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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 수 : 13027
2002.02.21 (00:43:22)
부시의 방문과 그에 대한 김대통령의 응접에 대한 소감입니다.

지난 해 초 김대통령이 미국에 가서 크게 당한 것을 생각하면 이번에 단단히 설욕을 했으면 좋겠지만, 어디 그게 그렇게 됩니까. 작금의 위태로운 상황을 생각하면서 다음과 같이 생각해 보았습니다.

우선 부시가 직접 '침략할 의사'가 없다고 공언한 것과 북한의 소위 '대량살상무기'에 대하여 대화로 해결하기로 합의한 것은 큰 소득입니다. 그리고 재래식 무기를 뒤로 물리라는 얘기를 다시 반복하지 않은 것도 괜찮았던 것 같습니다. 나아가 미국이 한반도의 통일에 대하여 소극적이지 않다는 점을 확인해 준 것도 나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부시의 대북관은 전혀 변함이 없고, 나아가 북한에 대한 외교상의 무례함도 여전하였으며, 햇볕정책의 성과에 대하여도 의문을 내비쳤다는 점에서 희망을 갖기에는 이르다고 보입니다. 예컨대 북한이 미사일을 수출한다고 할 때, 현재의 상황이라면 미국은 분명히 그 수송을 무력으로 차단하려 들 것입니다.

또한 부시가 김대통령에 대하여 아부성 발언을 아주 많이 하였는데, 그것도 조금 미심쩍은 데가 있군요. 햇볕정책을 흔들어 놓은 것에 대한 맆서비스적 보상, 테러전쟁 지원에 대한 보답, 한국의 반미감정에 대한 의식 등도 있겠지만, 혹시 F15기에 대한 답례성이 아니었는지 걱정됩니다.

나아가 김대통령이 대북문제에 있어서 한미동맹관계를 가장 중요히 하고 있다고 밝히고, 북한의 대량살상무기 및 미사일 위협에 대한 미측의 우려에 공감한다고 얘기하는 등, 이번 정상회담의 전체적 성격은 미국의 호전적 군사주의에 우리의 햇볕정책이 포위된 구도라고 여겨집니다.

그러나 그러한 구도는 이미 미국의 테러전쟁이 시작된 이후 정해진 것으로서 어떻게 보면 주어진 조건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저는 오히려 그러한 구도 속에서 평화에 관한 어떤 여지를 만들어 보려는 김대통령의 애처롭지만 지난한 노력을 평가해 주고 싶습니다.

오늘 내일 (특히 내년 즉 북미 제네바합의의 이행기한인 2003년이 위험합니다) 당장 어떤 일이 벌어질지 예측불허인 상황에서 그리고 북미 간에 끼여 안팎곱사등이의 신세에서, 국가의 대표자로서 기본 관점을 어떻게 표현할 것인가는 정말 어려운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김대통령은 그런 어려움 속에서, 지난 번에도 얘기하였듯이, '북한을 믿을 수 없다고 보는 것과 평화를 위해서 대화를 해야한다는 것은 별개로 생각해야 한다'는 명제를 제시하였던 것으로 추측되며, 그 명제는 대체로 주효하지 않았나 판단됩니다.

물론 그 명제는 아주 약한 것이지요. 그렇게밖에 얘기할 수 없다는 것이 안타까울 따름입니다. 다만 단독 정상회담에서 김대통령이 부시에게 "북한이 미국과 관계개선을 적극 희망하고 있으며 제네바 합의를  준수하고 서방국과의 외교관계를 확대하는 등 변화와 개방의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는 얘기를 하였다고 하는데, 이는 최소한의 그러나 아주 중요한 사항에 대한 지적으로서 그나마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한편 이번 부시의 방문 기간 중에 특히 주목하고 싶은 것은 도라산 역 방문과 연설이라는 이벤트가 아닌가 합니다. 어느 쪽의 아이디어였는지는 모르지만, 아주 괜찮았던 것 같습니다. 물론 그 연설에서 북한에 대한 부시의 발언은 좋지 않았습니다만, 저는 그 행사와 연설로써 경의선의 연결이라는 문제가 남북은 물론 북미간에도 평화를 위한 하나의 상징이 될 수 있게 되었다는 점에 주목하고 싶습니다.

경의선 연결은 북의 김정일위원장이 이미 공언을 한 사항입니다. 만약에 북한이 그 공사에 착수한다면 그것은 이제 한반도 평화에 대한 북한의 의지를 국제적으로 보여주는 사건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도라선 역의 브리핑 직후 김 대통령이 부시 대통령에게 '북쪽 진영에  북한군인들이  천막을 다시 치는 등 경의선을 연결하려는 의향을 갖고 있는 것 같다'고 말하자 부시  대통령은 고개를 끄덕이며, 'OK, I Hope So'(그렇게 되기를 바랍니다)고 호응하기도 했다는 보도는 그러한 점에서 특히 눈길을 끕니다.

아마도 김대통령은 또 한편으로는 부시를 한반도 평화의 보증인으로 하려는 구상을 갖고 임했던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즉 강력한 상대의 힘을 역이용하여 소기의 성과를 거두려는 전략 말입니다. 사실 약소국으로서 현실 국제역학의 와중에 그 이상의 어떤 수를 모색하기는 쉽지 않을 것입니다.

하여튼 저는 '부시 대통령은 한반도 평화정착에 결정적으로 기여한 지도자로서 한국민의 가슴 속에 영원히 기억되기를 기대해 마지 않는다'는 김대통령의 도라산 역 연설의 말미의 문장이 의미심장하게 느껴집니다.

부시는 유식한 정치인이 아닙니다. 부시는 국제관계에 해박한 인물이 아닙니다. 라이스라는 편협한 학자나 체니와 같은 노회한 정치꾼과는 다릅니다. 부시가 비록 그들에 둘러싸여 있습니다만, 그는 여전히 교활한 술수로서의 국제역학보다는 논리적 명분과 정서적 호소력에 보다 익숙할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그런 점에서 부시를 한반도 평화에 결재의 도장을 찍는, 즉 지구상의 냉전의 마지막 잔재를 치유하는 해결사로 부상시키는 것은 의외로 좋은 효과를 낳을 수 있는 전략일 수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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