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o

한국어

토론 마당

로그인 후 자유로운 글쓰기가 가능한 게시판입니다.
이 게시판은 RSS와 엮인글이 가능합니다.
이 곳의 글은 최근에 변경된 순서로 정렬됩니다.
* 광고성 글은 바로 삭제되며, 민주주의법학연구회의 설립취지에 어긋나는 글은 삭제 또는 다른 게시판으로 이동될 수 있습니다.
* 관리자에게 글을 쓸 때, 옵션의 "비밀"을 선택하시면 관리자만 글을 읽을 수 있습니다.
* 글을 쓰실 때 개인정보(주민등록번호, 주소지 등)이 유출되지 않도록 주의해주십시오
돈 오버도퍼의 "두개의 한국"의 개정판이 나온 모양입니다.

아시다시피, 그 책은 한반도의 현대사, 특히 남북 그리고 미국과의 관계에 대한 가장 소상한 설명을 담고 있습니다. 1994년의 북-미 간의 전쟁 위기에 대하여도 어느 책보다도 자세하게 소개되어 있습니다.

그 개정판에서는 특히 남북정상회담을 전후한 이야기, 특히 북-미 관계가 결정적으로 풀릴 뻔하다가 무산되고 만 그 안타까운 얘기가 잘 나와 있는 모양입니다.

전에도 언급했듯이, 저는 2000년 연말 클린턴 방북 문제를 둘러싸고 국내에서 벌어진 치열한 공방전을 잊을 수 없습니다. 김대통령은 그를 위해 동분서주하고, 한겨레신문과 중앙일보도 클린턴의 방북을 촉구하거나 찬성하는데, 이회창총재는 공개적으로 반대하고 조선일보와 대구 매일신문은 사설에서 직접적으로 반대하고, 동아일보는 북한의 인권문제를 거론하면서 딴죽을 걸던, 그 결정적인 국면을 어떻게 잊겠습니까?

아, 어쩌면 클린턴 방북의 좌절은 우리 한반도의 운명에서 치유할 수 없는 상처를 남길지도 모릅니다.

김영희 대기자라는 사람은 중앙일보 국제전문기자로서, 그의 글을 읽어보면 적어도 국제관계와 그 동향에 관해서는 경청할 정보와 얘기들을 적지 않게 발견할 수 있습니다. 이번 칼럼도 아주 영양가가 높습니다.

---------------------------------------------------------------
  [김영희 대기자의 투데이] 북한이 놓친 기회

역사에서 '만약에(If) '라는 가정법은 의미가 없다고 일축하는 역사철학의 태도는 학문적 미신이다. 실제로 일어난 사태의 경중(輕重) 과 가치를 판단하는데 '만약에'라는 가정은 유용한 판단기준이 되고 훗날 같은 일을 도모하는 데도 도움이 된다.

지난해 11월이나 12월에 미국의 빌 클린턴 대통령은 거의 북한을 방문할 뻔했다. 그 때 미국 대통령의 역사적인 북한 방문이 실현됐더라면 오늘의 남북관계와 북.미관계는 어디쯤 와 있을까라는 물음은 스릴 있고 감질나는 '만약에'다.

북한이 지난해 가을 미사일문제에 관해서 미국이 충분히 받아들일 수 있는 제안을 했다는 사실은 이 자리에서 몇번 소개한 바 있다.

그러나 미국의 한반도문제 전문가 돈 오버도퍼가 쓴 『두개의 한국』의 개정판은 북한 제안의 상세한 내용뿐 아니라 김정일(金正日) 위원장은 클린턴이 평양에 와 주기만 하면 미사일문제에서 화끈한 양보를 하여 북.미관계에 지각변동이 일어날 수도 있었다는 사실을 밝히고 있다.

*** 오버도퍼 『두개의 한국』

1997년 나온 오버도퍼의 『두개의 한국』의 개정판은 이달 초 발행됐다. 저자는 남북 정상회담이 성사된 과정과 그 이후의 사태를 남북협상과 북.미협상에 참여한 당사자들을 상대로 한 심층취재를 바탕으로 상세히 설명한다. 가장 흥미를 끄는 미사일문제에 관한 북한 제안과 클린턴의 방북에 관한 부분을 보자.

지난해 10월 9일 워싱턴에 도착한 조명록은 백악관에서 클린턴에게 그의 북한방문을 초청하는 김정일의 친서를 전달했다. 클린턴은 올브라이트의 건의에 따라 충분한 사전준비와 주요 현안에 관한 대체적인 합의 없이는 북한을 방문할 수 없으니 먼저 올브라이트 장관을 평양에 보내겠다고 말했다.

일행 중의 강석주(姜錫柱) 북한 외교부 부부장은 미국 국무장관의 북한문제 특별보좌관 웬디 셔먼을 따로 만나 미사일문제에 관한 김정일의 생각을 설명했다. 북한은 탄도미사일의 수출을 중단하고, 미군의 한반도 장기주둔을 받아들인다. 미국은 북한에 현금이 아니라 식량과 물자로 미사일수출 중단을 보상하고 1년에 3개나 4개의 과학위성을 대신 발사해달라. 그리고 외교관계를 수립하자.

10월 23일 평양을 방문한 올브라이트에게 김정일의 제안은 더욱 구체적이었다. 대포동 1호는 물론이고 미국 본토까지 미친다는 대포동 2호를 포함한 사정거리 5백㎞ 이상의 미사일 개발을 중단하겠다. 미사일 합의에 관한 검증도 수락한다. 미국은 식량과 의류와 에너지로 보상하라.

그러나 북한이 기대한 가장 큰 보상은 미국 대통령의 북한 방문이라는 것이 분명했다. 미국 대통령이 북한을 방문하면 북한은 불량국가의 오명(汚名) 을 벗고 정통성과 주권을 과시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경제적인 보상 이상 가는 북한의 대미외교의 목표였다. 김정일과 올브라이트는 웬디 셔먼이 귀국했다가 평양에 다시 와서 클린턴 방북을 준비하자고 합의했다.

그러나 워싱턴의 사정은 달랐다.클린턴이 북한을 방문하기에는 시간이 너무 촉박하다는 반대의 소리가 컸다. 팔레스타인 사태가 악화돼 클린턴이 중동으로 날아가야 할지도 몰랐다. 대통령선거에서는 개표중단 사태 끝에 조지 부시 당선이 확정됐다. 그 뒤의 사정은 우리가 아는 대로다.

*** 미사일 양보案 끝내 미뤄

돌이켜 보면 북.미관계의 결정적인 정상화의 기회를 놓친 것은 1999년 5월 윌리엄 페리 특사가 북한체제를 인정한다는 전제 아래 북한이 장거리 미사일 개발과 수출을 중단하고 미국은 북한에 대한 경제제재를 풀고 나서 국교정상화를 논의하자고 제안한 데 대해 북한의 반응이 지연된 탓이다.

그해 9월 북한이 미사일 모라토리엄(개발중단) 을 선언하고 미국이 대북 경제제재를 부분적으로 해제했지만 그 이상의 진전 없이 부시 정부의 출범을 맞은 것이다.

테러와의 전쟁으로 사정은 더욱 나빠졌다. 미국은 북한이 테러지원국이라는 사실을 새삼 상기하게 되고, 정책의 우선순위에서도 북한은 뒤로 밀렸다. 그 여파로 남북대화도 답보상태다.

'만약에' 북한이 페리 제안에 즉각 관심을 갖고 대응하고 미사일에 관한 양보안을 제시했더라면 아마도 클린턴은 북한땅을 밟는 최초의 미국 대통령이 되었을 것이고 남북관계도 훨씬 부드럽고 여유로워졌을지도 모른다.

입력시간: 2001. 12.04. 18:07


 
Tag Lis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