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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 수 : 11026
2001.01.29 (00:00:00)
유리인간, 유리지갑과 이민열풍.

이계수 (울산대 교수)


2년전인가 '에너미 오브 더 스테이트'라는 영화를 본 적이 있다. 그 영화에서 주인공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구두 뒷굽, 시계, 만연필에 숨겨진 도청장치에 의해 그의 일거수 일투족을 철저하게 감시당한다. 주인공의 행선지는 인공위성을 통해 완벽하게 추적된다. 과연 이는 영화 속 이야기일 뿐일까? 놀랍게도 영화의 감청기술은 현실에 훨씬 못 미치는 것이라고 한다. 영화속의 기술은 미국 안보국이나 정보국에서 이미 10년 혹은, 15년 전에 사용한 것들이다. 현재 미국 정보기관의 기술은 컴퓨터 타이핑 소리만 듣고도 무엇을 치는지 알아낼 정도로 발달해 있다.

'80년 광주'를 통해 미국의 역할을 분명하게 인식하기 시작할 즈음 이런 얘기들이 있었다. "미국은 청와대에서 일어나는 일은 모두 알고 있다. 모든 대화는 청와대 창문의 떨림을 잡아내는 기계에 의해 정확하게 기록된다." 지금부터 15년 전의 얘기들인데 당시 나는 '정말 그럴 수 있을까?' 하는 의심을 품었던 것 같다. 그러나 지금 이런 정도의 이야기는 상식이다. 미국은 현재 에셜론(ECHELON)이라고 하는 전세계적 감시·도청망을 운영하고 있다. 이 통신망은 하루 약 100만건의 각종 국제통신을 감청하고 있다. 한국이 이 도청망의 우산속에 들어가 있다는 사실은 알만한 사람은 다 안다. 일례로 월간중앙 2000년 4월호의 기사를 인용한 중앙일보 보도(2000/03/21)에 따르면 에셜론이 한국외무장관을 도청했다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월간중앙기사는 미국이 1991년 한국 정부와 60억원 상당의 캐나다형 캔두 원전 3기 건설문제를 협상할 때 한국 외무부장관을 도청했다는 내용을 폭로하고 있다. 1990년대에 미국과 일본이 자동차와 관련한 통상마찰로 협상을 벌릴 때 미국측 협상대표들은 일본측 협상대표들의 전략을 도청한 내용을 미리 알고서 협상 테이블에 들어갔기 때문에 표정관리하느라 혼났다고 한다. 에셀론은 경쟁상대인 다른 나라 기업의 산업정보를 도청 감청하는데 많이 이용되고 있다. 물론 그것에 한정되지는 않겠지만. 이렇게 되다 보니 미국과 경쟁하는 입장에 있는 유럽연합도 그에 맞서는 감시망 체제를 구축하고 있다. ENFEPOL 98 프로젝트가 그것이다. 유럽내의 모든 핸드폰, 인터넷 통신, 팩스전문을 실시간으로 전면적으로 감시하는 시스템을 구축하겠다는 구상인데 이 프로젝트는 유럽연합의 법무 및 내무위원회(EU-Beirat f r Rechts- und Innenpolitik)에 의해 지지되고 있다. 사적 영역에서의 개인의 자유를 주장하는 시민운동단체들은 ENFEPOL 98에 대해 당연히 반발하고 있다. 최근 러시아에서 '인터넷상의 권리'라는 주제로 열린 학술회의에서 오스트레일리아의 시민운동가 에릭 메췔은 인터넷감시를 정당화하기 위해 정부측이 사용한 추잡한 전략을 폭로하고 있는데, 그에 따르면 아동포르노에 대한 대중들의 우려를 인터넷에 대한 감시를 정당화하는데 사용할 것을 제안하고 있다.

오늘날 일반 국민의 삶은 완벽하게 노출되어 있다. 그런데 우리는 정부가 무슨 짓을 하고 있는지 속속들이 알지 못한다(이는 한국정부와 미국정부간의 관계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최근 '이민바람'이 다시 불고 있다고 한다. 안기부 자금 사건 같은 것을 보면서, 교묘한 탈법상속의 일인자 삼성과 그리고 그를 벤치마킹하고 있는 에스케이 같은 대기업들을 보면서 우리 국민들이 느끼는 절망감의 한 표현일 것이다. "높은 사교육비와 입시지옥이 없으며, 부정부패가 없고, 학연이나 지연에 연연하지 않으며, 열심히 일하면 잘 살 수 있는 곳, 기분좋게 세금을 낼 수 있는 곳에서 살고 싶다."는 것이 이민을 선택하게 된 이유라고 한다.

'기분좋게 세금을 낼 수 있는 곳!' 이민을 떠나고 싶어하는 사람들에겐 세금의 액수가 아니라 세금이 걷히고 사용되는 방식이 불만인 것이다. 희망이 없으니 사람들은 떠난다. 국외든 국내든 우리들은 희망이 있는 곳으로 떠나고 싶어한다. 캐나다든 어디든 떠나고 싶어하는 사람들에게 가지 말고 여기서 잘해보자고 말을 건넬 용기는 없다. 나 자신도 가끔은 '이민'의 유혹을 떨쳐버릴 수 없기 때문이다.

법무부는 1월 22일 신한국당의 후신인 한나라당과 강삼재 등을 상대로 불법 전용된 안기부 예산 9백40억원을 국가로 돌려달라는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서울지법에 냈다. 그런데 법무부가 그 소송수행을 끝까지 잘하리라고 믿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번에도 국민들이 나서야 한다. 우리는 '안기부 자금 사건'을 그렇고 그런 정치자금 사건으로 강건너 불구경해서는 안된다. 어떤 동기로 시작되었건 이제 이 사건을 제대로 마무리지을 책임이 그들 정치가들이 아니라 우리 국민들에게 있다.

그 방법으로 납세자소송을 생각해 볼 수 있다. 물론 '납세자소송'은 현재의 우리 사법시스템에서는 인정되지 않는다. 그러나 현재 그런 형태의 소송이 가능한 미국에서도 법원이 처음부터 '오냐 좋다!' 하고 납세자소송을 인정한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상기하자. 투쟁 끝에 쟁취한 것이 납세자소송이다. 한번 해보는 거다. '기분좋게 세금을 낼 수 있는 곳'이 왜 반드시 캐나다여야만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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