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o

한국어

연구회 마당

시평

 

민주법연 회원들이 작성하는 시평입니다.
이 게시판은 RSS와 엮인글이 가능합니다.
로그인을 하시면 댓글을 쓰실 수 있습니다.
이 게시판은 최근에 변경된 순서로 정렬됩니다.
* 광고성 글은 바로 삭제되며, 민주주의법학연구회의 설립취지에 어긋나는 글은 삭제 또는 다른 게시판으로 이동될 수 있습니다.
글 수 194
조회 수 : 9445
2001.09.25 (00:00:00)
위협받는 국제법의 현주소


정경수(상지대 강사, 국제법)


세계무역센터와 펜타곤에 대한 여객기 충돌 테러가 발생한 지 만 2주가 지났다. 사건의 충격은 시간이 경과하면서 이제 테러 그 자체에 관한 사안과는 판이한 양상이 전개되고 있음을 목도한다. 사건 발생 직후, 대미테러에 대한 보복 다짐이 9월 11일 테러에 대한 '전쟁행위' 규정, 미 상·하원의 무력사용 위임안 승인, 예비군 동원령, 국가비상사태 선포, 준전시상태 돌입 등이 그것이다. 이제 사태의 초점은 테러 자체에 대한 규탄이 아니라 전쟁이다. 우리는 전쟁 일변도로 치닫는 미국의 일련의 행동을 지켜보며, 상황인식에 대한 재검토와 미국의 행위에 대한 법적 평가의 필요성을 제기받고 있다.



무엇이 문제인가. 이번 사건은 크게 두 단계로 나뉘어 고찰되어야 한다. 하나는 테러 그 자체에 대한 평가와 다른 하나는 그에 대한 미국의 대응이다.



먼저 이슬람근본주의자들- 미국은 그들 가운데 오사마 빈 라덴의 소행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이 뉴욕과 워싱턴에서 벌인 테러공격에 대하여 살펴본다면, 문제는 의외로 간단하다. 그들의 행위가 국제법상 금지된 테러라는 점, 전세계적 공분을 사고 있다는 점 - 물론 세계를 지배하는 미국의 경제력과 군사력의 상징이 붕괴되었다고 환호성을 치는 이들이 없는 것은 아니다 - , 그 결과 유엔은 물론이고 각국 정부로부터 테러에 대한 비난과 희생자들에 대한 위로성명이 나오고 있다는 점에서 국제법적으로나 도의적으로 간명한 답이 도출된다. 그리고 국제테러, 특히 민간여객기를 대상으로 한 항공기범죄를 규율하는 국제법규는 비교적 잘 확립되었다. 그렇다고 그에 대한 보편적 관할권이 인정되고 있지는 않다는 점을 무시해서는 아니 될 것이다.



이와는 별개로 다음과 같은 새로운 논제가 제기될 수 있다. 이번 테러가 기존에 벌어진 테러와는 구별되는 새로운 형태의 테러라는 점에 주목하여, 이를 국제법상 금지된 반인도적 범죄 또는 집단살해로 간주할 수 있는가이다. 이와 관련하여 항공기충돌테러가 다량의 항공유를 실은 여객기 자체를 공격무기로 사용한 점, 불특정의 민간을 직접적 대상으로 이루어진 조직적 행위라는 점, 그 결과 수천명의 인명에 대한 치명적인 손상과 정신적·육체적 온전성에 중대한 고통을 의도한 비인간적인 행위라는 사실로부터 반인도적 범죄 및 집단살해범죄의 해당가능성을 높게 하고 있다. 국제범죄로서 반인도적 범죄자 및 집단살해범죄자들에 대한 형사처벌의 실체법적 근거는 국제법상 충분히 확립되어 있다는 점에 대한 이론은 없다.



이와 같이 이번 사안에 대한 명쾌한 법적 접근이 복잡한 양상을 보이며, 그 논의수준을 180도 전환시키는 것은 다름 아닌 미국의 대응이다. 앞서 지적한 바와 같이, 미국은 세계무역센터와 펜타곤에 가해진 테러에 대하여 군대를 동원한 무력응징을 분명히 하고 있다. 문제는 이러한 무력사용이 국제법적으로 과연 허용될 수 있는지의 여부이다.



논의의 초점을 분명히 하기 위하여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점은 현대국제법상 무력사용이 불법화되어 있다는 사실이다. 무력사용금지원칙은 유엔 헌장은 물론이고 일반국제법상으로도 확립되어 있으며, 다만 자위와 유엔 헌장 제 7 장에 따른 강제조치의 경우에는 예외이다. 따라서 미국의 무력사용이 이러한 원칙과 그 원칙에 대한 예외에 비추어 타당한 지를 미국의 무력사용의 대상, 수단을 중심으로 살펴보아야 할 것이다.



현재 미국은 무력사용 대상을 점차 확대시키려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라덴 및 그 추종자들뿐 아니라 그를 비호하고 있는 것으로 간주되는 아프카니스탄 및 이번 사건과의 관련성을 거론하며 이라크 역시 군사공격의 대상으로 설정하고 있다. 그러나 개인과 국가에 대한 군사력 동원은 차원을 달리하므로, 이를 각각 나뉘어 검토해야 한다. 우선 라덴과 그 추종자들에 대한 군대 동원을 보자. 이들을 체포하기 위한 목적으로 아프카니스탄에 특수부대를 투입하는 것은 명백히 다른 나라의 주권을 침해하는 행위이다. 1960년대 이스라엘은 나치전범 아이히만을 아르헨티나에서 체포하였으나, 이는 당사국의 동의를 받지 않고 행함으로서 주권침해행위라는 비난을 받은 바 있다. 또한 예비적 자위권의 행사로서 라덴 및 그 추종자들의 아프카니스탄 내 근거지에 대한 폭격 역시 국제법적으로 허용되지 않는다. 이와 유사한 사례는 1975년 이스라엘에 의하여 자행되었다. 이스라엘은 당시 팔레스타인해방기구가 소재하고 있는 튀니지에 대하여 전폭기를 동원한 공습을 감행하였다. 그러나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는 14대0의 표결로 이스라엘의 공습을 명백한 국제법 위반이라고 결정(유엔 안보리 결의 573)한 바 있다. 당시 미국은 이 결의에서 기권하였다.



개인을 대상으로 하여 군대를 동원하는 경우와 구분하여 범죄혐의자가 소재하고 있는 국가를 대상으로 무력을 사용할 수 있는가 역시 국제법적으로 허용된다고 할 수 없을 것이다. 보복공격의 대상을 무한히 확대하려는 목적에서 이라크를 거론하는 것은 차치하고, 아프카니스탄의 경우에서도 타당하다. 앞서 거론한 1975년 이스라엘의 튀니지 공습사건에서 유엔 안보리는, 튀니지의 영토가 테러리스트의 기지로 사용되고 있고 그 기지에서 타국에 대한 테러가 준비되고 있으며 그러한 테러는 이스라엘을 대상으로 계속적으로 자행되고 있고 이러한 사실을 튀니지가 인식하고 있다는 점을 들어 자국의 공습을 합법화하려는 이스라엘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은 바 있다.



미국은 보복공격의 수단으로서 특수부대 투입 뿐 아니라 전폭기 등을 동원한 공습 및 전투부대의 파견은 이미 기정사실화 한 상태이다. 여기서 더 나아가 미 국방장관 럼스펠트는 핵무기의 사용가능성을 거론하기도 하였다. 미국이 사용할 것으로 보이는 예상가능한 무기는 미군의 지형적 불리함을 만회하기 위한 전술핵무기로 보인다. 그러나 그것이 통상적으로 거론되는 대륙간탄도탄과 같은 유형은 아닐지라도 핵무기의 일종이며, 이러한 핵무기가 전략적으로나 전술적으로 약세에 있는 아프카니스탄을 대상으로 할 경우에는, '핵무기사용에 관한 권고적 의견'에서 국제사법재판소가 밝힌 견해에 비추어서도 그렇고, 전쟁법원칙인 필요원칙과 비례원칙에 의거하여서도 인정될 수 없다 할 것이다.



지금까지 검토한 미국의 무력사용허용가능성에 대한 검토는 미국이 일방적으로 군사력을 사용하는 경우이다. 따라서 아프카니스탄에 대한 무력사용이 유엔 헌장 제7장에 기초할 경우에는 어떻게 될 것인가라는 점을 검토해야 한다. 이 외에도 미국의 군사적 응징과 관련하여 새로운 국제법적 문제, 즉 이번 대테러응징을 전쟁법이 규율하는 의미에서 전쟁으로 볼 수 있는가, 대테러군사작전에서 외국군대의 참여에 대하여 어떤 평가를 내려야 하는가는 새로운 문제로 남아 있다.



미국은 자국의 군사행동의 적법성을 싸고 논란이 계속되자, 최근 라이스 안보보좌관은 자국의 "군사행동은 유엔의 결의를 거칠 필요가 없는 자위권 차원"이라고 반박함으로써, 유엔 헌장에 기초하여 미국의 군사행동을 평가할 필요성이 증대되고 있다. 유엔 헌장 제51조는 "이 헌장의 어떠한 규정도 유엔 회원국에 대하여 무력공격이 발생한 경우 ............... 개별적 또는 집단적 지위의 고유한 권리를 침해하지 아니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즉, 미국의 군사력 동원은 테러리즘과의 전쟁에서 유엔 헌장상의 자위권을 행사한 것이라고 주장하는 것이다. 그러나 동 조항을 면밀히 살펴보면, 이러한 자위권의 행사가능시점은, "안전보장이사회가 국제평화와 안전을 위하여 필요한 조치를 취할 때까지"로 한정하고 있다. 그런데 유엔은 이미 9월 11일 테러행위가 국제평화와 안전에 대한 위협임을 결의(유엔 안보리 결의 1368)한 바 있다. 따라서 9월 11일 테러사건은 안보리 개입 이전의 단계를 넘어섬으로써, 미국이 독자적인 무력사용 시기를 벗어나 있으며, 미국은 추가적인 안보리의 무력사용 허용 결의를 통해서만, 유엔 헌장체제 내의 무력사용을 할 수 있게 된다.



이러한 유엔 헌장을 통한 법적 검토는 이어서 미국이 현재 세계 각국에 대한 줄서기 강요를 통하여 집단적인 무력행사를 의도하고 있다는 사실로 확장된다. 그러나 이 사안 역시 유엔 헌장에 입각하여 무력사용에 관한 추가 결의를 요구하고 있다는 점에 주목하여야 할 것이다.



지금까지 미국의 군사력 사용에 관한 법적 검토를 다양한 각도에서 다루었다. 그 결과 극히 제한적인 경우, 즉 유엔 안보리의 무력사용에 관한 추가 결의가 행해진 경우를 제외한다면, 미국의 무력사용은 현존하는 국제법상 그 적법성을 획득하기 어렵다는 점이 확인된다. 그러나 이와 같은 실증적 접근 자체를 무위로 돌리는 미국의 태도는 어찌 보아야 할 것인지 당혹스럽다. 다시 말해서 미국은 테러리즘과의 전쟁을 선포하였지만, 그 전쟁의 대상이 누구인지, 전통국제법에 입각한 우리들로서는 도저히 납득을 할 수 없다는 사실이다. 왜냐하면 전쟁은 국가 대 국가 내지 그에 준하는 실체에 적용될 수 있으며, 전쟁법의 규율을 받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미국은 라덴 개인을 국가 내지 그에 준하는 실체로 간주하고 있는 것인지, 전통국제법상 전쟁 개념 자체를 변경시키려고 하는 것인지, 라덴에 대한 암살을 준비하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는 바 이러한 행위가 전쟁법 위반이라는 것을 인식하고 있지 못하는 것인지 혼란스럽기만 하다. 다만, 현존하는 국제법규가 대체로 일정 정도 국제사회의 힘의 반영이건만, 이것마저도 벗어던지고 싶은 게 국제법에 대한 미국의 진정한 태도는 아닌지 의구심이 든다.
* 민주법연님에 의해서 게시물 이동되었습니다 (2004-07-12 11:27)
* 민주법연님에 의해서 게시물 이동되었습니다 (2004-07-12 11:28)
* 민주법연님에 의해서 게시물 이동되었습니다 (2004-07-12 17:05)
* 민주법연님에 의해서 게시물 이동되었습니다 (2004-07-12 17:05)
번호 제목 닉네임 조회 등록일
74 no image 농촌을 다시 생각하며...
박승룡
9341 2002-10-15
73 no image 미군의 공무집행과 한반도 문제
전영주
7095 2002-10-08
72 no image 미군범죄..단상
박지현
12811 2002-09-29
71 no image 주한미군범죄와 한국형사법
한상훈
7587 2002-09-19
70 no image <책임을 다하는 상류층>< ...그리고 '여성'상류층>을 읽고
이상수
13107 2002-08-13
69 no image ..... 그리고 '여성' 상류층
박지현
10783 2002-08-13
68 no image 책임을 다하는 상류층
이은희
8252 2002-07-25
67 no image 남녀평등에 대한 단상
조국
8850 2002-07-23
66 no image 월드컵과 6월 항쟁
이창호
9599 2002-06-14
65 no image 통일논의에 대한 단상
박병섭
7482 2002-06-05
64 no image 아직도 국기에 대한 맹세인가
송기춘
10212 2002-05-22
63 no image 노동판결속의 파시즘과 노동자 길들이기
조경배
7871 2002-05-08
62 no image 화해와 상생 그리고 4.3
이경주
7845 2002-05-08
61 no image 테러방지법과 월드컵
김종서
7915 2002-04-16
60 no image 꽃샘추위와 황사가 휘몰아쳐도 봄날은 간다
이창호
10392 2002-04-02
59 no image 대통령후보 국민경선제의 의미
김승환
10834 2002-04-01
58 no image 탈북자 - 스페인 대사관
정태욱
11738 2002-03-22
Selected no image 위협받는 국제법의 현주소
정경수
9445 2001-09-25
56 no image 돌파의 물꼬를 위한 노력에 찬사와 동감을 보냅니다
이상영
14457 2001-06-21
55 no image 남북 화해의 숭고미(崇高美)
정태욱
10334 2001-06-15
Tag Lis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