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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수 194
조회 수 : 11071
2000.11.30 (09:53:49)
프랑스에 와서 프랑스 노동법을 공부하고 여기서 학위까지 받을 생각을 하고 있는 저로서는 졸지에 깡패요, 소매치기로 전락한 이 시점에서 이 문제에 대해서 그냥 지나칠 수는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간단히 지금 드는 생각을 몇 자 적겠습니다. 원래는 좀 더 생각하고 나중에 글을 쓰려고 했으나, 이제까지의 경험상 그렇게 해서는 글을 못 쓴다는 생각이 들어서 그냥 간단하게라도 써자고 결심했죠.

우선, 제가 프랑스 유학을 결심하게 된 동기부터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물론 프랑스어를 습득할 수 있다는 점도 생각했고, 다른 사회에서의 생활 그 자체에 대해서도 호기심이 있었기 때문이지만, 여기서 문제는 외국박사와 한국박사에 대한 비교(?)에 관한 문제이기 때문에 그 얘기만 하겠습니다.

저는 노동자들의 파업권에 관심이 있습니다. 아시다시피 우리 나라는 파업권이 헌법적 권리로 보장되어 있지만 현실에서 권리로서의 대접을 제대로 받은 적이 없죠. 법원의 판결도 지나치게 엄격하기만 하고 때로는 잘못된 논리를 갖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그 이유 중의 하나가 파업권에 관한 독일의 이론이 우리 법학계와 법원을 지배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파업권을 폭넓게 보장하고 있는 프랑스의 법제에 관심을 갖게 되었지요.

물론 요즘 같은 세상이면 한국에서도 얼마든지 공부할 수 있겠지요. 책이나 잡지도 얼마든지 구해 볼 수 있고. 필요하다면 프랑스로 가서 필요한 자료를 몽땅 복사해 올 수도 있을테고...

하지만 법이라는 것이 각 나라의 고유한 역사적, 사회적, 문화벅 배경과 맞물려 있는 것이라고 한다면, 공식적으로 출판된 활자화된 자료만 가지고서는 그 법을 제대로 이해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나라에서 직접 부딪히면서 경험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하고, 제가 프랑스 유학을 결심하게 된 동기이기도 합니다.

프랑스 티브이 프로그램에는 유난히도 토론 프로가 많은데, 얼마 전에 흥미로운 프로를 보았습니다. "파업은 권리인가? 특권인가?"라는 주제로 열린 토론 프로인데, 유명인사들이 몇 명 나와서 하나마나한 소리만 늘어놓는 방식이 아니라, 시청이나 법원 로비에 카메라를 설치하고 아무나 와서 자기 생각을 말하고 다른 사람의 견해를 비판하는 방식으로 진행되는 프로였습니다. 그 날은 노조간부, 사용자, 법대생들이 많이 나왔더군요. 아직 불어가 짧아서 제대로 이해하지는 못했지만, "파업은 권리인가? 특권인가?"라는 제목 자체가 제게는 충격적이었습니다. 한국에서라면 어떻게 제목을 달 수 있을까요? "파업은 권리인가? 아닌가?"정도가 아닐까요? 그리고 또 하나 놀랐던 것은, 전 프랑스에서는 노동자들의 파업권이 당연하게 받아들여지고 인정되고 있다고 생각했었는데, 그게 여전히 논쟁의 주제가 되고 있다는 사실이었습니다.

이 얘기를 한 것은, 제가 생각하기에 유학이 가져다 주는 이점이란 건 이런 게 아닐까 싶어서입니다. 아무래도 한국에서는 활자화된 자료에만 의존할 수밖에 없고, 프랑스의 파업권에 대한 전문가도 별로 없어 제대로 된 토론도 힘들 수밖에 없지 않겠습니까? 법원 판례 하나를 보더라도, 프랑스에서라면 판례를 놓고 교수나 학생들이랑 토론이 가능하겠지만,한국에서라면 결국 혼자서 생각하고 결론 내릴 수밖에 없지 않겠습니까?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외국박사가 한국박사보다 더 우수하다고는 결코 말할 수 없죠. 한국에서 학문활동을 한다면 결국 한국의 문제에 대해서 얘기할 수 있어야 하는 거죠. 한국에서의 파업권의 보장이라는 문제에 대해서 한국적 상황에 맞는 대답을 제시하지 못하면 아무 소용이 없지 않겠습니까? 그런 점에서는 오히려 한국에서 한국의 파업권에 대해서 열심히 공부한 사람이 훨씬 나을 수도 있겠지요. 그러니 초점은 외국박사냐 한국박사냐가 아니라 우리 사회가 직면한 문제들에 대해서 얼마나 충실하고 제대로 된 대답을 할 수 있는가에 맞춰져야 하겠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현재 한국의 노동법학 현실에서는 프랑스의 파업권 이론을 소개하는 것 자체로도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지금까지는 독일의 파업권 이론이 마치 모든 것인양 받아들여지고 있기 때문이지요. 파업권에 대한 다른 접근방식은 거의 논의되지 않고 있기 때문이지요. 그래서 프랑스의 파업권 이론을 소개하는 것만으로도 논의의 폭을 넓힐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하는 겁니다.

이상, 깡패의 혐의를 벗고자 한 저의 변명이었습니다. 아직은 본격적으로 공부를 시작한 게 아니라서 구체적인 얘기는 못 하겠군요. 나중에 다시 기회가 된다면 또 얘기하기로 하죠.

* 민주법연님에 의해서 게시물 복사되었습니다 (2006-07-31 18: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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