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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수 194
조회 수 : 7635
2007.09.10 (16:17:41)
이 글은 민주법학에 수록한 글을 짧은 분량으로 줄여서 교수신문(2007. 9. 10자)에 게재한 것입니다.
그래서 제목을 로스쿨 졸속 추진 유감(2)라고 붙였습니다.

로스쿨 졸속 추진 유감


로스쿨 찬반 여부를 떠나서 이와 같이 주먹구구식으로 진행되는 추진과정에 대해서는 단호히 거부해야 한다.

나는 로스쿨에 반대하는 사람이지만, 이미 법률이 공포돼 그 시행을 기다리고 있는 마당에 다시 로스쿨 제도의 도입 자체에 시시비비할 생각은 없다. 그러나 그 추진과정은 그냥 지나칠 수 없을 정도로 심각한 문제점을 보이고 있다.

졸속입법, 무모한 교육부, 밀실의 법무부

지난 7월 27일 공포된 로스쿨법은 그 부칙에 따라 9월 28일이 돼야 발효된다. 그동안 ‘민생입법’ 운운하면서 대통령까지 나서서 빠른 통과를 재촉해 왔고, 회기 만료를 5분 앞두고 상임위원회도 거치지 않은 채 직권상정으로 통과시켜야 할 정도로 시급하다던 법률을 2개월이나 뒤에 시행되도록 한 것은 졸속이란 말 이외에는 달리 표현할 길이 없다.

법 통과 직후 교육부가 발표한 로스쿨 추진일정은 향후의 혼선과 졸속입법의 맹점을 생생히 보여주었다. 교육부에 따르면, 9월 초에 인가신청 공고를 하고, 총 입학정원 결정·법학교육위원회의 인가심사기준 확정 등의 작업이 9월까지 마무리되며, 10월 초에 인가신청 접수, 2008년 3월 예비인가, 10월 최종인가를 거쳐서 2009년 3월에 로스쿨을 개원한다는 계획이다.

그런데 이러한 일정은 정상적으로는 달성이 불가능하다. 총입학정원과 인가기준의 확정이 모두 3일 내에 이루어져야 하기 때문이다. 졸속이 아니라 무모하다. 이런 무모함은 다른 기관이 보기에도 민망했던지, 법무부와 법원이 ‘로스쿨 총입학정원에 대한 의견을 제출해 달라’는 교육부 공문을 거부했다. 아직 법이 발효되지도 않은 상태에서 한 교육부의 요청이 아무런 법적 근거도 없다는 점이 주된 이유였다.

한편 로스쿨이 결국 교육을 통한 법률가 양성을 목표로 하는 것임을 고려할 때, 이 시스템은 결국 변호사자격시험으로 완성된다. 그러므로 변호사자격시험의 형식과 내용은 로스쿨의 교육과정에 큰 영향을 주는 것은 물론 로스쿨의 성패를 좌우할 사항이다. 마침 법무부는 ‘변호사시험법제정 실무위원회’를 구성하여, 변호사시험법안 초안 마련 등을 담당하게 한다고 발표했다.

그런데 이토록 중요한 내용을 다루는 위원회의 구성과 활동은 공개되어 있지 않다. 더구나 이 위원회의 명칭에는 ‘자격’이란 용어가 사용되지 않아, 정원제 시험을 예정하고 있다는 의심을 갖게 한다. 즉 자격시험을 부정하고 현행 사법시험처럼 정원제를 유지하는 것은 곧 로스쿨 제도의 취지 자체를 부정하거나 최소한 왜곡하는 것이므로, 법무부로서는 이렇게 민감한 사항을 다루는 위원회 관련 사항의 공개를 피하고 싶었을 것이다.

더욱 놀라운 것은 그 일정이다. 초안을 12월에 발표한다고 하니, 아마도 대통령선거가 끝난 후일 것이다. 그리고 법안 제출 시점으로 예정한 2008년 6월은 제18대 국회의원 총선거 후 첫 임시국회가 열리는 시기이다. 다시 말해서 법무부는 변호사시험법 준비 과정을 주도면밀하게 양대 선거와 연결시켜 놓고 있는 것이다. 결국 로스쿨의 열쇠는 법무부가 쥔 셈이다.

졸속입법과 무모한 행정이 낳은 대표적인 부작용은 2학기 개강을 전후해서 전국 법과대학에서 벌어지고 있는 ‘교수쟁탈전’이며, 가히 ‘인사대란’이라 할 만하다. 교수 빼가기는 학벌서열의 정점에 있는 서울대에서 시작됐다. 학벌서열이 높은 학교들에 교수를 빼앗긴 대학들은 후순위 대학들에서 교수들을 약탈해오고, 수도권 대학들은 지방대학 교수 사냥에 나서며, 지방에서도 뺏고 빼앗기는 쟁탈전이 일어난다.

그 최대의 피해자는 다름 아닌 학생들이다. 대규모의 폐강사태와 준비되지 않은 강사들, 논문 제출을 앞두고 갑자기 지도교수를 변경해야 하는 대학원생들, 심지어 폐과까지, 요즘 교수를 빼앗긴 법과대학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풍경이다. 로스쿨 유치를 위해 많은 교수를 확보한 대학들이라고 사정이 좋은 것도 아니다. 인가신청 준비 작업에 동원되거나 급하게 영입된 교수들에게서 좋은 수업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2007년 2학기의 법대생들은 전국에서 가장 큰 교육적 손실을 입는 피해자들이다. 교육을 통한 법률가 양성 제도인 로스쿨 도입을 위해, 법률가가 되려는 법학도들이 희생돼야 하다니, 이 무슨 비극인가?

그런데도 정해진 것은 아무것도 없으니, 대학들은 연구보고서 하나에 의거해 최고점 획득을 목표로 무한 배팅을 한다. 그 많은 시간과 돈과 노력이 다른 교육활동을 위해 투입된다면 참으로 놀라운 효과를 거둘 수 있을 텐데, 세상에 이런 낭비가 없다.

인사대란과 폐강사태, 그리고 이상한 침묵

이런 추진과정에 대해 누구도 문제 삼지 않고 있는 현실은 더욱 이상하다. 로스쿨 도입을 그렇게 외쳐대던 사람들, 단체들이, 눈앞에서 펼쳐지는 어처구니없는 광경들 앞에서는 쥐죽은 듯 고요하다. 그렇다고 언론이 나서지도 않는다. 로스쿨을 적극 추진하는 대학들 소개 기사는 눈에 띄어도 현재의 무모하고 한심한 추진과정을 비판하는 기사는 찾아보기 어렵다.  로스쿨 추진과정에서 정부가 보여주는 오만방자함, 무모함, 졸속성 등은 이제 대한민국이라는 국가의 작동시스템 자체를 무너뜨리는 단계에 이르렀음에도 이를 비판하는 이는 아무도 없는 꼴이다. 누구도 정부의 독주에 제동을 걸지 않는다. 이것은 민주주의, 권력에 대한 감시와 통제를 논하기 전에 참으로 참담한 현실이다.

교육부가 발표한 애초의 일정은 이미 불가능해졌다. 이를 해결하는 방법은 인가신청 시기를 연기하거나 로스쿨 개원 시기 자체를 늦추는 것이다.

주먹구구식 추진에 법학교수회도 외면

로스쿨 개원 시기를 그대로 둔 채 인가신청 시기만 늦추는 경우, 개원 준비기간이 너무 촉박해진다. 또한 법무부의 변호사시험법 제정 일정을 감안하면, 그 내용을 교육과정에 반영할 수 있는 상당한 기간이 필요하다. 그렇다면 로스쿨의 정상적 운영을 위해서는 인가신청 시기를 늦추는 것으로는 부족하며, 개원 시기 자체를 미뤄야 한다. 즉 로스쿨의 개원 시기는 우리 학제를 고려할 때 아무리 빨라도 2010년 3월로 늦춰져야 한다.

로스쿨 찬반 여부를 떠나서 이와 같이 주먹구구식으로 진행되는 추진과정에 대해서는 단호히 거부해야 한다. 그런데도 이를 적극 주도해야 할 법학교수단체들은 이를 외면하고 있다. 오히려 한국법학교수회는 법적 근거도 없이 요구된 교육부의 의견 요청에 대해 총입학정원 3,200명이라는 의견을 제출하는 어처구니없는 행태를 보였다. 더욱이 어떤 의견수렴절차도 없이 그간 주장해왔던 4천명에서 슬그머니 800명을 줄인 채로. 한국법학교수회가 과연 한국 법학교수들을 대표하는 단체라고 할 수 있을까?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2009년 3월에 로스쿨을 개원하는 일이 아니다. 기왕 새로 도입하는 제도가 제대로 정착될 수 있도록 합리적이고 공정한 절차에 따라 인가기준을 만들어 나가는 일, 확정된 인가기준에 따라 대학들이 최소한의 준비를 할 수 있도록 하는 일, 이를 위해서 로스쿨의 개원 시기를 최소한 1년 이상 연기하는 일, 이런 일들이 지금 해야 할 일이며, 이 일에는 바로 지금 법과대학 교수들이 적극 나서야 한다.

김종서 / 배재대·민주주의법학연구회 기획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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