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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03.22 (00:00:00)
탈북자 - 스페인 대사관

정태욱(영남대 교수, 법철학)


탈북자들의 인생유전과 그들의 용기가 매스컴을 달구었다. 나는 이를 보며 괜히 미전향장기수의 북송이 연상되었다. 그로부터 얘기를 시작해 보자. 탈북자들은 영웅인가? 미전향장기수들과 비교하자면, 그들은 영웅의 범주에 들 수 없다. 우리 사회가 그들을 집중조명하고 스타로 대하는 것은 적절치 않고, 오히려 그들 자신에 부담이 될 수 있다.

그들은 영웅이 아니라 오욕칠정의 자연스런 성정을 가진 평범한 인간들이다. 그러나 비록 그들은 영웅은 아닐지언정 그들의 인생역정은 하나의 인간승리임에는 틀림없을 것이다. 그러면 무엇이 그들의 인생 자체를 드라마틱한 것으로 만들었는가? 바로 북한 체제 자체일 것이다. 미전향장기수들을 체제의 영웅으로서 그렇게 열렬히 환영하였던 북한 체제는 오히려 평범한 인간들은 인간답게 살기 어려운 그러한 사회였던 것이다. 북한 체제의 이상은 높지만, 그 현실은 오히려 저열하다.

그러한 이율배반은 곧 북한 권력의 위선이며, 무책임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그렇다고 북한 체제의 붕괴가 해법인가? 미국의 LA타임즈의 보도에 따르면 이번 소위 '기획망명'을 주도한 국내외 인권운동가들의 최종목표는 북한 체제의 붕괴에 있다고 한다.

북한 인권문제의 공론화 및 난민지위의 인정의 국제적 공론화라는 그들의 주장 속에도 바로 북한 체제에 대한 공격의 무기가 숨겨져 있다고 보면 지나친 혐의두기인가? 북한 체제의 붕괴는 무엇을 뜻하는가? 나는 한반도의 혼란이 없는 북한 체제의 붕괴를 생각할 수 없다. 그리고 한반도의 혼란은 무엇을 뜻하는가? 나는 바로 미국의 개입이 떠오른다.

악법질서가 무질서보다 낫다고 하는 법철학의 역설적 명제는 이 경우에 바로 적용될 수 있는 것은 아닐까? 북한 체제의 붕괴는 곧 현재의 북한의 억압체제의 부정의와는 비교할 수 없는 비참과 공포 그리고 잔인함으로 귀결될 수 있다.

그러면 독자들은 반문할 수 있을 것이다. 도대체 당신의 생각은 무엇인가? 북한의 붕괴가 아니라, 북한 체제의 '진화' 혹은 점진적 체제개방과 변화다. 그런 관점에서 탈북자들을 위해서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 나는 대북식량지원과 식량인프라의 지원이라고 본다.

나는 탈북자들 그리고 북한주민의 인권문제를 열성적으로 외치는 이들 가운데, 현 정부가 의도한 대북 식량지원에 대하여 보수강경세력이 반대하였을 때, 그에 대하여 진지한 반응을 보인 이들이 얼마였는지 알지 못한다. 또 북한 농업인프라를 위해서도 절실한 전력지원의 문제에서 우리 정부의 우호적인 태도에 미국이 강력히 반대하고 또 우리 내부의 수구세력이 그에 반대하여 결국 지원이 이루어지지 않고 있으며, 그것이 햇볕정책의 북한에 대한 호소력을 반감시키고 있다는 사실에 대하여 그 인권단체들 사이에서 어떤 문제제기가 있었다는 말을 나는 들어 본 적이 없다.

사람들은 그러면, 당장 중국에서 정처없이 떠돌고 있는 탈북자들에 대하여는 신경 쓰지 않아도 좋다는 말인가라고 반문할 수 있다. 물론 그들의 처량하고 위태로운 상황을 그대로 방치하는 것은 인권이나 동포애의 요청에 모두 반하는 것이리라.

그러나 우선 중국에 탈북자들의 난민지위인정을 요구하는 것은 무리한 것으로 보인다. 우선 탈북자들이 대체로 경제적 난민이라는 차원에서 볼 때, 난민의 지위의 인정이 용이치 않다. 그리고 설사 북한의 수령체제에 대한 반대자들이라고 할 때에도, 난민의 지위의 인정은 그 체류국의 결정사항인데, 만약 중국이 탈북자들에 난민의 지위를 부여하게 되면, 중국은 북한과의 동맹관계를 심각하게 침해하는 것이 될 수도 있다. 그리고 난민이라는 지위를 인정하게 되면 중국 내의 다른 소수민족의 불만과 항의에 대하여 중국 당국은 더 이상 그들을 통제할 명분을 잃게 될지도 모른다.

이렇듯 중국에 탈북자를 난민으로 인정할 것을 요구하는 것은 중국의 주권에 대한 침해일 수 있다. 물론 인권을 위하여 중국은 자신의 주권의 배타성을 양보하는 것이 바람직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다른 길이 있다면 굳이 타국의 주권에까지 간섭하면서 목적을 관철하려들 이유는 없을 것이다.

그 다른 길이란 무엇인가? 보다 조용한 해결이다. 즉 탈북자들을 북한으로 강제송환하지 않는 것, 그리고 탈북자들이 남한으로 이전하는 데에 중국과 남한 당국이 북한의 암묵적 승인 하에 협조하는 것이다. 사실 원칙적으로 말하자면 탈북자 문제는 기본적으로 남한과 북한의 문제이다. 남한이 미전향장기수를 북으로 자유롭게 보냈듯이, 북의 체제를 '혐오하여' 남으로 오기를 원하는 주민들은 북한이 놓아주는 것이 상호성에도 맞고 인도주의에도 부합할 것이다. 중국에 큰 부담을 안겨주는 방법은 상책이 못되는 것이다.

사실 지금까지 탈북자들의 입국은 매년 증가하고 있다. 1999년 1백48명, 2000년 3백12명, 2001년 5백83명으로 매년 두 배로 늘어나고 있는 셈이다. 이 숫자는 중국내 탈북자의 전체규모와 그들이 겪는 고통에 비하면 보잘 것 없을 수 있으나, 그러나 그 증가 추세는 의미있는 것이다. 물론 탈북자들의 입국에 중국과 우리 정부가 얼마나 성의를 보이고 있는지는 의문이다. 이번 탈북자 사태가 바로 그런 점에서 우리 정부의 경각심을 불러일으킬 수 있었다면 그것은 좋은 효과로 볼 것이다.

그러나 한반도의 불안정한 상황을 고려하면, 탈북자들의 남한으로의 이주의 허용은 심각한 결과를 야기할 수도 있다. 이주자들의 안전을 어떻게 보장할 것인가? 그 보장을 위하여 미군이 개입한다면 어떻게 될 것인가? 한반도의 평화정착에 대한 전기가 마련되지 않은 상태에서 탈북자들의 이주는 한반도에 큰 재앙을 부를 수도 있다. 사람들은 우리 정부의 조용한 해법을 비판하지만, 거기에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는 것이다.

끝으로 첨언하자면 이번 사태로 말미암아 중국에 있는 다른 탈북자들은 오히려 더 어려운 처지에 빠지고 있다. 물론 장기적으로는 그들 모두에 득이 되는 사건이었다고 자위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예컨대 남한으로 올 생각이 없이 그저 잠정적으로 중국에 와서 호구지책을 얻고 있을 뿐인 다른 많은 탈북자들에까지 그 악영향이 미친다면 그것은 누구의 책임인가?

나는 이번 사태에 대하여 아주 기뻐하고 또 자신들의 공을 자랑스럽게 내세우는 인권운동가들을 보면서, 그들이 생각하는 인권은 도대체 누구의 이익을 위한 인권인가 생각해 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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