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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04.02 (00:00:00)
꽃샘추위와 황사가 휘몰아쳐도 봄날은 간다


이창호(경상대 교수, 형사법)


어느 시인은 4월을 잔인한 달이라고 읊조렸건만, 그래도 봄은 희망의 계절인가보다. 진달래가 온 산천을 붉게 물들이고, 연못가의 수양버들이 파릇하게 여린 잎을 내밀고 있다. 자연의 봄은 우리들의 마음에 밝은 소식을 전하건만, 인간사회의 봄은 아직도 먼 거리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 것 같다. 자연의 봄은 우리에게 어떤 모습으로 다가오는가? 비록 꽃샘추위나 황사바람처럼 우리를 짜증스럽게 하는 것도 있지만, 새싹이 돋아나듯이, 아지랑이가 피어오르듯이, 매화가 꽃봉오리를 터뜨리듯이 항상 조용한 자태로 소리 없이 다가와서 희망을 예고한다.
최근 정부가 발전노조 조합원을 대량으로 해고하고, 전국공무원노조의 결성을 경찰의 군홧발로 진압하는 것은 봄날에 경험하는 꽃샘추위가 아니면 저 멀리 고비사막에서 불어오는 황사가 아니겠는가? 피어오르는 꽃봉오리를 꽃샘추위가 얼어붙게 하지 못하듯이, 역사성과 정당성을 갖는 공무원노조의 결성은 경찰의 폭력적 개입이나 행정기관의 징계라는 압력으로도 막을 수 없는, 자연의 법칙과도 같은 역사의 대세이다.
1948년 대한민국 건국 당시부터 헌법이나 국가공무원법은 공무원이 노동자임을 자연적인 것으로 인정하고, 공무원의 노동3권에 대한 일체의 제약을 하지 않았었다. 그러나 1961년 늦은 봄날 황사처럼 느닷없이 들이닥친 군사쿠데타로 공무원의 노동기본권은 완전히 박탈당하고 말았다. 공무원들에게 지난 40여 년은 한 마디로 억압과 굴종을 강요받은 혹독한 겨울이었다. 혹독한 겨울에도 대지는 새 기운을 잉태하여 키우듯이, 마침내 2002년 봄날에 공무원들은 억압적 법체계의 사슬을 끊고, 전국공무원노조라는 새싹을 돋아나게 만들었다.
공무원노조의 정당성은 역사적 당위성에서만 찾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어떤 제도이든지 그 정당성의 근거는 오로지 민주주의의 원리에 있다. 민주주의란 국민이 주인이라는 원칙이며, 공무원이라는 종의 주인은 국가가 아니라 바로 국민이다. 공무원노조의 출범은 지금까지 권력의 종노릇하던 공무원들이 진정한 주인인 국민을 섬기기 위한 방향전환의 신호탄이다. 그 동안 권력의 끝자락에 매달려 국민 위에 군림하려 하던 위치에서 벗어나, 이제는 그들 스스로 '국민을 위한 행정'을 다짐하고 있다.
그런데도 정부는 공무원노조의 결성을 불법행위로 규정하고 형식적인 법논리로 탄압을 자행하고 있다. 하지만 형식적인 법논리를 끝까지 관철시키자면 공무원노조의 설립을 방해하기 위하여 경찰력과 행정력을 총동원한 행위는 엄밀한 의미에서 직권남용에 해당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서울로 상경하려던 공무원들을 일선 경찰서에 강제연행한 행위는 형법상의 체포감금죄에 해당할 수도 있다.
합법과 불법의 교착은 어느 시대에나 존재하여 왔다. 국민의 혈세로 조성된 천문학적인 액수의 공적 자금이 유실되어도 그것을 집행한 고위 공직자들은 합법적인 법집행이라는 이유로 면책을 받고 있다. 공무원노조의 결성이 불법이라면, 불법단체인 공무원노조의 결성을 막지 못한 공직자들 모두 직무유기의 혐의를 벗어날 길이 없다. 합법적인 노동조합의 결성을 미리 준비하지 못한 책임이 그들에게 있는 것이다. 미리 노동관계법을 개정하여 불법적인 공무원노조의 결성을 막았어야 할 책임이 그들에게 있지 않은가? 공무원노조의 허용은 대통령의 공양사항이 아니었던가?
꽃샘추위나 황사바람과 같은 자연현상은 그것을 막을 수 있는 인간의 한계가 있지만, 불법적인 공무원노조의 출범과 같은 인간사회의 현상은 충분히 예견할 수 있고, 또 합법적인 제도화의 가능성이 항상 존재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리 제도화의 준비를 하지 못하였다면, 그 책임은 정부에 있다. 그럴 경우에 통상 인정되는 것이 법외노조라는 형태의 비법조직인 것이다. 법외노조의 활동에 대해서는 정부는 방관자적 태도로 임하면서도 합법화의 길을 터 주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꽃샘추위가 잠시 기승을 부리고 황사바람이 한때 불어오더라도 봄은 봄이다. 봄에 돋아난 새싹이 여름이면 무성하고 가을이면 열매를 거두듯이, 새롭게 출범한 공무원노조 또한 머지 않은 장래에 합법성을 쟁취하고 역사발전의 주인공의 위치를 차지할 것이다. 황사바람이 밀려오는 우울한 봄날에 우리가 희망을 느끼는 이유의 하나는 바로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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