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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04.16 (00:00:00)
테러방지법과 월드컵

김종서(배재대 교수, 헌법)


나는 축구를 대단히 좋아합니다. 축구를 잘 하지는 못 하므로 게임을 하는 것 보다는 특히 경기를 보는 것을 좋아한답니다. 축구하는(축구부가 있는) 고등학교를 졸업해서인지는 몰라도 고교시절은 물론 대학때도 축구경기장을 들락거렸고, 지금도 직접 운동장을 찾아서 보려고 노력하고 있지만, 글쎄요, 쉽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TV중계는 왠만하면 보려고 합니다. 특히 국회의원 선거처럼 4년 주기로 돌아오는 월드컵 게임은 제가 학수고대하는 최대의 이벤트입니다.

월드컵에 대하여 지나친 국가주의, 상업주의 등 많은 비판이 있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만 그것을 지켜보면서 느끼는 감탄, 찬사, 아쉬움과 아름다움은 그런 비판이 내가 월드컵을 좋아하는데 아무런 장애가 되지는 못한다고 솔직히 고백해야겠지요. 내가 어느 정도 월드컵 경기에 애착을 가지고 있느냐 하면, 월드컵 개막전부터 결승전까지 볼 수 있는 한 전 경기를 생방송으로 봅니다. 처음 월드컵 경기를 접한 것은 내가 초등학교(당시는 국민학교) 3학년 때인 1970년이었고, 당시 멕시코 월드컵을 장식했던 브라질을 비롯한 세계 각국의 멋진 스타들의 모습은 내 마음을 완전히 사로잡았답니다. 흑백 텔레비전으로 녹화된 방송을 본 것이지만 동네축구만 해 오고 또 보아 왔던 내게는 진짜 어떤 예술작품보다 멋진 장면들로 기억에 남아 있습니다. 그리고 그 이후로 4년마다 월드컵을 기다렸고 82년 칼라TV로 처음 월드컵 경기를 보았을 때의 그 감동이란 뭐라 말할 수가 없었답니다. 90년 이후로는 전 경기를 녹화해서 다시 보곤 합니다. 컴퓨터 실력이 짧아 아직 실행에 착수하지는 못하고 있습니다만, 언젠가는 멋진 장면들을 동영상으로 편집하여 만들어봐야겠다고 생각하고 있기도 합니다.

그런데 그 월드컵이 드디어 이 땅에서도 열리니 얼마나 황홀한 순간입니까? 최소한 5경기 정도는 볼 생각을 하고 있는데 3등석으로만 따져도 예산이 만만치는 않군요. 하지만 새로 지은 축구전용경기장에서 세계의 쟁쟁한 선수들의 뜨거운 호흡과 함께 연출될 명승부의 현장에 함께 할 수 있다면 그 정도는 충분히 감수해야겠지요. 너무나도 기다려지는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런데 98년 프랑스 월드컵 이후 4년을 기다려온 이런 저에게 심각한 고민이 하나 생겼습니다. 그건 바로 월드컵의 성공적이고(여기까지는 좋습니다) 안전한-이게 문제입니다- 개최를 위하여 법을 하나 만든다는 것 때문입니다. 이른바 테러방지법! 테러를 막는다는 데야 누가 반대할 것입니까? 사람의 소중한 생명과 재산을 파괴하는 행위를 막는 것에 반대할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게 바로 테러방지법이라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러나 내가 읽어 본 테러방지법은 그런 게 아니었습니다(이하는 한겨레신문. 2001. 12. 1자에 '테러방지법과 보안법'이란 제목으로 기고했던 글을 약간 수정한 것입니다).



대테러센터를 국가정보원에 두고, 그 조직을 국정원장이 정하며, 대테러센터의 공무원에게는 사법경찰권이 부여되더군요. 온갖 공작정치와 불법적 수사권 남용으로 수사권을 엄격히 제한 당했던 국정원이 그 수사범위를 '획기적으로' 넓힌다는 것은 암울했던 7,80년대를 떠올리게 하고도 남음이 있었습니다. 그 내용을 들여다보면 더욱 섬뜩합니다. 거기에는 이 땅에서 사상과 표현의 자유에 재갈을 물려 왔던 인권 유린의 대명사, 국가보안법의 더러운 악취가 물씬 풍기고 있기 때문입니다. 불확정개념, 과도한 형벌, 불고지죄, 특별형사절차 등이 그것입니다.

법안은 "설립목적 여하를 불문하고 그 구성원이 지속적으로 테러를 행하는 국내외의 결사 또는 집단"을 "테러단체"로 규정하고 테러단체를 구성하거나 이에 가입하면 그 지위에 따라(수괴, 간부, 기타) 2년 이상 사형까지 이르는 처벌을 가합니다. 그리고 이는 국가보안법의 반국가단체 구성 가입 부분과 완전히 동일하더군요. 그런데 사실 테러단체의 개념에 따르면 단체를 만들었는데 사후에 테러단체가 될 수는 있어도 테러단체를 구성하는 일은 불가능합니다. 이처럼 불가능한 행위마저 처벌하려고 하는 것이 바로 국가보안법과 일맥상통하는 이 법안의 본질이며, 이는 테러단체 가입의 지원, 권유 또는 선동에 대한 처벌과 함께, 테러단체라는 덧칠을 하여 사회단체에 대한 일상적 감시활동을 강화하겠다는 뜻으로 볼 수밖에 없습니다(국정원 공보관은 시민단체의 주장을 모두 최종법안에 반영하였다고 했으나, 이러한 점들은 최종안에 전혀 반영되지 않았고 이로 미루어 이것이야말로 이 법안의 핵심요소가 아닐까요?).

불고지죄의 망령도 어김없이 등장합니다. "테러의 계획 또는 실행에 관한 사실을 알고 이를 관계기관에 신고함으로써 미리 방지할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신고하지 않는 경우"도 처벌합니다. 제목만 "테러범죄의 미신고"로 바뀌었을 뿐 그 실질이 "불고지"임은 명백합니다(실제 원안에서는 불고지로 되어 있었습니다). 테러의 방지가능성에 대한 부분이 새로 삽입되었지만, 실제로는 모든 미신고가 방지가능성이 있었던 경우로 인정될 것입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허위신고도 처벌된답니다. 테러신고를 했으나 테러가 아닌 경우로 밝혀지면 처벌된다는 것일까요?

테러방지법의 또다른 특징은 극도의 중형과 가중처벌입니다. 사형에까지 처해지는 범죄를 2개나 규정했음에도 불구하고(테러단체 구성, 병원체를 이용한 테러), 다른 법률에 의해 처벌되는 행위의 형량을 2분의 1까지 가중하고 있음은 형벌인플레의 극치라고 해야 할 것입니다. 행위의 태양에 차이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오로지 각종의 주의나 주장을 전파하기 위해 행해졌다는 이유만으로 가중 처벌을 할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비유가 우습긴 하지만, 심지어 국가보안법에서조차 다른 법률 소정의 행위에 대한 가중처벌은 "반국가단체의 구성원 또는 그 지령을 받은 자"의 행위로 국한되어 있지 않은가요?

더욱 놀라운 것은 뒤를 따르는 특별형사소송절차 부분입니다. 통신비밀보호법상 허가없는 감청 등 긴급통신제한조치의 시한을 기존의 48시간에서, 외국인의 경우 무려 7일로 연장하고 있습니다. 이는 외국인에 대한 동향관리 및 출국조치 규정과 함께 한국에 체류중인 외국인을 모두 잠재적 범죄자로 인식하는 또 다른 테러이며, 이러한 인식을 수사기관은 물론 일반 국민들 사이에서도 급격히 확산시키는 반인권적 결과를 초래할 것으로 우려되는 부분입니다.

이처럼 테러방지법안은 바로 국가보안법의 새끼법, 또는 쌍둥이법입니다. 반국가단체를 테러단체가,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외교관계나 사회적 불안이 대신하는 것뿐입니다. 테러단체에 대한 찬양 고무죄가 없는 것이 신기할 정도입니다. 아니, 이대로라면 국가보안법의 대체입법이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테러방지법의 테러는 여기서 그치지 않습니다. 운영과 조직이 공개되지 않는 테러진압 특수부대가 군에도 설치되며(국방부장관도 설치권자입니다), 대테러센터의 장, 즉 국정원장은 이 부대의 출동을 요청할 수 있습니다. 군의 출동 근거를 마련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국정원이 출동여부를 좌우하는 셈이지요. 여기에 이르면 군사정부의 재판이라고 해야 하지 않을까요? 더욱 위험한 것은 국가중요시설 등의 보호 명목으로 출동하는 군병력이 사법경찰관의 직무까지 수행한다는 점입니다. 그러나 군은 민간인에 대해 경찰력을 행사하도록 훈련되거나 조직된 기구가 아닙니다. 따라서 그 명목이 무엇이건 전시도 아닌 평시에 군이 경찰력을 행사하는 것은 위헌입니다. 우리 헌법이 군대가 경찰권을 행사할 수 있는 경우로 예정하고 있는 것은 오로지 계엄뿐이기 때문입니다. 테러방지를 명목으로, 헌법에 위반하여 군과 경찰의 경계를 허물게 된다면, 이는 결국 '계엄선포없는 계엄상태'로 이어지게 될 것이다.

이 정도가 되면 테러의 개념에 다음 하나를 추가해야 할 것입니다. "국가기관이 권력강화를 위하여, 테러방지를 명목으로 국민의 인권을 유린하거나 위협하는 행위". 요컨대, 테러방지법은 정보기관과 국가보안법과 계엄을 버무려 놓은 국가테러의 결정판입니다.



이런 법안을 만들어 국회에 제출해 놓았으니 국민들이 가만 있을리 있나요? 시민단체와 인권단체는 모두 난리가 났습니다. 지난 11월부터 시작된 인권, 시민 단체들의 반발이 수그러질 기세를 보이지 않자 최근 민주당에서는 이 법을 한시법으로 제정하겠다고 한발 물러섰습니다. 그러나 얼마나 우스운 일입니까? 월드컵을 이유로 한시법을 만든다면 유니버시아드, 아시안게임, 동아시아게임, 동계올림픽, 엑스포 등 앞으로 한국에서 개최되기로 예정되어 있는 어떤 국제행사라도 한시법을 연장할 사유가 되지 말란 법은 없을 것입니다. 한번 만든 법을 폐지하기가 얼마나 어려운지는 국가보안법을 보면 잘 알 수 있습니다. 김영삼 대통령도, 김대중 대통령도 야당시절 국가보안법을 폐지해야 한다고 외쳤지만, 그들이 대통령이 되고 나서 국가보안법은 더욱더 위력을 떨친 일을 잊어서는 안됩니다. 한시(時)법이든 한분(分)법이든 태어나서는 안될 법을 만들어서는 안됩니다. '한시법' 주장도 먹혀 들지 않으니까 이제 "아이엠에프 및 세계은행의 방한과 유엔안보리의 결의 내용"을 들고 나오면서 테러방지법의 제정의 불가피성을 주장하고 있기도 합니다. 그러나 테러 행위에 대한 자금줄 동결과 차단을 핵심으로 하는 유엔안보리의 결의내용은 현행 국내법으로 대처 가능하다고 이미 지난해 연말 정부 스스로 밝힌 바 있을 뿐 아니라, 기타 안보리 결의가 요구하는 조치들은 관련 국가기관들이 자신의 역할에 충실하면 충분히 대응가능하다는 것이 국가인권위원회를 비록한 여러 유수한 기관과 단체들의 의견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정원과 민주당이 온갖 허무맹랑한 이유를 들어 이 법안의 제정방침을 포기하지 않는 것은 "국민들에 대한 일상적 감시체제의 확립"이라는 불순한 동기를 너무나 분명하게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월드컵을 안전하게 개최한다는 미명하에 허가없는 감청을 하고, 중무장한 군인들이 거리에 나와서 불심검문을 하고, 외국인에 대한 차별을 하는 일은 결코 문명사회에서 벌어질 수 있는 일들이 아닙니다. 이런 법 아닌 법이, 법의 이름으로, 단 1초라도 존재하게 해서는 안됩니다.



이제 마무리를 해야겠습니다. 월드컵 이야기로 시작된 것이 테러방지법으로 과도하게 옮아 간 것 같군요. 시작을 월드컵으로 했으니 마무리도 월드컵으로 하는 것이 어울리겠지요? 제 생각은 이렇습니다. 내가 월드컵을 진짜 좋아하고 사랑하지만, 만약 그 월드컵을 우리나라에서 개최하기 위해서 테러방지법을 만들어야 한다면, 축구 팬들에게는 죄송스러운 말이지만 차라리 월드컵을 깨끗이 포기하는 것이 나을 것입니다. 월드컵으로 인한 경제적 이익이 몇백, 몇천억이건간에, 국민들에 대한 감시와 인권 유린이 그러한 경제적 이익의 대가로 지불되어야 한다면, 그런 월드컵은 개최하지 않는 것만 못할 것입니다.

우리나라 말고 어디 다른 나라에서, 테러방지법이 없어도 월드컵을 열 수 있는 그런 나라에서 벌어지는 월드컵 경기를 그냥 옛날처럼 TV로 보는 것으로 만족하는 편이 훨씬 나을 것입니다. 만약 다른 나라에서도 월드컵을 개최하기 위하여 테러방지법을 만들어야 한다면 아예 월드컵 경기 자체를 없애버리는 것이 나을 것입니다. 우리나라에서도 문제되는 테러방지법이라면 다른 나라라고 해서 문제가 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미국 등지에서 만들어진 반테러법도 본질은 모두 마찬가지입니다). 인권 문제는 보편적인 것이니까요. 어쩌면 TV테러(?)를 내세워 국내중계방송을 하지 않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렇다면 TV중계방송을 보는 것도 기꺼이 포기하겠습니다.



나는 오늘도 몇 장 남지 않은 월드컵 경기 입장권 판매 현황을 점검합니다. 테러방지법의 제정 기도가 포기되었다는 소식이 들려오기를 기다리면서 말입니다. 그러나 아마도 월드컵 경기장 입장권을 끝내 구매할 수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 것 또한 사실입니다. 무슨 귀신이 씌었는지 테러방지법은 꼭 제정해야 한다는 이야기가 정부여당에서 계속 들려오고 있고 야당이라고 해서 이에 반대한다는 이야기는 전혀 들리지 않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지금도 인권단체들의 반대운동은 계속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운동은 반드시 성공해야 한다고 믿습니다. 테러방지법 반대운동에 조금이라도 보탬이 되길 바라면서 이 글을 씁니다.

멋진 선수들, 각본 없는 드라마, 감동의 명승부로 가득찬, 내가 진정 사랑하는 월드컵을 테러방지법의 이름으로 더럽히는 일은 이제 그만두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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