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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 수 : 7484
2007.03.27 (09:42:03)
국어원은 양심의 자유를 상상할 수 있을까

- 출처: 한겨레21, 제651호, 2007. 3. 15

‘신념에 따른 병역거부’로 바꿔야 한다고 제안한 것은 심각한 문화 지체…양심이 양심인 까닭은 표준을 거부하기 때문, 국어 순화운동 대상이 아냐

필자는 여러 차례 양심적 병역거부자를 옹호하는 글을 써왔고, 토론회도 참여했다. 그때마다 들어야 했던 질문이자 비난은 “군대를 거부한 자가 양심적이면, 군대를 간 사람이 비양심적이냐”였다. 그에 대한 반론은 늘 단순치 않은 인식과 세계관의 차이를 드러내도록 했다. 그 차이를 드러내는 것이 중요하고, 이 글도 그런 의도에서 쓰기로 했다.


개선을 통해 보호하려는 목표나 대상은 무엇?


2007년 2월5일 국립국어원(이하 국어원)은 ‘차별적, 비객관적 언어 표현 개선을 위한 기초 연구’라는 제목의 조사 결과를 발표하면서, “‘양심적 병역거부’라는 용어가 군대를 갔다온 양심적인 다수를 차별하기 때문에 ‘신념에 따른 병역거부’로 바꿔야 한다”고 제안했다. 해당 단락을 길게 인용하면 다음과 같다.

“가치 판단의 기준에 따라 자의적으로 사용하기 쉬운 ‘일류’ ‘명문’ ‘진보’ ‘보수’ ‘고급’ ‘고위’ 등의 표현은 조심해서 사용해야 한다. 이와 더불어 정확한 행정구역상의 범위가 분명하지 않은 ‘강남’, 예술을 생산하는 주체가 서양인이라야만 어울릴 것 같은 ‘현대무용’이나 ‘클래식 음악’, 음악의 장르라고 보기에는 모호하고 그것을 즐기는 계층도 사실상 다양한 ‘성인가요’, 병역의 의무를 수행하는 사람을 비양심적으로 만들어버리는 ‘양심적 병역거부’, 그 범위가 확실치 않고 대졸자 중심적인 사고에서 나온 ‘386세대’, 고가품 판매업자의 상술에 이용당하는 듯한 ‘명품’ 등의 표현이 지시 대상이나 의미가 불분명해 오해를 일으키거나 현실을 왜곡할 수 있다. ‘초-’ ‘최-’ 같은 최상급의 남용이나 ‘군단’ ‘전사’ ‘용병’ ‘세금폭탄’ 등 전쟁 관련 비유도 지나치게 과장되거나 자극적이어서 자제해야 할 표현이다.”

양심적 병역거부 문제와 관련해 필자는 국어원 관계자들의 시대감각과 법의식에서 심각한 문화 지체를 느끼고, 향후에 국어원과 같은 기구가 소수자의 인권, 정체성과 관련된 언어 표현에서 매우 신중하게 처신할 것을 촉구한다. 물론 이웃집 아저씨가 저런 견해를 피력했다 하더라도 차분하게 설명했을 것이다. 그러나 국어원의 지적은 일정한 정책적 지향성과 상징성을 갖기에 좀더 신랄하게 몇 가지 문제를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첫째, ‘차별적·비객관적 언어 표현’ 개선을 통해 보호하려는 목표나 대상이 무엇인지 묻고 싶다. 언어의 순결성인가, 아니면 군대를 갔다온 사람들인가? 군대를 갔다온 사람들을, 병역을 거부하고 처벌받은 사람들로부터 보호할 이익이 그토록 큰지 의문이 들기 때문이다. 차별이라는 것은 강자와 약자 간의 문제이고, 사회 내에서 구조화된 문제다. 병역을 거부하고 감옥에 간 사람들이 군대를 갔다온 사람들에게 그토록 심각한 피해와 희생을 야기했는지 의문이다. 국어원의 연구는 되레 사회적 약자를 겨냥한 화살에 가속도를 더한다. 국어원이 사회적 소수자를 존중하는 의미에서 대중이 일반적으로 사용하는 방식과 달리, 양심적 병역거부자라는 표현이 어떻게 생성되고 유통되는지에 대한 개방적이고 전망적 언어 탐구를 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된다.

둘째, 국어원은 일반적으로 세상에 통용되는 말의 쓰임새를 그대로 모사하고 확인하는 기구인지, 아니면 언어의 도덕적 사용에 대해 일정한 규정적 힘이나 통제적인 감독권을 갖고 있는 기구인지 의문이다. 전자라면 국어원은 ‘국어만화경’이고, 후자라면 또 다른 헌법재판소가 된다. 특히 양심은 인간의 도덕적 의식과 연관된 문제이기 때문에 이 말이 지시하는 실체는 당연히 비객관적인 것이다. 이에 대해 의미를 고정하려는 시도는 정신적 고문이고 인권침해적인 언어행동이다.

셋째, ‘양심적 병역거부’나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를 국어원이 제안하는 것처럼 ‘신념에 따른 병역거부’라고 바꿔보자. 그러면 사태가 달라지는지 의문이다. 혹여 양심은 수준 높은 영장류의 고결한 도덕적 현상이고, 신념은 그저 평범한 포유류들의 생물학적 현상으로 규정하려는 의도라면 모를까. 그 정도의 낙인 효과라면 너무 진부하다. 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언어를 그렇게 구분해 사용하지 않기 때문이다. 군대를 갔다온 사람만 양심적이라고 평가해주고 싶어서 그런 표현을 제안했다면 다른 문제가 생겨난다. ‘신념에 따른 병역거부’ 아래서는 군대를 갔다온 사람은 무소신이나 무신념의 인간이 되는 것이 아닌가! 국어원은 이참에 양심의 자유를 ‘신념의 자유’로 고치기 위해 개헌운동에 동참하는 것이 제격이다. 어느 나라에도 없는 신념의 자유를 위해.


‘신념’으로 바꾸면 뭐가 달라지나


넷째, ‘전사’ ‘군단’ ‘용병’ ‘세금폭탄’ 등 언론에 자주 등장하는 전쟁 용어에 대해 국어원이 심각한 우려를 표명하는 것은 참으로 바람직하다. 그러나 다시 한 번 생각해보라. 진정으로 군사주의나 병영문화의 확산에 대해 우려한다면 양심이라는 표현 아래서 국가주의나 군사주의를 능가하는 의식과 태도도 존재할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해야 하지 않을까? 인간의 양심에 대해서는 ‘탱크’로 깔아뭉개면서 고작 언어나 순화하자는 국어원의 언어정책이 놀랍기만 하다.

다섯째, 국어원이 그런 언어행동을 했기 때문에 우려하는 부분이 있다. 원하든 원치 않든 스스로 언어 사용에 대해 역할을 맡게 됐는데, 과연 그런 역량이 있는지 진지하게 성찰해야 한다는 점이다. 국어원은 인권을 침해당한 소수자들을 구제할 수 있는 곳도 아니지만, 소수자들이 마지막으로 의지하고 있는 인권의 언어를 상식에 기대어 무력화하고 있다. 언어가 얼마나 이데올로기적으로 오용될 수 있는지를 드러내주는 연구를 국어원이 해주기를 기대하지는 않는다. 그저 국어원이 인권의 핵심으로서 양심과 같은 논쟁적 개념을 대중의 어법에 기대어 건조한 아스팔트로 뭉개지 말아주기 바란다. 표준어 정책이 국가 이데올로기의 표현임을 망각할 때에는 언어는 파쇼화된다는 점에 유의해주기 바란다.

여섯째, 가장 중요한 문제는 국어학자들의 눈에는 양심에 대한 의미가 그렇게 정리되는지 몰라도 법학자의 눈에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확립돼 있다는 점을 지적하고 싶다. 그런 점에서 소수자의 인권 문제를 앞에 두고 국어원 관계자들의 나태한 지적 생활을 힐난하지 않을 수 없다. 국어원은 양심을 “사회적·객관적으로 확인된 선한 행동이나 내용”으로 이해하는 듯하다. 그러면 헌법은 왜 굳이 ‘양심의 의무’라고 하지 않고, ‘양심의 자유’라고 했을까? 국어원이 양심의 자유를 과연 상상할 수 있을까? 자유를 의무로 치환하는 것에서 권위주의 사회, 시민혁명을 겪지 않는 사회의 모습을 여전히 본다.

다시 말하지만 우리 헌법은 인간이면 누구나 자유롭게 자기 의식을 표현하고 행동할 수 있다는 의미에서 양심의 자유를 말하고 있다. 헌법재판소도 “헌법상 보호되는 양심은 어떤 일의 옳고 그름을 판단함에 있어서 그렇게 행동하지 아니하고는 자신의 인격적인 존재가치가 허물어지고 말 것이라는 강력하고 진지한 마음의 소리로서 절박하고 구체적인 것”으로 규정한다. 물론 헌법재판소가 양심적 병역거부권을 적극적으로 지지해주지 않아 몹시 유감스럽지만, 양심이 개인의 자유롭고 진지한 도덕적 의식과 결단이라는 점은 수차례 확인해줬다. 국어원의 언어행동과 관련해 헌법적 구제신청 방법을 모색해봐야 하지 않을까 생각된다.

철학이나 법학의 영역에서 ‘해석학적 순환’이라는 것이 있다. 특히 언어는 전통, 문화, 의식을 담고 있지만 그 안에 새로운 사상 요소와 이상들이 필연적으로 등장한다. 낡은 것과 새로운 것 간의 갈등을 어떻게 풀어갈지가 늘 문제다. 이런 고민이 철학이나 법학에서 보편성 논쟁으로 나타난다. 어쨌든 양심은 광장에서 북 치며 결정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 개인적 주체의 자유로운 의식 활동을 전제하며, 주체의 도덕적 결정권한과 연관된 개념이다. 그것은 어떤 내용이든 선택하고 결행할 수 있는 형식을 의미한다. 양심은 사회가 정하는 것이 아니라 각자가 주인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그것은 근대인의 탄생을 뜻한다. 서구적이라고 해도 어쩔 수 없다.


참으로 이데올로기적인 순화운동


반면, 국어원이 정의하는 양심에 따르면 헌법상 양심의 자유는 완전히 빈말이 되고, 우리나라에는 소수자의 양심 따위는 처음부터 존재할 수 없게 된다. 필자는 근대적 양심은 국어원의 정신적 자산 목록에는 부재하는 개념임을 확인했다. 양심은 표준적 내용을 알지 못하는 개념이다. 정확하게는 양심이 양심인 까닭은 표준을 거부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양심은 국어 순화운동 대상이 아니다. 순화운동, 많이 들어봤다. 참으로 이데올로기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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