주목받는 정치이론가 중 한 명인 저자는, 우리 시대의 윤리적 이상이자 선으로 칭송받는 관용의 어두운 면을 들춰내고, 최근 20여 년 간 전 세계적으로 부흥한 관용 담론이 생산하는 탈정치적 효과에 대해 상세히 파헤친다.



2.『관용: 다문화제국의 새로운 통치 전략』출간의 의미

다음과 같은 점들이 『관용: 다문화제국의 새로운 통치 전략』을, 우리 시대의 다문화주의와 정치, 민주주의의 문제에 관심을 가진 이라면 누구나 읽어야 할 필독서로 만들고 있다.

1) “다문화적 관용”의 탈정치성에 대한 문제 제기

오늘날 “다양한 문화에 대한 관용”은 우리 사회의 다문화화로 인한 각종 문제들의 궁극적 해결책으로 이야기되고 있다. 관용론자들은 인종차별이나 동성애 혐오, 여성 혐오 등의 문제가 서로 다른 문화를 인정하지 않는 우리의 관용적 태도의 부족 때문에 발생하며, 따라서 우리는 다양한 경험과 노력을 통해 관용적 감수성을 함양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저자는 이러한 표준적 관용 담론이, 사회적이고 정치적인 문제들을 개인의 태도와 감수성 차원의 문제로 축소시키고 있다고 반박한다. 더 나아가 관용 담론은 차이를 가진 소수자들을 정치적 주체로 인정하기보다는, 자신들의 차이를 정부나 지배 문화로부터 “관용 받아야 할” 수동적 주체로 재현한다. 이 책은 오늘날 보편적 선의 외양을 한 다문화적 관용 담론의 이면에 놓인 탈정치화 효과에 대한 날카로운 문제 제기이다.


2) 자유주의적 제국주의에 대한 비판

오늘날 서구 제국주의 국가들의 이슬람에 대한 배제와 테러와의 전쟁은, 야만에 맞선 문명의 이름하에 행해지고 있다. 대체로 서구 문명의 산물로 간주되는 관용은, 이러한 제국주의적 행태들을 정당화하는 핵심적 기능을 담당한다. 서구 및 선진국 국가들의 문명은 관용적이고 개방적인 반면, 이슬람을 비롯한 후진적 국가들의 문명은 불관용적이고 편협하다. 따라서 불관용으로 고통 받는 후진 국가들의 민중들을 “해방”시키는 것은, 이제 서구의 정의로운 행위이자 문명사적 임무로 정당화되는 것이다. 흔히 폭력을 억제한다고 이야기되는 관용은, 관용 가능한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을 식별하고 이 관용 가능한 범위에서 벗어난 대상들에 대한 폭력적 조치들을 정당화하는 기능을 수행한다. 이 책은 다양한 사례를 통해, 9/11 이후 관용 담론이 어떤 식으로 문명화된 서구와 야만적 이슬람을 대립시키고, 서구의 자유주의적 제국주의를 정당화해 왔는지를 폭로한다.

3) 새로운 정치적 기획에 대한 촉구

『관용: 다문화제국의 새로운 통치 전략』은 관용 담론이 오늘날 정의와 연대의 가치에 기반한 정치적 기획들을 어떻게 방해하고 있는지를 조명한다. 관용 담론은 특정 집단의 차이를 사회적으로 구성된 것이자 공적이고 정치적인 차원에서 논의될 사안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변화될 수 없는 고정된 정체성으로 파악한다. 이제 우리는 “너와 나는 다르다”라는 선언 아래 서로 간의 차이를 관용할 수 있을 뿐, 연대의 가치 하에 새로운 공통성을 생산하고 공동의 행동을 전개하는 것은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다. 저자는 관용의 이러한 분할 효과를 비판하고, 권력에 대한 분석과 연대 및 민주주의의 가치에 기반한 새로운 정치적 대항 담론들의 필요성을 강조한다. 이러한 점에서 『관용:다문화제국의 새로운 통치전략』은 최근 새롭게 조명되고 있는 정치적인 것과 보편성에 대한 정치철학적 논의들과 긴밀히 연결될 수 있을 것이다.


2. 『관용: 다문화제국의 새로운 통치 전략』의 핵심적 특징

■ 똘레랑스론에 대한 본격적인 비판서이다.

1995년 홍세화의 『나는 빠리의 택시운전사』가 출간되면서 그의 ‘똘레랑스론’이 한국 사회에서 광범위한 사회적 공감을 얻게 되었다. (홍세화는 최근 2000년에 출간했던 『왜 똘레랑스인가』(필리프 사시에 지음, 상형문자, 2000)을 『민주주의의 무기, 똘레랑스』(이상북스, 2010)라는 제목으로 직접 번역하여 다시 펴내며 ‘똘레랑스’가 우리 사회에 필수적인 덕목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90년대 중반 한국 사회에 혜성같이 등장해 대중화되었던 “똘레랑스” 담론이 어쩌면 당시 막 자리 잡고 있었던 새로운 자유주의적 통치를 보충하는 역할을 한 것은 아니었을까라는 질문을 던져볼 수 있을 것이다. 80년대를 특징짓던 “전쟁 담론”의 빈 공간을 메우며 진보주의자들의 언어로 자리 잡았던 “똘레랑스”는, 어쩌면 사회의 보편적 적대를 부인하는 동시에 이러한 적대를 전면에 내세우는 급진적 담론들을 통제할 필요가 있었던 자유주의적 통치와 일종의 공모관계를 맺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옮긴이 후기, 337쪽)

■ 저자는 푸코의 방법론에 따라, ‘관용’ 담론의 계보학을 추적한다.

종교와 정치의 분리를 역설한
존 로크

신교도에 대한 불관용의 폐해를 지적한 볼테르

2010년 미국에서 관용 승리의
아이콘으로 여겨지는
버락 오바마


종교개혁 이후 존 로크의 관용론
“서구 사회에서 통치의 원리로서의 관용이 최초로 등장한 것은, 15~16세기 이단자의 처우와 관련해서였다.…물론 자유주의적 관용의 기원이라고 할 만한 여러 원칙들이 등장한 시기는, 르네상스 시기보다는 종교개혁 시기라고 할 수 있다.…종교개혁 이후 가장 대중적으로 관용의 원리를 정식화한 사람은, 다름 아닌 존 로크였다. 로크는 1689년 영국의 왕위 계승자를 둘러싸고 종교 간의 논쟁이 한창 벌어지던 당시, 『관용에 관한 편지』를 익명으로 출판하였다.…이 『편지』에서 로크는 단지 관용을 호소하는 데 그치지 않고, 정치, 사회와 종교적 삶을 구분할 것을 주장하였다. …로크는 다음과 같이 선언한다. “그러므로 자기 영혼을 돌보는 일은 각자에게 달려 있으며, 각자에게 맡겨져야 한다.”(405) 이러한 선언은, 장차 근대성의 상징이 될 개인적이고 사적인 신앙인의 출현을 알리는 것이다.…공동체 내의 다양한 믿음들은, 이제 그 믿음이 어떤 공적 중요성도 없음이 인정되는 경우에 한해서만, 관용의 대상이 될 수 있다. (2장 관용:권력의 담론, 66~69쪽)

볼테르의 『관용론』
18세기 초반 프랑스의 계몽주의자였던 볼테르는 신교와 가톨릭교의 갈등이 극에 달했던 당시 상황에서 벌어진 한 신교도 가장(칼라스)의 억울한 죽음에 분노하였다. 종교적 편견에 의해 조작된 칼라스 사건의 진실을 밝히고자 마음먹은 볼테르는 이 책을 통해 광신과 편견에 의한 진실의 왜곡, 무자비한 고문, 사형 등 야만적 형벌 제도를 강하게 비판하고, 동서양의 역사와 성서 등을 뒤져 불관용에 대한 반론의 논거를 구체적으로 찾아나간다. 그는 불관용의 폐해를 지적하며 인도주의의 이름으로 종교의 자유를 부르짖었다. 개인의 양심과 믿음에 기반한 신앙에 대한 관용을 주장했다는 점에서, 한 세기 전 로크의 주장과 볼테르의 관점은 일맥상통한다고 할 것이다.

오늘날의 관용 담론
“최근 들어 다문화주의 관용 담론이 부흥하면서, 개인보다는 집단에 기반한 관용 개념―좀 더 정확히 표현하자면, 특정한 집단에 귀속된 개인에 대한 관용 개념―이 다시 전면에 등장하기 시작한 것 같다.…근대 초기, 종교적 이견이나 양심의 자유에 적용되었던 관용은, 이제는 종족, 인종, 민족, 섹슈얼리티의 문제 등에 폭넓게 적용되고 있다.…관용이 종교적 믿음이나 타인의 신념에 적용되었던 시기, 즉 관용이 믿음을 사사(私事)화함으로써 국가 권력을 강화하는 것을 목표로 했을 때의 관용은, 종교 및 양심의 자유에 대한 평등한 권리라는 평등 개념과 긴밀히 연결되어 있었다. 그래서인지 근대 유럽 역사에서, 관용은 종교의 자유와 치환 가능한 용어로 사용되었으며, 초기 자유주의자들이 정치적 평등의 조건으로 정식화한 도덕적 자율성과도 별 문제없이 수렴해 왔다. (물론 그렇다고 해도, 관용은 평등과 동의어는 아니었으며, 종교 간의 실질적인 평등을 목표로 삼지도 않았다.) 그런데 관용의 대상이 특정한 속성을 갖춘 개인들이나 사회적으로 주변화된 정체성들로 변하게 되면,…관용은 평등에 대한 자유주의적 실천의 한계를 은폐하고 그것을 보충하면서, (스스로를 완벽한 것으로 내세우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은) 자유주의적 평등을 보완하는 역할을 수행하게 되는 것이다.” (2장 관용:권력의 담론, 72~75쪽)

■ 다문화시대에 관용론이 갖는 정치적 효과를 면밀히 분석한다.

관용은 갈등과 불평등을 포장하고 관리하는 대표적인 ‘탈정치화’ 기제로 기능한다.
관용은 차이와 정체성을 존재론의 수준으로 물화하고, 극복할 수 없는 사회 문제의 원인으로 지목하여, 정체성이 만들어지는 구조적 원인을 은폐한다. 또한 차이에 대한 묵인과 갈등 그리고 적대행위의 회피를 유일한 대안으로 보며, 기존의 체제를 안전하게 보존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따라서 관용은 필연적으로 운동을 침묵시키며 실질적인 도전과 저항을 방해한다.

위기에 처한 국가 권력을 강화하고 정당화하는 역할을 담당한다.
“오늘날 관용 담론은…국가의 정당성을 뒷받침하고 국가 권력을 확장하는 데 일조하고 있다. 앞으로 살펴보겠지만, 현대 국가는 한편으로는 세계화로 인한 주권의 약화로, 다른 한편으로는 자신이 표방해 왔던 보편성의 위기로 인해 곤란에 처해 있는데, 관용 담론은 이러한 위기에 처한 국가를 강화시키고 정당화하는 기능을 수행할 뿐 아니라, 역설적이게도 국가 폭력을 정당화하는 역할을 담당하기도 한다. (4장 관용:통치성―보편주의의 쇠퇴, 국가 정당성, 국가 폭력, 142쪽)

관용은 중동과 제3세계에 대한 미국의 제국주의적 착취와 유럽의 적대행위를 정당화한다.
"관용은 단순한 상징을 넘어, 오늘날 국제적인 차원에서 서구의 정당성을 뒷받침하는 핵심적인 담론으로 기능한다.…관용을 자유민주주의와 동일시하고 비자유주의 체제를 근본주의와 동일시하는 담론은, 결과적으로 서구의 도덕적 우위와 비(非)서구에 대한 서구의 폭력을 정당화하고 있다.…결국 서구를 문명의 편에서 “불관용”을 규제할 수 있는 전도사로 만들고, 이는 현재 해방(liberation)이라는 미명 하에 자행되는 제국주의적 침략을 정당화하는 것으로 귀결된다. 이런 식으로 관용은 어느새 21세기 서구 제국을 정당화하는 핵심적인 용어가 되었다.” (2장 관용:권력의 담론, 77쪽)

미국 사회의 생생한 사례들을 통해 관용의 기만적 효과를 폭로한다.
“지난 대선에서 버락 오바마의 당선은 (미국이 추구하는) “관용의 승리”라는 이름하에 찬양되었고, 이어서 오바마가 자신의 취임식 기도를 동성애에 반대해 온 복음주의 목사와 동성애자 가톨릭 신부에게 동시에 맡긴 것 역시, “관용의 표현”이란 이름으로 옹호되었다. 첫 번째 사례에서 사람들이 관용의 이름으로 흑인의 종속이 끝났다고 선언하는 순간, 역설적으로 흑인들은 이 승리를 관용한 백인들의 미국에 다시 종속된다. 두 번째 사례는 편견의 관용과 동성애자를 향한 관용을 동등하게 취급하면서, 시민권에 관한 복잡한 정치적 논쟁을 야기하고 있다.” (한국어판 서문, 9쪽)

“유엔 회의장이나 국제 인권 운동 속에서, 관용은 양심의 자유, 표현의 자유와 함께 인간의 존엄성을 위한 근본적인 요소로 언급된다. 유럽에서, 관용은 제3세계 이민자들과 집시 그리고 (여전히 존재하는) 유대인과의 갈등에 대한 적절한 처방전이자, 발칸 반도 분쟁의 해결책으로 각광받고 있다. 미국에서, 관용은 다양한 인종의 이웃들을 한데 묶어주고 평화적으로 공존할 수 있게 해 주는 방책이자, 군대 같은 조직의 동성애 혐오에 대한 적절한 처방전, 그리고 늘어만 가는 증오 범죄에 대한 해독제의 자리를 차지하게 되었다. 관용은 2000년 미 대선에서 민주당 부통령 후보이자 독실한 유대교인이었던 리버만(Joseph Lieberman) 지지자들이 내건 슬로건이었으며, 조지 W. 부시가 개인의 성적 지향에 관계없이 행정부 각료를 선출하겠다고 선언하면서 사용한 단어이기도 하다.” (1장 관용:탈정치화 담론, 19쪽)

“이곳은 일단 관람객들이 자유롭게 돌아다닐 수 있는 장소로, 벽에는 <책임지기>라는 제목을 단 거대한 열 개의 사진이 전시되어 있다.…여성에 대한 폭력에 항의하는 여성들의 “밤길 되찾기” 시위, “관용 깃발”을 만들고 있는 초등학생들, 반反유대주의적 폭력에 항의하는 몬태나 주의 시위, 노숙자 지원 캠페인, 세자르 차베스를 기념하는 법정 공휴일 지정, KKK단에 맞서 관용 기금을 모금하는 “레모네이드 프로젝트”, 분쟁지역의 청소년들을 후원하는 “평화의 씨앗”, 유대인과 흑인을 연결시켜주는 프로그램인 “이해하기”, 1990년 미국의 장애인법 제정, 홀로코스트 생존자인 안네 프랑크와 보스니아 내전 생존자인 즐라타 필리포비치(ZlataFilipovic)에 대해 배우는 롱비치 고등학생들의 모습.” (5장 관용:박물관의 전시물―<시몬 비젠탈 관용박물관>, 213~214쪽)


4. 지은이·옮긴이 소개

[『관용: 다문화제국의 새로운 통치전략』의 저자 웬디 브라운]

|지은이|
웬디 브라운 (Wendy Brown)
프린스턴 대학에서 정치철학 박사학위를 받고, 현재 캘리포니아 대학 버클리 캠퍼스 정치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맑스와 니체, 푸코 등을 이론적 자원 삼아, 후기 자유주의의 정치적 조건들과 정체성 정치의 한계를 분석한 일련의 독창적 저작들로 주목받고 있다. 주요 저서로는 『남성성과 정치:정치이론의 여성주의적 독해』(1988),『상처의 상태: 후기 근대의 권력과 자유』(1995), 『역사 바깥의 정치』(2001),『경계에서:지식과 권력에 관한 비판적 에세이』(2005) 등이 있으며, 자넷 할리(Janet Halley)와 함께 『좌파 법치주의/좌파적 비판』(2002)을 편집하였다. 최근에는 신자유주의 정치합리성 비판과 주권 개념의 변화를 추적하는 작업에 몰두하고 있으며, 2009년 슬라보예 지젝, 알랭 바디우, 자끄 랑시에르 등 대표적인 현대 정치철학자들과 함께 『어떤 상태의 민주주의?』를 불어로 출판하였다.

|옮긴이|
이승철 (Lee Seung-Cheol, 1980~ )
서울대학교 사회학과를 졸업하고, 동대학원에서 생정치와 폭력, 자유주의적 통치의 문제를 연구하고 있다. 옮긴 책으로 『푸코의 맑스』(갈무리, 2004)가 있다.


5. 『관용: 다문화제국의 새로운 통치전략』차례

한국어판 서문
감사의 말

1장 관용:탈정치화 담론 017
관용:권력의 담론, 통치성의 실천|관용과 탈정치화 혹은 탈정치화로서의 관용

2장 관용:권력의 담론 057
계보학|관용의 대상들:믿음, 진리, 정체성

3장 관용:대리보충―“유대인 문제”와 “여성 문제” 091
유대인|여성|평등과 관용

4장 관용:통치성―보편주의의 쇠퇴, 국가 정당성, 국가 폭력 135
동성 결혼|이슬람 관용하기

5장 관용:박물관의 전시물―<시몬 비젠탈 관용박물관> 179
<관용박물관>의 역사|<관용박물관> 관람기|탈정치화로서의 관용, 관용의 탈정치화

6장 관용의 주체들:문명인 ‘우리’와 야만인 ‘그들’ 243
프로이트|자유주의와 그 타자

7장 관용:문명 담론 283
문명 담론|관용 교육|관용을 베풀기/관용을 철회하기|
관용과 자본 그리고 자유주의적 제국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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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승현
8633 2009-10-20
숙명여대 홍성수님의 글(민주법연심포지엄토론방 참고) 잘 읽었습니다. 92년과 93년 94 95년--96년... 진행된 논의들... 그때 사실 발족선언문을 폐기하자는 의견이 강력하게 대두되었던 걸로 알고 있습니다. 그 당시 한국현실의 경제적 사회적 기초는 여전히 발족선언문에서 제시한 것과 틀리지 않다고 보고 그대로 가기로 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물론 현재 민주법학의 기본이념이 바뀐것인가에 대한 의문이 많이들기도 합니다. 그리고 덧붙여 또 다른 중요한 문제들도 많습니다. 예를 들어 민주법연이 지향하는 그 이념을 실현하는 방법론 다시 말해서 구체적이고 현실적이고 실천적인 방법론을 획득하지 못해온 것이 더 중요한 문제라고 알고 있습니다. 따라서 이념적 실천의 구체적 무기가 무엇인지 - 법학적 방법론은 결국 무용한 것인지-...... 민주법연의 정체성에 관한 그 글에서 분명히 해야할 부분이 많은 것 같습니다. 발족 선언문에서 맑스주의 법학을 전면적으로 이야기한 부분은 없다는 것입니다. 기존의 개념법학이 민중의 권익에 이바지 하지 못한 점을 비판하고 그에 대한 대안으로 비판법학 내지 "과학적 세계관"에 입각한 법학을 천명한 것입니다. 과학적 세계관에 입각한 법학이란 무엇인가? 추상적인 이 질문에 많은 답변이 가능하겠는데, 물론 맑스주의적 법학도 그에 포함됩니다. 다만 맑스주의적 법학방법론이라는게 정확하게 무엇인지 논의는 많이 되었으나 연구회전체차원에서 정리된 것은 없습니다. 중요한 것은 민주법학이 민중의 이익과 민주주의에 복무해야한다는 점이었죠 그 임무는 여전히 민주법학에 살아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발족선언문의 대부분은 당시의 정치적 상황을 비판하는데 역점을 둔 것입니다. 즉 전두환 노태우로 이어지는 그당시 정권은 분명 군부가 중심이 되어 민주주의를 유린하던 상황이었습니다. 이를 우리는 파시즘체제라고 규정지었던 것이죠...그리고 민주법학1호부터 6호까지 지배하던 맑스주의 법경제론적 토론과 논제들이 연구회의 정체성을 어느정도 특징짓는 중요한 논제들이었던 것은 사실입니다. 그런데 수많은 토론과 세미나와 글들에도 불구하고 구체적인 방법론들이 연구회내에 자리잡은 것은 아니었고 시간이 갈수록 회의주의가 팽배했습니다. 그것은 법학방법론자체의 문제도 있었지만 " 수많은 맑스주의적 정치경제학이나 사회학들이 너무나 현실괴리적이고 추상적인 이론으로 부정확하고 이해하기도 어렵고 심지어는 대중적인 이론지들에조차 단어는 같되 사용하는 개념이나 그 범주 개념에 적용되는 현상인식이 일치하는경우가 거의 없어 체계적으로 적립되기 힘들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던 중 동구사회주의성향의 국가들이 몰락하면서 그러한 토론과 세미나는 의미를 잃기 시작해던 것이죠.. 위의 글쓴분은 민주법학의 정체성이 변했다고 하는데 초기 1호부터 6호까지가 민주법연의 정체성을 결정하는 특징을 갖고 있지만 그게 다는 아니라는 것입니다. 제가 보기엔 민주법연은 변화하고 있다고 할 수 있지만 기존의 정체성을 포기할만큼 근본적인 변화를 보이고 있는 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민주법학이 물론 맑스주의에 입각한 법학방법론을 20년전에 모색하였고 지금도 모색하고 계시는 분들이 있지만 그러한 방법론적 탐구가 민주법학에 계속해서 체계적으로 드러나지 않는다고 해서 민주법학의 정체성이 변했다고는 보지 않는다는 것이죠. 내부에서 제가 생각하기엔 그렇습니다. 그리고 민주법학의 발족선언문에 동의한 저도 맑스주의에 기반한 법학을 하지 않으면 안된다고 생각한 적은 없습니다. 사실 지금도 맑스주의적 법학방법론이라는게 구체적으로 정확하게 무엇인지 잘모릅니다. 단지 자유주의적 개념법학내지 법실증주의적 법학방법론의 안티테제로서의 새로운 비판법학방법론의 탐색 정도의 여정이 아니었던가 하는 것입니다. 그러한 과정이 일부에서는 맑스주의적 법학방법론의 확립이라고 확신하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그렇지 않는 사람들도 많다는 것이죠. 외부에서는 민주법학과 민주법연의 정체성이 완전히 변했으니 그 이이유를 밝혀달라고 말할수도 있을지 모르겠지만 내부에 있는 사람으로서 정체성이 완전히 변했다고 하는데 대해서 그리고 그 정체성이 맑스주의법학방법론이라고 확정하는데 대해서는 찬성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사법학자이면서 오스트리아의 대표적인 사회주의자였던 안톤멩거는 맑스주의법학방법론이란것에 대해서 한마디 언급도 없습니다. 멩거만큼 유명한 칼레너도 맑스주의법학방법론에 대해서 언급한바가 없습니다. 단지 민중의 이익 무산자의 이익을 위한 법학을 탐색한다는 표현은 자주 눈에 띕니다. 특히 독일민법전의 제정과정을 무산자계급 내지 민중의 관점에서 비판한 멩거의 언급은 맑스주의 사상에 기반하고 있을 지언정 자신의 방법론이 구체적으로 무엇인지 있다면 그 요소들은 무엇인지 등을 언급한바가 없는 것이죠. 그러한 방법론을 맑스주의 법학방법론이라고 한다면 또 모르겠습니다. 제가 보기엔 멩거의 방법론은 지금의 민주법학에서 눈에 띄는 비판법학적 방법에 더 가까운게 아닌가하는 생각도 듭니다. 민주법학의 정체성은 발족선언문에 나와 있는 그대로 입니다. 민주법학의 몇몇글에서 진보적 방법론을 언급하였다고 해서 그 방법론이 민중을 위한 법학을 보장하는 것도 아니고 더우기 민주법학의 법학방법론을 결정하는 것도 아닌 것입니다. 오히려 민주법학은 특정이데올로기에 강요받는 법학방법론이 아니라 기존의 법학을 비판하고 새로운 방법론을 모색하는 무엇이 사회적 경제적 약자의 권익을 증대시키고 인류의 역사발전 민주주의발전에 복무하는 것인지를 탐색하고 실천하는 열린 공간이라고 생각합니다.
211 no image 문의 드립니다. 비밀 [1]
mpcho
12 2009-10-12
210 [용산 국민법정 소식: 제 2호] 넘치는 사랑 속에서 투쟁하기에 힘이 납니다.
용산국민법정
9766 2009-09-29
용산철거민 사망사건 국민법정 소식 2호 2009년 9월 23일(수) 나는 기소한다!-넘치는 사랑 속에서 투쟁하기에 힘이 납니다. - 박창숙(용산4상공 철대책위 위원장) / 글 : 민선(인권운동사랑방) 넘치는 사랑 속에서 투쟁하기에 힘이 납니다. 신부님들이 천막기도로 용산과 함께 울고 웃은 지 100일이 되던 날, 그 특별한 날에 함께 하기 위해 가을비가 종일 내렸던 9월 21일 미사에는 평소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함께 했다. 이 특별한 자리에 함께 하기 위해 용산4가 철거민대책위원장 박창숙 님도 하루 종일 서울시청 앞에서 농성을 하다가 미사에 참여했다. 지난 15일과 19일에 폭력적으로 철거된 만장을 다시 세운 기쁨을 나누면서, 임을 위한 행진곡을 함께 부르며 앞으로의 투쟁에 대한 마음을 다잡으면서 100일 미사가 끝났다. 다시 서울시청으로 돌아가 밤샘농성을 할 준비를 하는 박창숙 위원장을 만났다....(전문 보기) 그입 다물라! - 악어의 눈물, 김석기 전 서울경찰청장 - 배여진(천주교인권위원회) 김석기 전 서울경찰청장께 수신인을 쓰고 나니, 이런 생각이 드네요. 김석기 전 서울경찰청장이라고 써야 할지, 아니면 김석기 전 경찰청장 내정자에게 라고 써야 할지 말입니다. 아마도 한 평생의 꿈이었을 경찰청장이 될 수도 있었던 순간에 용산참사가 발생하여 '도의적 책임'을 지고 사퇴하셨으니 본인으로서는 몇 날 밤을 잠을 못 이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먼저, 저희 외할아버지께서 돌아가신 이야기를 한 번 드리고 싶네요. 얼마 전, 외할아버지께서 돌아가셨습니다. 당신께서 가실 날이라는 걸 아셨는지, 떠나시기 3일 전부터 몸속의 것들을 다 비워내시고, ...(전문보기) 요모조모 따져보기 -진심의 대책 - 김연정(인권운동사랑방 자원활동가) 진심의 대책 주거권에 대한 외국의 사례와 정책을 조사하면서 떠오르는 광고 문구가 있었다. ‘저희가 찾은 답은 진심입니다’ 외국 정부와 우리 정부 사이 차이의 핵심은 바로 ‘진심’이었다. ‘보상’이 아닌 ‘보장’에 대한 진심. ‘개발 이익’이 아닌 ‘개발’에 대한 진심. 하지만 생각해 본다. 우리의 정부는 그 많은 사람이 죽어나가도 법원의 명령에 따랐으니 강제퇴거가 아니라고 주장하는, 세입자 보상을 피하기 위해 노후 지역도 민간개발 승인해 주는, 진심을 기대할 수 없는 정부가 아닌가. 이런 정부에 맞서 ‘진심의 대책’을 요구하고 있는 철거민들에게 이곳이 얼마나 ‘불편한 세상’인지 살펴보기로 하자...(전문보기) 용산과 나의 집 - 집을 찾아서 - 이동현 <홈리스행동(준), 상임활동가> 집을 찾아서 집주인에게서 전화가 왔다, 전세금을 올려야 한다고. 이천 만원은 올려야 하는데, 가능하겠냐고. 이천 만원? 당연한 말씀! 지금 살고 있는 언덕 꼭대기 열 평 남짓한 우리 집 전세값의 절반에 해당하는 금액이다. 요즘 우리 부부는 열심히 집을 구하고 있다. 2년 전, 결혼에 임박해 새 살림집을 구해야했다. 천삼백만 원짜리 전세 옥탑방에 살던 나는 민주택기금에서 영세민 ...(전문보기) 두리번 두리번- 향기로운 우물 - 류미례(다큐멘터리 감독) 향기로운 우물 -자기만의 기쁨에 빠져 현실을 외면하지 않기 막내 은별이가 가끔 자다 깨서 운다. 나쁜 꿈을 꾸었다고 하기엔 너무 서럽게 운다. 어느 날, 자고 있는 은별이 옆에서 누워있는데 은별이가 '흑흑' 하며 소리없이 흐느꼈다. 너무 마음이 아파 안아주었더니 크게 소리내어 울었다. 도대체 무엇이 우리 딸을 이토록 서럽게 하는가? 전생을 믿는 남편은 전생의 기억 때문일 거라 했고 나는 갑자기 자책감에 빠졌다. 내가 은별이에게 너무 무관심했던 건 아닌가. 내가 편안한 엄마로서 제대로 돌보지 못해서 이런 건 아닌가. 그렇다 하더라도……2년 밖에....(전문보기) 국민법정은 지금... 19일, 단체별 집중 기소인모집 거리 캠패인을 진행했습니다. 지난 19일 '용산참사 8개월 추모제'에 앞서, 인권운동사랑방, 한국대학생연합, 사회진보연대, 네티즌모임에서 거점별 집중선전전을 진행했습니다. 서울역과 용산역 주변에서 이루어진 기소인 모집 거리 캠패인을 통해, 용산국민법정의 시작을 알리고, 시민들에게 기소인에 참여해 줄 것을 선전하였습니다. 많은 시민들이 기소인모집에 참여 뿐아니라, 국민법정을 위한 모금에도 동참해 주셨습니다. 돌아오는 토요일 26일에도, 집중 거리 캠패인을 진행할 예정입니다. 거리 캠패인을 진행할 단체나 모임에서는 국민법정 사무국(02-310-9076)으로 연락주시면, 캠패인 물품을 준비해 드리겠습니다. 기소인 모집 선전전, 전국 순회 중입니다. 용산 철거민 사망사건의 책임자들을 기소하는 '나는 기소한다' 거리 캠패인이 전국 순회 중에 있습니다. 용산범대위가 주최하는 전국순회 촛불추모제와 더불어, 기소인모집 순회 선전팀이, 지난 주 수원, 청주, 전주, 천안, 대전, 목포, 광주에 이어, 이번 주에는 창원, 울산, 부산, 대구, 춘천, 인천, 부천에서 기소인 모집 거리 캠패인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현재 2주차 3일째를 맞는 오늘까지 2천여 명 이상이 지역에서 기소인으로 참여해 주셨습니다. 용산범대위(mbout.jinbo.net)의 지역 순회일정을 참고하시어, 해당 지역 촛불문화제와 기소인 모집에 많이 참여해 주시기 바랍니다. * 온라인 기소인 참여 : http://mbout.jinbo.net/court (1만인 국민이 기소한다) 30일(수), 기소된 피고인에 국민법정 공소장과 소환장 발부를 위한 기자회견을 진행합니다. 오는 9월 30일(수), 11시에 용산 국민법정에 기소된 피고인들에게 공소장과 소환장 발부를 위한 기자회견을 진행할 예정입니다. 26일까지 1차로 모집된 기소인들의 이름으로, 용산 철거민 사망사건의 주요 책임자(이명박, 오세훈, 김석기, 박장규, 천성관, 건설재벌, 개발조합, 용역깡패 등)들에게 국민법정에 소환할 명하는 내용으로 진행될 것입니다. 용산철거민 사망사건 국민법정 http://mbout.jinbo.net/court │ court@jinbo.net │ 02-310-9076
209 [용산 국민법정 소식: 제1호] 나는 기소한다!
용산국민법정
9620 2009-09-29
용산철거민 사망사건 국민법정 소식 1호 2009년 9월 16일(수) 나는 기소한다! - 약자들을 편드는 선택 - 남일당 성당 이강서 신부 (천주교서울대교구 빈민사목위원회 위원장) 정의가 없으면 평화도 없다 지난 3월 28일 이후로 용산참사 현장에서는 매일 미사가 봉헌되고 있다. 사람들은 이곳을 남일당 성당이라고 부른다. 남일당은 용산참사가 일어난 건물 1층에 있었던 금은방 이름. 현재 남일당 성당에는 문정현 신부, 이강서 신부, 정종훈 신부 이렇게 세 명의 사제가 상주하며 유가족들과 함께 생활하고 있다. 이강서 신부는 유가족들을 처음 보았을 때 ‘이들이 우리 사회와 우리 정부에 의해 완전히 버려진 사람들이구나’ 하는 느낌을 받았다고 한다. 그들은 벼랑 끝에 내몰렸고, 떼쟁이로 매도되었으며, 그들에게 남은 건 분노와 악다구니뿐이었다. 매일 경찰과 대치되는 상황. 공권력 앞에 선 그들의 모습이 마치 거인 앞에 선 어린아이처럼 보였다고 한다. 가족을 잃은 슬픔, 그런데 여기에 더하여 공권력에 의한 살해라는 사실까지 받아들여야 한다는 점에서 용산 참사 유가족들은 이중의 고통을 당하고 있다고 이 신부는 말한다. 누가 감히 그들의 고통을 헤아릴 수 있을까...(전문 보기) 그입 다물라! - 용산을 둘러싼 막말 36억 부동산 부자, 용역총대장 용산구청장 박장규 "이 세입자들은 세입자들이 아니에요. 전국을 쫓아다니면서 개발하는 데마다 돈 내라고… 이래서 떼잡이들이에요" 지난 1월 20일 용산 철거민 사망사건이 있었던 날, 박장규 용산구청장이 용산구 보광동 주민센터에서 열린 ‘2009 신년인사회 및 동정보고회’ 자리에서 한 말이다. “이 사람들이 거기서 데모를 해가지고 오늘 무슨 사고가 났다 그럽니다.”라며 자신의 공무 관할 지역인 용산구에서 벌어진 비극에 대해 개념없는 발언을 쏟아냈다. 만약 그에게 개념이, 상식이, 일말의 양심이 있었다고 한다면 신년인사가 아닌 유가족에 대한 애도를, 떼잡이라는 망발이 아닌 세입자들의 주거권 보장을 위한 대책 마련을 했어야 한다. 하긴, 박장규에게 그런 모습을 기대하는 건 지나친 욕심일 수 있다. 박장규는 건설사 사장 출신으로....(전문보기) 요모조모 따져보기 - 왜 세입자들의 주거권을 아야기하지 않는가 (법리구성 팀) 왜 세입자들의 주거권을 이야기하지 않는가 용산 철거민 사망사건이 발생한지 8개월 되었지만 이들을 사망하게 한 개발의 구조적 원인과 세입자들의 주거권은 가시화되지 못하고 있다. 지금도 개발정책은 지속되고, 세입자들은 자기가 살고 있었던 곳보다 열악한 곳으로 떠나가고 있는 실정이다. 피해는 확실하나 가해자에게 책임을 물을 수 있는 법이 없다보니 “과연 무엇을 침해라고 할지? 과연 무엇을 죄로 물어야 할지?” 각이 서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인지, 사람이 죽었지만 누구도 책임지지 않는다. 사회권의 사법심사 가능성 누구도 책임을 지지 않는 구조 속에는 주거권을 포함한 사회권 침해는 법정에서 권리침해를 다툴 수 없다는 ...(전문보기) 용산과 나의 집 - 상상하세요, 용산을 -발칙한 자칭 축복받은 고등학생입니다. 저는 혼자 사는데, 부산에 계신 부모님이 매달 방세를 대주세요. 상근하시는 사감선생님의 주된 업무가 벌레잡기인, 이름만 기숙사인 사설 기숙사에 살거든요. 서울에서 부모님과 멀리 떨어져 산다는 건 엄청나게 많은 의미를 가지고 있어요. 막차만 타면 밤에 아무리 늦게 들어가도 상관없고, 아버님이 한나라당 공천을 받으시려 하건 말건....(전문보기) 두리번 두리번- 순천향병원에서의 200일, 용산 사람들 - 김덕진(천주교인권위원회 사무국장 ) 고 이상림 열사의 손자 동원이는 지난 겨울방학 때부터 여기, 순천향대학병원 영안실 4층이 집이다. 중학교 3학년 새 학기를 여기서 시작했고 여름방학을 여기서 보냈다. 그리고 오늘 2학기 개학식 등교를 또 여기서 했다. 고 윤용헌 열사의 작은 아들 상필이와 고 이성수 열사의 작은 아들 상현이도 여기서 학교를 다니고 있지만 녀석들은 고등학생이라 그래도 마음이 좀 덜 쓰인다. 한창 사춘기라 예민할 열여섯 살짜리 소년에게 할머니, 아버지, 작은엄마랑 24시간 동안 한 공간에서 지낸 7개월은 어떤 시간이었을까? 게다가 다른 네 열사들의 가족들과 전철연 식구들까지 한공간에서 어우러져 살고 있으니 스트레스가 이만저만한 것이 아닐 텐데 '가출'처럼 큰 사고 한번 안치고 여전히 여기서 함께 먹고 자는 것만으로도 대견하고 고마운 일이다.....(전문보기) 국민법정은 지금... 국민법정 준비위원회 발족 지난 월요일인 9월 14일, 법조계, 시민사회단체, 인권운동가 등이 준비위원으로 참여하는으로‘용산 철거민 사망사건 국민법정 준비위원회’가 용산참사현장 레아에서 발족 기자회견을 갖고 출범하였습니다. 기자회견을 통해 10월 18일 오후1시~8시 국민 재판부와 국민배심원이 참여하는 국민참여재판을 갖기로 했으며, 참여를 호소하였습니다. 기소인을 모집합니다 검찰은 수사기록 3천쪽을 감춘 채, 철거민만 기소하여 재판을 파행으로 이끌고 있습니다. 이제 국민 하나하나가 기소인이되어, 용산철거민 사망사건의 진짜 주범들을 국민법정에 세웁시다! 책임자들을 기소하는 기소인에 참여해 주세요. * 기소인 참여 : http://mbout.jinbo.net/court (1만인 국민이 기소한다) 용산철거민 사망사건 국민법정 http://mbout.jinbo.net/court │ court@jinbo.net │ 02-310-9076 ? ?
208 [인권영화제] 지역과 단체에 인권영화 상영회를 제안합니다.
인권영화제
10803 2009-09-11
207 사회과학아카데미 2009년 2학기 개강 소식입니다. 파일
사회과학아카데미
34489 2009-09-10
206 no image 다지원 2009년 가을학기 수강신청 시작되었습니다.
다지원
9273 2009-09-08
205 no image <통일과 평화> 제 2호 원고 모집 파일
서울대통일평화연구소
17579 2009-09-07
<통일과 평화> 제 2호 원고 모집 1. <통일과 평화>는 서울대학교 통일평화연구소에서 연 2회(6월, 12월) 발간하는 전문학술지입니다. 본 학술지는 통일 및 평화 문제에 대한 전문적인 논의를 통해 한반도 미래에 대한 학문적 준비를 하기 위한 노력으로 창간되었습니다. 본 학술지는 통일의 과정 및 정책, 통일학의 이론과 방법론, 한반도 주변정세, 북한의 정치·경제·사회·문화에 대한 다양한 논문을 편집대상으로 하고 있습니다. 2. 보내실 글은 독창성을 갖는 순수학술논문이어야 하며, 다른 곳에 게재되었거나 게재될 계획이 없는 글이어야 합니다. 보내실 원고는 200자 원고지 120매 내외의 글이어야 하며, 영어로 작성한 논문도 게재 가능합니다. 3. <통일과 평화>는 학술논문과 함께 서평(book review)의 투고를 환영합니다. 서평은 통일 및 북한 관련 2권 이상 비슷한 주제의 학술서적에 대한 저자의 독창적인 분석과 해석이 이루어져야 하며 200자 원고지 50매 내외의 글이어야 합니다. 4. 보내신 글은 심사과정을 거쳐 게재여부를 결정하고, 출판된 원고에는 소정의 원고료를 지급합니다. 원고는 첨부된 <원고집필요령>에 따라 ‘아래아 한글’이나 ‘MS 워드’로 작성하여야 합니다. 논문 투고시에는 원고와 함께 200자 내외의 ‘논문요약문’(국문, 영문 모두)과 주제어(keywords), 그리고 투고자의 주소, 전화번호, 이메일 주소를 함께 보내야 합니다. 5. 이번호에서는 특별히 다음의 주제에 대한 원고를 모집합니다. “통일 및 남북관계 연구의 새로운 방법론적 모색” 6. <통일과 평화> 제 2호의 마감일은 2009년 10월 23(금)일입니다. * 원고 보내실 곳: 주소: 서울시 관악구 관악로 599, 서울대학교 통일평화연구소 <통일과 평화> 담당자 앞 전화) 02-880-4052~4, 팩스) 02-874-7305, 이메일) tongil@snu.ac.kr
204 넘치는 지식보다 삶의 지혜를 키워가요!
평화나눔
8915 2009-09-07
203 no image 사회과학아카데미 8월 특강 및 기획 강좌 일정
사회과학아카데미
8889 2009-08-19
202 no image 11111
11111
7619 2009-08-05
201 no image 속편 나왔어요
소나기
8327 2009-07-22
200 no image 주한미군 내보내는 한반도 평화협정 실현 한마당에 초대합니다.
평통사
16611 2009-07-22
199 no image SI와 연루된 신종인플루엔자에 대한 근원 규명
모정주의사상원
10791 2009-07-17
198 no image [신간!] 우리는 결코 근대인이었던 적이 없다_브뤼노 라투르
갈무리
9093 2009-07-10
우리는 결코 근대인이었던 적이 없다 ▶과학철학, 과학사회학 분야의 가장 영향력있는 석학 브뤼노 라투르의 대표작! ▶철학, 인류학, 사회학, 기술과학을 넘나드는 독창적인 사유를 한국어로 최초로 만난다! ▶24개 국어로 번역되어 대중적인 성공을 거둔 라투르 사상의 입문서! ▶근대주의와 탈근대주의를 넘어선 ‘비근대주의’의 정치생태학을 제시한다! ▶우리는 지금까지 결코 근대인이었던 적이 없다. 이제 그것의 반생산적인 성격을 제거한 새로운 유형의 근대인을 추구하자! ▶과학과 기술, 정치와 정부, 언어와 의미론에 대한 완전히 새로운 시각에서의 흥미롭고 심층적인 탐구! ◎지은이: 브뤼노 라투르 ◎옮긴이 : 홍철기 ◎출판일: 2009년 7월 15일 ◎판형: 사륙판 양장본(127×188) ◎쪽수: 408쪽 ◎정가: 25,000원 ◎출판사: 도서출판 갈무리 ◎ISBN 978-89-6195-016-9 04300 / 978-89-6195-003-9(세트) ◎도서분류 : 아우또노미아총서20 1.『우리는 결코 근대인이었던 적이 없다』의 출간의 의미 ‘근대적’ 이분법을 넘어선 과학의 이해 『우리는 결코 근대인이었던 적이 없다』는 과학자들과 기술자들을 연구해온 인류학자인 저자 브뤼노 라투르가 근대 세계에 대한 우리의 이해방식에 던지는 독특하면서도 근본적인 문제제기다. '과학논쟁(science wars)'의 한가운데에서 저자는 과학과 기술이 사회적 이익이나 권력에 의해 구성된다는 사회학적 '구성주의(constructivism)'와 자연적 사실은 사회나 문화로부터 완전히 분리되어 있다는 과학적 '실재론(realism)'의 양 진영으로부터의 맹렬한 비난을 받으면서도 양자 사이의 협상테이블을 마련하려 하고 있다. 저자는 오히려 이러한 협상 과정을 통해서만 우리가 사회와 자연, 정치와 과학을 보다 더 잘 이해할 수 있으며, 현재의 정치․사회적 위기와 환경․기술적 위기라는 이중의 위기에 대처할 수 있다고 보는 것이다. 탈근대주의는 ‘막다른 골목’에 다다랐다 이제 근대성에 대한 비판은 전혀 새로울 것도 없다. 보편적 합리성의 한계에 대한 폭로와 근대 계몽주의의 맹목성이 낳은 폭력에 대한 고발은 그 충격과 새로움이 완전히 퇴색되면서 전혀 기대했던 효과를 얻지 못할 정도에 이르렀다. 저자가 보기에 탈근대주의가 처한 '막다른 골목'은 탈근대주의자들의 근대인들에 대한 지나친 불신의 결과라기보다는 오히려 근대인들 자신과 마찬가지로 그들이 근대인들을 지나치게 신뢰한 결과다. 그들이야말로 근대화를 곧이곧대로 믿은 것이다. 그리고 여기에 근대성 논쟁의 핵심적인 쟁점이 자리 잡고 있다. 근대인임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근대인은 자신들의 탄생시점에서부터 이중의 존재였다. 근대인은 공식적인 표면적 층위에서는 자연과 사회, 과학과 문화, 지식과 이익을 엄격하게 구분하였고 그것이 자신들을 전근대인들과 구분시켜주는 본질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탈근대인들이나 전통주의자들도 바로 그렇게 믿었다. 그러나 다른 한편에서 근대인들은 실제로는 자연과 사회, 과학과 문화, 지식과 이익이 구분될 수 없게 뒤얽힌 비인간적 사물, '하이브리드'를 엄청난 규모로 증식시키고 동원해 왔다는 것이다. 근대성의 태동기 잉글랜드에서 홉스와 보일로 하여금 그것의 정치적 파장과 과학적 효과 모두에 대해 한꺼번에 논쟁하게 만든 공기펌프로부터 현대의 오존층 파괴, AIDS, 유전자 변형식품에 이르기까지 정치와 과학은 언제나 하이브리드에 의해 연결되어 있었다는 것이다. 우리의 사회와 과학은 이제 이렇게 증식된 하이브리드로 가득 차 있기 때문에 이들을 이해하지 않고는 사회와 과학을 제대로 이해할 수 없으며, 하이브리드에 대한 무제한적인 증식이 가져올 무서운 결과에도 대처할 수 없을지 모른다. ‘하이브리드’의 이해가 바로 근대성 이해의 열쇠이다. 하이브리드란 어쩌면 마치 유태인 설화에 나오는 골렘(golem)과도 같은 것인지 모른다. 16세기 프라하의 한 랍비는 유태인들을 박해자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진흙으로부터 인간의 형상을 한 골렘을 만들어낸다. 골렘은 랍비의 명령에 따라 박해자들에게 복수를 가하고 그들을 살해한다. 생명력이 없는 물질로부터 만들어진 골렘은 생명력을 갖게 된 것이고 결국 살인과 복수가 아닌 사랑을 원하게 되었고 그러한 감정을 거부당했을 때 자신의 창조자인 랍비를 살해하기에 이른다. 기술과 사물, 즉 하이브리드에 대한 도구주의적 관점에 사로잡힌 우리 근대인이야말로 이 설화에서의 랍비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 근대인은 하이브리드를 엄청난 규모로 창조하면서도 그것들이 실제로 무엇인지는 이해하기를 거부하기 때문이다. 저자는 하이브리드를 이해하는 것은 곧 근대인 자신을 보다 더 잘 이해하는 것이기도 하며 이를 통해서 이제 더 이상 전진도 후퇴도 불가능한 근대성 없이도 지속하고 발전할 수 있는 계몽주의를 모색하려 한다. 이러한 계몽주의는 근대인과 비근대인, 문명적 사고와 야생적 사고의 분할을 넘나드는 이미 오래된 인간의 실천에 새로운 가능성을 부여하게 될 것이다.< 2. 『우리는 결코 근대인이었던 적이 없다』에서 볼 수 있는 라투르의 사상 “『근대인』은 단순히 근대성에 대한 냉소적인 비판을 목표로 하지 않는다. 라투르는 ‘우리 근대인’이 결코 근대인이었던 적이 없었던 이유가 근대인의 필연적인 딜레마인 ‘언행의 불일치’에 있다고 주장한다. 즉 근대인의 실제는 근대인 스스로가 자신에 대해 이론화했던 내용과 다르다는 것이다―그리고 난해한 주장이기는 하지만 바로 이러한 불일치가 근대인 자신의 힘의 원천이기도 했다는 것이다.”(「옮긴이 후기」 중에서, 389쪽) “근대인임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우리가 우리 선조들의 연결망에 대한 놀라움의 표면 아래로 파고 들어가면 우리는 그와 같은 이해의 부재라는 인류학적 근원을 발견한다.”(「1장 위기」 중에서, 34쪽) “누구도 근대인이었던 적은 없다. 근대성은 시작조차 하지 않았다. 근대 세계는 존재한 적도 없다. 과거완료시제의 용법은 여기서 중요한데 그것이 회고적인 감정의 문제이며 우리 역사를 다시 읽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나는 우리가 새로운 시대에 들어서고 있다고 말하려는 것이 아니며 반대로 우리는 더 이상 탈-탈-탈근대주의자의 무분별한 비행을 계속할 필요가 없다는 것, 따라서 우리는 더 이상 훨씬 더 정교하고 더욱 비판적이며, ‘의심의 시대’로 더욱 깊숙이 들어가려고 하지 않는다고 말하려는 것이다. 그게 아니라 우리는 스스로가 결코 근대의 시대에 들어서기 시작한 적이 없다는 것을 발견한다. 따라서 우스꽝스러운 암시는 탈근대 사상가들을 언제나 따라다닐 것이다. 왜냐하면 그들은 심지어 시작하지도 않은 시대를 뒤따라 온 것이라고 주장하기 때문이다!”(「2장 헌법」 중에서, 128쪽) “근대적이라는 것은 이중의 모순을 말하는데, 하나는 ‘자연’과 ‘사회’의 두 헌법적 보장 사이의 모순이요, 다른 하나는 ‘정화’의 실천과 ‘매개’의 실천 사이의 모순이다”(「1장 위기」 중에서, 62쪽) “우리는 우리의 설명을 객체 또는 주체(사회)로 알려진 두 순수 형태에 집착할 필요가 없는데, 왜냐면 이들은 우리의 유일한 관심사인 중심적 실천 형태의 부분적이고 정화된 결과일 뿐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추구하는 설명도 사실상 ‘자연’과 ‘사회’를 얻게 되지만, 이는 출발점이 아닌 최종 결과로서 그럴 뿐이다. ‘자연’은 돌지만 주체(사회)를 중심으로 도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사물과 사람들을 만들어내는 집합을 중심으로 돈다. ‘주체’도 돌지만 ‘자연’을 중심으로 돌지는 않는다. 사람과 사물들이 창출되는 집합을 중심으로 도는 것이다. 그리하여 마침내 중간왕국이 재현된다. 자연들과 사회들은 그것의 위성들에 불과하다”(「1장 위기」 중에서, 69쪽) “근대화는 불가능해지는 것이 아닌가? 우리는 전근대인이 될 것인가―혹은 전근대인으로 퇴행하게 되는가? 우리는 반근대인으로 물러나야만 하는가? 보다 낳은 가능성이 없기 때문에 우리는 근대인이기를 지속해야 하겠지만 어떤 확신도 없이 탈근대의 중간지대twilight zone 안에서 그래야만 하는 것인가?”(「5장 재분배」 중에서, 329-330쪽) 3. 지은이·옮긴이 소개 |지은이| 브뤼노 라투르(Mihalis Mentinis 1976~ ) 프랑스 출신의 과학기술학자이며 현재 이 분야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학자 중 한 사람이다. 대학에서는 철학과 인류학을 전공하였고, 파리광업대학과 런던경제대학, 그리고 하버드대학 교수를 역임했다. 현재는 파리정치대학 교수로 재직 중이다. 현대 과학기술에 관한 인류학적이고 철학적인 연구로 널리 알려져 있다. 주요 저서로는 『실험실의 삶』(La vie laboratoire, 1979), 『미생물: 전쟁과 평화』(Les Microbes: Guerre et paix, 1984), 『과학의 실천』(La science en action, 1987), 『우리는 결코 근대인이었던 적이 없다』(Nous n'avons jamais été modernes, 1991), 『자연의 정치』(Politiques de la nature, 1999), 『판도라의 희망』(Pandora's Hope, 1999), 『사회적인 것의 재조립』(Reassembling the Social, 2005) 등이 있다. |옮긴이| 홍철기(Hong Chul-ki, 1976~ ) 1976년 서울 출생. 연세대학교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하였고 서울대학교 정치학과에서 「칼 슈미트의 정치적인 것의 개념에 대한 연구」로 석사학위를 받았다. 칼 슈미트와 조르지오 아감벤 등에 관한 논문을 발표했으며, 현재는 ‘박정희 시대의 헌법사상사’에 대한 연구로 박사학위논문을 준비하고 있다. 4. 『우리는 결코 근대인이었던 적이 없다』의 차례 한국어판 서문 1장 위기 1.1 하이브리드들의 증식 17 1.2 고르디오스의 매듭을 다시 묶기 22 1.3 비판적 입장의 위기 29 1.4 1989년: 기적의 해 35 1.5 근대인임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40 2장 헌법 2.1 근대성의 헌법 49 2.2 보일과 그의 사물들 55 2.3 홉스와 그의 주체들 62 2.4 실험실의 매개 67 2.5 비-인간의 증언 72 2.6 실험실과 리바이어던의 이중 구조물 77 2.7 과학적 표상과 정치적 대표 82 2.8 근대인에 대한 헌법의 보장 87 2.9 네 번째 보장: 소거된 신 94 2.10 근대적 비판의 힘 100 2.11 패배를 모르는 근대인 105 2.12근대성의헌법은무엇을밝히고무엇을애매하게하는가? 110 2.13 비판의 종식 119 2.14 우리는 결코 근대인이었던 적이 없다 126 3장 혁명 3.1 근대인: 성공의 희생자들 135 3.2 준대상이란 무엇인가? 140 3.3 메울 수 없는 간극 위로 펼쳐진 철학이론 150 3.4 모든 종말들의 종말 156 3.5 기호적 전환 165 3.6 누가 존재를 망각했는가? 170 3.7 과거의 시작 175 3.8 혁명의 기적 182 3.9 지나가는 과거의 종말 186 3.10 선별작업과 다중적인 시간들 192 3.11 코페르니쿠스적 반혁명 198 3.12 중간매체에서 매개자로 204 3.13 고발과 인과 관계 210 3.14 가변적 존재론들 217 3.15 4가지 근대적 수단의 연결 223 4장 상대주의 4.1 비대칭성을 종식시킬 방법 233 4.2 대칭성 원리의 일반화 240 4.3 두 번의 대분할과 그 수출입 체계 246 4.4 ‘열대’로부터의 인류학의 귀향 253 4.5 문화들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261 4.6 규모에 따른 차이 268 4.7 아르키메데스의 쿠데타 273 4.8 절대적 상대주의와 상대적 상대주의 278 4.9 세계의 탈주술화와 관련된 사소한 실수들 284 4.10 더 넓은 연결망이라 해도 여전히 모든 점에서 국지적이다. 290 4.11 리바이어던은 연결망의 다발이다. 297 4.12 주변부에 대한 이해할 수 없는 선호 302 4.13 과거의 범죄에 더하여 새로운 범죄를 저지르지 않을 방법 308 4.14 무수한 초월성들 314 5장 재분배 5.1 불가능한 근대화 323 5.2 최종 검토 329 5.3 재분배된 인간주의 336 5.4 비근대적 헌법 343 5.5. 사물들의 의회 351 참고문헌 부록 용어해설 371 그림 차례 377 국제 번역판본 일람 378 라투르의 저작목록 381 옮긴이 후기 384 찾아보기 3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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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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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결코 근대인이었던 적이 없다 ▶과학철학, 과학사회학 분야의 가장 영향력있는 석학 브뤼노 라투르의 대표작! ▶철학, 인류학, 사회학, 기술과학을 넘나드는 독창적인 사유를 한국어로 최초로 만난다! ▶24개 국어로 번역되어 대중적인 성공을 거둔 라투르 사상의 입문서! ▶근대주의와 탈근대주의를 넘어선 ‘비근대주의’의 정치생태학을 제시한다! ▶우리는 지금까지 결코 근대인이었던 적이 없다. 이제 그것의 반생산적인 성격을 제거한 새로운 유형의 근대인을 추구하자! ▶과학과 기술, 정치와 정부, 언어와 의미론에 대한 완전히 새로운 시각에서의 흥미롭고 심층적인 탐구! ◎지은이: 브뤼노 라투르 ◎옮긴이 : 홍철기 ◎출판일: 2009년 7월 15일 ◎판형: 사륙판 양장본(127×188) ◎쪽수: 408쪽 ◎정가: 25,000원 ◎출판사: 도서출판 갈무리 ◎ISBN 978-89-6195-016-9 04300 / 978-89-6195-003-9(세트) ◎도서분류 : 아우또노미아총서20 1.『우리는 결코 근대인이었던 적이 없다』의 출간의 의미 ‘근대적’ 이분법을 넘어선 과학의 이해 『우리는 결코 근대인이었던 적이 없다』는 과학자들과 기술자들을 연구해온 인류학자인 저자 브뤼노 라투르가 근대 세계에 대한 우리의 이해방식에 던지는 독특하면서도 근본적인 문제제기다. '과학논쟁(science wars)'의 한가운데에서 저자는 과학과 기술이 사회적 이익이나 권력에 의해 구성된다는 사회학적 '구성주의(constructivism)'와 자연적 사실은 사회나 문화로부터 완전히 분리되어 있다는 과학적 '실재론(realism)'의 양 진영으로부터의 맹렬한 비난을 받으면서도 양자 사이의 협상테이블을 마련하려 하고 있다. 저자는 오히려 이러한 협상 과정을 통해서만 우리가 사회와 자연, 정치와 과학을 보다 더 잘 이해할 수 있으며, 현재의 정치․사회적 위기와 환경․기술적 위기라는 이중의 위기에 대처할 수 있다고 보는 것이다. 탈근대주의는 ‘막다른 골목’에 다다랐다 이제 근대성에 대한 비판은 전혀 새로울 것도 없다. 보편적 합리성의 한계에 대한 폭로와 근대 계몽주의의 맹목성이 낳은 폭력에 대한 고발은 그 충격과 새로움이 완전히 퇴색되면서 전혀 기대했던 효과를 얻지 못할 정도에 이르렀다. 저자가 보기에 탈근대주의가 처한 '막다른 골목'은 탈근대주의자들의 근대인들에 대한 지나친 불신의 결과라기보다는 오히려 근대인들 자신과 마찬가지로 그들이 근대인들을 지나치게 신뢰한 결과다. 그들이야말로 근대화를 곧이곧대로 믿은 것이다. 그리고 여기에 근대성 논쟁의 핵심적인 쟁점이 자리 잡고 있다. 근대인임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근대인은 자신들의 탄생시점에서부터 이중의 존재였다. 근대인은 공식적인 표면적 층위에서는 자연과 사회, 과학과 문화, 지식과 이익을 엄격하게 구분하였고 그것이 자신들을 전근대인들과 구분시켜주는 본질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탈근대인들이나 전통주의자들도 바로 그렇게 믿었다. 그러나 다른 한편에서 근대인들은 실제로는 자연과 사회, 과학과 문화, 지식과 이익이 구분될 수 없게 뒤얽힌 비인간적 사물, '하이브리드'를 엄청난 규모로 증식시키고 동원해 왔다는 것이다. 근대성의 태동기 잉글랜드에서 홉스와 보일로 하여금 그것의 정치적 파장과 과학적 효과 모두에 대해 한꺼번에 논쟁하게 만든 공기펌프로부터 현대의 오존층 파괴, AIDS, 유전자 변형식품에 이르기까지 정치와 과학은 언제나 하이브리드에 의해 연결되어 있었다는 것이다. 우리의 사회와 과학은 이제 이렇게 증식된 하이브리드로 가득 차 있기 때문에 이들을 이해하지 않고는 사회와 과학을 제대로 이해할 수 없으며, 하이브리드에 대한 무제한적인 증식이 가져올 무서운 결과에도 대처할 수 없을지 모른다. ‘하이브리드’의 이해가 바로 근대성 이해의 열쇠이다. 하이브리드란 어쩌면 마치 유태인 설화에 나오는 골렘(golem)과도 같은 것인지 모른다. 16세기 프라하의 한 랍비는 유태인들을 박해자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진흙으로부터 인간의 형상을 한 골렘을 만들어낸다. 골렘은 랍비의 명령에 따라 박해자들에게 복수를 가하고 그들을 살해한다. 생명력이 없는 물질로부터 만들어진 골렘은 생명력을 갖게 된 것이고 결국 살인과 복수가 아닌 사랑을 원하게 되었고 그러한 감정을 거부당했을 때 자신의 창조자인 랍비를 살해하기에 이른다. 기술과 사물, 즉 하이브리드에 대한 도구주의적 관점에 사로잡힌 우리 근대인이야말로 이 설화에서의 랍비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 근대인은 하이브리드를 엄청난 규모로 창조하면서도 그것들이 실제로 무엇인지는 이해하기를 거부하기 때문이다. 저자는 하이브리드를 이해하는 것은 곧 근대인 자신을 보다 더 잘 이해하는 것이기도 하며 이를 통해서 이제 더 이상 전진도 후퇴도 불가능한 근대성 없이도 지속하고 발전할 수 있는 계몽주의를 모색하려 한다. 이러한 계몽주의는 근대인과 비근대인, 문명적 사고와 야생적 사고의 분할을 넘나드는 이미 오래된 인간의 실천에 새로운 가능성을 부여하게 될 것이다.< 2. 『우리는 결코 근대인이었던 적이 없다』에서 볼 수 있는 라투르의 사상 “『근대인』은 단순히 근대성에 대한 냉소적인 비판을 목표로 하지 않는다. 라투르는 ‘우리 근대인’이 결코 근대인이었던 적이 없었던 이유가 근대인의 필연적인 딜레마인 ‘언행의 불일치’에 있다고 주장한다. 즉 근대인의 실제는 근대인 스스로가 자신에 대해 이론화했던 내용과 다르다는 것이다―그리고 난해한 주장이기는 하지만 바로 이러한 불일치가 근대인 자신의 힘의 원천이기도 했다는 것이다.”(「옮긴이 후기」 중에서, 389쪽) “근대인임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우리가 우리 선조들의 연결망에 대한 놀라움의 표면 아래로 파고 들어가면 우리는 그와 같은 이해의 부재라는 인류학적 근원을 발견한다.”(「1장 위기」 중에서, 34쪽) “누구도 근대인이었던 적은 없다. 근대성은 시작조차 하지 않았다. 근대 세계는 존재한 적도 없다. 과거완료시제의 용법은 여기서 중요한데 그것이 회고적인 감정의 문제이며 우리 역사를 다시 읽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나는 우리가 새로운 시대에 들어서고 있다고 말하려는 것이 아니며 반대로 우리는 더 이상 탈-탈-탈근대주의자의 무분별한 비행을 계속할 필요가 없다는 것, 따라서 우리는 더 이상 훨씬 더 정교하고 더욱 비판적이며, ‘의심의 시대’로 더욱 깊숙이 들어가려고 하지 않는다고 말하려는 것이다. 그게 아니라 우리는 스스로가 결코 근대의 시대에 들어서기 시작한 적이 없다는 것을 발견한다. 따라서 우스꽝스러운 암시는 탈근대 사상가들을 언제나 따라다닐 것이다. 왜냐하면 그들은 심지어 시작하지도 않은 시대를 뒤따라 온 것이라고 주장하기 때문이다!”(「2장 헌법」 중에서, 128쪽) “근대적이라는 것은 이중의 모순을 말하는데, 하나는 ‘자연’과 ‘사회’의 두 헌법적 보장 사이의 모순이요, 다른 하나는 ‘정화’의 실천과 ‘매개’의 실천 사이의 모순이다”(「1장 위기」 중에서, 62쪽) “우리는 우리의 설명을 객체 또는 주체(사회)로 알려진 두 순수 형태에 집착할 필요가 없는데, 왜냐면 이들은 우리의 유일한 관심사인 중심적 실천 형태의 부분적이고 정화된 결과일 뿐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추구하는 설명도 사실상 ‘자연’과 ‘사회’를 얻게 되지만, 이는 출발점이 아닌 최종 결과로서 그럴 뿐이다. ‘자연’은 돌지만 주체(사회)를 중심으로 도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사물과 사람들을 만들어내는 집합을 중심으로 돈다. ‘주체’도 돌지만 ‘자연’을 중심으로 돌지는 않는다. 사람과 사물들이 창출되는 집합을 중심으로 도는 것이다. 그리하여 마침내 중간왕국이 재현된다. 자연들과 사회들은 그것의 위성들에 불과하다”(「1장 위기」 중에서, 69쪽) “근대화는 불가능해지는 것이 아닌가? 우리는 전근대인이 될 것인가―혹은 전근대인으로 퇴행하게 되는가? 우리는 반근대인으로 물러나야만 하는가? 보다 낳은 가능성이 없기 때문에 우리는 근대인이기를 지속해야 하겠지만 어떤 확신도 없이 탈근대의 중간지대twilight zone 안에서 그래야만 하는 것인가?”(「5장 재분배」 중에서, 329-330쪽) 3. 지은이·옮긴이 소개 |지은이| 브뤼노 라투르(Mihalis Mentinis 1976~ ) 프랑스 출신의 과학기술학자이며 현재 이 분야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학자 중 한 사람이다. 대학에서는 철학과 인류학을 전공하였고, 파리광업대학과 런던경제대학, 그리고 하버드대학 교수를 역임했다. 현재는 파리정치대학 교수로 재직 중이다. 현대 과학기술에 관한 인류학적이고 철학적인 연구로 널리 알려져 있다. 주요 저서로는 『실험실의 삶』(La vie laboratoire, 1979), 『미생물: 전쟁과 평화』(Les Microbes: Guerre et paix, 1984), 『과학의 실천』(La science en action, 1987), 『우리는 결코 근대인이었던 적이 없다』(Nous n'avons jamais été modernes, 1991), 『자연의 정치』(Politiques de la nature, 1999), 『판도라의 희망』(Pandora's Hope, 1999), 『사회적인 것의 재조립』(Reassembling the Social, 2005) 등이 있다. |옮긴이| 홍철기(Hong Chul-ki, 1976~ ) 1976년 서울 출생. 연세대학교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하였고 서울대학교 정치학과에서 「칼 슈미트의 정치적인 것의 개념에 대한 연구」로 석사학위를 받았다. 칼 슈미트와 조르지오 아감벤 등에 관한 논문을 발표했으며, 현재는 ‘박정희 시대의 헌법사상사’에 대한 연구로 박사학위논문을 준비하고 있다. 4. 『우리는 결코 근대인이었던 적이 없다』의 차례 한국어판 서문 1장 위기 1.1 하이브리드들의 증식 17 1.2 고르디오스의 매듭을 다시 묶기 22 1.3 비판적 입장의 위기 29 1.4 1989년: 기적의 해 35 1.5 근대인임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40 2장 헌법 2.1 근대성의 헌법 49 2.2 보일과 그의 사물들 55 2.3 홉스와 그의 주체들 62 2.4 실험실의 매개 67 2.5 비-인간의 증언 72 2.6 실험실과 리바이어던의 이중 구조물 77 2.7 과학적 표상과 정치적 대표 82 2.8 근대인에 대한 헌법의 보장 87 2.9 네 번째 보장: 소거된 신 94 2.10 근대적 비판의 힘 100 2.11 패배를 모르는 근대인 105 2.12근대성의헌법은무엇을밝히고무엇을애매하게하는가? 110 2.13 비판의 종식 119 2.14 우리는 결코 근대인이었던 적이 없다 126 3장 혁명 3.1 근대인: 성공의 희생자들 135 3.2 준대상이란 무엇인가? 140 3.3 메울 수 없는 간극 위로 펼쳐진 철학이론 150 3.4 모든 종말들의 종말 156 3.5 기호적 전환 165 3.6 누가 존재를 망각했는가? 170 3.7 과거의 시작 175 3.8 혁명의 기적 182 3.9 지나가는 과거의 종말 186 3.10 선별작업과 다중적인 시간들 192 3.11 코페르니쿠스적 반혁명 198 3.12 중간매체에서 매개자로 204 3.13 고발과 인과 관계 210 3.14 가변적 존재론들 217 3.15 4가지 근대적 수단의 연결 223 4장 상대주의 4.1 비대칭성을 종식시킬 방법 233 4.2 대칭성 원리의 일반화 240 4.3 두 번의 대분할과 그 수출입 체계 246 4.4 ‘열대’로부터의 인류학의 귀향 253 4.5 문화들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261 4.6 규모에 따른 차이 268 4.7 아르키메데스의 쿠데타 273 4.8 절대적 상대주의와 상대적 상대주의 278 4.9 세계의 탈주술화와 관련된 사소한 실수들 284 4.10 더 넓은 연결망이라 해도 여전히 모든 점에서 국지적이다. 290 4.11 리바이어던은 연결망의 다발이다. 297 4.12 주변부에 대한 이해할 수 없는 선호 302 4.13 과거의 범죄에 더하여 새로운 범죄를 저지르지 않을 방법 308 4.14 무수한 초월성들 314 5장 재분배 5.1 불가능한 근대화 323 5.2 최종 검토 329 5.3 재분배된 인간주의 336 5.4 비근대적 헌법 343 5.5. 사물들의 의회 351 참고문헌 부록 용어해설 371 그림 차례 377 국제 번역판본 일람 378 라투르의 저작목록 381 옮긴이 후기 384 찾아보기 3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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