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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수 194
이은희
조회 수 : 8007
2007.12.13 (09:03:44)
중부매일 2007년 12월 13일자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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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벌써 12월이다. 지난 한 해를 돌아보며 잊을 건 잊고 새해맞이를 준비할 때다. 지난 한 해를 오롯이 기억하고 싶은 사람도 더러 있겠으나, 대개는 무언가 잊고 싶은 게 있을 것이다. 나는 누군가 나에게 뇌물을 주려 한 것을 잊고 싶다.

   그는 선물이라며 내밀었으나 내 생각엔 뇌물이었다. 그래서 몹시 기분이 나빴다. 공적인 임무를 맡은 나를 이 따위 물건으로 유혹하려 들다니 이런 모욕이 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길길이 화를 내고도 싶었다. 하지만 그도 꼭 하고 싶어서 한다기보다는 그가 익힌 처세술에 따른 것일 수도 있다고 생각하니, 돌려보내면 그만이지 화를 낼 필요는 없다고 생각되었다.

   뇌물을 주는 일이 처세술로 자리잡았다는 것은 정말 슬픈 일이다. 시비를 가려야 할 자에게 뇌물을 주어서 시비를 가릴 필요가 없게 만드니 올바름이 자리를 잡을 수 없다. 결국은 뇌물을 줄 재력이 있는 사람이 우대받는 세상이 되는 것이다. 그러니 뇌물을 주는 일을 더 이상 처세술로 삼아서는 안된다. 그것이 정말 유용한 처세술임을 익히 알고 있으며 나에게 재력이 있다 하더라도 부디 그것을 버려야 한다.

   그러나 재력이 있는 자가 뇌물을 주지 않기란 참으로 어려운 일인 것 같다. 왜냐하면 뇌물을 줌으로써 상대방을 바로 내가 원하는 대로 움직일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공적인 임무를 맡고 있는 사람에게 뇌물을 주어서 그 본분을 잊게 만드는 일이 그리 어렵지 않음을 보아왔다면 말이다. 양극화의 시대에 부의 극단에 위치한 자들은 사람이 사람같이 보이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들이 소유한 부로써 남들의 마음을 얼마든지 자기 마음대로 움직일 수 있으니, 남들의 마음은 마음이 아닐 터이다. 나처럼 재력이 없는 사람이 사람으로 대접받고 살자면, 뇌물을 주거나 받지 않는 세상이 되어야 한다. 그래서 나는 받을 수 없다고 분명히 말하고 그를 돌려보냈다. 그가 돌아가 주어서 기뻤다.

   뇌물과 선물을 구별하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뇌물은 무언가 부탁할 게 있어서 주는 것이고 선물은 그냥 고마워서, 예뻐서, 반가워서 주는 것이다. 뇌물을 받으면 준 사람이 원하는 바를 들어주어야 한다는 부담을 지게 되고, 그의 뜻을 들어주었든 들어주지 않았든 그를 다시 보았을 때 떳떳치 않다. 반면 선물을 받으면 그냥 고맙고 기쁘다. 시비를 가려야 할 자에게 바로 그 관련자가 주는 물건은 명백한 뇌물이다. 그러니 나에게 뇌물을 주려 했던 그도 그것이 뇌물임을 알았을 것이다. 따라서 내가 받지 않은 것을 그도 기쁘게 생각했으리라. 그가 정말 엄청난 재력을 가지고 있어서 나를 사람같이 여기지 않았다면 모르나.

   선물을 주는 입장에서는 상대방이 뇌물로 느낄 수 있는 선물을 삼가야 한다. 뇌물은 그에 대한 모욕이기 때문이다. 나는 아이들의 선생님께 학년말에 선물을 드리는데, 그렇게 하는 것이 학년 초에 드리는 것보다 내 마음이 가볍다. 뇌물이 아님이 명백하기 때문이다. 지난 2월에는 온 가족이 방학동안 완성한 명화퍼즐을 중학생 아들의 담임선생님께 선물하였다. 선생님께서 굉장히 기뻐하셔서 우리도 정말 기뻤다.

   이제 뇌물 같은 것은 잊어버리자. 더 이상 줄 생각도 받을 생각도 말자. 특히 이 선거철에 후보자에게 뇌물을 주거나 받는 일이 일어나지 않기를 바란다. 대신 고마운 마음, 사랑하는 마음을 표현하는 선물을 부모님께, 친구들에게, 아이들에게 주고 받는 따뜻한 연말이 되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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