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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인권대회와 관련하여 여기저기에 가서 발표와 의견을 나누게 되었습니다. 아래의 글은 12월 1일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주최의 토론회에서 발제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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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정치와 북한인권법의 문제 - 협력적 인권개입을 위하여

정태욱(영남대 법과대학)

1.들어가며

미국이 만든 ‘북한인권법’이 본격적으로 작동하고 있다. 지난 7월 미국 워싱턴에서 그 법에 따른 자금지원으로 최초의 북한인권대회가 열린 데 이어, 제2차 북한인권대회가 곧 서울에서 대규모의 행사로 치러질 예정이라고 한다. 그리고 그에 즈음하여 역시 그 법에 따라 임명된 북한 인권특사인 레프코위츠가 방한한다. 미국만이 아니고 일본의 정계에서도 ‘북한인권법’이 준비 중이고, 우리 한국에서도 한나라당은 지난 해 11월 “북한인권개선 촉구결의안”에 이어서, 금년 8월 북한인권법안을 제출해 놓은 상태이다.

사실 북한 인권 문제는 새삼스러운 것이 아니다. 그리고 이미 1990년대 후반의 최악의 상태는 지났다고 할 수도 있다. 지금은 북한의 식량사정도 호전되었고, 탈북자의 숫자도 줄어들고 있으며, 그에 따라 주민 통제와 처벌에서도 완화된 조치들이 나오고 있는 상황인데, 한미일 3국에서는 오히려 북한 인권문제가 더욱 비등해지고 그것도 서로 일사불란한 모습을 보이고 있으니 이상한 일이라고 아니할 수 없다. 국제사회의 북한 인권문제에 관심이 과연 인권의 정신에 충실한 것인지 아니면 인권을 명분으로 한 정치적 이해관계의 발로인지 의심하지 않을 수 없는 일이다.

2.북한인권법의 검토

그러한 의심은 북한인권법 자체의 내용에서도 확인된다. 미국 정부는 북한인권법이 어떤 정치적 동기도 없으며 북한 주민의 인권보호를 위한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지만, 그 법이 북한 주민들의 인권향상에 얼마나 기여할지는 의심스럽다. 북한인권법은 크게 세 부분으로 되어 있는데, 제1절은 북한 주민들의 인권의 신장, 제2절은 궁핍에 처한 북한 주민들에 대한 지원, 제3절은 탈북자들에 대한 보호이다. 그 법에 대한 내용과 분석은 그 동안 많은 글이 발표된 바 있으므로 여기서는, 다만 주요 특기할 내용들을 통해서 그 법안의 성격을 가늠해 보기로 하자.

우선 그 법은 제1절에서 “북한의 인권, 민주주의, 법치, 시장경제 발전을 위한 프로그램”을 후원하는 민간·비영리단체에 2005년부터 2008년까지 매년 2백만 달러의 보조금을 지급할 수 있게 하였다(Sec. 102). 민간단체의 인도주의적 실천을 보조한다는 취지야 좋지만, 북한의 민주화 혹은 시장경제화라는 것이 무엇일까 생각해보면 어딘가 석연치 않은 구석이 있다. 특히 이 법의 실무담당자로 알려져 있는 호로위츠 허드슨 연구소 연구원이 대표적인 북한 정권교체론자이며, 또 북한 체제에 대한 규탄과 정권교체의 요청이 쏟아지는 북한 인권대회가 바로 이 법에 따른 자금으로 운영되고 있음 등을 생각할 때, 이 법의 기본 발상은 아무래도 북한 체제의 배제와 타도를 지향하는 쪽에 있다고 생각된다.

또한 Sec. 103과 Sec. 104의 규정들에서 북한인권법은 북한에서 외부의 정보가 방해 받지 않고 퍼지도록 도모하고 있는데, 그를 위해 미 정부는 “북한 주민들이 외부의 방송을 들을 수 있는 라디오를 포함, 북한당국에 의해 통제되지 않는 정보를 접할 수 있도록” 2005년부터 2008년까지 매년 2백만 달러를 사용할 수 있게 되었다. 정보와 진실의 유통이 모든 정치체제에서 긴요한 것이라고 하지만, 과연 라디오 살포가 북한 주민들의 인권에 얼마나 도움이 될지는 의문이며, 이 또한 체제 교란과 반체제운동의 선전과 선동으로 활용될 소지가 다분함을 지적할 수 있을 것이다.

다음으로 북한인권법 제2절은 “궁핍에 처한 북한 주민들에 대한 지원”이라고 되어 있는데, 이 역시 ‘활수한’ 지원과는 거리가 멀다. 우선 Sec. 202 제a항에서 북한에 대한 인도적 지원을 현 수준보다 상당히 늘리기 위해서는 “투명성, 감시 및 북한전역의 취약한 인구에 대한 접근의 실질적인 개선”을 조건으로 해야 함을 규정하고 있다. ‘인도적 지원’을 ‘인도적 조건’과 결부시키는 것을 나무랄 수는 없다. 하지만 미국은 다른 나라들도 자신들과 보조를 맞출 것을 훈수하고 있다. “미국은 북한에 식량과 인도적 원조를 제공하는 다른 나라들에게 북한정권에 직접 쌍무적으로 전달하기보다 감시되고 투명한 경로를 통하도록 권장”하는 것이다.

이는 일종의 월권이 아닐 수 없으며, 이러한 간섭은 미국이 진정 북한에 대한 인도적 ‘지원’에 관심이 있는지 아니면 그 지원의 ‘제한’이나 ‘감시’에 관심이 있는지 알 수 없게 만든다. 최근에 미국의 ‘북한인권위원회’의 북한 식량지원에 관한 보고서 등에서 한국 정부의 대북 인도적 지원을 문제 삼고, 그에 맞서 북한은 세계 식량기구의 철수를 요구하는 불미스러운 일이 발생한 까닭도 바로 이러한 북한인권법의 월권적 성격에서 비롯한 것인지도 모른다.

비인도적 지원 즉 경제적 협력이나 원조에서는 더욱 까다롭다. Sec. 202의 제b항은 북한에 대한 비인도적 원조는, (A) 종교의 자유 등 기본적 인권 존중 (B) 북한주민과 미국 내 친척의 가족상봉 (C) 납북된 일본과 한국 국민들에 대한 모든 정보의 완전 공개 (D)납북자들이 가족을 동반하여 북한을 떠나 귀국할 수 있는 자유의 허용 (E) 북한 감옥과 강제수용소에 대한 독립적 국제기관의 개혁 감시(F) 정치적 표현과 활동의 해금 등에서 진전이 있을 때, 비로소 허용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물론 다 필요하고 좋은 내용들이지만 그러한 조건들이 충족된다면 북한에는 이미 더 이상의 인권문제가 없게 되는 셈인데, 그렇다면 결국 이 법은 북한 인권상황이 완벽히 개선되기 전까지는 경제적 협조나 원조를 금한다는 것이니, 그 명칭을 오히려 ‘경제제재의 법’으로 바꾸어야 할지도 모르겠다. 북한 주민의 인권을 얘기할 때 그 경제적 곤궁을 빼놓을 수는 없다고 할 때, 경제재건을 위한 지원에 이렇게 인색하게 굴면서 북한 주민의 인권을 위한다고 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다음으로 제2절 Sec. 203부터 제3절의 조항들은 탈북자들에 대한 지원과 보호에 관한 것이다. 여기서 미국은 중국으로 하여금 탈북자들을 난민으로 인정하고 보호할 것을 요구하고 있음은 물론, 탈북자들을 돕는 개인이나 단체들에게 연간 2천만 달러를 지원하도록 하고 있다. 탈북자들의 공포와 곤란을 덜어주는 것은 지당한 인도주의적 과제일 것이나, 탈북의 주된 원인이 식량난에 있다고 할 때, 앞서 본 바와 같이 북한의 경제재건에는 전혀 관심을 기울이지 않으면서 탈북자들만 보호한다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 일이다. 또한 지금도 우리 정부가 탈북자들에게 제공하는 정착지원금을 노리고 탈북자들에게 접근하는 브로커들이 기승을 부리고 있다는데, 새로이 추가되는 막대한 자금지원이 오히려 문제를 악화시키는 결과가 되지 않을지 걱정이다.

나아가 현재 미국의 네오콘들이 북한에 대량 탈북사태를 야기하여 북한을 내부로부터 붕괴시키거나 혹은 유엔 안보리 등의 개입의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있다고 할 때, 이와 같은 북한인권법의 탈북자들에 대한 관심이 단지 탈북자들의 인권개선에 기여하기보다 미국의 정치적 이해관계에 의하여 활용될 수 있는 가능성을 경계하지 않을 수 없다.

북한인권법은 그밖에도 '인권특사'에 대한 규정, 그리고 유엔 인권위원회와 유엔 난민고등판무관에 대한 규정 그리고 탈북자들의 미국 수용에 관한 규정 등을 두고 있으나, 그 법의 대개의 성격은 위에서 설명한 바와 같다. 사실 북한인권법은 애초에 보다 강경하였던 ‘북한자유법안’을 대체하는 법안으로 나왔고, 또 여러 차례 수정을 거쳐 그래도 순화된 것이다. 하지만 여전히 그 법은 북한 인권문제에 대한 고심의 산물이라고 보기에는 수준미달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

3.협력적 인권개입

북한인권법을 비롯한 국제사회의 북한 인권개입이 북한 인권개선에 효과를 보이고 있다는 얘기도 있다. 북한이 유엔 인권 기구들에 협조적이며, 내부적으로 형사법을 정비하고, 탈북자들에 대한 처벌을 완화하고 있는 것이 모두 그러한 국제사회의 압력의 성과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는 다분히 아전인수적인 해석이 아닐 수 없다.

설사 북한이 국제사회의 관심에 따라 그러한 개선조치를 취했다고 하여도 그것이 단지 형식적이고 비난모면 용이라면 그 의미는 반감될 수밖에 없으며, 오히려 북한이 국제사회 특히 미국의 인권적 개입에 대하여 체제전복의 정치적 술수라고 저항하고 있음에 주목해야 할 것이다. 국제사회의 북한 인권문제에 대한 개입이 북한에 인권적 각성을 불러일으키기는커녕 오히려 인권에 대한 불신을 가중시키고 나아가 적대감을 증폭시켜 평화를 위협하는 쪽으로 진행된다면 그 인권개입이란 무슨 의미가 있는가. 더욱이 현재 미 강경파들이 북한 인권문제를 6자회담의 의제로 삼을 것을 주문하고 있는데, 이렇게 되면 자칫 안보와 핵문제를 다루어야 하는 6자회담마저 좌초될 우려가 크니 걱정이 아닐 수 없다.

물론 그렇다고 북한 인권에 대한 문제제기를 금하자는 것이 아니다. 북한 인권문제는 반드시 개선되어야하고 또 피할 수 없는 문제이다. 그리고 어차피 현재 북한 인권문제가 국제적인 이슈가 되어 있다. 따라서 문제는 북한 인권 문제에 개입하는 방식인데, 현재의 방식처럼 북한 정권에 대한 공격과 체제교란 혹은 북한에 대한 국제적 제재의 근거와 여론 조성 등을 위한 정치적 운동으로 변질되어서는 곤란하다는 것이다. 그에 대하여 필자는 예전부터 북한 체제의 인권적 능력을 존중하는 협력적 인권개입을 대안적 방식으로 얘기하여 왔다. 이하에서 그에 관하여 간략히 서술하고자 한다.

1)인권 개념의 재정립

북한 인권문제에 대한 개입에서 가장 힘든 문제는 상호 인권 개념에서 중대한 차이가 있다는 점이다. 서구 사회는 이른바 개인주의에 기초한 자유주의적 인권관을 가지고 있다면, 북한은 집단주의에 기초한 사회주의(소위 ‘우리식 사회주의’)적 인권관을 가지고 있다. 근본 인식이 다른 상황에서 어떤 의사소통을 기대하기는 어려운 일이다. 설사 대화가 이루어진다고 하여도 이쪽은 ‘정상’으로, 저쪽은 ‘비정상’으로 인식되어, 결국 상호 오만과 경멸 속에 소모적인 ‘인정투쟁’으로 끝날지도 모른다. 따라서 필자는 인권적 개입은 체제를 문제 삼는 자리가 아니라 인권을 논하는 자리가 되어야 함을 강조하고 싶다. 인권적 개입이 상대 체제를 전면적으로 부정하거나 이쪽 체제를 전적으로 강요하는 방식으로 되어서는 곤란하다는 것이다.

물론 인권을 체제 자체와 구별하는 작업은 다름 아닌 북한 측에게 생소한 것인지 모른다. 북한이야말로 인권문제를 체제에 결부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럴수록 국제사회는 체제의 문제가 아닌 인권자체의 정신에 충실할 필요가 있고 그 인권의 정신을 북한에게도 납득시킬 수 있어야 할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국제사회부터 먼저 인권을 자신들의 전유물로 생각하는 타성에 젖어있는 것은 아닌지 돌이켜 볼 필요가 있다.

인권은 여러 각도에서 이해할 수 있으나, 인권의 정신을 이해하는 데에는 그것을 어떤 체제의 이데올로기나 세계관의 논리적 결과물로 보려는 유혹에서 벗어나는 것이 긴요하다. 인권에 대한 정의는 다양하지만, 폭력과 천대에 대한 두려움과 혐오의 표현이자 그로부터의 해방의 욕구를 인권으로 보는 데에 이론을 달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어느 사회에서든 정치, 경제, 혹은 문화권력 등에 의한 폭력과 차별 그리고 그에 대한 공포는 항상 빚어질 수 있다는 점에서 이러한 인권개념은 어느 체제에서나 소중하다고 말할 수 있다. 즉 인권이란 어떤 체제이든 그 체제가 넘어서는 안 되는 경계를 뜻하는 최소한의 규범적 공통분모로 이해될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인권은 특정 체제의 전유물이 될 수도 없고, 또 특정 체제를 전적으로 배제하는 것으로 오해될 필요도 없다. 이러한 인권 개념은 어떤 체제이든 그 자체의 정의관에 따라 사회를 건설하고 유지할 권리를 부인하지 않는다. 다만 그 목표에 집착하여 인간 존엄이 무시되거나 수단화될 것을 걱정할 뿐이다. 즉 체제의 오남용으로 빚어질 수 있는 폭력과 천대로부터 인간존엄을 지키기 위한 것일 뿐이다. 국제사회가 북한에게 설득하여야 하는 인권개념이란 바로 이와 같은 체제의 목적 추구에 대한 한계설정으로서의 인권인 것이다.

특히 강조하고 싶은 것은 이상사회를 지향하는 체제일수록 권력의 한계는 경시되기 쉽고, 그에 따라 국가에 의한 폭력과 천대를 양산할 수 있다는 점이다. 이상주의적 혁명의 열정은 반동의 범위를 확대하고 처벌의 가혹함을 증대시키는 경향이 있다. 도덕과 정의로 철저히 무장하면 할수록 그 ‘적’에 대한 피해의식과 분노는 더욱 커진다. 반혁명분자들은 ‘인간쓰레기’이며 그들에게 인권이란 존재할 수 없다는 북한의 논리가 아마도 정치범수용소의 문제를 낳게 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와 같은 인권 개념, 즉 체제의 과도한 목적논리에 한계를 설정하고 체제의 압력으로부터 인간의 최소한의 존엄을 지키고자 하는 인권 개념을 북한에게 설득하기 위해서는 국제사회부터 인권과 체제의 구분에 대한 인식이 전제되어야 한다. 즉 국제사회는 북한 인권문제에 대한 개입에 앞서, 먼저 인권은 어떤 체제이든 인간의 존엄의 저지선일 뿐이며 인권이 어떤 특정의 체제를 지시하거나 다른 체제를 전면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는 인권정신에 충실함을 ‘입증’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2)북한의 인권적 능력

그러한 ‘입증’이란 어떤 과학적인 증거제시로 될 일은 아닐 것이고 곧 신뢰관계의 형성을 뜻할 것이다. 필자는 그를 위해 필요한 것으로 북한에 대한 존중, 즉 북한 체제가 지금 아무리 영락하였더라도 나름대로 인권적인 사회를 만들 수 있다는 그 저력에 대한 존중을 꼽고 싶다. 주지하듯이 북한은 항일무력투쟁으로 독립을 쟁취하고 또 미국의 침략도 물리치고 나아가 중국과 소련 어디에도 종속되지 않은 민족자주와 자력갱생의 사회주의를 건설하였다는 자부심을 거의 생명줄처럼 붙잡고 있다. 실제로 한국전쟁의 폐허 위에서 그들이 쌓아 올린 사회경제적 성취는 괄목할 만한 것이었다.

지금은 그 우리식 사회주의가 파국을 맞이하였고 그 민족자주의 투쟁의 역사는 신화적으로 분식(粉飾)되어, 북한인들의 민족적 자부심이란 것이 기이하고 우스꽝스럽게 보이지만, 북한 주민들의 체제에 대한 신뢰는 아직도 견고하다. 사회의 붕괴에도 불구하고 정치적 동요는 감지되지 않으며, 탈북자들의 경우에도 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30% 이상이 기회가 되면 다시 북으로 돌아가고 싶다고 할 정도이다.

특히 항일유격대의 고난의 시절 부모를 잃은 고아들을 돌보며 유격대원들 간에 생사고락을 같이 한 동지애는, 지도자에 대한 복종과 동지들 간의 우애 그리고 자기희생의 덕성이 충만하고 고루 평등하게 사는 이른바 그 ‘가족 국가(family state)’의 역사적 원천이 된다. 그러한 전통은 어린이 보육에 대한 각별한 배려에서도 확인된다. 어린이보육교양법 제2조는 “모든 어린이들을 탁아소와 유치원에서 국가와 사회의 부담으로 키울 것”을 규정하고 있음은 물론, 제5조에서는 “어린이들에 대한 보육교양사업은 전국가적 전사회적인 사업이다. 모든 기관 기업소 단체들은 내부예비를 동원하고 절약하여 탁아소 유치원에 대한 사회적 지원을 강화하여야 한다.”고까지 규정하고 있다.

북한이 과거에 성취한 사회주의적 발전들을 시시하게 볼 수는 없다. CIA의 극동문제전문가였던 헬렌-루이스 헌터(Helen-Louise Hunter)의 비판적 보고서에서도 “전쟁고아들은 물론 모든 아동들에 대한 따뜻한 보살핌, 대학교육을 받은 여성들이 남성들을 능가하는 사실 등과 같은 여성 지위의 급격한 변화, 무상 주택, 비교적 수준 높은 국가차원의 예방의학, 최근 기근 이전까지 대부분의 선진국과 비교할 만한 낮은 유아사망률과 평균수명, 조직화된 매춘이 없다는 것, 매수하기 힘든 경찰”등의 내용들을 확인할 수 있다.

이러한 북한의 역사가 인권적 차원에서 전혀 무의미하다고 말할 수는 없다. 물론 혁명의 과잉과 혁명권위의 비대화로 인하여 결국은 모든 주민의 인권이 체제의 볼모로 잡히게 되었다지만, 그 나라 인민들이 역경 속에서 추구해 온 이상과 그들이 한 때 도달했던 수준에 대한 자부심을 부인할 이유는 없는 것이다.

3)두 단계의 접근

국제사회가 북한의 인권적 능력을 존중하고 상호 신뢰의 토대가 마련되어 있다면, 북한 인권문제에 대한 협력적 접근은 다음 두 단계로 이루어질 수 있을 것이다. 첫째는 기본적으로는 북한의 전통과 제도를 존중하며 그에 따른 인권과 자유의 개선을 기대하는 것이다. 두 번째 단계는 체제를 초월하는 그리고 체제에 한계를 설정하는 인권과 자유의 정신에 입각하여 북한의 문제에 대하여 함께 고민하는 것이다.

이미 본 바와 같이 북한에도 인권보장에 대한 의식과 제도가 없는 것이 아니다. 다만 그 것이 이민위천(以民爲天), 인덕정치(仁德政治)라는 지도자의 책임과 배려 그리고 관료들의 헌신이라는 차원에서 이해되고 있음이 다른 점이다. 이는 “인민을 위하여 충실히 복무하자면 자기 자신보다 인민을 먼저 생각하고 인민의 기쁨과 아픔을 자기의 기쁨과 아픔으로 여길 줄 알아야 한다.”, “당은 잘못을 저지른 사람이라고 하더라도 버리지 않고 교양개조하여 옳은 길로 이끌어 주어 사회정치적 생명을 끝까지 빛내여 나가도록 보살펴주고 있다.” 그리고 “고생은 남보다 먼저하고 낙은 뒤로 미루며 어려운 일은 스스로 맡아하고 성과는 남에게 양보하는 사람이 참다운 공산주의자이고 로동계급의 당원이다.”라는 등의 김정일의 발언에서도 잘 나타난다.

북한의 통치이념과 원리에 인도주의적 요소가 있다면, 국제사회가 그것으로써 북한의 인권상황의 개선의 근거로 삼지 못할 까닭은 없다. 예컨대 노동교화소에서의 가혹행위와 폭력은 그 체제 이념인 인덕정치와 교화라는 행형이념에 반하는 것이 아닌가라는 차원에서 접근할 수 있을 것이다. 사실 이러한 내재적 접근이 북한 인권상황에 기여할 수 있는 부분은 생각보다 클 수 있다. 필자로서는 북한에서의 인권유린의 상당부분은 정부의 조직적이고 의도적인 침해가 아니라 중앙의 통제가 미치지 못하고 국가의 기강이 무너져 일선에서 야기되는 인권침해(소위 ‘낮은 단계에서의(low-level) 인권침해’)가 많다고 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러한 1단계의 방식으로만은 충분치 않을 것이다. 북한에서는 인권의 고유성을 인정하지 않고, 체제의 부산물로 여기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그 인권문제를 체제 내적인 차원에서 모두 해결하기에는 한계가 있다고 본다. 즉, 체제의 한계로서의 인권의 정신에 대한 각성까지 나아가야 할 것이 요청된다. 하지만 그것을 일방적으로 훈계하고 주입한다면 이는 협력적 방식이라고 할 수 없을 것이다. 따라서 우선 북한 스스로 인식하고 있는 문제점들에서 출발하여 그 해결책을 같이 고민하는 자세가 필요할 것이다. 즉 그러한 문제들이 과연 중앙 정부의 통제만으로 다 해결될 수 있을 것인지 혹은 인권의 원리에 의한 보완이 필요한 것은 아닌지 그리고 서구의 자유주의에서는 그런 문제들에 대하여 어떻게 대응하고 있는지 논의할 수 있을 것이다.

김정일 위원장도 인식하고 있는 북한 사회의 대표적인 문제점들은 ‘세도와 관료주의, 부정부패’이다. 물론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은 당원들에 대한 김위원장의 격려는 그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나온 것이다. 그러나 개인의 존엄이라는 한계를 모르는 집단주의적 이념국가에서 그러한 문제가 단지 통치자의 배려와 시혜의 차원에서 다 해소되기는 어렵다. 예컨대 최고 통치자가 아무리 노력한다고 하여도, 하부기관에서 체제이념에 기한 권력의 오남용이 있는 경우 절대적 체제의 특성상 그 가혹행위에 대한 제재보다 체제이념의 보호를 더 중시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생길 수 있는 것이다.

기본적으로 도덕을 독점하고 일체성을 요구하는 체제에서는 권력의 오남용과 부정부패의 위험성은 너무 커서 그것을 ‘위로부터’ 막아내는 데에는 역부족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다. ‘아래로부터’의 대항의 장치가 필요한 것이다. 이는 곧 인권의 한계설정기능을 뜻한다. 각 개인들에게 인간존엄이라는 최후의 보루를 인정해 주고 부정행위와 부당한 침해에 대해 ‘자신의’ 인권으로 호소하고 응징하는 기회를 주는 것이 필요하다.

물론 그러한 문제 즉 권력의 오남용 및 부정부패 등은 자유주의 체제 하에서도 얼마든지 있다는 점을 시인하지 않을 수 없다. 문제는 그에 대한 대응 방식에서의 차이다. 자유주의 체제는 그 문제의 해결을 권력의 도덕성과 배려에만 맡기지 않고 궁극적으로 피해자들의 항의에 따른 응징과 구제에 맡긴다. 인권과 자유가 보장되는 체제의 힘이라는 것은 불법, 부정 및 인권침해가 없다는 것이 아니라 그러한 문제들을 치유할 수 있다는 그 회복성과 지속성에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절대적 이념에 기초한 권위주의 국가는 애초에 그러한 문제들이 일어나지 않도록 완벽한 사회를 꿈꿀지 모르나, 대개 과욕은 미흡보다 더 큰 폐해를 부른다는 점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이렇게 하여 국제사회는 상호 신뢰 속에서 북한과 함께 개인의 존엄, 법치주의, 사법부의 독립, 사법적 구제절차의 보장 등 인권과 자유의 기본 원리들에 관한 여러 얘기들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중요한 것은 그러한 얘기가 북한의 체제를 아주 바꾸는 쪽으로 전개될 필요는 없다는 것이다. 권력의 오남용과 부정부패의 방지와 같이 체제에 한계를 설정하는 기본적인 인권과 자유 및 법치주의의 개념은 어떤 체제이든 적용가능하며, 설사 군주제 하에서도 그것이 왕도정치를 지향하는 한 필요한 것들이다.

4.맺음말

필자는 국제사회와 북한이 서로 신뢰하고 또 인권의 정신에 충실하다면 위와 같은 협력적 개입이 불가능하다거나 비현실적이라고 보지 않는다. 실제로 북한 사회에서 이미 인권적으로 많은 개선이 이루어지고 있다. 인권에 대한 중요성도 새롭게 부각되고 있다.

북한의 형법 제6조에서 “국가는 형법에서 범죄로 규정한 행위에 대하여서만 형사책임을 지우도록 한다.”고 하여 죄형법정주의를 명확히 규정한 것은 특기할 만하다. 이는 형벌권의 자의적 남용의 가능성을 줄인 것으로 인덕정치에 대한 법치주의적 보완으로 큰 의미가 있다고 할 수 있다. 아울러 형사소송법 제4조에서 자의적인 인치와 반대랄 수 있는 “과학성, 객관성, 신중성, 공정성의 보장원칙”을 둔 것이나, 제5조에서 “국가는 형사사건의 취급처리에서 인권을 철저히 보장하도록 한다.”고 규정한 것도 주목하고 싶다.

또한 형법 제2절 “관리일군의 직무상 범죄”에 관한 부분에서 (직권람용죄) “관리일군이 이기적 목적으로 직권을 남용하여 엄중한 결과를 일으킨 경우” (신소청원묵살죄) “관리일군이 공민의 신소청원을 고의적으로 묵살하였거나 그릇되게 처리한 경우” 제251조(국가기관 권위훼손죄) “관리일군이 세도를 썼거나 위법행위를 하여 국가기관의 권위를 훼손시킨 경우” 제252조(비법체포, 구속, 수색죄) “법일군이 비법적으로 사람을 체포, 구속, 구인하였거나 몸 또는 살림집을 수색하였거나 재산을 압수, 몰수한 경우” 제253조(사건과장, 날조죄) “법일군이 비법적으로 사람을 심문하였거나 사건을 과장, 날조한 경우”  등 직권남용과 오용의 죄에 대하여 자세하게 규정한 것도 높게 평가할 수 있을 것이다.

아울러 김정일 위원장이 “2003년 9월 인민보안성과 보위부에 ‘고문’등 폭력행위를 일체 근절하고 앞으로 법에 따라 주민을 다루라는 내용의 지침을 하달했다”고 하는 보도는 매우 반가운 것이다.

앞서 언급한 대로 국제사회는 이러한 변화를 국제사회의 압력의 성과로 보거나 혹은 북한 체제의 균열쯤으로 이해할지 모른다. 그러나 그런 정도의 인식에 머문다면 바로 그것이야말로 국제사회가 아직도 북한 자체의 인권적 능력과 자체적인 개선의 가능성을 무시하는 오만한 자기중심적 인식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음을 증명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북한 체제가 인권문제에서 취약성을 보인다고 하여도 북한의 법질서를 ‘정상이 아닌 것’으로 취급할 이유는 없다. 이편은 정상이고 저편은 비정상이라는 ‘타자화’의 인식이야말로 인권에 가장 치명적인 인식일 수 있다. 북한이 현재 인권적으로 심각한 문제를 안고 있다고 하여도 그 나름대로 인권적 세계관이 있으며 그에 따라 인권적 전통을 유지하여 왔다는 점을 먼저 인정하지 않는 어떠한 인권적 개입도 인권의 정신에 충실한 것이 되기는 어렵다.

북한의 역사를 인류 역사에서 계속 되어 왔던 이상주의적인 시도 가운데 하나이며 또 그에 대한 시행착오로 볼 수 있다는 생각을 해 볼 수는 없을까? 혁명의 시행착오는 수많은 인간들의 삶을 고통의 늪에 빠뜨리지만, 그렇다고 혁명의 열정이 무의미한 것은 아니다. 프랑스 혁명의 공포정치, 파리 코뮌의 참극을 돌이켜보자. 중국 인민대약진 운동과 문화혁명의 참상을 떠올려 보자. 그러나 그러한 비극들에도 불구하고 프랑스의 역사는 인류의 양심인 자유․평등․박애를 향해 꾸준히 전진하였으며, 현대 중국도 그 때의 상처를 딛고 새롭게 전진하고 있지 않은가. 물론 그들도 그렇고, 모든 선진국들에도 여전히 문제는 남아 있다. 어쩌면 인류의 모든 국가와 개인의 삶은 시행착오의 연속이라고 하여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이상주의 철학자이자 신학자인 에른스트 블로흐는 인간의 본질로서 ‘희망의 원리’를 말하였다. 우리가 북한 인권 문제에 대해 개입한다면서 현재의 북한의 인권문제에만 몰두하고, 그들의 미래에 대한 희망을 놓친다면, 어쩌면 우리는 인권의 본질을 놓치는 지도 모른다.

끝으로 지적해두고 싶은 것은 미국의 인권외교가 원래 이렇게 단순 무지하지는 않았다는 점이다. 인권외교의 원조라고 할 수 있는 카터 대통령의 인권의식에는 깊은 성찰과 넓은 사려가 있었다. 카터 행정부는 자신들의 힘과 지혜의 한계를 인식하였으며, 타국의 존엄과 자율을 해치지 않도록 경계하였다. 카터의 외교팀은 인권외교의 대상국의 전통과 문화를 무시하지 않았으며, 그들 자신의 전통과 문화 속에서도 보편적 인권이 분명히 발전적으로 승인될 것을 확신하였다. 카터의 인권외교는 제재보다 보상의 방식을 중시하였고, 원조를 함에 조건을 붙이기보다 먼저 지원을 하고 그 철회 여부에 조건을 붙이는 슬기도 발휘할 줄 알았다.

그리하여 필자는 현재의 북한 인권문제에 대한 개입을 카터의 인권외교의 정신으로 돌아갈 것을 제언하고자 한다. 사실 카터 전 미대통령은 이미 1994년 한반도의 절체절명의 위기의 순간에 김일성 주석과의 상호 신뢰 속에서 한민족과 세계의 평화를 구한 인물이기도 하다. 당시 카터는 북한으로 떠나기 전에 미 정부 요원들로부터 북한에 대한 비관적인 브리핑을 많이 받았다고 한다. 그러나 카터의 평화에 대한 신념은 그러한 선입관으로 오염되지 않았다. 카터는 오히려 그 요원들에게 ‘당신들은 과연 북한을 얼마나 알고 있는가? 북한을 방문한 적이 있는가?’하고 되물었다고 한다.

모름지기 남을 잘 모르면서 남을 함부로 평가하고 비난하는 것처럼 인권과 거리가 먼 행동도 없을 것이다. 현재 북한이 국제사회의 인권개입에 대하여 독설을 퍼부으며 비난하고 있지만, 그들이 문제삼는 것은 “진정성”과 “공평성”의 결여라고 할 수 있다. 실제로 북한은 지난 11월 16-19일 평양에서 유엔 조약국 법무실의 팔리타 코호나(Palitha Kohona) 실장과 크리스토프 비어워스(Christoph Bierwirth) 유엔난민고등판무관실 선임 연락관을 초청하여 외무성, 내무성, 국토환경성 등 정부 기관과 학계 관계자 약 30명이 참석하는 국제세미나를 가지기도 하였다. 인권의 정신에 투철하면서도 오만하지 않고, 상대의 문제를 직시하면서도 정중함과 애정을 잃지 않는 그런 인권개입이라면 북한은 오히려 반갑게 환영하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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