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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청산과 국가정체성 확립은 국가보안법 폐지로부터
<이창호, 경상대 교수>

올해 여름 유난히 무더웠다. 10년 전 그 무덥고 짜증나던 여름이 새삼 떠오른다. 당시 <한국사회의 이해>라는 교양강좌 때문에 동료교수 9명과 함께 검찰과 팽팽하게 맞섰던 기억이 새롭게 다가온다. 대학생들에게 한국사회에 대한 올바른 인식을 심어주기 위해 정규 교과목으로 팀강좌를 개설하여 5년 동안 무려 1만 5천여 명이 수강했던 강좌의 교재를 검찰이 물고 늘어졌다. 국가보안법 위반이라는 혐의였다. 강좌는 폐강되고, 9명의 교수 모두 사법처리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었다. 대표 집필자 두 사람이 기소되었고, 사건은 현재까지도 대법원에 계류중이다.
국가보안법의 칼날은 이처럼 가장 자유로워야 할 대학 교수의 지적 활동마저 재단하여 왔다. 교수와 같은 지식인 집단은 비록 자기검열을 거친다 하더라도 비교적 자유를 향유하는 축에 속한다. 그런데 일반 국민들은 어떠한가? 지난 반세기 이상 국가보안법이라는 무소불위의 ‘괴물’이 국민들의 입과 귀를 틀어막아 왔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그 엄청난 폭력 앞에 국민들은 모두 주눅들지 않을 수 없었다. 기나긴 침묵의 강요는 생각의 자유조차 스스로 포기하게 만든다.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양심마저 병들게 만든다. 부정과 부패와 불의가 이 땅에서 판을 쳐도, 감히 고발할 엄두조차 내지 못한다. 그 놈의 국가보안법 때문에. 국가보안법의 탄생은 일제시대 독립운동을 탄압한 가장 강력한 법적 수단이었던 일제 치안유지법의 부활이었다. 태어나자말자 엄청난 위력을 발휘할 수 있었던 것은, 남북분단과 대립이라는 특수한 시대적 상황 때문이기도 했지만, 일제와 미군정을 통하여 축적한 그 엄청난 폭력성 때문이었다. 한국전쟁을 전후하여 남한의 국가권력에 의해 자행된 무려 1백만 명 내외로 추산되는 저 엄청난 민간인학살도 국가보안법 체계가 가져온 비극이었다. 권력이 자행한 천인공노할 학살에 대해서조차 피해자인 국민들은 입도 뻥긋하지 못하고 모질게 살아 왔다.
어디 그 뿐이랴. 군사쿠데타로 집권한 독재정권에 대한 저항도, 권력과 부를 가진 기득권 세력의 횡포에 대한 생존을 위한 몸부림도 국가보안법으로 잠재워 왔다. 분단의 상처로 고통받는 민족으로서 통일된 조국을 염원하는 순수한 열정마저 국가보안법은 짓밟아 왔다. 무엇 때문에? 그 해답은 간단하다. 일제에 협력하고, 해방후에도 폭력으로 권력을 차지한 기득권 집단에게 국가보안법은 자신들의 불의와 부정과 부패를 은폐하고, 부단히 기득권을 유지하여 주는 안성맞춤의 보도(寶刀)였기 때문이다.
노무현 대통령은 최근 광복절 경축사를 통해 과거청산의 의지를 천명한 바 있다. 정략적 의도가 있다 할지라도 이를 적극 환영한다. 국가보안법 체계의 엄호로 청산되어야 할 수구기득권 집단의 집권기간이 길었던 만큼 청산되어야 할 과제 또한 엄청나다. 일제 잔재의 청산은 물론, 한국전쟁 전후의 민간인학살, 군사독재 시절의 수많은 의문사, 그리고 권력을 이용한 엄청난 부정축재 등 청산되어야 할 과제가 산적해 있다. 과거청산은 아무리 많은 시간과 비용이 들더라도 원칙적 입장을 견지하는 가운데 철저하게 이루어져야 한다.
한국사회에서 제대로 된 과거청산을 하기 위해서는 국가보안법의 폐지가 선행되어야 한다. 이 법의 폐지야말로 과거청산의 출발점인 동시에, 한나라당 박근혜 대표가 외치는 국가정체성 확보의 토대이다. 대한민국의 ‘정체성’은 헌법 제1조 제1항 ‘민주공화국’이다. 대한민국을 대한민국답게 하려면 민주주의와 인권을 유린해 온 오욕된 과거를 지탱한 국가보안법부터 깨끗하게 청산하여야 한다. 일부에서 제기되는 개정론 내지 대체입법론은 이 법의 생명을 연장시키려는 술수에 다름 아니다.
국가보안법은 대한민국 탄생의 ‘원죄’이다. 이 법은 과거청산을 가로막고 민주공화국이라는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파괴한 원흉이다. 이 법은 대한민국의 헌법 위에 군림하면서, 국민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해 온 ‘권력의 망루탑’인 동시에, 국민의 생각과 양심마저 짓밟아 온 ‘영혼의 사냥개’ 노릇을 해 왔다. 국가보안법의 폐지는 철저한 과거청산과 진정한 국가정체성 확립의 출발점인 동시에, 대한민국의 양심을 회복하기 위한 시발점이기도 하다. 국가보안법의 폐지는 바로 대한민국 헌법의 회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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