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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 수 : 11063
2007.01.26 (23:02:36)


<한겨례21  2007년01월26일 제645호 게재>


[img1] 삼성에버랜드 이사회가 1996년 이건희 삼성 회장의 외아들 이재용씨에게 헐값으로 전환사채(CB)를 발행해준 데 대해 필자를 비롯한 법학 교수 43명이 이 회장 등을 고발한 건 2000년 6월29일이었다. 당시 고발장이 접수되기까지 우여곡절이 많았다. 공정거래위원회, 감사원, 국세청, 검찰, 국회 등 어느 곳에서도 이건희 회장의 불법 세습 문제를 제기하고 법적 대응조처를 취하거나 취하려고 하지 않았다. 언론도 마찬가지였다.


정말 주주들만의 손해인가


법학자의 사회적 역할을 감안할 때 강단에서 재벌의 불법 세습이 사회를 얼마나 갉아먹는 짓인지 열을 내는 것으로는 답답함을 걷어낼 수 없었다. 그런 중에 글을 통해 불법 세습에 대한 법적 문제점을 분석하고 문제의 심각성을 제기하는 몇몇 교수들이 나왔다. 삼성그룹의 경영권 불법 세습의 문제가 단순한 탈법을 넘어 기업질서의 근본에 관한 문제라는 생각에 동의하는 이들은 생각보다 많았다. 20명을 넘지 못할 것이라는 예상을 깨고 40명을 웃도는 법학 교수들이 고발에 참여하게 됐다.

문제가 된 기업들은 여럿이었다. 제일기획, 삼성엔지니어링, 에스원, 삼성SDS, 삼성전자, 삼성생명, 에버랜드 등이 비슷한 방식으로 이재용씨에게 저가로 전환사채나 신주인수권부사채(BW)를 발행한 것이다. 이 중에서 가장 상징적이면서 핵심적인 기업이 에버랜드였다. 논의 끝에 에버랜드 이사들을 고발하는 것으로 결정됐다.

고발 뒤 검찰의 수사는 지지부진했고 담당 검사가 네댓 번이나 바뀌는 등 수사 의지 자체가 의심스러웠다. 참여정부 들어 검찰의 수사는 속도를 내기 시작했고 결국 공소시효 유지 기간 막판(2003년 12월)에 이르러서야 기소가 이뤄졌다. 그렇지만 아쉬움이 컸다. 고발 내용은 에버랜드의 전환사채 저가 발행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이재용씨가 삼성그룹의 핵심적인 기업들의 지배주주가 된 과정 전반에 불법이 있었는지에 대한 것이었음에도 검찰은 에버랜드 전환사채 저가 발행에 한정해 수사권과 소추권을 행사하는 데 그치고 말았다.

2005년 10월4일 서울중앙지방법원 제25형사부는 이 사건에 대해 피고인들에게 유죄를 선고했다. 재판에서 유죄를 이끌어낸 검찰의 노력은 높이 평가할 만한 것임에도 이미 숲은 보지 못하고 나무만 보는 상황에서 나온 결론이라는 점에서 아쉬움을 남겼다. 현재 이 사건은 항소심이 진행 중이다.

1심 판결에 대해 비판적인 논문이 2편(이철송의 ‘자본거래와 임원의 형사책임’, 정기화의 ‘에버랜드 판결의 법 경제학적 분석’) 나왔고, 그 비판 논문을 다시 비판하는 논문(장덕조의 ‘전환사채의 저가발행과 회사의 손해’)도 나왔다.

1심 판결에 대한 비판 논문 2편 중 1편은 경제학 관점에서 배임죄의 성립요건으로서 손해 개념을 다루었고, 다른 1편은 상법적 관점에서 회사의 손해를 다루었다. 에버랜드 이사들의 무죄를 주장하는 이들 두 글은 나름의 논거를 제시하고 있다. 논거의 핵심은 임무위배성(배임)과 손해를 인정할 수 없다는 것으로 요약할 수 있다. 특히 형법상 배임죄의 성립 요건 중 손해와 관련해, 전환사채의 저가 발행이 주주들의 손해일 뿐이라는 것이었다. 학문적으로 경청할 만하나 설득력은 없다. 이재용씨가 부당한 이득을 취했다는 사실은 재판부가 인정했다. 그렇다면 그 반대인 손해는 당연히 전제되는 것이다. 그 손해는 회사의 손해일 수도 있고 주주나 채권자 또는 그 회사의 근로자들의 손해일 수도 있다. 주주(삼성 계열사)들이 자신의 이익과 권리를 포기했다고 해서 손해가 없어지는 게 아니다.


소극적인 검찰과 재판부에 묻는다


형법상 배임죄는 친고죄가 아니고 미수도 처벌된다. 또한 대법원 판례에는 형법이나 특가법상 배임죄의 적용 때 “손해의 유무에 대한 판단은 본인의 전 재산 상태와의 관계에서 ‘법률적 판단’에 의하지 아니하고 ‘경제적 관점’에서 파악하여야 하며, 따라서 법률적 판단에 의하여 당해 배임행위가 무효라 하더라도 경제적 관점에서 파악하여 배임행위로 인하여 본인에게 현실적인 손해를 가하였거나 재산상 실해 발생의 위험을 초래한 경우에는 재산상의 손해를 가한 때에 해당한다”고 돼 있다. 공정한 발행가액으로 발행됐다면 회사에 들어왔을 1천억원이란 금액이 저가 발행으로 인해 100억원이 됐다면 이는 명백히 회사(에버랜드)의 손해이고 인수자(이재용)의 이익인 것이다. 회사의 자산이 얼마냐에 따라 그 회사의 경영 규모와 신용, 사업상 기회이익이 결정된다고 하는 것은 상식이다. 유죄 판결을 비판하는 견해들은 이러한 점들을 간과하고 있다.

또 비판적인 논문과 관련해 지적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은 인용 판례의 부정확성이다. 비판 논문에서 인용한 일본 판례(도쿄지방재판소)는 회사의 손해 여부를 다룬 판례가 아니라 주주의 손해인지를 판단한 것이다. 판례를 제대로 읽었는지 의심이 간다. 이러한 측면에서 볼 때 1심 판결에 비판적이었던 논문의 학문적 순수성에 의문을 던지지 않을 수 없다.

1월18일로 예정됐던 에버랜드 사건 선고공판이 또 미뤄지고, 이재용씨는 삼성전자의 전무가 됐다. 고발자의 한 사람으로서 가장 우려되는 것은 진정한 고발 취지가 형식적 법리 논쟁으로 퇴색되고 있다는 점이다. 이 사건의 핵심은 이재용씨가 삼성그룹 계열사들의 핵심 지배주주가 되는 전체 과정에 불법과 탈법은 없었는지를 총체적으로 조사해 그 진실을 국민들에게 밝히라는 것이었다. 그런데 검찰이나 재판부는 역량이 부족한 것인지 아니면 이 수준에서 삼성 경영권 불법 세습 문제를 정리하겠다는 것인지 그러한 진실을 밝히는 데 소극적이다.

다시 한 번 강조하건대 이 사건에 대한 법적 평가는 엄중하게 이뤄져야 한다. 이 사건은 사적 회사에 대한 개인 이사들의 법률 위반 여부에 머물지 않고 한국 기업사회의 도덕과 법문화에 대한 역사적 평가와 관련돼 있다. 또 이는 단일한 사건이 아니며, 이재용씨가 주요 삼성 계열사들의 지분권을 직·간접으로 획득해나가는 과정의 하나일 뿐이라는 점을 염두에 둬야 한다.


중요한 건 진실 규명


에버랜드 사건은 특정 집단의 경제적 이해나 영향에 의해 좌우돼서는 안 된다. 재벌의 법률 위반과 그에 따른 국가의 법 집행을 두고 거시적 경제 영향 등을 등장시키는 것은 법치주의에 대한 도전이고 법의 권위를 희화화할 뿐이다. 그리고 배임죄를 둘러싼 법적 해석론도 중요하지만 이 사건의 진실 규명이 더 중요하다. 에버랜드 사건의 핵심 당사자는 이건희 회장과 이재용 전무다. 이재용씨가 전무로 승진해 경영 전면에 등장한 이상 이 사건에 대해서 직접적인 해명을 해야 한다. 사과할 것은 사과하고 책임질 것은 책임진 다음에 떳떳하게 출발하는 게 경영 책임자의 책무가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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