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회원연구노트

 

사법 쿠데타: 헌법, 연방대법원, 그리고 미국 민주주의의 쇠퇴 (6)

 

 

원저: Daniel Lazare, The Velvet Coup: The Constitution, the Supreme Court, and the Decline of American Democracy(London/New York: Verso, 2001), pp. 115-138.

 

 

6. 탈출구는 있는가?

 

이제 20048월이다. 조지 W. 부시 치하의 극우정책이 거의 4년간 계속된 후 민주당은 복수를 갈구하고 있다. 그들이 생각하기에 2000년 대통령선거를 도둑질한 공화당 팀과의 재시합만을 원하고 있다. 따라서 그 당은 다시 한 번 알 고어를 기수로 만들고 있다. 깔끔해 보이고 좀 더 흰머리가 많아졌을 뿐인 전 부통령은 그의 아내 티퍼가 자신의 말을 끝맺을 때 민주당 전당대회의 무대로 껑충 뛰어오를 것이다. 그는 환성을 지르면서 그녀에게, 자신의 개인적인 트레이드마크가 되어버린 또 한번의 긴 키스를 할 것이다.

차분하게 그는 부자 감세, 다른 모든 사람에 대한 예산 감축, 그리고 지구 온난화에 관한 교토 의정서 무산 등 지난 4년 동안 부시 행정부의 기록을 살펴본다. 그의 태도는 열정적이지만 자제되어 있다. 그는, 공화당이 시계를 거꾸로 돌리는 동안 미국인들은 앞으로 나가기보다는 기다려야 했다고 말한다. 그들은 자신의 나라가 전진하는 것을 보는 대신 로널드 레이건과 아버지 조지 부시의 시대로 역행하는 것을 목도했습니다. 이것은 모두 매우 짜증나는(galling) 것입니다. 그러나 훨씬 더 짜증나는 일은 이러한 일들이 미국인들이 찬성표를 던졌던 정책들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라고, 고어는 계속한다. 2000년에 민주당 또는 녹색당에 표를 던졌던 명확한 다수는 환경보호, 건강보험과 빈민을 위한 지출 증대, 그리고 여성의 출산선택권에 찬성표를 던졌다. 그러나 민주당만으로도 50만 표가 넘는 차이로 승리했음에도 불구하고, 미국인들이 얻은 것은 그 세 가지 모두에 전쟁을 선포한 한 공화당원이었다.

후보는 숨을 고른다. 대표단들이 4년 전의 일들나비투표, 폭력단(goon squads), 흑인 유권자들을 겁주어 쫓아버리는 경찰 바리케이드을 되새기는 사이에 10초 또는 15초가 흘러간다. 고어는 마침내 다시 말을 이어간다. “내 경쟁자를 충분히 존중하지만, 이런 일은 두 번 다시 일어나서는 안 됩니다. 인민의 의지가 두 번 다시 우롱당해서는 안 됩니다. 투표가 두 번 다시 무시되어서는 안 됩니다. 한 주에서의 결과가 전국의 인민투표를 상쇄할 수 있도록 하는 일이 두 번 다시 허용되어서는 안 됩니다. 우리의 헌법기초자들은 위대했지만, 그들이 미국이 민주국가가 되기를 원했는지 아니면 간접적으로 선출되는 공화국이 되기를 원했는지에 관하여 그들은 확신이 없었습니다. 오랫동안 미국인들 자신도 어느 쪽인지 확신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이제 2세기가 넘게 지난 후 우리는 결심을 했습니다. 우리는 민주주의를 원합니다. 우리는 인민의 의지에 근거한 민주주의를 원합니다. 우리는 모든 투표를 중요시하는 민주주의를 원합니다. 남성이든 여성이든, 흑인이든 백인이든, 부자든 가난한 사람이든, 모든 미국인들은 평등하게 창조되었다는 가정에 헌신하는 민주주의를 원합니다.” 그리고는 수많은 백인, 흑인 그리고 브라운색 얼굴들을 가로질러 살펴보면서 이렇게 말한다. “단지 선거인단이라고 불리는 어떤 것이 그래야만 한다고 말한다는 이유만으로, 대통령 선거에서 일부 주들에게 더 큰 영향력을 부여하고 기타 주들다인종으로 구성되고 도시적인 큰 주들에게는 더 적은 영향력을 부여하는 것이 아닌 민주주의를 원합니다. 민주주의는 피부색, 성별 또는 성적 지향과 관계없이, 또는 당신이 캘리포니아에 사는지 와이오밍에 사는지에 관계없이 11표를 의미합니다.”

이것은 청중이 기다려오고 있던 열변(red meat)이다. 1분을 꽉 채운 힘찬 갈채 후에 지명자는 침묵을 구하며 손을 든다. “우리 모두가 알다시피 이제, 헌법을 수정함으로써 선거인단을 변화시키는 것을 사실상 불가능합니다. 이 체계를 개혁하거나 폐지하려는 노력의 일환으로 약 700번의 수정 제안들이 지난 두 세기에 걸쳐서 의회에 제출되었습니다. 그것은 4개월에 한 번 꼴을 조금 넘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모든 것이 실패했습니다. 우리의 존경받는 뉴욕 주 상원의원인 힐러리 클린턴은 그런 시도를 한 마지막 인물이었지만 그 역시 실패했습니다. 오랜 세월에 걸쳐서 선거인단으로부터 불균형적으로 혜택을 받은 주들이 그들은 현상을 조금이라도 변경하는데 결코 동의하지 않을 것임을 분명히 해 왔고, 불행하게도 그런 수정이 하나라도 통과될 수 있도록 허용하는 것에 대해서 그런 식으로 느끼는 너무나 많은 작은 주들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선거인단은 어떤 사람이라도 예견할 수 있을 정도로 오랫동안 법령집에 남아 있을 운명입니다.”[뒷부분 따옴표는 옮긴이]

그러나 그것이 이야기의 끝은 아닙니다.” 하고 고어는 계속한다. “우리가 헌법을 바꿀 수는 없더라도, 우리가 선거인단을 사문화시킬 수 있는 방법은 있습니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단순한 규약(agreement)을 체결하는 것입니다. 나는 내 경쟁자와 내가 모두 서약을 하자고 제안합니다. 선거인단의 결과에 관계없이 나는 우리 두 사람 모두 인민의 투표를 준수하고 오로지 인민투표만을 지키자고 약속할 것을 제안합니다. 나는, 총 득표수가 알려지는 즉시 패자는 패배를 인정하고 자신의 선거인들이 다른 편에게 표를 던질 수 있도록 놓아주겠다는 성명서를 발표할 것을 제안합니다. 선거인들이 그들의 표를 바꾸어야 할 의무는 없겠지만, 대부분 선거인들은 후보자의 충고를 따를 것이고 민주적 의지에 복종할 것이라고 나는 확신합니다. 이렇게 된다면 매우 중요한 선례가 만들어질 것입니다. 선거인단은 4년마다 계속 모일 것입니다. 그러나 이제부터 선거인단은 형식적인 것, 즉 자유로운 선거의 결과를 비준하고 인민이 말한 것을 승인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기구에 불과하게 될 것입니다. 헌법의 콤마 하나 바꾸지 않고서도, 우리는 권력이 다시 한 번 인민에게, 권력이 결코 그로부터 떠나서는 안 되었던 인민에게 있게 될 것임을 보증할 수 있습니다. 미국은 민주주의 국가이며, 민주주의 국가에서는 우리 인민이 지배합니다.”

더 많은 갈채가 분출한다.

이에 나는 서약합니다. 나는 내 경쟁자도 같은 서약을 하라고 요구합니다

 

몇 년 전에 출간된 한 논문에서 샌포드 레빈슨이라는 이름의 텍사스 주립대학 법학교수가 아주 흥미로운 문제를 제기했다. 5조의 규정들에 따라서 채택된 헌법수정(a constitutional amendment)은 진짜로 수정(an amendment)인가? 이는 학자들의 전형적인 어려운 말(jawbreaker)처럼 들릴 수도 있지만, 현재 미국이 처한 궁지라는 측면에서는 사실 매우 적절한 것이다. 물론 어떤 의미에서는 각 원의 3분의 2와 모든 주의 4분의 3이 승인하는 수정은 이전 헌법전을 어느 정도 수정하는 추가적인 말들을 덧붙인다는 점에서 변화를 보여준다. 1차 대전 직후에 의회와 주들이 알코올이 든 음료의 제조, 판매 또는 운송을 금지하는 수정을 승인했을 때, 그 결과는 알코올 음료를 금지했을 뿐만 아니라 연방-주의 관계 구조를 변경하는 것이었다. 이전에 헌법이 의회는 주간통상(interstate commerce)만을 규율할 수 있도록 한데 반하여 수정 제18조는 그 적용범위를 적어도 주내통상(intrastate commerce)의 한 측면도 포괄하도록 확장하는 것을 허용했다. 아이러니컬하게도 신제퍼슨식 캠페인이 제퍼슨주의자가 극히 싫어하는 것(bête noire), 즉 거대 정부의 성장에 기여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그러나 또 다른 의미에서는 그 수정은 아무것도 바꾸지 못했다. 실제로, 5조에 설정된 복잡한 규정들에 따른 비준에 의하여, 수정 제18조는 18세기말에서 유래한 규칙들이 변함없이 구속력이 있다는 것을 확인했다. 그러므로 금주법(Prohibition)은 과거의 관행으로부터 일탈이 아니라 그 지속을 보여주었다. 결과적으로 그것은 기초자들이 여전히 가장 중요하다는 것, 그리고 그들의 규칙이 여전히 우월하다는 것의 승인이었다. 수정은 두 가지 목적알코올을 금지하는 것과 미국인들이 기존의 헌법적 원칙들에 복종해야 한다는 것을 확인하는 것에 이바지했는데, 그것이 1920년대 미국의 정치적 분위기가 그토록 질식할 정도로 보수적이었던 하나의 이유이다.

5조에 따라 발생하는 변화는 허가된 변화인 반면 진정한 변화는 그런 어떤 장치로부터도 벗어나는 것을 의미한다. 앞서 말한 알 고어 시나리오의 아름다움은 그것이 메디슨식 명령(Madisonian dictates)에 대한 진짜 거부를 수반한다는 것이다. 그 목표는 기초자들의 견제와 균형 그리고 권력분립 개념에 핵심적인 것이었던 중요한 통치제도를 작동하지 못하도록 만드는 것일 뿐만 아니라, 그것은 완전히 새로운 하나의 원칙, 즉 인민이 개별 주의 시민으로서의 능력에서가 아니라 단일 국가의 시민으로서의 능력으로 정치 제도를 재형성할(reshape) 권리가 있다는 관념을 도입할 것이었다. 이런 종류의 선거 전제주의”(electoral despotism)는 제퍼슨을 무덤에서 탄식하게 할 것이지만 그것이 정확히 핵심이다. 그것은 기초자들을 존경받던 자리에서 끌어내리기 위한 첫 발걸음일 것이고 따라서 헌법의 탈신성화(de-sanctification)를 향한 한 걸음일 것이다. 그 목표는 미국인들이 그들의 통치제도를 하나의 신성한 신비가 아니라, 거인종족이 아닌 결정적 결함을 가진 일군의 개인들에 의해 창조된 어떤 것으로 볼 수 있게 하는 것이다.

알 고어가 그런 조치를 취하려 한다면, 그 결과는 어떨까? 우선 첫째로 우리는 그런 조치가 불법이라고 그에게 말하는 저명한 헌법적 권위가 많을 것이라고 가정할 수 있다. 헌법이 오로지 선거인단만이 대통령을 선택할 수 있다고 말한다면, 그것이 헌법이 말하는 것이다. 그러나 전문가들도 틀릴 것이다. 법은 후보자로 하여금 자발적으로 경합에서 철회하는 것을 금지할 수도 없고, 일단 후보자가 선거인들에게 지지자를 변경하는 것을 허가한 다음에는 개별 선거인들이 그들의 투표를 바꾸는 것을 금지할 수도 없다. 고어가 자기 입장을 고수한다면(stuck to his guns) 그런 항의들은 곧 사라져버릴 것이다.

우리는 또한 법학교수들이 부정적으로 반응할 유일한 사람들이 아니라고 가정할 수 있지만, 조지 W. 부시 또한 반대할 것이라고 가정할 수 있다. 틀림없이 그는 그의 손을 벗어난 어떤 그런 제안도 거부할 것인데, 그것이 중대한 정치적 이점을 포기하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 아니라, 말할 필요도 없이, 그가 신, 헌법 그리고 미국을 위대하게 만든 법률들에 의한 지위(standing)를 믿기 때문이다. 부시(Dubya)의 반응은 너무나 뻔할 것이다(all too predictable). “선거인단은 헌법기초자들이 우리가 대통령을 선택하도록 한 방법이며, 내가 헌법기초자들에 복종하지 않겠다는 것은 내가 신의 말씀에 복종하지 않겠다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공화당 사람들의 마음에 용솟음칠 비밀의 기쁨 역시 너무나 뻔할 것이다. 공화당은 헌법에 반대하는 선거운동을 하는 민주당 이상으로 무엇을 더 요구할 수 있을까? 고어가 자신의 머리를 은쟁반에 담아 건넸다고 깔깔거리면서(chortling) 그들은, 사람들은 국기에 반대 투표를 하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로 기초자들에게 반대하는 투표를 하지 않을 것이라고 확신하면서, 즉각 나라 전체로 퍼져나갈 것이다.

그러나 고어가 이 점에서도 역시 자신의 입장을 고수한다면, 결과는 극적일 수 있을 것이다. 본질적으로 그것은 대통령 선거를 헌법적 국민투표로 변형시킨다는 것을 의미할 것이다. 단순히 부시 대 고어가 아니라 유권자들 앞에 놓인 문제는 이제 선거인단 대 인민투표(the Electoral College versus the popular vote)라는 문제일 것이다. 2000년에 그랬던 것처럼 한 줌의 경합주들에 집중하는 대신, 민주당 입장의 논리는 그들에게 그들의 힘이 집중되어 있는 도시의 큰 주들에 집중하도록 요구할 것이다. 과거에는 그런 주들에서의 결과는, 그들이 확고하게 민주당 진영에 남아 있는 한 50퍼센트든, 60퍼센트 또는 70퍼센트든 중요하지 않았다. 일단 그 결과가 확고한 이상 각각의 추가적인 투표는 과잉이었고, 그래서 선거운동원들은, 선거인 투표가 여전히 누구든지 차지할 수 있는(up for grabs) 주들을 위하여 자신의 에너지를 절약했던 것이다. 그러나 이제 민주당이 선거인단을 무시하기로 서약한 이상, 그런 고려들은 더 이상 적용되지 않을 것이다. 마지막 한 표까지 갑작스레 엄청나게 중요해지면서 캘리포니아, 뉴욕 등의 민주당 선거운동원들은 아직 투표소에 가지 않은 고어의 지지자들을 찾아서 모든 집의 초인종을 누르고, 모든 빈민가 거리에서 유세를 하며, 모든 학생회관과 홈리스 피난처를 샅샅이 뒤질 동기를 갖게 될 것이다.

인민투표를 지키겠다고 서약함으로써 고어는 선거에서 주장하고 싸워왔던 방법을 변혁하게 될 것이다. 선거인단에 반대하는 사람들을 동원함으로써 그는, 큰 주보다 작은 주를, 흑인과 히스패닉보다 백인들을, 복잡한 도시와 교외지역의 지하철 승차자와 통근자들보다 농민과 목장주들을 선호하는 체계에 반대하도록, 그들을 동원할 것이다. 그가 좋아하든 아니든 그는 한 쌍의 텍사스 석유사업가가 이끌고 주요 기업 최고경영자의 약 86퍼센트가 후원하는 표에 반대하여 계급열정을 불러일으킬 것이다. 경쟁은 이제, 백악관을 통제하기 위한 투쟁이 아니라, 정치체계 자체의 통제를 위한 투쟁, 처음부터 인종과 계급 문제에 의해 틀지워지는 투쟁이 될 것이다.

50개 주들 사이의 엄청난 인구 불균형2000년 기준으로 10개 주가 미국 인구의 54%를 차지하는 반면 다른 10개 주는 3% 미만에 불과하다을 고려하면, 그런 경합은 한 후보가 인민투표에서 승리하고 다른 투표가 선거인단 투표에서 승리하는 일종의 불일치 결정으로 이루어질 가능성을 더 낮추기보다는 더 높일 것이다. 이것이 2000년에 일어났던 일이지만 한 가지 측면에서는 그 결과들은 두 번째에는 매우 다를 것이다. 양측 유권자들은 그 결과에 놀라기는커녕 모두 준비가 되어 있을 것이다. 모든 눈이 그가 했던 것을 보기 위해 부시에게 쏠릴 것이다. 그는 다시 한 번 인민투표에서 지고도 백악관을 차지하려고 할 것인가? 특히 다수가 선거인단에 반대하는 투표를 한 후라면, 다수는 그가 그렇게 하도록 허용할 것인가? 그의 대응에 따라 상황은 혁명이나 다름없을 수도 있을 것이다. 더욱이 약간의 요행에 의해서 부시가 인민투표와 선거인단 투표에서 모두 승리한다 하더라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비밀은 드러나게 될 것이다(the cat would still be out of the bag). 결과적으로 그 문제는 확실히 다시 등장할 것이고, 그랬을 때 결과는 매우 달라질 것이다. 미국 헌법이 현대 민주적 규범들을 태평스레 무시하는 일을 계속할 수 있는 날들은 얼마 남지 않을 것이다.

 

이런 시나리오를 믿기 어렵도록 만드는 것도 물론 많이 있다. 우리가 보았듯이 그런 조치는 미국의 고루한(hidebound) 정치라는 측면에서 급진적인 일탈일 것이고, 헨리 드 브랙턴 같은 13세기의 법적 권위자를 곧잘 인용하는 사람이라면 일반적으로 급진적 일탈에 찬성하는 사람은 아닐 것이다. 실제로 알 고어가 그의 오랜 정치경력의 과정에서 배웠던 모든 것은 그에게 그런 거칠고 위험한 과정을 시작하지 말라고 말할 것이다. 백악관에서 한 자리를 희망하는 모든 조언자, 모든 전문가, 모든 학자는 그에게, 가장 안전한 일은 그를 최고 자리에 올리는 데 필요한 여분의 유권자 조각(extra sliver of voters)을 얻으려는 희망으로, 2000년에 했던 것과 매우 유사한 선거운동을 시작하는 것이라고 말할 것이다. 그들은 경합 주들(swing states)에 관심을 덜 두기보다는 더 많은 관심을 두라고 조언할 것이다. 그들은 선거인단을 공격하는 대신 헌법으로 스스로를 한층 더 완전하게 감싸라고(wrap himself up in the constitution all the more completely) 조언할 것이다. 모든 조짐들로 볼 때 고어는 200012월에 했던 것처럼, 들은 대로 할 것이다. 인민들을 불러일으키기보다는 그들을 달래어 다시 잠들게 할 것이다.

더욱이 민주당의 관점에서 진정한 위험은 이런 종류의 급진적 일탈이 실패하는 것이 아니라 너무 잘 성공해서 그들이 휴면상태에 있기를 원하는 열정들에 불을 붙이는 것이다. () 마이클 해링턴 같은 좌파들은 민주당이 영국의 노동당이나 유럽의 사회민주당의 노선을 따르는 노동계급정당이라고 주장했지만, 이보다 더 진실과 거리가 멀 수는 없다. 민주당은 계급 차이를 고양하거나 심지어 인정이라도 하기보다는 두껍게 쌓인 애국심, 향수 그리고 미국적 예외주의 밑에서 그 차이를 흐릿하게 만들기 위해 존재한다. 알 고어 같은 정치인은 공화당의 더욱 지독한 권력남용의 일부에 대한 질 낮은 포퓰리스트적 분노라도 일으킬 사람이지만, 계급과 같은 총체적인 개념(totalizing concept)은 그의 기질(makeup)에는 맞지 않다. ‘일할 권리 인정 주’(right-to-work state) 출신의 전 상원의원이었던 고어는 노동과 자본 간의 갈등을 조장하기보다는 그 갈등을 막기 위하여 힘닿는 모든 일을 할 것이다. 갈등이 아니라 예의(comity)가 그의 애국적 이상이다.

완곡하게라도 헌법에 도전하는 것 역시 그의 기질에는 맞지 않다. 유권자들에게 선거인단을 사문화하자고 요구할 때에도, 고어는 덜 구미에 맞는 헌법의 다른 특징들 중 일부와 씨름하도록 장려하는 것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인구와 관계없이 주의 동등대표 원칙에 입각하여 조직되는 상원인민은 이 전근대적인 잔재 또한 작동하지 못하게 할 어떤 방법을 생각해내야 하지 않겠는가? 연방대법원이 200012월의 경우처럼 사법적 잔혹행위(atrocity)를 선고하지 못하도록 인민이 반드시 조치를 해야 하지 않겠는가? 연방-주의 관계 또한 점검 받을 때가 아닌가?

답은 그렇다 이다. 실제로 미국의 고대 헌법에서 다시 생각할 필요가 없는 측면을 하나라도 상상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어린 시절부터 미국의 너무나 노쇠한 18세기 정치에 푹 빠진 사람으로서, 고어는 이런 종류의 민주적 변화를 기초자들이 바라보았던 것과 본질적으로 동일한 방식으로, 즉 뭔가 비이성적이고 무정부주의적인 것으로 볼 가능성이 크다. 그는 구체제에 대한 대안을 상상할 수 없기 때문에, 그것을 대체하려는 어떤 시도도 그에게는 완전히 파괴적인 것으로 생각될 것이다. 그의 유일한 선택은 어떻게든 기존 체제를 작동하게 만드는 것이다. 그가 관련되는 한, 태양과 고정된 지구 주위를 계속 공전하는 태양과 행성들에 대한 대안이 없듯이, 고정된 헌법 주위를 공전하는 하원, 상원과 대통령에 대해서도 대안이 없을 뿐이다아니면 [순서가옮긴이]그 반대일까?(or is it the other way around?)

다른 한편으로 더 이상한 일들이 벌어졌다. 구조적 개혁에 문을 열어두고 있고 그들이 기대한 것 이상을 얻는 존경할만한 정치인들이 알려지지 않은 것은 아니다. 극단적 체제지지자들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회는 막다른 골목에 도달했고 급진적 변화가 불가피하다는 점을 인정하는 이들이 알려지지 않은 것도 아니다. 알 고어가 민주주의가 시작되게 할(usher in) 수도 있고, 아니면 민주주의가 고어 없이 스스로가 시작되게 할 수도 있다. 무슨 일이 일어나든 관계없이 미국은 경화된 18세기 헌법을 어떻게 할 것인가의 문제를 영원히 피할 수 없다.

물론 이것은 미국 사회가 과거를 버리고 정치 발전의 더 높은 단계로 전진하는 과정을 시작할 수 있는 하나의 방법일 뿐이다. 선거인단에 대한 반란이 가능하지만, 상원에 대한 반란 또한 가능하고, 수정 제2(이에 관해서는 아래에서 더 이야기한다)에 대한 반란 역시 또 다른 가능성이다. 이 모든 것은 통치체계 전체에 걸쳐 자신들의 영향력(sway)을 확대하는 단일한 통합된 인민을 수반할 것이기 때문에, 그것은 모두 잠재적으로 혁명적일 것이다. 각각은 하나의 힘, 즉 헌법이 승인하지 않고 실제로 금지하려고 하는 인민주권의 창조를 의미할 것이다. 그러나 사회를 전진하도록 추동하는 것은, 정확히, 이런 식으로 금지된 것을 하려는 욕구이다.

무엇을 할 것인가?(What is to be done?) 미국에서 민주적 헌법개혁의 어떤 프로그램이든 다음과 같은 요소들을 일부 또는 전부 포함하게 될 것이다.

 

비례대표: 영국, 캐나다와 오스트레일리아를 제외한 모든 현대적 의회 체계의 특징인 이것은, 11표 원칙에 대한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려는 시도로 이해하는 것이 가장 좋다. 세부 사항은 다르지만, 비례대표는 본질적으로 전국을 공통 선거구로 하는 투표를 수반한다. 일단 유권자들이 경합하는 정당, 후보자명부, 또는 동맹들의 목록들 가운데서 선택을 마치고 나면, 전국의회에서의 대표는 전국 집계에서 각 정당의 득표율에 따라 할당된다. 100석 의회에서라면, 투표의 25%를 얻은 정당은 25석을 얻고, 15%를 얻은 정당은 15석을 얻는 등의 방식이다. 보수적인 선거구에서 자유주의자라는 이유로 또는 자유주의적인 선거구에서 보수주의자라는 이유로 누구의 표든 버려지는 법이 없다. 유권자들은 10여개 이상의 정당들 중에서 선택을 하기 때문에, 어떤 사람의 투표든 두 악당들 중에 덜 나쁘다”(the lesser of two evils)는 것이 유일한 장점인 어떤 정당을 위해 던져짐으로써 모욕당하는 일이 없다.

비례대표제의 지속적 반대자인 뉴욕타임즈의 독자라면 누구든 증명할 수 있듯이, 그 체계는 문제 투성이다. 비례대표제는, 1850년대로부터 유래하는 양당제의 견고한 안정성(2000년 선거 논쟁 이후 그것은 더 이상 그렇게 안정되어 보이지 않는다)보다는, 동맹의 변화와 빈번한 정부 교체로 이어질 수 있는 군소정당들의 확산을 조장하는 경우가 많다. 비례대표는 과단성과 대담한 행동으로 이어지기보다는, 이태리 식의 정치적 마비와, <타임즈>가 대개 아직까지는 또 하나의 불안정한 연립정부라고 언급하는 것을 조정해 내기 위하여 정당 지도자들이 장관 목록, 청탁 그리고 이것저것을 왔다갔다 하며 주고받는 뒷방 거래로 이어질 수 있다.

모두 너무 사실이다. 그러나 자유 언론에 관해서도 동일한 말을 할 수 있다. 자유 언론 역시, 명확함보다는 혼란과 혼동을 낳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그렇게 될 때 답은 더 적은 자유가 아니라 더 많은 자유이며, 그것은 말하자면, 일어나서 다른 화자들에게 그들이 자유언론에 관해서 말하는 것은 모두 잘못이라고, 그들은 더 일관된 노선을 따라 논의를 조직할 필요가 있다고, 그들은 방해하지 말아야 한다 등등이라고 말할 자유인 것이다. 주요 정당들이 습관적으로 지저분한 뒷방 협상에 종사한다면 마찬가지로 해법은 그것들을 쫓아낼 하나의 정당을 조직하는 것이다. 해법은, 민주주의를 그 자체로부터 보호하는 것이 목적인 수많은 규칙들과 규정들로써 정치를 공격하기(belaboring)보다는, 민주주의가 더 합리적인 토대 위에서 스스로를 재조직할 수 있도록 민주주의를 해방하는 것이다.

자유주의자들이 비례대표의 큰 실패로 보는 것군소정당의 조장은 실제로 그것의 큰 강점이다. 민주당 같은 대형 정당은, 아무도 믿지 않고 사람들이 오로지 습관의 힘을 통해서만 출석하는, 국가가 후원하는 엄청난 제도인 영국국교회를 꼭 닮았다. 다른 한편으로 좀 더 민주적인 체계에서 생겨나는 일부 정당들은 적어도 무엇인가를 믿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그들은 흐릿함(fuzziness)보다는 명확함을 얻으려고 노력한다. 그들의 목표는 미세변화보다는 사회 전체를 변혁하는 것이다. 민주국가의 어떤 시민도 그런 정당제도에 대한 접근을 거부당한다면, 그는 자신의 투표의 완전한 가치를 거부당하는 것이다.

불행하게도 비례대표제를 그 적들로부터 방어하는 것으로는 충분하지 않다그것은 또한 그 친구들로부터도 방어되어야 한다. 미국에서 메릴랜드 주의 베세스다에 있는 투표와 민주주의 센터(the Center for Voting and Democracy) 등의 단체들은 비례대표제의 온건한 버전을, 더 큰 구조를 해치지 않으면서도 안전하게 주입될 수 있는 무해한 첨가물(add-on)로서 후원해 왔다. 그런 지지자들이 즐겨 지적하는 바에 따르면, 200011-12월 플로리다의 소란과 번거로움은 그 주의 25명의 선거인단 투표가 주 전체 총계 중 각 후보의 몫을 근거로 하여 나누어졌다면(물론 이는 고어에게 선거승리를 안겨줬을 것이다) 피할 수 있었다. 의회 선거에서 사표(wasted votes) 문제는 단순히 의회 의석을 주 전체 선거에서 각 정당의 몫을 근거로 분할함으로써 마찬가지로 줄일 수 있다. 캘리포니아의 60%가 민주당에 투표한다면, 민주당은 캘리포니아의 하원 52석의 60%를 얻어야 한다. 10%가 녹색당에 투표한다면 녹색당은 5석을 얻어야 한다 등등.

1조가 상원의원과 하원의원의 선거를 실시하는 시간, 장소 및 방식은 각 주에서 그 주입법부에 의해 정해져야 한다고 선언하고 있기 때문에, 그런 접근은 완벽하게 합헌적일 것이다. 그러나 적어도 두 가지 반대가 생겨난다. 하나는 미국처럼 경화된 체계에서는 이것처럼 매우 안전하고 분별력 있는 개혁들조차도 처음부터 실패할 것이라는 것이다. 그 체계는 변화에 매우 단련되어 있기 때문에 가장 온건한 변화조차도 용인할 수 없다. 민주당과 공화당 모두 자신들의 거점들(strongholds)을 유지하는데 필사적이므로, 어느 당도 어떤 식으로든 다른 당에 득이 될 수 있는 어떤 변화에도 동의하지 않으려 할 것이다. 대신 각 정당은 상대편이 먼저 움직이기를 즐겁게 기다릴 것이다. 물론 그런 일은 결코 없을 것이다.

또 다른 반대는 한 원(, branch)에 비례대표제를 도입하면서 다른 원에서의 훨씬 더 나쁜 권력남용에 관해서는 침묵하려는 어떤 시도도 우스꽝스러운 일이라는 것이다. 하원의 민주적 개혁은 환영할 일이지만, 하원의 민주적 부적절성은 아마도 세계에서 가장 대표성 없는 입법부일 상원의 민주적 부적절성에 비하면 무색해진다. 주의 동등대표제는 가장 인구가 많은 주와 가장 인구가 적은 주 사이의 비율이 단 11:1밖에 안 됐던 18세기 말에도 충분히 나쁜 것이었다. 그러나 그 비율이 69:1이고 더 커지고 있는 지금은 훨씬 더 나쁘다. 1810년에 미국 인구의 단 33%만을 대변하는 주에서 의원들을 꿰어맞춰서 상원의 다수를 구성할 수 있었던 데 반하여, 1970년이 되면 단 17%를 대변하는 의원들만으로도 상원의 다수가 구성될 수 있었다. 인구의 5%만을 대변하는 13개주들이 어떤 헌법 수정도 봉쇄할 수 있도록 함으로써, 5조의 헌법수정절차는 훨씬 더 반대표적이지만, 모든 주가 동의하지 않는 한 주별 동등대표원칙의 어떤 변경도 배제하는 제5조의 마지막 조항은 최악의 모욕(ultimate affront)이다.

이 정도 규모의 부당대표(misrepresentation)를 공격하지 않는 어떤 비례대표체계도 그 이름에 어울리지 않는다. 상원이 너무 다루기 힘들거나 너무 논쟁적이라는 이유로 상원에 관하여 어떻게 할지의 문제를 회피하기보다는, 상원이야말로 비례대표제 지지자들이 겨냥할 첫 번째 표적이 되어야 한다.

 

선거자금: 물론 재정적 부패는 11표 원칙을 침해한다. 그것은 부자들에게 그들의 실제 숫자보다 그들의 정치적 힘을 크게 증대시킬 수 있도록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미국에서 선거자금개혁은 그것이 헌법구조의 문제로부터 분리되어(divorced) 있는 한, 불가피하게 비효과적이라는 것이 증명되고 있다. 단순히 말하자면 그 이유는 그 구조가 복잡하면 할수록, 권력 중개인들, 영향력을 팔아 한몫 챙기는 이들(influence peddlers) 등등이 숨을 수 있는 수많은 장소들도 더 많아진다는 것이다. 입법이 통과까지 길고 힘든 과정을 따라야 할 때, 모든 우여곡절, 갈림길은 일부 소위원회 의장이나 과소평가된 소수당 원내총무가 헌금 또는 선거자금 기부의 형태로 공물(tribute)을 받아낼 기회이다. 모든 양원협의회(conference committee)는 일부 입법자들에게는, 원하는 일정한 변화가 청탁 또는 정치적 거래와 교환으로 이루어질 수 있도록 확실히 할 사업 기회이다. 지출 제한과 기타 재정 통제는 쓰임새가 있겠지만, 입법 과정 자체에서 우여곡절을 바로잡기 위한 노력이 기울여지지 않는 한 그것들은 쓸모없다.

그러나 기초자들은 입법의 단순화를 신뢰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들은 그들의 이상인 일종의 느리고 신중한 정치를 고무할 것이라고 믿고서, 장애물로 뒤덮인 과정을 신뢰했다. 대신 그것은 조지왕조 시대의 영국 이래로 필적할 데가 없는 수준의 합법화된 부패를 낳고 말았다. 미국이 양원제 입법부를 가진 유일한 나라는 아니지만, 두 원이 정치적 영향력의 측면에서 거의 동등한 유일한 나라이다. 미국은 또한 거의 동등한 대통령과 역시 동등한 사법부를 가진 유일한 나라이다. 나아가 미국은 여러 측면에서 연방정부와 동열에 있는 50개 주 가운데 49개 주에서 이 4두 구조를 복제할 만큼 충분히 미친 유일한 나라이다(네브라스카 주는 단원제 입법부를 가진 유일한 주이다).

불가능할 정도로 복잡한 그런 구조를 고려하면, 등록 정치 로비스트들의 수가 워싱턴에서뿐만 아니라 각 주의 주도들에서도 역시 매년 기록을 갱신하고 있다는 것이 과연 놀라운 일인가? 로비스트들은 정보와 영향력을 사고판다. 그들의 거래 품목은 입법 또는 규제 과정을 뚫고나갈 방법을 찾을 전문지식이다. 기부자가 얼마나 또 어떤 상황에서 기부할 수 있는지를 규율하는 새로운 규정이 등장할 때마다 복잡성은 또 한 겹 더해지며, 이것은 다시 로비스트 서비스에 대한 새로운 요구를 창출한다. 구조적 개혁을 상상할 수 없는 한, 그들의 숫자는 계속 늘어날 것이고 입법 서비스 시장은 계속 번창할 것이다.

 

감금 국가 되돌리기(Rolling back the carceral state): 11표는 모든 표가 동등하게 계산되어야 할 뿐만 아니라 모든 성인이 투표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미국은 1980년대 이래, 마약과의 전쟁, 점증하는 투옥률, 그리고 거의 주목받지 못한 중범죄자 및 중범죄 전과자의 투표권 박탈 정책의 결합으로 인한, 유권자 명부 걸러내기(winnowing)를 목도해 왔다. 그 결과는 부자들의 포식으로부터 자신을 방어할 필요가 가장 클 때 정치적 힘을 박탈당하는, 빈민과 비백인이 압도적인, 정치적 하위계급의 증가이다.

투표권 박탈의 규모는 극적이다. 200012월 기준으로, 현재 또는 과거에 투옥되었다는 이유로 투표권을 박탈당한 미국인의 수는 약 390만 명, 즉 성인 5명 중 1명꼴에 이르렀다. 흑인들 중 그 숫자는 140만 명으로 8명 중 1명꼴이지만, 전과자들에게 영구적으로 투표권을 박탈하는 7개 주에서는 그 비율이 4명당 1명꼴에 이른다. 통틀어서 다음 세대의 흑인 남성 10명 중 3명이 그런 정책의 결과로 일생동안 어느 시점에 투표권을 박탈당할 것으로 예상할 수 있다.

이것은 새로운 짐크로우법이며 이미 충격적인 결과를 보이고 있는, 인종정화(racial purification)의 한 형태이다. 중범전과자들의 투표권을 영구적으로 박탈하는 주들 중 하나인 플로리다에서는 40만 명 이상의 사람들이 유권자 명부에서 제거되었다. 대부분의 중범 전과자들이 빈민임을 고려하면, 그들 대부분은 2000년 대통령 선거에서 민주당에 투표했을 가능성이 크다. 그 중 작은 비율만 투표소에 갔다고 하더라도 그 결과는 플로리다에서 그리고 따라서 전국적으로 충분한 표차의 승리를 고어에게 안겨주었을 것이다.

투표권 없는 사람들 중 폭력 범죄로 유죄판결을 받았다는 이유로 투표권이 박탈된 것은 일부에 지나지 않았다. 1998년이 되면 주 및 연방 재소자들의 절반 이상, 합쳐서 100만 명의 사람들이 절도, 마약 기타 비폭력 범죄로 투옥되었는데, 이는 유럽연합의 전체 재소자 수의 3배를 넘는 숫자다. 그러나 그들은 중범죄로 인정되었기 때문에 대부분 투표권을 박탈당했다. 공화당 과두정의 관점에서 보면, 이런 정책들은 빈곤한 개인들을 희생시킬 뿐만 아니라 부자들이 더 큰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도록 하층 계급 일반에게서 그 정치적 영향력을 박탈하는 추가적 이점까지 갖는 것이었다. 민주적 개혁은 마약과의 전쟁, 대규모 구금 일반 그리고 그와 병행하는 대규모의 투표권 박탈을 겨냥하는 것을 의미한다.

 

효과적인 총기 통제: 11표는 또한 정치적 환경의 모든 측면들에 관하여 결정할 능력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하다. 그러나 통기통제는 헌법 하에서 인민의 무력함이 너무나 명백한 영역이다. 그 이유는 수정 제2조로 알려진 문제 많은 18세기 운문 투의 27 단어들과 관련되어 있다. 수정 제2조는 잘 규율된 민병대는 자유로운 주의 안보에 필수적이므로, 무기를 소장하고 휴대하는 인민의 권리는 침해될 수 없다.”고 선언하고 있다. 수십 년 동안 그 수정조항이 구 민병대의 계승자인 국방경비대에 입대할 권리를 보장했을 뿐이라고 주장했던 자유주의적 헌정주의자들은 1980년대 말 이후로는 180도 전향했다. 로렌스 트라이브와 아킬 리드 아마르 등 몇몇 사람들은 그런 권리가 더욱 엄격한 형태의 총기 통제로 가는 문을 반드시 닫아버리지는 않는다는 주장을 계속하고 있지만, 그들[자유주의적 헌정주의자들옮긴이]은 차례차례로 그 수정조항이 실제로 사적인 총기 소유의 권리를 보장한다는 견해로 생각을 바꾸었다.

그러나 그들은 실수했다. 지금 최고의 학자들이 인정하듯이 수정 제2조가 개인의 총기 휴대권을 보호한다면, 그러면 다음 두 가지 사실이 분명해진다. (1) 그 수정 조항의 보호는 사실상 자유 언론에 대한 수정 제1조의 상대적으로 모호한 보호보다 더 강하다(emphatic). 그리고 (2) 수정 제2조는 총기 통제를 완전히 배제하지는 않지만(수정 제1조가 자유 언론의 규제를 배제하지는 않는 것처럼), 규제는 수정조항이 자유로운 공화국의 초석이나 다름없는 것이라고 묘사하는 권리를 실질적으로 제한해서는 안 된다는 가정을 만들어내고 있다. 그러므로 세계의 나머지가 이해하는 바에 따른 총기통제는 불가능하다.

이것은 단순히 불합리한 것을 넘어선다. 강화된 총기통제를 선호하는 미국인의 비율이 60 내지 70% 사이에 있음을 일관되게 보여주는 여론조사를 보면, 그것은 거의 폭발 직전이다. 수정 제2조는 회피해야 할 장애물이 아니라 민주적 운동이 정면으로 대응해야 할 어떤 것이다. 그것에 도전하는 것은 전미총기협회(NRA)에 도전할 뿐만 아니라 폐지를 거의 불가능하게 만드는 지나치게 복잡한 헌법수정조항에 도전하는 하나의 방법이다. 수정 제2조가 권리장전들 중의 하나라는 점을 고려하면, 그것은 이 특정한 문서를 둘러싸고 있는 종교적 기운(aura) 역시 떨쳐버릴 하나의 방법이다. 결국 변경할 수 없는 것을 바꾸는 것보다 인민의 힘을 보여줄 더 좋은 방법이 있는가?

 

전쟁권의 통제: 미제국주의와 통제 불능의 미국 대통령 역시 점증하는 민주주의 위기의 결과이다. 미국의 인민주권 부인은 점점 더 다른 나라들의 주권과 전쟁하게 되는, 비대한 형태의 국민주권으로 이어졌다. 현대 시대에 민주주의가 국가적 경계를 찢어버리고 점점 더 국제주의적으로 되어왔다면, 미국식 헌정주의 역시 그 국가적 경계를 찢고 점점 더 초국가적으로(super-nationalist) 되었다. 등분제한정부(equal parts limited government), 인민의 지배에 반대되는 것으로서 법의 지배, 그리고 전적으로 자기잇속만 차리는(self-serving) 인권과 자유무역 관념으로 구성되는 미국적 방식”(American Way)은 미국이 다른 나라들에게 점점 더 단호하게 강요하려는 어떤 것이 되어버렸다. 많은 자유주의자들과 사회민주주의자들이 예견했듯이 이런 수출 전략, 1989-1991년 소비에트 붕괴 후에, 물러서기보다는 몇 배나 더 공격적으로 커졌다. 미국 대외정책의 민주화는 미국 사람들에게 더 책임성 있을 뿐만 아니라 세계의 사람들에게 더 책임성 있는 것으로 만든다는 것을 의미한다. 확실히 대통령의 전쟁권에 대한 의회의 통제는 [그것을 위한옮긴이]하나의 출발점이다.

 

헌법제정회의를 향하여? 이것이 과거의 흔적을 없애고 새롭게 출발하는 한 방법일 것이라고 종종 가정되지만, 진실은 그렇지 않다. 헌법제정회의의 문제는 그것이 소집되는 방법이다. 5조는 의회가 여러 주들의 3분의 2의 입법부의 신청으로헌법제정회의를 소집해야 한다고 규정하고는, 그 후 헌법제정회의의 권고 중 어느 하나라도 기존 헌법의 일부가 되려면 모든 주의 4분의 3이 그 권고를 승인해야 한다고 덧붙이고 있다. 그 결과는 1787년 필라델피아에서 그랬듯이 강력한 주 중심의 과정이고, 이 과정에서는 헌법제정회의 안에서의 투표 역시 각 주별로 이루어지게 될 것이다.

이보다 더 비민주적인 것이 있을 수 있나? 그런 전조 하에 형성되는 헌법제정회의라면, 그것은 11표를 영원히 파묻어버리는 그런 방식으로 주의 권리를 재활성화하려는 시도일 것이다. 알래스카부터 버몬트에 이르는 인구가 적은 주들의 농촌 백인들이 불균형적인 권력을 행사하는 반면, 캘리포니아, 뉴욕과 기타 거대 주들의 도시 거주자들과 교외거주자들이 행사할 권력은 더 작을 것이다. 사람들이 상상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교외의 조세 저항, 수정 제2조의 총기광들, 신남부연합 등등 그런 온실환경에서 번성할 반동적 요소들뿐인데, 이 모든 것은 정부를 인민에게 되돌려주는 것은 그것을 18세기의 뿌리로 되돌리는 것을 의미한다는 가정에 헌신한다. 현대적 민주주의 개혁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은 권력에서 배제될 것이다.

헌법제정회의가, 신자코뱅 정당이 연단을 차지하고 즉각적인 전국적 선거를 요구할 기회의 창을 제공하는 것이 가능할 수도 있다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런 요구는 명확하게, 새로운 어떤 것을 지지하는 것으로 보이는 정도로만 성공할 것이다. 민주적 원리에 입각하여 조직되는 헌법제정회의만이 민주주의를 심화할 수 있다.

 

현대적인 민주적 절차가 순항하도록 하기 위해 무엇이 요구되는가? 대중의 정치적 동원, 분명히 필요하다. 그러나 우리가 역사로부터 배워야 하는 한 가지는, 정치적 동원은 그 길을 터줄 지적 동원 없이는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철학자들(philosophes)이 귀족적 특권 개념을 파멸시키지 않았다면 프랑스혁명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고, 무수히 많은 저술가들, 기자들 기타 사람들이 비슷하게 인종주의적 이데올로기 등의 전 체계를 겨냥하지 않았다면 1950년대와 60년대의 민권혁명은 결코 발생하지 못했을 것이다. 헌법을 왕좌에서 끌어내리기 위한 어떤 운동도 이에 견줄만한 지적 노력, 급진적이고 포괄적이며, 단순히 이런 저런 특징을 겨냥하는 것이 아니라 전체 정치 구조가 의지하고 있는 중심적 사상들을 겨냥하는 지적 노력을 요구한다. 역사가들과 기타 정치분석가들이 미국이 개국 이래 변화해 온 모든 방식들에 관심을 집중해 왔다는 것은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이 모든 시간들이 지난 후 더욱 긴요해 보이는 것은 미국이 변하지 않고 남아있는 모든 방식들을 지적하는 것이다. 단연코 지구에서 가장 오래된 헌법체계로서 미국은 어떻게든 현대 세계로 살아남아 연명해온 산업 이전 시대의 유물이다. 사실, 그 법관들은 말총가발을 쓰지 않고, 하원의장이 구식의 은장버클이 달린 신발을 신고 검정 실크 가운을 입은 채 다니지도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견제와 균형에 대해서 보내는 숭배(fetish)에서, 집중된 정치권력에 대한 미신적인 두려움에서, 그리고 그것이 헌법기초자들에 대해 보이는 터무니없는 조상숭배(filiopietism)에서, 그 전근대적인 기원들은 너무나 분명하다. 그것은 선진산업세계에서 가장 보수성이 강한 사회이며, 자유를 유지하는 방법은 근대 세계에 등을 돌리고 단호하게 과거에 헌신하는 것이라는 신념에 전념하는 사회이다. 현대 민주주의 운동은, 왕겨에서 밀을 분리해내려고 하고 더 퇴행적인 것으로부터 더 진보적인 측면들을 분리해내려고 노력하기보다는, 미국의 헌법적 전통 전체가 소진되었고 바로 그 때문에 점점 더 권위주의적으로 되는 함의들만 갖는 사상들의 원천이 될 수밖에 없다는 점을 지적해야 한다. 그런 전통으로부터 나오는 어떤 사상도 무죄가 증명되지 않는 한 유죄로 추정되어야 한다. 그런 체계를 재생시킬 유일한 방법은 내부로부터가 아니라, 외부로부터, 즉 미국적 원리와 방법론들에는 명백히 반대되는 사회주의와 민주주의의 국제적 조류를 활용함으로써 오는 것이다.

특별한 미국적 사명에 대한 신념은 뉴잉글랜드 사람들과 버지니아 사람들을, 연방주의자와 반연방주의자를, 자유주의자와 보수주의자를 통합했던 몇 가지 것들 가운데 하나였다. 그것은 기껏해야 국왕과 주교들 및 농장주들을 전복하고 이 지구에서 진정한 기독교 공동체(Christian commonwealth)를 수립하려는 청교도들과 노예폐지론자들의 흔들림없는 확신을 반영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최악의 경우에 그것은 해외에서 제국주의적 모험이나 국내에서 억압을 행할 때 하는 위선적인 말의 또 다른 본보기이다. 예컨대 어떤 코네티컷 성직자의 딸이자 다른 성직자의 아내이며 그 과저에서 <톰 아저씨의 오두막>의 저자이기도 했던 해리어 비처 스토우는 미국인들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미국인들은 지구 전역에서 자유와 종교의 빛을 떠맡고, 전쟁이 끝나고 전 세계가 악의 속박에서 해방되어 신의 빛 속에서 기뻐하게 될 위대한 새천년의 날을 도래케 할 사명을 부여받았다.

 

 

그러나 이와는 달리, 우드로우 윌슨은 미국의 제1차 세계대전 참전에 즈음하여 다음과 같이 선언했다. “우리는 세계에 자유와 정의를 줌으로써 세계를 구원하러 왔다.” 그러나 한 유력한 미국 학자가 1960년대 중반에 미국의 기초자들의 영광스런 지혜에 대한 또 하나의 찬사를 보냈을 때, 그는 제국들이 항상 하는, 그런 종류의 자기 잇속만 차리는 동어반복을 행하고 있었다.

 

[]들 미국 계몽주의의 지도적인 대표자들은 근대 역사에서 드물게 마주치게 되는 일군의 비범한 사람들이었다[]과전서(Encyclopédie)도 살롱들도, 사회주의자들, 자유주의적 개혁가들도, [프랑스] 혁명의 자코뱅 및 후기자코뱅 국면에서 단기간 집권하게 된 민주주의자들과 광적인 급진주의자들도, 지속가능한 형태의 정부를 고안하고 책임있는 권력을 행사할 수 있는 정치인들을 산출하지는 못했다.

 

달리 말하자면, 미국이 1960년대 중반에 그토록 강했던 것은 그 기초자들(Founders)이 매우 선견지명이 있었기 때문인 반면, 유럽인들은 그 기초자들(founders)(말할 필요도 없이 소문자로 쓰였졌다)이 그렇지 못했기 때문에 아직도 전쟁에서 완전히 회복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미국의 힘은 그 위대함의 증거인 반면 그 위대함은 그 힘의 이유였다.

3-40년 후 미국이 점점 더 비민주적인 방향으로 질주하면서, 이런 류의 정신적 습관들은, 합리적인 정치분석과 구조개혁의 가능성조차도 단념했던 정치문화가 만들어낸 신경성 안면경련이나 다름없는 것으로 타락해 왔다. 알 고어가 20008월 민주당 전당대회에서 다음과 같이 선언했을 때, 그는 단지 보통의 애국적 빈말(cant)을 하고 있었을 뿐이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문제가 있습니다. 그러나 미국은 지금까지 창조된 최선의 나라이고 언제나처럼 여전히 인류의 희망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모두 불완전합니다. 그러나 미국인으로서 우리는 더 완벽한 연방을 건설하는 특권과 도전을 공유합니다.우리가 우리 스스로에게 망설임 없이, 우리가 올바른 일을 할 수 있고 그 때문에 더 나을 수 있다고 믿도록 허용한다면, 그러면 최고의 미국이 우리 미국이 될 것입니다.

 

그러나 그 목표는 한 정치인이 그런 헛소리를 지껄이게 되면 청중들이 연속적인 조소의 물결로 분출하게 될 수밖에 없는, 그런 새로운 정치적 틀을 창조하는 것이어야 한다.

미국인들이 반성 없는 삶을 영위해 왔다고 말하는 것은 아주 정확하지는 않다. 오히려 자기점검과 심지어 자기비판(self-laceration) 조차도 흔한 미국적 주제들이었다. 그러나 사람들이 근본적으로 기독교적인 문화에 기대하는 것처럼 미국인들이 이따금 수행했던 자기비판은 구약 류의 것, 즉 선택된 사람들이 신의 믿음에 부합하게 살지 못한 데 대해 스스로를 벌할 때 생겨나는 류의 것이었다. 다른 한편으로 미국인들이 결코 해본 적이 없는 일은, 선택된 사람들이나 신의 믿음과 같은 개념들 자체를 가져가서 그것들을 무자비한 조사를 받게 하는 것이다. 그들은 신성 개념을 왕좌에서 끌어내리려고 해 본 적이 없었고 그 결과 그 대신 그것을 더 강화하는 것으로 끝났다. 소위 18세기의 미국적 계몽주의는 종교를 더 굳건한 지적 기반 위에 두기 위하여 고안된 시시한 사건(pallid affair)이었다. 그러나 미국이 필요로 하는 것은 신념을 어떤 다른 형태로 대체하기보다는 신념을 몰아내는 것을 목표로 하는 진짜(real) 계몽주의이다.

그런 운동이 없기 때문에, 전망은 암울하다. 2000년 선거가 있던 해의 낭패에 관하여 한 상원의원은, “우리는 모두 우리 정부와 헌법에 관하여 무언가를 배웠다. 그것들은 우리가 상상할 수 있었던 것보다 더 허약하다.”고 말했다. 그 결과 민주당과 공화당 모두가 보인 공식적 반응은, 미묘한 구조가 두 번 다시 시험에 붙여지지 않기를 희망하면서 어느 때보다도 더 살살 걷는 것이었다.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뉴욕타임즈>의 중견 워싱턴 통신원이던 R.W.애플이, 공화당의 반란에 대하여 오래도록 남아있는 언짢음에 대한 답으로 썼던 1면 논평에서 분명히 드러났다.

 

그러나 부시 씨가 대통령집무실에서 연설을 하고, 공군1호기에 탑승하며, 가는 곳마다 팡파레”(Ruffles and Flourishes)대통령 찬가”(Hail to the Chief)가 수반되는 그림들에 국민이 익숙해져 감에 따라서, 그 논쟁은 더 부드러워질 것이다. 텔레비전 시대에 그런 이미지들은 다른 무엇보다도 더, 지도자에게 권위와 정당성의 외피를 부여한다.

 

 

이것은, 민주적 정당성의 외관이 곧 선거사기, 인종적 위협, 그리고 정치깡패(bullyboy) 전술의 현실을 밀어낼 것이라는 강력한 희망이 아니면 무엇이겠는가? 안전해지기 위해서는, 미국 정치에서 그것들이 남겨놓은 얼마 안 되는 실체마저도 고갈되어야 한다. 그렇게 된다면 경제적 양극화는 가속화될 것이고 우익의 공격성은 강화될 것이며 그리하여 미국은 세계의 의견을 어느 때보다 더 경멸하게 될 것이다이것이 정확히 세계가 부시 행정부의 첫 몇 개월 만에 목도했던 것이다. 미국적 예외주의라는 낡은 이론은 불명예를 벗겠지만, 빈정대는 투로(in a backhanded fashion) 그렇게 될 것이다. 냉전기 동안에는 미국이 예외적으로 번성하고 안정적으로 보였지만 이제 미국은 예외적으로 비민주적이고, 정치발전의 측면에서 예외적으로 동결되어 있으며, 사회정책의 측면에서 예외적으로 징벌적임을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미국이 지구의 어느 맨 끝에 있는 무명의 알려지지 않은(obscure) 나라라면, 그러려니 할 수도 있을 것이다(it would be one thing). 그러나 미국은 지구의 패권국(hegemon)이고, 이 점은 미국의 문제가 동시에 세계의 문제임을 의미한다.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공지 회원연구노트 이용 안내 김영남 2021.06.09 127
» [번역] 사법쿠데타(Velvet Coup) (6, 완결) file 김종서 2024.02.23 18
44 [번역] 사법쿠데타(Velvet Coup) (5) file 김종서 2024.02.23 17
43 [번역] 사법쿠데타(Velvet Coup) (4) file 김종서 2024.02.22 16
42 [번역] 사법쿠데타(Velvet Coup) (3) file 김종서 2024.02.20 16
41 [번역] 사법쿠데타(Velvet Coup) (2) file 김종서 2024.02.19 19
40 [번역] 사법쿠데타(Velvet Coup) (1) file 김종서 2024.02.18 28
39 정치인의 노조혐오표현 file 김종서 2024.02.07 38
38 [번역] 정부 예산 통해 인권 실현하기(6) - 전체통합본 file 김종서 2022.12.22 73
37 [번역] 정부 예산 통해 인권 실현하기 (5)-완결. file 김종서 2022.12.22 46
36 [번역] 정부 예산 통해 인권 실현하기 (4) file kjsminju 2022.12.21 42
35 [번역] 정부 예산 통해 인권 실현하기 (3) file kjsminju 2022.12.21 46
34 [번역] 정부 예산 통해 인권 실현하기 (2) file kjsminju 2022.12.20 44
33 [번역] 정부 예산 통해 인권 실현하기 (1) file kjsminju 2022.12.20 76
32 【번역】경제적, 사회적 및 문화적 권리 신장・옹호하기(8) : 제12장/보론/부록(완결) file kjsminju 2022.08.27 589
31 【번역】경제적, 사회적 및 문화적 권리 신장・옹호하기(7) : 제11장 file kjsminju 2022.08.23 81
30 【번역】경제적, 사회적 및 문화적 권리 신장・옹호하기: 교본(6) - 제10장 file kjsminju 2022.08.16 74
29 [번역] 경제적 사회적 문화적 권리 신장 옹호하기(5) - 제9장 file kjsminju 2022.08.13 72
28 [번역] 경제적 사회적 문화적 권리 신장 옹호하기(4) - 제7장 및 제8장 file kjsminju 2022.08.10 72
27 [번역] 경제적 사회적 문화적 권리 신장옹호하기(3) 제2장-제6장 file kjsminju 2022.08.08 80
26 [번역] 경제적 사회적 문화적 권리 신장옹호하기(2) - 머리말 + 제1장 file kjsminju 2022.08.04 89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