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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 수 : 7731
2007.06.19 (22:46:02)

방송대학보, 2007. 5. 14자(부록)에 게재한 글입니다


 ‘신속한 재판을 받을 권리’와 사법개혁

공정한 재판과 신속한 재판

우리 헌법 제27조는 재판을 받을 권리를 보장하고 있으며, 보통 그 내용으로서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와 신속한 재판을 받을 권리를 든다. 이 두 권리는 서로 대립적인 성격을 가지는 것처럼 보인다. 공정한 재판을 위해서는 신중한 판단이 필수적이므로 신속성의 요청은 후퇴할 수밖에 없고, 반대로 신속성의 요청을 강조하면 공정성의 요구가 희생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 헌법이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를 명시하지 않으면서 신속한 재판을 받을 권리는 명시하고 있다(제27조 제3항)는 점은 두 권리를 서로 대립적으로 보는 이러한 해석에 의문을 제기하도록 만든다. 왜냐하면 공정성은 사법작용의 본질에 해당하는 것이므로, 재판에 관한 모든 헌법 규정들은 재판의 공정성을 담보하기 위한 것임을 당연한 전제로 하고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고, 신속한 재판의 요구 역시 재판의 공정성을 확보하기 위한 가장 중요한 수단의 하나라고 보는 것이 타당하기 때문이다.

신속한 재판의 의미와 민사소송법 제199조

신속한 재판이란 결국 판결이 합리적인 기간내에 선고되어야 함을 의미한다. 즉 당사자의 법적 지위를 확정하여 그 권리와 자유가 보장될 수 있도록 적정한 기간내에 최종 판결이 선고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신속한 재판을 받을 권리를 확보하기 위해서는 재판기간을 법률로써 정하는 것이 요구되는데, 이에 관한 입법자의 의지를 표현한 것이 바로 민사소송법 제199조의 규정이다. 즉 민사소송법 제199조는 “판결은 소가 제기된 날부터 5월 이내에 선고한다. 다만, 항소심 및 상고심에서는 기록을 받은 날부터 5월 이내에 선고한다”고 규정하여 각 심급의 판결선고기간을 명시하고 있다.
그런데 법원이나 헌법재판소는 민사소송법 제199조의 규정을 이른바 ‘훈시규정’으로 보는 듯하다. 특히 헌법재판소는 “신속한 재판을 위해 적정한 판결선고기일을 정하는 것은 법률상 쟁점의 난이도, 개별사건의 특수상황, 접수된 사건량 등 여러 가지 요소를 복합적으로 고려하여 결정하여야 할 사항으로서 구체적인 사건의 재판을 담당하고 있는 법원에게 광범위한 재량권이 부여되는 것으로 볼 수 있다”고 함으로써 이 점을 분명히 하였다(1999. 9. 16. 선고, 98헌마75 결정).
그러나 민사소송법 제199조의 형식 자체가 “선고할 수 있다”가 아니라 “선고한다”로 규정되어 있음을 볼 때, 헌법재판소의 태도는 신속한 재판을 받을 권리의 실현을 위해서 판결선고기간의 한계에 관하여 법원의 재량을 인정하지 않거나 매우 협소하게만 인정하겠다는 입법자의 분명한 의지를 무시한 것이다. 나아가 민사소송법 제199조를 단순한 훈시규정으로 해석하고 그 기간을 넘겨서 재판을 하는 것은 그 자체가 법률 위반으로서, 이는 헌법 제27조 제1항이 정하고 있는 “법률에 의한 재판”을 받을 권리를 침해하는 것이기도 하다.
한편 판결선고기간에 관한 법원의 재량을 넓게 인정하기 힘들다는 점은, 법원의 재판에 대한 항소와 상고의 제기 기간을 제한하고 있는 민사소송법 자체에서도 그 근거를 찾을 수 있다. 즉 민사소송법 제396조는 항소기간을 “판결서가 송달된 날부터 2주 이내”로 정하고 있는데(상고기간에도 준용), 이는 법률관계의 신속한 확정을 위하여 소송당사자에 대해서 그 제소기간을 제한하는 것이다. 그런데 소송당사자에게는 이런 부담을 과하면서, 법원 스스로는 법정기간에도 얽매이지 않겠는다는 것은 너무나 국가우월적인, 아니 사법부지상주의적인 사고의 소산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
법정 재판기간이 신속한 재판의 실현을 위한 입법자의 의지를 표명한 것이라는 점을 부인할 수 없는 이상, 민사소송법 제199조에서 정하고 있는 기간의 의미는 헌법재판소의 판시와는 달리 이해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이 때 입법자의 의지가 ‘절대적 기간’을 천명한 것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그것은 절대적 재판기간의 강제는 헌법 제27조 제1항이 선언한 법관에 의한 재판의 원칙을 침해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법관에 의한 재판의 중요성을 인정하더라도, 헌법상 신속한 재판의 요구 역시 존재하는 이상, 재판기간에 관하여 법관에게 거의 자유재량을 인정하는 헌법재판소와 같은 해석이 허용될 수는 없다.
그러므로 민사소송법의 재판기간은 신속한 재판에 대한 헌법적 요청에 따라 법관이 준수해야 할 기본원칙으로서 5개월이라는 기간을 제시한 것으로 보아야 하고, 불가피한 사유가 있을 경우에만 예외적으로 일정한 재판지연이 허용된다고 이해해야 할 것이다. 따라서 법정기간을 넘어서서 재판이 지연될 경우 법원은 그 정당한 사유를 제시할 법적 의무를 진다고 보아야 한다. 이는 신속한 재판에 대한 헌법의 요청은 사법권력의 행사에 대한 중대한 시간적 한계를 설정한 것이라는 점, 즉 사법권력에 대한 일종의 통제라는 측면을 고려한 것이기도 하다.

재판 지연의 정당화 사유

이처럼 민사소송법 제199조의 기간을 ‘절대적 기간’이 아닌 ‘합리적 기간’으로 이해하게 되면, 어떤 경우에 예외적 재판 지연이 정당화될 수 있는가 하는 문제가 반드시 해결되어야 한다. 그런데 헌법재판소는 적정한 판결선고기일을 정하는 데 있어서 법원의 광범위한 재량권을 인정하면서도 판결선고기일의 결정에서 고려되어야 하는 몇몇 사항을 언급하고 있으므로, 이들 요소를 중심으로 재판지연의 정당화사유를 검토해 볼 필요가 있다.
헌법재판소는 먼저 “법률상 쟁점의 난이도”를 언급하고 있다. 즉 법률상 쟁점이 복잡하고 난해한 경우에는 이에 대한 정당한 법적 평가를 위해 불가피하게 재판이 지연될 수 있다는 의미일 것이다. 예컨대, 동일·유사 사안에 대한 선판례가 존재하지 않는 경우로서, 해당 쟁점에 대한 학문적 의견이 전혀 또는 거의 정립되어 있지 않거나 의견들간의 편차와 대립이 심하여 어떤 하나의 학설을 지배적인 견해로 보기 힘든 경우가 이에 해당할 것이다. 반대로 이미 동일·유사 사안에 대하여 선례가 존재하거나, 선례는 존재하지 않지만 학문적 의견이 통일되어 있는 등의 경우라면 재판 지연을 정당화할 수 없게 된다.
다음으로 헌법재판소는 “개별사건의 특수상황”을 언급하고 있다. 예컨대 이미 유사한 사안에 대하여 대법원판례가 존재하지만 당해 사건을 둘러싼 입장 차이가 극심하게 표출되고 있어서 선판례의 무조건적 추종이 어렵다거나, 선판례 자체가 심대한 법리적 결함을 갖고 있는 경우, 혹은 사안을 둘러싼 사정이 매우 변화하여 판례의 변경이 요구되는 등 예외적인 경우에는 일정한 재판기간 지연이 인정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반대의 측면에서 본다면, 선판례가 존재하는데 이에 대하여 특별한 문제제기가 이루어진 바 없다거나, 그렇다고 명백히 사정 변경이 있다고 볼 수도 없는 경우라면, 오로지 법원의 재량권에 속한다는 이유만으로는 재판의 지연을 정당화할 수는 없게 된다.
헌법재판소가 들고 있는 또 다른 근거는 “접수된 사건량”인데, 이는 당해 사건을 담당하는 재판부의 과중한 업무부담으로 인하여 법정 기간내에 판결을 선고하기 어려운 경우를 상정한 것으로 보인다. 물론 법원의 입장에서는 법관은 부족한데 사건은 너무 많아서 일정한 사건의 재판 지연이 불가피하다고 주장할 지도 모르지만, 이는 법관의 부족이라는 제도적 불비에 따른 불이익을 전적으로 소송당사자에게 전가하는 것이라는 점에서 타당하지 못하다. 오히려 신속한 재판을 받을 권리를 보장한 헌법의 정신에 충실하자면, 공정하면서도 신속한 재판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법관을 확충하여 그 사건부담을 덜어주는 것이 국가의 의무일진대, 그러한 의무를 방기한 국가의 책임을 소송당사자에게 떠넘기는 것은 결코 합리화될 수 없는 것이다.
그밖에도 헌법재판소는 “재판부 구성원의 변경”을 또 다른 사유로 들고 있다(1993. 11. 25. 선고, 92헌마169 결정). 재판부 구성원의 변경은 물론 판결 선고를 지연시킬 수 있는 중대한 사유가 될 수 있다. 그러나 이 역시 일정한 범위내에서만 그렇다고 보아야 한다. 민사소송법 제199조가 판결선고기간 자체를 소송제기일부터 5개월로 정하고 있는 이상, 재판부 구성원이 변경된 후에도 그 지연기간의 한계는 법에서 정하고 있는 5개월을 넘어설 수는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헌법재판소는 이러한 사유가 있을 경우에만 재판지연이 정당화된다는 입장을 취한 것은 아니며, 오히려 이런 여러 요소들 때문에 법원의 재량적 판단이 불가피함을 역설하고 있다. 즉 헌법재판소는 정당화 사유의 존부 자체보다는 법원의 재량권을 더욱 중시하는 입장을 보이고 있는 셈이다. 그러나 적정한 재판기간, 즉 신속한 재판을 받을 권리를 실현시키기 위한 최소한의 기준에 대한 입법자의 의지가 이미 법률을 통하여 표명된 이상, 법원의 재량은 정당한 사유가 존재할 경우에만 인정되는 기속재량으로, 그것도 재량의 범위가 매우 축소되는 것으로 이해하는 것이 헌법정신에 부합하는 체계적 해석이 될 것이다.

법원의 신속한 판결 선고 의무

그럼에도 헌법재판소는 민사소송법 제199조에서 정하는 기간내에 반드시 판결을 선고해야 할 법률상의 의무를 부정한다. 이는 헌법 제27조 제3항이 규정한 신속한 재판을 받을 권리는 구체적 권리가 아니라, 아무런 법률상의 의무도 발생시키지 않는 일종의 ‘프로그램’에 불과하다는 인식을 보여주고 있다. 즉 헌법재판소는 기간 내에 판결을 선고해야 할 법률상의 의무를, 단순히 기간 내에 판결을 선고하도록 ‘노력할 의무’로 격하시키고 있다. 그러나 이는 명백한 규정 형식 자체를 무시한 것일 뿐만 아니라, 법률에 따르지 않은 재판에 대해서는 그 무효나 취소를 주장할 수 있는 권리(상소)를 인정하는 우리 사법체제의 근간을 부정하는 것이다. 물론 헌법재판소의 말대로 정해진 기간 내에 “반드시” 판결을 선고해야 할 법률상의 의무를 인정하기는 어렵다 하더라도, 법정기간을 넘어서더라도 최소한 “합리적 기간 내에” 판결을 선고해야 하는 것은 법률상의 의무라고 하지 않으면 안된다. 그렇지 않으면 신속한 재판을 받을 권리는 무의미해지기 때문이다.
나아가 헌법재판소는 기본권의 주체로서 신속한 판결선고를 청구할 수 있는 다른 법률상의 근거도 존재하지 않는다고 설시하고 있다. 이 논리대로라면 정해진 기간내에 판결을 선고하지 않은 경우 또는 절차가 지연되어 정해진 기간내에 판결을 선고할 수 없는 것이 분명해 보이는 경우라도, 별도의 법규정이 존재하지 않는 한 신속한 재판을 받을 권리의 침해는 구제될 수 없게 될 것이다. 그러나 상식적으로 판단해 본다면, 재판을 청구할 때에는 법률이 정한 기간 내에, 또는 최소한 합리적인 기간내에 종국결정을 선고할 것을 청구하는 것이지, 5년 후건 10년 후건 법원이 내키는 대로 판결을 선고할 것을 예상하고 청구하는 것은 아니다. 헌법이 재판을 받을 권리를 기본권으로 보장하면서 그 내용으로 신속한 재판을 받을 권리를 명시하고 있는 것은 바로 그런 의미이다. 이 점에서 신속한 판결선고 청구권을 인정한 독립적 법률규정이 없음을 이유로 재판지연을 법관의 재량으로만 이해하는 헌법재판소의 태도는 받아들일 수 없다.

신속한 재판을 받을 권리와 사법개혁

판결선고기간을 법원의 재량으로 이해하려는 헌법재판소의 태도는 신속한 재판에 대한 일반 국민의 요구에 눈감은 채 재판을 오로지 법관만이 지배하는 공간으로 남겨두겠다는 사고의 발로이다. 즉 다른 누구의 통제로부터도 자유로운 법원과 재판이라는, 사법부의 그릇된 열망이 이른바 훈시규정 논리에 내재해 있다. 그리고 이를 정당화하기 위하여 예의 ‘사법권의 독립’을 내세운다.
그러나 국민의 요구를 무시하고, 공정하고 신속한 재판을 받을 국민의 기본적 인권을 부정하는 ‘사법부의 독립’이란 있을 수 없다.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국민주권주의를 천명한 우리 헌법하에서 어떤 권력도 주권자인 국민의 참여와 감시와 통제로부터 자유로울 수는 없기 때문이다. 신속한 재판을 받을 권리에 대한 사법부의 논리는 왜 사법개혁이 이루어져야 하는지를 보여주는 또 하나의 사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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