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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수 194
조회 수 : 8593
2007.01.25 (19:31:59)


<한겨례21 2007년01월18일 제644호에 실린 글입니다.>


[img1] 노무현 대통령이 대통령 5년 단임제를 4년 연임제로 바꾸어 대통령과 국회의원 임기를 맞추는 원포인트 개헌을 제안해 2007년 벽두를 헤집어놓고 있다. 사실 최근 2, 3년간만 하더라도 정치권과 학계는 물론 시민사회에서도 개헌을 논의하는 마당이 심심치 않게 열렸다. 뿐만 아니라 그 논의의 깊이도 대통령제를 손질하는 것을 넘어 인권 목록의 확장과 인권 보장의 신장 그리고 민주주의의 제도적 확장에까지 이르렀다. 그러나 정작 ‘다수이면서도 경제적·사회적·정치적·문화적 약자인 국민’이 이른바 ‘국민적 합의’의 진정한 주체인 주권자로 자리매김하기엔 민생의 등골이 너무 휘어 있었다. ‘국민’은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개헌”엔 관심이 없다.

오직 인간답게 살 수 있는 세상으로 한 걸음씩이라도 나아가고 싶어한다. 그러기에 그들은 적어도 현행 헌법에 선언하고 있는 인권 목록만이라도 제대로 실현하는 구체적인 법률과 제도 그리고 정책을 고대한다. 법치를 가장한 국가의 폭력 앞에서 헌법은 너무 멀다. 소수이면서 강자인 권력자들을 향해 호소하건대, “지금 있는 헌법이나 잘 지키세요!”


작지만 가혹한 헌법 수술


그렇다면 개헌을 추진할 때 가장 먼저 고려해야 할 것은 누구의 눈으로 헌법의 고칠 부분을 찾아낼 것인가의 문제다. 국민주권을 끌어들이지 않아도 민주국가에서 그것은 당연히 국민의 몫임을 초등학생 정도면 다 안다. 그런 점에서 불과 몇 달 안에 일사천리로 헌법을 손볼 수 있다는 대통령의 발상 자체가 경악스럽다. 분명 ‘원포인트 개헌’은 그 자명한 진리로부터 그리고 우리 헌정사의 반성적 가르침으로부터 한참 벗어나 있다.

돌이켜보건대 정치판의 개헌론이란 늘 자신들의 권력 장악을 위한 편의 수단이었으며, 정작 헌법 개혁의 핵심인 민주주의와 인권은 장식용에 불과했다. 1948년 첫선을 보인 대한민국 헌법의 정부 형태가 애초 유진오 안의 의원내각제에서 대통령제로 바뀐 것도 이승만의 고집 때문이었다. 그것도 모자라 이승만은 1954년 제2차 개헌을 통해 초대 대통령에 한해 중임 제한을 배제함으로써 종신 집권을 꾀했다. 박정희 또한 1969년 제6차 개헌을 통해 3선의 길을 열었다. 1972년 유신헌법(제7차 개헌)에서는 아예 연임이나 중임 제한 규정을 두지 않았다. 군사쿠데타 세력은 1980년 제8차 개헌에서 무늬만 단임제일 뿐 사실상 자동 연임을 보장한 7년 단임제로써 민주적 정당성이 없는 정권의 약점을 가리려는 반사효과를 얻고자 했다. 1987년 제9차 개헌을 통한 현행 헌법 역시 장기 집권을 방지하기 위해 단임제를 고수했다. 그런데 독재자에 맞설 수 있는 동력은 민주주의를 향한 국민의 의식과 열망의 규범화로서 헌법이지 결코 단임제는 아니다. 단임제는 그저 장기 집권으로 상처받은 심리를 치료하기 위한 상징이다.

이제 노무현 대통령은 단임제가 역사적 사명을 다했다고 진단하고 사망선고를 내리고자 한다. 물론 그가 말하듯 “헌법은 국가와 공동체의 기본 규범이자 시대정신과 가치가 제도화된 틀”이기에 그 위상에 걸맞게 국민의 최고법으로 벼려내는 노력을 멈춰서는 안 된다. 예컨대 대통령이 중요 정책을 국민투표에 “붙일 수 있다”(헌법 제72조)는 맞춤법에 어긋난 표현을 “부칠 수 있다”로 바로잡는 일조차도 전혀 의미가 없지는 않을 것이다. 그런데 내가 보기엔 원포인트이든 그 이상이든 대통령제를 둘러싼 개헌론은 빈사 상태에 빠져 있는 헌법에는 작지만 가혹한 수술이다.

대표적으로 몇 가지만 꼽더라도 비정규직으로 대표되는 불안정 노동 문제 가중, 사회적 안전망 해체로 인한 생존권 위협, 사상·표현 자유를 억압하는 국가보안법 존치, 평화주의 원리와 평화적 생존권을 짓밟고 선 이라크 파병 그리고 전략적 유연성 합의와 평택 주한미군기지 확장, 총체적 생존권과 국민주권을 위협하는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협상, 마지막으로 원초적인 민주주의적 의사소통 수단인 집회·시위 자유를 유린하는 집시법 운용 등으로 정작 헌법 규범의 핵심이 난도질당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지경에 이르러 고작 한다는 일이 대통령과 국회의원 임기를 일치시키는 개헌이라면 헌법은 다시 한 번 죽임을 당하는 것이다.


변변한 개혁입법하나 못해놓고…


더욱이 대통령 자신이 박물관으로 보내야 한다고 설파한 악법의 대명사 국가보안법은 여전히 인권 앞에 당당한데 애꿎은 단임제에 역사적 책임을 묻는 것은 비겁하다. 단임제가 대통령의 국정수행 평가와 연속성 확보를 어렵게 한다고 하지만 그것이 한국의 헌법 현실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아주 미미하다. 설령 4년 연임제를 채택하는 경우에도 첫 번째 4년 임기에는 대통령이 연임을 겨냥한 선심성 정책을 시행할 우려가 있으며, 국민이 재선 뒤 4년 임기에 대해서는 평가할 기회를 가지지 못한다. 국정의 일관성과 연속성 확보 문제도 그 원인은 가시적 업적주의 때문에 생겨나는 근시안적 정책인데, 그 해결책은 대통령의 임기를 단순히 몇 년 늘리는 데 있지 않다. 정치인들이 어떤 정책이건 장기적 전망을 가지고 접근할 수 있는 국정 수행 능력을 갖추고, 권력자 1인이 아니라 정책 일관성을 유지할 수 있는 국정 운영 시스템을 만들어내는 것이 중요하다. 결국 단임제의 폐해를 좀더 근원적으로 해결하는 방법은 헌법의 규범틀 안에서 민주주의를 구현하는 정치문화를 정착시키는 일이다.

20년마다 한 번 찾아오는 적기라는 근거 또한 적절하지 않다. “대통령이든 국회의원이든 임기를 줄인다는 것은 대통령이나 국회의원 어느 쪽도 수용하기 어렵기 때문에 사실상 불가능한 일”이라는 것인데, 결국 요약하자면 대통령과 국회의원 임기 다 채워 먹겠다는 욕심 때문 아닌가. “새로운 시대정신에 부합하는 규범을 담아야 할 필요성”이 있다면 어느 한쪽의 임기 단축은 대수롭지 않다. 또한 대통령은 원포인트 개헌이 이루어지면 “시기의 제한이 없이 우리 헌법을 손질하는 개헌이 가능해질 것”이라고 주장한다. 무릇 헌법을 개정하려면 국민적 합의 내용을 이끌어내고 그것을 추진할 헌법 개정 권력이 형성되어야 하는데, 그게 쉽지 않다. 이른바 개혁의 깃발을 내걸고 대통령직과 국회 다수파를 차지하고 있었음에도 변변한 개혁 입법이 전무했다. 그것 자체가 사회적 양극화가 심화된 것만큼 한국 사회의 대립각이 첨예하며 수구세력이 완고함을 여실히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과거 독재정권과 다르다고는 하지만 문민·국민·참여 정부는 경제성장을 위해서 혹은 분단현실을 핑계로 인권과 민주주의 그리고 평화주의를 뒷전으로 밀어내는 논리를 내치지 못했다. 그런 점에서 설령 원포인트 개헌이 아니라고 하더라도 헌법을 이리저리 뜯어고치면 그에 상응하는 헌법 현실을 만들어낼 수 있다고 기대하는 것은 환상이다. 헌법 차원의 논의는 헌법의 속성상 구체적이기보다는 추상적일 수밖에 없다. 정치적 욕심에 따른 개헌은 반헌법적 현실을 외면한 채 화려한 수식어로 헌법을 덧칠하는 것에 그치기 십상이어서 헌법을 값싸게 만든다. 따라서 입법으로 풀지 못한 숙제를 헌법으로 풀겠다는 발상은 책임 회피의 핑계일 뿐이다.


20년 기다리더라도 국민 주권의 이름으로


민주주의가 성숙한 사회일수록 헌법에 명시적인 근거 없이도 정치적 합의와 그에 따른 의회민주주의 결과물인 입법으로써 충분히 헌법적 가치를 실현하는 길을 열어간다. 그 튼튼한 기초는 민주주의적 정치의식과 정치문화다. 다시 20년을 기다려야 한다고 하더라도 ‘국민 주권’의 이름으로 헌법의 본질인 ‘인권과 민주주의’를 또박또박 신장시키는 길을 권하고 싶다. 그것이 헌법을 살리고 실질적인 개헌을 이루는 일이며, ‘헌법 윤색(潤色)’ 아닌 ‘헌법 개정(改正)’을 성취하는 길이다. 헌법은 인권과 민주주의의 전진을 확인하는 기록문서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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