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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수 194
조회 수 : 11018
2006.11.13 (07:52:23)


(교수신문 2006. 11. 13자에 실린 글입니다.)

불혹(不惑)에 입지(立志)  


지난 10년 학교에서 책이나 읽고 강의나 하면서 좋은 시절을 보냈다. 논문을 쓰는 것이 다소의 스트레스라고 할 만큼 호사했다. 스스로 긴장하려고 하지 않으면 그다지 긴장할 필요가 없는 느슨한 삶이었다.

하지만 불만이 없지 않았고, 이렇게 살아도 되는가라는 의문이 끊이지 않았다. 긴장감 없는 생활, 변변한 저서 하나 없는 초조감, 프로젝트로 낭비한 시간에 대한 죄의식 등이 늘 그림자처럼 맴돌았다. 가족을 위해서 꼬박꼬박 월급을 벌어왔다는 것이 그나마 위안거리였다. 배울 만큼 배운 처지에, 가질 만큼 가진 처지에, 불혹의 나이에도 여전히 소소한 유혹에 흔들리는 자신이 초라하고 한심스러웠다.

그러다가 우연찮은 계기에 사법개혁운동에 휘말려 들었고 어느덧 2년이 다 되어 간다. 그동안 매주 두 세 번씩 서울을 들랑거렸다. 인권운동가, 노동운동가, 교수, 국회의원, 시민, 학생 등 수많은 사람들은 만났다. 대중집회에서 연설도 해보았고 사회를 맡기도 했다. 예닐곱 차례 라디오에 출연했고, 텔레비전에도 나가보았다.

며칠 전에는 연속 12일간에 걸치는 “사법개혁 3000Km 대장정”을 마쳤다. 전국 주요도시를 중심으로 새벽 6시부터 밤 12시까지 이어지는 강행군을 했다. 학기 중이라 다소 부담이 되었지만, 내 인생에서 이런 기회가 다시는 없을 것 같아 무작정 감행했다.

그다지 길지 않은 2년간의 시간, 하지만 나에게는 말할 수 없는 긴장과 각성의 연속이었다. 특히 교수로서 나의 삶을 총체적으로 부정당하는 고통의 시간이었다.

무엇보다 내가 몸담고 있었던 교수사회가 얼마나 협소한 우물이었는지를 절감했다. 사회변화를 주도해 나가는 치열한 삶의 현장에서 볼 때 교수는 한심한 인간에 불과했다. 교수의 지식은 편협하고 그다지 쓸모없는 것이었다. 교수는 실력이 형편없었으며 다만 이용당하고 있을 뿐이었다. 교수의 사회적 쓰임새는 포장하는 것, 얼굴을 파는 것 정도였다. 그래도 좋다고 희희낙락하고 자기 잘난 것으로 착각하는 것이 교수였다. 그들은 세상이 바뀌지 않아도 아쉬울 것이 없는 기득권자들이었고, 기껏해야 세상물정 모르는 선한 샌님에 불과했다. 나 자신, 그에서 한 치도 못 벗어난 속물이었다.

하지만 사법개혁운동은 교수사회의 건전한 탈출구가 어디인지도 가르쳐주었다. 그리고 교수생활에 대한 내 불만의 실체도 보여주었다. 정답은 현실 밀착적인 생활을 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는 문제의식을 현실에서 추출할 것, 현실을 변화시키는 지식을 생산할 것, 지식을 현실에서 검증을 받을 것 등이 핵심이다. 이것이야 말로 교수사회를 혁신하고, 불만에 가득 찬 나의 교수생활을 쇄신하는 키워드이다. 힘든 투쟁 속에서 내가 피부로 절감한 것은 바로 이것이다. 그것은 일종의 희열이었다. 내가 본 것이 장엄한 화엄은 아닐 지언즉, 적어도 우물보다는 확실히 더 넓은 세상이었다. 이제 다시는 우물로 돌아가지는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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