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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 수 : 13864
2001.06.18 (10:16:47)
94년 북한 핵시설에 대한 선제공격의 위기에 대하여 당시 군책임자였던 페리 전 미국방장관의 증언이 나왔습니다.

정말 끔찍합니다. 우리가 누리고 있는 평화와 행복이 얼마나 허약한 것인지 실감하게 됩니다. 우리의 시간과 공간은 저 무지막지한 전쟁의 화염과 굉음 속에 포위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또한 놀라운 것은 그러한 공포의 주범 가운데 일인인 페리가 다시 그 공포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희망을 보여주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페리는 당시 전쟁불사의 강경론자였지만, 이후 대북정책조정관을 맡아 햇볕정책의 한 축을 이루는 페리프로세스를 내놓았던 것입니다.

한편 그 페리프로세스는 바로 임동원 현 통일부장관과 김대통령의 설득의 성과였다고 하는 한겨레 정연주 논설주간의 얘기가 다시 떠오릅니다.

그리고 임장관을 집요하게 타격하려는 한나라당의 추태도 또한 떠오릅니다.

임장관이 국정원장 시절 조선일보와 한나라당은 안보기관의 장이 대북화해와 협력에 나선다고 얼마나 비난하였습니까? 또 지금은 북한 상선의 영해침범문제로 국방부장관은 물론 임장관에까지 해임결의안을 제출한다고 합니다.

정말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아래는 페리 미 전국방장관의 제주평화포럼에서의 얘기입니다.

부분적인 인용으로 페리 전국방장관의 전체적인 취지가 잘 전달되지 않는 점이 아쉽지만, 당시의 전쟁위기의 심각성에 대하여는 충분히 알 수 있습니다.

중앙일보에서 퍼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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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리 전 국방장관 "94년 북한핵 위기때 전쟁각오"

"1994년 6월의 북한핵 위기는 국방부 장관으로서 미국이 전쟁을 각오해야 했던 심각한 상황이었다. "

17일 폐막된 제주 평화포럼에 참석한 윌리엄 페리 전 국방장관 겸 전 대북정책 조정관은 '위기의 순간' 을 회고하면서 대북 강경책은 위험하며 북한과 대화하는 것이 더 나은 방법임을 강조했다.

그는 '한국 어디로 가는가(Korea…Quo Vadis?) ' 라는 제목의 특별연설에서 당시의 긴박했던 상황을 이렇게 설명했다.

"당시 북한은 핵연료 재처리 과정을 막 시작하려 하고 있었으며 방치하면 6개의 핵폭탄 제조가 가능한 플루토늄을 확보할 터였다.

특히 '서울을 불바다로 만들겠다' 는 북한의 위협을 심각하게 받아들인 나는 전쟁 비상계획을 검토하라고 지시했다.

이틀 동안 군 지휘자들을 만나 전쟁계획의 모든 세부상황을 검토했다. 파견할 육군.공군부대를 결정했고 이동방법.도착시간 등에 대해 심사숙고하는 한편 기습공격을 언제 어떻게 할 것인지를 고려했다.

검토 결과 전쟁이 발발하면 승리하겠지만 한국군.미군.한국 국민의 피해가 엄청날 것이라는 게 드러났다. 나와 군지휘관들은 주한미군을 강화하면 피해를 대폭 줄일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주한미군을 수만명 증원하는 계획을 입안했고, 주한 미대사관에 민간인 철수계획을 준비토록 지시했다.

그러나 클린턴 대통령이 전쟁 개시를 승인하기 불과 몇 시간 전에 우리는 '영변의 핵활동을 중지하고 의미있는 협상을 할 준비가 됐다' 는 김일성(金日成) 의 전언을 받아 협상에 나선 것이다.

아마 북한의 핵활동을 방치했으면 지난 6년간 50개의 핵폭탄을 만들 수 있는 플루토늄을 확보했을 것이다. "

서귀포=안성규 기자

입력시간: 2001. 06.17. 18: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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