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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 수 : 7871
2002.05.08 (00:00:00)
노동판결속의 파시즘과 노동자 길들이기

조경배(순천향대)


너무 많이 가진 자들이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때아닌 먹거리논쟁을 벌이고 있다. 원조'보수'인지 원조'보신'이지 알 수 없는 먹성 좋은 그들에겐 대통령이란 지위도 한 자리 해'먹을' 만한 것인가 보다. 역시 미식가다운 고고한 취향이 아닐 수 없다. 그런데 다른 한 켠에선 노동자들에게 법원이 수억원대의 가압류처분을 내렸다. 그 사정은 이러했다. 노동자들이 생존의 터전인 일자리를 지키려고 공기업 '사유화'에 반대하여 파업하는 바람에 영업이 차질을 빚어 수백억원대의 손해가 났고 이에 대하여 한국중부발전(주)등 5개 발전회사가 노동조합의 조합원을 상대로 손해배상청구소송의 전 단계로서 가압류 신청을 한 데 따른 것이다. 법원은 일반 조합원 4천여 명을 상대로 한 150억 원대의 임금채권 가압류 신청은 기각하였으나 노조간부 116명에 대한 12억 4천만 원의 가압류 신청을 받아들였고 이들은 매달 급여 절반이 가압류되었다.

  비록 위선일진 몰라도 지난날 노동자들의 불만을 잠재우기 위해 동원되었던 노사가족주의 이데올로기도 민망스러운지 90년을 전후하여 슬그머니 꼬리를 감추더니 금새 '세계화', '국가경쟁력'으로 말을 바꾸었다. 그 동안 기업이나 국가의 경제성장을 위하여 땀흘려 왔던 수많은 노동자들은 이제 거추장스런 존재로 바뀌었고 인정 사정 볼 것 없이 퇴출되었다. 이 과정에서 눈치 빠른 일부 재벌회사들은 사회분위기를 틈타 좋은 경영상태에도 불구하고 노동자들을 속여 희망퇴직이란 이름으로 정리(?)하는 등 사기행각까지 뒤따랐다. 한바탕의 소용돌이가 지나가자 노동자들은 이런 일련의 과정이 모종의 음모에 의하여 이루어진 것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들지 않을 수 없었고 정신을 가다듬은 노동자들은 벌어지고 있는 일들을 곰곰이 따져 봐야 했다. 그리하여 다시 나선 것이다. '신자유주의 반대', '공기업 사유화 반대', '비정규직 철폐'. 하지만 노동자들을 맞이한 것은 과거와 한 치도 다름없는 형사처벌의 협박과 구속, 가늠할 수도 없는 액수의 손해배상청구서였다. 그 법적 근거는 이런 유의 구조조정은 '고도의 경영상의 결단'(대법원 판결문중에서, 통치행위?)으로서 파업의 목적이 될 수 없고 따라서 이를 반대하는 파업은 불법이라는 것이다. 임금을 올려 달라고 파업을 하는 것은 괜찮지만 그 보다 훨씬 심각한 사태인 직장을 잃을 수 있는 구조조정에 대하여는 반대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정신이 제대로 박힌 사람이라면 아무래도 납득하기 힘든 매우 이상한 논리이다.    

  가진 자들이 노동자들의 파업에 대해서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일이 어제오늘 일은 아니지만 해마다 그 금액이 급증하고 있다. 작년 노동부의 국정감사 자료에 따르면 사업주가 노동조합에게 청구한 손해배상액이 98년에 43억 6,700만원, 99년 196억 4,900만원, 2000년 286억 3,700만원, 2001년 8월 현재 242억 7,800만원으로 최근 4여년 동안 총 774억 100만원에 이른다. 이에 대한 법원의 인정액도 98년 6억 2,500만원, 99년 4,2억1,600만원, 2001년 45억8,700만원, 2001년 8월 현재 70억원으로 총 164억2,800만원에 달한다. 그런데 이 손해라고 하는 것이 매우 요상하다. 사람이 상하였거나 물건이 부숴져서 못쓰게 되었으니 이를 배상해 달라는 것이 아니다. 노동자들이 시키는 데로 일을 했더라면 얻을 수 있을지도 모르는 미래의 이익(영업이익)을 얻지 못했으니 그것을 변상하라는 것이다. 그것도 수억에서 수백억에 이르는 액수를. 노동자들이 평생 아니 자손 대대로 한 푼도 쓰지 않고 모아도 갚기 힘든 돈이다. 그런데 해괴한 것은 실제로 노동자들이 이 돈을 갚는 일은 거의 일어나지 않는다는 점이다(갚을 수도 없겠지만). 사업주들이 대부분 소송을 중도에 취하하거나 적극적으로 집행하지 않는 까닭이다. 그러면 왜 처음부터 받을 생각도 없이 소송을 제기하는가. 속내는 딴 데에 있다. 손해배상의 협박을 통해 파업을 깨는 수단으로 악용하는 것이다. 어떤 경우에는 조합원 한 사람에게 수억원의 청구를 하는 예로 있다. 법리적으로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 공동불법행위에 기한 연대보상책임을 지는 것이 불법행위론이므로. 한마디로 노동자 길들이기. 그것만으로도 충분한 것이다. '업무방해죄'를 비롯한 각종 노동형벌 조항에 근거한 형사고발과 함께 노동자의 파업권을 껍데기로 만드는 효과적인 무기로 동원되고 있는 것이다. 결국 법원은 이런 가진 자들의 장단에 맞춰 아무런 생각 없이 춤추는 꼴이 되는 셈이다.

  그런데 더욱 엽기적인 것은 법적 추론의 파시즘적인 발상법이다. 법리적으로 말한다면 파업은 노동자 개인의 입장에서는 보면 일할 조건이 맞지 않으면 협력하지 않겠다는 근로계약의 정지를 의미한다. 하지만 혼자서는 실효를 거두기 어렵기 때문에 노동조합이란 단체를 만들어(조직성) 동료 노동자들과 함께(집단성) 협력하지 않겠다는 것이 파업이다. 따라서 그 집단성과 조직성이 파업의 본질적인 요소이며 헌법이 보장하는 것도 바로 이 점이다. 그런데도 헌법의 수호자라는 헌법재판소는 그 집단성, 조직성 자체를 범죄의 구성요건(업무방해죄의 '위력')으로 파악한다. 파업은 영업의 자유는 물론이고 산업평화 나아가 국가질서를 교란시키는 '집단적'이고 '조직적인' 행위로서 위법한 행위이지만 이러저러한 법적 요건을 모두 갖춘 경우에만 예외적으로 인정된다는 논리를 편다. 합법적인 권리가 다른 한편에서 범죄행위가 되는 것이다. 아무래도 이상하지 않은가. 나아가 '헌법'상의 권리인 파업권이 합법이기 위하여 '법률'이 요구하는 사항이 너무 많기 때문에 헌법재판소가 생각하는 그러한 파업이란 실로 불가능에 가깝다. 따라서 모든 파업이 불법으로 규정될 가능성이 언제나 존재한다. 이 시점에 오면 파업이 노동자의 권리라는 사실은 완전히 잊혀진다. 이러한 논리의 연장선상에서 파업을 주도·기획한 자에 대해서만 민사상의 불법행위책임을 묻고 단순가담자에 대해서는 묻지 않는다고 하는 매우 괴이한 노동판례와 학설이 형성되었다. 왜냐하면 파업에 참가한 수만 명의 노동자들을 모두 감옥으로 보내거나 손해배상청구를 하긴 어쩐지 어색하고 감당하기 어려우므로. 결국 조합간부와 조합원의 분리·통제라는 노동통제를 위한 전략적 차원에서의 접근방식이 채택되는 것이다. 이해관계 당사자간의 공정하고 합리적인 조정이라는 민사법상의 자유주의적 사고에도 미치지 못하는 논리이다. 과도한 정치적 국가주의와 경제적 자유지상주의의 결합이 빚어 낸 모순이 아닐 수 없다.

  노동자들의 파업을 손해배상이라는 협박수단을 통하여 저지하겠다는 발상은 전혀 새로운 것이 아니다. 영국의 선배 자본가들이 100년도 넘은 과거에 이미 써먹든 낡은 수법이다. 파업에 대한 형사처벌이 금지되자 그 대안으로 등장했던 것이다. 그래서 다시는 그런 수법을 써먹지 못하도록 법률로 못박았다. '쟁의행위의 기획 또는 수행에 있어서 2인 이상의 합의 또는 결합에 기초하여 한 행위는 그것이 그 합의 또는 결합이 없었더라도 제소할 수 있는 경우가 아니면 제소할 수 없다'(1906년). 쉽게 풀이하면 노동자들이 자기의 정당한 이익을 지키기 위하여 파업을 하더라도 여럿이 같이 했다는 이유로 불법행위가 되는 것은 아니란 말이다. 이를 두고 영국노동법 이론사에서는 파업권이 비로소 공모법리로부터 해방되었다고 평가한다. 헌법재판소는 이 정도의 논리도 갖추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파업은 그 배경이 되는 구체적인 조건에 따른 상황논리가 지배하기 때문에 매우 다양한 행위들로 구성된다. 여기에는 노동력제공의 거부와 같은 소극적인 행위를 비롯하여 파업 불참자들의 조업을 방해하거나 제3자와의 거래를 방해하는 적극적인 행위가 수반되기도 한다. 심지어는 노사간의 감정적이고 우발적인 충돌도 다반사로 일어난다. 따라서 일부의 위법한 행위가 있었다고 해서 파업 자체가 불법행위라는 등식이 성립할 수는 없는 것이다. 원래 노동쟁의란 노사가 서로 상대방의 경제상의 자유를 직접적으로 제약을 가하거나 침해하고 경제적 손실을 상대방에게 입힘으로써 상대방에게 자기의 주장을 관철하고자 하는 힘의 대항관계라는 구조를 가지고 있다. 파업은 기존의 질서를 존중하는 것이 아니라 과거의 바람직하지 못한 안정과 평화를 깨고 새로운 질서를 정착시키는 과정이다. 그것을 헌법이 승인하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다가 영업의 자유라는 구시대적인 자유지상주의적 잣대를 들이밀어서는 매우 곤란하다.

  지난 십 수년간 군사파시즘 시절 노동자들을 감옥으로 내모는 법원을 '권력의 시녀'라고 비난하면서도 그나마 절대적인 억압상황의 탓이라는 동정여론도 없지는 않았다. 절대 권력이 보수주의자들의 과점체제로 전환된 지금 과거와 같이 사법부의 독립을 위협하는 리바이어던은 사라졌다. 하지만 절대적인 경제적 자유주의와 정치적 국가주의가 결합한 파시즘적 사고는 사회 곳곳에서 여전히 인간의 존엄과 민주주의의 가치를 억압하고 있다. 파업에 대한 법원의 손해배상판결도 이러한 비판으로부터 과연 자유로울 수 있는지 묻고 싶다. 파업은 헌법이 보장하는 노동자의 기본적인 권리이다. 군사파시즘이 빼앗아 간 것을 이제 그 주인인 노동자들에게 도로 돌려주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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