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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수 194
이경주
조회 수 : 9585
2000.12.18 (00:00:00)
숨통

이 경주(인하대 교수)


  인터넷 사이트 가운데 요즘 주목 받고 있는 것 중 하나가 자살관련 사이트라고 한다. 가상현실에서의 자살이 촉탁살인으로 이어져 세간의 화제인 것도 이 때문이라고 한다. 사실 의사들의 말에 의하면 사람이 죽고 사는 가장 고전적인 이치는 간단하다고 한다. 숨통이 막히면 죽는 것이고 숨통이 트이면 산다는 것이다.

  요즘 우리 사회를 보면 숨통이 막혀 죽고 싶은 사람들이 많은 것 같다. 그런데 매주 수요일 일본대사관 앞에 가보면 또다른 이유로 '그 생각만 하면' 숨통이 막혀 죽을 지경이라는 할머니들을 만난다. 일본 군국자의자들의 야욕 때문에 꽃다운 청춘을 성노리개감으로 지낸 할머니들을 돈을 벌기 위하여 일본군 위안부를 했다느니, 강제성이 없었다느니, 날조된 일이라는니, 증거를 대보라는니 하는 소리를 일본정부의 내노라할 만한 지위에 있다는 사람들이 한다니 숨통이 막히고 기가막혀 죽을 지경이라는 것이다.

'그 생각만 하면' 숨통이 막히는 우리 할머니들을 내가 처음 만난 것은 지금으로부터 한 5-6년 전쯤 된다. 동경의 일본 국회의사당 옆에 있는 무슨 회관이었는데 '하르머니'들의 문제를 일본사회에 제기하고 공론화시켰다는 시민단체들이 주관하고 갑자기 여당이 되어버린 사회당이 찬조하는 심포지움이었다. 그 시민단체로서는 일본사회의 망각구조와 책임회피논리에 비추어 보면 늙고 병들어 죽어가는 할머니들에게 최소한의 경제적 기금을 마련하는 것이 어쩌면 최선이며, 사회당 연립정권이 들어섰으므로 그나마 가능한 일이라는 정세판단이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 심포지움에서 할머니들은 자신들의 망가진 청춘이 '아시아여성기금'에 기초한 위로금형식으로 마침표지으려는 것임을 알고 마침내 대성통곡하였다. 숨통이 막혀 죽을 것처럼 분노하던 할머니들이 진실을 밝힐 것과 일본정부가 배상할 것을 울부짖었던 기억이 있다.

그런 할머니들에게 지난 주에는 모처럼만에 숨통이 트이는 소식이 있었다. 같은 동경의 무슨 회관에서 열렸을 '2000년 일본군 성노예 전범 국제법정'이 일왕을 전범이라고 유죄를 선고한 것이다. 8개국의 생존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들의 증언 등을 통해 일본정부가 납치 유괴 사기 수법으로 수많은 여성을 강제동원, 강간하는 등 인도에 반하는 죄(Crimes against Humanity)를 저질렀고, 그 정점에 히로히토 전 일왕이 있었음을 국제적으로 공인한 것이다.  

사실 히로히토 전 일왕은 당시 일본 헌법인 메이지 헌법에 따르면 육해공군의 최고사령관이었으며 육군, 내무대신 등과 정기적으로 회의를 갖는 군통수권자이며 주권자였다. 따라서 몰랐다거나 실권자가 아니었다는 주장은 이유없고 위안부문제의 형사상 책임을 갖고 있다. 조선 등 식민지 주민은 국제법이 아닌 일본법이 적용된다고 주장되기도 하나 설령 당시의 조선인들을 백배천배양보하여 국제법적으로 일본인이라고 하더라도 인도적 문제와 관련된 권리는 내국인에게도 적용되어야 한다. 그럼에도 일본정부는 아무런 법적 도덕적 책임을 지지 않고 있으며 유엔의 권고도 무시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세계 각국의 여성 인권단체들이 일왕의 책임을 뭍기위한 이번 '2000년 일본군 성노예 전범 국제법정'은 할머니들의 숨통을 트이게 하는 쾌거였다할 것이다. 늙고 주름진 할머니들의 눈에 맺혔을 눈물과 함성이 눈에 선하다.

진실이 밝혀져야 한다. 그런데 진실을 밝히기 위해서는 반드시 깨져야 할 것이 하나 있다. 그것은 다름 아닌 일왕의 전쟁책임에 대한 일본사회의 터부이다. 정보기관을 빰치는 분석능력과 추적능력을 갖춘 일본의 언론들이 NHK와 아사히를 제외하고는 냉담한 반응을 보인 것은 이와 무관하지 않다. 동경 한복판에 이러한 법정을 유치한 일본의 시민단체들이 노렸던 것 중의 하나도 어쩌면 이런 일본사회의 전쟁책임에 대한 사회적 터부의 파괴였을 것이다. 따지고 보면 일본정부의 내노라하는 사람들이 '하르머니'들을 매춘부였다느니 날조되었다느니 하는 것은 일왕의 명령으로 시작하여 일왕의 명령으로 끝난 전쟁에 대한 일왕의 책임에 대한 언급을 회피하기 위한 어쩌면 딴지걸기라는 측면도 강할 것이다. 거기에 논리가 가미되면 자유주의사관이 되는 것이고 거기에 실증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붙으면 증거없는 날조라는 주장이 될 것이다.

2001년에는 할머니들의 숨통을 트이게 하는 일과 연구도 하고 싶다. 한일협정에 의해 개인청구권은 소멸되었으므로 법적인 과거청산은 끝났다느니 한일합병은 국제법적으로 문제가 없다느니 하는 소리가 뒤집혀서 징용간 할아버지들도 더불어 숨통이 트이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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