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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 수 : 10823
2000.11.20 (00:00:00)
믿지 마라, 파란 신호

박승룡(한국방송대 법학과)


기초생활보장법이 시끄럽다. 기초생활보장법이 아니라 기초생활포장법인 것 같다. 기초생활은 포장해서 버리라는 건지. 국민의 대표인 국회에서 기초생활보장법을 만들었는데, 그 법이 생활보호대상자들을 사실상 포기하려는 것이라면, 우리 모두가 그들을 버리는 것이 되지, 아마.

가끔씩 라디오에서 재미있지만 소름 돋는 공익광고를 듣는다. 내용을 그대로 옮길 수는 없지만, 치밀하지 못한 내 기억력에 따르면 그 대강은 이렇다. "횡단보도에서 파란 신호가 들어오더라도 곧바로 건너가서는 안된다. 신호를 무시하고 그냥 달려오는 차들이 있기 때문이다. 횡단보도를 건너기 전에 먼저 운전자와 눈을 마주하고 내가 건너가겠다는 의사표시를 하고 건너가라."

어떤가? 우리에게는 너무나 익숙하고 당연한 이야기인가? 그래도 이것이 공익광고거리가 되는 이유는 무엇인가? 공익광고에서는 이렇게 이야기한다. 위 내용이 요즘 초등학교 학생들에게 선생님들이 강조하는 이야기라고. 그리고 덧붙인다. 기본적인 교통신호도 믿지 못하고 살아야 하는 사회라고. 이렇게 초등학교를 다닌 사람들이 파란 신호만 믿지 않을까?

이 광고를 처음 들었을 때 나는 '그래, 그렇지..'라고 순진하게 수긍했다. 나도 가끔씩 횡단보도를 이용하면서 그런 경험을 한 적이 있었으니까. 그렇다면 파란 신호를 그대로 믿는 '순진한' 보행자는 어떻게 되는가 라는 생각이 들었다. 오늘의 운세에 따라 결판나나? 그리고 또 생각한 것이, 초등학생들이 선생님한테 '왜 파란 신호를 믿어서는 안되나요?' 또는 '왜 운전자들은 파란 신호에도 그냥 지나가나요?'라고 물으면 선생님은 뭐라고 대답할까였다. 학원선생님한테 물어보라고 하나? 마지막으로 '아, 이제는 초등학교에서부터 사회와 정부와 공동체를 믿지 말도록 가르치는구나'라는 생각이 들면서 뒷골이 오싹하고 소름이 돋았다. 여하튼 라디오 공익광고 하나에 이런 저런 생각을 했다. 쓸 데 없이?

지구상에 생명체가 무리를 이루어 살면서부터 공동체가 그 구성원들에게 제공하는 순기능 중의 하나가 '보호'이다. 그것이 외부의 침략으로부터의 보호이든 약한 자에 대한 보호이든. 이 대목에서 국가론을 거들먹거리는 것은 재미없다. 어쨌든 그래서 공동체 구성원들은 공동체의 보호라는 나름대로의 기대와 신뢰를 가지고 산다. 그것이 파란 신호이든, 기초생활보장법이든 뭔가 내가 어렵고 힘이 들어 도움이 필요할 때 공동체에 의지할 수 있어야 하고, 공동체는 또한 그 의무를 부담해야 한다. 그럴려고 세금 내는 것이다. 그런데, 경찰은 내가 아쉬울 때는 없고, 꼭 내가 잘못했을 때만 옆에 있더라.^^;

그런데, 만약 공동체가 구성원을 제대로 보호하지 못하면 어떻게 해야 하나? 물어보면 되지. 뭐라고? ***, 넌 누구예요? 대답은.. 나도 잘 몰라.. 이래도 계속 참고 살아야 하나? 은둔과 끈기의 민족이라서? 나도 안다. 은둔이 아니고 은근이라는 것을. 내가 왜 은둔이라고 하는지 생각해봐라.

파란 신호를 그대로 믿고 건너갔다가는 바보?병신되기 십상인 세상이 우리 사회이고, 기초생활보장법을 따르는 것보다 그냥 노숙자로 지내는 편이 더 나은 세상이 우리 사회이다. 이런 사회에서 내가 살고 있다. 노벨평화상을 탄 인권대통령. 한숨이 나온다. 선진국은 이렇지 않다는데.

내가 바라는 것은 인권대통령도 아니요, 노벨평화상도 아니다. 그리고 선진국민들이 어떻게 살든 관심 없다. 다만, 나는 '믿어라, 파란 신호'라고 말할 수 있는 사회를 원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작고 약한 정부가 아니라 크고 강한 정부가 나에게 필요하다. 도덕성? 나는 국가와 정부, 공동체가 도덕적이기를 원하지 않는다. 다만, 내가 필요한 것을 제공해주기를 바랄 뿐이다. 그렇지 않으면? 가차없이 부숴버린다. 왜? 나는 참을성이 없거든. 자, 이제 함께 부수자! 싫으면 말고.

정말 오랜만에 자유롭게 몇 자 적었다. 앞의 시평을 보니 이 정도 분량에서 그쳐야 할 것 같다. 뭐, 아쉬우면 다음에 또 쓰지. 쓰지 말라고? 그럼 말지,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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