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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 수 : 10091
2009.06.16 (13:21:08)

[6.15]한국천주교사제 1,178인 시국선언문

 

 


“이 사람아, 주님께서 무엇을 좋아하시는지, 무엇을 원하시는지 들어서 알지 않느냐? 정의를 실천하는 일, 기꺼이 은덕에 보답하는 일, 조심스레 하느님과 함께 살아가는 일,
그 일밖에 무엇이 더 있겠느냐?”(미가 6장 8절)


작년 여름 우리는 이웃 종교인들과 함께 공권력에 마구 짓밟혔던 광장의 민심을 어루만져주며 이제 촛불일랑 자신을 바로 세우는 성찰의 힘으로 삼자고 말씀드렸다. 그 후로 대부분의 시민들이 일상으로 돌아갔고, 덕분에 대통령은 본분에 충실할 절호의 기회를 얻게 되었다. 하지만 그 다음 벌어진 일들을 보면 국민의 기대는 물론이고 대통령 자신의 반성과 언약을 속이는 일이 대부분이었다.

각종 이권과 특혜는 오로지 극소수 특권층에 집중시키고, 경제난국의 책임과 고통을 사회적 약자들의 어깨에만 얹음으로써 극구 공생공락의 생명원칙을 파괴하려는 이유가 무엇인지 한 번 묻고 싶다. 고작 자기들만의 행복을 영영세세 누리자고 어렵사리 이룩한 민주주의의 성과와 평화통일로 가는 화해와 상생의 기조를 대수롭지 않게 파탄으로 몰고 가는 현실은 차마 눈뜨고 볼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게다가 노무현 전 대통령의 추모민심에서 극명하게 나타났고 최근 각계각층의 시국선언이 담고 있는 충정어린 호소를 좌우의 이념갈등으로 격하시키는 모습에서 우리는 비통한 심정을 금할 수 없다.

용산참사의 모든 책임을 희생자들에게 뒤집어씌우고 공권력의 절대적 정당성을 강변하는 몰염치는 바야흐로 벼랑 끝에 몰린 비정규직 등 서민대중을 장차 어떻게 대할 것인지 예고하고 있다. 난국을 타개할 지혜는커녕 용서를 구하는 최소의 겸덕조차 갖추지 못한 권력인지라 그저 미디어 악법으로 여론에 재갈을 물리고, 인터넷과 광장이라는 공론의 장을 봉쇄하면서 국민의 저항을 공포정치로 다스릴 징후가 역력하다. 아울러 경찰과 검찰 그리고 보수언론들이 나서서 빈자들과 저항과 개혁세력의 주장을 거칠게 제압할 기세다. 이런 점에서 자신과 이웃의 생존권을 동일한 것으로 여기는 현명과 지혜가 그 어느 때보다 중차대해졌고 양식을 갖춘 시민들 특히 종교인들의 각성과 분발이 요청되는 국면이 닥쳤다.

이명박 정부는 작년 백만의 촛불을 광화문의 컨테이너로 가로막았고, 올해는 오백만의 국화행렬을 서울광장의 차벽으로 둘러치면서 대화와 소통이라는 당연한 요구를 범법행위로 규정하고 있다. 이는 거듭 국민을 모독하는 불경이다. 최근 대통령의 사과나 내각의 총사퇴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지만 대통령은 일찌감치 말의 진정성을 잃어버렸고, 실용정부의 배후라 할 기득권세력의 양보와 반성이 없는 한 그 어떤 유화 조처도 근본적인 치유가 될 수 없다. 대통령이 이토록 국민의 줄기찬 요구를 정면으로 거부하고 헌법준수 의무를 저버릴 바에야 차라리 그 막중한 직무에서 깨끗이 물러나야 옳다는 것이 우리 사제들의 입장이다.

이제 국민이 해야 할 것은 대통령을 향한 애달픈 호소가 아니라 진짜 국가공동체를 차분하고 냉정하게 준비하는 일이다. 공적인 것(Res publica)은 바로 국민의 것(Res populi)라는 대원칙을 성립시키는 나라를 꿈꾸며 토론하고 기도해야 할 때다. 천만다행으로 우리는 대운하, 광우병소고기,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 등 중대한 시련을 겪으면서 경쟁과 욕망을 예찬하던 삶의 방식을 깊이 성찰할 수 있었고, 그 결과 생명평화라는 새로운 가치에 활짝 눈을 뜨게 되었다. 특히 청소년들이 민주주의의 근본을 지적했다는 점과 대중매체의 속임수를 깨닫게 된 것은 그야말로 놀라운 수확이며 새로운 사회공동체를 위한 희망의 씨앗이라고 하겠다.

경인운하와 4대강사업으로 인한 자연파괴와 신문방송법 등 소위 엠비악법, 북핵문제, 자본권력에 대한 사법부의 굴욕 등 오늘의 암울한 현실 이면에는 긍정과 희망의 청신호들이 적지 않다. 그러므로 우리는 슬프고 힘들었던 과거의 저항에서 벗어나 작년 촛불광장의 사례처럼 밝고 환한 마음으로 맞서야 한다.

힘들고 괴로운 시간이 흐르고 있다. 그러나 조금만 욕심을 덜어내고, 조금만 더 남을 배려하면 그 자체로도 세상은 환해지고 따뜻해질 것이다. 이런 착한 마음으로 서로 도와가며 오늘의 어려움을 이겨내자.

마지막으로 우리 사제들부터 자기 본분에 철저하지 못했음을 고백한다. 자기도 모르게 교회는 가난한 사람들로부터 더욱 멀어졌고 우리는 세상과 동고동락하기를 꺼렸다. 이제 우리는 우리 산하를 덮친 모든 재앙과 파국에 사제들의 책임도 크다는 점을 통감하며 이 땅에 화해와 일치의 강물이 넘치도록 복음을 전하는 일에 신명을 다 바칠 것을 삼가 서원한다.


2009년 6월 15일
6·15선언 9주년에
한국천주교사제 1,178인 일동

 

전국사제 1,178인의 결의

1. 오늘부터 한 달간 전국 각 성당에서 매일 민주주의의 회복과 생명평화를 위한 미사를 봉헌한다.
2. 전국의 모든 교우들이 용산참사 현장을 방문하여 말없이 죽어가는 수많은 생명들을 추모하는 평화운동을 전개한다.

3. 앞으로 매주 각 교구를 순회하며 우리 사회의 화해와 상생을 위한 전국사제시국기도회를 개최한다.

 


<서명자 1,178인 명단>

[서울교구] 43명
김홍진, 김명섭, 김영관, 김택암, 김한석, 나승구, 남상근, 박경근, 박기호, 박정우, 박종성, 송영호, 심용섭, 안충석, 양장욱, 양홍, 오세만, 윤종국, 이강서, 이광휘, 이동훈, 이성주, 이승구, 이승민, 이영우, 이용희, 이재경, 이철학, 이철희, 이태균, 임용환, 장춘호, 전두병, 전종훈, 정수용, 정진호, 조영식, 차인현, 최준규, 함세웅, 허근, 홍성남, 황중호

[의정부교구] 39명
김경진, 김규봉, 김도연, 김부섭, 김성길, 김승한, 김오석, 김영철, 김용석, 김인석, 김태수, 도현우, 맹제영, 민형기, 박병주, 박재석, 상지종, 서기원, 서춘배, 신중호, 양경모, 양형석, 오용환, 유경재, 이문호, 이문환, 이영재, 이은형, 이진원, 이한수, 이현섭, 장순관, 정석현, 조지훈, 조해인, 최재영, 하정용, 허재석, 현우석

[인천교구] 48명
강현석, 김가현, 김병상, 김성진, 김성훈, 김성휘, 김승욱, 김영욱, 김윤석, 김일회, 김재영(요), 김재욱, 김정수, 김종성, 김지훈, 김태영, 김태헌, 남상범, 박요환, 박임호, 빙상섭, 송태일, 안승현, 양주용, 유승경, 유승학, 유창우, 윤자연, 윤하용, 이성만, 이용옥, 이재규, 이재학, 이홍일, 임현택, 정광욱, 정병덕, 정봉, 정성종, 정연섭, 정인화, 조명연, 조용수, 최인비, 한상동, 한재희, 호인수, 황상근

[수원교구] 114명
최덕기 주교, 강정근, 강희재, 견덕호, 김건태, 김기원, 김기창, 김동우, 김동진, 김봉기, 김부호, 김승만, 김승부, 김우정, 김유곤, 김의태, 김일우, 김종남, 김종용, 김종훈, 김준교, 김지훈, 김진범, 김진우, 김태규, 김한철, 김형중, 김희강, 나호준, 남승룡, 노희철, 박경민, 박상일, 박필범, 박현민, 박현창, 방상만, 방상복, 배명섭, 백경태, 백승현, 백윤현, 서동조, 서명석, 서북원, 서상진, 서용석, 손용창, 신성남, 안민석, 안상일, 안성노, 양기석, 양태영, 염지원, 우종민, 원우재, 유승우, 유재걸, 유희석, 윤동출, 윤민열, 윤민재, 이강건, 이광휘, 이규현, 이병문, 이상룡, 이상선, 이상헌, 이상협, 이석재, 이성효, 이승남, 이승준, 이승희, 이원태, 이윤섭, 이재욱, 이재현, 이정재, 이정훈, 이철수, 이헌수, 임성진, 임유택, 임익수, 임재혁, 장기영, 장동주, 장명원, 정영식, 정영철, 정지용, 정진성, 정희성, 조영준, 조한영, 주현하, 지철현, 차재훈, 최규화, 최변재, 최병용, 최인각, 최재철, 최종운, 최종환, 최진혁, 표창연, 한기석, 한영기, 홍요셉, 황치헌

[대전교구] 201명
강길원, 강대원, 강승수, 강전민, 강전용, 강진영, 강창원, 강철민, 곽병호, 곽상호, 곽승룡, 구본국, 권선민, 권세진, 권순택, 권일성, 권지훈, 권태웅, 길기문, 김경식, 김경호, 김광수, 김광호, 김다울, 김대건, 김동겸, 김동규, 김동억, 김동영, 김동진, 김동훈, 김두한, 김명현, 김명환, 김문수, 김민수, 김민희, 김석인, 김석태, 김선태(안), 김선태(야), 김성태, 김성현, 김수겸, 김영근, 김영삼, 김영재, 김영직, 김용덕, 김용태, 김용호, 김유정, 김윤석, 김인호, 김재덕, 김정환, 김종기, 김종민, 김종원, 김지성, 김찬영, 김찬용, 김창선, 김춘오, 김택민, 김한승, 김홍식, 김홍식, 김홍천, 김희용, 나기웅, 나봉균, 남대현, 노승준, 노승환, 맹상학, 맹세영, 박남규, 박민균, 박상균, 박상병, 박성민, 박성준, 박요순, 박제준, 박종훈, 박주환, 박지목, 박진용, 박진홍, 박찬인, 방경석, 방영훈, 방익수, 배승록, 백광현, 백현, 변윤철, 변창수, 손범규, 손은석, 송국섭, 송우진(가), 송우진(베), 송인찬, 송준명, 신인수, 안광훈, 안성준, 안재현, 양회창, 여준구, 연광흠, 오기환, 오남한, 오명광, 오종진, 옥순보, 원유진, 유정의, 유창연, 유충식,! 유탁준, 유현식, 윤달수, 윤병권, 윤영중, 이강우, 이경훈, 이대근, 이대제, 이덕길, 이득규, 이명상, 이봉효, 이상국, 이상수, 이상욱, 이상준, 이석우, 이성호, 이용범, 이용호, 이원무, 이원화, 이원효, 이윤제, 이의철, 이의현, 이재현, 이재홍, 이정업, 이준화, 이진용, 이진욱, 이혁, 이화상, 임기선, 임민수, 임상교, 임승욱, 임종택, 장동진, 장인국, 전영우, 전원석, 정성용, 정우석, 정윤식, 정재돈, 정준섭, 정필국, 조규석, 조성광, 조성준, 조수환, 진윤기, 최건우, 최교선, 최교성, 최동일, 최병규, 최상순, 최석영, 최선종, 최용목, 최용상, 최익선, 최효인, 하청호, 한광석, 한동성, 한영승, 한정현, 한태호, 허병도, 허승헌, 허웅, 홍광철, 황영준, 황인기

[청주교구] 61명
강연철, 곽동철, 권우현, 김경환, 김남오, 김대섭, 김상수, 김영수, 김영환, 김인국, 김한수, 김훈일, 민광호, 박규성, 박동순, 박영봉, 박용수, 박청일, 박치영, 박호성, 송홍영, 신동운, 신성국, 신성근, 신순군, 신인용, 연용모, 연제식, 오동영, 우상일, 윤창호, 이건희, 이경호, 이동식, 이범현, 이상백, 이성재 이수한, 이승룡, 이원순, 이재민, 이준연, 이중섭, 이효종, 장병철, 전명수, 정용진, 정효준, 조덕희, 조성학, 주영일, 최광조, 최광혁, 최인섭, 최종일, 최종훈, 최준하, 최현규, 한지수, 한필수, 홍진

[전주교구]137명
강명구, 강호, 경규봉, 고봉호, 공현식, 권순호, 권완성, 권이복, 길성환, 김관우, 김광태, 김교동, 김기곤, 김기수, 김동준, 김병희, 김봉술, 김선태, 김성봉, 김시몬, 김영복, 김영수, 김영태, 김원중, 김의철, 김정민, 김정현, 김정훈, 김종길, 김종성, 김주철, 김준호, 김진룡, 김진소, 김진철, 김진화, 김창연, 김태윤, 김혁태, 김형성, 김환철, 김훈, 김희남, 나궁렬, 나춘성, 문규현, 문정현, 박대덕, 박병준, 박성문, 박성팔, 박성환, 박인호, 박종근, 박종상, 박종충, 박종탁, 박찬길, 박창신, 방의성, 백수현, 백승운, 백승호, 범선배, 범영배, 서광석, 서동원, 서석구, 서석희, 서정현, 서철승, 소명섭, 소재나, 송년홍, 송영진, 송현석, 송호석, 신원철, 안봉환, 안철문, 양경배, 양석현, 양승욱, 양재식, 여혁구, 연규영, 오성기, 원종훈, 유장훈, 유정현, 유종환, 윤양호, 이가진, 이금재, 이동욱, 이득재, 이명재, 이봉석, 이상섭, 이상용, 이상욱, 이성우, 이수현, 이영우, 이영춘, 이완재, 이용재, 이원철, 이준형, 이태주, 장상원, 장상호, 전대복, 전보근, 전우진, 전종복, 정광철, 정삼권, 정성만, 정세진, 정승현, 정식수, 정양현, 정유진, � ㅓ돎� 정태현, 조정오, 최용준, 최종수, 하철민, 하태진, 한기호, 한병헌, 한봉섭, 한정현, 현유복, 황규진

[광주교구] 127
강기표, 강종훈, 고근석, 고재영, 고제희, 국재량, 권병석, 기영호, 김권일, 김동하, 김명섭, 김민석, 김소진, 김수만, 김성용, 김승제, 김양수, 김양회, 김영권, 김영철, 김영호, 김영환, 김용운, 김용원, 김정용, 김정철, 김재학, 김종대, 김종복, 김종원, 김진모, 김창근, 김충호, 김태균, 김희성, 김희항, 노성기, 류현수, 문병구, 박공식, 박대남, 박래형, 박상선, 박성렬, 박재완, 박재홍, 박창진, 박철수, 박홍기, 배재승, 변찬석, 서성래, 손대철, 송종의, 송홍철, 신혁, 안호석, 양귀선, 양요섭, 양인경, 오갑현, 오경섭, 오동흔, 오요안, 오재선, 옥현진, 우원주, 유기영, 유창훈, 윤근일, 윤빈호, 윤영길, 윤영남, 윤용남, 윤종윤, 윤창신, 윤홍근, 이건, 이동욱, 이봉문, 이성규, 이영선, 이옥수, 이요한, 이재술, 이정주, 이준, 이준용, 이호, 이홍석, 임동혁, 임영배, 임창훈, 임호준, 장민휘, 장승용, 장용주, 전영, 정경수, 정규완, 정대영, 정성종, 정승욱, 정영빈, 정형달, 조영선, 조정훈, 조진무, 조창현, 조철현, 주락권, 주성호, 진병섭, 진우섭, 천정선, 최길주, 최대성, 최상준, 최영희, 최용환, 최종서, 최종훈, 한병학, 허우영, 허찬, � 꼈뵌� 황양주

[제주교구] 17
고병수, 김석주, 문창우, 서정의, 송동림, 양재식, 우직한, 유현진, 이찬홍, 임문철, 최성환, 한재호, 허찬란, 현문권, 현문일, 현성훈, 현요안

[춘천교구] 46
강동금, 고봉연, 권오준, 김근오, 김길상, 김동훈, 김상혁, 김선류, 김수창, 김용주, 김종광, 김주영, 김충연, 김학배, 김혜종, 민상영, 박순호, 박재우, 박재현, 배광하, 서범석, 서성민, 안수일, 엄기선, 엄기영, 오경택, 오대선, 오세민, 원용훈, 원훈, 이기범, 이동수, 이명호, 이상철, 이일환, 이지철, 이창섭, 이태원, 장성준, 조영수, 조철희, 차흥길, 최기홍, 최종현, 최창덕, 최혁순

[원주교구] 14
고정배, 김기성, 김승오, 김영진, 김하수, 김한기, 박무학, 박병옥, 박홍표, 백호현, 신현봉, 안승길, 이동훈, 장수백


[안동교구] 55
권상목, 권중희, 권형배, 김기환, 김도겸, 김시영, 김영식, 김원현, 김재문, 김재형, 김정현, 김종길, 김종섭, 김진조, 김춘수, 김학록, 김한모, 남정홍, 박윤정, 박재식, 배인호, 손석문, 신기룡, 신대원, 안상기, 안영배, 양호준, 오성백, 우병현, 이성길(바), 이성길(프), 이영길, 이재학, 이준건, 이춘우, 이형철, 이희복, 이희정, 임준기, 장현준, 전장호, 정도영, 정상업, 정진훈, 정철환, 정희완, 조인래, 조창래, 차광철, 차호철, 최숭근, 최장원, 허춘도, 황영화, 황재모

[대구교구] 3
구자균, 권혁시, 조현권

[마산교구] 96
강병모, 강윤철, 강철현, 강형섭, 고태경, 곽준석, 김영식, 김용민, 김유겸, 김인식, 김정우, 김정훈(도), 김정훈(라), 김종봉, 김종원, 김종필, 김종훈, 김형렬, 남경철, 박영진, 박인수, 박창균, 박철현, 박태정, 박혁호, 박호철, 배진구, 백남국, 백남해, 서정범, 송재훈, 신은근, 신재욱, 신호열, 양태현, 여인석, 오승수, 윤행도, 이민, 이상록, 이상원, 이성렬, 이성현, 이수호, 이승홍, 이우진, 이원태, 이은진, 이응석, 이재영, 이정근, 이정림, 이제민, 이주형, 이중기, 이진수, 이철민, 이청준, 이학율, 이현우, 이흥우, 임상엽, 임성진, 임해원, 임효진, 장민현, 전동혁, 전병이, 전주홍, 정연동, 정연우, 정중규, 정진국, 정철현, 조영희, 조정제, 진선진, 차광호, 채동호, 최경식, 최승호, 최영철, 최재상, 최종태, 최태식, 최태준, 최훈, 하춘수, 함영권, 허성규, 허성학, 허용화, 허철수, 황병석, 황봉철, 황인균

[부산교구] 110
강우현, 강인구, 강종석, 강지원, 강지훈, 경훈모, 고원일, 곽길섭, 권경렬, 권동국, 권순도, 권순호, 김경욱, 김기욱, 김대성, 김덕헌, 김두완, 김상균, 김수진, 김영규, 김영환, 김영훈, 김원석, 김인한, 김인환, 김종규, 김종남, 김준한, 김창환, 김태균, 김태형, 김현영, 김형수, 김형태, 김혜연, 김홍민, 김홍석, 노우재, 맹진학, 민병국, 박규환, 박근혁, 박성태, 박재범, 박정용, 박진성, 박혁, 배상복, 변성수, 변형수, 서강진, 서유승, 서진영, 서현진, 손영배, 손지호, 신문갑, 신진수, 심상윤, 엄종건, 오창근, 오창열, 오택수, 원정학, 유연창, 유영일, 윤명기, 윤정현, 윤정환, 이강영, 이강우, 이광우, 이균태, 이동환, 이병주, 이성균, 이영훈, 이요한, 이재석, 이재원, 이재혁, 이재현, 이종만, 이주홍, 이창신, 임성환, 장용진, 장재명, 장현우, 장훈철, 전열, 전재현, 정상천, 정성철, 정창식, 정현진, 정호, 조성문, 조성윤, 조성제, 조영만, 조욱종, 차성현, 천경훈, 천대웅, 최요섭, 표용운, 한종민, 홍경완, 홍성민

[수도회] 67
예수회
권오면, 김성환, 김연수, 김영택, 김정대, 김현득, 남해윤, 류충열, 박문수, 박병관, 박영철, 신상은, 심백섭, 양
천욱, 이근상, 이순경, 이승훈, 이영석, 이영찬, 이인주, 이재욱, 이종진, 임헌옥, 정규한, 정만영, 정무근, 정제
천, 조진배, 조현철, 최홍대, 황정연
작은형제회
고계영, 고은길, 김권순, 김석찬, 김정훈, 김찬선, 김형수, 도영진, 도종현, 문요섭, 신성길, 엄강섭, 유이규, 이
병우, 이성철, 임한욱, 전현섭, 조기영, 지정호,
올리베따노 성 베네딕도 수도회
강선곤, 백부광, 유덕현, 이연학, 이영근,
예수성심전교수도회
김대선, 김상식, 박창일
살레시오 수도회
최광섭
메리놀 외방 전교회
하유설
예수고난회
서현승
그리스도의 수도회
장원용
성바오로 수도회
황인수

 

 

 

언젠가 올 명랑인권통일평화세상을 위하여.....

 

번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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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194 2009-11-05
<2009 학술단체협의회 연합심포지엄> “생태/여성/노동/평화 운동이 함께, 내일로!” - 21세기 한국 사회의 대안과 연대 - - 일시: 2009년 11월 6일(금) 9:30-18:00 - 장소: 이화여자대학교 인문관(이대후문) 1층 111호 - 주최: 학술단체협의회 - 후원: 도서출판 동녘 ----------------- <심포 일정> 09:30-10:00 등록 및 개회 사회 : 김원열(한양사이버대학교, 한국철학사상연구회) 10:00-10:20 기조발제 “진보의 힘은 연대에서 나온다” - 이성백(시립대, 한국철학사상연구회) ------------------ 1부(오전): “진보의 아젠다” 사회: 오동석(아주대, 민주주의법학연구회) 10:20-11:00 “적록연대와 녹색일자리” - 한재각(국민대 사회학과) / 토론: 이상헌(한신대, 한국공간환경학회) 11:00-11:40 “성, 노동, 계급 : 적/보라 패러다임의 재구성” - 고정갑희(한신대, 여성문화이론연구소) / 토론: 김성민(건국대, 한국철학사상연구회) 11:40-12:20 “한반도 평화와 통일” - 강정구(동국대) / 토론: 배성인(한신대) ---------- 2:20-13:30 점심 ------------- 2부 : "사회적 대안” 사회: 서유석(호원대, 한국철학사상연구회) 13:30-14:20 "대안적 동아시아 연합의 가능성" - 최태욱(한림국제대학원대학, 국제통상연구소) / 토론: 임운택(계명대, 비판사회학회) 14:20-15:10 "토지-주택 문제의 대안구조" - 김수현(세종대, 한국공간환경학회) / 토론: 김용창(서울대, 한국공간환경학회) 15:20-16:10 "신자유주의 교육정책과 학문의 가치평가" - 장시기(동국대)/ 토론: 진영효(전국교과연합의장) 16:10-17:00 "지역사회에 기여하는 생협의 조건에 대하여" - 정원각(iCOOP생협연구소 사무국장) / 최영미(전국실업극복단체연합) ---------- 3부(종합토론) 17:10-19:00 “한국사회의 대안과 연대” 사회: 박배균(서울대, 한국공간환경학회) 토론패널: 서유석(학단협 상임대표), 유병선(경향신문 논설위원), 문현아(여성문화이론연구소)
212 no image 민주법연의 정체성에 관한
조승현
8633 2009-10-20
숙명여대 홍성수님의 글(민주법연심포지엄토론방 참고) 잘 읽었습니다. 92년과 93년 94 95년--96년... 진행된 논의들... 그때 사실 발족선언문을 폐기하자는 의견이 강력하게 대두되었던 걸로 알고 있습니다. 그 당시 한국현실의 경제적 사회적 기초는 여전히 발족선언문에서 제시한 것과 틀리지 않다고 보고 그대로 가기로 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물론 현재 민주법학의 기본이념이 바뀐것인가에 대한 의문이 많이들기도 합니다. 그리고 덧붙여 또 다른 중요한 문제들도 많습니다. 예를 들어 민주법연이 지향하는 그 이념을 실현하는 방법론 다시 말해서 구체적이고 현실적이고 실천적인 방법론을 획득하지 못해온 것이 더 중요한 문제라고 알고 있습니다. 따라서 이념적 실천의 구체적 무기가 무엇인지 - 법학적 방법론은 결국 무용한 것인지-...... 민주법연의 정체성에 관한 그 글에서 분명히 해야할 부분이 많은 것 같습니다. 발족 선언문에서 맑스주의 법학을 전면적으로 이야기한 부분은 없다는 것입니다. 기존의 개념법학이 민중의 권익에 이바지 하지 못한 점을 비판하고 그에 대한 대안으로 비판법학 내지 "과학적 세계관"에 입각한 법학을 천명한 것입니다. 과학적 세계관에 입각한 법학이란 무엇인가? 추상적인 이 질문에 많은 답변이 가능하겠는데, 물론 맑스주의적 법학도 그에 포함됩니다. 다만 맑스주의적 법학방법론이라는게 정확하게 무엇인지 논의는 많이 되었으나 연구회전체차원에서 정리된 것은 없습니다. 중요한 것은 민주법학이 민중의 이익과 민주주의에 복무해야한다는 점이었죠 그 임무는 여전히 민주법학에 살아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발족선언문의 대부분은 당시의 정치적 상황을 비판하는데 역점을 둔 것입니다. 즉 전두환 노태우로 이어지는 그당시 정권은 분명 군부가 중심이 되어 민주주의를 유린하던 상황이었습니다. 이를 우리는 파시즘체제라고 규정지었던 것이죠...그리고 민주법학1호부터 6호까지 지배하던 맑스주의 법경제론적 토론과 논제들이 연구회의 정체성을 어느정도 특징짓는 중요한 논제들이었던 것은 사실입니다. 그런데 수많은 토론과 세미나와 글들에도 불구하고 구체적인 방법론들이 연구회내에 자리잡은 것은 아니었고 시간이 갈수록 회의주의가 팽배했습니다. 그것은 법학방법론자체의 문제도 있었지만 " 수많은 맑스주의적 정치경제학이나 사회학들이 너무나 현실괴리적이고 추상적인 이론으로 부정확하고 이해하기도 어렵고 심지어는 대중적인 이론지들에조차 단어는 같되 사용하는 개념이나 그 범주 개념에 적용되는 현상인식이 일치하는경우가 거의 없어 체계적으로 적립되기 힘들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던 중 동구사회주의성향의 국가들이 몰락하면서 그러한 토론과 세미나는 의미를 잃기 시작해던 것이죠.. 위의 글쓴분은 민주법학의 정체성이 변했다고 하는데 초기 1호부터 6호까지가 민주법연의 정체성을 결정하는 특징을 갖고 있지만 그게 다는 아니라는 것입니다. 제가 보기엔 민주법연은 변화하고 있다고 할 수 있지만 기존의 정체성을 포기할만큼 근본적인 변화를 보이고 있는 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민주법학이 물론 맑스주의에 입각한 법학방법론을 20년전에 모색하였고 지금도 모색하고 계시는 분들이 있지만 그러한 방법론적 탐구가 민주법학에 계속해서 체계적으로 드러나지 않는다고 해서 민주법학의 정체성이 변했다고는 보지 않는다는 것이죠. 내부에서 제가 생각하기엔 그렇습니다. 그리고 민주법학의 발족선언문에 동의한 저도 맑스주의에 기반한 법학을 하지 않으면 안된다고 생각한 적은 없습니다. 사실 지금도 맑스주의적 법학방법론이라는게 구체적으로 정확하게 무엇인지 잘모릅니다. 단지 자유주의적 개념법학내지 법실증주의적 법학방법론의 안티테제로서의 새로운 비판법학방법론의 탐색 정도의 여정이 아니었던가 하는 것입니다. 그러한 과정이 일부에서는 맑스주의적 법학방법론의 확립이라고 확신하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그렇지 않는 사람들도 많다는 것이죠. 외부에서는 민주법학과 민주법연의 정체성이 완전히 변했으니 그 이이유를 밝혀달라고 말할수도 있을지 모르겠지만 내부에 있는 사람으로서 정체성이 완전히 변했다고 하는데 대해서 그리고 그 정체성이 맑스주의법학방법론이라고 확정하는데 대해서는 찬성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사법학자이면서 오스트리아의 대표적인 사회주의자였던 안톤멩거는 맑스주의법학방법론이란것에 대해서 한마디 언급도 없습니다. 멩거만큼 유명한 칼레너도 맑스주의법학방법론에 대해서 언급한바가 없습니다. 단지 민중의 이익 무산자의 이익을 위한 법학을 탐색한다는 표현은 자주 눈에 띕니다. 특히 독일민법전의 제정과정을 무산자계급 내지 민중의 관점에서 비판한 멩거의 언급은 맑스주의 사상에 기반하고 있을 지언정 자신의 방법론이 구체적으로 무엇인지 있다면 그 요소들은 무엇인지 등을 언급한바가 없는 것이죠. 그러한 방법론을 맑스주의 법학방법론이라고 한다면 또 모르겠습니다. 제가 보기엔 멩거의 방법론은 지금의 민주법학에서 눈에 띄는 비판법학적 방법에 더 가까운게 아닌가하는 생각도 듭니다. 민주법학의 정체성은 발족선언문에 나와 있는 그대로 입니다. 민주법학의 몇몇글에서 진보적 방법론을 언급하였다고 해서 그 방법론이 민중을 위한 법학을 보장하는 것도 아니고 더우기 민주법학의 법학방법론을 결정하는 것도 아닌 것입니다. 오히려 민주법학은 특정이데올로기에 강요받는 법학방법론이 아니라 기존의 법학을 비판하고 새로운 방법론을 모색하는 무엇이 사회적 경제적 약자의 권익을 증대시키고 인류의 역사발전 민주주의발전에 복무하는 것인지를 탐색하고 실천하는 열린 공간이라고 생각합니다.
211 no image 문의 드립니다. 비밀 [1]
mpcho
12 2009-10-12
210 [용산 국민법정 소식: 제 2호] 넘치는 사랑 속에서 투쟁하기에 힘이 납니다.
용산국민법정
9766 2009-09-29
용산철거민 사망사건 국민법정 소식 2호 2009년 9월 23일(수) 나는 기소한다!-넘치는 사랑 속에서 투쟁하기에 힘이 납니다. - 박창숙(용산4상공 철대책위 위원장) / 글 : 민선(인권운동사랑방) 넘치는 사랑 속에서 투쟁하기에 힘이 납니다. 신부님들이 천막기도로 용산과 함께 울고 웃은 지 100일이 되던 날, 그 특별한 날에 함께 하기 위해 가을비가 종일 내렸던 9월 21일 미사에는 평소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함께 했다. 이 특별한 자리에 함께 하기 위해 용산4가 철거민대책위원장 박창숙 님도 하루 종일 서울시청 앞에서 농성을 하다가 미사에 참여했다. 지난 15일과 19일에 폭력적으로 철거된 만장을 다시 세운 기쁨을 나누면서, 임을 위한 행진곡을 함께 부르며 앞으로의 투쟁에 대한 마음을 다잡으면서 100일 미사가 끝났다. 다시 서울시청으로 돌아가 밤샘농성을 할 준비를 하는 박창숙 위원장을 만났다....(전문 보기) 그입 다물라! - 악어의 눈물, 김석기 전 서울경찰청장 - 배여진(천주교인권위원회) 김석기 전 서울경찰청장께 수신인을 쓰고 나니, 이런 생각이 드네요. 김석기 전 서울경찰청장이라고 써야 할지, 아니면 김석기 전 경찰청장 내정자에게 라고 써야 할지 말입니다. 아마도 한 평생의 꿈이었을 경찰청장이 될 수도 있었던 순간에 용산참사가 발생하여 '도의적 책임'을 지고 사퇴하셨으니 본인으로서는 몇 날 밤을 잠을 못 이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먼저, 저희 외할아버지께서 돌아가신 이야기를 한 번 드리고 싶네요. 얼마 전, 외할아버지께서 돌아가셨습니다. 당신께서 가실 날이라는 걸 아셨는지, 떠나시기 3일 전부터 몸속의 것들을 다 비워내시고, ...(전문보기) 요모조모 따져보기 -진심의 대책 - 김연정(인권운동사랑방 자원활동가) 진심의 대책 주거권에 대한 외국의 사례와 정책을 조사하면서 떠오르는 광고 문구가 있었다. ‘저희가 찾은 답은 진심입니다’ 외국 정부와 우리 정부 사이 차이의 핵심은 바로 ‘진심’이었다. ‘보상’이 아닌 ‘보장’에 대한 진심. ‘개발 이익’이 아닌 ‘개발’에 대한 진심. 하지만 생각해 본다. 우리의 정부는 그 많은 사람이 죽어나가도 법원의 명령에 따랐으니 강제퇴거가 아니라고 주장하는, 세입자 보상을 피하기 위해 노후 지역도 민간개발 승인해 주는, 진심을 기대할 수 없는 정부가 아닌가. 이런 정부에 맞서 ‘진심의 대책’을 요구하고 있는 철거민들에게 이곳이 얼마나 ‘불편한 세상’인지 살펴보기로 하자...(전문보기) 용산과 나의 집 - 집을 찾아서 - 이동현 <홈리스행동(준), 상임활동가> 집을 찾아서 집주인에게서 전화가 왔다, 전세금을 올려야 한다고. 이천 만원은 올려야 하는데, 가능하겠냐고. 이천 만원? 당연한 말씀! 지금 살고 있는 언덕 꼭대기 열 평 남짓한 우리 집 전세값의 절반에 해당하는 금액이다. 요즘 우리 부부는 열심히 집을 구하고 있다. 2년 전, 결혼에 임박해 새 살림집을 구해야했다. 천삼백만 원짜리 전세 옥탑방에 살던 나는 민주택기금에서 영세민 ...(전문보기) 두리번 두리번- 향기로운 우물 - 류미례(다큐멘터리 감독) 향기로운 우물 -자기만의 기쁨에 빠져 현실을 외면하지 않기 막내 은별이가 가끔 자다 깨서 운다. 나쁜 꿈을 꾸었다고 하기엔 너무 서럽게 운다. 어느 날, 자고 있는 은별이 옆에서 누워있는데 은별이가 '흑흑' 하며 소리없이 흐느꼈다. 너무 마음이 아파 안아주었더니 크게 소리내어 울었다. 도대체 무엇이 우리 딸을 이토록 서럽게 하는가? 전생을 믿는 남편은 전생의 기억 때문일 거라 했고 나는 갑자기 자책감에 빠졌다. 내가 은별이에게 너무 무관심했던 건 아닌가. 내가 편안한 엄마로서 제대로 돌보지 못해서 이런 건 아닌가. 그렇다 하더라도……2년 밖에....(전문보기) 국민법정은 지금... 19일, 단체별 집중 기소인모집 거리 캠패인을 진행했습니다. 지난 19일 '용산참사 8개월 추모제'에 앞서, 인권운동사랑방, 한국대학생연합, 사회진보연대, 네티즌모임에서 거점별 집중선전전을 진행했습니다. 서울역과 용산역 주변에서 이루어진 기소인 모집 거리 캠패인을 통해, 용산국민법정의 시작을 알리고, 시민들에게 기소인에 참여해 줄 것을 선전하였습니다. 많은 시민들이 기소인모집에 참여 뿐아니라, 국민법정을 위한 모금에도 동참해 주셨습니다. 돌아오는 토요일 26일에도, 집중 거리 캠패인을 진행할 예정입니다. 거리 캠패인을 진행할 단체나 모임에서는 국민법정 사무국(02-310-9076)으로 연락주시면, 캠패인 물품을 준비해 드리겠습니다. 기소인 모집 선전전, 전국 순회 중입니다. 용산 철거민 사망사건의 책임자들을 기소하는 '나는 기소한다' 거리 캠패인이 전국 순회 중에 있습니다. 용산범대위가 주최하는 전국순회 촛불추모제와 더불어, 기소인모집 순회 선전팀이, 지난 주 수원, 청주, 전주, 천안, 대전, 목포, 광주에 이어, 이번 주에는 창원, 울산, 부산, 대구, 춘천, 인천, 부천에서 기소인 모집 거리 캠패인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현재 2주차 3일째를 맞는 오늘까지 2천여 명 이상이 지역에서 기소인으로 참여해 주셨습니다. 용산범대위(mbout.jinbo.net)의 지역 순회일정을 참고하시어, 해당 지역 촛불문화제와 기소인 모집에 많이 참여해 주시기 바랍니다. * 온라인 기소인 참여 : http://mbout.jinbo.net/court (1만인 국민이 기소한다) 30일(수), 기소된 피고인에 국민법정 공소장과 소환장 발부를 위한 기자회견을 진행합니다. 오는 9월 30일(수), 11시에 용산 국민법정에 기소된 피고인들에게 공소장과 소환장 발부를 위한 기자회견을 진행할 예정입니다. 26일까지 1차로 모집된 기소인들의 이름으로, 용산 철거민 사망사건의 주요 책임자(이명박, 오세훈, 김석기, 박장규, 천성관, 건설재벌, 개발조합, 용역깡패 등)들에게 국민법정에 소환할 명하는 내용으로 진행될 것입니다. 용산철거민 사망사건 국민법정 http://mbout.jinbo.net/court │ court@jinbo.net │ 02-310-9076
209 [용산 국민법정 소식: 제1호] 나는 기소한다!
용산국민법정
9620 2009-09-29
용산철거민 사망사건 국민법정 소식 1호 2009년 9월 16일(수) 나는 기소한다! - 약자들을 편드는 선택 - 남일당 성당 이강서 신부 (천주교서울대교구 빈민사목위원회 위원장) 정의가 없으면 평화도 없다 지난 3월 28일 이후로 용산참사 현장에서는 매일 미사가 봉헌되고 있다. 사람들은 이곳을 남일당 성당이라고 부른다. 남일당은 용산참사가 일어난 건물 1층에 있었던 금은방 이름. 현재 남일당 성당에는 문정현 신부, 이강서 신부, 정종훈 신부 이렇게 세 명의 사제가 상주하며 유가족들과 함께 생활하고 있다. 이강서 신부는 유가족들을 처음 보았을 때 ‘이들이 우리 사회와 우리 정부에 의해 완전히 버려진 사람들이구나’ 하는 느낌을 받았다고 한다. 그들은 벼랑 끝에 내몰렸고, 떼쟁이로 매도되었으며, 그들에게 남은 건 분노와 악다구니뿐이었다. 매일 경찰과 대치되는 상황. 공권력 앞에 선 그들의 모습이 마치 거인 앞에 선 어린아이처럼 보였다고 한다. 가족을 잃은 슬픔, 그런데 여기에 더하여 공권력에 의한 살해라는 사실까지 받아들여야 한다는 점에서 용산 참사 유가족들은 이중의 고통을 당하고 있다고 이 신부는 말한다. 누가 감히 그들의 고통을 헤아릴 수 있을까...(전문 보기) 그입 다물라! - 용산을 둘러싼 막말 36억 부동산 부자, 용역총대장 용산구청장 박장규 "이 세입자들은 세입자들이 아니에요. 전국을 쫓아다니면서 개발하는 데마다 돈 내라고… 이래서 떼잡이들이에요" 지난 1월 20일 용산 철거민 사망사건이 있었던 날, 박장규 용산구청장이 용산구 보광동 주민센터에서 열린 ‘2009 신년인사회 및 동정보고회’ 자리에서 한 말이다. “이 사람들이 거기서 데모를 해가지고 오늘 무슨 사고가 났다 그럽니다.”라며 자신의 공무 관할 지역인 용산구에서 벌어진 비극에 대해 개념없는 발언을 쏟아냈다. 만약 그에게 개념이, 상식이, 일말의 양심이 있었다고 한다면 신년인사가 아닌 유가족에 대한 애도를, 떼잡이라는 망발이 아닌 세입자들의 주거권 보장을 위한 대책 마련을 했어야 한다. 하긴, 박장규에게 그런 모습을 기대하는 건 지나친 욕심일 수 있다. 박장규는 건설사 사장 출신으로....(전문보기) 요모조모 따져보기 - 왜 세입자들의 주거권을 아야기하지 않는가 (법리구성 팀) 왜 세입자들의 주거권을 이야기하지 않는가 용산 철거민 사망사건이 발생한지 8개월 되었지만 이들을 사망하게 한 개발의 구조적 원인과 세입자들의 주거권은 가시화되지 못하고 있다. 지금도 개발정책은 지속되고, 세입자들은 자기가 살고 있었던 곳보다 열악한 곳으로 떠나가고 있는 실정이다. 피해는 확실하나 가해자에게 책임을 물을 수 있는 법이 없다보니 “과연 무엇을 침해라고 할지? 과연 무엇을 죄로 물어야 할지?” 각이 서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인지, 사람이 죽었지만 누구도 책임지지 않는다. 사회권의 사법심사 가능성 누구도 책임을 지지 않는 구조 속에는 주거권을 포함한 사회권 침해는 법정에서 권리침해를 다툴 수 없다는 ...(전문보기) 용산과 나의 집 - 상상하세요, 용산을 -발칙한 자칭 축복받은 고등학생입니다. 저는 혼자 사는데, 부산에 계신 부모님이 매달 방세를 대주세요. 상근하시는 사감선생님의 주된 업무가 벌레잡기인, 이름만 기숙사인 사설 기숙사에 살거든요. 서울에서 부모님과 멀리 떨어져 산다는 건 엄청나게 많은 의미를 가지고 있어요. 막차만 타면 밤에 아무리 늦게 들어가도 상관없고, 아버님이 한나라당 공천을 받으시려 하건 말건....(전문보기) 두리번 두리번- 순천향병원에서의 200일, 용산 사람들 - 김덕진(천주교인권위원회 사무국장 ) 고 이상림 열사의 손자 동원이는 지난 겨울방학 때부터 여기, 순천향대학병원 영안실 4층이 집이다. 중학교 3학년 새 학기를 여기서 시작했고 여름방학을 여기서 보냈다. 그리고 오늘 2학기 개학식 등교를 또 여기서 했다. 고 윤용헌 열사의 작은 아들 상필이와 고 이성수 열사의 작은 아들 상현이도 여기서 학교를 다니고 있지만 녀석들은 고등학생이라 그래도 마음이 좀 덜 쓰인다. 한창 사춘기라 예민할 열여섯 살짜리 소년에게 할머니, 아버지, 작은엄마랑 24시간 동안 한 공간에서 지낸 7개월은 어떤 시간이었을까? 게다가 다른 네 열사들의 가족들과 전철연 식구들까지 한공간에서 어우러져 살고 있으니 스트레스가 이만저만한 것이 아닐 텐데 '가출'처럼 큰 사고 한번 안치고 여전히 여기서 함께 먹고 자는 것만으로도 대견하고 고마운 일이다.....(전문보기) 국민법정은 지금... 국민법정 준비위원회 발족 지난 월요일인 9월 14일, 법조계, 시민사회단체, 인권운동가 등이 준비위원으로 참여하는으로‘용산 철거민 사망사건 국민법정 준비위원회’가 용산참사현장 레아에서 발족 기자회견을 갖고 출범하였습니다. 기자회견을 통해 10월 18일 오후1시~8시 국민 재판부와 국민배심원이 참여하는 국민참여재판을 갖기로 했으며, 참여를 호소하였습니다. 기소인을 모집합니다 검찰은 수사기록 3천쪽을 감춘 채, 철거민만 기소하여 재판을 파행으로 이끌고 있습니다. 이제 국민 하나하나가 기소인이되어, 용산철거민 사망사건의 진짜 주범들을 국민법정에 세웁시다! 책임자들을 기소하는 기소인에 참여해 주세요. * 기소인 참여 : http://mbout.jinbo.net/court (1만인 국민이 기소한다) 용산철거민 사망사건 국민법정 http://mbout.jinbo.net/court │ court@jinbo.net │ 02-310-9076 ? ?
208 [인권영화제] 지역과 단체에 인권영화 상영회를 제안합니다.
인권영화제
10803 2009-09-11
207 사회과학아카데미 2009년 2학기 개강 소식입니다. 파일
사회과학아카데미
34489 2009-09-10
206 no image 다지원 2009년 가을학기 수강신청 시작되었습니다.
다지원
9273 2009-09-08
205 no image <통일과 평화> 제 2호 원고 모집 파일
서울대통일평화연구소
17579 2009-09-07
<통일과 평화> 제 2호 원고 모집 1. <통일과 평화>는 서울대학교 통일평화연구소에서 연 2회(6월, 12월) 발간하는 전문학술지입니다. 본 학술지는 통일 및 평화 문제에 대한 전문적인 논의를 통해 한반도 미래에 대한 학문적 준비를 하기 위한 노력으로 창간되었습니다. 본 학술지는 통일의 과정 및 정책, 통일학의 이론과 방법론, 한반도 주변정세, 북한의 정치·경제·사회·문화에 대한 다양한 논문을 편집대상으로 하고 있습니다. 2. 보내실 글은 독창성을 갖는 순수학술논문이어야 하며, 다른 곳에 게재되었거나 게재될 계획이 없는 글이어야 합니다. 보내실 원고는 200자 원고지 120매 내외의 글이어야 하며, 영어로 작성한 논문도 게재 가능합니다. 3. <통일과 평화>는 학술논문과 함께 서평(book review)의 투고를 환영합니다. 서평은 통일 및 북한 관련 2권 이상 비슷한 주제의 학술서적에 대한 저자의 독창적인 분석과 해석이 이루어져야 하며 200자 원고지 50매 내외의 글이어야 합니다. 4. 보내신 글은 심사과정을 거쳐 게재여부를 결정하고, 출판된 원고에는 소정의 원고료를 지급합니다. 원고는 첨부된 <원고집필요령>에 따라 ‘아래아 한글’이나 ‘MS 워드’로 작성하여야 합니다. 논문 투고시에는 원고와 함께 200자 내외의 ‘논문요약문’(국문, 영문 모두)과 주제어(keywords), 그리고 투고자의 주소, 전화번호, 이메일 주소를 함께 보내야 합니다. 5. 이번호에서는 특별히 다음의 주제에 대한 원고를 모집합니다. “통일 및 남북관계 연구의 새로운 방법론적 모색” 6. <통일과 평화> 제 2호의 마감일은 2009년 10월 23(금)일입니다. * 원고 보내실 곳: 주소: 서울시 관악구 관악로 599, 서울대학교 통일평화연구소 <통일과 평화> 담당자 앞 전화) 02-880-4052~4, 팩스) 02-874-7305, 이메일) tongil@snu.ac.kr
204 넘치는 지식보다 삶의 지혜를 키워가요!
평화나눔
8915 2009-09-07
203 no image 사회과학아카데미 8월 특강 및 기획 강좌 일정
사회과학아카데미
8889 2009-08-19
202 no image 11111
11111
7619 2009-08-05
201 no image 속편 나왔어요
소나기
8327 2009-07-22
200 no image 주한미군 내보내는 한반도 평화협정 실현 한마당에 초대합니다.
평통사
16611 2009-07-22
199 no image SI와 연루된 신종인플루엔자에 대한 근원 규명
모정주의사상원
10791 2009-07-17
198 no image [신간!] 우리는 결코 근대인이었던 적이 없다_브뤼노 라투르
갈무리
9093 2009-07-10
우리는 결코 근대인이었던 적이 없다 ▶과학철학, 과학사회학 분야의 가장 영향력있는 석학 브뤼노 라투르의 대표작! ▶철학, 인류학, 사회학, 기술과학을 넘나드는 독창적인 사유를 한국어로 최초로 만난다! ▶24개 국어로 번역되어 대중적인 성공을 거둔 라투르 사상의 입문서! ▶근대주의와 탈근대주의를 넘어선 ‘비근대주의’의 정치생태학을 제시한다! ▶우리는 지금까지 결코 근대인이었던 적이 없다. 이제 그것의 반생산적인 성격을 제거한 새로운 유형의 근대인을 추구하자! ▶과학과 기술, 정치와 정부, 언어와 의미론에 대한 완전히 새로운 시각에서의 흥미롭고 심층적인 탐구! ◎지은이: 브뤼노 라투르 ◎옮긴이 : 홍철기 ◎출판일: 2009년 7월 15일 ◎판형: 사륙판 양장본(127×188) ◎쪽수: 408쪽 ◎정가: 25,000원 ◎출판사: 도서출판 갈무리 ◎ISBN 978-89-6195-016-9 04300 / 978-89-6195-003-9(세트) ◎도서분류 : 아우또노미아총서20 1.『우리는 결코 근대인이었던 적이 없다』의 출간의 의미 ‘근대적’ 이분법을 넘어선 과학의 이해 『우리는 결코 근대인이었던 적이 없다』는 과학자들과 기술자들을 연구해온 인류학자인 저자 브뤼노 라투르가 근대 세계에 대한 우리의 이해방식에 던지는 독특하면서도 근본적인 문제제기다. '과학논쟁(science wars)'의 한가운데에서 저자는 과학과 기술이 사회적 이익이나 권력에 의해 구성된다는 사회학적 '구성주의(constructivism)'와 자연적 사실은 사회나 문화로부터 완전히 분리되어 있다는 과학적 '실재론(realism)'의 양 진영으로부터의 맹렬한 비난을 받으면서도 양자 사이의 협상테이블을 마련하려 하고 있다. 저자는 오히려 이러한 협상 과정을 통해서만 우리가 사회와 자연, 정치와 과학을 보다 더 잘 이해할 수 있으며, 현재의 정치․사회적 위기와 환경․기술적 위기라는 이중의 위기에 대처할 수 있다고 보는 것이다. 탈근대주의는 ‘막다른 골목’에 다다랐다 이제 근대성에 대한 비판은 전혀 새로울 것도 없다. 보편적 합리성의 한계에 대한 폭로와 근대 계몽주의의 맹목성이 낳은 폭력에 대한 고발은 그 충격과 새로움이 완전히 퇴색되면서 전혀 기대했던 효과를 얻지 못할 정도에 이르렀다. 저자가 보기에 탈근대주의가 처한 '막다른 골목'은 탈근대주의자들의 근대인들에 대한 지나친 불신의 결과라기보다는 오히려 근대인들 자신과 마찬가지로 그들이 근대인들을 지나치게 신뢰한 결과다. 그들이야말로 근대화를 곧이곧대로 믿은 것이다. 그리고 여기에 근대성 논쟁의 핵심적인 쟁점이 자리 잡고 있다. 근대인임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근대인은 자신들의 탄생시점에서부터 이중의 존재였다. 근대인은 공식적인 표면적 층위에서는 자연과 사회, 과학과 문화, 지식과 이익을 엄격하게 구분하였고 그것이 자신들을 전근대인들과 구분시켜주는 본질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탈근대인들이나 전통주의자들도 바로 그렇게 믿었다. 그러나 다른 한편에서 근대인들은 실제로는 자연과 사회, 과학과 문화, 지식과 이익이 구분될 수 없게 뒤얽힌 비인간적 사물, '하이브리드'를 엄청난 규모로 증식시키고 동원해 왔다는 것이다. 근대성의 태동기 잉글랜드에서 홉스와 보일로 하여금 그것의 정치적 파장과 과학적 효과 모두에 대해 한꺼번에 논쟁하게 만든 공기펌프로부터 현대의 오존층 파괴, AIDS, 유전자 변형식품에 이르기까지 정치와 과학은 언제나 하이브리드에 의해 연결되어 있었다는 것이다. 우리의 사회와 과학은 이제 이렇게 증식된 하이브리드로 가득 차 있기 때문에 이들을 이해하지 않고는 사회와 과학을 제대로 이해할 수 없으며, 하이브리드에 대한 무제한적인 증식이 가져올 무서운 결과에도 대처할 수 없을지 모른다. ‘하이브리드’의 이해가 바로 근대성 이해의 열쇠이다. 하이브리드란 어쩌면 마치 유태인 설화에 나오는 골렘(golem)과도 같은 것인지 모른다. 16세기 프라하의 한 랍비는 유태인들을 박해자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진흙으로부터 인간의 형상을 한 골렘을 만들어낸다. 골렘은 랍비의 명령에 따라 박해자들에게 복수를 가하고 그들을 살해한다. 생명력이 없는 물질로부터 만들어진 골렘은 생명력을 갖게 된 것이고 결국 살인과 복수가 아닌 사랑을 원하게 되었고 그러한 감정을 거부당했을 때 자신의 창조자인 랍비를 살해하기에 이른다. 기술과 사물, 즉 하이브리드에 대한 도구주의적 관점에 사로잡힌 우리 근대인이야말로 이 설화에서의 랍비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 근대인은 하이브리드를 엄청난 규모로 창조하면서도 그것들이 실제로 무엇인지는 이해하기를 거부하기 때문이다. 저자는 하이브리드를 이해하는 것은 곧 근대인 자신을 보다 더 잘 이해하는 것이기도 하며 이를 통해서 이제 더 이상 전진도 후퇴도 불가능한 근대성 없이도 지속하고 발전할 수 있는 계몽주의를 모색하려 한다. 이러한 계몽주의는 근대인과 비근대인, 문명적 사고와 야생적 사고의 분할을 넘나드는 이미 오래된 인간의 실천에 새로운 가능성을 부여하게 될 것이다.< 2. 『우리는 결코 근대인이었던 적이 없다』에서 볼 수 있는 라투르의 사상 “『근대인』은 단순히 근대성에 대한 냉소적인 비판을 목표로 하지 않는다. 라투르는 ‘우리 근대인’이 결코 근대인이었던 적이 없었던 이유가 근대인의 필연적인 딜레마인 ‘언행의 불일치’에 있다고 주장한다. 즉 근대인의 실제는 근대인 스스로가 자신에 대해 이론화했던 내용과 다르다는 것이다―그리고 난해한 주장이기는 하지만 바로 이러한 불일치가 근대인 자신의 힘의 원천이기도 했다는 것이다.”(「옮긴이 후기」 중에서, 389쪽) “근대인임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우리가 우리 선조들의 연결망에 대한 놀라움의 표면 아래로 파고 들어가면 우리는 그와 같은 이해의 부재라는 인류학적 근원을 발견한다.”(「1장 위기」 중에서, 34쪽) “누구도 근대인이었던 적은 없다. 근대성은 시작조차 하지 않았다. 근대 세계는 존재한 적도 없다. 과거완료시제의 용법은 여기서 중요한데 그것이 회고적인 감정의 문제이며 우리 역사를 다시 읽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나는 우리가 새로운 시대에 들어서고 있다고 말하려는 것이 아니며 반대로 우리는 더 이상 탈-탈-탈근대주의자의 무분별한 비행을 계속할 필요가 없다는 것, 따라서 우리는 더 이상 훨씬 더 정교하고 더욱 비판적이며, ‘의심의 시대’로 더욱 깊숙이 들어가려고 하지 않는다고 말하려는 것이다. 그게 아니라 우리는 스스로가 결코 근대의 시대에 들어서기 시작한 적이 없다는 것을 발견한다. 따라서 우스꽝스러운 암시는 탈근대 사상가들을 언제나 따라다닐 것이다. 왜냐하면 그들은 심지어 시작하지도 않은 시대를 뒤따라 온 것이라고 주장하기 때문이다!”(「2장 헌법」 중에서, 128쪽) “근대적이라는 것은 이중의 모순을 말하는데, 하나는 ‘자연’과 ‘사회’의 두 헌법적 보장 사이의 모순이요, 다른 하나는 ‘정화’의 실천과 ‘매개’의 실천 사이의 모순이다”(「1장 위기」 중에서, 62쪽) “우리는 우리의 설명을 객체 또는 주체(사회)로 알려진 두 순수 형태에 집착할 필요가 없는데, 왜냐면 이들은 우리의 유일한 관심사인 중심적 실천 형태의 부분적이고 정화된 결과일 뿐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추구하는 설명도 사실상 ‘자연’과 ‘사회’를 얻게 되지만, 이는 출발점이 아닌 최종 결과로서 그럴 뿐이다. ‘자연’은 돌지만 주체(사회)를 중심으로 도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사물과 사람들을 만들어내는 집합을 중심으로 돈다. ‘주체’도 돌지만 ‘자연’을 중심으로 돌지는 않는다. 사람과 사물들이 창출되는 집합을 중심으로 도는 것이다. 그리하여 마침내 중간왕국이 재현된다. 자연들과 사회들은 그것의 위성들에 불과하다”(「1장 위기」 중에서, 69쪽) “근대화는 불가능해지는 것이 아닌가? 우리는 전근대인이 될 것인가―혹은 전근대인으로 퇴행하게 되는가? 우리는 반근대인으로 물러나야만 하는가? 보다 낳은 가능성이 없기 때문에 우리는 근대인이기를 지속해야 하겠지만 어떤 확신도 없이 탈근대의 중간지대twilight zone 안에서 그래야만 하는 것인가?”(「5장 재분배」 중에서, 329-330쪽) 3. 지은이·옮긴이 소개 |지은이| 브뤼노 라투르(Mihalis Mentinis 1976~ ) 프랑스 출신의 과학기술학자이며 현재 이 분야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학자 중 한 사람이다. 대학에서는 철학과 인류학을 전공하였고, 파리광업대학과 런던경제대학, 그리고 하버드대학 교수를 역임했다. 현재는 파리정치대학 교수로 재직 중이다. 현대 과학기술에 관한 인류학적이고 철학적인 연구로 널리 알려져 있다. 주요 저서로는 『실험실의 삶』(La vie laboratoire, 1979), 『미생물: 전쟁과 평화』(Les Microbes: Guerre et paix, 1984), 『과학의 실천』(La science en action, 1987), 『우리는 결코 근대인이었던 적이 없다』(Nous n'avons jamais été modernes, 1991), 『자연의 정치』(Politiques de la nature, 1999), 『판도라의 희망』(Pandora's Hope, 1999), 『사회적인 것의 재조립』(Reassembling the Social, 2005) 등이 있다. |옮긴이| 홍철기(Hong Chul-ki, 1976~ ) 1976년 서울 출생. 연세대학교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하였고 서울대학교 정치학과에서 「칼 슈미트의 정치적인 것의 개념에 대한 연구」로 석사학위를 받았다. 칼 슈미트와 조르지오 아감벤 등에 관한 논문을 발표했으며, 현재는 ‘박정희 시대의 헌법사상사’에 대한 연구로 박사학위논문을 준비하고 있다. 4. 『우리는 결코 근대인이었던 적이 없다』의 차례 한국어판 서문 1장 위기 1.1 하이브리드들의 증식 17 1.2 고르디오스의 매듭을 다시 묶기 22 1.3 비판적 입장의 위기 29 1.4 1989년: 기적의 해 35 1.5 근대인임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40 2장 헌법 2.1 근대성의 헌법 49 2.2 보일과 그의 사물들 55 2.3 홉스와 그의 주체들 62 2.4 실험실의 매개 67 2.5 비-인간의 증언 72 2.6 실험실과 리바이어던의 이중 구조물 77 2.7 과학적 표상과 정치적 대표 82 2.8 근대인에 대한 헌법의 보장 87 2.9 네 번째 보장: 소거된 신 94 2.10 근대적 비판의 힘 100 2.11 패배를 모르는 근대인 105 2.12근대성의헌법은무엇을밝히고무엇을애매하게하는가? 110 2.13 비판의 종식 119 2.14 우리는 결코 근대인이었던 적이 없다 126 3장 혁명 3.1 근대인: 성공의 희생자들 135 3.2 준대상이란 무엇인가? 140 3.3 메울 수 없는 간극 위로 펼쳐진 철학이론 150 3.4 모든 종말들의 종말 156 3.5 기호적 전환 165 3.6 누가 존재를 망각했는가? 170 3.7 과거의 시작 175 3.8 혁명의 기적 182 3.9 지나가는 과거의 종말 186 3.10 선별작업과 다중적인 시간들 192 3.11 코페르니쿠스적 반혁명 198 3.12 중간매체에서 매개자로 204 3.13 고발과 인과 관계 210 3.14 가변적 존재론들 217 3.15 4가지 근대적 수단의 연결 223 4장 상대주의 4.1 비대칭성을 종식시킬 방법 233 4.2 대칭성 원리의 일반화 240 4.3 두 번의 대분할과 그 수출입 체계 246 4.4 ‘열대’로부터의 인류학의 귀향 253 4.5 문화들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261 4.6 규모에 따른 차이 268 4.7 아르키메데스의 쿠데타 273 4.8 절대적 상대주의와 상대적 상대주의 278 4.9 세계의 탈주술화와 관련된 사소한 실수들 284 4.10 더 넓은 연결망이라 해도 여전히 모든 점에서 국지적이다. 290 4.11 리바이어던은 연결망의 다발이다. 297 4.12 주변부에 대한 이해할 수 없는 선호 302 4.13 과거의 범죄에 더하여 새로운 범죄를 저지르지 않을 방법 308 4.14 무수한 초월성들 314 5장 재분배 5.1 불가능한 근대화 323 5.2 최종 검토 329 5.3 재분배된 인간주의 336 5.4 비근대적 헌법 343 5.5. 사물들의 의회 351 참고문헌 부록 용어해설 371 그림 차례 377 국제 번역판본 일람 378 라투르의 저작목록 381 옮긴이 후기 384 찾아보기 3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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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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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결코 근대인이었던 적이 없다 ▶과학철학, 과학사회학 분야의 가장 영향력있는 석학 브뤼노 라투르의 대표작! ▶철학, 인류학, 사회학, 기술과학을 넘나드는 독창적인 사유를 한국어로 최초로 만난다! ▶24개 국어로 번역되어 대중적인 성공을 거둔 라투르 사상의 입문서! ▶근대주의와 탈근대주의를 넘어선 ‘비근대주의’의 정치생태학을 제시한다! ▶우리는 지금까지 결코 근대인이었던 적이 없다. 이제 그것의 반생산적인 성격을 제거한 새로운 유형의 근대인을 추구하자! ▶과학과 기술, 정치와 정부, 언어와 의미론에 대한 완전히 새로운 시각에서의 흥미롭고 심층적인 탐구! ◎지은이: 브뤼노 라투르 ◎옮긴이 : 홍철기 ◎출판일: 2009년 7월 15일 ◎판형: 사륙판 양장본(127×188) ◎쪽수: 408쪽 ◎정가: 25,000원 ◎출판사: 도서출판 갈무리 ◎ISBN 978-89-6195-016-9 04300 / 978-89-6195-003-9(세트) ◎도서분류 : 아우또노미아총서20 1.『우리는 결코 근대인이었던 적이 없다』의 출간의 의미 ‘근대적’ 이분법을 넘어선 과학의 이해 『우리는 결코 근대인이었던 적이 없다』는 과학자들과 기술자들을 연구해온 인류학자인 저자 브뤼노 라투르가 근대 세계에 대한 우리의 이해방식에 던지는 독특하면서도 근본적인 문제제기다. '과학논쟁(science wars)'의 한가운데에서 저자는 과학과 기술이 사회적 이익이나 권력에 의해 구성된다는 사회학적 '구성주의(constructivism)'와 자연적 사실은 사회나 문화로부터 완전히 분리되어 있다는 과학적 '실재론(realism)'의 양 진영으로부터의 맹렬한 비난을 받으면서도 양자 사이의 협상테이블을 마련하려 하고 있다. 저자는 오히려 이러한 협상 과정을 통해서만 우리가 사회와 자연, 정치와 과학을 보다 더 잘 이해할 수 있으며, 현재의 정치․사회적 위기와 환경․기술적 위기라는 이중의 위기에 대처할 수 있다고 보는 것이다. 탈근대주의는 ‘막다른 골목’에 다다랐다 이제 근대성에 대한 비판은 전혀 새로울 것도 없다. 보편적 합리성의 한계에 대한 폭로와 근대 계몽주의의 맹목성이 낳은 폭력에 대한 고발은 그 충격과 새로움이 완전히 퇴색되면서 전혀 기대했던 효과를 얻지 못할 정도에 이르렀다. 저자가 보기에 탈근대주의가 처한 '막다른 골목'은 탈근대주의자들의 근대인들에 대한 지나친 불신의 결과라기보다는 오히려 근대인들 자신과 마찬가지로 그들이 근대인들을 지나치게 신뢰한 결과다. 그들이야말로 근대화를 곧이곧대로 믿은 것이다. 그리고 여기에 근대성 논쟁의 핵심적인 쟁점이 자리 잡고 있다. 근대인임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근대인은 자신들의 탄생시점에서부터 이중의 존재였다. 근대인은 공식적인 표면적 층위에서는 자연과 사회, 과학과 문화, 지식과 이익을 엄격하게 구분하였고 그것이 자신들을 전근대인들과 구분시켜주는 본질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탈근대인들이나 전통주의자들도 바로 그렇게 믿었다. 그러나 다른 한편에서 근대인들은 실제로는 자연과 사회, 과학과 문화, 지식과 이익이 구분될 수 없게 뒤얽힌 비인간적 사물, '하이브리드'를 엄청난 규모로 증식시키고 동원해 왔다는 것이다. 근대성의 태동기 잉글랜드에서 홉스와 보일로 하여금 그것의 정치적 파장과 과학적 효과 모두에 대해 한꺼번에 논쟁하게 만든 공기펌프로부터 현대의 오존층 파괴, AIDS, 유전자 변형식품에 이르기까지 정치와 과학은 언제나 하이브리드에 의해 연결되어 있었다는 것이다. 우리의 사회와 과학은 이제 이렇게 증식된 하이브리드로 가득 차 있기 때문에 이들을 이해하지 않고는 사회와 과학을 제대로 이해할 수 없으며, 하이브리드에 대한 무제한적인 증식이 가져올 무서운 결과에도 대처할 수 없을지 모른다. ‘하이브리드’의 이해가 바로 근대성 이해의 열쇠이다. 하이브리드란 어쩌면 마치 유태인 설화에 나오는 골렘(golem)과도 같은 것인지 모른다. 16세기 프라하의 한 랍비는 유태인들을 박해자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진흙으로부터 인간의 형상을 한 골렘을 만들어낸다. 골렘은 랍비의 명령에 따라 박해자들에게 복수를 가하고 그들을 살해한다. 생명력이 없는 물질로부터 만들어진 골렘은 생명력을 갖게 된 것이고 결국 살인과 복수가 아닌 사랑을 원하게 되었고 그러한 감정을 거부당했을 때 자신의 창조자인 랍비를 살해하기에 이른다. 기술과 사물, 즉 하이브리드에 대한 도구주의적 관점에 사로잡힌 우리 근대인이야말로 이 설화에서의 랍비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 근대인은 하이브리드를 엄청난 규모로 창조하면서도 그것들이 실제로 무엇인지는 이해하기를 거부하기 때문이다. 저자는 하이브리드를 이해하는 것은 곧 근대인 자신을 보다 더 잘 이해하는 것이기도 하며 이를 통해서 이제 더 이상 전진도 후퇴도 불가능한 근대성 없이도 지속하고 발전할 수 있는 계몽주의를 모색하려 한다. 이러한 계몽주의는 근대인과 비근대인, 문명적 사고와 야생적 사고의 분할을 넘나드는 이미 오래된 인간의 실천에 새로운 가능성을 부여하게 될 것이다.< 2. 『우리는 결코 근대인이었던 적이 없다』에서 볼 수 있는 라투르의 사상 “『근대인』은 단순히 근대성에 대한 냉소적인 비판을 목표로 하지 않는다. 라투르는 ‘우리 근대인’이 결코 근대인이었던 적이 없었던 이유가 근대인의 필연적인 딜레마인 ‘언행의 불일치’에 있다고 주장한다. 즉 근대인의 실제는 근대인 스스로가 자신에 대해 이론화했던 내용과 다르다는 것이다―그리고 난해한 주장이기는 하지만 바로 이러한 불일치가 근대인 자신의 힘의 원천이기도 했다는 것이다.”(「옮긴이 후기」 중에서, 389쪽) “근대인임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우리가 우리 선조들의 연결망에 대한 놀라움의 표면 아래로 파고 들어가면 우리는 그와 같은 이해의 부재라는 인류학적 근원을 발견한다.”(「1장 위기」 중에서, 34쪽) “누구도 근대인이었던 적은 없다. 근대성은 시작조차 하지 않았다. 근대 세계는 존재한 적도 없다. 과거완료시제의 용법은 여기서 중요한데 그것이 회고적인 감정의 문제이며 우리 역사를 다시 읽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나는 우리가 새로운 시대에 들어서고 있다고 말하려는 것이 아니며 반대로 우리는 더 이상 탈-탈-탈근대주의자의 무분별한 비행을 계속할 필요가 없다는 것, 따라서 우리는 더 이상 훨씬 더 정교하고 더욱 비판적이며, ‘의심의 시대’로 더욱 깊숙이 들어가려고 하지 않는다고 말하려는 것이다. 그게 아니라 우리는 스스로가 결코 근대의 시대에 들어서기 시작한 적이 없다는 것을 발견한다. 따라서 우스꽝스러운 암시는 탈근대 사상가들을 언제나 따라다닐 것이다. 왜냐하면 그들은 심지어 시작하지도 않은 시대를 뒤따라 온 것이라고 주장하기 때문이다!”(「2장 헌법」 중에서, 128쪽) “근대적이라는 것은 이중의 모순을 말하는데, 하나는 ‘자연’과 ‘사회’의 두 헌법적 보장 사이의 모순이요, 다른 하나는 ‘정화’의 실천과 ‘매개’의 실천 사이의 모순이다”(「1장 위기」 중에서, 62쪽) “우리는 우리의 설명을 객체 또는 주체(사회)로 알려진 두 순수 형태에 집착할 필요가 없는데, 왜냐면 이들은 우리의 유일한 관심사인 중심적 실천 형태의 부분적이고 정화된 결과일 뿐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추구하는 설명도 사실상 ‘자연’과 ‘사회’를 얻게 되지만, 이는 출발점이 아닌 최종 결과로서 그럴 뿐이다. ‘자연’은 돌지만 주체(사회)를 중심으로 도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사물과 사람들을 만들어내는 집합을 중심으로 돈다. ‘주체’도 돌지만 ‘자연’을 중심으로 돌지는 않는다. 사람과 사물들이 창출되는 집합을 중심으로 도는 것이다. 그리하여 마침내 중간왕국이 재현된다. 자연들과 사회들은 그것의 위성들에 불과하다”(「1장 위기」 중에서, 69쪽) “근대화는 불가능해지는 것이 아닌가? 우리는 전근대인이 될 것인가―혹은 전근대인으로 퇴행하게 되는가? 우리는 반근대인으로 물러나야만 하는가? 보다 낳은 가능성이 없기 때문에 우리는 근대인이기를 지속해야 하겠지만 어떤 확신도 없이 탈근대의 중간지대twilight zone 안에서 그래야만 하는 것인가?”(「5장 재분배」 중에서, 329-330쪽) 3. 지은이·옮긴이 소개 |지은이| 브뤼노 라투르(Mihalis Mentinis 1976~ ) 프랑스 출신의 과학기술학자이며 현재 이 분야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학자 중 한 사람이다. 대학에서는 철학과 인류학을 전공하였고, 파리광업대학과 런던경제대학, 그리고 하버드대학 교수를 역임했다. 현재는 파리정치대학 교수로 재직 중이다. 현대 과학기술에 관한 인류학적이고 철학적인 연구로 널리 알려져 있다. 주요 저서로는 『실험실의 삶』(La vie laboratoire, 1979), 『미생물: 전쟁과 평화』(Les Microbes: Guerre et paix, 1984), 『과학의 실천』(La science en action, 1987), 『우리는 결코 근대인이었던 적이 없다』(Nous n'avons jamais été modernes, 1991), 『자연의 정치』(Politiques de la nature, 1999), 『판도라의 희망』(Pandora's Hope, 1999), 『사회적인 것의 재조립』(Reassembling the Social, 2005) 등이 있다. |옮긴이| 홍철기(Hong Chul-ki, 1976~ ) 1976년 서울 출생. 연세대학교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하였고 서울대학교 정치학과에서 「칼 슈미트의 정치적인 것의 개념에 대한 연구」로 석사학위를 받았다. 칼 슈미트와 조르지오 아감벤 등에 관한 논문을 발표했으며, 현재는 ‘박정희 시대의 헌법사상사’에 대한 연구로 박사학위논문을 준비하고 있다. 4. 『우리는 결코 근대인이었던 적이 없다』의 차례 한국어판 서문 1장 위기 1.1 하이브리드들의 증식 17 1.2 고르디오스의 매듭을 다시 묶기 22 1.3 비판적 입장의 위기 29 1.4 1989년: 기적의 해 35 1.5 근대인임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40 2장 헌법 2.1 근대성의 헌법 49 2.2 보일과 그의 사물들 55 2.3 홉스와 그의 주체들 62 2.4 실험실의 매개 67 2.5 비-인간의 증언 72 2.6 실험실과 리바이어던의 이중 구조물 77 2.7 과학적 표상과 정치적 대표 82 2.8 근대인에 대한 헌법의 보장 87 2.9 네 번째 보장: 소거된 신 94 2.10 근대적 비판의 힘 100 2.11 패배를 모르는 근대인 105 2.12근대성의헌법은무엇을밝히고무엇을애매하게하는가? 110 2.13 비판의 종식 119 2.14 우리는 결코 근대인이었던 적이 없다 126 3장 혁명 3.1 근대인: 성공의 희생자들 135 3.2 준대상이란 무엇인가? 140 3.3 메울 수 없는 간극 위로 펼쳐진 철학이론 150 3.4 모든 종말들의 종말 156 3.5 기호적 전환 165 3.6 누가 존재를 망각했는가? 170 3.7 과거의 시작 175 3.8 혁명의 기적 182 3.9 지나가는 과거의 종말 186 3.10 선별작업과 다중적인 시간들 192 3.11 코페르니쿠스적 반혁명 198 3.12 중간매체에서 매개자로 204 3.13 고발과 인과 관계 210 3.14 가변적 존재론들 217 3.15 4가지 근대적 수단의 연결 223 4장 상대주의 4.1 비대칭성을 종식시킬 방법 233 4.2 대칭성 원리의 일반화 240 4.3 두 번의 대분할과 그 수출입 체계 246 4.4 ‘열대’로부터의 인류학의 귀향 253 4.5 문화들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261 4.6 규모에 따른 차이 268 4.7 아르키메데스의 쿠데타 273 4.8 절대적 상대주의와 상대적 상대주의 278 4.9 세계의 탈주술화와 관련된 사소한 실수들 284 4.10 더 넓은 연결망이라 해도 여전히 모든 점에서 국지적이다. 290 4.11 리바이어던은 연결망의 다발이다. 297 4.12 주변부에 대한 이해할 수 없는 선호 302 4.13 과거의 범죄에 더하여 새로운 범죄를 저지르지 않을 방법 308 4.14 무수한 초월성들 314 5장 재분배 5.1 불가능한 근대화 323 5.2 최종 검토 329 5.3 재분배된 인간주의 336 5.4 비근대적 헌법 343 5.5. 사물들의 의회 351 참고문헌 부록 용어해설 371 그림 차례 377 국제 번역판본 일람 378 라투르의 저작목록 381 옮긴이 후기 384 찾아보기 3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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