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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11.10 (23:27:56)
사회국가로부터의 결별과 그 대안- 독일의 Hartz IV 사례


문병효(독일 튀빙엔대학교 박사과정)




15년 전인 1989년 독일 작센주인 드레스덴과 라이프치히에서 등장했던 월요시위가 다시 2004년 독일의 여름을 달구고 가을까지 이어지고 있다. 몇개월동안 계속되고 있는  이 월요시위의 규모는 많이 줄었지만 전국적으로 아직 진행되고 있다.

지난 여름부터 시작된 이 월요시위는 독일 슈뢰더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사회보장의 대규모 감축을 규정한 소위 하르츠 피어 (Hartz IV)에 대한 저항이다. 전 폭스바겐의 이사였고 노동위원회 위원장인 하르츠(Hartz)의 이름을 딴 Hartz 법은 Hartz I부터 Hartz IV까지 시리즈로 이어진다.  그 중 I과 II는 2002년에 제정되어 2003년부터 시행중이고, III과 IV가 지난 2004년 7월에 의회에서 통과되었다. 소위 노동시장의 현대화에 관한 법률인 Hartz IV는 2005년 1월 1일부터 시행되는데 이 법으로 독일연방공화국 역사상 1949년 이래 사회보장급여가 가장 크게 감축되는 것으로 기록될 전망이다.

실업대책의 하나로서 특히 Hartz IV는 의료보험의 개혁과 함께 적녹연정인 슈뢰더 정부2기가 추진하는 소위 Agenda 2010의 핵심에 속한다. Agenda 2010은 슈뢰더정부 1기의 조세개혁, 연금개혁에 이어 2002년 선거에서 매년 증가하는 실업 등으로 정당성위기에 몰린 슈뢰더 정부가 공약으로 내걸었던 대규모 개혁프로젝트였다. 얼마 전에 행해진 의료보험개혁은 이전에 없던 매분기별 진료비(Praxisgebühr)의 징수, 추가부담금 (Zuzahlungen)의 인상,  2005년부터 의료보험에서 치과치료시 의치분야의 분리 등 피보험자와 환자의 부담이 가중되는 것으로 요약된다. 그에 이어서 행해진 2004년의 Hartz III는 연방노동부(Bundesanstalt für Arbeit)의 개편과 관련되고, Hartz IV는 실업수당과 사회부조금을 하나로 합치는 법으로서 한마디로 사회보장을 감축하는 내용의 법이다.

Hartz III과 IV 등 관련법은 개괄적으로 다음과 같은 내용을 갖고 있다.
첫째, 해고가 쉬어진다. 종전 5인 이상의 작업장에 적용되던 해고방지법이 10인 이상의 작업장에 적용된다. 물론 개정된 내용은 새로 고용된 자에 대해서만 적용되고 이미 고용되어 있는 자는 보호된다. 해고의 경우에는 고용주가 보상을 제시할 수 있고 해고대상자는 보상을 받든지 해고방지소송을 제기하든지 간에 선택할 수 있다.
둘째, 장기실업자에 대한 수인가능성규정(Zumutbarkeitsregeln)이 강화된다. 장기실업자는 저임금 근로(Mini-Job)나 시간제근로 등 모든 합법적인 근로를 받아들여야한다.
그러한 근로를 거부하는 자에 대해서는 제재로서 사회보장급여 (실업수당 등)가 감축된다.
셋째, 실업수당(Arbeitslosenhilfe)과 사회부조(Sozialhilfe)가 통합된다. 대략 2백70만의 실업수당 수령자와 직업을 가진 사회부조대상자들이 구서독지역에는 345 유로를 받고 구 동독지역의 대상자들은 331 유로를 받는다. 이로써 실업수당이 사회부조금수령액의 수준으로 줄어든다. 지금까지 실업수당은 당사자가 가지고 있던 직장의 최종수입액에 연계되어있었다.
넷째, 실업수당이 앞으로는 12개월까지만 지급된다. 55세 이상의 실업자는 18개월까지 실업수당을 지급받는다. 지금까지는 최고 32개월까지 지급되었다. 다만, 이 규정은 장기간의 과도기설정의 필요성 때문에 2006년 2월부터 적용된다.
다섯째, 연방노동부가 서비스기관처럼 개편되고 실업자에 대해 신속한 직업알선을 하는 핵심과제에 업무가 집중된다. 그리고 각 지역의 노동부산하 관청은 직업센터(Job Center)로 불린다.

위에서 보듯이 이 법은 사회보장급여를 감축함으로써 실업에 들어가는 비용을 줄일 뿐만 아니라 실업자로 하여금 어떤 일이든지 하지 않을 수 없도록 강제하는 의도를 가지고 있다. 지금까지는 장기 실업의 경우에도 비교적 높은 실업급여때문에 실업자가 바로 빈곤층으로 전락하지 않았지만 Hartz IV로 사정이 근본적으로 달라졌다. 실업수당의 지급기간이 단축되고 액수가 줄어듦으로써, 실업자는 적은 실업수당으로 근근히 살아야 되기 때문에 수당 지급기간내에 저임금근로나 시간제근로라도 하도록 강요받게 된다. 이로써 저임금으로 장시간 일해야만 겨우 생계를 유지할 수 있는 소위 Working Poor 층이 형성된다.

특히 Hartz IV의 수인 가능한 직업을 규정한 조항 (10조)을 보면, 실업자가 받아들일 수 있는 수인 가능한 직업군이 규정된다. 이 경우 원칙적으로 모든 직업이 수인 가능한 것으로 규정되어있다. 다만, 그 직업이 요구하는 정도를 정신적, 육체적으로 감당할 수 없는 경우, 지금까지 종사한 직업이 육체적으로 특별히 요구되는 일이기 때문에 그 직업의 장래 행사를 본질적으로 곤란하게 하는 일 또는 그 일이 아이들의 교육이나 가족의 부양을 위태롭게 하는 경우와 그 밖의 중요한 근거가 있는 경우에는 수인 불가능한 것(nicht zumutbar)으로 인정된다. 이 경우 만약 실업자가 지역 노동청의 직업센터가 제안하는 직업을 받아들일 수 없는 경우에는 그 근거를 제시해야한다. 이 수인가능성규정의 문제점은 무엇보다도 입증책임이 실업자에게 전환되게 하는 규정이라는 점이다. 실업자가 취업하고 싶지 않은 직업에 대해서 합당한 근거를 제시하지 않는 한 노동부의 직업센터가 제공하는 일자리에 취업하든지(저임금근로나 시간제 근로일지라도) 또는 실업자로서의 권리를 포기해야한다. 이 경우 실업자통계에서도 제외된다.

그러나 독일정부가 추진하는 Hartz IV의 문제점은 무엇보다도 실업에 대한 근본적인 해결책이 아니라는 점이다. Hartz IV는 일자리를 창출하는 법이 아니라 기존의 일자리에 열악한 조건으로 노동을 강제하는 법이다. 이러한 의도를 가진 법에 대처할 만한 세력으로서 독일의 노동조합은 현재 대량의 실업때문에 그 입지가 약화되어가고 있다. 이는 임금계약에서도 상대적으로 소규모의 임금인상만이 관철되고 대부분의 임금계약에 개방조항(Öffnungsklauseln)이 삽입되는 것을 보면 그 입지의 약화를 알 수 있다.

대량실업은 독일만의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유럽의 선진산업국가 전반의 문제이다. 어떤 이는 이러한 문제의 근본적인 원인을 세계화(Globalisierung)에서 찾는다. 세계화 (또는 글로벌화)는 규제되지 않는 자본의 이동, 노동력의 자유(인 것처럼 보이는 사실상 강제)이동을 특징으로 한다. 그러나 문제의 원인은 세계화에도 있지만 국내적으로도 그러한 문제에 올바로 대처하지 못하는 정책의 실패에도 있다. 예를 들어 독일은 지금 심각한 국가재정의 위기에 처해있다. 매년 유럽연합(EU)의 안정조약(Stabilitätspakt)에서 정한 한도인 부채비율 3%를 넘어서고 있다. 국가채무의 증가는 사회보장급여를 축소하고 독일식 사회국가를 더 이상 유지할 수없다는 중요한 근거로 제시된다. 그러나 그것은 독일정부의 그릇된 조세정책과도 연관이 있다. 독일 정부는 2005년부터 고소득층의 세율(Spitzensteuersatz)을 45%에서 42%로 줄이려고 한다. 이 경우 예를 들어 매년 100만 유로 이상의 소득을 가진 자에 대해서 3만 유로이상의 국가세입이 감소되게 되고 이러한 사례들의 누적은 엄청난 세입의 감소와 직결되므로 이것은 국가채무를 청산하지 못하는 원인이 된다. 결국 연방정부는 국고의 부족분을 메꾸기 위한 방책을 강구하게 되고 민영화를 통해 국가재산을 매각하거나 사회보장급여의 축소와 다수 실업자들의 실업수당의 축소조치 등이 뒤따른다. 이는 아래로부터 위로의 소득분배를 의미하는 것이며 조세정의의 측면에서 바람직하다고 할 수 없다.

이런 식으로 점차적으로 진행되고 있는 사회보장급여의 감축으로 일각에서는 독일의 사회국가시스템이 질적으로 붕괴되지 않을까 하는 우려도 나타나고 있다. 실업이 증가하고 사회보장급여가 축소되는 한편 교육 등에 대한 투자의 축소는 엘리트 대학 등 특정대학에만 투자함으로써 전체적으로 교육투자를 줄여나가고 투자대상에서 제외된 대학들은 등록금의 징수 등으로 자구책을 마련하게 된다. 이 경우 부유층은 별 영향을 받지 않는 반면에 서민들의 부담은 가중된다. 이에 따라 시장에서 대중의 상품의 수요가 줄어들게 되고 시장의 원리에 따라 지불가능한 자를 위주로 상품이 공급되거나 (우리의 경우 예를 들어, 값비싼 아파트 등) 저임금국가의 저임금을 바탕으로 한 저가의 상품이 수입공급된다 (중국제 옷이나 물건 등). 따라서 소비가 양극화된다. 교육의 기회도 마찬가지다. 지불가능한 자만이 더 많은 교육의 기회를 갖게 되고 그들이 상층부에 진입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결국 공교육은 사라지고 개인부담의 사교육만이 남는다. 이 경우 게임에서 벗어난 자에게는 비참한 삶이든지 범죄를 범하든지 하는 극단적인 선택만이 남을 것이다.

Hartz IV를 통해서 독일은 지금 사회국가로부터 결별하는 완벽한 시스템을 구축해나가고 있는 듯이 보인다. 그러나 그러한 시스템은 문제를 해결하기보다는 문제를 만들어가는 것으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최근 보쿰지역 일대에서는 제너럴 모터스가 모회사인 독일 오펠자동차회사가 대량의 해고를 감행할 전망이라고 한다. 이렇듯 당분간 실업은 줄어들지 않을 것이고 상황은 악화될 전망이다.  이에 대한 대책은 과연 무엇인가. 인간이 인간다운 대접을 받으면서 일을 하고 인간다운 삶을 향유하는 것이 아직도 지나친 이상에 불과한 것인가. 자본주의가 그러한 이상을 실현하는데 적합한 시스템이 아니라면 제3의 대안은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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