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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법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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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9호 [권두언] 체제유지적 폭력이라! (이재승)

김종서 2015.11.05 11:52 조회 수 : 808

이재승, "[권두언] 체제유지적 폭력이라!", 민주법학 제59호, 2015.11, 5-10쪽.


권두언

 

체제유지적 폭력이라!

 

이재승

민주주의법학연구회 회장, 건국대 교수

jslee@konkuk.ac.kr

 

벤야민은 <폭력비판을 위해서>라는 글에서 체제유지적 폭력과 체제파괴적인 폭력을 구분한다. 전자는 지배적인 정치세력들이 기성체제를 수호하기 위해 행사하는 폭력이라면, 후자는 저항적 정치세력이 기성체제를 타도하기 위해 행사하는 폭력을 의미한다. 그런데 현재 한국사회는 공수 교체로 인해 오히려 지배세력은 체제파괴적인 폭력을 끝도 없이 행사하고 떠밀려나가는 을들체제유지적 폭력을 행사해야 할 지경이다. 집권세력의 불온한 민주주의에 맞서 형식적이고 고전적 민주주의를 옹호해야 할 판이다. 지난 2000년대에 비축했던 자유와 개혁의 알량한 자산들은 이제 대규모로 실종되었기에 추억으로 접어야 하겠다.

지금도 민주주의와 개혁의 지반은 야금야금 사라져 간다. 일용할 빵이 매일 줄어들고 있다. 심각한 부정의에 대해서만 시민이 불복종할 수 있다는 롤스의 교리는 거의 정의로운법철학시간에만 그럴듯하지 현실에서는 완전히 빗나간다. 세상에는 약자들의 삶을 비웃으며 야금야금갉아먹은 부정의가 만연해 있기 때문이다. 민주주의자라면 불복종과 직접행동은 극단적인 상황뿐만 아니라 일상적인 상황에서도 필요하다고 깨달아야 한다. 바로 오늘 행동하지 않으면 그 맥락에서 우리는 패배하고 그 영토를 잃은 다음, 또 다른 맥락에서 영토를 내줘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탁월한 민주주의자들은 역사를 저항의 관점에서만 올바로 이해하였다. 민주주의의 역사만이 비루한 인생사를 필연과 당위의 세계로 안내하기 때문이다.

유스티니아누스 법전에는 모든 사람이 관련된 일은 모두가 동의해야 한다’(quod omnes tangit, ab omnibus approbetur)는 법언이 있다. 중세사가 타이어니(Tierney)는 이 슬로건이 중세에서 근세로의 이행기에 교회의 공의회운동뿐만 아니라 세속정치에서도 영감을 불어넣었다고 지적한다. 그것은, 시민들은 폭력을 배제하고 함께 토론하고 함께 결정해야 한다는 공화주의 정치원리가 되었다. 살아있는 정치가 함께 토론하고 결정하는 공통의 영역을 확대시킨다면, 썩은 정치는 반대로 이러한 영역을 지속적으로 파괴하고 위축시킨다. 지금 민주정치를 배신하는 정치계급의 퇴행으로서, 썩은 정치를 신물이 나도록 지켜본다. 공적인 원칙들은 권력의 역주행에 의해 도처에서 이미 유린되었다. 어제는 통진당 해산결정을 통해 민주사회의 시민으로서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안았고, 오늘은 역사교과서의 국정화 문제로 치욕을 당한다.

나라는 점점 나라가 아닌 것으로 향하고, 정치는 점점 반정치에 이른다. 반정치는 시민들이 함께 토론하고 함께 결정하는 원칙을 침식하고, 공적 영역을 끝없이 위축시킨다. 반정치세력은 국가권력으로 항상 국정화, 단일화, 획일화, 통일화, 초토화를 추구한다. 그러나 국가는 동일규격의 벽돌들로 지어진 아파트가 아니다. 모나거나 둥글거나 크거나 작거나 온갖 서로 다른 형태의 돌들로 서로를 이고 버티며 가까스로 서는 건축물이다. 이질적인 정파와 정당, 서로 다른 세계관을 지닌 사람들이 공익을 향해 경합하고 투쟁하고 함께 결정하는 장이다. 2350년 전에 이미 아리스토텔레스는 플라톤에 맞서 정치적 세계의 진리를 완전하게 말했던 것이다. 단세포 정치세력이여, 들어라!

 

국가는 본성적으로 하나의 복합체이다. 국가는 복합체에서 점점 더 통일체가 되어 갈수록 국가 대신 가정이 되고, 가정 대신 개인이 될 것이다. 가정은 국가보다 더 통일체이고, 개인은 가정보다 더 통일체라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국가를 그런 통일체로 만들 수 있다 하더라도 그렇게 해서는 안 된다. 그럴 경우 국가는 파괴되고 말 것이기 때문이다. 국가는 다수의 사람들로 구성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여러 종류의 사람들로 구성되어 있다. 서로 같은 사람들로는 국가가 만들어질 수 없기 때문이다. 국가는 군사동맹과는 다르다. 국가는 부족과도 다르다. 통일체를 구성할 요소들은 서로 종류가 달라야 한다.”

(아리스토텔레스, <정치학>, 1261a)

이번 민주법학은 특집 두 편을 포함해서 총 7편의 논문 및 기타 자료를 게재하였다. 게재논문 편수가 생각보다 적어 연구회의 회장으로서 회원뿐만 아니라 강호의 신진기예들께 민주적 지향성을 담은 법적 정치적 주제들을 기탄없이 투고해 주시기를 당부 드린다.

특집 주제는 <긴급조치와 사법반동>으로 잡았다. 개혁국면에서 유신체제의 상처를 치유하고 법리를 모색하던 사법부가 최근 합법성 신화에 빠져서 다시 국가책임을 부정하고 나섰다. 이러한 상황에서 한상희와 문병효는 긴급조치 판결과 그 법적 처리에 대한 고민을 풀어놓았다. 둘은 지난 8월 유신시대 긴급조치 피해자들을 위한 학술행사에서 발제자로 나서 이미 좋은 호응을 얻었다. 이 시대의 투쟁하는 헌법학자 한상희는 대법원이 최근 판결(대법원 2015. 3. 26. 선고 201248824 판결)을 통해 한국사회가 그 동안 달성한 민주화의 성과들을 실질적으로 무력화시켰다고 진단한다. 이 판결은 유신체제하에서의 국가폭력을 고도의 정치적 행위라며 면죄부를 주면서 과거의 권위주의체제로 회귀하고 있다고 성토한다. 문병효도 긴급조치와 관련된 사건들에 대한 최근의 판결들을 검토하였다. 대법원은 긴급조치가 통치행위라는 이유로 대통령의 법적 책임을 부인하고, 나아가 긴급조치가 위헌결정으로 소급하여 무효가 된 경우에도 위헌선언 전에 그 긴급조치에 의하여 수사를 진행하고 공소를 제기한 수사기관의 직무행위나 유죄를 선고한 법관의 재판이 공무원의 고의 또는 과실에 의한 불법행위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시하였다. 이러한 판결경향을 돌려세우기 위해 문병효는 국가책임의 입론을 다각도로 모색하였는데, 그의 시도가 향후 국가책임에 관한 재판이나 특별법의 제정에 초석이 되리라 평가한다.

이재승은 오스틴의 언어행위이론에 기초하여 사죄의 법적 의미와 사회언어적 의미를 추적하였다. 한번 사죄하면 충분하다는 상식을 거부하고, 말로만 사죄해서는 충분하지 않다는 상식을 보강하였다. 사죄는 일방적이거나 독백적인 것이 아니라 관계적이고 대화적이다. 그는 경미한 과오에 대한 사죄와 심각한 불법에 대한 사죄를 구분하고 각기 다른 해법을 제시한다. 경미한 과오에 대한 사죄의 목표는 감정의 전달과 공감이므로 사죄의 표명만으로도 사죄행위가 완성되는 반면, 국가폭력에 대한 국가의 사죄는 피해자에게 사죄의 감정을 전달하고, 역사적 진실과 책임을 인정하고, 후속조치까지 실행해야 하기 때문에 사죄의 표명만으로 그 행위가 종료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한마디로 사죄는 언어행위이지만 일정한 사회적 맥락과 규칙을 준수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주장한다.

김은진은 특이한 민주법학자이다. 그가 민주법학자로서는 드물게 농업문제에 천착해왔기 때문에 모두가 주목했으면 좋겠다. 김은진은 이번 논문에서 식량주권의 관점에서 한국농업의 위기를 검토하고 법제도 개선방안을 모색한다. 세계적으로 식량주권운동이 활발해지고 있다. 식량주권운동은 식량생산의 주체로서의 농민과 식량생산 그 자체인 농업에 대해 그 가치를 인정하고 존중할 것을 요구한다. 더 나아가 식량을 누가 어떻게 생산하고 어떻게 먹을 것인가의 문제를 국민들이 스스로 선택할 권리, 즉 주권으로서 인정해주기를 요구한다. 많은 나라들이 이러한 운동에 영향을 받아 헌법이나 개별법, 또는 조례로 법제화하고 있는데, 우리나라는 농업을 식량을 생산하는 산업 정도로 평가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이제 이러한 근시안에서 벗어나 식량주권을 실현할 수 있는 법제화를 제안하고 있다.

박승룡은 민주주의 관점에서 경제법의 입법과정과 입법내용을 합리적으로 통제하는 방안을 마련하고자 시도하였다. 최근 세월호법시행령에서 법률적 논쟁이 되었던 행정입법의 통제문제가 그의 문제의식에 이어지고 있다. 입법목적의 실현을 위해 구체적인 사항을 위임받은 시행령과 시행규칙의 내용이 모법의 입법목적을 훼손한다면 민주주의에 대한 왜곡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더구나 경제법 중에서 특정 산업이나 기업을 지원하여 시장을 형성하려는 산업정책법률의 경우 국가의 지원만 규정할 뿐, 그로 인한 사회적 비용부담을 어떻게 회복할 것인지 그리고 지원받은 산업이나 기업이 제공해야 할 사회적 이익에 대해서 크게 주의를 기울이지 않고 있다는 사실도 비용부담과 수익배분의 불균형이라는 측면에서 민주주의에 적합하지 않다고 지적한다. 그리하여 박승룡은 다양한 경제법상의 통제장치를 활용하여 논의를 전개하고 있다. 그가 비교적 오랜만에 훌륭한 글을 민주법학에 투고해주어 반갑다.

오동석은 학교를 민주주의의 공간으로서 어떻게 재구성해야 하는가 하는 정치적 과제를 던졌던, 2008년 부활된 일제고사에 대한 거부를 불복종의 관점에서 검토하였다. 그에 따르면 일제고사 거부는 국가의 권위주의획일주의경쟁주의에 기초한 신민교육정책에 대한 저항인 동시에 헌법의 교육이념을 구현하고자 하는 교사와 학생 그리고 학부모의 연대를 보여준 일대 사건이었다. 이로부터 그는 불복종의 환경조건으로서 지방자치교육제도의 혁신이 아래로부터의 민주주의 관념에 충실하면서도 학생교사학부모의 공화관계를 바탕으로 한 학교민주주의 구현을 통해 가능하며, 학교민주주의 제도는 학교에서 학생과 교사의 인권을 보장하고, 학생의 학습권과 교사의 교권을 보장하며, 학부모의 참여를 보장함으로써 성립한다고 강조한다.

정보법 분야에서 국정원과 악전고투를 벌여온 오길영은 이번호에도 그 싸움을 지속한다. 그는 원세훈 전 국정원장에 대한 유죄판결의 핵심증거인 문서파일의 증거능력을 부인하며 파기환송한 대법원을 논박한다. 우선, 대법원이 문서파일을 증거물인 서면으로 인정하면서 이를 전문법칙의 문제로 다룬 방식은 매우 초보적인 증거법리를 위반했다고 지적한다. ‘증거물인 서면은 증거법의 원리상 내용의 진실성과 무관하게 그 자체로 증거능력이 있기 때문이다. 다음으로, 문서파일을 형사소송법상 당연히 증거능력 있는 서류’(315조 제2)로 볼 수 있는데 대법원은 이를 거부하였다. 그러나 대법원의 이번 결정은 대법원의 선례들과 양립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큰 문제라고 그는 지적한다. 따라서 오길영은 대법원이 설시내용에서 증거물인 서면과 문서, 증거능력과 증명력에 대한 혼돈에 기하여 증거법리 전반에서 과오를 범했다고 평가한다. 그의 불굴의 연구를 통해 국정원이 형사소송법의 지배를 받는 날이 오기를 기대한다.

2015년 뜨거운 여름에서 더 뜨거운 가을로 이어지는 동안에 이 땅에서 민주주의 법학자들은 대의에 동참하였다. 그러한 삶의 증좌로 선언서들을 첨부하였다. 이번호에 게재된 원고가 적어 아쉬움은 많지만 편집 및 교열에 노고를 아끼지 않은 김종서 위원장과 박지현, 조우영, 오길영, 이호영 편집실무위원들에게 고마움을 표한다. 김종서 회원은 내년에 연구년을 맞이하여 이번호를 마지막으로 편집위원장 직을 내려놓게 되었다. 그가 편집위원장을 15년 이상 맡아왔으니 회원들의 사유의 취향을 가장 잘 느낄 것이라고 생각한다. 지금까지 힘든 수발을 도맡아 준데 대해 연구회의 이름으로 다시 한 번 감사드린다. 우리 회원들이 그와 같은 열정과 성실함을 본으로 삼는다면 민주주의를 바라는 세상 사람들에게 커다란 축복이 될 것이다. 특히 최근 학술지평가에서 민주법학이 좋은 평판을 얻은 큰 이유도 편집위원장과 편집위원들의 유별난 헌신이라고 생각한다. 민주법학 다음호에 대한 편집책임은 이계수 회원이 맡게 되었다. 대의를 위한 노동을 기꺼이 수락해주신데 감사드린다. 새로운 편집위원장이 탄생하였다. 그가 또 다르게 <민주법학>을 아름답고 치열하게 끌어갈 것이라고 기대한다. 마지막으로 한결같이 오랜 세월 민주법학을 묵묵히 발간해온 관악사 신재일 사장님께 감사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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