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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법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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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호 권두언: '국가없는 사회'의 헌법 (오동석)

이계수 2016.07.05 17:58 조회 수 : 194

오동석, "'국가없는 사회'의 헌법", 민주법학 제61호 (2016.7), 5-9쪽.


국가 없는 사회(stateless societies)’는 국가를 결여한 다양한 형태의 사회를 말한다. 이탈리아 아나키스트 말라테스타(Errico Malatesta)At the Café: Conversation on Anarchism(2005)을 번역한 책(하승우 옮김, 국가 없는 사회: 카페에서 만난 어느 아나키스트와의 대화, 포도밭출판사, 2014)의 제목이기도 하다.

국가 없는 사회의 헌법은 형용모순처럼 보인다. 헌법교과서들은 헌법을 국가의 기본법으로 정의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꼭 아나키스트가 아니라도 언뜻 국가 없는 사회의 가능성을 말한 경우도 있다.

김종서는 현재의 사회를 살아가는 공동체의 구성원으로서의 시민또는 인민이라는 개념을 불러냈다(“기조발제: ‘대한민국인가 한국인가?”, 민주법학 제58, 2015. 7, 24). 그가 제안한 헌법배심제는 국가제도로서의 헌법재판제도를 부정한다. 유사한 주장은 진보신당(“법치의 완성, 정의가 숨 쉬는 사회를!”, 진보신당 제19대 총선 사법개혁 공약, 2012. 3. 16)과 이재승(“헌법재판소를 어떻게 혁신할까?”, 인권연대 발자국통신, 2013. 1. 9)도 제기했다.

이재승은 전쟁(직접)민주주의의 제도로서 민병대를 거론했다. 민병대는 대표자들의 결정에 복종하는 군인이 아니라 전쟁 여부를 직접 결정하는 주권적인 시민의 군대다. “침략전쟁을 폐지하고 민중을 전쟁의 고역으로부터 해방한다. “석유, 주석, 가스, 돈벌이를 위하여 무모한 전쟁을 시도하지는 않기 때문이다(“군인의 전쟁거부권”, 민주법학 제43, 2010. 7, 215, 216).

국가 부재와 국가 폭력 또한 형용모순처럼 보인다. 그러나 전자는 환상이거나 이데올로기고, 후자는 현실이다. 우리는 과연 현실적인가? 20대 국회의원선거 결과는 변화의 계기가 될 수 있을까? 개헌 논의가 변화의 물꼬를 틀 수 있을까? 국민들은 박근혜 정부와 그 친위정치세력을 제대로 심판한 것일까? 1야당과 어부지리 제3당은 정당한 대가를 받은 건가? 국가는 백남기 농민을 물대포로 저격했다. 국가는 천문학적 액수의 구상권 청구로 강정마을 주민들의 삶을 파괴하려 한다. 국가는 노동자들이, 여성들이, 청소년들이, 노인들이, 그냥 사람들이 죽어가도록 방치하고 있다. 서로가 서로를 죽이는 폭력 상황을 조장함으로써 국가를 향하는 저항을 오도하고 있다. 국가의 폭력이, 자본주의의 폭력이, 권위주의의 폭력이 사회의 곳곳에서 저질러지고 있다.

우리가 원하는 국가는 없었다. 지금도 없고, 앞으로도 오지 않을 것이다. 국가에는 오직 폭력만 남았다. 선거혁명은 국가만큼 환상이고 이데올로기다. 국가 없는 사회까지 염두에 두고 다시 헌법체제를 구성해야 한다. 이제 더 이상 국가와 자본의 폭력을 참을 수 없기 때문이다. 과연 그런지 다시 확인해야 했다. 이번 호의 특집을 <폭력사회와 법치주의>로 삼은 까닭이다.

이재승의 글은 정치인류학이 제공한 대칭성의 개념으로 법치주의와 폭력 그리고 정치의 관계를 해명한다. 국가는 정의로운 질서를 구현하는 과제를 내세우며 폭력을 독점하지만, 현실에서 국가는 오히려 더욱 극단적인 폭력을 법과 질서의 이름으로 남용한다. 대항폭력과 예방적 폭력의 악순환을 불러일으킨다. 이재승은 지배적인 법담론인 법치를 인민주권을 함축한 평등참여 정치로까지 확장한다. 기성질서를 공고화하는 경향과 그것을 해체하는 민주제적 경향을 균형 잡는 복논리로 이해할 수도 있다. 인간은 본성상 관계적 대칭성을 추구하고 과도한 비대칭성을 전복하려는 대칭적 존재다. 기성제도를 인간의 열망에 부합하게 지속적으로 쇄신하는 비판적 제도주의를 대칭성 법학의 예로 제시한다.

엄순영의 글은 사법적 폭력개념을 다룬다. 좁은 의미에서 사법적 폭력은 법원에 의한 폭력이다. 사법적 폭력은 실패한 법치주의의 현상이다. 법치주의의 회복을 위해 사법적 폭력에 대한 시민들의 효율적인 통제가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법해석의 특권을 법조인에게 부여해 온 법제도를 공박하고, 법해석의 주체를 주권자로 회복하는 구체적인 제도들을 고안할 것을 주문한다.

김한균의 글은 부제에서 드러나듯 행정적 폭력, 그 중에서도 특히 경찰 공권력의 폭력적 남용 문제를 다룬다. 법치주의와 민주주의를 회복하고 다시 진전시키기 위해서는 공권력이 흉포해지는 구체적 지점에서부터 국가권력기관에 대한 민주적법치국가적 통제를 재강화해 나가야 한다고 역설한다.

송기춘의 글은 지배를 위한 폭력이 일상화한 한국 사회에서 국회가 법률의 취지나 내용을 위반하는 시행령에 대해서 속수무책임을 비판한다. 국회는 행정부의 폭력 행사를 방관할 뿐이다. 국회는 힘의 불균형을 방치함으로써 강자의 폭력행사를 법적으로 정당화하는 구실을 할 뿐이다. 구체적인 법률의 예를 들어 폭력에 대한 권력의 주도권을 확보할 수 있는 해결방안을 모색한다.

첫 번째 일반논문인 이계수의 글은 주제 면에서 특집논문들과 밀접하게 연결된다. 마사 누스바움의 <시적 정의>를 글감으로 삼고 있지만 폭력사회가 시적 정의’, 문학적 재판관만으로 해소될 수 없음을 역설한다. 자로 잰 듯한 기계적 판결, 노동자도시빈민의 궁핍과 빈곤에 공감하지 못하는 냉혹한 판사들이 지배하는 세상에서 약자에 공감하는 재판관이란 얼마나 달콤한가. 그러나 우리는 어떤 경우에도 위로부터 내려오는 정의가 아니라 대중 스스로의 힘으로 만들어가는 정치의 마술적(=문학적)’ 가능성을 신뢰해야 한다.

윤현식의 글은 양당제가 자리 잡고 있는 한국의 정치상황에서 군소정당의 의회진출이 매우 어려운 상황에 있음을 지적한다. ‘군소정당에서 활동하는 그로서는 절감하는 문제일 것이다. 공직선거법은 구조적으로 기득권 보호에 유리하며, 군소정당과 신진 정치인의 등장을 방해하고 있다. 통상의 정치활동보다 더욱 다양하고 활발해야 할 선거운동은 일거수일투족까지 규제하는 통에 화석화한다. 반면 법은 선관위나 법원에게 고무줄 같은 해석의 여지를 남기고 있고, 선관위와 법원의 해석은 기득권을 가진 거대 정당과 현역 정치인에게 유리하게 작동한다. 재정과 인력이 열악한 군소정당의 후보들이 기댈 수 있는 발로 뛰는 선거는 가능하지 않다. 기탁금의 장벽은 높기만 하다. 헌법체제를 혁신하는 정도의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

민주법학에 처음으로 데뷔하는 젊은 연구자 김학진의 글은 일본 제국헌법체제를 비판적으로 검토한다. 폭력을 독점적으로 관리하는 군에 대한 통제는 근대국가의 중요한 과제다. 헌법에서 군을 중요하게 다뤄야 함에도 헌법()은 빈약하다. 군에 대한 헌법적인 통제의 의미나 이와 관련된 역사적인 맥락 등을 고려하지 않고 용어만을 나열하고 있다. 일본제국의 헌법은 군에 대한 헌법적민주적인 통제에 실패했다. 그 결과는 군국주의였다.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

민주법학 운동의 해외동향을 살펴볼 수 있는 자료를 이번 호부터 게재한다는 소식을 전할 수 있어 기쁘다. 각국의 관련 사회 현안 보도, 사건과 판결례, 학술단체와 법률가 조직의 사회운동과 회합, 연구서 등을 정리한 내용이 이 새로운 지면에 실리게 될 것인데 점차 더욱더 충실한 보고가 될 수 있도록 노력할 것임을 약속드린다.

이번 호의 글에 공통점이 있다면, 국가의 폭력을 고발하고 그것을 통제하는 것을 넘어 인민대중이 직접 권력을 형성하는 민주주의 제도를 고민하고 있다는 점이다. 정치권이 군불을 지피고 있는 개헌에 대해 민주법학연구자로서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할지도 생각하게 한다. 현재 개헌 논의는 권력자들이 자신들만의 나눠먹기를 위해 구태의연한 서구의 역사적 유물을 베끼거나 조잡하게 조립하고자 할 뿐이다. 변혁의 징검다리를 찾아야 한다. 그것은 복잡한 고차방정식이다. 민주법학의 헌법개정안을 마련해 볼 일이다. 핵심적인 법률의 개정안까지 포함한 것이어야 한다.

국가 없는 사회에서 아나키스트 조르조는 이렇게 말한다.

 

인간의 의지보다 우월한 그 도덕이란 뭘까요? 누가 그걸 정하나요? 어디서 그 도덕이 내려오나요? 도덕은 시간과 지역, 계급, 환경에 따라 변합니다. 당신의 도덕은 준법, 즉 당신 계급이 누리는 특권에 따르라고 명령하는 것이고, 우리의 도덕은 억압에 맞서 반란을 일으키고 모든 이의 행복을 찾으라고 요구하지요. 우리에게 모든 도덕적인 규범들은 사람들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105)

내가 말하는 규범은 연대의 정신에 바탕을 두고 모든 이가 공통의 이해관계를 가져야만 한다는 점을 고려한 실천적인 관습이니까요. 이 규범은 소수가 만들어서 모든 사람에게 힘으로 강요하는 법과 다르답니다. 우리는 법이 아니라 자유로운 협약을 원해요.” (81)

 

민주주의법학연구회가 아나키스트 단체는 아니다. 그러나 인민이 스스로 힘을 기르고, 생활의 수단을 가지고, 사회를 구성하자는 점에서는 함께 할 것이다. 어쨌든 우리가 꿈꾸는 미래에서 지금 이대로의 국가는 설 자리가 없다.

이번 호에서도 이계수 편집위원장과 박지현 부위원장, 최관호, 조우영, 김학진 편집실무위원이 고생했다. 응원의 말 한마디 전하지 못한 미안함까지 담아 감사의 뜻을 전한다. 감사의 전화 한 통화 드리지 못한 죄송함까지 담아 관악사의 신재일 사장님께도 감사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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