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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3.02 (00:31:59)
[출처] 재판지연에 대한 국가배상 청구 사건에 관한 의견서, 공정하고 신속한 재판권공대위, 2007년 1월.

지난 1월 11일에 위 사건과 관련하여 제출한 의견서입니다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재판지연에 대한 국가배상 청구사건에 관한 의견서


사건 2006가단199422 손해배상(기)

원고 김석진

피고 대한민국


위 사건과 관련하여 저는 대학에서 헌법을 가르치는 사람으로서 다음과 같은 의견을 제출합니다. 이 의견이 귀 재판부의 판단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기를 바랍니다.

1. 공정한 재판과 신속한 재판

주지하다시피 우리 헌법 제27조는 국민의 기본적 인권의 하나로서 재판을 받을 권리를 보장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재판을 받을 권리의 구체적 내용으로서 헌법학자들은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와 신속한 재판을 받을 권리를 언급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헌법학자들의 이론과는 달리 우리 헌법의 명문의 규정만으로 보면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는 직접 언급되고 있지는 않습니다. 즉 제27조 제1항은 “모든 국민은 헌법과 법률이 정한 법관에 의하여 법률에 의한 재판을 받을 권리를 가진다”고 규정하고, 제3항은 “모든 국민은 신속한 재판을 받을 권리를 가진다”고 규정하고 있을 뿐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에 관한 별도의 규정을 두고 있지 않은 것입니다.

이와 같은 규정 형식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은 해석이 가능할 것입니다. 즉 재판은 그 본질상 공정성을 핵심으로 하는 것이므로 헌법 제27조 전체가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에 관한 규정이며, 재판에 관하여 헌법이 정하고 있는 모든 내용은 결국 공정한 재판을 확보하기 위한 규정이라고 보는 것입니다.1) 신체의 자유에 관한 헌법 제12조와 제13조의 규정이나 헌법 제27조의 모든 규정들은 모두가 재판의 공정성을 담보할 수 있는 여러 장치들을 정하고 있는 것이며, 이러한 장치들이 확보된다면 ‘공정한 재판’의 최소한은 보장된다는 믿음이 우리 헌법의 밑바탕에 깔려 있다고 볼 수 있지 않을까 합니다.

이렇게 본다면 공정한 재판과 신속한 재판은 결코 대립적인 요소가 아닙니다. 오히려 재판의 공정성을 확보하기 위한 가장 중요한 요인들 중의 하나로서 신속한 재판이 요구되고 있다는 것이 우리 헌법에 대한 올바른 해석일 것입니다.

2. 신속한 재판의 두 가지 의미

헌법 제27조 제2항에서 말하는 신속한 재판이란 두 가지 의미를 함축하고 있다고 합니다. 즉 법적 분쟁의 당사자들이 그 분쟁해결을 위한 재판절차에 가능한 한 신속히 회부되어야 한다는 측면과 재판의 결과인 판결이 합리적인 기간내에 선고됨으로써 당사자의 법률관계를 조속히 안정시켜야 한다는 측면을 모두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2)

이 가운데 전자의 측면은 주로 형사절차에서 강조되는 것으로 재판당사자의 일방(국가, 검사)이 다른 일방(피의자, 피고인)에 대하여 권력적 지위에서 진행하는 수사절차로부터 대등한 당사자로서의 지위가 인정되는 재판절차로 신속히 회부되어야 함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반면 후자의 측면은 그 의미가 형사재판절차에 한정되지 않고 모든 재판절차에 적용되는 것으로 당사자의 법적 지위를 확정하여 그 권리와 자유가 보장될 수 있도록 합리적인 기간내에 최종 판결이 선고되어야 함을 의미하는 것입니다.3)

이렇게 본다면 형사재판절차에서는 전자의 측면이 더욱 강조될 것이고, 기타 재판에서는 후자의 측면이 더욱 중요한 의미를 가지게 될 것입니다.

3. 신속한 재판을 받을 권리와 입법형성권

이와 같은 신속한 재판을 받을 권리를 확보하기 위하여서는 형사상으로는 구속기간의 제한등이 법률로 정해져야 하지만, 후자의 측면에서 본다면 재판이 제기된 시점으로부터 일정한 기간 이내에 종국 결정이 선고되어야 함을 법률로써 규정하는 것이 요구됩니다. 그리고 이 후자에 관한 입법자의 의지를 표현한 것이 바로 민사소송법 제199조의 규정일 것입니다. 즉 민사소송법 제199조는 “판결은 소가 제기된 날부터 5월 이내에 선고한다. 다만, 항소심 및 상고심에서는 기록을 받은 날부터 5월 이내에 선고한다”고 규정하여 판결선고기간을 명시하고 있는 것입니다. 형사소송법에 이와 같은 규정이 없는 것은 형사재판의 결과는 피고인의 신체의 자유 제한 여부와 직결된 것이므로 재판기간의 신속성 보다는 그 공정성이 훨씬 더 중요하다고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물론 형사소송법에도 이와 같은 종국판결 선고기간을 정할 수 없는 것은 아닐 것입니다. 예컨대, 민사소송법 제199조와 같은 규정을 형사소송법에도 둘 수 있으나, 그 경우에는 헌법이 정하고 있는 무죄추정의 원칙상 일정한 기간내에 종국판결이 선고되지 않는 경우에는 면소 또는 공소기각의 판결을 선고하는 방식으로 규정하는 것이 합리적일 것입니다(실제 외국의 경우 지나치게 지연된 형사재판의 경우 면소 또는 공소기각 판결을 선고한 예가 있습니다). 그러나 이와 같은 규정을 두고 있지 않은 것은 입법자들이 형사재판에 관하여 한편으로는 무죄 추정의 원칙을 존중하면서도 실체적 진실의 발견이라는 요소를 더욱 중요한 요인으로 보아 재판기간의 제한을 별도로 두고 있지 않은 것으로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법원이나 헌법재판소는 재판기간의 제한에 관한 민사소송법 제199조의 규정을 이른바 ‘훈시규정’으로 보고 있는 듯 합니다.4) 특히 헌법재판소는 신속한 재판을 받을 권리에 관하여 “그 실현을 위해 구체적인 입법형성이 필요하고 입법과정에서 다른 사법절차적 기본권에 비하여 폭넓은 입법재량이 허용”되는 것으로 이해하면서, “특히 신속한 재판을 위해 적정한 판결선고기일을 정하는 것은 법률상 쟁점의 난이도, 개별사건의 특수상황, 접수된 사건량 등 여러 가지 요소를 복합적으로 고려하여 결정하여야 할 사항으로서 구체적인 사건의 재판을 담당하고 있는 법원에게 광범위한 재량권이 부여되는 것으로 볼 수 있다”고 함으로써 이 점을 분명히 하였습니다.5)

그러나 이와 같은 헌법재판소의 태도는 신속한 재판을 받을 권리를 하나의 정치적 프로그램으로 이해하는 문제점을 보이고 있음은 물론이거니와 그 자체 논리에 따르더라도 심한 비약으로 일관하고 있다고 판단됩니다. 즉 헌법재판소는 신속한 재판을 받을 권리의 실현을 위한 입법형성에는 폭넓은 입법재량이 허용된다고 하면서, 결국 그와 같은 입법재량을 사실상 법원의 판단재량으로 변형시켜 버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즉 헌법재판소의 표현대로 신속한 재판을 받을 권리의 실현을 위한 입법형성에 폭넓은 입법재량이 허용된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입법형성권의 문제이지 사법부의 재량판단의 문제는 아님에도 불구하고 그러한 입법형성을 사법재량으로 변형시킴으로써 사실상 법률개정을 해 버리는 결과를 초래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사실 신속한 재판을 받을 권리의 실현을 위한 입법형성권의 행사는 이미 민사소송법 제199조로 명확히 표현된 것이라고 보아야 할 것입니다. 이것은 법령조문의 형식 자체가 “선고할 수 있다”가 아니라 “선고한다”로 규정되어 있음을 볼 때 분명해 보입니다. 즉 민사소송법 제199조의 “선고한다”는 문언의 의미는 법원의 재량을 인정하지 않는 판결선고기간의 한계를 정한 입법자의 명령으로, 따라서 법원의 입장에서는 그것을 따라야 할 ‘법적’ 의무가 있는 것으로 이해되어야 할 것입니다.

신속한 재판을 받을 권리의 측면에서 민사소송법 제199조가 법원이 반드시 준수해야 함을 보여주는 또 다른 예는, 법원의 재판에 대한 항소와 상고의 제기 요건을 정하면서 그 기간을 제한하고 있는 민사소송법 자체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즉 민사소송법 제396조는 항소기간을 “판결서가 송달된 날부터 2주 이내”로 정하고 있고, 제425조에서는 항소심절차를 준용하도록 하고 있는데, 이와 같은 항소 및 상고기간의 제한은 신속한 재판을 받을 권리의 측면에서도 이해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소송당사자에 대해서는 법률관계의 신속한 확정을 위하여 그 제소기간을 제한하면서도, 헌법재판소처럼 법원 스스로는 법률이 정한 기간에 얽매이지 않는다고 하게 되면 그것은 너무나 국가우월적인 사고의 소산이라고 볼 수밖에 없지않을까 합니다.

더구나 현행법의 규정형식이 재량을 허용하지 않는 방식으로 되어 있음을 고려한다면 법원이 민사소송법 제199조를 단순한 훈시규정으로 해석하고 이 규정에서 정해진 기간을 넘겨서 재판을 하는 것은 법원 스스로 법률을 위반한 것으로서 이는 헌법 제27조 제1항이 정하고 있는 “법률에 의한 재판”을 받을 권리에 대한 침해에 이르는 결과를 가져옵니다.

4. 민사소송법 제199조의 의미

그렇다면 민사소송법 제199조에서 정하고 있는 판결선고기간의 의미는 달리 이해해야 할 것입니다. 일단 법조문에 표현된 기간이 신속한 재판의 실현을 위한 입법자의 의지를 표명한 것이라는 점은 부인할 수 없을 것입니다. 단지 이 때 입법자의 의지가 ‘절대적 기간’을 천명한 것이라고 보기는 어렵고, 하나의 예시 또는 지침으로서 5개월이라는 기간을 원칙으로서 제시하되 불가피한 사유가 있을 경우 일정한 예외를 인정할 수 있음을 밝힌 것으로 보아야 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그것은 민사소송법 제199조는 헌법재판소법 제38조에서 종국결정은 심판청구일로부터 180일 이내에 “선고하여야 한다”고 하여 헌법재판에 대한 결정의 선고가 정해진 기간안에 이루어져야 함을 명확히 표명한 것과는 달리 “선고한다”는 표현을 사용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아울러 신속한 재판을 합리적 기간내에 이루어져야 하는 것으로 이해하는 입장6)에 비추어보더라도 민사소송법 제199조의 기간을 ‘절대적 기간’으로 보기는 어렵게 합니다.

그렇다면 결국 문제는 법 제199조의 기간을 ‘합리적 기간’으로 볼 경우에 어떤 사유가 이 기간을 초과하여 이루어지는 재판을 정당화할 수 있는가 하는 점일 것입니다. 이 점에 관하여 이러한 기간에 관한 요청은 사법행정이 아니라 사법서비스의 요청에서 접근할 것으로 요구하고 있기도 합니다.7) 그러나 신속한 재판에 대한 헌법의 요청을 단순히 사법서비스의 관점에서 바라보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앞서 본 바와 같이 신속한 재판에 대한 헌법의 요청은 공정한 재판의 핵심으로서 신속성 또는 합리적 기간내의 재판에 대한 것이고, 그러한 한 이러한 요청은 사법권력의 행사에 대한 중대한 시간적 한계를 설정한 것으로 보아야 할 것입니다. 즉 헌법의 요청은 사법서비스의 관점에서뿐만 아니라 사법작용의 통제라는 관점에서도 함께 접근해야만 그 의미를 온전히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5. 재판 지연의 정당화 사유에 대한 검토

어떻든 민사소송법 제199조의 기간을 절대적 기간이 아닌 합리적 기간으로 이해하는 한 어떤 경우에 예외적 재판 지연이 정당화될 수 있는가의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안될 것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예외의 범위를 극단적으로 넓히고 있는 것이 헌법재판소와 같은 이른바 ‘훈시규정’ 논리일 것입니다. 즉 헌법재판소는 적정한 판결선고기일을 정하는 데 있어서 법원의 광범위한 재량권을 인정한 바 있는데, 이에 따르면 판결선고기일의 결정에서 고려되어야 하는 사항으로서 “법률상 쟁점의 난이도, 개별사건의 특수상황, 접수된 사건량 등 여러 가지 요소”가 언급되고 있습니다. 따라서 이들 요소를 중심으로 재판지연의 정당화사유를 검토해 보는 것은 매우 의미가 있을 것이며, 이 사건의 해결에 많은 도움을 주리라고 봅니다.

헌법재판소는 먼저 “법률상 쟁점의 난이도”를 언급하고 있습니다. 즉 법률상 쟁점이 복잡하고 난해한 경우에는 그러한 쟁점에 대한 정당한 법적 평가를 위하여 상당한 기간이 소요될 수 있다는 의미일 것입니다. 이처럼 법률상 쟁점의 난이도가 높다고 평가할 수 있는 전형적인 경우는 동일·유사한 사안에 대한 선판례가 존재하지 않는 경우로서, 특히 해당 쟁점에 대한 학문적 의견이 전혀 또는 거의 정립되어 있지 않거나 학문적 의견이 존재하는 경우에도 의견들간의 편차와 대립이 심하여 어떤 하나의 학설을 통설 또는 지배적인 견해로 보기 힘든 경우가 이에 해당할 것입니다. 따라서 이러한 예에 비추어 보면 이미 동일·유사한 사안에 대하여 선례가 존재하거나, 선례는 존재하지 않지만 학문적 의견이 통일되어 있는 등의 경우라면 재판 지연을 정당화할 수 없다는 반대의 추론이 가능할 것입니다.

다음으로 헌법재판소는 “개별사건의 특수상황”을 언급하고 있습니다. 이는 이미 선례가 존재하는 경우에도 문제가 될 수 있는 경우로 보이는데, 예컨대 이미 유사한 사안에 대하여 대법원판례가 존재하지만 당해 사건을 둘러싼 입장 차이가 과거와는 달리 극심하게 표출되고 있어서 선판례의 무조건적 추종이 어려운 사정이 있다거나, 선판례 자체가 심대한 법리적 결함을 갖고 있거나 혹은 선판례에 법리적 결함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사안을 둘러싼 사정이 매우 변화하여 판례의 변경이 요구되는 등의 사정이 존재하는 경우를 그 예로 들 수 있을 것입니다. 또 다른 경우로서 당해 사건에 대한 법원의 판결이 사회적으로 중요한 변화를 초래하는 계기를 제공할 수 있는 사정이 있는 등 그 사회적 중요성이 매우 큰 경우도 이에 해당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런 경우 역시 반대로 추론해 본다면, 선판례가 존재하는데 이에 대하여 특별한 문제제기가 이루어지지 않아 왔다거나, 그렇다고 누가 보더라도 명백히 사정의 변경이 있다고 볼 수 있는 경우도 아니라면, 오로지 법원의 재량권에 속한다는 이유만으로는 재판의 지연을 정당화할 수는  없게 될 것입니다.

헌법재판소가 들고 있는 또다른 근거는 “접수된 사건량”인데, 이는 말하자면 당해 사건을 담당하는 재판부의 업무부담의 과중함으로 인하여 정상적인 기간내에 판결을 선고하기 어려운 경우를 상정한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과연 이러한 사유가 재판의 지연을 정당화할 수 있을지는 의문입니다. 신속한 재판을 받을 권리가 합리적 기간내의 재판에 대한 헌법적 요청인 한 재판의 지연을 정당화할 사유인지 여부는 최소한 재판 당사자의 입장에서도 인정할 수 있는 객관적 사정에 의하여 판단되어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접수된 사건량이라는 요인은 당해 사건을 담당한 법원이 처리하는 모든 사건에서 유사한 재판 지연의 결과가 나타나지 않는 한 특정 사건의 재판만을 지연시킬 수 있는 정당한 사유라고 볼 수는 없을 것입니다. 즉 접수된 사건량이 너무나 많아서 제 때에 판결을 선고할 수 없다는 사정이 객관적으로 인정되려면 동일한 법원이 담당하는 모든 재판이 비슷한 정도의 지연처리를 보여줘야만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법원의 통상적 처리기간에 비추어 보면 이러한 상황은 성립되지 않는다고 보아야 할 것입니다. 나아가 법원의 입장에서는 법관은 부족한데 사건은 너무 많아서 일정한 사건의 재판의 지연이 불가피하다고 주장할 지도 모르지만, 이는 법관의 부족이라는 제도적 불비에 따른 불이익을 전적으로 소송당사자에게 전가하는 것이라는 점에서 타당하지 못하다. 오히려 신속한 재판을 받을 권리를 보장한 헌법의 정신에 충실하자면 공정하면서도 신속한 재판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법관을 확충하여 그 사건부담을 덜어주는 것이 국가의 의무일진대, 그러한 의무를 방기한 국가의 책임을 소송당사자에게 떠넘기는 것은 결코 합리화될 수 없는 것으로 비난받아야 할 것입니다.

그밖에도 헌법재판소는 “재판부 구성원의 변경, 재판의 전제성과 관련한 본안심리의 필요성, 청구인에 대한 송달불능 등”을 예로 들고 있습니다.8) 재판부 구성원의 변경은 판결선고를 지연시킬 수 있는 중대한 사유가 될 수 있으나 이 역시 일정한 범위내에서만 그렇다고 보아야 할 것입니다. 민사소송법 제199조가 판결선고기간 자체를 소송제기일부터 5개월로 정하고 있는 이상 재판부 구성원이 변경된다고 하더라도 이 법에서 정하고 있는 5개월 이상의 기간을 지연시킬 사유는 될 수 없을 것입니다. 한편 재판의 전제성 부분은 위헌법률심판사건이 아닌 이 사건과는 무관한 것이므로 논의할 필요가 없으며 청구인에 대한 송달불능 역시 일정 범위내에서는 판결선고 지연의 사유가 될 수 있지만 그 범위가 법원의 잣대에 따라 무한정 늘어날 수 있는 것은 아닐 것입니다.

물론 헌법재판소는 이러한 사유들의 하나하나를 재판지연의 정당화 사유로 정식화하고 있지는 않으며, 오히려 이런 여러 요소들 때문에 법원의 재량적 판단이 불가피함을 역설하고 있습니다. 즉 헌법재판소의 중점은 정당화 사유의 존부에 있는 것이 아니라 법원의 재량권에 두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전술한 바와 같이 적정한 재판기간, 다시 말해서 신속한 재판을 받을 권리를 실현시키기 위한 최소한의 기준에 대한 입법자의 의지가 이미 법률을 통하여 표명된 상황에서는 법원의 재량은 정당한 사유가 존재할 경우에만 인정될 수 있는 기속재량으로, 그것도 재량의 범위가 매우 축소되는 것으로 이해하는 것이 헌법정신에 부합하는 체계적 해석이 될 것입니다.

6. 신속한 판결선고를 청구할 법률상의 근거는 없는가?

한편 헌법재판소는 “민사소송법 제184조(현행법 제199조)에서 정하는 기간내에 판결을 선고하도록 노력해야 하겠지만, 이 기간 내에 반드시 판결을 선고해야 할 법률상의 의무가 발생한다고는 볼 수 없”고, “이 법규정외에는 청구인이 기본권의 주체로서 신속한 판결선고를 청구할 수 있는 다른 법률상의 근거도 존재하지 아니한다”고 하여 헌법 제27조 제3항이 규정한 신속한 재판을 받을 권리는 권리가 아니라, 아무런 법률상의 의무도 발생시키지 않는 프로그램에 불과하다는 인식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러한 진술에는 신속한 재판을 받을 권리에 대한 이중적 혼선이 존재하는 것으로 판단됩니다. 우선 기간 내에 반드시 판결을 선고해야 할 법률상의 의무를 부정하고, 법이 요구하는 의무를 단순히 기간 내에 판결을 선고하도록 노력할 의무로 격하시키고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는 법률에 따른 재판을 받을 권리를 인정하고, 따라서 법률에 따르지 않은 재판에 대해서는 그 무효나 취소를 주장할 수 있는 권리를 인정하는 우리 사법체제의 근간을 부정하거나 최소한 오도하는 것입니다. 과문한 탓인지 모르겠으나 우리나라 현행법령 가운데에는 국가의 노력 의무를 이처럼 ‘정언명제’로 선언하는 예를 찾아볼 수 없습니다. 법적 의무가 아닌 노력 의무를 의미하는 경우에는 우리 법령은 언제나 “노력하여야 한다”는 언어를 사용하고 있는 것입니다(헌법에서만 보더라도 “노력하여야 한다”는 문구가 최소한 다섯 차례 이상 등장할 뿐 아니라, 민사소송법 제1조에서도 이 문구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물론 헌법재판소의 표현대로 정해진 기간 내에 “반드시” 판결을 선고해야 할 법률상의 의무를 인정하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그러나 최소한 정해진 기간을 넘어서더라도 “합리적 기간 내에” 판결을 선고해야 하는 것은 법률상의 의무라고 하지 않으면 안될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신속한 재판을 받을 권리는 헌법에서 사라져야 하기 때문입니다. 어쩌면 헌법재판소는 사실상 이 권리를 헌법에서 지워버린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헌법재판소가 보여주고 있는 또 하나의 혼선은 기본권의 주체로서 신속한 판결선고를 청구할 수 있는 다른 법률상의 근거도 존재하지 않는다고 한 점입니다. 헌법재판소의 논리대로라면 정해진 기간내에 판결을 선고하지 않은 경우 또는 절차가 지연되어 정해진 기간내에 판결을 선고할 수 없는 것이 분명해 보이는 경우, 기간내에 판결을 선고할 것을 청구할 수 있도록 하는 별도의 법규정이 존재하지 않으면 신속한 재판을 받을 권리의 침해는 구제될 수 없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상식적으로 판단해 본다면, 재판을 청구할 때에는 법률이 정하고 있는 기간 내에, 최소한 합리적인 기간내에 종국결정을 선고할 것을 청구하는 것이지 5년 후건 10년 후건 법원이 내키는 대로 판결을 선고할 것을 청구하는 것이 아닙니다. 헌법이 재판을 받을 권리를 기본권으로 보장하면서 그 내용으로 신속한 재판을 받을 권리를 명시하고 있는 것은 바로 그런 의미일 것입니다. 또한 제소기간의 제한을 두어 일정한 기간내에 재판을 청구하도록 하고 있는 것 역시 이미 그 자체 속에 신속한 판결선고를 청구할 수 있는 법률상의 근거를 포함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야 할 것입니다. 그렇지 않고 법원의 재량에 따라 판결의 선고가 기약없이 늦추어질 수 있다고 한다면 제소기간의 제한이 왜 필요한지도 의문입니다. 당사자는 법률관계를 조속히 확정하는데 협조할 법적 의무가 있고(그래서 그 의무를 이행하지 않으면 불이익을 받고) 재판을 담당하는 법원은 아무런 의무도 지지 않는다는 논리는 무엇을 근거로 하는지 알기 어렵습니다.

7. 맺음말

이처럼 신속한 재판을 받을 권리에 관한 헌법재판소의 논리와 이를 근거로 삼고 있는 피고의 논변은 정당한 근거를 상실한 것으로 판단됩니다. 그러면 원고가 제기한 이 사건과 관련하여 신속한 재판을 받을 권리의 침해가 있는지, 그리고 그것이 국가공무원인 법관이 고의 또는 과실로 위법한 행위여서 국가배상의 대상이 되는지에 관해서도 세부적으로 판단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먼저 앞서 언급한 재판지연의 정당화 사유를 중심으로 이 사건 대상 판결선고가 신속한 재판을 받을 권리를 침해하는 것인지 살펴보겠습니다.

첫째, 원고의 해고무효 사건은 법률상 쟁점이 매우 난해한가? 원고의 해고 사유로 제시되었던 내용에 대해서는 여러 차례의 대법원판례가 선고된 바 있는만큼 쟁점이 새롭거나 난해하다고 인정하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둘째, 그렇다고 그러한 선판례들에 대한 법리적 공방이 계속되고 있다거나 특별한 사정변경이 있다고 보기도 어렵다는 것이 사건의 성격으로 보아 분명하므로 개별사건의 특수상황을 이유로 판결 선고의 지연을 정당화할 수도 없을 것입니다.

셋째, 접수된 사건량이 정당한 사유가 될 수 없음은 앞서 언급한 바 있으므로 따로 논증이 필요하지는 않을 것이며, 송달불능 등의 사유는 이 사안과는 무관한 것입니다.

결국 이 사안과 관련하여 유일하게 고려해 볼 수 있는 사유는 재판부 구성의 변경밖에 남아 있지 않습니다. 그러나 거의 5개월마다 재판부가 변경된 것이 아닌 한 이를 수년에 결친 재판지연을 정당화할 사유로 볼 수는 없을 것입니다. 더구나 이 사안에서 재판부의 구성 변경이 있긴 했지만, 그것조차도 이미 3년의 기간이 경과한 후의 일이었다는 점을 고려하면 재판부 구성 변경과 이 사건 재판의 지연과는 아무런 관계도 없다고 보는 것이 타당할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 사건 재판의 지연이 신속한 재판을 받을 권리를 침해한 것이면서도 그러한 지연을 정당화할 사유는 존재하지 않았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 이러한 재판의 지연은 헌법 제27조 제3항과 민사소송법 제199조를 위반한 것으로 그 위법성은 당연히 인정되며, 이로 인하여 원고에게 회복하기 힘든 손해를 입혔음은 분명해 보입니다. 그리고 원고의 주장에 따를 때 각종 탄원, 보도, 원고의 1인 시위, 소송 진행과정에서의 원고 대리인의 주장 등을 통하여 재판의 지연을 법관이 충분히 인식하였던 것으로 판단되므로 고의 또는 과실 역시 인정됩니다. 오히려 여러 가지 방식으로 소송의 신속한 진행을 요청했다는 원고의 주장에 비추어보면 재판의 지연을 초래한 재판부에는 고의 또는 최소한 중대한 과실이 인정되는 것으로 보아야 마땅할 것입니다.

귀 재판부가 현명한 판단으로 우리 헌법이 보장한 신속한 재판을 받을 권리를 진정한 기본권으로 우뚝 세울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2007. 1.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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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634 2007-04-20
126 특권사법의 은신처, 87헌법 / 이상수 파일 [1]
이상수
8066 2007-03-27
125 no image 국어원은 양심의 자유를 상상할 수 있을까(이재승)
김종서
7484 2007-03-27
124 no image 주거공간에 대한 권리
이은희
8535 2007-03-23
123 no image 도요토미 히데요시 손해배상?(박홍규)
김종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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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2 no image 나를 슬프게 하는 것(박홍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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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1 no image 사학법인과 교육 자주성(오동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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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lected no image 재판지연에 대한 국가배상 청구 사건에 관한 의견서
김종서
6474 2007-03-02
119 no image 아이에게 자유를
이은희
7160 2007-02-23
118 떳떳하게 출발하라/조승현(한국방송통신대학교 ) 파일
조임영
11063 2007-01-26
117 학비와 인권/박홍규 파일
조임영
8578 2007-01-26
116 행복 디자이너 만만세/박홍규 파일
조임영
14313 2007-0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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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임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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